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창조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들
1) 창조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나 근본 원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창조에 대한 설명은 완전히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단언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2) 하나님은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다. 세상은 별개의 존재지만 언제나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7). 물질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범신론에서는 물질이 하나님이다. 이원론은 하나님과 물질이 영원하다고 한다. 세상은 또다른 조물주인 적대적인 영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3) 창조는 그분의 영광에 따른 자유로운 행동이었으며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4) 창세기에는 하나의 창조기사만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1장과 2장4절이하에 서로 다른 기사가 절대 존재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내력이니”라고 시작하고 있다.
2. 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창조는 삼위 하나님의 역사다. 일반적으로 창조는 성부께서 하신 일로 여겨지지만, 성경은 성자의 일임을 말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요1:3). 창조는 또한 성령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2) 시간은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
3) 창조에 관련되 성경의 용어. ① “바라” 기존의 선재하던 물질의 도움 없이 만드는 것. 창 1장에서 단 세 번만 사용. 1:1(천지), 21(동물), 27(사람). ② “아사” 이미 존재하는 물질로부터 준비하는 것, 창조의 날들에 하신 일. 1:7,16,25,26,31. ③ “야찰” 선재하던 물질로부터 만들어내는 것. 2:7,
4)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의 관계. ① 한 과정의 두 단계라는 설. ② 두 구절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설.
1절은 원창조. 사탄과 천사들이 살았을 하늘과 땅의 창조. 그후 천사들의 타락으로 재앙과 파멸이 이르렀다. “혼돈하고 공허하며”는 황무함과 파멸을 시사한다.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 엎으시고”(사24:1).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렘4:23). 지질학상의 지층문제를 해결해 준다.
3. 창조의 세부 사항
1) 창조의 날들.
첫째 날, 빛 창조. 빛과 어둠이 나뉘고 낮과 밤이 형성. 빛은 빛을 내는 창공, 또는 전기를 의미하는 것 같으며, 해는 빛의 전달자이다.
둘째 날, 위의 물과 아래 물을 나눔. “위”는 구름, “궁창”은 드넓은 공간을 말함.
셋째 날, 바다와 마른 땅의 나눔. 초목으로 이루어진 식물계가 생김. 풀과 씨맺는 채소, 씨가진 열매로 구성되고, “각기 종류대로” 생김. 종(種)들이 각각 분리되어 있으며 진화되어 나온 것이 아님을 의미.
넷째 날, 빛의 전달자인 해와 달과 별의 창조.
다섯째 날, 새와 물고기의 창조. “그 종류대로” 강조.
여섯째 날, 먼저 동물 창조. “그 종류대로” 강조. 사람의 창조. 처음 세 날과 다음 세 날간의 유사점.
첫째 날 | 넷째 날 |
빛의 창조 | 빛의 전달자의 창조 |
둘째 날 | 다섯째 날 |
궁창의 창조와 물의 분리 | 궁종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창조 |
셋째 날 | 여섯째 날 |
물과 마른 당의 분리 인간과 짐승이 살 땅 준비 |
땅의 짐승가 육축, 기는 모든 것과 사람을 창조 |
2) “날”의 의미
① 스물 네 시간이라는 설. 히브리어 단어의 일차적 의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문구의 중요성.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출20:8,11) ② 장기적인 기간이라는 설. 특히 앞의 세 날. 동일한 단어가 불확정적인 시간을 의미. “재난의 날”(렘51:2). “여호와의 날”(사13:6, 욜3:14).
4. 창조와 현대과학
1) 창조 교리와 확증된 과학적 사실은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문제의 대부분은 오류를 사실로, 가정을 진리라고 고집한다는 사실 때문에 발생한다. 단순한 가정과 의견에 불과한 것들이 과학인 것처럼 가장하고, 성경적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이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세기를 생명 및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이집트와 바벨로 문헌의 기사들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그것들은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런 신화와 미신, 과장과 저속한 진술들이 나와 있다. 욥기에 벌써 지구가 하나의 구(球)라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26:7) 하나님 자신이 계시하신 것이다. 그것은 최신 정보요 현대과학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순서가 현대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순서와 일치한다.
혈액형은 네 가지, 인류는 네 가지 집단으로 분류하는데 단 두 명의 사람에게서 유래함이 금세기에 밝혀졌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행17:26).
지질학적 문제에 답하는 방식 중 하나는 1절과 2절 사이에 간격이 있다고 보는 것. 대부분의 난점에 답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타락 자체가 커다란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는 가정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지층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일이 홍수 때에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만이 정직하고 안전한 태도이다. 이론과 사실, 가설과 증거의 차이를 언제나 주의 깊게 구분해보아야 한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사실들이 우리 앞에 제시될 때 그 사실들을 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몽매주의(사실에 어둡고 어리석음)의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실이 우리를 곤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결코 사실들을 꾸며 내려 해서는 안되며, 명백히 사실이 아닌 이론들을 주창해서도 안 된다. 사실 과학자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고집 센 집단이다.
교조주의는 설교단에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실험실과 라디오, 책들에서도 교조주의를 만날 수 있다.
2) 창조와 진화의 문제. 많은 젊은이들이 학교와 대학, 그 외 여러 곳에서 마치 진화가 한 점 의혹의 여지도 없이 입증된 것인 양 배워왔다. 진화의 정의는 생명은 스스로 발생한다는 것. 생명은 그 자체가 힘과 능력이며 이미 존재하는 유형으로부터 다른 유형을 생산한다. 처음에는 극도로 단순하고 분화되지 않은 존재로 시작하지만 여기서 더 복잡하고 복합적인 존재가 생성된다는 것. 진화론자도 여러 유형. 무신론적 진화론, 이신론적 진화론, 유신론적 진화론 등.
진화는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입증할 수 없다. 서로 일치하지 않는 많은 이론들이 있다. “당신은 진화론 중 어느 분파를 믿는 분인가요?” 물으면 십중팔구 그 사람은 진화론에 하나 이상의 이론이 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중 어느 이론도 모든 것의 기원을 정말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화석들이 종의 불변성을 보여 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종은 언제나 같았다. 새로운 종의 등장은 언제나 완전한 형태로 갑작스러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점진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소위 “빠진 고리”에 대한 증거가 희박하다. 지층 내에서 중간 단계의 증거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빠진 고리는 강력한 논증이다.
제 개인적인 견해. 성경의 영감성과 권위에 대한 믿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과학적인 근거만으로도, 저는 진화론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진화론을 받아들일 때 생기는 난점들이 성경의 기록을 받아들일 때 생기는 몇 가지 난점보다 훨씬 많다. 진화론을 믿는 들라주라는 생물학자, ‘어떤 사람이 순응자인가 아닌가(진화론을 믿는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자연의 역사로부터 추론해 낸 동기보다는 개인적인 철학적 견해에 기초한 동기로 결정된다.’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 견해라는 것. ‘오직 사실만을 근거로 판단한다면 한 종이 다른 종으로부터 형성된다는 것은 전혀 증명되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과학자, ‘다윈주의는 과학이라가 보다는 종교다’. 어떤 사람이 지닌 궁극적 견해의 문제라는 것.
왓슨교수, ‘동물학자들이 진화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진화가 일어나는 것을 관찰했기 때문이거나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는 증거로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유일한 대안인 특별 창조가 분명히 터무니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학술회원, 생물학자가 진화를 공격하는 것은 ‘직업적 자살’이다.
진화론은 일종의 교조주의, 반하나님적 종교이다. 대중 매체들은 반진화론적 견해가 실리는 것을 거부한다. 과학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과 태도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과학적 이론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양보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자. 한때의 이론이나 소위 과학적 견해의 풍조에 의해 우리의 입장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계시된 진리를 굳게 붙들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사실들에 항상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라. 하지만 종종 참된 과학적 정신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사이비 과학적 교조주의로부터는 완전히 몸을 빼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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