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과 사명
하나님말씀 : 에베소서 6:10-12
1. 다음 ‘영적 전쟁의 대상’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는 경건한 사람으로 점점 더 영향력을 미치기 원한다면, 우리의 관심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영적인 전쟁을 말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싸움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고후10:3.참고/고후4:18). 싸움의 방향을 영적인 대상으로 바꾼다면,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다루어 주시되, 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다루어 주실 것입니다. 나를 대적하던 그 사람이 태도를 바꾸거나, 그 사람이 사라지는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내가 전쟁의 대상을 바꿀 때입니다. 영적 전쟁을 할 줄 알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고후10:4). 또 ‘견고한 진’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뒤에 있는 영적인 세계가 갖고 있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고후10:4). 본문은 영적인 전쟁의 대상을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십니다(엡6:12). ‘혈과 육’ 즉 사람과 보이는 것과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움입니다(엡6:12).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보이지 않는 차원의 그 세력,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는 그 세력과 전쟁을 하도록 하나님은 교회를 부르신 것입니다. 영적 전쟁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2. 다음 ‘영적 전쟁의 기반’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두 번째로, 영적 전쟁을 하는 기반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영쟁의 기반을 한마디로 말하면,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마16:13). 사람들이 세례 요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 등으로 말한다고 하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마16:14-15).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하였습니다(마16;16).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예수님의 신분을 말하니다. 정체성Identi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라는 것이 설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입니다. 메시아, 즉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제사장, 왕, 선지자로서 기름 부으심 즉 택함 받은 자임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참고/삼상16:1,7,12-13;마3:16;요6:27;행2:4).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가장 중심이 되는 것 두 가지 ‘아버지’와 ‘보내심을 받은 자’가 40회 이상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 하는 그것과 어떤 사명을 가지셨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면서 사람들로 인해 속이 상해서 잠도 못 주무시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시고, 돈이 없어서 염려에 빠지신 적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에게 가장 안정된 삶, 만족한 삶, 풍요한 삶은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가장 안정된, 만족한, 풍요한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기름 부으심 받은 자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예수-하나님의 아들-신분-관계/예수-그리스도-사명-목적. 사람이 무시를 당할 때 몹시 화를 내는 이유는 자기에게 안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런 지위에 있는 데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에 자신의 신분에 안정을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아들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이나 관계 또는 환경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목적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요17:4).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은 자,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 사명이 있는 자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아버지와의 관계에 안정을 두시고, 그의 사명 때문에 삶의 목적을 두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배워 나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자기 자신의 신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안다면, 어떠한 관계 속에서도, 고독감이나 두려움이 없이 안정과 평온을 유지합니다. 자기 자신의 사명,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안다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은 대담함과 포기하지 않는 추진력을 가집니다.
3. 다음 ‘나는 누구인가?’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누구나 ‘나’에 대한 그림을 갖고 이루려고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만족과 안정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신분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일을 했느냐, 내가 얼마만큼 성취했느냐 하는 것이 나의 안정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또 한 가지 나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사명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분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이 너무도 고귀한 것이기 때문에 순종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이유는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 신분이 누구인지를 안다면 안정감을 얻게 되고, 또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인생의 방향이 정해집니다. 삶의 추진력을 주는 것은 사명을 아는 것이요. 삶의 안정감을 주는 것은 신분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안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사명 안에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4. 다음 ‘교회는 누구인가?’ 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교회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혈육이 아니요’라고 하신 것은 지식과 학력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마16:16-17).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 이 말은 하나님의 영신 성령으로 알게 하신 것말씀입니다(참고/고전12:3). 우리가 전도할 때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 듣는 이들도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계시로만 될 수 있는 것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이 경험과 지식이 아니라, 성령이라고 하시며,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마16:17). 그리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18). ‘너는 베드로라’와 “이 반석 위에”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 반석 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을 한 우리가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의 반석은 베드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를 돌로 지은 건물에 비유한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하나의 ‘돌’인 것입니다. 반석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벧전2:4.참고/엡2:20). 또한, 예수를 믿는 우리도 ‘산 돌’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벧전2:5). 따라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하나씩 하나씩 지어져 가는 부분들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죽은 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산 돌로 바뀌었습니다. 왜 산돌이 되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라는 신앙고백하였기에 산 돌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신앙 고백을 한 우리 각 사람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곳이 교회입니다.
5. 다음 ‘교회의 신분’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4는 교회의 신분은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신분은 성전 모퉁이의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이루어집니다(참고/엡4:16). 이것은 예수님과 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집니다. 주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습니다(갈4:6.참고/막14:36;롬8:15). 그래서 하나님과 ‘코이노니아’koinonia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코이노니아에는 예배가 있고, 말씀있고, 기도가 있고, 성찬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관계로 하나님께 나누는 교제입니다. 또한 주님을 통해 형제 자매로 부르게된 성도들 사이에 코이노니아 교제도 있습니다. 떡을 떼고, 물질을 서로 나누고, 서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참아 주는 것,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것입니다(행2:42). 이이것이 교회의 신분입니다.
6. 다음 ‘교회의 사명’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음부의 권세’에서 ‘권세’는 헬라어에는 ‘대문’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은 사탄이 왕노릇하는 왕국입니다. 그 왕국에 대문이 있습니다. 따라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사탄 왕국의 대문이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원수 마귀의 대문을 공격하여, 원수의 왕국에 공격하여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22:17). 그와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사탄을 방어하는 수동적인데서 벗어나 공경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둠의 왕국, 사탄의 왕국의 대문을 깨뜨리면서, 그 안으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했을 때, 이스라엘이 공격했었고, 가나안 족속들은 힘을 모아 그 문을 굳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가나안 족속들이 동맹을 맺어서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가나안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를 잘 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원수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자기의 땅, 권세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사에 가면 회사에 주의 나라가 임하시고, 학교에 가면 주의 나라가 학교에 임하시고, 시장에 가면 시장에 나를 통해서 주의 나라가 학장되어 가게 하소서”하고 기도합시다.
공격하는 사람, 원수의 대문을 깨뜨리는 삶, 그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하실 때,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삶입니다. 이같이 교회는 사탄의 왕국을 공격하는 것이 그 사명입니다. 즉, 교회는 모여서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나가서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6). ‘앉히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미 ‘앉히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세를 그 발 아래 복종시키는 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세상의 삼킬 것 같은 권세들 밖에 없어 보이지만, 나의 지금의 위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자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며 예수의 권세로 그것을 결박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자리에 우리를 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인 우리가 할 일입니다. 창립기념감사예배와 위임식 및 임직식에 이러한 능력을 구합니다.
7.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예수님은 신분 하나님의 아들, 사명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을 누리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의 사명은 하나님의 섬기는 것이다. 이 두 가지에 나의 인생에 안정을 얻고 방향을 정하게 하옵소서.
②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성도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예배와 말씀과 기도에 더욱 전력하게 하옵시고, 예수님과 관계를 통해 형제와 자매로 부르고, 서로 위로하고 참아주고 나눠주는 서로 사랑으로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③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을 방어하는 수비적인데서 벗어나 공격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나를 통해서 임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신 것처럼 나를 통해서,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내가 있는 교회와 가정과 기업에 나를 통해 악이 패퇴하고 주의 나라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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