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신학
제 1 장. 서 론
히브리서 1장 1-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이고 중요한 말로서 성경신학의 형성된 개념들과 구조적인 양태를 표현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말은 성경신학의 학문의 정곡을 찌르는 것으로 ‘하나님 자신’을 말하
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은 성경신학의 대상인 ‘인간’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인류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은 선지자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택한 종’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셨다(하나님의 입).
◎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인류에게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 백
성들에게 ‘의사전달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경로와 방법들을 사용하였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
다.
◎ “이 모든 마지막 날에 아들로 말씀하셨다”는 이 말씀 표현 속에는 ‘매우 중요한 연대기적 측면을 들어
내면서 하나님의 계시 사역의 위대한 종말론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살던 시대를 초월하여 마지막 날들(말세)을 바라보았다. 그 마지막 날에 그 아들의 오심을 통하여 말세가 시작되었다.
누가복음 24장 44절에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고 했다.
사도행전 13장 32-33절에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고 했다.
바울은 앞으로 오실 그 분에 대한 구약의 모든 기록은 좋은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것이 성경의 두 부분으로 구약과 신약이라고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다.
이 말은 베드로는 신적 계시에 대해 말하였다.
신적 계시는 성경의 두 가지 측면인 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표현하고 있다. 즉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포하는데 이것은 동시에 인간의 말(언어)을 통하여 선포한다. 이런 신적 계시의 과정에 관한 형태 개념을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보자.
① 신적 계시성.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말씀은 신적 계시이다.
② 신적 계시의 진행성.
이 신적 계시의 집행자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시다.
③ 신적 계시의 권위성.
이 신적 계시는 선지자를 불러 선포하셨다. 이들은 하나님께 부름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말하였다. 그러므로 특별 권위를 가지고 있다.
④ 신적 계시의 다양성.
이 신적 계시는 말(언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을 여러 모양으로 주어졌다.
⑤ 신적 계시의 종말성.
이 신적 계시는 그 시대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약속의 말씀으로 종말론적이다. 선지자들은 앞으로 도래하는 시대, 즉 말세를 바라보았다. 이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자유와 구원의 축복을 주실 것이다.
⑥ 신적 계시의 통치성.
이 신적 계시는 좋은 소식, 복음으로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통치할 분이시다.
⑦ 신적 계시의 소망성.
이 신적 계시는 소망을 근거한 약속들을 주어졌다.
⑧ 신적 계시의 관계성.
이 신적 계시는 그 백성들과 맺은 언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 자신에게로 이끌어 오신다. 이 언약 관계를 구약과 신약은 연결해 주고 있다.
⑨ 신적 계시의 역사성.
이 신적 계시는 인간 역사와 그 시대 상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다.
⑩ 신적 계시의 통일성과 점진성.
이 신적 계시는 통일성과 점진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통일성”은 계시가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데 있다. 또한 “점진성”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신적 계시가 점진적으로 발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신적 계시의 연구의 중요성은 통일성과 점진성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⑪ 신적 계시의 영감성.
이 신적 계시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어(口語) 말씀과 성문(聖文) 말씀을 정립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포자들(선지자들, 그리스도, 사도들)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문 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말씀으로 구어 말씀과 동일하다.
⑫ 신적 계시의 가치성.
이 신적 계시는 특별한 가치들이 주어 졌다.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도록 교훈하는 능력이 있다. 가르치고, 훈계하고, 올바르게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선행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한다.
제 2 장. 성경신학이란 무엇인가?
Ⅰ. 성경신학의 정의.
찰스 라이리는 말하기를 “성경신학은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발전 과정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조직적으로 취급하는 신학의 한 분야이다”고 했다.
체스터 레만은 말하기를 “성경신학은
① 하나님의 계시적 행동과
②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인간의 영적 경험들
③ 성문 말씀의 특성들의 빛 가운데서
④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시를 취급하는 성경해석의 한 가지이다”고 했다.
만약 성경신학이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발전 과정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조직적으로 취급하는 신학의 한 분야라고 한다면......
1. 성경신학의 조직성.
성경신학은 연구 결과를 조직적인 형태로 제시해 주어야 한다. 성경신학이 조직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성경신학이 조직신학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성경신학이 어떤 것이든 간에 비조직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성경신학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신학을 다른 신학과 구분해 주는 것이 아니다. 즉 관계된 신학이다.
2. 성경신학의 역사성.
성경신학을 다른 연구 방법들과 구분해 준다. 성경신학은 계시가 역사 속에서 구체화되었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을 한다. 그러나 성경신학은 단순한 역사 과학이 아니며, 단순한 역사적인 상황만을 탐구하는 것도 아니다.
또 역사적인 상황에 의해서 계시가 제약을 받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신학이 역사에 가장 큰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것 때문에 계시가 말씀 속에서 주어졌다는 사실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도 아니다(고전2:13).
성경 저자들의 삶과 성경의 기록 배경과 독자들의 상화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기록한 말씀 속에 계시된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준다. 이처럼 교리의 역사적인 조건에 대한 연구가 성경신학의 주요한 강조점이다.
3. 성경신학의 계시의 점진성.
성경신학은 다른 연구 방법들과 구분하는 계시의 점진성이다. 성경신학은 계시의 발전성과 관계가 있다. 다양한 저자들의 의해서 계시된 발전 과정에 대하여 연구하며 또한 상이한 발전 단계 속에서 나타나 있는 교리에 발전 과정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우리가 성경을 완성된 계시라고 부르는 것은 단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제대로 깨닫고 있는 사람은 너무나 적다. 또 이 계시는 언제나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의 다양한 시기에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정도의 계시를 주셨다. 계시는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계속된 일련의 행위들 속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과 손을 통해 계시된 것이다.
교리의 발전 과정을 보여 주는 성경신학의 특징은 이신론적 계시관과 대조되는 유신론적 계시관을 보여 준다. 그것은 성경신학의 계시관은 하나님의 계시 사역이 단번에 완성되어서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유익한 방법으로 성경을 쓰여진 그대로 보려고 한다.
4. 성경신학의 정경성.
성경신학이 조직화 될 내용은 성경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자료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신학이 성경 이외에 다른 계시 수단을 통해서 얻어지는 계시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Ⅱ. 성경신학과 다른 신학과의 관계
성경신학과 밀접한 관련된 다른 신학분야들과의 관계를 비교함으로 성경신학의 정의를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기로 한다.
1. 성경학 분야로서의 주경신학이다.
성경의 역사성을 밝히고 증명하고 지지하기 위한 연구이다. 여기에는 성경지리, 이스라엘 역사에 영향을 미쳤던 당시 주변국가들의 역사연구, 성경 고고학,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의 종교에 관한 연구, 성경 언어들, 성경 해석학을 포함한 성경 비평학들이 속한다.
성경 비평에는 성경을 이루는 책들을 연구하는 정경학, 성경의 정확한 본문을 파악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본문학, 저자, 저술 연대, 성경 각 권의 문학적 특성들을 연구하는 문학 비평들이 있다. 성경 해석학은 그 해석의 과학이다.
1) 성경 개론과의 관계
성경신학은 성경 개론의 연구 결과를 대부분 받아들이기 때문에 성경신학 서적에서는 다시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신학은 개론에 대한 비평적인 연구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 개론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저작권, 저작 시기, 수신자의 문제 등은 성경신학의 역사적 관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성경 개론의 연구 결과에 기초해서 요약된 형태로 언급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면 바울의 신학을 다루기 전에 목회서신의 저자 문제를 상세하게 취급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신약, 신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달리하기 때문에 바울 신학에 속하느 자료의 범위가 정확히 어디까지인가를 정하기 위하여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성경신학은 상세한 비평적 연구에까지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은 바이스(B. Weiss)가 바르게 지적한 것처럼 “성경신학은 단지 역사 기술적인 학문이지 역사 비평적인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2) 주석과의 관계
성경신학은 주석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이유는 성경신학은 주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 주석은 반드시 문법적이어야 한다.
② 주석은 역사적이어야 한다.
③ 역사적, 문법적인 해석은 성경신학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 본문에 대한 주석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성화인가? 세례의식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 그러므로 주의 깊은 주석은 정확한 신학을 세우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주석의 임무 중 하나인 사본 문제의 해결도 또한 성경신학의 기초가 된다.
성경신학은 주석을 넘어서 있다. 왜냐하면 성경신학은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저자의 글 속에 반영된 사상 속에서 저자의 신학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2. 역사분야로 역사신학이다.
데이비스(John D. Davis)는 말하기를 “성경역사란 성경에서 종교의 근본을 형성하는 일련의 사건들의 기록”이라고 하였다
이런 성경역사의 개념은 성경신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디딤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종교의 근본을 형성하는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에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들이 포함된다. 성경신학은 성경역사의 무대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연구한다. 이는 신적 계시의 양식, 형태, 내용, 그리고 역사적 배경들에 상관되어 있다.
1) 기독교 교리사와의 관계
성경신학은 역사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으나 분명히 기독교 교리사와는 다른 것이다. 기독교 교리사는 성경의 독자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교회의 공의회를 통하여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성경신학은 성경의 저자들이 생각하고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성경신학은 성경의 인간적인 측면들 속에 나타난 계시를 연구한다. 반면에 기독교 교리사는 이에 대한 교회의 해석을 연구한다.
3. 신학분야로 조직신학이다.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많은 혼란과 모호성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양자는 모두 성경적이며 조직적이다. 그러나 조직신학은 성경적이나 접근하는 방법이 성경신학과 차이가 있다.
㉠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드러나는 과정을 검토한다. 이는 신적 계시의 양식, 과정, 발전,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조직신학은 하나님의 전체 계시를 조망하면서 이런 교훈들을 체계화하고 교리적 형태로 진술하고자 하는 것이다.
㉡ 성경신학은 성경에 기록된 언약들에 관한 신적 계시의 드러남을 연구한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스도에 의하여 맺어진 언약들은 시대적 역사의 무대 속에 연구될 것이다.
반면에 조직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던 인간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의 전체적인 사상을 제시한다. 이 교리적 내용이 대속, 그리스도의 왕권, 성만찬 등, 다른 위대한 신학적 교훈들과 가지고 있는 상관 관계가 이 교리의 의미에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하여 준다.
1) 조직신학과의 관계.
① 순서에 있어서.
엄밀히 말하면 성경신학은 조직신학의 기초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교육체계를 보면 보통 조직신학은 필수과목인데 반하여 성경신학은 선택과목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성경신학이 논리적으로 조직신학의 연구에 뒤따라오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 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성경신학이 조직신학에 선행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공부의 순서는 개론, 주석, 역사적 배경, 성경신학, 그리고 최종적으로 조직신학이 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시작하려고 한다면 이런 순서는 지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고 조직신학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고 시행되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조직신학을 공부하면서 한정된 커리큘럼과 시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업적과 사상 등을 공부해야만 한다. 이런 공부가 끝난 다음에 비로서 그들은 성경신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본다.
② 목적에 있어서
성경신학의 목적은 성경 저자들이 무엇을 진리라고 생각했는지를 그들의 글과 그들의 글 속에 반영되어 있는 그들의 신학적인 사고로부터 발견해 내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에 조직신학의 목적은 진리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진리가 되는지 그 이유까지를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조되는 기준 틀 속에서 볼 때 성경신학이 순수하게 역사적인데 반하여 조직신학은 역사 철학적이다.
③ 관점에 있어서
조직신학은 기독교 사상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하나의 조화로운 통일체를 제시해 준다.
반면에 성경신학은 유대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사고방식을 그들이 종사했던 특정한 시기의 역사적 입장에서 제시해 준다.
조직신학의 시각이 현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면, 성경신학의 시각은 성경 저자의 것이다.
④ 내용에 있어서
조직신학은 관련이 있는 한 성경 전체에 근거한다.
반면에 성경신학은 성경의 각 부분들을 따로 탐구한다. 비록 이 각부분들의 총합은 성경 전체가 되겠지만 각각 특정한 시기의 내용들이나, 각각 특정한 저자의 사상들이 분리되어서 조사되어 질 수 있도록 각 부분에 대한 연구가 나누어져 있다.
조직신학은 마치 성경신학이 분리해서 세밀하게 검토한 꽃잎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꽃과 같다.
2) 변증학과의 관계
성경신학은 변증학의 결론들을 받아 들여서 그것들을 발판으로 삼는다. 무엇을 기본 가정으로 삼았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유신론, 초자연적인 이적들, 유기적 축자 완전 영감설을 확신해야 한다. 그래야 성경신학은 이런 기초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해 성경신학이 다른 성경연구 분야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성경신학은 나름대로 독특한 분야이다.
성경 신학자들은 변증학과 개론의 결론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철저한 주석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능력있는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그 후에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발전 과정을 탐구하고 이것을 조직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자젹을 가지게 된다.
이럴 때에 비로서 진리의 원천들에 대한 편견없는 역사적 탐구의 소산이 조직신학이 아닌 성경신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Ⅲ. 성경신학의 방법론
보스(G. Vos)는 성경신학의 방법은 주로 역사적 진보의 원칙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였다. 신적 계시에 관한 시대의 구분은 계시 자체가 드러내어 보여 주고 있는 구분과 엄밀하게 일치하여야 한다. 성경은 자신의 신체구조를 의식하고 있다.
이런 접근을 통하여 우리는 신적 계시의 가장 근본적인 구분을 이루는 경계선들은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맺어졌던 언약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
욀러(G. F. Oehler)는 성경신학의 방법은 역사적, 유전적이라고 하였다. 성경신학은 역사적인 과학으로서 문법적, 역사적 주해의 결과 위에 기초한다고 하였다. 이 임무는 성경해석학의 원칙들을 충실하게 준행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계시가 그 내용을 표현하는 다양한 양식들을 알아서 이 양식들을 “발전의 유기적 과정의 부분들”로서 이해하여야 한다.
욀러는 성경신학은 구약을 구약이 예비하고 있는바 그리스도 속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계시의 빛 속에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성경신학은 그리스도 속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가 계시역사의 예비적 단계들을 통하여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조직신학의 방법은 어떤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계시된 모든 진리를 인간이 고안해 내서 일반적으로 수용된 범주들을 따라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으로 조직화하는 것이다.
성경신학의 방법은 어떤 시기 중에 또는 어떤 저자를 통해 계시된 진리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구약 성경신학은 다양한 시기동안 점진적으로 계시된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반면 신약 성경신학은 다양한 저자들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계시된 진리를 있는 그대로 조직화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구약은 여러 세기를 거쳐서 계시가 주어진 반면, 신약은 한 세기가 약간 못되는 기간에 한정되어 계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Ⅳ. 성경신학의 연구에 대한 가치
성경신학은 시대별로, 성경 저자별로 세분화된 조직신학의 축소판이 아니다. 그 이유는 기존의 조직신학 체계화에서 수용된 교리가 성경의 특정 저자나 특정시대에 주어진 것으로 교리들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신학은 전적으로 주석적이거나 역사적이거나 신학적이거나 주해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모든 접근 방법들을 종합한 전적으로 새로운 접근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 접근 방법의 가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1. 성경신학은 교리를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파악한다.
조직신학의 치명적인 약점은 교리를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 종종 있다. 그 이유는 성경 본문이 조직신학의 체계를 형성하기보다는 신학적 체계가 어떤 구절이나 한 본문의 의미를 결정짓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교리를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보는 것은 신학체계를 남용하는 것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2장에서는 “죄”라는 단어가 언급되지 않음으로 베드로는 오순절 날 죄에 대하여 설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설교의 역사적인 상황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그때의 범죄의 배경 속에서 회개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신학은 우리를 이런 실수들로부터 보호해 준다.
2. 성경신학은 신학적 구조를 강조한다.
성경신학은 몇 개의 성경에 있는 본문(구절)에 의하여 신앙의 기본 교리들을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해결해 준다.
영감교리는 신약의 두 개의 본문의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딤후3:16, 벧후1:21). 이것으로 성경의 영감교리의 증거는 오직 두 개의 구절밖에 없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이런 인식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야고보서를 성경신학적으로 연구해 보아야 한다.
야고보서는 영감에 대하여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야고보서에 나타난 말씀의 교리를 연구해 보면 야고보가 성경의 권위와 영감의 교리에 대하여 확고한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들어 난다.
신학적인 하부구조는 어떤 교리를 증명하는데 있어서 그 교리를 명백히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만큼이나 유효한 증거이다. 그리고 모든 신학분야들 중에서 이러한 신학적인 하부구조를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것이 성경신학이다.
3. 성경신학은 영감교리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영감이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 저자들이 개성을 활용하여 원본에 오류없이 쓰고 기록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감독하심으로 정의 할 수 있다.
이 정의에는 성경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감독하심, 축자적 무오성, 인간 저자의 독자성 등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에 자유주의 학자들은 본문이 아닌 저자의 관점에서 영감교리를 재 정의를 함으로서 영감에 있어서의 신적 요소를 사실상 부정해 버렸다. 이들은 성경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 부분은 영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과연 성경의 어느 부분이 진리를 말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가 되어 버렸다.
이런 종교사적 접근 방법과 싸우기 위해서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의 신적 저작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런 강조는 자유주의자들과 신정통주의자들로부터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영감설은 구술을 의미하고 있다는 비난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영감교리에 있어서 인간적인 요소들이 너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성경신학은 바로 이런 약점을 보완해 준다.
성경신학의 역사적인 접근방법은 성경의 문자 배후로 들어가서 성경 저자들의 개인적인 배경, 관심, 문체 등을 강조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신학이 성경에 대한 하나님의 감독하심에 기초하고 있기는 하지만 또한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인간 저자도 강조하고 있다.
4.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인식을 증진시켜 준다.
성경신학의 장점은 성경 저자들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을 통하여서 얻어진다. 성경신학의 장점은 다양한 시대의 관점에서 계시를 봄으로서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모세 오경의 신학을 공부하고 나서 바울의 신학을 공부하게 될 때에 우리는 양자의 계시의 내용이 날카롭게 대조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가 모세 오경의 신학을 연구하면서 신약의 관점으로 구약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의 그림자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를 비교해 볼 때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대조는 계시의 충만함을 누리는 빛나는 영광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직 감사와 겸허함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런 대조는 성경신학 연구의 소산 중의 하나이다. 이것을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이다.
성경신학은 성경을 연구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이것이 아무리 독특하고 아무리 많은 유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는다면 별로 유익이나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그것은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시다(요16:13-15).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공부해도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를 거두기 위하여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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