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신학 자유주의 신학!

20세기의 신학

하나님아들 2024. 9. 1. 21:01

20세기의 신학 

 

서론

 

초월적 내재 그리고 현대 신학사

 

기독교 신학은 항상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성경의 이중적 진리를 균형 있게 표현하기를 추구해 왔다. 성경이 하나님을 이 세상 너머에 계신 초월자이며 동시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내재자로소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창조적 긴장과 균형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던 것이다. 금세기의 신학은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전(前) 세기의 낙관론적이고 이 세상 중심적인 사상의 연장(延長)으로서 시작되었다. 19세기 신학의 중심은 ,르네상스 이후 서구인의 사고에서 그 도록 중요했던 신의 내재성이라는 측면의 강조를 포함한다. 금세기의 신학 이야기는 ꡒ전쟁의 참화가 지나간 이 마당에 하늘에서 들어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한 마디라도 있단 할인가?ꡓ라며 칼 바르트를 비롯한 그 외의 몇 사람이 제삼재사 물었던 질문에서처럼 한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초전이 제현됨으로써 시작된다. 1900년대의 신학은 우리의 세계를 휘청거리게 만든 지속적인 군사적,정치적,사회적 갈등을 과연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한 상황은 결국 가물거리는 나머지 희망- 곧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뿐 아니라 혹 하나님이 위로부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마저 산산히 깨뜨려 버린다.
포스트모던 세계에 문화적 절망의 한가운데서, 해체주의라는 불행한 막다른 골목에서 신학을 제대로 세워 보려면 그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기초가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경우에는 어떠한 외장적(外裝的) 변화를 가마 한다 하더라도 내구성이 강한 구조물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신학은 1914년에 시작되었다. 한편 19세기 신학은 계몽주의(Enlightenment)라 불리는 서양 지성사의 대혁명으로 말미암아 개시된 변화들 가운데서 그 역사적 맥락을 찾을 수 있다. 그리므로 우리의 이야기는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와 더불어 시작한다.

제1장 계몽주의 :고전주의적 균형의 파괴

 

1) 계몽주의 시대

 

① 17세기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중세의 신학자들이 전개해서 종교개혁기에 첨예화된 이 균형이 영구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깨져 버리게 된다. 단계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존재한다고 믿어졌던 실재가 새로운 우주론에 의하여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내재성보다는 초월성을 강조하던 균형이 뒤바뀌어 버렸다.
② 역사가들의 18세기의 마지막 몇 해를 계몽주의 시대가 마감되는 때라고 지적한다. 이성의 시대는 사실상 임마누엘 칸드(Immanuel kant)의 「순수 이성 비판」 (Critique of Pure Reason,1781)이 출간될 때쯤에 이르러 끝이 나 버렸다. 특히, 칸트 는 합리주의와 경헙주의를 두둔하는, 즉 인간 지성의 능력을 격상시키고 감각 경험 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의 시대 정신을 발견된다.

 

2) 계몽주의 인간
① 이시대는 인간의 위치를 격상시켰고, 인간의 능력을 한층 높게 평가했다.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역사의 중심 무대이며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에 걸맞는 것을 전체로 하여 인간을 중요하게 보았던 중세나 종교개혁기 의 사상과는 대조적으로,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가들은 그들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따지는 식으로 하나님의 중요성을 결정하는 경 향을 보였다.
② 안셈(Anselm)의 명언으로 알려진 ꡒ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ꡓ는 말은 지식의 추구에 있어서 지배적인 사상이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에 와서는 인간의 이성이 외부로터 부과되었던 계시를 물리치고 진리의 결정자가 되었다. 새로운 사고 방식의 ꡒ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믿는다ꡓ는 선언을 할 수 있다. 외적인 권위에 의 하여 선포된 미신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을 조직화 하기 위하여 이성을 사용하고 사리 분별력 있는 수단이 되었다.
③ 산틸라나(Giorgio de Santillana)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ꡒ끝없는 모험에 나선 정처 없는 나그네이며, 그에게 시간은 더 이상 천체의 무한한 주기적 회전이 아니라 계속 흘러가는 하수(河水)ꡓ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을 중세난 종교개혁기에서처럼 인간들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세계로 보지 않게 되었다.

 

3) 계몽주의 사상의 기초
계몽주의는 철학적 혁명의 산물이었다. 그 뿌리는 그보다 앞서는 중세의 신학자들의 논의에서 찾아볼 수 있겠지만, 이 혁명은 보통 현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프 랑스의 사상가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1596-1650)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4) 계몽주의의 원리
① 제1원리는 모름지기 ꡒ이성ꡓ이다.
② 이성의 원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 두 번째 원리인 ꡒ자연ꡓ이다.
③ꡒ이성ꡓ과 ꡒ자연ꡓ은 계몽주의 사고의 세 번째 원리인 ꡒ자율ꡓ(autonomy)의 길
④ ꡒ조화ꡓ는 이성의 시대가 그 원리로 간주한 우주의 합리성과 질서라는 사상
⑤ 진보에 대한 낙관적 신념의 시대였다.

 

5) 계몽주의 시대의 종교
① 서양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전통적인 관점들에 대한 도전과 사상의 재개편 작업이 일어 났던 시대였다.
② 그런나 종교적 믿음이라는 측면보다 그 영향이 심각하게 나타난 분야는 없었다.이성 의 시대는 문화가 교회와 기독교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던 때었다.

제2장 초월성의 재건 :19세기 신학에서의 내재성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세계에서 신학을 재건하는 과업을 짊어진 19세기의 신학자들은 각각 다른 차원, 즉 도덕(칸트),지성(헤겔)그리고 직관(슐라이어마흐)등을 제시함으로써 뚜렷함 차이를 보였다. 이 세 사상가들의 그림자는 19세기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을 낳았고 제4의 독일 사상가라 할 수 있는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l)에게서 그들의 사상이 집약되었다. 19세기가 마감할 무렵에 이르렀을 때 당대의 신학은 여전히 계몽주의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1.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도덕적 경험 속에 내지하시는 하나님
1) 칸트의 철학
① ‘코페르니쿠스적 혁명’과 흄의 과격한 회의주의가 도전적이라고 자신의 ‘독단주의적 잠’(dogmatic slumber)으로부터 그를 깨운 이가 바로 흄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② 「순수 이성비판」에서 칸트는 형이상학의 기반을 공고(鞏固)히 하고자 했다.
③ 칸트가 순수 이성비판에서 전개한 입장은, 과학은 감각 경험에 기초한 것으므로 공간 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실재들에 대해서는 과학적 작업을 통하여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④ 칸트의 의도는 흄의 종교적이 회의주의를 증명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좀더 확고한 입 장에서 형이상학적 가정들에 접근하려 했던 것이다.
⑤ 이 독일 철학자에게 있어서 ‘신앙’은 인간 이성의 또 다른 영역,곧 ‘실천적’ 측면에서 의 이성에 속하는 것이었다.
2) 실천 이성:인간이란 감각 경험의 존재일 뿐 아니라 도덕적 존재이기도 하다는 논지
3) 실천적 요청들
처음의 두 가지 요청인 신과 영혼 불멸은 칸트의 최고선(最高善,summum bonum)에 대 한 이해로부터 발단되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를 위한 최고선은 덕과 행복이 연 결되어 있는 곳에서 사는 것이다.
4) 합리적 종교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e,1793)에서 칸트는 그의 작업을 한 단계 더 확대시키서 도덕으로부터 종교(즉. 기독교)로 옮겨 갔으 며 ꡒ진정한 종교는 하나님의 우리의 구웡을 위하여 이미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나 고려하는 데 있지 않고, 그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있다ꡓ고 강조했다.
5) 도덕에 기초한 신학

2. 헤겔(G.W.F.Hegel,1770-1831)
사변 이성 속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1) 헤겔의 생애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생애는 유럽 역사의 소람스러운 한 시 대 속에서 지나간다. 이 시대는 한편 나폴레옹의 시대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낭망주의의 시대였다.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태어난 헤겔은 칼 프리드리히(Carl J. Friedrich) 의 말에 따르면,“독일의 어느 지방보다도 더 많은 사상가들과 시인들의 요람이 되어 온” 지방에서 자랐다.그렇다면 헤겔의 사상이 인간 존재의 정치적 차원이나 미학적 차원들에 대한 관심을 골고루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며 동프러시아의 한 도시에서 태어나 전 생애를 그 곳에서만 지냈던 칸트와는 달리 헤겔은 자신의 받은 교육과 전문가로서의 경력이 중부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옮겨 다녔다
2) 헤겔의 철학은 역사를 밀접하게 연관시켰다.
3) 정신(Spirit)은 ‘가이스트’(Geist)이다.또 세계의 과정(the world process) 은 다시 정신의 운동이다.
4) 과정으로서의 진리
5) 변증법(Dialectic)
6) 철학, 신학 그리고 신학
종교와 철학은 동일한 진리를 서로 다른 방법들로 제시하려고 한다. 철학이 동일한 진리를 그것이 가지는 ‘합리적 필연성’(rational necessity)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반면, 종교는 진리를 형상과 표현의 형태로 파악한다. 신학은 종교 안에서 발견되는 형상들 을 넘어서서 그들이 가지는 보편적, 철학적 의미에 대한 지식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궁 극적으로 그것은 철학적 지식이다.
7) 기독교
① 성육신에 대한 관심은 헤겔이 기독교를 평가하는 데 그 기초가 되었다.
②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일치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신적 실재의 세국면-이것은 기 독교의 삼위일체 개념과 관련된 신적 위격(divinepersons)과 다소 유사하다.
③ 헤겔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연결(즉, 인간 안에서 하나 님이 자기를 의식한다는 것)이라는 사상과 함께 종교적 이야기와 그것이 가리키는 철 학적 진리 사이의 접점을 이룬다.
ⅰ) 그의 본절적 존재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다.
ⅱ) 인간 안에서 하나님은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ⅲ) 실재 안에서의 화해이다.
④ 기독교는 창조와 구속이라는 측면에서 형상화시켜 묘사한다.
⑤ ‘그리스도-사건’의 중요성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일치라는 사상이 역사적으 로 표출된 것이라고 하느 주장에 있었다
⑥ 철학과 기독교는 화해라는 공동의초점에서 수렴한다.
8) 헤겔의 영향
1831년 그가 사망할 무렵, 헤겔은 아마 당대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철학 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세기가 지나가면서 그를 따르던 많은 추종자들은 그의 철학 안에 기독교에 대한 급진적 비판의 근거가 있으며 기독교 전통을 이탈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들을 보았다.
9) 결론
하나님과 이 세계의 관계에 대한 헤겔의 견해는 후에 통상 ‘만유재신론’(萬有在神 論,panentheism)이라 불리는 많은 신학적 대안을 위한 모형을 제시하였다.

3. 프리드리히슐라이어마흐
(FriedrichSchleiemacher, 1768-1834)
종교적 감정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19세기의 신학자들은 인간 생활 안에 종교라는 초월성과 내재성 사이의 새로운관계를 정 립하려고 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칸트는 윤리와 도덕을, 헤겔은 지적 또는 사변적 영역으로 이동잇겼다. 그러나 이 두가지 종류의 제안들 보다 훨씬 더 혁신적인 것은 금세기 초 수십 년 간을 대표하는 세 번째로 위대한 사상가였던 프리드리히 다니엘 에른스트 슐라이어마흐의 제안이었다. 그르이 대안은 그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특별한 경험 곧 직관적 삶을 종교의 중심으로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신학의 근거를 찾기 위하여 ‘감정’에 주목했다.
현대 기독교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거의 보편적으로 슐라이어마흐를 현대 신학의 아버지로서 인정한다. 그가 신학에 있어서 새 시대를 창도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거의 200년이나 지속되어 오고 있는데, 이 시대는 소위 자유주의적 기독교 신학과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들에 의해 지배되는 시대이다. 어느 누구도 기독교 신앙을 그 시대의 정신에 맞도 재구성하기 위하여 그처럼 용감하게 싸우지 못했다. 200년 간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을 위해 방향을 설정해 주었다.

1) 슐라이어마흐의 삶과 그의 결력
① 1790년 슐라이어마흐는 개혁 교회의 목사로서 안수를 받았고, 이후 그는 교회 기관의 여러 직책과 귀족 명가의 직임을 맡았다.
② 로만티시즘(혹은 낭만주의)은 계몽주의 철학의 냉랭한 합리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고 그것은 인간의 감정과 상상력,직관 등을 매우 강조하였다.
③ 슐라이어마흐는 사교성이 풍부하고 매력적이며 영리한 화술가
④ 그의 말년에 슐라이어마흐는 플라톤의 책들을 번역하는 것을 포함하여,윤리학,철학, 해 석학 그리고 예수의 생애 등에 관한 책 등 수많은 중요한 책들을 펴냈다.그의 대작 (magnum opus)은 1821-1822년에 체음 나오고 1830년에 개정한 「기독교 강요」 (Chrstan Theology)이라는 제목의 조직 신학이었다.
⑤ 1834년 2월 12일 페렴으로 사망했는데, 그의 가족과 함께 성찬식에 참여하는 중에 임 종을 맞았다.
2) 계몽주의 대한 슐라이어마흐의 반응
① 지적인 측면에서 ,18세기는 인간읠 이성을 격상시키고 이성에게 거의 무한한 권위를 부여하여 전통적 신념들을 비판하고 그 신념들 대신 새로운 진리들을 학립하게 했다.
② 계몽주의 시대에는 역사비평이라고 하는 새로운 학문이, 학문,성경 및 그 밖에 기독교 의 권위 있는 문서들이 기원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했다.
③ 감정을 강조하는 낭만주의부터 슐라이어마흐는 현대 문화의 근본 정신과 갈등을 빚지 않을 기독교 재편의 단서를 발견했다.
3) 신학적 방법
① 인간의 경험에 기초하는 신학을 시도하려고 했다.
②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기초르 실천 이성에 두려 했던 칸트의 시도나 절대 정신이 역사 를 통하여 진행하는 것을 탐색하는 새로운 사변적 합리주의에 신학의 기초를 놓르려고 했던 헤겔의 노력과 함께 슐라이어마흐는 직관을 통하여 하나의 대안적 접근 방법을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그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 곧 전체에 대한 의존 감정에 주목했다.
③ 슐마이어마흐는 합리주의와 (기독교의)정통 사이에 놓여져 있는 궁색스러운 문제는 하 나님에 대한 권위적 명제가 신학의 근거가 되기보다 인간의 경험, 특히 절대 의존 감정 이 그 근본이 될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④ 슐라이어마흐 이전에는 신학이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정통주의는 이 학 문을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진리들에 대한 성찰로 보았기 때문에 ‘위로부터’의 신학이었 다. 한편 계몽주의적 신학(이신론,deism)은 하나님에 대한 합리적 사고에 성찰이라고 보고, 일종의 ‘아래로부터’의 신학을 했다.
⑤ 종교적 감정이 인간의 경험 안에 근본적으로 존재하며 보편적인 이성과 양심에 의해 과학과 도덕이 발생하며,경건은 종교를 낳는다. 결국 ,슐라이어마흐는 경건과 종교를 과학과 도덕과응 다른 것으로 구분하려고 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교의적이나 신학의 체계들과 구분됨을 보이고자 했다.
4) 교리적 혁신
모든 교리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인의 종교적'자아의식'즉, 그리스도인들의 내적 경험으로 부터 추출되어야 한다'고 썼다.그러나 신학을 위한 궁극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성경 자 체가 아니라, 후자곧 그리스도인들의 자의식 안에 재현된 '하나님 의식'이다.
5) 하나님
6) 기독론
7) 평가
하나님이 순전히 인간의 경험이라는 지평 안에서는 기대될 수 없는 어떤 말씀을 하시거 나, 어떤 행동을 하실 수 있는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하여 인정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초월성의 상실 쪽으로 향하는 현재 기독교의 사상적 경향을 창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슐라이어마흐의 신학자적 위대성은 부인할 수 없다. 현대 신학에 특히19세 기 말엽쯤에 가서 개신교 사상을 장악하게 된 ‘자유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신학의 학 파들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4. 알브레히트 리츨과 고전적 자유주의
(Albrecht Ritschl,1822-1889)
윤리적 문화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가장 뚜렷한 대표자는, 곧 알브레히 트 리츨,아돌프 하르락(Adolf Hamack)그리고 월터라우센부시(Walter Rauschenbusch)이 세사람으로 드러난다.
1) 고전적 자유주의 신학
① 기독교의 신조들을 현대적 지식의 빛 안에서 제구성하는 적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② 개개 기독교 사상가 전통적 신조들을 비판하고 재구성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강조
③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의 실천적, 윤리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④ 대부분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학의 기초를,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 이외의 어떤 다 른 것에 두려고 했다. 신학의 과제가 알맹이,곧 ‘기독교의 정수’를 식별해 내어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문화적 사상이나 초자연적 존재를 그리고 묵시 문화적 사건들을 포함하 는 것이었다
⑤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에 의하여 시작되고 19세기 초의 위대한 독일 사상가들에 의해 지속된 바,초월성을 간과하고 신적 내재성 쪽으로 계속 흘러갔다.인간 사이의 불 연속성(discontinuity)보다는 연속성(continuity)을 더 높여,계몽주의의 사상과 일치되게 하는 경향을 가졌던 때문이다.
2) 알브레히트 리츨의 삶과 경력
19세기 말 자유주의 신학의 핵심 인물은 알브레히트 리츨이다. 1875년부터 1925년까지 미친 영향력 때문에 리츨 학파 하면 개신교 자유주의와 거의 같은 말이 돼 버렸다.그리 고 헤겔의 영향을 받은 신약학자 바우트(F.C.Baur)의 영향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작품은 1870년에서 1874년 사이에 단계적으로 출간된「칭의와 화해에 대한 기독교 교리」라는 제목의 세 권짜리 논문
3) 리츨의 신학적 방법
①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있는 지식에 있어서 ‘과학적’유형과이 있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지식은순수한 이론적 객관성,곧 사물 자체에 대한 비(非 )주 관적 인식을 추구 한다고 그의 주장했다.
② 신학이 형이상학에 기대려고 하는 어떠한 의존도 맹렬히 배격했다.
③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이란 무엇인가?리플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인간의 최고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발견된다는 집단적 가치 판단을 내 리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④ 리츨에 의하면, 신학은 교회 안에서 가질 수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집단적 종교 경 험 및 도덕적 경험을 연구하는 것이다.
⑤ 기독교의 진정한 정수가 무엇인가, 신학의 근거와 규범은 무엇인가? 리츨에 따르면 ,그 거은 성경 전체가 아니라 건전한 역사 비평적 연구를 통하여 ‘사도적 사상 체 계’(Apostolic cirle of idras)이다.
⑥ 리츨의 신학적 방법은 칸트 철학과 뚜렷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형의상학을 삭제하 고 종교를 가능한 한 윤리학과 밀접히 연관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칸트를 따랐다. 그 러나 하나님이 그가 행한 일을 통하여 정말로 알려질 수 있다고 주장한 데서 칸트와 달랐다.
4)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나라는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며 선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 자신의 최고 목표이며 선이다. 아마도 리츨의 신론에서 하나님 자신의 ‘자기 목적’다시 말해서 그의 존재 이유는 우리의 그것과 동일한 하나님의 나라이다.
5) 죄와 구원
죄론과 구원론에서 리츨 신학의 혁신적인 차세적(此世的)양상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구원이라는 것이 일차적으로 어떤 제 세상에서 지복적(至福的)상태에 이르는 것이 그는 구원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완전히 실현되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는 피 안적인 종교가 아니라 사랑에 감화된 윤리적 행동을 통하여 세계를 변혁시키는 종교이다.
6) 기독론
① 신학에 있어서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그의 기독론일 것이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교리의 통어적 중심이 된다.
②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으로 축소 시켰다고 하는 비난에 대하여 민감했다.
③ 예수의 ‘왕권적 선지자직’의 독특성이 어디서 유래하는지에 대하여 논하기를 거부 했다. 그러나 선재성(pre-existence)의 개념을 논하는 것에서 자신을 뿌리치지 못했다.
④ 리츨의 주된 관심사는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도덕적 모범으로서 그리스도 의 역사적 삶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대의에 전적으 로 순종하는 그의 소명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7) 평가
리츨이 탈(脫)계몽주의 시대의 과학, 철학과 갈등하고 있던 기독교 신앙을 그 불필요한 갈 등으로부터 구해 주었고 ‘교의를 도덕화 ’시키는 데 공헌하였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또 하 나님의 나라 안에서 인간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기독교의 중심적 진리의 도 덕적 능력을 묘사하였으며 ‘사회 복음을 전개 하였다.

제3장 내재성에 대한 반람:신정통주의의 초월성
1914년 8월의 포성은 19세기 지적 사조의 몰락을 알리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낙관주 의의 한 세기를 풍미하던 진보주의의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칼 바르트가 쓴 로마서 주석 으리 출간으로 말미암아 그 종말적 전조를 보게 되었다. 신정통주의 운동은 일단의 신학 자들이 현대 세계를 위하여 옛 기독교 정통주의의 중심이었던 어떤 교리의 의미를 재발 견하려는 시도에 의하여 특징이어진다. 진리는 구체적인 삶의 상황 안에 있는 구체적인 개인으로부터 시작한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이 선생이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이중적 역설을 수반한다.
1. 칼 바르트(Karl Barth,1886-1968)
하나님의 자유로서의 초월성
1) 바르트의 삶과 신학자로서의 생애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과 급진적인 결별을 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그 중 두가지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① 바르트는 자페빌의 사람들에세 매주 설교를 해야 하는 그의 일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쓸모없는 것임을 발견했다.‘성경 안에 이상한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성경에 있는 초월적 말씀 안에서 그의 교인들을 위한 적절한 메시지를 찾았던 것이다.
②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과 전혀 다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예기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로 인정케 하기는커녕,복음을 하나 의 종교적인 메시지로 바꾸어 인간들에게 자신들이 신이라고 말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③ 바르트는 그의 ‘로마서’제2판(1922)에서 자신이 키에르케고르에게 빚을 지고 있음을 인 정했다.
④ 1925년 바르트는 뮌스터대학교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았고 거기서 5년을 머물다가 1930년에는 본(Bonn)대학교로 옮겼다.
⑤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거부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지만.그의 지난 10년가 언명해 오던 ‘아니오’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를 더 강조하기 시작 했다.
⑥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으 자기 계시라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 이 가능하다는 것(posive knonwledge of God)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2) 신학적 방법
신학적 방법음 부정적 측과 긍정적 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부정적 면에서 그는 자연 신학이라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지 피했고 그거이 교모하게 그리고 결국에는 복음을 문화적으로 침식시키는 여러 방법에 대하여 분석하고 떠들썩하게 알리는 일을 전혀 지 치는 기색없이 했다.
3)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① 기독교 신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생애, 죽음 그리고 부 활에 이르기까지의 그리고 그 사건들 주변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행동들을 망라하는 모든 역사(歷史)이다.
② 제2의 형태는 성경
③ 제3의 형태는 복음 선포
4)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삼위일체적인 신학
바르트 신학의 구조는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중심적이며 ‘존재 양태의 성육신에 대해 분 명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두 번째 존재 양태요, 성부 자신의 인격이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나신 것이다.
5)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분 으로서의 하나님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분’으로 정의하고, 신적 탁월성을 두 가지 범주, 즉 신적 사랑이라는 탁월성과 신적 자유라는 탁월성으로 구분한다. 바르트는 사 랑으로서의 하나님의 어떤 식으로든 제한을 두지 않고 나아가서 이 사랑의 자유를 강조 했다.
6) 선택의 교리
모든 사람은 선택하시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선택받은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포 함되고 그의 구원 역사의 혜택이 그들 모두에게 미친다.
7) 평가
바르트의 신학 방법의 강점은 계시에 대한 전적 의존,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과학으로 남는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 분을 아는 인격적 앎을 예수 그리스 도 안에 계시된 것으로만 제한하였다.
8) 결론
20세기 신학사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바르트 신학의 큰 강점들 가운데 하나는 하 나님의 초월성을 회복,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철저하게 자유로울 때에만 은혜 로울 수 있다. 하나님과 이 세상의 관계가 가지는 은혜성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것이다.

2. 에밀 브루너(Emil Brunner,1889-1966)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에서의 초월성
1) 브루너의 삶과 신학자로서의 생애
188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크리마스 이틀 전에 태어났다. 그는 쯔빙글리와 칼빈의 개혁 적 전통 속에서 자랐고 교육을 받던 중 1913년 취리히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 았다. 브루너는 대부분의 생애를 그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데 보냈는데, 1924년 그 학교에서 대학 교수직을 얻고 나서 1955년 퇴임할 때까지 그 곳에 있었다.
1966년 4월 그의 고향취리히에서 죽었다.
2) 신학적 관심사
①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신학이 내재성의 형태, 즉 폴 주의트(Paul Jewett)의 말대로 “인 간과 하나님을 형의상학적으로 인식론으로 윤리적으로 동일한 연속성 상에 놓고 봄으로 써 인간이 자기 속에 본성적으로 타고난 가능성이라는 틀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사상적 형태 쪽으로 표류해 가는 대항하는 것이었 다.
② 브루너의 신학은 계시와는 별도로 자연적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파악하려고 하거나,어 떤 형태든 인간의 철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틀로 삼으려 는 모든 시도들에 대하여 일관된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③ 내재주의 신학과 대항하는 것에 더하여 브루너는 정통주의와 칼 바르트가는 두 적들과 직면했다.
3) 성경적 인격주의(Biblical Personalism)
① 신적 계시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진리와 지식의 두 가지 종류,즉 ‘그것의 진리’(it-Trth)와‘너(또는 당 신)의 진리’(Thou-truth)사이의 차이를 먼저 식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②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므로 그에 대한 진리나 지식은 반드시이 ‘당신’에 적절한 종류의 것이어야 한다
③ 지식의 주체와 객체를 서로 대립되게 한 후 하나를 다른 것에 복속시키는 사고 형태로 부터 기인한다고 믿었다.
4) 만남으로서의 계시
인간의 말로 표현된 하나님의 영의 증거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브루너가 보았을 때도 “주는 그리스도시오,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고백 은 인간의 말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신적인 감동으로 된 증거였다.
5) 바르트와의 논쟁
‘일반 계시’의 위상과 신론,정의 교리와 같은 두가지 주요한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신학에 대한 그 자신의 기여가 바르트의 것과 다름을 보여 주려고 했다.
6) 현대 신학에 대한 브루너의 공헌
고전적인 개혁신학을 현대적으로 제조명

3.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
케리그마의 초월성
1) 불트만의 생애와 배경
루돌프 볼트만은 한 위대한 교회 전통의 후예였다. 그는 북독일의 올덴부르 그 지방의 한 루터교 목사의 맏아들이었다. 그의 조부모는 아프리카의 선교사들이었고 그의 외조 부는 경건주의적인 남독일에서 목사로 시무했다. 불트만은 독일의 튜빙겐, 베들린,마부 르그 등의 주요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브레스라우와 기셴 등지로 다니며 가르치다 가 1921년에 그의 모교인 마부르그로 돌아와서 퇴임할 때 (19510까지 거기서 봉직했다.
2) 신앙과 역사적 예수
신앙에서 핵심적인 이슈는 그 사람이 역사의 예수에 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가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대면이 이루어질 수있느냐는 것이다. 결과적 으로 역사의 예수는 신앙과 별 관련성이 없다. 신앙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지식이 아 니라, 한나님이 예수 안에서 행하셨다는 선포인 복음의 메시지 속에서 대한 부딪히게 되 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반응이다.
3) 종말론
4) 신화론(神話論)
5) 해석학
불트만은 고대의 텍스트와 현대 세계 사이네 놓여 있는 격차는 우리의 주해 작업에 적절 한 ‘전이해’(Preunderstanding)를 수용할 때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 기에 고대의 텍스트와 현대의 독자를 연결시켜 주는 질문은 인간 실존에 대한 것이었다.
6) 하나님의 초월
하나님의 초월성은 더 이상 공간적인 개념으로 이해될 수 없다. 대신 불트만은 비공간적 이해를 제시 했다. 초월성이란 하나님이 결단이 필요한 실존적 순간에 우리 앞에 나와 서서 우리에게 그의 말씀으로 말씀하시며 믿음의 반응을 보이도록 도전함으로써 본래적 실존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7) 실존주의와 신학
어떤 텍스트에 접근할 때 그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되 이미 알고 있는 개념들로 그 본문 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그 본문을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에 기인한다고 본다. 불트만은 다만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이 해석학적 원리로서 유일하고 적절한 것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은 전적 타자(全的 他者)로서 초월한 모습 속에서 인간 개인에게 말씀하시며 하나 님의 말씀은 급진적으로 삶을 바꾸는 반응을 촉구한다. 그리므로 그 정의로 볼 때 하나 님에 대한 강화(講話,discourse sbout God)인 신학이 동시에 인간의 실존에 대하여 말하 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 하이데거와 신약 성경
그는 실존주의를 신약 성경 자체의 진정한 메시지가 이해되는 데 필요한 ‘전이해’를 제공 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9) 실존주의 범주들
볼트만은 또한 하이데거의 역사성 이해에 그 기초를 두었다.
10) 본래적 실존
불트만은 죄(불트만에게 이것은 기본적으로 ‘불신앙’이다)와 신앙이라는 성경의 용어들 사이의 구분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도식을 사용했다.비본래적 실존은 ‘세상’즉 현실 적인 것들의 영역이나 자신이 이룩한 성취들 또는 과거 속에서 안정성과 만족을 추구하 는 것이라고 했다.
11) 역사
역사관에 관련된 것이 불트만의 시간에 대한 이해이다.그는 이것을 하이데거의 ‘염려’에 대한 삼중 구조로서부터 따왔다. 불트만은 시간을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누는 일반적 구분이 현재를 비차원적인 수학적 점으로 삼고 과거와 미래를 나누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고 보았다.
12) 신앙과 복음
13) 비판
고대의 복음과 현대 정신을통합하는 한 방법을 제공해 줌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큰도움 을 주었다. 그의 견해의 핵심에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현대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 하여 말해 줄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휼륭한 강조점이 있다.그것은 듣는 이의 ‘영혼을 사 로잡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① 일방적인 주해:실존주의라는 여과망을 신약학에 적용함으로써 지나치게 단순화된 주해 를 하는 경향을 낳았고, 바울과 요한에게서 발견한 실존주의적 방향성를 ‘정경안에 있는 정경’의 한 전형으로서 이용했다.
② 사유화된 신앙: 신학적 접근법은 복음 메시지에 대한 너무 좁은 이해와 함께 곧 너무 좁고,사유화한 신앙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③ 왜곡된 하나님
14) 결론
불트만은 복음이 고대 세계의 신화들에 의하여 방해받지 않고 현대의 지성을 향하여 말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한 가지 관심에 따라 움직였다. 그는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 의 행도에 관한 진술들을 신앙의 영역으로 국항시킴으로써 복음의 진정한 추문(醜聞)에 현대인들이 직면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불트만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서 발견되는 내재성의 강조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되찾으려는 고상한 시도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하나님의 초 월성을 충분히 성경적으로 재확인하지는 못했다.

4.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
신화를 통하여 드러난 초월성
1) 니버의 경력과 지적 발전 과정
니버는 (사회 복음 운동을 노골적으로 배척했음에도 불구하고)자신과 몇 가지 공통점을 기지고 있는 월터 라웃셴부시와 마찬가지로 경건주의적 기독교 환경 가운데서 성장했 다. 그의 아버지는 프러사아의 루터교 전통과 개혁 교회 저통을 합한 것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던 복음파(Evangelical Synod)교회(현재는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부)의 목사였다. 라인홀드는 일리노이 주 링컨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1913년 예일로 향하기 에 앞서 엠허스트대학과 이든신학교(Eden Srminsry)를 수료했다.그는 예일에서 신학사 (B.D)와 그리고 1915년에는 문학 석사(M.A)를 마쳤다.
2) 실천적인 기독교
3) 근사치 정의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
4) 기독교적 인간학
5) 인간의 모순
① 인간은 몸과 영혼 두 측면으로 피조된 유한적 존재이다.그러므로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 로 분리하는 견해들, 즉 모든 형태의 이원론적 인간론적은 배격되어야 한다.
② 인간은 우선 하나님의 관점에서 (즉,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이해 되어서는 안된다.
③ 인간들은 죄인이다.그래서 죄 때문에 그들은 사랑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결코 신뢰할 수는 없다.
6) 인간의 죄가 인간의 마음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7) 수정된 신정통주의
니버는 한나님의 계시가 이중적으로 주장했다. 사적(私的).또는 ‘일반’)계신는 각 사람이 위치해 있는 자연의 체계를 초월하여 한 개인의 삶에 초월적 실재가 부딪혀 오는 ‘각 사 람의 의식 속에 있는 증거’이다. 이 사적 계시가 곧 계시의 이치적 차원, 즉 공적이며,역 사적인 (‘특별’)계시에 대하여 신임하게 한다. 그는 신정통주의의 자유주의 비판에 참여하 면서도 그 반대의 극단으로옮겨 가는 것을 거부했고, 그것도 신학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했다.
8) 자유주의에 대한 거부
니버는 일찍이 자유주의에 대하여 불만족스럽게 생각했던 것을 모아 「도덕적 인간과 비 도덕적 사회」(Morsl Man and Immoral Society,1932, 대한기독교서회역간)에서 그결정 체를 보여 주였다. “개인들의 도덕적.사회적 행위와 사회 집단의 그것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를 두어야 한다.” 개인들이 “행위의 문제들이 결정할 때 그들 자신이 것이 아닌 남 의 관심사를 고려할 수 있을 ”만큼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간사회와 인간 집단은 ‘거리낌없는 이기주의’에 더욱 빠지지가 쉽다. 니버는 자유주의적 도덕주의가 세 가지 이 유로 감상주의적이라고 주장했다.
① 그는 자유주의와 상반되는 인간관을 견지하면서 그 차이에 근거하여, 그 속에는 죄의 힘과 심각성에 대한 깨닫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② 자유주의적 도덕주의는 복음에 나탄나 있는 바 신앙적으로 숭고한 경지에 대한 것도 설 명해 내지 못한다.
③ 자유주의는 이상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의 현격한 차이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됨으로써,정치적, 사회적 현실주의가 결핍되었던 것이다.
9) 니버의 대안은 전통을 이어 그는 현대의 상황에 그러한 강조점들을 재확립하고 자 했다.
10) 신화는 궁극적 진리에 대한 상징들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초월적인 것 은 신화들을 이용함으로써만 이야기될 수 있다.
11) 신앙의 삶은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는 인간의 죄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하나님의 구원이다. 물론 신앙은 궁극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삶으로 살아낼 수있을 뿐이다.
12) 십자가은 기독교 신앙의 초점은 십자가이다. 그것은 계시적이기 때문이다. 니 버에 있어서는 십자가 사견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 주는 성경적 계시의 결정으로 서 있다.
13) 신적 초월성은 니비는 인간의 의를 초월적인 의,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 에 복속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현대인들이 부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니버는 심판과 인 간이 처한 곤경을 극복하기 위한 기초로서 신적 초월성이라는 성경적 관념을 재확인하고 자 했다.
반면, 초월성의 개념은 ‘역사의 자기 모순이라는 어두운 면을’ 밝게 비츰으로써 역사의 의미가 현재에 드러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며, 역사의 종국적 완성에 대한 희망을 제시 한다.
14) 비판
니버는 신적 초월성의 고고함과 인간이 처한 심각함에 대하여 더욱 심원한 이해를 함으 로써, 그가 느끼기에 순진하리만큼 낙관주의적인 문화적. 종교적 풍조에 현실주의적 논조 를 삽입해 넣으려 했다. 시간과 영원에 대한 그의 신학적 방향에 의하여 제시 되는 초월 성의 본질과 관련된다.
15) 비현실적인 상징들
① 신정통주의 운동의 다른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니버는 기독교의 신화와 상징들이 어 떻게 현대 지성에 적용될 수 있느냐 문제로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② 암흑의 초월성: 니버 이후의 신학사는, 십자가를 신학의 중심적 상징으로 선택할 니버 의 신학은 좀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세상 속에 끈질기게 존재하고 있 는 악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적 성취보다는 역사적 갱신을 바랄 수 밖게 없다는 십자가 중심적 신학은 암흑의 초월성,즉 인간은 모든 행동에 대한 심판자로 서 있는 불가능한 가능성이라는 어떤 실재만을 드러내 주었다.
16) 결론
라인홀드 니버는 신의 내재성 속으로 도망쳐 버린 서구 사회를, 인간들이 성취할 수 있 는 것에 대한 순진하고도 비현실적인 낙관론을 낳은 그 도피로부터 불러내려고 했던 것 이다. 대신 그는 초월성과 내재성 사이의 균형으로 특징지어지는 하나의 신학적 이해를 제시하고자 했다. 이것은 20세기 신학사를 위하여 그가 남겨 준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그러나 니버의 제안은 하나님의 역사적 행동을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역사 너머의 영역으로 몰아내 버리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따라서 그는 실제적 사건들 속에서 초월적인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거의 남겨 놓지 않았던 것이다.

제4장 내재성의 심화:자유주의적 전통의 재편
1920년대로부터 시작하여 1960년 정도에 이르기까지 개신교의 고전적인 자유주의에 대한 신정통주의의 반란이 신학계를 지배했다. 20세기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 신앙을 제기술하기 위해 최근의 과학적 시도들을 통 하여 얻어진 진보적 개념들을 포용하려고 했다. 실존주의를 신학의 대화 상대로 선택했던 폴 틸리히는 아마 신자유주의의 가장 명석한 표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과정이라는 철학 적 주제를 이용했던 광범위한 이 운동은 신학을 현대 과학의 특징인 변화와 진화에 대한 강조와 상관지으려 한 시도이다.
1. 폴 틸리히(Paul Tillich,1886-1965)
'하나님 위에 계신 하나님’의 내재성
1) 틸리히의 삶과 신학자로서의 생애
폴 틸리히는 1886년 8월20일 베를린 근교의 슈타르체델이라는 독일의 소읍에 있는 루터 교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매우 어릴-아마 여덟 살 정도에-때부터 신학과 철 학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으며, 18세때 목회를 평생의 일로 생각하 기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의 독일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틸리히는 할레대학교와 베를 린대학을 포함하여 독일의 여러 주요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비판적 인 철학과 신학 그리고 성서 연구의 영향을 받았다. 목사 안수를 위한 교육을 받으면서 그는 신학 교수가 되기로 작정하게 되었고 결국 개신교적인 국가 교회에서 안수를 받았 을 뿐 아니라 할레대학교의 강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틸리히의 삶에 나타난 그에게 있어서 의심이란 믿음 안에 반드시 있게 마련인 하 나의 요소이며 소외와 소원(疎遠)은 인간의 삶의 근거를 이루는 것이다.존재의 힘-신-은 비존재의 피할 수 없는 위협을 직면할 용기를 주며 우리가 용납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 이도록 해주지만, 존재 안에 있는 이러한 긴장과 모호함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다.
2) 틸리히의 전제들중 신학적 방법론에 대하여
① 신학은 변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적 상황에 맞게 ‘상황(situation)이란 한 특정 의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의 특정한 질문들과 관심사들을 의미한다.
② 변증적 신학은 기도교 메시지와 그것이 표현되는 현대의 문화 사이에 어떤공통적인 기 초가 있음을 전제한다.
③ 틸리히 신학의 세 번째 기본적인 전제는 신학의 변증적 작업에서 철학이 하는 결정적 인 역할이다. 철학이 신학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믿었다.
④ 신학과 관련하여 가장 유용한 철학의 특정 분야는 존재론(ontology),특히 실존주의적 존재론이다.
⑤ 마지막 전제는 존재론에서 인간 실존이 가지는 특별한 성격에 관한 것이다.인간의 존 재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특별한 다서들을 제공한다. 그것은 절충적인(eclectic)것임이 드러났다는 것이리라 그것은 전통적 존재론과 하이데거와 사르트르(Sartre)가 성립시 켜 놓은 현대 실존주의의 존재론들을 통합시키려 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3) 현대적인 신학의 한 방법, 즉 상관의 방법(method of correlation)을 제 안하기로 한다. 한편, 신학적 방법론에 있어서 그 밖에 세 가지 대안이 부적절하므로 그 것들을 의식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시도였다. 틸리히가 제시한 방법은 "실존적 질문들 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의 내용들을 설명하고 ,상호 의전적 관계에 있는 신학적 답변을 제시하는 세 가지의 방법은
① 첫번째 방법은 '초자연주의 접근
② 두번째로 부적절한 전통적 대안은 '초자연주의적'또는 '인본주의적' 방법으로, 이는 인 간의 자연적 상태로붜 신학적 답변을 끌어내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③ 초자연과 자연을 결합시키려는 ‘이원론적’ 방법을 거부했다. 틸리는 상관의 방법을 제시 함으로, 자연 신학을 변형시켜 존재의 분석을 위해 이용하려고 했고, 초자연 신학을 변 형시켜 존재 안에 암시되어 있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구하려고 했다.
상관의 방법으 자연 신학을 대쳏느 기초 신학(fundamntal theology)은 신의 존재 증명 을, 인간 존재 안에 암시되어 있고 존재론에의하여 분석된 하나님의 문제로 대체한다.
질문과 답변이 그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첫 단계에서 철학자로서의 기능
두 번째 단계는 신학 고유이 단계로서 인간 존재 안에 암시된 질문들에 대하여 신적 계 시의 상징들에 의존한다. 신학자의 임무는 계시가 제시한 답변들을 해석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유한성 안에 암시된 문제에 대한 답변이며, 비존재의 위협을 물리치는 조재의 무한한 힘으로 고전적 신학에서는 이것을 존재 그 자체라고 한다.
4) 이성과 계시
틸리히는 이성이 계시에 대하여 저항하지 않으며계시는 이성의 재건(reintegration)을 의 미하기 때문에 이성은 오히려 계시를 요청한다고 믿었다.
이성의 본질은 본질과 존재로 구별되어야 하며
① 본질은 사물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적 완전의 모습이며,
② 존재는 본질로부터 ‘이탈한’ 현실로, 진정한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온 결과 혼잡케 되고 왜곡되어 한계를 가지며 ‘현실로 존재하는 이성의 곤경’ ‘이성의 본적절 성격’이라한다.
본질적 이성, 또는 이성 그 자체는 초월적이다.
틸리히의 본질과 존재에 대한 구분의 철학적 배경은 플라톤 사상에 기이하며, 플라톤은 ‘형태’ 또는 사물들의 완전한 모형이라고 하는 하나의 이상적 세계와 불완전한 복제물로 서 현실로 존재하는 개체젹 사물들의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5) ‘하나님 위에 계시는 하나님
시종 계시된 것을 가리켜 존재의 힘, 새로운 존재, 존재의 근거, 또는 하나님이라고 불렀 다. 궁극적 계시와, 다소 그 정도가 약하지만, 보편적 계시 속에 계시된 것이 하나님인데, 이것은 존재의 근거를 종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하나님은 존재의 상황 아래서는 갈등을 빚는, 이성의 양극적 요소들을 재결합해 줌으로써 이성을 치유하는 사랑의 힘이다.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 혹은 존재의 근거이며, 힘이신 하나님은 전통적인 기독교적 유신론 에서 말하는 인격체이며 한 존재라고 할 때의 그 유한한 하나님보다 더 우월하다.
‘하나님 위에 계신 하나님’이 진정으로 만물의 저변에 있으며 만물 안에 내재하고 있는 듯 하다.
6) 기독론
틸리히는 예수가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됫 s분’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부인했다. 틸리히 에게 있어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었고 ‘신성’을 가지지 않았다.
7) 비판적 평가
① 질문의 형식: 신학적 답변의 내용 결정,
② 전체적인 존재론적 체계가 요지부동의 틀이 되어 한편 신학을 현대화하기 위한 의제를 제시하기도 했지만, 기독적 메시시를 제한하고 잘라내버림으로써 그 메시지가 무엇인 지 알아볼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다.
③ 초월성과 내재성을 찢어 좋은 결과를 낳았다.
④ 하나님 위에 계시는 하나님
틸리히의 하나님은 모든 갈등과 긴장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 세계의 과정에 내밀하게 연루되어 있는 하나님이다. - 만유재신론, 급진적인 내재주의
2. 과정 신학
과정 안에 계시는 하나님
폴 틸리히는 존재의 심연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것으로, 존재의 신적 근거에 대하여 투명해야 할 것을 요청, 내재성의 주제를 심화시켰다.
1) 과정 신학(process theology)
고대 희랍 철학자들은 헤라클리두스보다 파르메니데스를 곧 과정보다는 존재를 형이상학 적 근거로 택하였다.
① 파르메니데스(515-450): 존재(Being)의 옹호자, 일정한 상태로 존재함을 강조.
② 헬라크리투스(540-475): 과정(혹은 생성, Becoming), 끊임없는 변화를 강조.
③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파르메니데스의 입장은 과학 분야에서 변화를 촉발
④ 슐라이어마흐와 헤겔: 사고의 변화에 철학적 방법
전체란 유한성과 자유의 속성
⑤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 하나님의 그 과정들을 이끌어 가는 힘이라 보고 미래는 열려 있다고 가설.
⑥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의식을 하나의 흐름이며 그 이전의 의식들 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 데카르트의 정적 자아(staticego)에 대한 강조에 도전.
불확정성, 일시성, 상대성 같은 새로운 개념이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과정 신학의 궁극적인 목표: 기독교 신앙의 적실성(이 세계와 하나님의 관계의 적절함)
새로운 동적 관점
실제적인 것은 과정 중에 있다.
통합체이다(상반되는, 내외부적인 것, 과거. 미래, 자와 타)
2) 과정 신학의 기본적인 입장
① 적실성: 신학과 과학의 조화를 기초, 신학은 삶의 모든 분야와 현재의 세계를 장차 그것 이 변화하여 이루어져 갈 것의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종말론적 이야기-이다.
② 하나님의 개념: 자연주의적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신을 일시적 과정에 참여하 는 자로 새로운 (그들이 보기에 적절한) 하나님 이해를 내세운다.
③ 내재성과 초월성 새로운 균형: 진화사상 가미
④ 진화적 초월성: 정적 초월성 배격, 헤겔의 성장의 개념이 깔려 이전의 상태가 그 뒤를 딸라오는 후속 상태에 의하여 실현되는 성장으로 이해하며, 초월성을 시간적 은유의 개 면, 궁극적인 미래로의 진행이다.
3) 떼이야르의 생애
떼이야르 드 샤르뎅(1881-1955)은 18세에 예수회 교단에 입문하여 신학과 지질학 특히 고 생물학 분야에 능통하였으며, 두 가지 일 교회의 일과 인간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열정적 으로 헌신하였다.
4) 과학과 기독교
① 완전한 앎의 확신에서 유발되어 모든 만물을 ‘내면’과 ‘외면’으로 나누었던 구분에 기초 한 것이다. 외면은 외적 성질, 과학자들이 탐구하는 물질의 영역이며, 내면은 사물의 밑 바닥에 깔려 있느 목적과 연합-‘영적’- 신학자들의 토론 대상.
② 복잡성과 의식의 법칙: 어느 정도의 의식이 실재의모든 단계마다 내재, 물질의 구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복잡해지고 중심으로 집중되며, 의식을 가지는 인간의 출현 이라는 절정을 향하여 가는 과정으로서의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방사상(放射狀)의 에 너지’ 즉 모든 실재 가운데 들어차 있어 추진력을 제공하는 영적 힘을 말함으로써 우주 안에 있는 경향을 설명했다.
③ 떼이야르의 우주 역사에 대한 변증법적 도식
제1단계 발산 혹은 폭발: 진보를 찾아가기 위한 다양한 모색.
제2단계 집중 또는 내파(implosion): 활동의 여러 ‘권역’들을 형성.
제3단계 출현: 이전의 상태를 초월하는 ‘새 창조’의 전기
④ 프랑스 사상가의 적용
제1기: 원시적인 지질학저 발전
제2기 세포의 출현
제3기 진화. 이런한 과정의 목표는 인류의 출현이다.
⑤ 떼이야르에 의하면 인간의 독특성은 성찰의 능력에 있다.
5) 오메가 포인트와 미래
떼이야르는 오메가 포인트를 최후의 단계로 보았지만, 그 과정 밖에 존재한다. 진화의 전 과정을 추진하는 추진력이기도 하지만 불변하는 초월적 준거점을 제공한다.
6) 기독교의 의미
우주 역사의 목표가 되는 오메가는
① 과정 자체의원인자로서 우리에게 나타나 있으며 우리 가운데서 활동.
② 그리스도 사역의 구현체로 지구를 감싸는 새로운 의식의 상태를 제세하는 굥회에 내재.
③ 기독교의 비전은 종말을 말하면서 만물이 그디스도 안에서 궁극적인 연합-그리스도적 생성(Christogenesis)으로 설명.
7)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화이트헤드(1861-1947)의
① 목표: 과학적 경향과 반형이상학적 환경 가운데서 형이상학의 중요성을 재정립 하는 것.
② 접근법: 유기체의 철학(philosphy of organism)
느낌, 동적 운동, 다른 실체 속에 내재함 드을 강조
주관적 혹은 정서적 경험(감정)은 모든 실재 속에도 존재한다고 주장
③ 화이트헤드에게 실재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구성물이 다 한가지로 같기 때문에 체계를 하나의 변형된 일원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의 실제적인 실체이고, 멀리 떨어진 빈 우주 공간의 가장 보잘것없는 한 줌의 바람과 같은 것도 하나님과 같은 실체이다.”
④ 모든 실재의 본질은 어떤 한 실체에 의하여 묘사될 수 있다.
8) 실재를 형성하고 있는 구성물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에 의하면, 실재는 네 가지 궁극적인 개념들-실제적 기회(actual occasions), 영원한 객체들, 신, 창의성-에 기초하고 있다.
① 실재는 정적 본질이 아니라 과정이다.
② 이 과정의 근본적인 요소들은 ‘실제적인 실체들 ’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 인 ‘경험의 기회들’ 또는 ‘경험의 방울들(drops of experience)이다.
가치-지향적이다. 각자가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력하여 움직이기 때문 이다.
③ 신 이해의 중심에는 신이 이 세계 속에 존재하는 다른 실체들 가운데 하나의 실체임을 전제하는 것이 있다. 근본적 본성(무시간적, ‘정신적인’극)은 이 세계 과정의 원리로서의 신을 가리킨다. ‘결과적 신’(시간적, ‘물리적인’ 극)으로서의 신은 시간적(일시적) 세계를 포착하여 모든 소멸하는 실제적 실체들의 처소로서 기능함으로써 세계를 하나로 통합한 다. 이러한 활동이 ‘물리적 감정의 충만함’ 안에서 신의 본질을 완성한다. 이러므로 신은 ‘위대한 반려’(companion)-이해하며 함께 고통하는 자(fellow-sufferer)-가 되는 것이다.
④ 또 다른 궁극적 개념, 곧 창의성이 있다. 창의성은 또다른 어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실제적 실체들 이면에 존재하는 통합의 원리이다.
⑤ 화이트헤드의 과정 형이상학은 어떤 특정의 신학적 정위를 갖도록 했다.
첫째, 신은 이 세계로부터 초연해 있지 않으며, 이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아 니라 상호 의존적이다. 강조점은 신의 내재성이다.
둘째, 신은 강압이 아니라 주로 설득을 통하여 이 세계 안에서 일한다.
셋째, 우리는 신을 전능성의 측면에서 보지 말고, 이 세계와 함께 고통하는 자로 보아야 한다.
⑥ 존 캅의 과정 신학
화이트헤드를 기초로 하여, 캅은 고전적 기독교 신학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개념들보다 성경적 인격주의(biblical personalism)와 더 일치하며 현대 과학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고 생각한 하나님 이해를 구축했다. 예수의 메시지와 과학적 우주관은 동일한 신 개념 즉 ‘부르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지향한다.
9) 기독론
캅은 그리스도를 ‘창조적 변형’(creative transfomaion)이라고 부르길 선호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자기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그 자신의 자아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면에서 존재의 한 특유한 구조를 역사 안으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10) 과정 신학의 일반적인 특징들
① 과정 기독론들은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에 몰두되어 있다. 과정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절 대적 완전 대시 ‘탁월함’(surpassing)의 특징을 가진 분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의 선행적 완전을 끊임없이 뛰어넘기 때문에 피조물들보다는 항상 더 완전하다.
② 만유재신론(panentheism, 과정 신학자 찰스 하트숀이 선호한 용어이다)은 범신론적 방 향으로 움직인다. 과정 사상에서 이 세계, 특히 인간은 자기 스스로뿐만 아니라 하나님 과의 ‘공동-창조자’로서 활동한다.
③ 과정 사상의 비판들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에 대한 과정 사상의 개념이 가지고 있는 중 심적 약점을 가리킨다.
첫째, 그것은 그것이 주장하는 우주론의 원리들 가운데 한 예로서의 광정 안에 하나님을 둔다.
둘째, 과정 사상은 이 세상과 함께 고통하는 하나님에게 (그것도 불충분한 방법으로) 초점 을 맞추고 있으며, 악의 극복을 신적 경험의 문제로만 격하시킨다.
11) 결론
자연의 과정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장소라는 긍정-을 구해 냄으로써 과정 신학은 과 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20세기 세계의 상황에서 신학의 생명력을 다시 살려 보려고 시도했다. 실재의 동적 본질에 관한 사실을 새로운 자연 신학의 기초 안에 들어갈 중심 제목으로 이용했으며, 신정통주의 속에서 발견되는 철학에 대한 철저한 배격에 대한 하나 의 대안을 제공하려고 했다.
초월성은 내재성에 삼키운 바 되어 이 과정적 신은 다만 일치를 위한 인간들의 노력을 반 영하는 거울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과정 신학은 르네상스 이후로 지속되어 온 신학 의 중심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제5장 세속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급진주의 운동
1960년대 신정통주의는 초월적 강조점을 제시하였다.
① 신종통주의 신학자들은 19세기 자유주의가 낙관론에 빠져 있는 것을 근절하고자 했다. ‘실존주의적 비관론’은 인간의 노력을 총하여 성취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묻는 경 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젊은 신학자들 가운데 비관론적 분위기에 대하여 반항하 며, 인간들의 실험적 노력에 대해 낙관적이었고 세속문화를 축하하며 정치적 활동에 참 여하는 것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였다.
② 무정부 상태와 혼란은 사신(deathof-God) 신학 현상에 나타났다. 세속 도시 안에서 교 회의 역할을 요청한다든지 어떤 형태로든 질서가 필요하다는 질서에 대한 갈증이 되살 아 났다.
③ 어떤 공통적인 즉성이 발견되는데 가장 명백한 유사점은
ⅰ) 교회 중심적인 접근 방식이나 관심사보다는 ‘세상 중심적’이며
ⅱ) ‘세속’(the secular)의 의미와 세속이 갖는 신학에 대한 의미와 신론(神論)이 그들의 사고의 중심이었고
ⅲ)칼 바르트가 강변하였던 ‘종교 또는 신앙’(religion)이라는 범주의 의미를 되묻기 시작.
④ 신학적 유행은 단명했지만 오늘에 이르도록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60년 대를 성상 파괴적이고, 반전통적이며, 도전적이며, 탐험적인 시대로 신학적 유행들을 ‘급 진 신학’(radical theology)이라 부르고 있다. 초월성에 대한 강조에 대한 반응으로써, 하 나님의 내재성을 새로이 추구하는 현대 생활의 일과성적인 현실 안에 하나님이 실제로 내재하심을 발견하고자 했다.

1.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삶의 한복판에 계신 하나님의 초월성
1) 본회퍼의 관심은 당시의 상황, 즉 성숙한 세계가 함축하는 바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교회와 기독교의 선포는 어떠해야 하는 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 다. 그의 이러한 관심은 당시의 신학자들이 세계의 성숙성에 대하여 이렇다 할 도움될 만한 대안들을 제시해 주지 못하자 한층 더 높아지게 되었다. 사실, 본회퍼가 보기에 당 시의 무르익어 가는 세계의 성숙도에 기독교의 메시지를 맞춰 보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 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공통된 문제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 모든 시도들은 각 개인의 ‘연 약함과 추악함이 들추어 보여진’ 후에야 비로소 죄인으로 불려질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회퍼는 기독교가 말씀 증거의 방법을 일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숙한 이 세계를 복 음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빛 아래에서 이해하되 이 세계가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것보 다 훨씬 더 철저하게 이 세계를 이해해야 할 것을 요구했다.
2. 세속 신학(Secular Theology)
현대 세계 속에 잠식된 하나님
기독교 신앙과 인간적 종교가 서로 교감될 수 없는 모습으로 분리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일상 생활의 영역으로부터 밀려나게 되었다. 바르트는 계시도니 말씀 안에 내 재하신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극대화한 나머지 그의 내재성을 상실해 버렸다.
급진적 신학들은(바르트가 구분한) 진정한 신앙과 인간적 종교 사이의 구분에 기 초한 것들이었다. 그가 설정한 이분법은 신앙 생활과 세속적 생활 사이의 구분을 배격하 는 결 과를 가지고 왔으며, 이 세상 또는 세속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선언했다.
1) 사신 신학(the Death-of-Gpd)운동
1060년대의 급진 사상 가운데 최초의 의미 있는 사조는 사신 신학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이 운동은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과 토머스 알타이저(Thomas J.J. Altizer)에 머물고 말았다.
① 해밀턴은 1966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하여 기독교 신론에 나타난 전통적인 하나님에 대 한 신념을 부인하려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다.
‘하나님은 죽었다’는 신에 대한 경험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부재하다는 것 을 경험한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② 사신 신학은 신학의 진정한 한 기독교적 형태라고 했으며, 알타이저도 오직 그리스도인 만이 하나님은 죽었다고 진실로 긍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통 적 기독교의 신론에서 말하는 초월적이고 주권적인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비인간적이며 소외시키는 권력들에 대항하여 고통하는 인간 곁에 서 계시는 최선의 분이기 때문이다.
2) 윌리엄 해밀턴
① 1960년대 초 침례교 계통의 콜게이트 로체스터(Colgate Rochester) 대학의 신학분에서 교회사 교수를 지낸 사람으로 「기독교의 새로운 본질」(The New Essence of Chirstianity, 1961) 이라는 책에서 역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개념에 대한 항 거였으며, 하나님이 부재한 문화 가운데 일어서서, 신이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재출현하는 것을 기다리지 말라는 외침이었던 것이다. 해밀턴이 본 기독교의 진정한 진 수는 예수에 의하여 설정된 위치에 서서-이웃과 더불어 그들의 갈등과 고통에 참여하 면서-신이 부재한 가운데 활동적이고도 세속적인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② 1960년대 사신 신학자들의 임무는 형사(刑事)의 일, 즉 현대 문화에 나타난 신의 사체를 찾아내고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었다.
③ 해밀턴은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을 보여 주는 분이기 때문에 그에 대 한 헌신에는 흔들림이 없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했다.
3) 토머스 알타이저
① 알타이저의 기독교적 무신론의 전반적인 주제는 인간 속에 ‘초월성의 그림자나 기억마 저도 남김없이 용해된’ 신의 절대적 내재성이다.
② 신의 죽음을 단순한 현대 인간의 자율적인 표현의 상징으로가 아니라 역사의 한 사건으 로 ‘신의 자기 소멸(自己消滅, self-annihilation)' 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것을 성육신과 십자가 교리 가운데 상징화되어 있는 케노시스(kenosis: 빌 2:7에서 그리스도가 ‘자기를 비운다’는 구절의 비우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 성육신의 방법을 말하는 중요한 신학 용어로 자리잡았다) 또는 자기 폄하(自己貶下, self-emptying)의 궁극적 행위라고 해석 했다.
③ 하나님의 급진적 내재성이 중요하면서도 필요한 실제적 결론으로 이끈다고 보았다.
④ 알타이저에 대한 비판
인간 안에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내재하고 있다는 그의 급진적 견해에 대하여, 신학계 전반에서 비판하고 나섰다. 좌우익을 막론하고 모든 신학자들이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의 비판을 하게 됨으로써 1960년대 말에 이러러 사신 신학은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것은 초월서을 배제한 채 절대적 내재성을 강조한 면에서 지나칠 정도의 급진성을 가졌기 때 문이다.
4) 존 로빈슨(John A. Robinson)
① 로빈슨은 기존의 신앙 생활에서 말하던 준거(準據) 틀에 대하여 급진적인 질문 공세에 나서게 되었다. 당시 그의 전반적인 목표는 목회적인 것이었지 명시적으로 신학적인 것 은 아니었다. 본회퍼가 그러했듯이 로빈슨도 “교회의 공동체적 삶의 질과 힘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구비시켜 그들의 ‘은밀한 제자도’를 통하여 현대 생활의 신나게 돌아가 는 그러면서도 위험하고 세속적인 삶의 현장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찾아서 따라 들 어가는 것”을 교회의 사명으로 보고 그 사명에 기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② 로빈슨에 의하면 하나님은 공간적이든 형이상학적이든 혹은 영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말 ‘저 위에 계신 분’이나 ‘저 밖에 계신 분’으로 봐서는 안되며, 이러한 초자연주의에 대항 하여 영국의 주교는 그이 사상적 스승들의 작업을 기초로 해서 기독교의 신론을 현대인 들의 사고에 적합하게 재구성하고자 했다.
③ 로빈슨이 쓴 「신에게 솔직히」는 그 동안 교회에 의하여 전통적으로만 형성되어 온 기 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적인 교리들에 대하여 당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사상가들이 솔 직하고도 열린 방법으로 토론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 여 준 것이었다.
④ 로빈슨은 내재성과 초월성이라는 기본적인 신학적 이슈를 놓고 씨름했다. 그는 신학의 임무를 “자연 밖에서 자연에 대하여 영향을 행사하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의 여러 가지 과정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듯이, 어떤 성스런 초역사적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 라 세속사의 사건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반영할 수 있는 투영도‘을 발 견하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때 세상의 모든 만물과 인격체들 안에 존재하면서도 그들을 초월해 계신, 그리하여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살아 있는 것들의 총합으로 통일시키시는, ‘상호 인 격적인 영역’(interpersonal field)의 의미로 보기를 원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초월적 인 면, 곧 ‘무조건적인 면’이 가시화되는 분, 즉 그리스도인들이 ‘사람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분이라고 주장했다.
⑤ 기독교와 세속: 세속적 정신을 유포시키면서 세속적 기독교 운동가들은 세속성 (secularity)과 세속주의(secularism)를 철저하게 구분했다. 세속성은 현대 과학적 자세나 현세적 관심사 등의 특징을 망라하는 관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반명, 세속주의란 믿을 만 한 지식은 어떠한 것이든지 과학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 유형적인 인 간사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자세이다.
5) 하비 콕스
「세속 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인 논지는 세속화 과정이 기독교적 영성을 파괴시 켰다기보다는 사실 기독교 신앙과의 심오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속성은 복 음의 기초와 참다운 진수, 즉 자유와 책임에 전적으로 헌신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복음 이 회개에의 요청을 하는 것은 ‘성인된 책임’을 다하라는 권면인 것이다. 콕스는 이러한 평가를 하면서 보회퍼를 상기시키는 말로 그리스도인들을 도전하기를, 현대의 세속화 운 동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했다.
① 콕스는 세속 도시의 이미지를 기초로 하여 전통적인 교회 선교의 3대 기능에 대한 새로 운 이해를 전개했다.
ⅰ)교회의 말씀 선포(kerygma)기능: 이 세상의 권세를 장악했음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ⅱ)교회의 봉사(diakonia)기능: 도시의 병폐를 치유하는 기능이다.
ⅲ)교회의 교제(koinonia)기능: 인간의 도시를 가시화 하는 것이다.
② 세속적 기독교의 사멸
세속주의 사상가들은 당대 사람들의 사고에 적응하려던 그들의 새로운 시도들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콕스의 접근 방법이 보다 보수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 대적 사고에 적응하는 쪽으로 너무 많이 나아갔을 뿐 전(前) 세대의 신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련된 통찰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콕스가 인간의 성숙도와 책임감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강조한 나머지 구신학엣 볼 수 있었던 그 세련된 현실주의는 그늘에 가려 버린 것이 아니냐는 비평가들의 우려를 낳게 되었다.
③ 콕스의 신학적 방랑: 「세속 도시에 대한 논쟁」(The Secular City Debate)이라는 책에 서 그의 답변 장(章)을 보면 콕스가 자신의 책에 대하여 스스로 재평가를 시작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4년 후 콕스는 그의 초기 저작에 나타난 일방적인 행동주의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에 대한 균형을 잡아보려고 시도 했다. 현재 신앙의 위기에 대하여 급진 신학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전통 신학에서 발견되는 과거에 대한 강조와 연결하고, 다시 당시에 막 떠오는 별로 부상하고 있던 희망의 신학이 말하 는 미래 지향성과 병합시키는 ‘병렬의 신학’(theology of Juxtaposition)을 주장하였다.
6) 결론
1960년대 전반기에 나타난 이 급진 신학은 엄청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급진 신학자들이 그토록 끔찍하게 생각했던 공간적 이원론을 극복하고 초월성을 창조적으로 갱신할 수 있 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 다음으로 전개되었던 신학 운동, 즉 세속주의와 사신 신학이 빠 졌던 곤경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로서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말하는 희망의 신학의 여 명(黎明)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을 하비 콕스의 공로였다.

제6장 미래의 초월성: 희망의 신학
1960년대의 10년 간은 혼돈의 시대로서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새로운 답을 모색하고 있었다. 악행들이 자행되는 엄청난 증거들에 기초하여 신앙을 반박하는 주장들과 함께 전개된 ‘항변적 무신론’(protest atheism)이 1960년대에 엄청난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무신론자들은 기독교적 유신론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한 증거로서 나치에 의한 유대인들의 대학살과 히로시마를 지적했다. 그들은 또한 전통적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와 이 세계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을 배제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근거를 순전히 세속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원리들 속에서 찾았다.
세속적 용구에 적응하려 했던 신학자들은, 때로 저농적인 기독교의 신앙 교리들을 인간적 열망에 대한 상징들로 환원시키면서, 무신론자들이 제기한 논점들을 수용하는 반향으로 반응하였다. 결국 희망의 신학자들은 ‘예수는 무엇을 했으며 초대 교회는 무엇을 희망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서서 과거의 종말론들이 오늘날의 인류에게 어떻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알고자 했다. 즉 희망의 신학은 현대 문화 속에서 초대 교회의 특징이었던 희망의 종말론을 위한 접촉점을 찾고 있었다.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미래의 힘, 또는 곧 나타나게 될 주권적 통치의 ‘절대적 미래’ 속에 거하시는 그의 거처로부터 역사 위에 그의 그림자를 내리드린 오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1.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
미래의 초월성과 내재성
몰트만의 방대한 저술들 전반에 걸쳐서 한 주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초로 한 미래에의 희망이 중심적인 것으로 두드러진다.
1) 몰트만의 삶과 신학자로서의 생애
위르겐 몰트만은 1926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괴팅겐에서 바르트의 영향을 강 하게 받은 선생들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훗날 이 위대한 스위스의 신학자가 실재 의 역사적 성격과 신학의 종말론적 성격을 간과한 것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다.
몰트만에 따르면, 신학의 중심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대한 소망, 즉 피조 세계가 썩음에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될 뿐 아니라 완전한 자유와 인간의 공동체적 삶 안 에 하나님의 영광이 약속된 대로 성취되는 것에 대한 희망이다.
2) 종말론적 존재론과 신학
신학에 있어서 몰트만이 가지고 있었던 주된 관심사들 가운데 하나는 종말론적 또는 ‘메 시아적’ 신학을 이용하여 신론을 독창적으로 재건함으로써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 사 이에 있는 갈등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또는 신학 이론과 그리스도인의 실천 사이에 존재 하는 파괴적인 괴리를, 직접적인 사회적 적용이 간으한 ‘비판적 하나님 이론’을 제시함으 로써 극복하려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몰트만은, 블로흐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부활 이 역사 속에 진입함으로써 그것은 희망에 실체를 제공하고, 또 그 희망에 결정적인 지평 [하나의 궁극(窮極, ultimum)], 곧 역사의 종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역사 그 자체를 위한 진정한 가능성의 길을 영러 주는 하난의 새로움(novum)을 불러들인다.
3) 약속으로서의 계시
① 종말론적 정향성의 방법론 순수한 이론보다는 실천적 이론에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에 의한 세계의 궁극적인 변혁을 바라보는 희망이라는 관점에서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② 미래는 현재와 과거에 대하여 ‘존재론적으로 선행’한다. 그것은 현재로부터 되어 가는 것(becoming from the peesent)이 아니라, 현재로 옴(coming to it)으로써, 새로운 실 재의 형태들을 만들어 낸다.
③ 계시를 신현으로 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몰트만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 를 약속과 그의 약속들에 대한 신실하심의 역사로서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를 약속의 한 사건으로서 경험하였고, 그의 죽음과 부활을 미래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 속으로서 선포하였다.
④ 성경은 그 자체가 계시는 아니며 축자적으로 영감된 것도 아니며 그것은 하나님의 약 속의 역사에 대한 증언,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고 묘사했다.
⑤ 계시는 미래가 초월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초월적이다. 그것 또한 미래가 현재에 곧 닥 쳐오는 것처럼 내재적이며, 미래의 영광의 나라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4) 하나님의 미래성에 기초한 몰트만의 초월과 내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은 그의 신 론에서 결정적인 것이다.
① 몰트만은 이 세상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삼위일체적으로 이하하며 만일 하나님의 초월 성이, 이 세상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모순되게 하기 위하여, 그가 미래로부터 이 세상 으로 나오시는 데(즉 강림 Adventus) 있다면 그의 내재성은 이 세상 안에 임한 그 나 라의 삼위일체적 역사 안에서 그가 이 세상과 함께 있게 되는 데 있다.
② 하나님의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즉 내재적으로 이해하는 그의 하나님 이해에서 핵심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십자가 에 의하여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하여 열려졌기 때문에, 역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은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③ 몰트만은 그 자신의 견해를 ‘삼위일체적 만유재신론’(trinitarian panentheism)이라고 말 한다.
④ 삼위일체적 만유재신론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기 위하여 몰트만은 가톨릭 신학자인 칼라너를 인용한다. “기능적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내재적 삼위일체는 기능적(경륜적) 삼위일체 이다. 즉 경륜이란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program 또는 plan)을 말하는 것으로 서, 그 계획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아버지, 아들, 성려의 관계와 각 위(位)의 창조 및 세 계 구원 역사에서의 역할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된 것이므로 이러한 삼위일체를 경륜적 혹은 기능적 삼위일체라 하고, 삼위일체의 내적 본질과 각 위의 관계에 대한 것 을 내재적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이다.
5) 비판적 평가
몰트만은 칼 바르트 이후로 현대 신학에서 삼위일체의 교리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데 그 어떠한 사람보다도 더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그의 초기 저작들에서 신학을 총괄하는 종말론적 정향을 전개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창으적이고도 새로운 방법들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몰트만의 신학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려는 현 대 신학의 항존(恒存)적 유혹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로 남아 있다.

2. 보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rnberg, 1928-)
이성과 희망 안에 계신 하나님의 초월성
1960년대에 몰트만과 함께 당시에 출현한 희망의 신학의 제창자로서 인정되었던 독일의 사상가는 뮤니히의 조직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였다. 그가 탁월한 신학자로 부상했던 것은 희망의 신학이 부상했던 것과 그 맥락을 함께하며, 신학 운동의 중심적 정향인, 미래 또는 종말(escharon)을 초월성의 특징으로서 강조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 보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1928년 현재는 폴란드에 속한 당시 독일의 동북 지 방에서 태어났으며, 16세쯤 공립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무신론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slp의 책 한권을 보게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세계가 이렇게 비참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확신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책들은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그의 관 심을 촉발시켜 주었다.
(2) 판넨베르크는 교회의 신학자 일 뿐 아니라 공공 영역의 신학자이다. 그이 신학적 프로그램은 교회와 한 교회가 세속적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의 일치를 지향한다. 그는 일치만이 교회가 현대의 세속 사회 속에서 신뢰성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라고 믿지만 그의 관심사는 인류의 미래를 포함하기에 이른다.
(3) 신학의 중요성은 신학 자체의 본질과 신학이 관계하는 진리에 대한 드이 이해에 있다. 그는 현대 신학의 노선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종교 신조 및 특정적 신학의 사물화(私物化)가 널리 퍼져 있다고 보고 그것에 대하여 싸우려 한다.
3) 신학의 출발
판넨베르크는 이스라엘의 종교사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다. 이스라엘 안에서 일신교로 향 하는 돌파구가 마련되었고, 그 결과 세계를 통일체로 이해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역사 안 에 일어난 하나님의 행동의 미래적 방향성에 대한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예수는, 궁극적 으로 역사의 종말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예기(豫期, peolepsis)-역사적 예고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판넨베르크는 예수의 생애로부터 기독교적 신론을 전개 한다.
4) 판넨베르크 신학의 핵심에는 신론이 있다. 그리고 기독교적 하나님 개념의 핵심 에는 삼위일체론이 있다고 주장한다. 성령론은 판넨베르크의 신론의 핵심을 이룬다.
5) 판넨베르크와 그의 비평가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가 착수했던 프로그램은 기독교 교리의 완전한 조직 신학적 서술 을 시도했다는 면에서 아마 바르트 이후로 가장 양심적인 것이다. 이러한 대담한 시도를 함에 있어서 판넨베르크는 현대적 상황 안에서 진정한 조직 신학을 하겠다는 시도마저도 거부하는 많은 목소리에 설득당하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신학적 작업의 초점을 다른 방 향, 곧 덜 야심적인 방향으로 옮기려고 했던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
6) 종말론적 존재론
판넨베르크는 그의 종말론적 존재론이 결정론적인 것 같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비판을 받 아 오고 있다. 판넨베르크의 존재론은 하나님의 인격성(personhood)에 관한 문제를 제기 한다.
7) 결론
희망의 신학이라는 것을 통하여, 판넨베르크는 신적 초월성의 개념을 재도입 하고 있다. 판넨베르크는 몰트만보다는 훨씬 더 구원을 창조와 연관시킬 수 있었으며, 그 결과 그는 이 세계가 그것의 초월적/내재적 근원자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하여 독창적인 이해를 전 개하고 있다.

제7장 억압의 경험 속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해방 신학의 여러 유형들
1960년대 이후의 급진주의자들은 신학이라는 학문에 대하여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요청 을 제기하였다. 급진 사상가들은 지적 무신론보다 기독교 신앙에 더 심각한 비판을 제기 하는 것으로 보였던 당시의 억압의 경험들에 대해 다양하게 반응했다.
1. 흑인 해방 신학
모든 사람들의 평등(또는 하나님의 공명정대하심), 흑인 공동체가 내세우는 대의명분의 정 당함과 그것의 궁극적인 승리, 그리고 현재의 좌절의 경험과 같은 것이다. 흑인 신학은 세 속화된 문화의 지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대신 미국에 사는 흑인들의 경험 이라는 현실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급진주의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지적 적실성의 문제를 놓고 토론한 반면, 흑인 사상가들은 압박받는 사람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에 의하여 압박 받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적인 하나님 개념이 적절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를 가지고 씨름했다. 이 때문에 흑인 신학은 일반적으로 해방 신학의 하나로 분류된다.
1) 흑인 신학과 해방 신학자들
① 흑인 신학은 흑인의 해방 신학이다.
② 흑인 신학은 북미의 개신교적 현상이었다.
2) 흑인 신학의 기원과 발전
① 윌모어(Wilmore)와 콘은 흑인 신학이 세 단계로 발전되었다고 말한다.
첫 발전 단계(1966-1970)는 백인 개신교에 대한 흑인 교회들의 예속이 끝났음을 보여 주 었다. 이 시기는 흑백 종교 지도자들 사이의 불신이 그 특징을 이루고 있다.
두 번째 단계에는 전문 신학자들이 이 문제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 초점이 흑인 교회로부 터 학문 연구 기관으로 옮겨져 갔다.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는 데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작용하여 촉진제 역할을 했다. 몇몇 신 학자들은 그들이 벌이고 있던 내부에서의 토론이 학문적으로 아무런 결실이 없음을 지각 하게 되면서, 다른 행방 운동들과도 조우하기 시작했다.
② 흑인 신학이 발원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주었던 초기의 중요한 논문은 조셉 워싱턴 (Joseph R. Washington, Jr)이 쓴 「흑인 종교: 미국의 흑인과 기독교」(Black Religion: The Negro and Christianity in the United States, 1964)였다.
워싱턴은 ‘통합을 넘어선 동화’, 즉 유일한 미래적 희망인 ‘진정한 용납의 모형’으로 나아 가기 위한 하나의 발걸음으로서, 그는 흑인 교회들이 ‘지금까지 하던 방식을 탈피하고’, 흑 인 그리스도인들은 백인 교회에 들어가서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고 도전했다.
③ 워싱턴이 주장했던 동화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은 곧 사라져 버렸다. 1960년대가 저물어 갈 무렵, 흑인들의 통합을 향한 모색은 호전주의적 성향으로 모습을 바꾸었고 백인 교 회들과 그 지도자들에 대한 공격이 점차 증가했다.
2) 제임스 콘
제임스 콘(James H. Cone)은 남부에서 자라던 시절 그가 억압받는 흑인들이 처한 곤경 을 함께 했었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이해하며 그들을 대신하여 말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가 중요한 이유는 거의 백인들이 지배하다시피하는 신학계에 서 발언의 기회를 얻는 데 필요한 학문적 자격을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① 흑인 해방 신학(A Black Theology of Liberation)의 저자 콘의 목표는 흑인의 힘 운동 (Black Power Movement)이 바라는 열망과 그가 기독교의 중심적 메시지라고 이해한 해 방을 결합시킴으로써 흑인 신학의 서론적 논제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흑인들이 쟁취하고자 하는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 땅히 되어야 할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언명했다.
② 콘은 기독론의 개요를 보여 주면서, 신약 문서에 크게 의존했다. 그는 신약 성경에서 예 수가 ‘지상적 삶에 있어서 그 땅의 억압받던 사람들과 밀접히 관계하던 억압받는 사람 의 대표자(Oppressed One)로’ 제시되어 있다고 보았다. 콘에게 있어서 흑인 메시아의 개념은 현대적 상황 속에 그리스도의 구체적 실재를 표현한 것이며, 흑인 혁명이란 ‘하 나님의 나라가 미국에서 한 현실이 되는 것’이라는 개념을 표현한 것이다.
③ 기독교 복음을 미국의 흑인 사회의 상황에 관련지어 보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에도 불 구하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째, 흑인 신학은 인종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둘째, 흑인 신학은 경험을 경험을 신학의 규범이라는 위치로 높여 놓았다.
셋째, 내재성과 초월성 간에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2.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
해방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1) 해방 신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적 바른 실천(orthopraxy)을 추구하는 이른바 성경적이고 매우 기독론적인 탐구이다. 그러한 바른 실천은 교회의 목회 활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하님의 계시의 빛 안에서 그것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병행함으로써 생겨 난다. 해방 신학의 대부분은 ‘혁명적 상황’과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역할들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이다.
2) 해방신학의 중요한 주제
① 상황 신학
모든 해방 신학에 암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하나의 주제는 신학은 반드시 상황적이어 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지식이 사회 환경의 조건화 과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이 때 모든 지식은 반드시 상황적이 되는 것이다. 그 계급에 대항하여 일어선 사람들 속에 서 일어나는 비판적 지식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지식의 ‘인식자들’이 각각 들어와 살 며 생각하는, 그 독특한 상황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② 해방 신학에 두 번째로 주요한 주제는 라틴 아메리카적 상황의 구체적 성격이다. 라틴 아메리카 사회에서 한 가지 가장 중요한 특징적 문제는 빈곤이라는 데 동의한다. 라틴 아메리카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이 빈곤의 문제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의 인간성마저도 희생시켜 가면서 소수의 권력과 극한의 부 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사회의 구조를 만들어 간 결과이다.
③ 해방 신학의 세 번째 중심 주제는 모든 신학과 선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 택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계급 투쟁과 갈등이 두드러지는 현재의 혁명적 상황 속에서 교회는 억압받는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3) 비판적 평가
해방 신학은 엄청난 비판을 초래하였다. 해방 신학자들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비평가들과 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들은 한 신학을 판단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 이 가지고 있는 지적 논증의 힘이 아니라 그것이 맺는 열매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여성신학
여성의 경험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일단의 여성 그리스도인들이 변두리의 한 가정의 거실에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며, 남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와 교회에서 억압당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하나님은 항상 아 버지가 아니라 때로는 어머니일 수도 있다고 하여 포괄적인 언어를 사용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교회의 예술도 영향을 받고 있다. 즉 여자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인 ‘크리스타’ 상이 뉴욕의 한 성당에 걸려 있다.
① 20세기의 나머지 3분의 1의 기간에 신학은 점점 자라는 여성주의적 의식에 점점 더 영 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반이 의식하지 못할 때인 1960년대 말부터 몇몇 여자 신학자 들과 신학생들은 이른바 여성 신학이라는 현대 기독교 사상의 한 장르를 개발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이 신학은 북아메리카 사회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던 여권 신 장 운동의 한 산물이며 그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② 여성 신학은 북아메리카의 흑인 신학과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과 몇 가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억압의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둘째, 죄와 구원의 사회-정치학적 국면에 초점을 맞춘다.
셋째, 철학적 범주보다 사회학적 범주들을 더 많이 사용한다.
③ 페미니스트들은 여서들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의 어두운 역사를 보았다. 그들이 보기에 유대-기독교적 전통의 전반적인 역사에는 여성은 보이지 않고, 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 과 피지배를 강요당한 것 등이 그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8장 인간 정신의 초월성: 새로운 가톨릭 신학
가톨릭의 현대주의는 교회의 위대한 전총의 순전성(純全性)을 강조하는 ‘통전주의’(統全主 義,integralism 또는 완전주의)라 불리는 운동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든 신학을 현대 문화에 적응시키려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1.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
인간의 주체성의 초월
① 칼 라너는 그의 신학적 작품들에 나나타는 강도 높은 추상성 때문에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② 그의 신학 대부분이 추상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너는 20새기 로마 카톨릭 신 학자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그는 코마스 아퀴나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 흐, 칼 바르트 그리고 폴 틸리히 등에 견주어지기도 했다. 그의 신학은 '중개(仲介) 신 학‘(mediating theolohy)의 한 형태이며, 자신이 취한 접근법의 정수에 대하여 말하면서, “신학은 전통적 사상 가운데서 최고의 것과 오늘날의 절박한 사정 사이에 진실한 대화 를 격려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했다.
③ 칼 라너는 독일 프라이부르그의 검은 숲(Black Forest)이라는 도시에서 1904년 3월 5일 에 태어났다. 1937년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대학교의 신학부에서 교수로서의 생애를 시작했으며 은퇴한 후에도 라너는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라너의 신학적 방법은 평범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도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초월적 이며, 거룩한 신비 없이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통하여 경험하 는 역사적 환경 안에서 그리고 그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신비와 맞닥뜨려야 하고 알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하여 노력한다.또한 신학적 접근 방법의 핵심은 ‘초월적 방법’이다.
④ 라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초월을 어떤 가능한 계시를 위한 ‘청종적 능 력’(potentia oboedientialis)이라고 불렀다, 그는 인간 경험의 구조에 대한 순수한 철학 적, 초월적 탐구를 통해서도 인간이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는 경향을 가지 고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다고 믿었다.
⑤ 라너의 매우 정교한 철학적 인간학의 목적은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기 까지는 안 식하지 못하는 피조물이라는 어거스틴의 주자에 합리적인 지지를 하는 것이었다.
⑥ 라너의 기초 신학의 목적은 신적 계시에 대한(인간이 주체로서 그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인간 주체성의 준비 상태를 입증하려는 것이었다.
라너는 하나님의 자기 의사 표현이 인간의 본성과 모순 관계에 있다고 보는 입장을 ‘외 인주의’(extrinsicism, 外因主義)라 하고, 그와는 달리 하나님의 자기 의사 표현이 인간의 본성에 예속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을 ‘내인주의’(intrinsicism)라고 불렀다. 전자는 전통 신학에, 후자는 현대 신학과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에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그는 이러 한 극단적 사상들의 양극화를 ‘초자연적 실존’(supematural existential)이라는 중재적 개 념으로 극복해 보고자 했다.
⑦ 라너는 계시를 두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자연적, 초자연적 성향을 ‘초월적 계시’(transcendental revelation)라고 한다. 초월적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반추적이고 개념적인 지식을 위한 선험적 기초를 제공한다.
두 번째는 범주적 계시가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 하며, 범주적 계시를 “그것은 영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단순히 초월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사건적인 성격을 가진 다. 그것은 대화적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시며 이 세사에 있는 모든 실재가 인간의 초월 안에 계신 하나님과 맺은 필연적 관계를 통해서, 단순히 언제 어디 서나 알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어떤 것을 그에게 알게 하시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범주적 계시는 초월적 계시만을 통새서는 발견될 수 없는 하나님의 내적 실재를 드러낸 다.
⑧ 라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무한성은 공리적이다.
⑨ 라너의 신관은 그의 계시 교리가 외인주의에 대한 항거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원론에 대한 항거이다. 그 둘은 풀어 낼 수 없을 만큼 연결되어 있다.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하 여 토의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하여 강하게 긍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교리가 어떤 이원론적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⑩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라너의 교리는 ‘초월적 기독론’(transcendental Christology)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사렛 예수의 과거와 현재적 정체성에 대하 여 주장할 때 말하고 있는 바, 신-인(神-人) 또는 ‘절대적 구원자’의 모습으로 출현하기 위한 초월적 전제 조건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하여 묻는다.
라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론적 신성은 그가 절대적 구원자로서 수행하는 기능에 의하 여 확증될 수 있다고 믿었다. 라너는 예수 그리스도가 두 본성, 곧 인성과 신성을 한 인 격으로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하는 ‘본체적 연합’(hypostatic union)에 대한 고전적 기독 론을 긍정했고 변호했다.

2. 한스 큉(Hans Kung, 1928-)
내재와 초월 사이의 균형
1) 큉의 생애와 업적
① 한스 큉은 1928년 3월 19일에 스위스 가톨릭 지역의 수어제(Sursee)라는 소읍에서 태어 났다. 초기에 큉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현대주의나 자유주의의 부활을 결단코 용인하지 않았던 교황 파이우스 12세의 교회 생활, 신학, 사회 등에 대한 전통적이며 권위주의적 인 접근법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② 1950년대를 지나면서 큉은 가톨릭 사상과 가톨릭적 생홀을 현대 사회에 걸맞게 적응시 키려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노력들에 대하여 고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고, 점점 불편 함을 느끼게 되었다.
③ 큉의 첫 번째 책은 칼 바르트의 칭의 교리에 대한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개정한 것이 었다.
2) 큉의 ‘비판적 합리성’
① 신학적 방법은 고전적인 가톨릭 신학 사상보다는 현대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에 더 가깝 다.
② ‘비판적 합리주의’는 데카르트로부터 유래한 이성의 개념으로사ㅓ 20세기에 와서는 여러 학잗르이 있지만 특히 칼 포퍼(Karl Popper), 한스 알버트(Hans Albert) 등이 지지한 바 수학적 입증 내지는 반증을 진정한 지식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 다. 경험론적 입증과 반증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는 견해로 보면 이것은 실증주의(positivism)에 가깝다.
③ 큉은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축(軸), 즉 ‘오늘날의 세계라는 지평을 배경으로 하고 기독교의 기원과 기독교의 중심이라는 시 각에서 본 신학’을 제시했다.
④ 큉은 헤겔의 철학적 신학을 면밀하게 검토함으로써 이 위대한 독일의 사상가와 자기가 일치하는 영역과 불일치하는 영역들을 보여 주었다. 즈는 헤겔에 대한 범신론적 비난들 에 대해서는 일축하면서도 그가 만유재신론을 보였다는 비판의 진실성은 인정했다.
⑤ 하나님의 기본적 역사성에 대하여 논할 때, 큉은 하나님이 되어 가는 그 과정에서 변화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회피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변화에 굴할 수밖에 없다 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가변성을 말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했다.
3) 기독론
큉의 신학의 여러 측면 가운데서 기독론만큼 바티칸 밖에서까지 논란이 되었던 것은 없 다. 1974년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라는 책이 출현해서 교회의 지도잗르이 큉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에 대하여 평가할 기회가 되었기 때문에, 그를 징계하려는 조치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차에 그가 가혹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중론이 었다. 그러나 큉은 그의 신학이 철저히 기독론 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4) 비판적 평가
큉의 장점은
① 세속 시대를 위한 변증학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② 현대와 탈현대의 과학, 철학과 더불어 창조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개신교도’라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제9장 이야기 내에서의 초월서: 설화 신학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 폭넓은 지지를 얻은 새로운 접근법은, 인간의 자기 이해를 표현한 이야기의 중요성을 신학적 과제로 통합하려는 시도이다. ‘설화 신학’(narrative theology)이 라 불리는 이 접근법은, 신학적 성찰의 중심적 모티브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인간과 이야기 의 개념을 이용한다.
설화 신학의 진수(眞髓)는, 신앙이란 우리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종교적 공동체의 초월적/ 내재적 이야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와의 결합이라 주장하는 데 있다.
1) 기본적인 특징은 신학의 다른 운동들처럼, 설화 사상가들도 질문으로 시작한다.
2) 설화 신학 운동은 1970년대에만 출현했지만, 그 기초는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발 전에 근거한다. 성경의 사요, 권위. 계시의 본질과 관련된 성경 신학과 조직 신학의 동향 이 새로운 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설화 신학은 부분적으로는 현대 신학을 특징지는 것들, 즉 신학에서의 성경의 기능과 신학 작업의 본질과 관련된 위기로 인해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① 설화 신학은 신학적 방법론에 대한 이전의 이해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현저히 부각된 신정통주의의 계시 이해를 받아들였다.
② 니버는 계시란 내적인 역사의 수준에서 외적인 사건을 적절히 유용하는 것을 포함하며, 이 ‘유용화’는 그가 ‘우리 삶의 이야기’라 지칭했던 바 이야기의 형태를 필연적으로 가정 해야만 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했다.
③ 성경 연구의 배경: 종교개혁으로부터 발흥한 성경에 대한 역사-비평적 접근법은, 사실 성 여부에 대해 특히 성경 저자들이 진술한 사건들의 실제 역사성과 관련된 의문들을 제기함으로서 성경 해석에 관여했다.
④ 신학과 성경 연구에서의 발전으로 인해, 설화라는 범주가 어떤 영구적이거나 현대적인 신학 문제들을 다루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한 사상가들 사이에 느슨한 제휴가 일어났 다.
설화라는 범주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설화라는 용어의 정 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설화 사상가들 사이에 아직 의견이 일치되지 못하고 있다.
⑤ 설화 신학에 대해 ‘구조주의적’ 접근이라 불리는 탐구를 시작했다. 이 사상가들의 기본 적인 관심은 이야기의 ‘내용’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보는 것인데, 이는 이야기들이 어 떻게 표현되는지가 무엇이 표현되는지를 상당히 결정한다고 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⑥ 공유된 관심은 제2의 설화 신학자 그룹의 특별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르은 이야기의 구 조와 관련된 다소 형식적인 범주들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성경의 설화를 통하여 표현된 윤리와 그것이 오늘날의 삶에 함축하고 있는 바를 이끌어 내려 했다. 설화 신학에 대해 ‘윤리적’ 접근을 하는 사상가들은 ‘성품’과 ‘공동체’ 같은 개념의 우선성, 윤리학을 위한 설화의 우선성, 신학적 과업에서 윤리의 우선됨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3)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하나님의 이야기)와 설화의 관련성은 설화 사상가들의 마지막 그룹의 특별한 관심사가 되었다. 신학자들의 목표는, 일반적인 인간 경 험과 구체적인 기독교 신앙을 표현할 때 설화의 규범적인 중요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를 진술하는 것이었다.
① 설화라는 범주가 조직 신학 정립을 위한 주요 모티브로서 기능하는 영역에까지 확장된 것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② 일반적으로 설화 사상가들은 설화가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 다는 데 동의한다. 인간의 정체성은 설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 전기와 자서전
① 설화라는 범주의 유용성에 대한 공통된 의견에 걸맞게 거의 모든 설화 사상가들은 그들 의 저술에서 설화적 문학 양식을 사용하는데, 종교적 자서전(즉 ‘고백’)이나 전기 또 최 소한 그것들이 섞인 상태로 사용한다.
② 설화적 글에 사용된 전기는 일반적으로 신자의 개인적 정체성의 설화와 기독교 공동체 의 설화 사이의 ‘충동’로부터 나온 것으로 제시된다.
③ 설화 신학의 목표는 교회의 설화들 속에 구현된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 사회적 존재를 새로이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④ 전기의 사용은 설화 신학이 가진 기본적인 관심, 곧 인간의 정체성 발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정체성 발달은 설화가 개인으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필수적인 형태라는 면에서 설화와 관련된다.
⑤ 단순한 개인들이 아닌 공동체는 이야기를 말하며 이야기적 특징을 가진다. 스트룹의 정 의는 설화 사상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것이다.
⑥ 공동체의 본질을 설화적으로 이해한 것은, ‘회심’과 ‘신앙’을 초래하는 ‘이야기들의 충돌’ 이라는 스트룹의 중요한 주제로 이어지며, 설화 신학에 따르면, 인생 이야기의 특징은 그것이 개정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⑦ 스트룹은 기독교 설화 자체를 하나님의 계시로 보지 않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 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믿는 배경 상황(context)이다.
⑧ 성경은 공동체가 그 신앙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설화와 상징을 제공해 준다.
5) 설화 신학의 비판
첫째, 이야기와 경험의 관계-진리의 문제
둘째, 이야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해석학-의미의 문제
셋째, 도덕적 상대주의의 도전-합리성의 문제.

제10장 내재성과 초월성의 균형을 향하여:
복음주의 신학의 성숙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일단의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기치 아래 느슨한 연맹을 형성하게 된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신학적 진술을 성경과 교회 전통, 특히 종교개혁의 유산에 충실하게 표명하는 것이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이래 많은 유능한 신학자들은 새로운 복음주의의 입장과 관심사를 주창했다. 그러나 칼 헨리와 버나드 램이 대표적인 목소리이다. 둘은 모두 침례교인이 며, 물론 그들이 속한 교단이 그들의 신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어느 한 진영에 국한된 입장이 아니라 광법위한 복음주의 연합의 사상을 대표하는 신학을 구 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해하는 기독교 신앙은 교단적인 선호에 의해 형성된 것 이 아니라 복음주의 전체에 참여함으로 빚어진 것이다.

1. 칼 헨리(Carl F. H. Henry, 1913-)
현대주의에 대한 복음주의적 대안
1) 20세기 후반에 가장 탁월한 복음주의 신학자는 분명히 칼 헨리이다. 1913년 1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난 칼 헨리가 회심한 것은 가족이 아닌 외부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으며, 헨리의 회심은 많은 복음주의자들의 경험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죄용서와 하 나님의 임재를 위한 기도, 죄 사함에 대한 내적 확신, 예수를 개인적인 구원자로 영접한 확신,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어디든지 따르겠다는 다짐과 같이 전 생애를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는 헌신, 하나님과 맺은 새로운 관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려는 열정 등이다.
① 풀러에 있는 동안 헨리는 두 번째 박사 학위(Ph.D. 보스톤대학)을 끝내고 아홉 권의 책 을 썼다.
② 헨리가 복음주의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1956년 그는 워싱턴 시로 이주하여 새로운 복음주의 잡지로 등장한 Christianity Today지의 초대 편집장이 되었다. 12년 간 일하면 서 헨리의 영향력은 점차 커졌고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명성을 얻기에 이르렀다.
③ 헨리는 조직 신학자라기보다는 보수주의 혹은 복음주의 관점에서 20세기 신학을 비평한 비평가로서, 그리고 복음주의를 해설한 학자로서 지칭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④ 1940년대에 1914-1946년을 ‘현대 문화의 심야(midnight)'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⑤ 핸리의 저서들에 묘사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성경의 권위에 관한 것이며,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조는 사실 복음주의의 핵심에 해당하는 관심사이다.
⑥ 헨리에게 있어서, 계시의 언명적 성격은 곧 계시는 이성적인(rational)성격을 지니며 따 라서 명제적(propositional)인 것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⑦ 헨리는 각 개인에게 내재하는 신적 형상을 인정하고 일반 계시의 교리적 중요성을 인정 했지만 자연 신학을 정립하려는 어떤 시도도 배격했다. 헨리에게 신학은 오직 성경 속 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만 근거할 수 있는 것이다.
2) 헨리를 비롯한 많은 복음주의 사상가들이 성경의 진리성을 확신한다는 것은 곧 성경은 신의 영감으로 쓰여진 바 무오한 것으로 믿는 것이다.
① 헨리가 정의한 영감은 “하나님이 선택한 선지자들과 사도들 위에 임한 초자연적인 영향 으로서 그들의 구두적. 문자적 선포의 진리성과 진실성을 하나님의 영이 보증하는 것” 이다.
② 헨리가 무오성을 옹호했지만 이 교리에 찬동하는 것을 진정한 복음주의의 시금석으로- 그의 동료들 중 일부처럼-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린드셀은 무오성을 성경의 권 위와 영감보다 더 우위에 두어 마치 성경에 관한 최우선적 교리인 것처럼 착각했다고 비판 했다.
③ 명제적 계시를 강조하는 헨리의 사상은 자연스럽게 그의 마지막 주요 특징, 곧 신론을 신학의 비녀장(linchpin)으로 강조하는 사상으로 귀결된다. 계시와 하나님 사이의 연계 는 로고스를 신의 자기 계시의 중개자로 보는 헨리의 사상에 근거한다.
3)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내용은 어섯 권으로 된 헨리의 대작에서 자 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제1권에서 신학의 본질에 관한 서문을 쓴 다음 제2, 3, 4권에서 신의 계시에 관한 15개의 기본 논제를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제 5, 6권에서는 신론에 대 한 고전적. 정통적 접근을 전개하고 있다.
금세기에 여러 신학자들이 옹호한 사회적 행동주의와는 대조적으로 헨리는 사회적 변화 는 집단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단고 주장했다.
4) 비판적 평가
헨리의 비판가들은 또한 그가 이성과 명제적 계시에 지나칠 정로로 집착했다고 비판한 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를 신학 역사상 계몽주의 이전으로 후퇴한 유형이라고 비난했 다. 그런 비판의 와중에서도 헨리는 신학이 초기에 길을 잘못 들었다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2. 버나드 램(Bernard Ramm, 1916-1992)
현대 사상과 대화하는 복음주의
① 복음주의 운동의 폭넓은 통일성 아래 다양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바로 현대 신학에 대한 버나드 램과 칼 헨리의 입장 차이였다. 헨리는 일반적으로 현대 신학의 흐 름에 대해 무척 경계하는 태도나 심지어는 부정적인 배척의 자세까지 보였으나 버나드 램은 또 다른 복음주의적 접근 자세를 취했다.
② 램의 전반적인 열정은 계몽주의의 파괴적 영향 속에서 기독교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었 다. 그는 계몽주의를 심가하게 취급했다. 즉, 인간 지성사에 있어서 그 기간이 만들어 낸 변화가 얼마나 급진적인 것이어TSms지를 입증하는 동시에 기독교의 고전적 교리를 재확증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그는 복음주의자들에게 기독교 진리를 적극적으로 정 립할 것을 촉구하였다.
③ 램은 복음주의의 온유하고 평화적인얼굴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런 정신은 타고난 것 이 아니라 경력이 쌓이면서 개발된 것이었다.
④ 램은 변증학을 “기독교 신학이 진리임을 의식적이고도 의도적으로 변호하고 확증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⑤ 변증학에 대한 램의 접근법은 전형적인 복음주의적 방법이었지만, 칼 헨리와 같은 전제 주의자들로부터 이탈하였다. 그는 경력 초기에 도 하나의 고전적인 접근법인 ‘증거주의’ 를 채택했다.
⑥ 변증 체계의 유형들에서 램은 방법론에 있어서 주요 대안들은 변증 작업의 토대와 출발 점에 기인한다고 비평했다. 복음을 통하여 은혜를 내적으로 경험하는 ‘주관적 즉가 성’(subjective immediacy)에 기초한 변증학(파스칼, 키에르케고르, 부르너); 인간의 이성 적 능력이 신앙에 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자연 신학’에 근거한 변증학[아퀴나 스, 조셉 바틀러(Joseph Butler), 테넌트(F.R.Tennant)]; '신앙이 이해에 우선한다‘는 언 명에 따라 신적 계시에 기초한 변증학(어거스틴, 코넬리우스 반틸과 에드위드 카넬 같 은 현대 복음주의자들)이 그것이다.
⑦ 램은 기독교의 내적 속성과 외적 속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성령의 내적 역사와 성취된 예언 및 기적과 같은 증거들이 함께 작용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의 확신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했다.
⑧ 램은 성경, 계시, 신학적 권위의 문제에 몰두했다. 램은 종교개혁에 호소했는데 권위에 대한 개신교의 원칙은 “성령의 계시적. 영감적 행위의 산물인 성경 안에서 성령이 말 씀하시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권위에 대한 일차적인 원리(신적 자기 계시 속의 하 나님)은 권위의 즉각적인 원리(성령께서 성경으로 말씀하시는 것)를 낳는다.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이나 성령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조명하심에 따라 성경이 증거하는 계시(예수 그리스도)에 있는 것이다.
⑨ 램은 두가지 신학의 한계, 하나님의 불가해성(不可解性)과 인간의 죄성을 알았다.
⑩ 버나드 램의 핵심 사상은 근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 복음주의 사상가는 복음 주의 운동의 치명적인 약점이 신학의 한계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에 있다고 생각했다.
⑪ 램은 복음주의 운동에 중요한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의 딜레마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결론
중세 사상가들은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 간의 균형을 공간적 개념에 호소함으로써 이 룩하려 했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이 두 영역을 가라놓았던 간격을 없애 버렸다. 이성은 만물의 바탕인 로고스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실재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탐구 할 수 있다. 20세기 신학자들은 새롭게 내재성과 초월성 사이의 적합한 균형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20세기는 르네상스 이래 서구 정신에 너무나 중요했던 내재성의 강조에 반발하면서 시작 되었으며, 그 출발점이 초월성의 재탄생에 있었다. 20세기 신학의 가장 위대한 영구적인 유산은 초월성의 중요성을 회복한 것이다.
21세기의 신학과 관련하여 현 시점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이다. 현 재까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부들이 현대 정신을 해체하는 작업에만 관여해 왔다. 포스 트모던 정신을 특징 짓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한 세기 동안의 실패로 인해 현실 주의로 단련된 인생관 및 세계관이 될 것이다.
신학은 초월적-내재적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확신을 새로운 방법으로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실재가 지향하는 초월적 목표점(telos)으로부터 우리 의 현대 상황으로 침입하시는 하나님이다.
신학은 20세기의 경험이 내린 판결-땅은 천국이 될 수 없다-을 수용해야 한다.
저편으로부터-그때 저 곳에서부터-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현재-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 간 의 신학적 균형의 핵심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