은혜 설교 모음

4복과 4화(四福 四禍)

하나님아들 2025. 8. 9. 22:01

4복과 4(四福 四禍)  Luke 6:17~31

 

 

 

 

1. 산상수훈과 평지설교(17-19)

 

*우리에게 산상수훈(山上垂訓)으로 잘 알려진 마태복음 5,6,7장 이야기를, 누가복음은 산상(山上)이 아니라 평지(平地)에서 전하신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산과 평지, 이 둘은 어떻게 다르며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왜 굳이 마태는 그곳이 산이었음을, 누가는 그곳이 평지였음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오늘의 공부는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최근에 저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이 쓴 <마의 산>이라는 작품을 읽었습니다. 1,500페이지 정도 되는 제법 방대한 소설입니다. 한스 카스토르프라는 독일 청년이 요아힘 침센이라는 사촌을 방문하기 위해 스위스의 높은 곳에 위치한 베르크호프 요양소를 찾아가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루는데, 그곳은 평지가 아니라 높은 곳입니다. 공기의 밀도가 다르고 시간마저 다르게 흘러가는 듯합니다. 저 아래 평지와는 공간도 다르고 시간의 질도 다르고 주고받는 대화의 주제도 다릅니다. 그곳은 높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상징적인 공간인 요양소를 배경으로 1차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시대의 이념 다툼과 고민을 다룹니다. 저 아래 평지 이야기는 어쩌다 한 번씩 흘러나올 뿐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현실이면서도 비현실적입니다. 아마 그 공간의 영향이기도 할 겁니다.

 

*한국라브리도 산에 있습니까? 스위스 라브리는 산에 있는지 몰라도 한국라브리는 산에 있다고 말하기 조금 애매합니다. 하지만 산에 있습니다. 정서상 그렇습니다. 라브리에 오는 순간 사람들은, 평지를 벗어나 있는, 일상과 현실의 삶의 터전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공간임을 경험합니다. 시간이 다르게 흐릅니다. 그래서 더욱 본질적인 고민, 깊이 있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산이 주는 효과, 일상을 벗어난 지점이 주는 효과이기도 합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생각하고 있는 산, 시내산, 율법을 받은 산을 염두에 두고 유대인들에게 복음서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의 주된 내용은 천국의 삶입니다. 천국 시민이 가져야 할 윤리의식입니다. 그 절정은 황금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대로 살기가 참 쉽지 않은, 그래서 조금 부담스러운 내용입니다. 같은 주제를 누가복음은 6장 이하에서 평지를 배경으로 전합니다.

 

-그 산(혹은 그 평지)은 어디였을까요? 갈릴리 호수 북편에 팔복교회가 서 있답니다. 그곳을 산상수훈이 선포된 곳으로 보았다는 얘기죠.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갈릴리 서쪽에 있는 나지막한 산, 핫틴산(혹은 하틴의 호른산)이 바로 산상수훈의 선포 무대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핫틴산에서 내려오시다가 조금 평평한 곳(평지)에서 설교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함께 평지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쉽게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었고, 갈릴리 주변 전역에서 고침을 받고 싶은 사람도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산상수훈으로 알려진 그 내용을 선포하셨다고,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많은 군중에게 선포하셨다는 겁니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평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실 수 있는 이방인, 여인, 아이들, 하인들, 소외된 바로 그 사람들에게도 선포된 메시지임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2. 복과 저주를 다루는 말씀들

 

*처음 성경에 나오는 복과 저주(창세기): 그런데 두 복음서에서 산과 평지만큼이나 상이한 점 중의 하나가 바로 화 있을진저입니다. 마태복음과 달리 누가복음은 화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마태가 팔복을 말한다면 누가는 4복과 4화를 말합니다. 복 또는 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성경을 잠시 훑어봅시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체들(1:22)에게 복을 주셨고, 사람(1:28)에게 복을 주셨고,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셨다(2:3) 말합니다. 그리고 저주에 대한 기록은 잘 아시는 대로 첫 범죄 이후에 뱀에게(3:14), 땅에게(3:17) 내려졌고, 이후에 지난 주 설교 본문처럼 가인에게(4:11) 내려졌습니다.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의 복과 저주: 하지만 복과 저주라는 묶음으로 선포되는 것은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일 겁니다. 신명기의 유명한 복과 저주의 선포는 27,28장에 기록되었는데, 말씀을 순종하는 경우에는 복을 받지만 말씀을 외면하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시기에 모세의 명령을 기억하여,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서 율법을 낭독하며 복과 저주를 선포합니다. 여호수아 8장입니다.

 

*이사야(5)와 하박국(2)화 있을진저’: 그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이사야 5장의 6화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점점 타락해 가고 사회적 죄악이 만연해질 때, 여섯 번에 걸쳐 화 있을진저가 선포됩니다. 그 내용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부당한 이익, 부정과 불법, 환락과 퇴폐, 진리를 호도함, 뇌물 수수, 교만 등등입니다.

 

-이 형식은 2년 전 함께 공부했던 선지서 하박국 2장에도 나타났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때 설교 제목이 ‘5화 둥둥둥이었습니다. 북을 울리듯이 하박국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러다가는 벌 받는다고 다섯 가지 화를 선포했습니다. 내용은 이사야 말씀과 비슷합니다.

 

*이 형식이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마태와 누가복음에도 나타나는데, 23장에는 7개 또는 8개의 화 있을진저, 11장에는 6개의 화로 드러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을 향한 질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4복과 4화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3. 복이 있는 사람들(20-23)

 

*모세는 십계명을 받은 이후에 그 말씀을 산에서 선포한 것이 아닙니다. 19:25에 따르면 백성에게 내려갔고 그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출20장 이후에 십계명 등등의 말씀이 기록됩니다. 누가는 비슷한 구조로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신 이후 이 말씀을 선포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셨고 입을 열어 가르치시면서 산상수훈과 팔복을 말했다고 기록합니다. 반면에 누가는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고 눈을 들어 복과 저주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청중은 누구였을까요? 그의 제자들(20), 제자의 많은 무리(17)였고, 넓게 보면 많은 백성(17)을 포함한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아니라, 그냥 가난한 자입니다. 이는 단지 경제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가난한과 대조되는 성경 속 단어는 교만한일 겁니다. 따라서 가난한 자는 겸손한 자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경건함을 의미합니다.

 

-왜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까? 그들이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가 바로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하나님이 베푸실 구원을 갈망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어서 지금 주린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맥락은 비슷합니다. 굶주린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뭘까요? 그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베풀어 주실 잔치 자리에서 주님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실 것입니다. 고난 받는 주의 백성들은 고난의 오늘을 살아내느라 힘겹지만 결코 오늘만 생각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종국을 바라보며 삽니다.culmination

 

이어서 나오는 지금 우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하여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우는 하나님의 백성을 연상해 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날이 오고, 배부르게 되고 기뻐할 날이 옵니다. 말하자면 회복의 날이고 웃는 날입니다. 마지막에 웃게 하실 것입니다.

 

네 번째 복은 인자로 말미암아 4종 세트를 받는 사람이 받을 복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미움을 받고, 외면 당하고, 욕을 먹으며, 악하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배척을 당합니다. 배제를 당하는 겁니다. 새 이스라엘인 교회는 머지않아 로마에게 박해를 받고 유대교에게 멸시를 받게 될 운명에 처해질 겁니다. 그래도 그들이 기뻐해야 할 이유는 그들에게 그날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원통함을 풀어주시는 날입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 때문입니다. 배척 당하고 외면당했던 선지자들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위로는 희망고문이 아닙니다. 막연하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슬쩍 내비치면서 어떻게든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도 올거야 라고 말하며, 쥐어 짬을 당하는 오늘의 청년들이 희망 고문에 몸서리를 칩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은 됐고 그냥 야간 수당이나 제대로 달라고 한답니다. 씁쓸한 얘기지요.

 

-올 듯 올 듯 오지 않는 해방의 날을 기다렸던 가난하고 눈물 많은 청년 윤동주는 1940년 경 '팔복이란 시를 쓰면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한 후에,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고 시를 맺었습니다. 저는 그가 좌절을 노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동주만큼 다가올 아침을 그리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기다리는 광복의 날이 멀게만 느껴졌다는 의미겠죠. 그 역시 가난한, 굶주린, 눈물의 시인이었습니다.

 

-주님이, 지금 당장의 가난과 굶주림과 눈물을 고스란히 겪는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곤란함을 겪는 무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이며, 힘들지만 어려움의 순간마다 동행하시는 성령의 임재가 있습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함께 울고 계시는 주님을 보는 사람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부활의 꽃을 피웁니다. 이럴 때 성도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을,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4. 화가 있을 사람들(24-26)

 

*화가 선포되는 네 가지 상황은 이와 완전 반대가 됩니다.

 

-그들은 부요한 자입니다. 교만한 자들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얼마 전 묵상한 시편 말씀(14:1)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신지 잘 모르겠지만, 계시더라도 난 필요없어.’ 말합니다. 그들은 지금 배부른 자들이며 그들은 지금 웃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며, 주님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억압합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까지입니다. 그들이 받을 위로는 더 이상 없습니다. 이 땅에서 이미 모든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굶주릴 것입니다. 울며 이를 갈며 애통해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게 되고, 진리와 진실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결의 흐름만 쳐다보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네 번째 화를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이제 곧 예수님을 버리고 유대인들과 적당히 타협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겁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삶이 바로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지혜롭고 처세술이 뛰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좋은 게 좋은 건 아닙니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리가 진리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일 것입니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현세적이고 물질적이고 배부르고 만족하고 웃고 넉넉한 이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이 딱 좋다입니다. 여러분, 지금이 좋습니까?

 

-감사하고, 지족할 줄 알고, 분에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눈은 오늘 사복 사화를 말씀하시기 위해 눈을 드셨던 주님처럼, 위의 것을 향해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아직도 이땅 가운에 이루어지지 않고 채워지지 않아서 애통하고 가슴 아픈 그 가난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남들은 다 지쳐 쓰러질지라도, 그 가난과 애통과 굶주림이 우리 성도들에게는 오히려 성장과 믿음의 동력이 되길 기도합니다.

 

 

 

 

5. 대원칙을 주시다(27-31,36)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누가복음에서 주로 6장 후반부에 압축돼 나타납니다. 그 핵심적인 교훈 몇 가지만 정리해 보면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 가지는 사랑 또는 원수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도 돌려대라는 적극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이 말씀은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에서 절정을 보입니다. 황금률이죠.

 

-성도의 사랑은 세상의 도덕의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은혜를 베풀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넉넉히 보여주는 자가 되라는 겁니다.

 

-또 하나는 타인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문제입니다. 비판은 필요합니다. 꾸짖는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며 용서하며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남을 판단하는 그 기준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앞에 놓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이사야65:13-16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사야서를 마무리하면서 이사야는 어떤 시간을 내다보며 말합니다.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다, 마실 것이다,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다, 예언합니다. 그러나 패역한 백성을 향하여는, 너희는 주릴 것이다, 갈할 것이다, 수치를 당할 것이다, 마음이 슬프므로 울고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다, 말합니다. 너희가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너희 이름이 저주의 말이 될 것이지만, 주의 참된 종들은 새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말합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 이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비는 사람은 아멘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은 아멘의 하나님으로 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전의 환난, 이전의 고통이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요, 주님께서 옛날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16절 이후에 좀 더 이어집니다. 아무튼 오늘 선포된 네 개의 복과 화가 연상되는 대목입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3:14), 우리 주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자기 백성을 영원히 즐거워하고 기뻐하도록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마태가 산상수훈으로 집약하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누가는 그의 복음서 6장에서 평지설교로 표현합니다. 마태가 만난 주님과 누가가 연구한 주님이 다를 수 없는데도 이렇게 상이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그들이 각각 전하려고 한 복음서의 독자나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누가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산의 상징성을 부인한다기보다는, 그 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도시에 살고 있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주님이 바로 그 산을 내려오셔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택하신 후에 주옥 같은 말씀을 전하신 메시아, 온 인류의 주가 되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따라서 불편한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는 희망과 격려를,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던 부요한 수신자들에게는 도전과 질책을 전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위협하는 원수들, 그들마저도 사랑하라고 더욱 적극적인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물과 가난과 굶주림으로 얼룰진 오늘을 살지라도

 

우리 오늘 그 눈물을 닦아낼 수 있고, 서로 닦아줄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날에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분이 우리 주님이심을 아는 까닭입니다.

 

그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임마누엘!

 

[출처] 누가복음시리즈#9 - <네 가지 복과 화> - 누가복음6B|작성자 땅끝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기복신앙

 

 

 

말씀..*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아멘

 

(예레미아613-14)

 

 

 

샬롬..예수님를 사랑하는 여러분 되십시요.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 교재하는삶 주권적인통치삶 경외하는삶 순종하는삶

 

 

 

1)성경에서 말하는 복입니다

 

하나님 그분이 복 이십니다

 

"하나님 그분 자신이 복" 이십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복이고 생명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뜻은

 

.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라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15)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19)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생명이고 복"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셨고 살아가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자세와 태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사망과 저주를 가질수도 있다라는 말입니다.

 

(신명기3015-20)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기위해 내가 계획을 세우고 기도하며 결정을 내립니다. 응답 해 주셨다고요. 요즘 교인들 대부분이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이와같은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명이 끊어진 것입니다. 여기 신명기 30장에서는 하나님의 복을 정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망과저주 또하나는 생명과복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때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십일조 헌금 이렇게 많이 했으니 많이 주십시요. 이거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복 주신다고 성경책 어디에 쓰여져 있습니까. 내 사업장 잘 되게 해달라고 헌금 많이 하면 기도하면 복 받는다고 누가 그랬습니까. 목자가요 그것은 목자가이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말입니다. 이런 기도는 기복신앙으로 가짜 이기때문에 열매가 없고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하고 관계가 끊어진 것이지요. 왜냐 하나님의 중심적인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을 버린거지요. 헌금 많이 하면 잘 되고 잘 살고 부자된다. 기복신앙이지요.모양만 갖춘 가짜신앙 이지요.

 

십일조는 하나님을 창조자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1010)

 

 

 

예수께서 가라사대내가 곧 길이요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이 얻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지 물질을 풍성히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헌금 많이 하면 복 받는다고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행 할때 복이 오는 것 입니다.신명기30장에도 보면 두가지가 있잖아요.생명과복 사망과저주 이것은 나의 선택의 몫으로 봅니다. 저번에 한 성도님(지역장)상담이 이런거 였습니다. 헌금 많이 하면 복 받는다고해서 많이 드렸는데도 지금까지도 17평아파트에서 힘들게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없는데 작정헌금 하라고 또 한다고 합니다. 집사님 당장 그 교회에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성경책에서 좋은 말씀만 가지고 포장해서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모양만 갖춘 가짜 신앙의 모습들 강요하는 헌금. 이제는 들어야 할 때 입니다.성도들의 울부짖음을 목자가 들어야 할 때 입니다. 목자가 얼마나 악하면 헌금만 요구 하겠습니까. 이 마음에는 거짓된 사단이 꽉 들어차 있고. 거기에는 하나님 생명도요. 인도하심도요. 전혀 없습니다. 목자는요 주일날 하나님의 길을 성도가 잘 갈수 있도록 설교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인 목적은 천국인데 내가 목자 잘못 만나서 지옥에 갈수 있나요. 아니지요. 이건 아닙니다.

 

 

 

2).()이 어두우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육체에 눈이 어두우면 살아가는데 보이지 않아 힘들고 불편하고 움직임이 짧아서 움직이는 거리가 짧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도 이와같습니다. 영의 눈이 어두우면 하나님을 만나 볼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밝게 깨어 나십시요.

 

"예수께서 가라사대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의 법칙을 보면 무섭습니다.

 

말씀구절을 보겠습니다.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대하 15:2)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성경말씀 찾아 보십시요.

 

*말라기37

 

*야고보서48

 

*예레미아2913

 

*스가랴13

 

성도가 신앙의 본질을 상실하면 타락한 것이며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하나님을 버리는 삶으로 살아갑니다. 탐심이 우리 마음속에 가득차서 내가 잘 살고 물질 많고 세상사람보다 우월하고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하고 관계를 끊게 만드는 것입니다.이런 탐심속에 하나님 신앙의 본질과 함께 할수 없습니다.

 

절대로 함께 할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번영신학을 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3)영적인 회복을 해야겠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

 

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

 

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세아46)

 

성도가 하나님을 버렸으니 하나님도 우리를 버린다고 하십니다. 목자들이 성도한테 평강이 있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이 평강의 외침은 거짓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레미아713)

 

 

 

하나님께서 이렇게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대답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레미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본질로 회복해야 할 때 입니다. 여러분 돌이켜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며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지혜로운 여러분 되십시요. 아무리 목자자가 기도한들 응답이 오겠습니까. 신앙의본질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과 교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돌이켜 회개하고 신앙의본질로 회복하십시요.

 

 

 

끝으로 신앙의 본질로 돌아갑시다.

 

"기복신앙은 하나님의 백성이 수단으로 변한 삶입니다"

 

나만 잘 되면 되고 하나님을 수단으로 사는 우리의 모습 회개하고 돌이켜야합니다.

 

이제 영의 눈이 밝게 다시금 영적회복을 위해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없고 나만 잘 되고 잘 살아가면 되는 이시대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봐야겠습니다.

 

지금 이시대의 기복신앙은 가짜입니다.(하나님을 수단으로 삼고 모양은 뛰어나지만 생명이 없습니다)

 

탐심 때문에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습니다.(하나님을 수단으로 삼기때문에)

 

영적인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러분에 되십시요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꼭 기억 하십시요.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되돌아가며 살아가도록 영적인 밝은 눈으로 회복시켜 주십시요.

 

하나님 평강이 우리의 가정위에 함께 있으며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청소년꿈찾기선교. 가정회복목회 박명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