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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숨은 명산 칠보산] 눈앞에 펼쳐진 명사십리 푸른 바다

하나님아들 2024. 7. 16. 23:51

[경상도의 숨은 명산 칠보산] 눈앞에 펼쳐진 명사십리 푸른 바다

입력2024.07.16.
 
산 정상에서 바라본 동해, 가운데 고래불해수욕장.
마른 하늘에 후드득 소나기 잠깐 내려 풀잎마다 이슬방울처럼 빗물이 동글동글 맺혔다. 산과 나무와 꽃들, 구름까지 거꾸로 달려서 알알이 떨어진다. 잠시 생긴 물빛 풍경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고즈넉한 칠보산 오후의 산길, 유금사로 가는 소나무 아래 '개구리 바위'가 나그네 발길을 붙잡는다.

칠보산七寶山(810m)은 경북 영덕군 병곡면 금곡리, 낙동정맥의 동쪽 끝자락에 있다. 정상에 서면 고래불해수욕장, 명사십리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철·구리·산삼·더덕·황기·돌이끼·멧돼지의 일곱 가지 보배로운 것이 있다 해서 칠보산, 옛날에는 등운산騰雲山으로 불렸다.

동해안 7번국도에서 5km쯤 들어가야 한다. 깊은 산중에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산으로 100년 된 소나무가 많다. 우거진 숲과 그늘이 시원해서 여름 산행에 딱 좋다. 칠보산자연휴양림과 유금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하는 데 각각 7.2km, 4시간 남짓, 5.9km, 2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개구리 바위.
개구리 바위와 우거진 숲

"옛날 마을을 지키는 개구리 입 모양의 바위가 있었는데 산길을 내려고 사람들이 바위를 깨뜨리니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며 천둥과 벼락이 쳐 급히 바위를 붙여 놓았다고 한다. 외딴 산중 밤길에도 이 바위만 지나면 산짐승들이 따라오지 않아 영험한 바위로 불린다."

개구리 바위를 두고 가려니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꽃이 쉽게 놓아 주지 않는다. 조금 지나 아래는 금곡3리 주차장과 500m쯤 버스정류장, 오후 3시 인적 없는 유금사에 닿는다. 산행은 여기서 시작한다. 유금사는 사찰이라기보다 아담해서 절집이라 부르는 것이 오히려 정감이 간다. 삼층 석탑을 한참 바라보다 경내를 나와 산길을 따라간다. 두 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오르는데 등산 리본이 반갑다. 우거진 숲에는 쪽동백·생강·싸리·쇠물푸레·산벚·국수·당단풍·굴피·붉·소나무. 쪽동백나무 잎이 넓다. 이름 모를 산새며 풀벌레 소리, 뻐꾸기 소리는 발길을 따라온다. 호젓한 초록의 숲길은 걸을수록 향기롭다. 15분 정도 걸어서 임도와 서로 합해지는 합류 지점. 티끌이 들어 등산화를 터는데 발아래 개미들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새로 만든 임도 길섶으로 귀룽·낙엽송·물오리·오동·누리장나무. 아름드리 소나무는 시원하게 뻗었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바위길.
임도만 믿고 걸었다가 정상으로 접어드는 길이 없어 되돌아선다. 15분가량 내려오다 노란 리본 등산길 겨우 찾았는데 오후 3시 50분, 지금부터 본격적인 산행이다. 낙엽이 켜켜이 쌓인 밀림 같은 지그재그 숲길을 나뭇가지로 거미줄 걷으며 올라간다. 피나무, 까치박달나무는 잎이 선명하고 곱다. 곳곳에 소나무 고목들이 집중호우에 넘어져 길이 막혔다. 나무 밑을 엎드려서 유격훈련 하듯 겨우 지난다. 물푸레·굴참·굴피·싸리·소나무, 당단풍나무 초록 잎은 하늘을 덮었고 쪽동백·생강나무 이파리는 손바닥처럼 크다.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상층목을 이루고 생강·쪽동백나무가 중간층, 하층식생은 쇠물푸레·철쭉·꽃싸리가 대부분이다.

칠보산 정상.
고래불과 삼은三隱, 일곱 가지 보배산

오후 4시 10분, 산 아래는 햇볕이 쨍쨍한데 동북 사면에는 산그늘이 벌써 내려왔다. 노린재나무 아래는 우산나물, 병꽃나무는 꽃이 떨어졌고 좀작살나무 꽃봉오리는 좁쌀처럼 맺혀 며칠 지나면 필 것 같다. 능선 가까이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데 발아래 둥굴레 군락,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인다. 드물게 천남성이 자라는 이곳은 넓고 깊은 산중이다. 오후 4시 40분, 능선길 합류 지점(칠보산 0.6·유금사 1.2·칠보산휴양림 3km). 왼쪽으로 내려가면 칠보산자연휴양림, 오른쪽이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칠보산 자락에 자리 잡은 휴양림은 동해의 일출을 바라볼 수 있어 해맞이 휴양객들이 많이 찾는다. 잠시 헬기장 지나고 평지 같은 능선길에는 떡갈·미역줄·신갈·병꽃·생강·까치박달·산뽕·피나무. 10분 지나 정상에 닿는다.

유금사.
칠보산 정상(810m)에는 노송 한 그루가 바다를 바라보고 섰다. 산 아래 병곡마을, 파도와 모래밭, 송림, 고래불해수욕장, 상대산, 대진해수욕장. '고래불'은 이 지역 출신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이 '고래가 노는 불'이라 해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유년 시절 영해의 상대산에 올랐다가 고래가 하얀 물을 뿜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이라 불렀다는 것. '불'은 강원·경상 해안지방의 '모래밭, 모래 해안·해변'을 뜻하는 방언으로 여겨진다. 이색은 고려 말 문신으로 한산 이씨,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이다. 세 사람 호號에 은隱 자가 있어 삼은이라 불렀다. 이성계 일파가 세력을 잡자 협조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멀리 아득한 수평선 바라보며 토마토, 오이 한입으로 잠시 쉬고 있는데 땀에 옷이 젖어선지 선듯하다. 칠보산은 중국사람 두사충이 이곳의 샘물을 마시고 "보통 물맛과 다르니 이 산에 일곱 가지 귀한 물건이 있다"고 말해 찾아보니 철·구리·산삼·더덕·황기·돌이끼·멧돼지 등이 나와 칠보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두사충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도와 조선으로 와서 귀화한 장수다. 실제 칠보산 아래 샘물이 있었는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오래도록 기우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칠보는 불교의 일곱 가지 보배다. 경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금·은·청옥·수정·진주·마노·호박을 가리킨다. 칠보산 이름은 이곳 영덕 칠보산(810m), 경기도 수원(238m), 전라북도 정읍(469m), 충청북도 괴산(778m)을 비롯해서 북한에도 있다.

칠보산 숲길.
유금사 이야기와 햇무리 여름 냄새

오후 5시쯤 너무 늦으면 땅거미 질 것 같아 빠르게 내려간다. 15분 지나 다시 유금사 갈림길, 눈을 내려보니 나뭇잎 사이로 절집이 보인다. 유금사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 자장이 지은 비구니사찰로 불국사 말사다.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석탑이 있다. 유금마을에 지었다 해서 유금사有金寺로 불렸다. 마을 이름 또한 금곡金谷 이니 "손으로 주울 정도로 금이 많았다"는 말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조선 중기까지 승려가 수십 명 있었으나 점차 퇴락하게 된 연유는 이렇다.

"어느 날 주지가 불국사 법회를 마치고 오는데 절 앞의 용소龍沼에서 교미하는 용을 보고 꾸짖었는데 천둥과 벼락이 떨어져 절이 없어졌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옛날 유금사에 중이 죽는 일이 잦았다. 새로 온 도승이 근처에 있는 석굴에서 지네를 발견하곤 법당에 앉아 합장한다. 밤중에 갑자기 벼락 치는 소리가 들리자 스님은 도술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이튿날 석굴 안에 큰 지네 한 마리가 죽고 나서부터 불상사가 없어졌다"고 한다.

난티개암·물푸레나무에 옷깃을 스치며 어두워지려는 숲속을 내리 걷는다. 임도까지 내려오니 5시 40분. 저녁놀과 산안개가 어우러져 햇무리 진다. 햇무리나 달무리 지면 비가 온다고 했으니 내일 모래는 비가 내릴 것이다. 해와 달은 일기예보를 하지만 놓치고 사는 것이 사람들이다. 5시 50분 두 갈래 갈림길, 흙과 나무와 다락 논물 냄새, 사람들에게 밟히고 베어진 풀내음, 초록의 자연이 만드는 여름 냄새다. 오후 6시 무렵 유금사. 논틀밭틀, 미나리꽝 지나 다소 빠른 걸음으로 3시간 정도 걸렸다.

산행길잡이

유금사(등산 기점)~유금치 능선(이정표, 바로 위에 헬기장)~정상~유금치 능선~유금사(왕복)

※ 대략 5.9km, 2시간 50분 정도(임도에서 유금치 능선 오르는 길 불분명, 주의 필요). 칠보산자연휴양림에서 오르는 것이 거리는 멀지만 안전하다.

칠보산자연휴양림.
교통

고속도로 상주영덕고속도로(영덕 IC), 동해고속도로(근덕 IC), 중앙고속도로(영주·풍기 IC)

국도 동해안 7번국도, 36번국도

※ 내비게이션 → 유금사(경북 영덕군 병곡면 유금길 208-5) 입장료, 주차장 무료 → 칠보산자연휴양림(경북 영덕군 병곡면 칠보산길 587)

숙식 영해·병곡·후포, 영덕 시내 다양한 식당과 모텔, 여관 등이 있음

영리 솔숲.
주변 볼거리 고래불해수욕장, 영해 괴시리 목은 이색기념관, 칠보산자연휴양림(근처 영리 솔숲), 신돌석 장군 유적지, 후포항구, 백암온천 등.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김재준 '한국유산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