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문 !!

기도의 신학

하나님아들 2024. 5. 7. 13:59

기도의 신학

 

1. 기도로서 예배

 

1) 광역의 의미로서 기도

칼빈은 예배를 위한 예식서를 “The Form of Church Prayers"라고 불렀다. 우리의 모든 예배는 기도의 문맥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한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교제로서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만찬으로 자신들을 우리에게 주시며, 우리는 감사와 찬양과 간구로 그 하나님께 반응한다.

기도의 핵심이 하나님과의 교제라면 기도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하나 됨의 교제를 추구한다. 우선적으로 그분에 합당한 경배와 찬양과 감사와 간구를 드리면서 말이다. 기도로서 공동체의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전 삶의 중심부이며, 원천이 된다(the center and source of the whole life of the church). 주중의 삶은 바로 이 주일의 예배에로부터 나오며 연계되어지며 연속선상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2)좁은 의미로서 기도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로서 하나님의 계시와 이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되지만, 좀 더 좁은 의미로 들어오면 기도는 인간의 반응 전체가 기도가 된다. 이 인간의 반응으로 기도는 또한 읊조리는 기도’(spoken prayer) 불려지는 기도’(sung prayer)로 구분할 수 있다. 초대 교회 예배에서는 기도와 노래를 분리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둘 다 시적 운율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노래하는 자들은 기도를 두 번하는 자들이다고 말한다. 따라서 기도에는 크게 읊조리는 기도 불려지는 기도를 구분해서 전자를 공적 기도로 후자를 찬양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것이다.

 

2. ‘읊조리는 기도로서 공적 기도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자들의 어울림이며, 특히 공적 예배 (Public worship)는 하나님을 맞이하는 예전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배가 우리를 위한’(pro nobis)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 예배에로 하나님이 부르신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신 성삼위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를 위한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진실된 감사와 감격으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게 된다.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께 대한 최상의 경배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해 우리가 지녀야 할 합당한 마음 자세이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최상의 경배로서 우리의 기도들은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최상의 흠이 없고 깨끗한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께 합당한 제사를 드리듯이, 우리는 최상의 기도로 준비해서 하나님께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 한다.

 

1) 기도는 예술이어야 한다.

설교에도 예술이 있는 것처럼, 기도를 인도함에도 예술이 있다. 예술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이라면, 우리는 시편이라는 기도가 얼마나 예술적인지를 잊어버리고 있다. 예술이라고 함에는 그만큼 정교하게 다듬는 노력과 정성이 담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기도를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에서부터 그리고 개혁자들에게 공적인 기도는 쓰여진 기도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쓰여진 기도문에 대해서 성령의 역사를 제한해 버린다는 이유로 청교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즉각적인 기도로 바꾸어 버렸다. 요즘 이런 즉각적인 기도는 다시금 쓰여진 기도로 바뀌어 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즉각적인 기도는 개인의 신앙고백적인 기도로서 공적 기도라기 보다는 사적인 기도의 패턴으로 흘러가 버렸으며, ‘내용에도 깊이가 없었고’, ‘성숙하지 못한 기도였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적인 기도를 위해서 훈련받지 않은 기도는 언어와 생각에 너무나 이기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도는 배워야 할 예술로서 기도의 훈련이 요청된다.

 

2) 청교도들의 공적 기도의 중요성

 

청교도들에게 인도자가 올바르고도 깊이 있는 기도로 인도함은 공적인 예배를 집행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다. 윌리암 퍼킨스(William Perkins) 16세기 가장 뛰어난 청교도 신학자로서, 사역자는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처럼 두 가지 기능들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쳤다.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 앞에 백성들의 필요를 올바르게 내어 놓는 것이다. 퍼킨스는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들의 기도 사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했다. 퍼킨스가 보았듯이, 기도는 설교가 요구했던 것과 같은 분별과 영감의 선물들을 요구했던 예언자적 사역이었다.

이러한 공적인 기도는 예배에서 설교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설교가 백성들에게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공적인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들의 중심을 드리는 백성들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라더스(Broadus)는 기도들은 공적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프리맨(Elmer S. Freeman)이라는 목사는 이 공적인 기도를 소홀히 여기거나 가볍게 여기는 목사는 그의 공적 사역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사역자는 그의 설교를 준비하는 것과 같이 기도들을 준비함에 있어서 수고를 해야 한다.

청교도들은 기도의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기도를 위한 훈련에 적극적이고도 강렬했다. 그리고 공적인 기도들에서도 그들은 또한 잘 그리고 열정적으로 준비했다. 청교도 사역자들은 공적인 기도를 인도하기 위한 준비를 함에 있어서 먼저 개인적인 기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성경의 기도들을 연구함으로써 준비해 나갔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매우 주의스럽게 관심을 지녔다. 아브라함, 모세, 한나, 엘리야, 바울 등의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로부터 기도의 예들을 수집했다. 이런 연구에 중요한 안내서 역할을 하는 것이 매튜 헨리의 기도의 방법(method of prayer)이었다.

주중에는 사역자가 주일날 인도하기로 했던 기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기도는 잉태되어지고 있었다. 공적인 기도는 그 즉시의 영감에 만족하도록 내버려지지 않았다. 기도에 대한 영감은 그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감은 경작되어야 했다. 모든 주중의 날을 사역자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해서 기도는 주중에 준비되었고, 쓰여졌으며 노트만으로 기록되어 있든지 깊게 잘 준비되고 있었다.

 

3) 성경으로부터 기도의 언어와 심상들을 배움.

 

초대 교회 예배의 기도서들은 아름답고 웅장하며, 깊이 있는 내용의 기도들로서 채워져 있다. 공적 기도를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성경에서 기도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는 기도가 주로 간청, 고백, 그리고 탄식의 기도들이 있다. 이런 기도를 어떤 언어를 집어넣어서 그에 합당한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를 성경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기도의 모본이 성경에 나와 있다. 성경의 기도들은 어떻게 기도의 경험이 펼쳐지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기도는 항상 같지가 않고 다른 상황들에서 다른 형태의 기도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우리에게 놀라운 기도의 유형을 제공해 주고 있다. 시내산에서 모세의 기도는 또한 중보 기도의 좋은 예를 제공해 준다. 자신이 개척해서 세운 교회들에 대한 바울의 기도는 우리가 본받아야할 깊은 기도들이다. 시편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기도의 보고이다. 우리는 시편으로부터 기도를 배워야 한다. 기도의 언어와 심상들이 시편에 포괄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3. 예배에서의 기도들

 

1) 기원 (Invocation)

기원은 예배에서 심오하게 성경적인 형식이다. 문학적인 형식의 표준으로 볼 때, 시편에서 기도들은 정상적으로 기원과 함께 시작한다. 이 기원은 기도가 향하는 하나님을 부른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예배를 시작하는 기도로서 기원을 정의한다. 라틴어 말 invocare는 기도에서 호소하다 또는 불러 일으키다라는 뜻이 있다. 기원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예배가 성삼위 중심적인 예배로 나아가야 할 것을 주지시켜 준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이 예배에 임재하시면서 예배의 주가 되도록 호소하는 것이다.

문학적인 형식으로 기원을 작성함에 있어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 가장 근저에 기독교 기원은 아버지, 당신의 아들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소서이다. 이것이 기원의 핵심이다. 이런 기원의 기본적인 형식은 세 개의 근본적인 부분들로 구성됨: 첫째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분의 임재를 요청함; 둘째로,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속성을 나열; 셋째로, 그가 우리의 예배를 받아달라는 요청; 그리고 넷째로, 송영으로 기도의 인침이다.

이러한 기원은 전 예배를 한 주제에 집중할 때 연관시킬 수도 있다. 이번 주 예배는 치유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할 때, 찬송(불려지는 기도)도 치유와 관련된 간구의 내용으로 일관할 수 있으며, 기원에서도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여호와 라파!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청종하고 의를 행하며

당신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며 살면

어떤 질병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우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가 되실

것을 말씀하셨나이다.(15:26)

하나님이시여. 누가 하나님 앞에 의로울 자가 있나이까?

우리는 다 죄로 얼룩져 있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니

우리 가운데 임하여 주시옵소서.

치유의 하나님으로 임재하시어

우리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옵소서

우리를 치료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돌리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 삼마’ ‘여호와 이레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시편 124:8)

 

우리의 빛이 되신 하나님!

주님은 어두움의 조그만 그림자도 없으시며,

모든 좋고도 온전한 선물이 주께로부터 오나이다.

 

우리의 빛이 되신 하나님!

주님의 자비에 변하심이 없으시며,

주님의 은혜에 변개함이 없으십니다.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들을 받으시고,

주님의 임재 가운데 당신의 품속으로 우리를 이끄소서.

주님의 영광의 임재 속에서 예배드릴 때,

주님의 영광의 광채를 옷입게 하시고,

이 세상에서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빛들의 주가 되신 하나님,

빛들의 빛이 되신 아들 그리스도,

우리의 마음 안에서 빛의 불을 밝히시는 성령님,

한 하나님께,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송축하나이다.

 

2) 중보 기도 (Intercessory Prayer)

 

(1) 중보 기도의 중요성

Walter Wink 세상은 중보 기도자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John Wesley 하나님은 믿는 기도에 대답하심 이외에는 땅에서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E.M. Bounds 하나님은 기도로써 세상을 만들어 가신다. 더욱 더 기도할수록, 더욱 더 세상은 낳은 세상이 될 것이며, 악을 대항하는 힘들은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의 기도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위대한 일을 이 세상에 나르는 천국의 주된 저장고이다.”

Andrew Murrey, “하나님의 주심은 우리의 구함과 분리할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 오로지 중보로써 교회가 세상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할 그 능력이 하늘로부터 내려올 수 있다.”

 

중보 기도는 교회에서 모든 공공 기도에서 그 중심을 차지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세상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기 위한 중재 사역을 성취하셨다. 이런 성취된 중재 또는 중보 사역을 자신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확장되어 가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이름으로 계속 집행하도록 주신 중보의 사역을 계속하면서 확장해 감에는 바로 이 중보 기도에서이다.

예배의 모임에 함께 오는 이유들의 하나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복음이 확장되며, 사회의 변혁이 일어나며, 그리고 교회가 견고히 세워지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공공 기도와 개인 기도와의 차이점은 공공 기도에서 우리는 한 공동체로서 공동체와 공동체의 관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공 기도에서 개인 기도들이 흘러 나와야 한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가르쳤다. 주님의 기도를 주셨을 때, 이것이 포함된 것들의 하나였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요한복음에서 그의 제사장적인 기도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연합을 위해서, 교회의 성화를 위해서,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서 교회의 계속성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십자가 상에서 그는 자기 주위에 둘러선 모든 사람들, 심지어 그를 처형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는 일꾼들이 수확을 위해서 보내어지도록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

 

(2)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로서 중보기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한 중보 사역을 성취하셨다. 이 성취된 사역을 우리는 중보 기도를 통해서 완성해 가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로서 그분이 이루신 중보 사역, 즉 세상과의 화해를 위해 계속적으로 중보 기도를 통해서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중보 도고의 차이를 말하면서 중보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유일한 기도이므로 우리는 중보 기도를 할 수 없고, ‘도고’(딤전 2:1)의 기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그리 설득력이 없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의 기도이며,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곧 그리스도의 기도가 되어 버린다. 우리의 중보 기도가 따로 있고,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중보기도가 그의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이므로, 그리스도의 기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결코 우리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은 주님의 것이 되면서,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

 

(3) 중보기도의 내용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예배를 순서화하기 위한 방향들을 주면서 디모데에게 ?을 때, 그는 공공 기도의 순서에 관한 특별한 교훈들을 준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 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 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1-4).

 

교회는 여러 세기 동안에 이것이 공 예배에서 우리는 정부를 위해서, 세상에 평화를 보존함에 있어서, 사회의 복지를 위해서,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는 또한 골로새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문이 열려지도록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 4:3).

기독교 예배는 공 예배에서 특히 중보 기도에 강한 강조점을 둔다. 이것은 신약에서와 예수님의 사역에서 자명하며, 초대 교회와 개혁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교회에서 주의 날에 예배에서 주된 기도는 바로 중보의 기도였다. 기독교 예배에서 사용된 기도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초기들의 기록들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모든 권면들을 마음에 새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마의 클레멘트, 져스틴 마터, 그리고 터툴리안으로부터 우리는 공공 기도가 교회와 교회의 연합과 성화, 복음을 전파함, 지도자들과 사역자들, 정부 당국자들, 평화의 보존을 위해서 중보 하는데 상당한 관심을 두었다는 사실을 배운다. 초대부터 교회는 중보의 기도를 매우 중요시 하였다.

4세기에 이르러, 대부분의 교회들은 모인 그리스도인들이 각 예배 시에 기도했던 훌륭한 중보기도 내용들이 발전된다. 4세기의 중반에 안디옥으로부터 나온 Apostolic Constitutions에서 다음과 같은 중보 기도가 나타난다. 얼마를 생략하고 다음과 같다:

 

만유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영원한 평화를 주시도록,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교회를 견고하게 보존하고 유지하시도록,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퍼지는 거룩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교회의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

교회의 장로들을 위한 기도

교회의 평신도들을 위한 기도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을 위한 기도

병자들을 위한 기도

적들을 위한 기도

악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한 기도.

 

중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 중보 기도는 미사에서 사라진다. 개혁자들은 재빨리 이 기도의 형식을 회복했다. 칼빈과 영국 국교회의 크래머에게 영향을 미쳤던 마틴 부쳐는 예배 개혁에서 가장 창조적인 개혁자였다.

중보 기도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 소속된 교회와 세계 교회를 위해서; 사역자들과 사역을 위해서; 모든 불신자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정부 당국자들을 위해서; 시련과 고통 속에 있으며, 또는 특별한 필요가 요구되는 성도들을 위해서이다. 성도들에게 이 중보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 내용은 적절하리라 본다.

 

중보 기도를 준비함에 있어서

이런 내용이 너무나 포괄적이기에 구체적이지 못함으로 기도는 형식에 치우칠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중보 기도를 맡은 자들은 주중에 신문이나 뉴스를 들으면서 나라와 민족,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 지역 교회, 위정자들에 대한 것들을 살피면서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에 따라 좀 더 구체화시킬 필요성이 있다.

지금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로 인해 주변 정세가 시끄럽다. 이로 인해 동남아에 군비경쟁이 심해질 위험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전쟁 무기들이 변하여 평화에 이용되는 도구들로 변하기를 위해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은혜로우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당신에게 영적인 희생 제사를 드리도록

왕같은 제사장들로 택하셨습니다.

이 시간 기도와 중보의 사역으로

주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의 반석 위에 세워진 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견고히 주님 위에 세워지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지어져 가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져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소서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왕적인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목사님과 장로님, 그리고 교사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사역에 효과적이도록,

하늘의 신령한 축복으로 축복해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시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교회를 당신의 거룩한 국가요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우셨기에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화의 왕이시어. 이 나라와 주변 상황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우리는 혼란의 와중

속에 있습니다. 굶주림 가운데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을

먹여살릴만한 돈이 미사일 발사로 허비되고 이런 가운데 어린이들은

굶어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변 국가들과 우리나라는 북한의 위협으로 인해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보입니다. 십자가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오신 주님이시어. 속히 전쟁을 위한 무기들이 평화를 위한

도구로 바꾸어지도록 이 땅에 평화가 임하게 하옵소서. 북한 주민들의

한맺힌 신음소리를 들으사 속히 이 땅에 통일되는 평화가 임하게 하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교회에 나와 저희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으나

병들에 침상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저들을 기억해 주시고, 그곳에도 주님이 함께 계셔서

주님의 손으로 치료해 주시고 위로로 함께 계셔 주시 옵소서.

 

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예배를 받으시며,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중보 기도의 다양성

예배가 회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한 방편이 회중들의 다양한 중보 기도를 통해서이다.

) Bidding Prayer

기도의 지도자가 기도해야 할 관심 분야를 소개한다. 그러면 회중들은 그 특별한 관심 분야에 대해서 기도한다. 이런 형태의 기도는 기도에서 회중이 참여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유익이 있다. 그리고 기도하도록 가르쳐온 회중들에게 매우 성공적으로 사용되어질 수 있다.

지도자: 기도를 위해서 다함께 일어서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기도의 제목들을 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짧은 문장의 기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마칠 때쯤에 제가 주여라고 외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하면서 마쳐주시기 바랍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와 특별히 한국 교회와 그리고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회 중: 짧게 기도를 함.

 

지도자: 나라를 맡고 있는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회 중: 짧게 기도함.

 

지도자: 가난한 자들과 어려운 자들과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회 중: 짧게 기도함.

 

지도자: 특별한 기도 제목을 위해서는 성도들로부터 기도 제목을 받고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기도한다.

회 중: 짧게 기도함.

 

지도자의 기도로 마침.

 

) Litany Prayer

초대 교회에서 이 청원 기도가 발전되었다. 다시금 회복을 하는 것도 좋다.

 

지도자: 아버지시여, 우리는 당신의 모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하소서.

회 중: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지도자: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진실 되고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도록 도와주소서. 우리의 온전한 섬김을 통해서 당신의 이름이 모든 백성에게 영광이 되도록 하소서.

회 중: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지도자: 모든 목사님들과 장로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이 당신의 말씀과 성례에 신실한 사역자들이 되게 하소서.

회 중: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지도자: 정부 당국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있게 하옵소서.

회 중: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지도자: 저희가 주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주의 일을 행케 하소서.

어떤 슬픔과 역경으로부터 고통 당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회 중: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계속 끝까지 한 다음, 잠시 침묵한 후에 지도자의 기도로 마친다.

 

 

) 합심기도

다 함께 일정한 몇 가지의 주제를 가지던지 또는 교회의 필요에 따라서 합심기도 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예루살렘 교인들은 합심하여 기도했고, 그 기도의 결과로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구출될 수 있었다.

 

) 대표 기도

이 형식이 한국 기독교에서 거의가 택하고 있는 기도이다. 이 대표 기도는 전체를 대표해서 드리는 기도이기에 전 교인이 한 마음이 되어 이 기도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 대표 기도가 한 사람의 기도처럼 생각되어져 버리는 아쉬움에 있다. 이 대표성의 기도의 중요성을 성도들이 자각하는 가운데 전체의 기도라는 마음으로 기도가 이루어질 때 전심으로 기도하는 분과 한 마음이 되어 그 기도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기도를 맡은 분들을 위해 목사는 중보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좋은 중보 기도를 위해서는 중보 기도의 좋은 예문들을 목사는 발췌해서 참고로 기도자에게 주는 것도 좋다.

 

3) 죄 고백과 사유함의 기도

 

(1) 고백과 용서의 기도

죄를 고백하는 시편들도 있다. 예를 든다면 51편이 전형적인 죄의 고백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시편들은 예배는 죄의 인정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해준다. 우리 시대에 이런 진지한 죄의 고백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죄악의 불감증으로 인해 죄를 그렇게 진지하게 다루지 않거나, 죄의 고백을 예배에서 한다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죄의 고백이 없는 예배는 그 순수성이 결여되어져 버린다. 예배는 먼저 정직성의 문제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멀어져 있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이 하나님의 임재에로 나아가는 예배는 치명적 장애물이라 할 수 있는 죄의 고백은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부담을 지니시나, 그럼에도 주님은 죄인들을 받아들이신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예배는 정직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런 정직성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죄가 고백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우리의 죄와 타협해 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탄식과 죄의 고백의 기도들은 한 중요한 신학적인 진리를 표출한다: 인류는 타락한 피조물이며 구속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우리의 타락한 인류의 부르짖음들이 우리 주위에서 모두 들려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가 실제적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르짖음들을 다루어야 한다. 확실하게 시편들이 우리의 기독교 기도로서 그렇게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져 왔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에서이다. 이런 탄식과 고백은 우리는 결핍되어 있는 피조물들이라는 사실을 표출한다. 이들은 우리의 타락을 드러낸다.

솔로몬 성전의 파괴와 바벨론 포로의 슬픔의 상태 후에, 한 매우 특별한 고백의 기도가 발전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느혜미야 9장에서 이런 형태의 기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에스라가 이스라엘 전 백성을 위한 고백의 기도를 하게 했는지를 듣게 된다. 다니엘서 9장에서도 전 백성의 죄들이 하나님 앞에서 고백되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의 죄들의 사적인 고백이 아니라 공적인 고백들이다. 그러므로 공적인 죄의 고백은 전 회중을 위해서 예배에서 의도되어질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죄 용서의 기도가 기독교 기도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시며.”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죄 고백과 용서의 기도에 대해서 거의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매일 드리는 예배에서 발전되었으며, 이런 매일의 예배는 초대 교회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주일날 기도의 강조는 중보 기도에 있었다. 6세기의 그레고리 대제에 의해서 죄의 고백과 용서의 기도가 주일 예배의 정규적인 순서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kyrie eleison은 바로 이런 유형의 기도에 속한다. 중세에 이르면서 수도사들은 시편 51편을 매일의 시작에 이런 유형의 기도로서 낭송했다.

종교 개혁 시대에 와서 개혁자들은 죄의 고백과 용서의 기도를 예배 순서에 포함시켰다. 스트라스버그에서 마틴 부쳐는 이런 유형의 기도를 예배 의식에서 발전시켰다. 그는 다니엘 9장에 있는 기도를 토대로 해서 이런 기도를 작성했다. 이런 기도는 제네바에서 칼빈에 의해서, 영국에서 토마스 크랜머에 의해서, 스코틀란드에서는 존 낙스에 의해서 발전되어 갔다. 유명한 청교도 목사였던 리챠드 백스터는 그의 1661년의 Reformed Liturgy에서 고백의 기도를 작성했다.

이런 기도들이 공적으로 기도되어짐에 있어서 장점과 단점이 있다. 공적인 고백을 위한 기도문이 작성되어지고 한 목소리로 함에 있어서 전 회중에 하나가 되어 자주 반복되어짐으로써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회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임. 그러나 개개인의 구체적인 죄의 고백을 하지는 못한다는데 단점이 있다.

 

거룩하시며,

가장 자비로우신 주 하나님.

 

당신의 분노로 우리를 책망하지 마시고,

당신의 진노로 우리를 꾸짖지 마소서.

 

주님은 거룩하시고,

우리는 당신의 존전에 설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까이 나아오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거듭해서 실패했기에,

무가치함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싶음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부르십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거룩하시며,

가장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분노로 우리를 책망하지 마시고,

당신의 진노로 우리를 꾸짖지 마소서.

 

우리의 죄로 인해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치유해 주소서.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우리의 죄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내 이웃에게 상처를 준 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아픔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이들로부터 상처받음으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우리의 죄과를 용서하시며

우리로 자유함을 얻게 하소서

 

영광과 존귀를 돌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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