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막6장 30-44 하프타임 이후가 중요합니다(26)

하나님아들 2024. 3. 22. 18:12

막6장 30-44

하프타임 이후가 중요합니다(26)

이약로 목사 2010년 7월 4

동탄성지교회 http://www.dongtan.or.kr/

 

 

 

오늘은 교회절기 중에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날이다. 보리를 수확하는 절기인데 이는 구약의 3대 절기(유월절,맥추절,수장절)의 하나인 맥추절을 계승한 절기이다. 한국의 경우 보리를 수확하는 시절은 가장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던 고난의 시간이었다. 겨울에 수확한 곡식을 겨울내내 먹고, 봄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 힘들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보리는 한국인에게는 희망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맥추절은 일반적으로 칠칠절, 오순절 등으로 불리워졌다. 칠칠절(七七節)은 이때가 보리 수확의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 초실절(初實節)로부터 시작하여 7주간의 곡물 추수기가 끝났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오순절(五旬節) 또한 추수기와 관계된 말로, 이 날이 초실절 다음날로부터 계산하여 제 50일째 되는 날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하지만 맥추감사절은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한해의 절반(1/2)을 보내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간이다. 맥추감사절은 축구경기로 비유하면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쉬는 10분이라 말할 수 있다. 하프타임은 선수들의 휴식 못지않게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전반전까지의 상황을 종합 분석, 문제점을 도출한 후 후반 역전을 노리며 새판을 짜는 귀한 시간이다. 따라서 하프타임을 어떻게 잘 보내느냐에 따라 후반전의 결과는 전반과 매우 달라진다.

인생도 전반보다 후반전이 중요하다. 전반전에 맹활약을 펼치거나 두드러진 업적을 남기더라도 후반에 역전 당하거나, 빛이 바랜다면 그보다 허망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뛰었는데 실속은 없었는지?’ ‘올해 초 세운 목표는 지금 계획대로 전개되고 있는지?’ 이런 모든 것들을 이 시점인 하프타임에 제대로 중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짧게는 2010년을 마칠 때 부끄러움이 없도록 해야 하고, 길게는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부끄럽고 초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거창한 일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40대 이전에는 목표지향적으로 살았다면, 40대 이후에는 관계지향적으로 살아야 한다.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도록 살아야 한다. 그게 인생후반에는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예를 들어 내가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내 가정과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금 잘 쉬어야 한다.

 

오늘 읽은 말씀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불리는 말씀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유명한 이유가 있다. 부활사건을 제외하고 사복음서에 모두 진술된 기적은 오병이어 하나 뿐이다. 마14장, 막6장, 눅9장, 요6장에 있다. 부활사건 만큼 우리에게 주는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기에 우리는 많이 읽고 묵상해 보아야 한다. 2010년의 하프타임에, 우리 인생의 하프타임에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남은 하프타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까?

 

31절을 읽어보자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1)오병이어의 기적의 출발점은 쉬는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 어떤 경기를 보아도 쉬지 않고 전후반 90분을 뛴 사람은 없다. 경기규칙이기에 모두 10분씩 쉰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면서 7일중에 하루는 반드시 쉬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는다. 왜 쉬는 것일까? 더 열심히 살기 위해 쉬는 것이다. 또 쉬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인생은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멋있게, 멋을 아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쉼, 안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 선수중에 가장 많이 뛴 선수는 이청용이었다. 4경기에서 풀타임(360분)에서 뛴 거리는 무려 43.62㎞였다. ‘산소 탱크’ 박지성(29·맨유)의 43.55㎞를 능가해 경기당 평균 10.9㎞를 뛰었다. 축구에서는 11㎞ 이상을 뛰면 상대 팀보다 한 명이 더 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게 한국축구가 16강에 올라간 비결이라 생각된다. 우리도 이청용, 박지성처럼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런데 기억할 점은 뛰는 것 이상으로 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쉰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잠자고 놀고, 스포츠나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처럼 단편적인 휴식이 된다.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만나는 기쁨과 감격으로 우리의 영혼이 쉴 수 있을 때 이뤄진다.

지난주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평소 밝고 친절한 것으로 유명했던 박용하가 자살했다는 뉴스였다. 인기에 대한 부담감, 자신들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신들을 이용하려는 외부의 시선에 대한 거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무려 수면제를 14년이나 복용해 왔다는 사실에서 연애인이란 직업이 주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이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 내가 가진 명예, 돈, 건강도 무의미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예배시간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 자유를 경험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또한 내 영혼이 쉼을 누리지 못하면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요즘 현대인들을 잘 표현해 주는 말 중에 “방관자효과”라는 것이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새벽, 군산시에서 생긴 교통사고가 방관자효과를 잘 보여준다. 당시 술에 취한 한 남자가 차도 중간에 누워있었다. 남자는 차도 중간에 누워있다가 버스와 차량에 의해 3차례 깔려 사망했다. 그런데 조사결과, 사고현장을 지나가던 총 23대의 차량 중에서 19대가 피해자를 인지했고 그 중에 3대가 사고를 냈음을 알게 되었다. 사고 당시 바로 신고를 하고 응급조치만 이뤄졌어도 살았을 텐데, 피해자를 보고도 방관했기 때문에 술에 취한 남자는 사고를 당해 죽었던 것이다.

방송국 PD가 서울 강남역 거리에서 독특한 실험을 했다. PD는 거리에서 자신의 두 손을 묶고 테이프로 입을 막고 거리 한쪽에 쓰러져 있었다. 강남 거리의 사람들은 담당PD를 보고 무심히 지나쳤다. 얼마만에 도와주려 다가온 사람이 있었을까? 실험시작 19분 후, 한 여학생이 PD에게 다가와 담당PD의 입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떼어주고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담당PD와 여학생 곁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범죄를 목격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신고하겠지,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이유를 내 마음과 영혼이 쉼을 통해 힘을 충전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 마음이 풍요롭지 못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것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은 현대인들이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를 잃은 것이다.

내 주변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내가 안 도와주면 큰 일난다.”고 우린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만나고, 가까이 한다면 죽기로 마음 먹은 사람도 살릴 수 있게 될 줄 믿는다. 이처럼 쉼, 안식을 누리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이 탈진되지 않도록 돌보길 바란다. 그게 내가 살고, 누군가도 살리는 비결이 된다. 인생의 하프타임에 우리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평안함을 누리는 것이다. 찬송가 413장의 고백이 날마다 넘치길 바란다.

내 영혼 평안해 내영혼 내 영혼 평안해!

 

2)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34절이 말해준다.-불쌍히 여기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쉬고 싶어 배를 타고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을 갔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예수님은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다음에 만나자고 그들을 설득해 보내시지 않았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찾아온 그들이 목자없는 양처럼 불쌍하게 보이셨다. 그래서 말씀을 가르쳐 주셨고, 그들이 배고픈 것을 아시고 먹이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

 

방관자 효과에서도 말했듯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 “누군가가 도와주겠지”하고 방심해 버린다. 그래서 끔찍한 일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요즘 어린이 성폭행 사고가 너무 많이 일어난다. 모든 사람들이 의심이 가고,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신고해야 하는데 방관해 버린다. 매년 얼마나 많은 아동 성폭행 피해자가 생기는지 아는가? 우리나라 13세 미만 아동의 성폭행 피해는 2007년 1081건, 2008년 1220건, 2009년 1017건으로 매년 1000건을 웃돌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범죄 예방도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고 관심갖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게 된 출발점도 그들을 바라볼 때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관심갖게 만들고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 내 감정이 끌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욕심을 따라가지 말고 내 마음속에서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따라가야 한다. 그게 기적의 삶을 사는 비결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다.

신명기 22:4은 이렇게 말씀한다.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못 본체하지 말라를 다른 말로 하면 불쌍히 여겨 도와주라는 말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판단, 정죄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마음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평가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어떤 버스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나의 모습은?(영상을 보라)

 

 

너무 힘든 남자가 버스에 탔다. 혼자 그 아픔을 감당하기 힘들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아내가 오늘 수술을 하는데 죽을지 모른답니다. 누군가 쑥덕거렸다. 아내를 판다고!

그럼에도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를 위해..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돈이 아니라 그는 단 1초라도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모두 편견으로 대했음을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믿어주기로 작정하기보다 의심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손가락질하는 모습. 세상에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지만 우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믿어주고 사랑하기로 작정할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난다.

 

오늘 말씀을 봐도 예수님이 무리들을 불쌍히 여겼다는 말은 나와도, 제자들도 불쌍히 여겼다는 말은 없다. 그들은 쉬고 싶었을 것이다. 빨리 무리들을 돌려보내 각자 알아서 식사를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37~38절을 보면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말도 안된다. 제자들은 그럴만한 돈도, 마음도 없었다. 빌립이 돈을 계산해 보았는데 200데나리온이 든다고 한다. 노동자 8개월치 월급이니까 꽤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처럼 대량생산이 가능한 세상일지라도 남자만 5천명이니까 약2만명이 먹을 음식을 몇 시간안에 준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2천년전에 돈이 있다해도 이 무리를 먹이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자들은 그것을 분명히 알았기에 예수님의 말도 안되는 질문에 대꾸하지 않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대로 순종했던 것이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우리가 줄 게 어디있어요. 주님 왜 그러시는 거예요.”라고 대꾸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리를 먹이려면 어느 정도의 음식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았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으냐 말씀하셨을 때도 “몇 개 가지고 해결되지 않을텐데 그런 헛수고 해서 뭐해요?”라고 툴툴거리지도 않았다. 제자들은 돌아다니며 혹시나 준비한 음식이 있는지 살펴보았고 안드레는 한 소년이 가진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예수님께 가져다 드렸다.

 

오늘 오병이어 말씀을 통해 하프타임 이후 멋진 인생을 사는 비결을 말씀해 주신다.

3)남의 떡 보지 말고 내가 가진 떡을 주님께 드려라.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들과 오병이어 기적의 차이점이 있다.

다른 기적들은 대부분 제자들의 힘을 의탁하지 않고 예수님 혼자 행하셨다.

하지만 오병이어 기적은 철저히 제자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돌을 들어 떡으로 변하는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것을 사용하셨다.

“안됩니다. 이것으로 뭐가 되겠습니까? 난 모르겠어요 당신 맘대로 하세요.”라고 체념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있어요. 나는 예수님이 뭘 하시려는지 모르지만 순종합니다. 기대됩니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면 나는 제자들처럼 쓰임받게 될 것이다.

 

인간이 불가능한 시간은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다.

내가 노력하고 노력하고, 순종하고 순종한 다음에 믿어라. 이제 하나님이 일하심을!

 

6·25전쟁으로 고아가 된 이후 1958년 미국으로 입양된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어릴 적 앓았던 뇌 손상으로 정신지체 장애를 지녔다. 후에 미혼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양 할아버지는 어린 소년에게 바이얼린을 권유하였고 그 후 유일하게 음악과 바이얼린만이 그의 친구였던 어린 시절을 힘들고 외롭게 보내야 했다.

이렇게 외로운 소년에게 그의 앞날을 결정하게 될 행운이 13세때 우연히 찾아왔다. 기다리던 음악 축제 오디션에 늦는 바람에 바이얼린 주자 자리가 마감되어 연주할 수 없게 된 안타까운 순간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비올라’연주자 자리가 남아 있는데 지휘자가 해 보겠느냐고 손짓했는데 소년은 ‘예, 하겠습니다’하고 엉겹결에 연주하게 되었다. 그는 바이얼린과 같은 테크닉으로 혼신을 다해 비올라를 연주했고 그 오디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사건이 그를 세계적인 비올리스트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용재 오닐이다.

만일 용재 오닐이 그 상황에서 ‘내가 바이얼린만 연습했는데 어떻게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거절했다면 그는 지금의 위대한 비올리스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예, 하겠습니다’ 하는 자세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없는 것만 바라보고 거지처럼 산다면 그의 인생은 비극이다. 하지만 “예 해 보겠습니다.”, “주님 여기 있어요. 주님 맘대로 해 보세요.”라고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재능, 시간, 물질을 드린다면 예수님은 배가시켜 주실 것이다. 나는 원더풀영어를 하는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너는 세계적인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비참하게 살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드려 하나님의 드림을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한다.

 

2010년 하프타임을 어떻게 살려는가? 남은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것인가?

어떻게 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1)몸과 마음과 영혼이 참된 쉼을 통해 작전타임, 새출발을 해야 한다.

2)방관자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3)남의 떡 보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주님께 드려라.

예 해 보겠습니다. 주님 맘대로 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