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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포기하시겠다구요? 로봇이 당신을 도와드립니다

하나님아들 2024. 4. 17. 23:02

등산을 포기하시겠다구요? 로봇이 당신을 도와드립니다

입력2024.04.17. 
 
KIST, 다리근력 30% 보조 입는 로봇 개발
웨어러블 로봇 '문워크 옴니'
등산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언젠가 온다. 소싯적에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올랐던 산인데 이젠 힘이 부치고 무릎과 다리도 저리고 아파 오는 때다. 아직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그깟 등산 좀 안 하면 어때? 다른 거 하면 되지'라 할 테지만 당사자들에겐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이로 인한 노년의 우울감과 고립감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시 걷고 오르고 싶은 이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지난 1월 '입는 로봇'을 개발, 이 로봇을 착용한 고령자가 실제로 북한산을 한결 손쉽게 올랐다고 했다. 그는 착용 후기로 "젊었을 때부터 즐기던 등산을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워크 옴니를 착용하고 편안하게 산을 오르니 10~20년은 젊어진 느낌"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로봇이 도대체 무슨 원리로, 어떻게 산행을 보조해 준다는 것일까? 개발을 담당한 이종원 박사에게 자세히 들어봤다.

한 고령자가 직접 문워크 옴니를 착용하고 북한산 영봉을 오르고 있다.
기존 보행 보조 로봇은 무겁고 둔해

이종원 박사가 개발한 로봇의 정식 명칭은 '문워크 옴니Moonwalk-Omni'다. 어느 방향omnidirection으로든 마치 지구 중력의 6분의 1 수준인 달을 걷는 것처럼 보행을 도와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총무게는 2.9kg로 고령자도 타인의 도움 없이 10초 이내에 쉽게 착용할 수 있으며, 골반 양측에 장착된 4개의 초경량-고출력 구동기가 보행 시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보조하고 착용자의 다리근력을 최대 30%까지 강화해 준다.

"고령화시대입니다. 국내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2019년 기준 전체 인구의 14.9%, 2050년에는 768만 명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화로 인한 근력 저하는 단순히 건강 문제가 아니라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요인입니다. 또 국내 한 해 일상생활 중 낙상으로 사망하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83만 명에 달해요. 그래서 저는 근력이 부족한 노약자의 일상을 로보틱스 엔지니어로서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게 바로 입는 로봇, 웨어러블 로봇이었죠."

기존 웨어러블 하지 근력 보조 로봇은 주로 보행 기능 장애를 앓는 환자들의 재활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렉스 바이오닉스의 렉스, 엑소 바이오닉스의 엑소 GT, 파커 하니핀의 인디고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병원 내 활용에 국한되고 무거우며 자유도와 유연성이 부족한 단점이 있다. 실외 사용 목적으로 개발된 하버드대학의 소프트 엑소슈트, 리모트 액튜에이터 등도 관절에 부담을 주고 피부가 쓸리며 체중과 하중을 지지해 주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무게 2.9kg의 문워크 옴니.
"이런 로봇들은 무게가 10~20kg 정도에 달합니다. 보통 혼자서 입지도 못해요. 그래서 일상에서 노약자들이 로봇을 착용할 수 있도록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정도로 가벼운 무게'로 만들자는 목표가 있었어요. 이를 위해 프레임 재료와 구조에 관한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대 30% 고관절에 필요한 근력을 제공하는 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죠."

다리를 들어 주고, 당겨 주고, 밀어 준다

현재 문워크 옴니의 배터리 수명은 2~4시간 정도다. 아무래도 당일 산행으로는 조금 빠듯하다. 하지만 이 박사는 휴대폰 배터리에 비유했다. 즉 많이 쓰면 빨리 닳고, 안 쓰거나 적게 쓰면 보존 가능하다는 것. 연구팀 자체적으로 고령 참여자를 섭외해 북한산 영봉 등산을 다녀왔는데 이때 4시간 정도 등산을 마치고도 배터리가 완전 방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보조배터리나 추가 배터리 셀로 교체하는 방법도 있다.

문워크 옴니 개요.
"문워크 옴니의 작동 방식을 설명해 드릴게요. 로봇을 허리에 벨트처럼 차고 무릎에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걷기 시작하면 로봇이 발의 움직임을 계산해서 딱 알맞은 보조력을 상하좌우로 제공해 줍니다. 가령 오른발을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면, 오른발을 든 순간에는 무릎을 들어 올려주는 힘이 작용하고, 떠 있던 오른발이 지면에 닿고 이제 몸을 끌어 올라가는 순간에는 뒤로 밀어 주는 겁니다. 고관절에 원형으로 된 구동기가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이 작용을 해주는 겁니다.

이게 상하 작용이고, 좌우는 통상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원형 구동기 아래 세로로 된 장치가 이것인데 다리를 몸 안쪽으로 밀어주거나 바깥으로 당겨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글로만 봤을 땐 어려워 보이고 내 몸을 이리저리 잡아끄는 로봇을 달고 걷는 게 꽤 어색할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 박사는 "연구원에서 테스트한 노약자들의 경우 적응하는 데 평균 5분 정도 걸렸고 그 이후부턴 익숙하게 다뤘다"고 했다. 또한 설명하자면 2인 3각을 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원리를 세세하게 설명해서 그렇지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간단하다.

'로봇이 다리를 들어 주고, 당겨 주고, 밀어 준다.'

문워크 옴니는 장착된 센서로 보행 동작을 인식하고 적절한 동력을 제공한다.
인공지능이 보행 인식, 최적의 동력 제공

기계적 움직임은 이토록 단순하지만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얼마나' 들어 주고, 당겨 주고, 밀어 줄 것인가란 문제다. 러닝머신 위에서 똑같은 동작으로 반복해서 걷는 것이라면 이것을 계산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어디를' 걷느냐에 따라 문제가 한층 복잡해진다. 평지, 계단, 경사로, 인도, 흙길, 바윗길 등 야외는 무질서하고 복합적인 지형으로 구성돼 있다. 또한 사람마다 다리의 길이, 보폭과 각도 등이 전부 다르다. 이걸 매 걸음마다 계산해서 필요한 만큼 들어 주고, 당겨 주고, 밀어 줄 수 있을까? 문워크 옴니는 인공지능으로 가능하다.

"문워크 옴니의 핵심 기술은 인공지능을 사용한 보행 환경 인식입니다. 착용자의 보행 의도를 인식하기 위해서 고관절에 4개 각도 센서, 등 부위에 상체 자세 측정 센서, 양발에 4개의 압력 센서와 6축 IMU 센서를 장착했어요. 이 센서들을 통해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저희가 개발한 알고리즘에 따라 로봇이 상하좌우 동력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거예요."

이는 안전성과 효율성에 직결된다. 보행자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힘을 주지 않을수록 안전하며, 너무 과도하거나 적은 힘을 주거나 딱 정확한 타이밍이 아닐 때 작동하는 경우 효율적이지 않다. 배터리가 의미 없이 낭비되는 셈이다.

물론 100% 완벽하게 힘을 전달해 주지는 않는다. 여러 요인들로 인해 오차는 분명 발생한다. 지형이 극단적일수록, 불규칙할수록 이러한 오차는 더 커진다. 기존에 개발된 보행 보조 로봇들에 내장된 알고리즘들도 이러한 오차 문제를 갖고 있었다.

문워크 옴니의 알고리즘도 그렇다. 단 압도적으로 개선돼 있다. 다양한 환경, 보행 속도 조건에서 보행 위상 추정 오차율이 2.9% 미만이다. 기존 알고리즘에 비해 평균 40.5%, 최대 3배 더 우수한 수준이다.

"기존 알고리즘도 포장/비포장 평지, 포장/비포장 경사로 오르막에서는 어느 정도 문워크 옴니의 알고리즘과 비슷한 성능을 보여 줍니다. 지형이 단순하니 보행도 단순하거든요. 하지만 비포장 경사로 내리막, 규칙적인 계단 오르막, 불규칙적 계단 오르막, 규칙적/불규칙적 계단 내리막 등 보행이 조금 더 다이내믹해지는 지형에선 오차율 차이가 확 벌어집니다. 문워크 옴니가 압도적으로 오차율이 낮아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주변의 다양한 보행 환경에서 문워크 옴니 인공지능이 학습됐다.
로봇 사용 시 대사에너지 15~30% 감소

연구진은 문워크 옴니가 다리 근력을 최대 30% 강화해 준다고 한다. 평균적으로는 15~20% 정도다. 그런데 이 수치는 어떻게 도출된 것일까? 만약 단순히 로봇의 동력으로만 계산된 수치라면 로봇의 무게가 이를 상쇄할 수도 있다. 이 박사는 "실제로 병원에서 활용되는 로봇들의 경우 입었을 때 오히려 더 불편한 경우들이 꽤 많다"고 했다. 지나치게 무겁기 때문이다. 문워크 옴니의 무게는 2.9kg. 500ml 생수통 6개를 더 짊어지는 셈이다.

"문워크 옴니가 15~30% 정도 보행을 수월하게 해줬다는 수치는 대사에너지를 근거로 산출한 것입니다. 문워크 옴니를 착용하지 않고 걸었을 때, 그리고 문워크 옴니를 착용하고 걸었을 때 소모한 대사에너지를 각각 측정했더니 15~30% 정도 힘을 덜 들이고 걸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러니까 로봇 자체 무게라는 마이너스 요인을 상쇄하고도 이 정도 더 좋았다는 거죠. 대사에너지는 동작 센서와 산소마스크를 쓰고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은 양을 측정해서 정밀하게 산출됩니다. 쉽게 말해 칼로리죠."

문워크 옴니의 알고리즘LSTM과 타사 알고리즘의 오차율RMSE 비교. LSTM의 오차율이 다양한 보행 환경에서 타사의 것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낮다.
특별히 특정 지형에선 약점이 있거나 하는 문제는 없다고 한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환경 안에서 가장 에너지 효율적인 보행을 지원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주변의 다양한 계단, 경사로, 평지를 걸은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알고리즘이 잘 학습됐다. 하지만 연구원 주변 지형은 인위적으로 정돈된 곳이며 북한산은 그렇지 않은 공간이었다.

"이번 북한산 실험을 통해 느낀 게 이게 경사로로 봐야 될지, 계단으로 봐야 할지 애매한 지형이 많더라고요. 또 바위만 덩그러니 있어 이를 오르는 경우도 있고요. 이처럼 복합적인 환경에서도 오차를 최대한 줄여 정확하게 보조하도록 알고리즘을 개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산악 지형에서도 원숙한 알고리즘을 만들면 노약자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도심 같은 환경에선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6년 상용화 예정

상용화 예정 시기는 2026년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은 지난 2월 삼익THK와 기술이전 조인식을 가졌다. 두 기관은 향후 2년간 협력 연구를 수행해 문워크 옴니 상용화를 위해 힘을 합친다. 가격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그리고 이 2년간의 연구 기간 동안 제품이 더 개선되거나 추가 개발될 수 있다.

"아무래도 노약자 분들은 무릎 관절이 약한 편입니다. 지금 문워크 옴니는 고관절을 중심으로 제어하는 구조죠. 물론 우리 다리는 고관절부터 무릎, 발목이 다 연결돼 있으므로 문워크 옴니의 근력 강화 효과가 무릎 관절이나 발목에 드는 힘을 줄여 주고, 또 헛디딜 가능성도 감소시켜 줍니다.

하지만 이는 간접적인 효과고 직접적인 건 아니죠. 그래서 무릎 관절이나 하지 복합관절을 동시에 보조하고 도와줄 수 있는 로봇도 개발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노약자분들이 본인 몸 상태에 맞게끔 선택적으로 로봇을 활용해서 일상생활을 누리실 수 있게 될 겁니다."

문워크 옴니는 노약자들의 전반적인 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제품이지 완전히 등산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 단계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프레임이 추가로 산악 장비를 탈부착하거나 결합시키는 구조로 변경될 수도 있다. 아직은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다.

또한 다양한 보행속도를 고려해 알고리즘이 내장돼 있지만, 러닝은 지원되지 않는다. 보행이 어려운 노약자들을 위한 장치이기 때문에 당장 러닝 데이터까지 학습시킬 필요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양한 보행속도를 고려하고 있어 최대 조깅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 즉 경보 정도의 속도까지는 로봇을 통해 보조받으면서 걸을 수 있다.

"문워크 옴니 개발 소식이 전해지고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시고 계십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직접 전화주시기도 하고, 그런 분들의 자녀들, 나이는 비교적 어리지만 질환에 의해 보행이 어려운 사람들도 다들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주고 계셔요. 그래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움을 일찍 드려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이종원 박사. 2012 포항공대 기계공학 박사. 2012~2020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수석· 책임 연구원. 2020~ KIST 지능로봇연구단 선임연구원.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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