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국제고 우승 비결,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에 있다
입력2024.08.27.
구성원의 장점 살리고 약점 극복하는 매니지먼트의 힘이 핵심 요인
8월 23일 교토국제고가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별칭 고시엔) 우승을 차지했고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교가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눈에 띈 건 선수들이다. 감격에 겨워 노래하는 어린 소년들. 교육부 재외교육기관 포털을 보면 교토국제고는 전교생이 137명이다. 딱 절반인 68명이 남학생, 그 중 61명이 야구를 한다. 명실상부 야구에 미친 학교다.
야구팀원 대부분은 애초부터 야구를 하려고 이 학교에 왔다. 그러나 엘리트 선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학 시절 최정상급이었다면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터다. 교토국제고는 야구에 최적화된 환경이 아니다. 운동장부터 작다. 홈플레이트에서 중앙 펜스까지 거리가 약 70m. 미국 메이저리그가 권장하는 400피트(약 122m)에 턱없이 못 미친다.
관련 예산도 넉넉하지 않다. 찢어진 야구공을 버리지 못하고 테이프로 친친 감아 훈련에 사용한다. 야구가 좋지만 야구 명문에 진학할 여건은 안 되는 학생들. ‘공포의 외인구단’ 속 까치 같은 친구들이 이 학교에 모였다. 그들이 똘똘 뭉쳐 고시엔 우승기를 들어 올린 셈이다.
야구는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가 승패를 좌우하기 힘든 구조다. 제 아무리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라도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분의 1에 불과하다. 한번 배트를 휘두르고 나면 동료에게 타석을 넘겨줘야 한다. 야구 승패에 매니지먼트가 미치는 결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책으로 소설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이하 ‘만약 고교야구’)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2010년 일본 출간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보다 많이 팔려나가며 일약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만약’이라는 뜻의 일본어 ‘모시(もし)’와 ‘드러커’의 일본식 발음 ‘도라(ドラ)’를 합친 ‘모시도라’라는 제목으로 유명하다. 일본 내 인기를 타고 2011년 국내 번역 출간된 뒤에도 뜨거운 화제를 이어가 현재 62쇄를 돌파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소설 주인공은 아픈 친구를 대신해 고교 야구팀 매니저를 맡게 된 여고생 미나미. 그가 몸담은 호도고 야구팀은 20년 전 딱 한번 고시엔 지역예선 16강에 진출한 게 최고 성적인 만년 하위팀이다. 성과가 없다 보니 선수들은 의욕 상실 상태라, 연습 일정을 잡아봤자 4분의 1이 나올까 말까다. 그러나 미나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호도고 야구팀을 고시엔 본선에 진출시키겠다고 마음먹고, 실천 수단으로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뽑아든다. 미나미가 드러커의 경영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지리멸렬하던 야구팀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과정이 이 소설의 큰 줄기다.
드러커는 세계적 경영학자로, 국내외 유명 CEO들의 ‘경영학 스승’으로 불린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또한 드러커 저서를 탐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2019년 현대차그룹 임원과 팀장급 직원 전체에게 드러커 책을 선물했고, 최근 사원들과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자신의 경영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드러커를 꼽았다.
그렇다면 드러커의 경영 철학이 어떻게 야구팀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만약 고교야구’의 한 대목을 보자. 고시엔 예선에 진출하며 호도고 야구팀이 세운 수비 전략은 ‘실책을 두려워하지 않기’다. 미나미는 이렇게 말한다.
“야수가 실책을 범하는 건 별 문제가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실책은 어차피 나오게 되어 있다. 중요한 건 실책을 범해도 움츠러들지 않는 것이다. 실책을 저지를까 봐 두려워 소극적인 수비를 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판단의 배경에 있는 것이 바로 드러커 경영학이다. 드러커는 저서 ‘매니지먼트’에 이렇게 썼다.
“실수나 실패를 모르는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무난한 일, 별 볼 일 없는 일만 해온 사람들이다. (중략) 뛰어난 사람일수록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고 든다.”
비록 실수할지언정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성과가 있다는 게 드러커 철학의 핵심이다. 이것을 믿고 호도고 선수들은 대담한 전진 수비를 훈련한다. 선수 전원이 원래 위치보다 두세 걸음 앞으로 나와 공격에 맞선다. 전진수비를 하면 타구가 빨리 도달해 처리하기 어려워진다. 실책을 범할 확률도 높다. 그러나 선수들이 더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고, 그것이 몸에 익었을 때 결과적으로 탁월한 수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놀랍게도 교토국제고는 고시엔 본선에서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 전국 최강 팀들과 6경기를 치르는 동안 이 학교가 3점 이상을 내준 건 단 한 번뿐이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매번 빈틈없는 수비로 상대 공격을 틀어막았다. 결승전 당시 승부치기 끝 2대 1 승리를 만들어낸 것도 수비의 힘이었다.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은 우승 후 언론 인터뷰에서 “좁은 운동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내야 수비 훈련에 집중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만약 고교야구’에 등장하는 드러커 저서의 한 대목을 보자. “(사람은) 약점이 없을 수 없다. 약점만 지적당하면 사람들은 의욕도 잃고 사기도 떨어진다.” 대신 드러커가 주목하는 것은 장점이다. 역시 ‘만약 고교야구’에 등장하는 드러커 저서 ‘매니지먼트’의 인용이다.
“사람을 매니지먼트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은 약하다. 가련하리만치 약하다. 조직의 목적은 사람의 장점을 생산으로 연결하고, 그 사람의 약점을 중화시키는 것이다.”
교토국제고 매니저는 바로 이 일을 해냈다. 중학교 시절 ‘외인부대’에 머물던 제자들을 이끌고, 작은 구장 같은 환경적 ‘약점’을 극복하며, 고시엔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둬냈다. 그 승리의 서사가 ‘만약 고교야구’ 소설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미나미의 팀은 고시엔 본선에 진출했을까. 지금 책을 펼치고 그 답을 찾아볼 일이다.
8월 23일 교토국제고가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별칭 고시엔) 우승을 차지했고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교가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눈에 띈 건 선수들이다. 감격에 겨워 노래하는 어린 소년들. 교육부 재외교육기관 포털을 보면 교토국제고는 전교생이 137명이다. 딱 절반인 68명이 남학생, 그 중 61명이 야구를 한다. 명실상부 야구에 미친 학교다.
야구팀원 대부분은 애초부터 야구를 하려고 이 학교에 왔다. 그러나 엘리트 선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학 시절 최정상급이었다면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터다. 교토국제고는 야구에 최적화된 환경이 아니다. 운동장부터 작다. 홈플레이트에서 중앙 펜스까지 거리가 약 70m. 미국 메이저리그가 권장하는 400피트(약 122m)에 턱없이 못 미친다.
관련 예산도 넉넉하지 않다. 찢어진 야구공을 버리지 못하고 테이프로 친친 감아 훈련에 사용한다. 야구가 좋지만 야구 명문에 진학할 여건은 안 되는 학생들. ‘공포의 외인구단’ 속 까치 같은 친구들이 이 학교에 모였다. 그들이 똘똘 뭉쳐 고시엔 우승기를 들어 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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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제고 우승 이끈 탁월한 매니지먼트
전문가들은 교토국제고 승전보의 배경에는 야구를 향한 청년들의 열정, 그리고 탁월한 매니지먼트의 힘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야구는 인기 스포츠 가운데 드물게 감독을 ‘매니저(manager)’라고 부르는 종목이다. 우리말로는 모두 감독이라 하지만, 농구, 배구, 럭비 등 다른 스포츠 지도자 명칭은 ‘헤드코치(head coach)’다. 코치의 주된 역할이 기술 전수라면, 매니저는 조직 관리 쪽에 좀 더 방점이 찍힌다.
야구는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가 승패를 좌우하기 힘든 구조다. 제 아무리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라도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분의 1에 불과하다. 한번 배트를 휘두르고 나면 동료에게 타석을 넘겨줘야 한다. 야구 승패에 매니지먼트가 미치는 결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책으로 소설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이하 ‘만약 고교야구’)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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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인공은 아픈 친구를 대신해 고교 야구팀 매니저를 맡게 된 여고생 미나미. 그가 몸담은 호도고 야구팀은 20년 전 딱 한번 고시엔 지역예선 16강에 진출한 게 최고 성적인 만년 하위팀이다. 성과가 없다 보니 선수들은 의욕 상실 상태라, 연습 일정을 잡아봤자 4분의 1이 나올까 말까다. 그러나 미나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호도고 야구팀을 고시엔 본선에 진출시키겠다고 마음먹고, 실천 수단으로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뽑아든다. 미나미가 드러커의 경영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지리멸렬하던 야구팀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과정이 이 소설의 큰 줄기다.
드러커 경영학을 현실로 보여준 교토국제고
청춘소설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진지함이다’ ‘변화를 원할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라’, ‘관중을 움직이는 것은 감동이다’, ‘사람의 장점을 살려 조직을 움직여라’ 같은 드러커 경영 철학이 원문 그대로 제시돼 시선을 붙든다.
드러커는 세계적 경영학자로, 국내외 유명 CEO들의 ‘경영학 스승’으로 불린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또한 드러커 저서를 탐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2019년 현대차그룹 임원과 팀장급 직원 전체에게 드러커 책을 선물했고, 최근 사원들과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자신의 경영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드러커를 꼽았다.
그렇다면 드러커의 경영 철학이 어떻게 야구팀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만약 고교야구’의 한 대목을 보자. 고시엔 예선에 진출하며 호도고 야구팀이 세운 수비 전략은 ‘실책을 두려워하지 않기’다. 미나미는 이렇게 말한다.
“야수가 실책을 범하는 건 별 문제가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실책은 어차피 나오게 되어 있다. 중요한 건 실책을 범해도 움츠러들지 않는 것이다. 실책을 저지를까 봐 두려워 소극적인 수비를 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판단의 배경에 있는 것이 바로 드러커 경영학이다. 드러커는 저서 ‘매니지먼트’에 이렇게 썼다.
“실수나 실패를 모르는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무난한 일, 별 볼 일 없는 일만 해온 사람들이다. (중략) 뛰어난 사람일수록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고 든다.”
비록 실수할지언정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성과가 있다는 게 드러커 철학의 핵심이다. 이것을 믿고 호도고 선수들은 대담한 전진 수비를 훈련한다. 선수 전원이 원래 위치보다 두세 걸음 앞으로 나와 공격에 맞선다. 전진수비를 하면 타구가 빨리 도달해 처리하기 어려워진다. 실책을 범할 확률도 높다. 그러나 선수들이 더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고, 그것이 몸에 익었을 때 결과적으로 탁월한 수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놀랍게도 교토국제고는 고시엔 본선에서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 전국 최강 팀들과 6경기를 치르는 동안 이 학교가 3점 이상을 내준 건 단 한 번뿐이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매번 빈틈없는 수비로 상대 공격을 틀어막았다. 결승전 당시 승부치기 끝 2대 1 승리를 만들어낸 것도 수비의 힘이었다.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은 우승 후 언론 인터뷰에서 “좁은 운동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내야 수비 훈련에 집중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만약 고교야구’에 등장하는 드러커 저서의 한 대목을 보자. “(사람은) 약점이 없을 수 없다. 약점만 지적당하면 사람들은 의욕도 잃고 사기도 떨어진다.” 대신 드러커가 주목하는 것은 장점이다. 역시 ‘만약 고교야구’에 등장하는 드러커 저서 ‘매니지먼트’의 인용이다.
“사람을 매니지먼트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은 약하다. 가련하리만치 약하다. 조직의 목적은 사람의 장점을 생산으로 연결하고, 그 사람의 약점을 중화시키는 것이다.”
교토국제고 매니저는 바로 이 일을 해냈다. 중학교 시절 ‘외인부대’에 머물던 제자들을 이끌고, 작은 구장 같은 환경적 ‘약점’을 극복하며, 고시엔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둬냈다. 그 승리의 서사가 ‘만약 고교야구’ 소설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미나미의 팀은 고시엔 본선에 진출했을까. 지금 책을 펼치고 그 답을 찾아볼 일이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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