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추수감사절을 지키라신 16:13-17

하나님아들 2024. 9. 4. 08:20

추수감사절을 지키라

 16:13-17

 

본문 신명기 16장은 구약의 3대 절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1-8절은 유월절에 관한 규례이며, 9-12절은 칠칠절에 관한 규례입니다. 그리고 13-17절에서는 초막절에 관한 규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미 출애굽기나 레위기에서 3대 절기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모세는 본 장에서 이에 관해 다시 한 번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신명기서 자체의 목적이 그러하듯이, 백성들로 하여금 그 절기를 지킬 때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와 교훈을 보다 분명히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추수감사절의 뜻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3대 절기

( 16: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지켜야 될 3대 절기를 명하셨는데( 23:14-17; 34:18-24;  23:4-8, 15-21, 34-43),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이 그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 중  20세 이상의 모든 어른은 1년에 세 차례씩 반드시 중앙 성소에 올라가 절기를 지켜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選民)으로서 지녀야 할 참된 신앙과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 16:16)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는 것이며, 칠칠절(七七節)은 맥추절로서 봄농사를 통해서 얻은 수확과 풍작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초막절(草幕節)은 모든 가을 농작물의 수확과 과일의 수확을 끝마치고 드리는 절기입니다.

사람들도 일반적으로 각종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 공휴일을 정하거나 날을 정하여 축하하고 축제를 베품으로 그 의미를 가슴 속에 되새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절기를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과 결속을 다지고, 영적 각성의 계기를 삼고자 함입니다.  

특별히 본문은 절기를 지킴에 있어서 명심해야 할 사항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절기에 연락하라'(14)고 했습니다.

( 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宴樂)하되

이것은 절기에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한다면, 우리 신약의 성도들은 이 절기를 보내면서 기뻐할 뿐 아니라 '영원히 주안에서 언제나 즐거워하는 것'을 의무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 집에 잔치가 있을 때,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곳에는 어떤 사람이나, 심지어는 초청받지 않은 거지라도 와서 식사를 하게 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기쁨을 나눕니다.

우리 자신이 즐거워 할 때 우리는 자녀와 노비와 객과 고아와 과부들 즉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쓸 것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분의 귀천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또한 빈부의 차이도 물론하고 이 절기를 지키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기쁜 절기로 지키라고 명하십니다.

둘째로, '온전히 즐거워하라'(15)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음껏 즐거워하라', '충분히 즐거워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것 뿐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실 것'을 인하여 감사하라는 것이고, 그 때에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이 됩니다.

(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모든 일에 더 많은 복을 주실 것을 인하여 온전히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감사는 믿음으로 주실 복을 바라보고 확신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감사는 즐거워하는 마음이고 서로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상대적 빈곤감을 가질 뿐더러, 끊임없는 탐심을 갖고 만족치 못하고 불평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는 일평생을 병마와 싸워가면서 근근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을 위해 ARS(자동응답시스템)로 모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하는 불평이 얼마나 사치스런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복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화란의 아덴에서 미국 메세추세츠주의 플리머스란 곳에 도착한 청교도 105명은 한 해의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앞에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감사는 참으로 악조건 속에서 였습니다. 그들 중의 거의 반이 험한 환경과 질병으로 인해 희생되었고, 추수물도 그리 풍족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주일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2. 구약 절기의 의미

그러면 오늘날의 성도들이 구약의 절기를 같은 방법으로 철저히 준수할 필요가 있는가 아니면 모든 것이 폐지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이렇게 구약에 나타난 규례들은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까지도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의미와 정신은 신약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서 이것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의미를 확인,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그 성격에 따라 크게 도덕법(Moral law), 시민법(Civil law), 의식법(Ceremonial law)으로 구분됩니다.

도덕법은 신·구약시대를 막론하고 영구히 지켜야 하는 법인데 십계명이 이에 속합니다. 그리고 시민법은 대부분 그 시대와 상황에 국한하여 주어진 것으로 결혼 제도나 이혼, 금기된 음식 및 생활 습관 그리고 종에 관한 규례 등이 이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의식법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로 각종 제사 제도나 절기에 관한 규례가 이에 속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의식법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부활, 승천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부분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그 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정결법( 11:1-15:33)이나 이스라엘의 3대 절기와 같은 의식법을 여자적(如字的)으로 지킬 필요는 없으나, 그 안에 있는 속뜻은 신약에 예수님의 정신과 의미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것을 사도 바울은 보다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貶論)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와 같은 의식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결된 삶'의 원리와 정신을 오늘날의 성도들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이나 십일조 절기 등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날과 절기에 관한 규례는 주의 영광을 위해서 지켜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14:5)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의문(儀文)의 율법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는 의식법(Ceremonial law)으로서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으며 그 근본 정신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

'폐한다'는 것은 없애 버리는 것으로 '완전케 하는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완전케 하다'(πληρ?ω)는 말은 원래 '가득 채우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깊은 뜻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희미한 그림자적 내용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그 깊은 뜻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신 목적은 율법이 목적하는 그 온전한 뜻과 속깊은 내용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서 입니다.

 

3. 추수 감사절

초막절은 40년 광야 생활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하며 가을에 농작물과 과일의 수확을 끝마치고 이를 창고에 저장한 후 7일 동안 지킵니다(23:16; 34:22). 이 때는 히브리 민간력으로 1월인데, 오늘날의 태양력으로는 9,10월경에 해당됩니다.

'초막절'이라는 단어는 소출을 위하여 포도밭에 초막을 지은 것에서 유래되었고, 또 이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던 사실을 되새기기 위하여 가나안 땅에 새로운 장막을 짓고 그 곳에서 7일 동안 거처하며 지키므로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또 이 때 모든 곡식이 창고에 수장되어 있으므로, 일명 '수장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23:16; 34:22).

이 때에는 본래 3가지 일을 했습니다. 첫째, 곡식을 거두어들인 다음에 제일 좋은 곡식으로 추수(소득) 1/10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1/10 '온전한 십일조'라고 하였습니다( 3:10). 이것은 자신의 원천적인 소득중 1/10을 모두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과된 의무( 14:22)로서, 충성과 순종의 표시로 신약에서도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주일과 절기 및 헌물은 우리의 삶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청지기적인 사고와 함께 구원의 감격과 감사와 기쁨을 동반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부채가 있는 사람은 추수감사절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을 갚고 깨끗한 마음으로 절기를 지켰습니다. 셋째, 가난한 사람과 더불어 곡식을 나누면서 추수 감사절을 보냈습니다.

( 16:16,17)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 올 때 하나님을 형식적으로만 섬기지 말고, 진정한 마음으로 섬기라는 뜻입니다. 또 이 말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 년에 3번 절기를 지키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는 증거를 보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팔레스틴의 풍습에 백성이 왕 앞에 나아갈 때 예물 없이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뿐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것입니다(딤전 6:15).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 앞에 나아갈 때 빈손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권면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예물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중심한 신본주의적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3:14; 34:23).

(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 지를 상고해 보았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기쁨과 감사로 나아와야 합니다. 또한 주신 복과 은혜를 인하여, 또 앞으로 주실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바라보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에 참석할 때에는 신령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나올 뿐만 아니라, 정성스런 예물을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절기를 통해 성도들은 자신이 과거 죄의 장막에 거하며 죄의 종노릇하던 자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전 가운데 온전히 거하게 된 자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적으로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