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문 !!

기도의 비밀

하나님아들 2024. 5. 3. 20:36

기도의 비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기도에 대한 문제는 흔히 많은 사람들에게 곤혹케 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하다면 기도하는 것이 무슨 의의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 거짓된 주장으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연유된 까닭에 우리가 전적으로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의미를 이해하든지 못하든지 기도하라는 분명한 계명을 대할 때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우리는 결코 계명과 다투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정하실 뿐 아니라 목적에 이르는 수단들도 정하신다. 태양을 주시고 비를 주시고 열매를 얻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농부들이 밭을 갈고 땅을 파도록 정하셨다는 것을 안다. 여기서 기도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궁극적인 영광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정하시고 결정하신 방편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방식이다. 주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에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주님께서 기도하셔야만 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욱 더 그것이 필요했을 것인가? 불행히도 은혜의 교리를 거의 분명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조차도 기도를 쉬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도의 교훈에 대해서 바로 이해하면 그전보다 더욱 더 기도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다. 사도의 류에 속한 교사들은 수 세기에 걸쳐서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둘째, 모든 사람에게 기도하라고 충고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이다. 성경에서는 성령께서 기도의 문제에 있어서 불신자들을 도우신다는 가르침이 어느 곳에도 나와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듣지 아니하신다”(요9:31). 오늘날 유행하는 개념은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즉각 기도부터 하라고 말해야 된다는 개념이 있다. 위기를 만났을 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든지 어느 때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어야 한다.

 

먼저 우리는 그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첫 번째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감을 얻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전에 인도할 어떤 것이나 어떤 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의 전체 메시지이다. 복음의 첫 번째 메시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하심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가 아니면 참된 기도는 있을 수 없다. 히브리서 10장 19-22절에서 발견되는 진수를 생각해 보라. ‘주 예수의 피’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지 않는 것이다. ‘성령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나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실상은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으면서도 기도하고 있다고 상상하게끔 심리적으로 유도하고 기만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셋째, 가장 고차원적이고 참된 기도의 형태는 탄식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거짓된 추론이다. 흔히 마귀는 전혀 기도에 참석한 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의 훌륭한 핑계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기도를 보라. 시편은 거의 기도들이고, 그 시편들은 말로 되어 있고, 매우 훌륭하고 아주 웅변적이다. 선지자들의 경우도 말로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간청하고 하나님께 이치를 수리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논증을 사용한 것을 보게 된다(사 63:15, 64:1-2).

 

사도의 가르침은 예외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때에, 환란과 시련에 빠져 있을 때에 우리는 탄식하거나 신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아버지께 말해야 되며, 아버지와 교제해야 되며,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기도이고, 그것이 참된 예배이다.

 

마귀가 이 점에서 우리를 속여서 우리가 기도할 때 자유로움을 가지지 못하고 기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위대한 영성의 표지라고 느끼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신령할수록 더 기도할 것이고, 기도에 있어서 더 큰 자유를 알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더 큰 해방과 더 큰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덧붙여 탄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 적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표지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되는 체험이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참된 복락의 성격을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이 탄식과 신음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기도에 관한 일반적인 원리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 - 성령의 중보는 우리가 ‘극한 상황’ 에 처해 있을 때 최종적인 위안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부터 출발해서는 안 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첫째, 여러분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떠한 분이신가를 인식하는 일부터 하라. 사도행전 4장 23-31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크게 위협을’ 받았고 ‘만물의 마지막’을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처지들 가운데서 “저희가 듣고 열심히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그들은 기도했다. 그들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서 출발을 했다. “대주재요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이시오” 여러분의 당황함이 어떠하다 할지라도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라도 모든 영광과 찬미를 다 그에게 드리라.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바를 행함으로 시작하라.

 

둘째, 신령한 간구들은 언제나 옳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나라의 성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더 많은 지식을 위해서 기도 하는 것,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기 위한 기도는 언제나 안전하다. 그러한 기도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쁘신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 앞에 수리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하나님 앞에 아뢰라. 성경을 인용하라. 그 아버지로 하여금 약속하셨던 것을 생각나도록 하는 것을 아버지가 반대하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거기에 대해서 주저할 필요가 없다.

 

넷째, 단순히 개인적인 간청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큰 주의와 조심을 해야 된다. 우리는 모세의 경우나 바울의 경우에서 그것을 보았다. 시편 106편 15절에 무서운 경고가 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특별하고 개인적인 물질적 요구 사항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괴롭힌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것을 가지도록 허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심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여러분의 최고의 바램임을 말씀 드리라. 그렇게 한 다음에 요구사항을 아뢰라. 여러분의 요구사항은 오직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의탁하는 것이라고 아뢰라. 그런 다음에 여러분의 간구 내용들을 하나님께 아뢰라. 여러분은 여러분 속에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있는 줄을 절대적으로 확인하라. 만일 여러분이 평강을 누리고 있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다섯째, 하나님께 어떤 것을 주장한다든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의 것을 요청하거나 명령조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두려움과 경건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질병치료도 사랑하는 사람의 구원도 심지어 부흥도 주장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이러해야 됩니다. 그러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입장에 빠지지 말라.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라.

 

여섯째, 당혹한 입장에 처하여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옳은 것이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은 우리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알지 못하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겸손한 죄인의 신음을 좋아하신다. 자기 속에 성령의 간구하는 사실을 즐거워하는 겸손한 죄인의 탄식을 좋아하시는 것이다.

 

일곱째, 때때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어떤 기도를 넣으시고 우리 생각에 어떤 기도를 하게 하신다. 그것을 주시면서 그 기도가 응답받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경우의 기도가 있다. 사도행전 3:4-6에서 베드로는 어떤 체험을 하거나 위대한 믿음을 일으키려고 노력하지 안 는다. 베드로는 하나의 임무를 부여 받았던 것이다. - “주목하여 가로되” - 사도들은 결코 미리 자기들이 이적을 행하겠노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그것을 받게 될 때 절대적으로 그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또 명령에 의해서 임무가 주어진 것이기에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그것은 ‘믿음의 기도’이다(약5:15, 막11:24). 그것은 자신을 설득시키거나 ‘스스로 어떤 일을 일으키려는’는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 절대적인 확신이다. 그 기도가 복되신 성령께서 친히 주신 것이고 그 기도에 대한 확신이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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