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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호와, 야훼, 야웨(Yehweh, YHWH)

하나님아들 2012. 7. 27. 17:01

여호와, 야훼, 야웨(Yehweh, YHWH)

 

하나님의 이름의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목적이 이스라엘에 계시되어진 역사적 경험들과 분리될 수 없다.  전승에 따르면 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출애굽 시대에 모세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이라는 결정적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그들의 하나님은 바로 그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이라는 사실을-알게 되었다(출20:2, 호 11:1, 12:9, 13:4, 참조. 겔 20:5, 암 2:10, 3:1-2).  모세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진 이러한 새로운 종교적 관점은 그 이전에 있었던 종교적 견해들로부터의 발생적 진보라는 개념으로는 결코 적절하게 설명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거룩한 실체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반응-독특한 예배의식과 역사 이해와 윤리적 책임의식을 지닌 이스라엘의 독특한 계약공동체 안에 포현되어 있는 반응-을 나타내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새로운 계시가 야훼라는 새로운 이름의 계시(그 이름의 완전한 형태는 "만군의 여호와"이다)와 밀접하게 결부되었던 사실은 매우 큰 중요성과 의의를 지니고 있다.

 

(1) 오경의 전승: 모세시대의 결정적인 새로운 시작은 출애굽 신앙에 입각하여 개정된 현재의 오경 전승에 의하여 불명료한 상태에 빠져 있다.  야훼문서 기자의 기사는 야훼께 대한 예배의 기원을 모세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으며 아담의 손자?에노스의 시대에 사람들이 처음으로 야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말하고 있다(창 4:26).  야훼문서 기자가 창조기사에서부터 계속적으로 야훼라는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점은 그가 인간의 전 역사를 계약신앙에 입각하여 고찰하고 야훼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려는(에노스는 '인간'을 의미한다) 신학적인 시도를 행했음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가장 후기의 오경 전승인 제사문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엘 샷다이)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야훼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라는 출 6:2-3의 기사에서 이와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참조. 창 17:1, 28:3, 35:11, 43:14, 48:3,49:25). 

 

여기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제의적 명칭을 사용한 것이 제사문서의 도식적인 계획에 일치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경우에 있어서 제사문서는 신빙성있는 옛 전승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측은 세번째 오경 전승인 엘로힘문서에 의하여 확증되는데, 이 엘로힘문서의 기자는 창세기에서 야훼라는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그 거룩한 명칭이 모세시대에 최초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출3:1,4b,6,9-14).이 모든 전승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신을 소개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있어서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야훼는 모세시대에 처음으로 생겨난 분이 아니었다.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유랑생활을 할 대 그들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이시며(조상들의 하나님), 예전에 '엘 샷다이'나 그밖의 다른 명칭으로 불리었던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엘로힘문서와 제사문서의 전승은 족장시대와 모세시대 사이에 하나의 간격이 있음을 강조한 점에 있어서 의심할 바 없이 정확하고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그 간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이후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던 하나님의 이름의 계시를 통하여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이름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출애굽의 의미에 대한 모세의 예언자적 해석에 그 근거를 둔 것이었다.

 

(2) 야훼라는 이름의 기원:  비록 야훼라는 하나님의 명칭이 모세의 전승에서 새로이 통용되어졌으나 야훼문서의 기사(창 4:26)는 모세시대 이전에도 야훼라는 명칭이 알려져 있었다는 다소 불명확한 자료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야훼라는 명칭의 원래의 의미에 대한 의문은, 비록 이러한 유형의 고찰이 구약성경 신학에 거의 아무빛도 던져주지 않지만, 역사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장 초기의 히브리어에 있어서 이 거룩한 명칭은 모음 기호없이 네개의 자음(YHWH; 이를 '신성사문자'라고 칭하기도 한다)으로 표기되었다.  구약성경 원문에 모음 기호가 기입된 때는 매우 후대로서 마소라 본문이 확정되던 때였던 까닭에 구약성경 자체는 이 거룩한 명칭의 원래의 발음에 대한 실마리를 전혀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초대 교부들로부터 몇가지 도움을 받고 있다.  즉 키루스의 데오도레투스(주후 4세기)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오경을 경전으로 간주하였던 사마리아인들이 이 거룩한 명칭을 Iabe로 발음하였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주후 3세기 초)는 이 거룩한 명칭을 Iaoue로 음역하였다.  더욱이 주후 3세기 말경에 기록된 이집트의 주술 파피루스문서들은 이 거룩한 명칭에 대한 교부들의 발음을, 특히 데오도레투스의 발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암시들에 입각하여 이 거룩한 명칭의 가장 유사한 발음이 '야훼'였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야훼'라는 명칭이 그 명칭의 가장 오랜 형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명칭의 단축형인 yah라는 명칭은 구약성경에 25번 나타나 있으며(예.출 15:2, 그리고 '할렐루-야'<야를 찬양하라>라는 제의적 외침) 때로는 요엘(" '요'는 하나님이다")이나 이사야('야'<혹은 "야후">는 구원이시다)와 같은 고유 인명에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의 명칭의 단축형이 yahu나 yo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단축형은 포로기 이후 시대의 도자기 손잡이 음각이나 주전 5세기의 엘레판틴 파피루스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몇몇 학자들은 '야후'가보다 원래의 형태였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신성사문자가 몇몇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본문(예. 드보라의 노래, 삿 5장) 뿐만 아니라 모압비석(주전9세기)이나 라기스 서신(주전 589년경)과 같은 비성경적 문헌들에도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아마도 이 명칭의 원래의 제의적 형태는 '야훼'(이 형태는 구약성경에 약 6,800번 나타나 있다)였으며 다른 형태들은 이것의 단축혀이었을 것이다.

 

이 거룩한 이름은 모세 시대 이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져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해 보이려는 수많은 시도들은(예를 들면 '야움-일루'와 같은 아카디아인들의 인명들이나 주전 14세기의 라스 샤므라 문헌에 나타나 있는 바 '요'로 간주되는 문자<yw>에 입각하여 이를 입증해 보이려는 시도들) 아직까지 결론적인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  이 거룩한 명칭의 기원을 겐 족속에게서 찾으려는 시도와 이에 따른 가정은 보다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모세는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호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의 가족과 혈연관계를 맺음으로써 이 거룩한 명칭을 알게 되었다.모세는 애굽에서 도주하여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였는데(출 2:15-22) 여기서 그는 겐 족속의 신이었던 야훼를 섬기는 미디안 제의에 발을 들여 놓았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시내산(혹은 호렙산)은 미디안 지역 내의 거룩한 장소로서, 모세가 그 인근에서 이드로의 양떼들을 돌보고 있을 때, 야훼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출 3장). 

 

모세는 출애굽 후에 히브리인들을 이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였으며, 그 이후로 야훼의 현현은 드보라의 노래(삿 5:4)나 엘리야에 대한 관한기사(왕상 19:8-18)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특별한 방식으로 시내산과 결부되어졌다.  이 가설의 주창자들은 모세가 아니라 이드로가 야훼께 대한 희생제사를 시행하였다는 사실(출 18:10-12)과 이드로가 모세에게 종교적 책무의 짐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제안했었다는 사실(13-26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겐 족속(미디안의 한 족속)과 모세 시대의 히브리인들(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이 야훼께 대한 공동의 제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겐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과 동맹을 맺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삿 1:16, 참조. 4:11, 5:24). 

 

그러나 비록 이러한 가설이 매우 그럴 듯하기는 하지만, 이 가설은 일련의 성경본문의 기사들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기껏해야 단지 모세가 이 거룩한 명칭을 채택한 근원에 대한 개연적인 하나의 설명을 제시해주고 있을 뿐이다.어쨌든 이 거룩한 명칭이 미디안에서 유래된 것이든 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유래된 것이든간에,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문제점은 이 거룩한 명칭이 모세의 해석을 통하여 지니게 되었던 새로운 의미에 관한 것이다.

 

(3) 정의:  출 3:14을 제외하고 구약성경이 그 자체로서 이 신성사문자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전혀 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학자들이 현재까지 이 신성사문자의 언어학적 의미에 대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이에 관한 여러 가설들 중에서 몇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한 가설에 따르면, 이 신성사문자의 근본적인 의미를 알아내려는 노력은 헛된 것으로서, 그것은 이 가설이 이 명칭을 그 단축형인 'yah'나 'yahu'에 있어서 단순히 예배자의 감정적인 제의적 외침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가설을 지지하는 한 학자는 이 거룩한 명칭의 원래의 형태를 "오! 한분이신 그 분이여!"라는 의미를 지닌 'ya huwa'라는 감탄어로 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거룩한 명칭을 한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서술하는데 사용되었던 정형 동사의 미완료형에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커다란 두가지 의문점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대두된다. 

 

즉 이 동사의 어간은 단순형(Qal형)이냐 아니면 사역형(Hiphil형)이냐?  그리고 이 동사의 어근 hayah의 근본적인 의미는 무엇인가하는 것이 그것이다.이 거룩한 명칭을 단순동사의 미완료형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몇몇 주석가들은 '있다'라는 동사의 이러한 용례에서 '스스로 있는 자'로서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절대적이며 불변하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찾아내고 있다.그러나 최근의 해석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신앙의 역동성과 활력성을 나타내고자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이 신성사문자를 아랍어인 HWY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들은 이 아랍어의 기본적인 의미를 열정적인 사랑(hawa는 '열정'을 의미한다)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라서 이 신성사문자를 "열정적으로 행하시는 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다른 견해에 따르면, 이 거룩한 명칭은 '말하다'(우가리트어 HWT, '말씀'을 뜻하는 HWY에서 유래된 용어)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이 신성사문자는 "말씀하시는 분"을 의미하는데, 이 견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계시적 기능을 강조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비록 이 동사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을지라도, 이 동사에 대한 사역적 해석을 옹호하고 있다.  그중 한 견해에 따르면, 이 동사는 비가 오는 것이나 빛이 내리쬐이는 것이나 적들의 파멸을 가리키는 바 '떨어지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설득력을 지닌 또 다른 견해는 이 명칭을 '불다'를 뜻하는 아랍어 HWY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것인데, 이 견해는 야훼가 원래 폭풍의 신이었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처럼 '야훼'라는 명칭의 기원을 아랍어로 보는 견해는 야훼를 시내-호렙과 가데스와 같은 남부 성소들과 또한 네겝과 결부시키고 있는 구약성경의 전승과 일치하는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사역적 해석의 특이한 변형을 최근에 남부 아나톨리아의 카라프테에서 발굴된 페니키아 비문에 기록된 이 문자의 한 형태에 입각하여 YHWH를 사역형 분사로 간주하는 가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이 명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보존자, 지키는 자, 세우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마도 학자들간에 가장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켜 온 이론은 신성사문자를 '존재하다, 존재케하다, 있다'를 뜻하는 hayah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이론일것이다.  즉 야훼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케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 거룩한 명칭이 고대의, 특히 이집트에서의 제의형식을 반영해 주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는데, 이집트의 고대 제의형식에서는 신이 모든 만물을 계속적으로 돌보시는 분으로, 즉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자 보존자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세가 애굽에 있었을 때이러한 사고에 익숙해 있었으며 출애굽 이후에 그의 백성들에게 그에게 독자적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 이 하나님을 섬기고 따를 것을 명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 3:14에는 이 거룩한 명칭이 hayah라는 히브리 동사에 입각하여 설명되어 있으나, 이 명칭의 어원은 아직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모세는 자기자신에게 사명을 맡긴 신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어 보았을 때"나는 나이다"(ehyeh aser ehyeh)라는 이상한 대답을 받았다.  즉 이 구절에는'야훼'라는 거룩한 명칭이 오경의 여러 곳(참조. 창 17:5, 27:36, 29:31-35)에 나타나 일반적인 어원학적 양식에 따라 히브리 동사 hayah에 근거를 둔 것으로 해석되어 있는데, 이 대답의 두운법은 영어에서보다 히브리어에서 한층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YHWH; eHYeH). 

 

이 용어의 어원에 대한 해석은 크게 나누어 다음의 두 가지로 구분되고 있다.

 

1) 현재적 의미:  이 용어에 대한 한가지 해석은 이 동사를 단순형 어간으로 보는 것으로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나는 도울 준비를 갖추고 실제적으로 여기에 존재해 있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야훼의 존재는 수동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적이고 실질적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견해에 따르면 '스스로 있는'(aser ehyeh)이라는 나머지 구절은 야훼는 자기 자신의 뜻대로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고 임재하신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야훼는 자신의 주권적 자유에 따라 활동하시는 분이신 것이다(참조. 출 33:19).  따라서 이 신성사 문자는 '그는 현존한다'를 뜻한다.

 

2) 사역적 의미: 이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보다 타당성이 많은 것으로서,이 동사를 사역형 어간으로 보는 것인데, '야훼'라는 용어는 바로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이 동사의 사역형이다.  이 견해를 따를 때, 우리는 ehyeh를 "나는 존재한다"라고 해석하는 대신에 "나는 존재케 한다"라고 해석해야 하며, 따라서 ehyeh aser ehyeh는 "나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자이다"라고 해석된다.또한 이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은 그 이전에 삼인칭으로 된 보다 오래된 형태-"그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자이다"(Yahweh asher yihweh), 즉 "그는 만물의 창조자이다"-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야훼의 역동적 주권-야훼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하는 분으로서, 모든 역사적 사건들과 자연적 사건들은 야훼의 뜻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위의 그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출 3:14은 ehyeh aser ehyeh에 대한 칠십인 역의 번역어인 eimi ho on에 함축되어 있는 바와 같이 영원하고 변화하지 않는 수동저거 존재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정의를 제시해 주고 있지 않다.그러한 형이상학적 사고는 이스라엘의 신앙에 낯선 것으로서, 출 3:14의 문맥은 야훼는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자신의 주권을 나타내시는 능동적이며 활동적인 하나님이라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제시해주고 있다(3:7-10).  야훼께서는 모세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부르셨을 때, 모세가 지키는 그 일에 적합치 않은 존재라는 핑계로 그 사명을 맡기를 거부하자 그에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12절)고 약속하심으로써 그의 거부를 물리치셨다.  그리고 야훼께서는 히브리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실 힘을 지니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주기 위하여 모세를 애굽에 보내셨다.  여기서 야훼의 실체는 통솔권과 주권이라는 주의주의적인 의미로 경험되었던 것이다.  야훼는 자기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속자로 명시하시고 크신 권능으로써 그 당시의 가장 강한 국가였던 애굽을 부끄럽게 하시며 자신의 역사적 목적을 위하여 자연의 모든 세력들을 이용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놀라운 것은 '야훼'라는 명칭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출애굽 기사에 한번도 재차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결코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야훼'라는 명치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단지 모세에게만 주어졌었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모세가 받은 지시는 애굽에 있는 그의 백성들에게 '야훼'라는 명칭을 설명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에게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야훼라 하라"(15절)는 것이었다.  이 기사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야훼의 행위와 모세의 임무에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몇몇 학자들은 13-14절을 후대에 본래의 전승에 첨가된 것으로서, '야훼'라는 명칭에 대한 삽입적인 설명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또 다른 학자들은 이 구절을 '야훼'라는 명칭에 대한 설명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그것을 은폐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이 구절을 '야훼'라는 명칭과 그 명칭을 지닌 존재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입각하여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보다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칭 안에는 하나님의 전 인격이 내포되어 있는 까닭에 하나님의 명칭을 아는 것은 곧 인간에게 하나님을 능가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었으며,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따라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싸울 때 그 천사에게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라고 요청하였으나 천사는 "어찌내 이름을 묻느냐?"고 말하면서 야곱의 요청을 거절하였는데, 아마도 이는 천사의 이름을 아는 것이 야곱에게 그 천사를 이길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창 32:22-32). 

 

이와 마찬가지로 마노아도 삼손의 출생을 미리 알려주러 온 천사의 이름을 알기를 원하였으나 그 천사의 이름을 끝내 알지 못하였다(삿 13:17-18).  이와 동일한 종류의 함구는 모세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회피적이며 간접적인 대답에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이 자기에게 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아내는 대신에 하나님의 비밀스런 대답을 통하여 질책을 받았으며, 자신의 뜻대로 자유로이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봉사할 사명을 부여받았고 이와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실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이 거룩한 명칭이 지닌 중요한 면은 그 명칭의 언어학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 명칭의 역사적 연관성이다.  그 명칭이 한때 무엇을 의미했든지간에 그 명칭은 출애굽으로써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들을 통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획득하였다.  설혹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명칭의 문자적 의미를 알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명칭의 문자적인 의미를 곧 잊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시대에 그들에게 주어진 그 명칭의 함축적인 의미를 결코 잊지 않았다.  "나는 너희를 애굽으로부터 구해낸 야훼니라."  이스라엘의 신앙의 증언은 출 3:14에 나타나 있는 '야훼'라는 명칭의 비밀스런 어원에 입각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야훼께서 자신의 전능하신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이름(즉, 야훼의 인격)을 나타내신 역사적 사건들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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