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성경신학에 대한 고찰

하나님아들 2024. 3. 19. 22:55

 

성경신학에 대한 고찰

 

목 차

Ⅰ. 서론
1. 문제제기
2. 사적 고찰
Ⅱ. 본론
1. 발터아이히로트의 구약 신학
1) 중심개념 : 언약
2) 신학방법론
3) 신학의 목적
2. 폰라드의 구약신학
1) 구약신학 연구목적
2) 구약신학의 방법
3. 월터 카이저의 구약신학
1) 구약 신학의 통일성에 대한 이해 : 언약
2) 평가
4. 박용기 목사님의 성경신학
제1편 성경신학 서론
제1장 성경신학의 개요
제2장 성경신학의 원리
제2편 구약신학
제1장 구약신학 서론
제3편 신약신학
제1장 신약신학 서론
Ⅲ.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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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서론
1.문제제기
1)신학의 정의에 대한 문제
신학의 정의는 신학을 전개해 나가는 구조를 짜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전통신학에서나 그 외 신학에서 정의하는 바는 제각기 다르다. 특히 전통신학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우주에 대한 관계를 논하는 학” 이라는 정의가 합당한가? 이는 신학이 이중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성경신학의 위치에 대한 문제
전통신학에서 성경신학은 주경신학의 한 부분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는 성경신학이 모든 신학을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엽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신학 위치를 주경신학의 한 파트로 분류하는가?를 규명해 보아야 할 것이다.

3)성경신학에 있어서 내적 통일성 문제
오늘날 성경신학에 있어서 성경 66권을 중심 하는 단일한 주제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즉 단일한 주제가 없다는 것은 내적 통일성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있어서 단일한 주제가 있는가? 있으면 무엇인가? 또한 그 주제를 가지고 내적 통일성을 이룩할 수 있는가? 이다.

4)성경신학에 있어서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으로 분류하는 것은 타당한가?
오늘날 성경신학에 있어서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으로 분류하여 연구하는데 그 결과는 성경 66권의 관련성을 단절시키고 있다. 그래서 구약의 사건들은 신화적으로 또한 신약의 사건들은 교회가 만들어 낸 (창작해 낸) 창작물이라고 취급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을 나누어서 연구한 폐단은 학문적 연구의 편리를 가져왔으나 성경의 통일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는가?

2.사적 고찰
1)초기의 성경신학
성경신학의 태동은 중세 스콜라신학에 대한 종교 개혁을 원천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의 영향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으로 눈을 돌리게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초기에 성경신학은 교의학의 시녀로서 교리체계를 지지하기 위한 증빙자료로 사용되어 왔었다. 그 결과 성경신학은 개신교 스콜라주의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경건주의가 태동하게 되어서 성경으로 돌아가자 하면서 성경본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계몽주의 시대의 성경신학(1700-1800)
계몽주의 시대에 있어서 성경은 무시되어 가고 있었다. 이 때에 성경신학이 교의 신학의 시녀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왔다. 그것은 게블러가 알트도르프 대학에서 취임 연설을 통해 성경신학이 교의학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 후 성경신학은 계몽주의의 거센 도전 앞에서 흔들거리게 되었다. 이 때에 성경신학은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으로 분리되었는데 이를 처음 시도한 사람은 G.L.Bauer(1755-1806) 이다. 바우어 이후에 성경신학은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으로 분류되어서 연구되었다.

3)계몽주의 이후의 성경신학(1800-)
계몽주의 시대에 태동한 역사주의는 (종교사학파) 신약성경을 완전히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또한 때를 같이하여 변증법적 신학이 태동하여서 성경의 권위를 짓밟았다. G.P.C 카이저는 합리주의를 따르면서 초자연주의를 부정하고 성경을 모두 보편적 종교의 원칙아래 종속시켰다. 또 드 베테는 성경신학을 철학의 체계와 연결시켰으며 W.바트케는 헤겔의 철학을 도입하여서 종교사적 접근을 규범화시키고(정-자연종교, 반-영적종교:히브리종교, 합-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종교:기독교) 벨하우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바우어의 신약신학,구약신학으로 나누는 결과에 대한 견해 바우어가 성경신학을 구약신학과 신약으로 나눈 결과는 현대에 이르러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경을 기본 텍스트로 하는 성경신학이 논리적 통일을 찾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가로막음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라 생각되어진다. 구약만을 가지고 연구한 신학자나 신약만을 가지고 연구한 신학자 모두가 논리적 통일성을 찾지 못하게 되므로 계몽주의의 거센 물결과 실존주의의 거센 물결 아래서 성경은 이성으로 수용할 수 없게 되어지므로 성경의 진정성은 무시되어지고 결국 문서설,편집설,혹은 비문자화,비신화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오늘 개혁신학자들 가운데서 신약신학 가운데 로마서, 갈라디아서만을 전공했다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화를 자초하고 있다고 사료되어


II.본론
본인 “성경신학”이라는 주제 하에서 박목사님의 성경을 기본 Text 로 하고서 다음의 몇몇 학자들과 견주어서 우리가 지향하는 성경신학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박목사님의 「성경신학개론」에 대해서 다소 소홀함이 있다. 끝으로 본인은 월터,카이저의 주장을 통해서 박목사님의 성경신학의 확실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1.발터 아이히로트
1)중심개념:언약
아이히로트는 종교사학파의 역사지상주의에 탈피하여서 “역사의 세계” 보다 “신앙의 세계”에 더 큰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그는 한 사건의 역사가 그렇게 일어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는 물음을 더욱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의 구약신학에 있어서 중심 되는 단어는 “언약”이다. 그러나 그가 성경의 핵심단어를 언약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구약신학은 신약과의 관련성을 떠나서 제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구약의 기자들은 장차 나타날 미래의 위대한 사건과 그 사건의 그 주인공에 대하여 계속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알게 된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활동하던 하나님이 신약에서도 자기 역사를 하고 계신 것을 준다. 이러한 활동의 근거가 구약에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인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언약”을 하나님 활동의 근거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언약”을 이해함에 있어서 비교종교학적 입장을 취한다.
언약의 개념을 모세가 사용할 때에 근동 지역에 있었던 개념을 성경으로 끌어 들였다는 것이다.
그는 계약의 근거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체결했던 것을 말한다. 그는 이러한 언약을 “불평등 계약”이라 하여 주군과 봉신과의 관계에서 맺어진 것에서 이해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고대 잇타이트 민족의 계약사상 을 성경신학에 도입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언약개념이 과연 성경적으로 타당한가는 의문스럽다. 월터 카이저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개념이다.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히로트가 성경신학의 중심개념을 “언약”이라 했으나 올바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의 구약신학의 구조 속에서 입증되어진다.

2)신학방법론
발터 아이히로트가 그의 신학을 전개하기 위해서 전개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론은 교차분할 방법이었다. 한편으로는 구약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및 주변 여러 나라의 종교 세계와의 관계성을 가지고(비교종교학) 다른 한편으로는 신약성경과의 관계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는 “구약신학의 그 어떠한 서술도 전체 근동의 종교세계와 구약과의 관련성을 끊임없이 참조하지 않고는 적절하게 제시될 수 없다” 고했다. 왜냐하면 구약의 역사 과정 속에서 구약은 자신의 독특한 취선 선택을 통하여 다양한 이방종교들과 연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 방법론을 그가 종교사학파를 탈출했지라고 그의 근저에는 종교사학파의 사상이 깔려 있음을 보게 된다.

3)신학의 목적
그의 구약신학의 관심사는 “구약신앙세계에 관한 전체 모습을 구축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역사세계보다 역사가 일어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는 물음을 더 중요시했다. 그는 구약성서는 교리를 알려주거나 규범적 교훈을 제시하지 않으며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맺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식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이 날마다의 경험이 중심이 되어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세계와 인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위에 살펴보는 바와 같이 아이히로트의 신학의 목적이 성경을(구약)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하고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구약신학은 “언약”이라는 핵심주제를 언급했을지라도 성경에서 원하는 바에 접근하지 못하고 빗나가게 되어진 것이다.

2. 폰라드의 구약신학
폰라드의 신학 형성은 그의 스승인 프록쉬에게서 기독론에 대한 대전제가 받아들여졌으며 “전승사”에 대한 영향은 알트에게서 받았다.
1) 구약 신학 연구 목적
폰라드는 구약신학 연구목적이 “자기와 같이 고백하는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신앙을 위함이라”했다. 그는 신학구성을 함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성하는 그 기본 바탕인 신앙이 어떻게 그들의 삶의 문제와 관련되었는가를 밝히려 함에 있다.
그러므로 폰라드의 신학은 성경전체를 통일된 논리로 전개하기는 어렵게 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연구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성경을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재구성하여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적용하려하기 때문이다.
2) 구약신학의 방법
그의 구약신학 과제로 삼았던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또 고백하고 있느냐”하는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을 믿음의 현상문제보다 믿음의 현실 곧 그의 삶의 표현과 믿음에 의한 삶이었다.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님의 구원사 앞에서 응답하는 존재에 서 있으므로 신학적 반성을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본래 신학적 반성을 했는데 신학적 반성은 통일된 원칙에 따라했다. 통일된 원칙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란 의식이다. 신학적 반성이라 함은 이스라엘은 역사 기록에 있어서 항상 자기 자신을 반성하였다. 역사적 순간에 현실에 적합하도록 이해하려고 했다. 즉 그들은 조상의 이미지에서 자기 자산들을 이해하였고, 역사적 실존에서 그들의 조상을 이해하려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고대 전승이 오늘날의 전승으로 새롭게 형성되어져 간다. 이 과정이 신학적 반성이다. 즉 어느 한 전승이 형성되면 다음에는 거기에다 새로운 해석을 첨가하고 또 과거의 것이 오늘의 의미로 해석이 가해지고 또한 거기에 또 새로 발견되고 수집된 다른 전승이 첨가되어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었다. 이러한 전승사적 방법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신학적 사고를 정확하게 재현시킨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라드의 신학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 아니며, 인간을 위한 신학이라 해야할 것이다. 특히 그의 신학적 관심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에 대해서 인간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로 나아가게 되어지며 윤리종교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진다고 본다.

3. 월터 카이저의 구약신학
1) 구약신학의 통일성에 대한 이해 : 언약
월터 카이저는 신약의 중심을 “약속”이며 또한 구약의 중심점도 “약속”이라 했다. 또한 그의 “구약성서신학”에서도 구약의 중심이 “언약”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성경 기록의 초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집단을 형성케 한 고정된 핵심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계약의 내용이 맺어졌다. 이 내용은 축복과 언약이 계시된 말씀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성경신학은 성경본문 이외의 것은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성경 본문이 오류가 있다고 판명되기까지는 그 본문은 무흠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성경신학의 출발점은 정경 자체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만하다.
성경핵심이 “언약”이라는 주장을 아이히로트도 했으나 그는 언약 개념 정의와 출발점을 성경자체에서 찾지 아니하고 비교종교학에 의존하므로 결국 논리전개에 있어서 “언약” 중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월터카이저는 “언약”의 개념을 철학에서나 비교 종교학에서 찾지 아니하고 순수한 성경에서 찾았다. 언약의 개념은 이스라엘 주변의 다른 종교들의 문화적 소산이나 모방에서 혼합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또 그는 언약 개념이 성경 기자들이 고안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 하나의 원리, 다시 말해 모든 계시를 하나로 이해하는 원리가 있는데 기자들은 그것을 통하여 선별하였다. 그 하나의 원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인류의 희망이 되고 우주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영향을 미칠 계시된 ‘언약’ 이었다.·············· 그것은 현존 그대로 있는 정경 자체의 주장이다.”
또 하나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하는 점은 창 1:22와 창 1:28을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하실 일, 그리고 인간에게 하실 일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언약의 출발점을 창1:28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창1:28의 내용이 인간의 의무가 아닌 하나님의 인간에게 하실 일이라는 개념은 전통신학의 “문화사명”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실 일이 무엇인가? 창 1:28의 내용, 하나님께서 인간을 생육시키시고 번성시키시며 또한 땅을 정복해 주시며 또한 다스려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또 하나의 우리의 관심은 창 1:~11장과 12장이하의 연결 문제이다. 창 12:1~3의 아브람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창 1:28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영적으로 번성한다는 것에 의해 직접성을 띠고 있다고 했다.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한다면 월터카이저는 구약신학의 중심 주제가 “언약”이며 그 근거는 창1:28이며 이 언약의 개념은 고대 근동종교의 혼합개념도 아니고 기자들이 고안하여 낸 개념도 아니며 성경자체의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1:28의 언약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영적으로 번성한다고 주장하므로 창 1:28에서의 언약이 신약에 와서 성취되어진다는 구도를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평가
◎ 긍정적인 면
첫째. 구약신학을 성경자체에 두고자하는 점은 오늘날 모든 신학이 철학화 되어 가는 시점에 매우 높이 평가하고 싶다. 또한 성경 본문을 text로 함에 있어서 그 본문이 무흠하다는 사상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둘째. 구약의 통일된 주제를 “언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더욱이 언약의 개념이 아이히로트나 죤징컨드와 같이 비교종교학적 개념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어지고 주어진 개념이라는 것은 높이 평가한다.
셋째. 창 1:28의 내용을 언약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박용기 목사님의 견해와 일치하고 있다. 더욱이 축복과 언약의 용어에 대하여서 어떻게 같은 개념에서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주장은 대단히 가치롭다.
넷째. 창1:28 의 내용을 인간에게 하시는 명령으로 이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친히 이루어주신다는 언약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결국 성경 66권의 전체에 나타난 모든 내용이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할 근거로 가지게 된다.

◎ 부정적인 면
첫째. 창1:28을 언약이라는 개념으로 보고 그 개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의해서 이룩된 것이라고 했으면 그의 신학구조를 그 개념에 따라서 논리전개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둘째. 창1:28의 내용은 그의 전체적인 신학 구도로 잡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그의 신학의 정의에 대한 견해라 보여진다. 즉 “신학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사역과 땅위에 있는 그의 백성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연구이다”라 했다.
셋째. 창 1:28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전체적인 구도를 짜지 못했던 것은 통시적인 신학방법을 곁들었기 때문이다.(성경 자체의 논리를 따르지 못했다는 것)

4. 박용기 목사님의 성경신학
제 1편 성경신학 서론
제 1장 성경신학의 개요
1. 성경신학의 정의(p. 17)
박목사님은 신학의 정의에 있어서 전통신학을 거부하고 성경 신학적인 입장에서 “성령께서 계시를 통하여 중생한 이성에게 하나님을 깨달아 경외케하시는 사역이다”라고 정의하였다. 그 이유는 신학의 대상이 성경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2. 성경신학의 학문적 위치(p 22)
전통신학에서는 성경신학은 주경신학의 한 분야로 취급하는데 박목사님은 성경신학은 모든 신학의 원천이라 하였다.

3. 성경신학의 필요성(p 28)
성경신학의 필요성은 신학의 난해와 혼란, 그리고 인본주의 신학의 도전 앞에서 시들어 가는 개혁신학의 소생을 위하여서이며 사이비 운동의 발흥 때문이라 했다.

4. 성경신학의 목적(p 31)
성경신학의 목적은 지엽적이 아닌 근본적인 성격을 지녀야하므로 “바른 신관 정립”을 근본 목적으로 하며, 수반되는 목적으로는 “성경적 바른 가치관 정립”이라 하였다.

5. 성경신학의 방법(p 36)
성경신학의 방법은 인간 사색이나 경험에 의한 철학적 방법을 배격하고 기독교 유신론적 방법(내용면에 치중)과 계시의존 사색적 방법(형식면에 치중)이어야 한다고 했다.

제 2 장 성경신학의 원리
박목사님은 기독교 인식론에서 전통신학의 인식론과 다르게 성경신학적 입장에서 전개한다.
1. 인식의 대상 직접대상 → 하나님
간접대상 → 사물
2. 인식의 도구 → 성경계시
3. 인식의 주체 → 중생한 이성
4. 인식의 주관자 → 성령 (영혼을 중생케하시고, 계시를 깨닫게 하시고, 진리로 자유케 하신다)

* 전통신학의 인식론
1. 인식의 대상(실유의 원리) → 하나님
2. 인식의 도구(외적 원리) → 계시
3. 인식의 주체(내적 원리) → 믿음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전통신학의 인식론과 성경신학적 인식론의 차이점은 인식의 주체에 있어서 중생한 이성(성경신학)과 신앙하는 이성:믿음(전통신학)의 차이와 또한 전통 신학에 있어서는 인식의 주관자가 없다는 것이다.

제 2편 구약신학
제 1장 구약신학 서론
1. 구약신학의 원천(근거) p 91
박목사님은 구약과 신약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일반학문과 성경이 다르므로 철학이나 과학을 원천으로 삼을 수 없으며 어디까지나 성경을 유일한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구약신학의 원천은 일반학자들의 주장하는 고고학, 지질학, 역사학 등에 의존하는 것을 거부하고 구약을 직접적 원으로 하고서 신약을 간접적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2. 구약의 논리적 통일성
구약신학에 있어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고 구약의 논리적 통일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전개하였다.
1) 역사서의 논리적 통일성(약속과 성취의 도식)
창~ : 이스라엘 열조와의 언약(자손 번창, 땅 정복, 나라 세워서 통치)
출 ~ 신 : 약속대로 자손 번창
수 ~ 삿 : 약속대로 땅을 정복
룻 ~ 에스더 : 나라를 세워 다스리게 해 주시고 끝까지 보호
2) 역사서와 성문서의 관계
역사서와 성문서의 관계는 창세기에서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어 주신 하나님을 성문학적 방법으로 찬양하는 내용이므로 역사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논리적 통일성이 있다.
3) 역사서와 선지서의 관계
이사야 ~ 말라기는 역사서와 관계에서 각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역사서와 선지서는 나누어질 수도 없으며 논리적 통일성까지도 유지할 수 있다.

3. 구약에서 하나님의 칭호(p. 10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칭호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여 주셨기에 칭호를 연구하는 것이 구약신학을 위하여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칭호에는 하나님의 속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명사 ★ 엘 : 능력이 있고 힘이 센 하나님
(전능성, 주권성) ★ 엘로? : 주인(세상의 주인되심)
★ 엘로힘 : 권위와 능력이 충만한 하나님
★ 엘리욘 : 숭고하고 존귀한 하나님

서술명사 ★ 엘 솨다이 : 전능한 하나님
(전능성, 주권성) ★ 아도나이 : 하나님은 통치하시는 주
★ 체바오트 : 만군의 여호와

고유명사 ★ 여호와 : 존재하다. 스스로 있는자, → 한번 약속하면 반드시 이 루어 주시는 분(언약과 관계)

* 김희보 박사는 「구약신학 논고」제 5장에서 하나님의 칭호를 논하면서 “여호와”는 고유명사이며 그의 영원불변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의미를 강하게 표현한 말이라 했다. 그리고 여기에 특별히 강조되는 점은 「시작과 더불어 이루시며 완성한다」는 뜻이다 하였다. (김희보「구약신학논고」기독교 문서 선교회)

4. 구약의 주제(p 113)
전통신학에서 구약의 주제가 포괄적이지 못하고 부분적인 주제들로 이루어진 것은 구약계시의 목적 면에 치중하지 아니하고 계시의 방법 면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라 지적하고, 구약계시의 목적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심”에 치중해야 한다 했다. 그래서 성경신학 입장에서는 단순하고 명료하게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고 구약의 주제를 천명했다.

《박 목사님의 언약에 대한 견해와 월터 카이저의 언약에 대한 견해》
박 목사님의 성경신학 중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창 1:28의 내용을 어떠한 맥락에서 취급되어지느냐이다. 박목사님은 창 1:28에 나오는 복이란 단어를 논하기 앞서서 언어학적인 분석을 가하고(p. 122참고) 성경에서 복이란 언약의 내용이며 언약이란 복의 형식을 표현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창 1:28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복으로 주신 언약은 절대성과 은혜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언약의 절대성의 구체적인 증거는 언약의 내용들이 명령문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라 했다. 이 절대성은 일방적이며, 불변적이며, 무조건적이며, 주권적이라 했다(p. 125)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이 주장하는 박목사님의 견해가 타당한가를 밝히고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와 같은 주장의 정당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목사님의 신학의 구도인 창1:28견해가 허구로 끝나게 되고 신학체계는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월터 카이저의 「구약 성경신학」과 「새롭게 본 구약」의 도움을 빌리고자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신약 성경이 구약성경 교훈의 초점을 언약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반면 구약성경은 그것을 언약. 맹세, 축복, 안식 그리고 자손이라는 단어들을 가지고 표현했다”
“성경 기록의 초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집단을 형성케 한 고정된 핵심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약의 내용에 맺어졌다. 이 내용은 축복과 언약이 계시된 말씀이었다.”
“이와 같이 본문에서 끌어낸 중심점은(신약 성경에서 ‘언약’, 에판겔리아 -으로 칭한다) 어근으로 구약성경에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최초의 표현은 ‘축복’이었다. 그것은 물고기와 새들에게 주신 첫 선물이었고(창1:22) 인간에게 주신 것이었다(28절)”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정경의 순서에 가장 먼저 사용된 약속에 관한 용어는 창1:~11장에 자주 등장하는 ‘축복’(혹은 축복하다) 이라는 단어이다. 하나님은 이 단어로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실 일(예를 들어 창1:220)과 특히 인류에게 하실 일(창 1:28)을 말씀하셨다”
위의 인용문들을 살펴보면 그는 창1:28의 “축복”이란 단어를 언약과 관계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그의 신학의 구도 속에서 핵심 주제인 언약의 출발을 창1:22와 1:28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맹세, 안식, 축복, 말씀”과 같은 단어들이 약속과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 박목사님은 “언약”이란 절대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일방적이며 불변적이고 반드시 이루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카이저는 창 1:22는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며, 창1:28은 특히 인류에게 하실 일이라 하였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 보기 전에 한가지 정리할 것이 있다. 즉 위에서 “축복”은 “언약”과 관련된 단어라 했다. 그렇다면 창1:28내용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언약하신 내용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실 일‘이란 세 가지 곧, ”생육 번성과 땅정복 그리고 다스림“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일이 언약이고 축복인 누가 하시는가? 인간이 아닌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창1:22절이나 28절에는 어떠한 조건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위의 내용들은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한 것이다.
또 다시 카이저의 음성을 들어보자
“조건부가 아닌 약속은 쌍무적인 언약이 아니라 한쪽 당사자가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오직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신실성에만 의존하시는 유일한 당사자 되시는 언약이다.”
“그런데 다음의 언약들은 조건적인 언약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노아언약,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 새 하늘과 새 땅의 언약 등의 것이다. 이 다섯개 중 어느 언약도 맺어질 때 하나님께서 상대 당사자들이 어떤 의무 조항이 동의하도록 요구하시는 곳이 없다.”
위에서 인용한 내용을 살펴보면 창 1:28의 언약이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이고 주권적임이 확인된다. 이러한 주장은 박목사님의 견해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창 1:28의 언약이 아브라함의 언약과 어떻게 관계 지어는가를 밝히 말한다.
“인간에 대해서는 그것(언약 -발제자, 주) ‘지배’이상의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동일한 말이 땅위의 모든 족속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영적으로 번성한다는 것에 의해 직접성을 띠고 있다. 이것 역시 ‘축복’의 부분이었다. 명백히 축복이라는 용어가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내는 첫번째로서의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
위의 인용문을 확대 해석 한다면 창1:28의 언약이 아브라함에게 이어지고 나아가서 그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어서 영적으로 번성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마1:1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하는 구절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보아진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아브라함 언약, 다윗의 언약, 새 언약, 새 하늘과 새 땅의 언약이 창 1:28의 언약과 한 줄기 안에서 잘 어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은 그가 “언약”개념이란 현존하는 정견자체의 주장이며 성경기자들이 고안하여 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하는 주장은 박목사님의 “언약”개념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하여 본다면 박목사님의 성경신학 방법론이 외부적인 것(철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이론)을 따르지 아니하고 성경자체의 논리에 따라 창1:28을 “언약”이란 중심 아래서 성경신학의 구도를 짜고 전개하였다는 것은 금세기 개혁신학의 대단한 성과라 하겠다. 대다수의 성경신학자들이 “언약”이라는 주제 아래서 성경신학을 전개했으나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언약의 개념을 성경 자체에서 찾지 못하고 비교종교학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자체의 논리를 따라서 언약과 성취라는 구도 아래서 펼쳐진 성경신학의 위대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바이다.

제 3편 신약신학
제 1장 신약신학 서론
1. 신약신학의 원천(근거)
신약신학의 원천은 신약성경이다. 왜냐하면 성경신학이란 학문자체가 신·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신가를 밝혀내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 근거를 성경에 두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나아가서 구약은 간접적 원천이 되는 이는 신약에 계시된 하나님이 구약성경에서 예언적, 모형적으로 계시되어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신학은 직접원천으로 신약성경을, 간접원천으로는 구약성경을 근거로 한다.

2. 신약의 논리적 통일성
1) 사복음서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신약의 논리적 통일성을 부정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서 종합하여 연구한다. 그러나 사복음서는 신학적 차원에서 설명되고 이해되어져야 한다.
마태복음 → 성자의 직임
마가복음 → 성자의 신분
누가복음 → 성자의 사역
요한복음 → 성자의 본성

2) 사복음서와 사도행전과의 관계
사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사도행전은 성령의 사역을 통한 사도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사복음서는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을, 사도행전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시어 제자들을 통해 구약에 약속한 그리스도를 증거케 하여 교회를 세우게 하신 내용이다.

3) 사도행전과 서신서와의 관계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중심한 내용으로 그 자체의 논리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서 교회를 설립케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서신서는 세워진 교회를 성령께서 견고케하시며 가르쳐 자라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4) 서신서와 요한 계시록과의 관계
서신서는 교리내지 교훈적 성격을 지닌 반면 계시록은 교훈적이기도 하지만 예언적이다. 요한계시록은 성령의 역사로 세워진 교회들을 계시 교훈하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능과 진노의 모습을 교회들에게 보여주며 교회들에게 교회의 최후 승리와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신다.

3. 성자와 성령의 칭호
성자의 칭호는 계시적인 의미가 있기에 칭호를 알아봄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칭호들이 가지는 의미와 성격대로 역사하며 계시사역을 이루어 가도록 섭리하기 때문이다.
★ 주(큐리오스) : 주인, 지배자, 임금, 주권자 - 다스리는 사역과 관계
★ 예수 : 여호와는 구원자 - 구원하시는 사역과 관계
★ 그리스도 : 기름 부음을 받는 자 - 직임 수행을 하는 사역
★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사역

* 김희보 박사는 “구약 신학 논고”에서 하나님의 칭호인 “여호와”를 논하면서 여호와의 칭호가 신약에서 “큐리오스”란 용어로 70인경에 번역되었음을 지적하고 이것은 “야웨”와 “그리스도”를 동일시하는 증거라 했다.(김희보「구약 신학 논고」기독교 문서 선교회. p. 81)

4. 신약의 주제
전통신학에서 신약의 주제는 산발적이다. 이유는 성경에서 일관된 논리의 통일성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약계시의 목적은 구약에서 약속한 그리스도를 약속대로 하나님께 알게 하려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신약 신학의 주제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이다.


Ⅲ. 결론
우리는 이제까지 세 사람의 성경신학자의 성경신학과 박목사님의 성경신학을 살펴보았다. 이제 살펴본 바를 종합하여 결론하여 보자
1. 아히히로트의 구약 성서 신학
그는 그의 「구약성서 신학」에서 “언약”을 중심개념으로 하고서 신학을 전개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신학 방법론이 비교종교학이므로 언약의 개념 또한 비교종교학적 개념으로 정립하게 되었다. 결과에 있어서는 성경자체의 개념을 도출하지 못하고 나아가서 언약이 성경의 중심 주제임을 증명하는데 실패하였다.

2. 폰라드의 구약 성서 신학
폰라드의 신학은 “전승사 신학”이다. 즉 그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전승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구원하는 행위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였는가(고백)에 초점을 맞추고 전승사적 방법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학의 연구 목적인 신지식보다 인간의 삶이 신학의 대상이 되는 결과를 가지게 되므로 신학을 윤리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3. 월터 카이저 구약 성서 신학
그는 성경의 중심점을 “언약”으로 천명하고 창1·:28을 언약으로 해석하고 출발의 근거로 삼았다. 또한 이러한 언약의 개념은 정경자체에서 도출된 것이며 하나님이 계획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언약의 개념에 의해서 성경 전체의 구도를 짜고자 했었다. 이렇게 확실한 성경자체의 개념을 확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학의 논리전개에서 실패함은 성경자체의 논리보다는 통시적인 방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4. 박용기 목사님 성경신학
박목사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언약”의 개념이었다. 성경자체의 논리에 따라서 언약 개념을 정리하고 여호와의 칭호와 관계해서 언약 개념을 정리하였다. 특히 창 1:28내용을 축으로 하는 성경신학의 구도는 언약과 성취로써 성경 66권의 논리적 통일성을 이루었다. 그래서 우리는 목사님의 언약 개념이 성경자체 논리에서 도출된 개념인가를 월터 카이저의 성경신학을 비교 검토하면서 확보하였다.
결론적으로 성경신학이란 성경자체에서 도출된 개념과 논리를 따라서 체계화되어져만 한다. 그러므로 박목사님의 「성경신학」의 진가를 다시 한번 위대하게 평가하는 바이다.


◈ 참고도서 ◈

1. 박용기 「성경 신학 개론」 진리의 말씀사
2. 게하르트 하젤 김경우역 「구약신학: 현대 논쟁의 기본 이슈들」엠마오
3. 게하르트 하젤 권성수역 「신약신학: 현대 논쟁의 기본 이슈들」엠마오
4. 김정준 「폰라드의 구약신학」 대한기독교서회
5. 게할더스보스 이승구역 「성경신학」 C.L.C.
6. 죤 징컨드 김영철 역 「성경과 하나님의 언약」 여수룬
7. 팔머 로벗슨 김의원 역 「계약신학과 그리스도」 C.L.C.
8. 김희보 「구약신학논고」 기독교 문서 선교회
9. G.F.하젤 이군호역 「현대 구약신학의 동향」 대한기독교서회
10. 간하배 「신약학서신」 총신대 출판부
11. 박형룡 「교의신학 1권」
12. 발터 아이히로트 박문재 역「구약성서 신학」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3. 월터 카이저 최종진 역 「구약 성서 신학」 생명의 말씀사
14. 월터 카이저 김의원 역 「새롭게 본 구약」 엠마오
15. 말씀 운동 계간지 1994년 겨울호 진리의 말씀사
16. 데오도르 플랜팅어 김영철 역 「성경과 구원 역사」 여수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