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 : 17 - 21 상을 향하여 달리는 사람
동계 올림픽 이상화 선수 시상 모습과 인터뷰 (프로페차이 동영상 7분부터 - 훈련의 고통을 이긴 결과)
4년마다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이를 위해 선수들은 저마다 4년 동안 피나는 훈련을 합니다. 각종 기록경기를 하는 선수들을 보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금메달을 따고 기록 향상을 하기 위함입니다. 1초를 앞당기기 위해 얼마나 힘든 훈련을 합니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연습할 때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달리다가 호수에 빠져 죽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100리나 되는 먼 거리를 달려와서 좀 쉬고 싶은데 계속 운동 시키는 코치를 죽이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코치가 경상도 분인데 빙그레 웃으면서 “영조야 니 힘드나? 니는 안 보이는지 모르지만 나는 보인데이...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니가 일등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그리고 니가 월계관 쓰는 모습이 보인데이” - 그럴 때마다 입술을 깨물고 아픔과 고통을 잊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목표와 푯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힘들지만 극복하고 뛸 수 있습니다.
어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 중에 3%만이 목표와 계획을 설정하여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는 목표와 계획을 가지되 머릿속에만 있고 실천에 옮기지 않고, 나머지 87%는 분명한 목적과 계획 없이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합니다.
'크리스천의 자기관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스테펀 더글라스'라는 분이 지은 것인데, 시간 계획과 자기 관리의 실제적인 지침서입니다. 그는 서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오늘은 남쪽 밭을 갈러간다며 트랙터를 몰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는 트랙터에 기름을 넣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차를 들판에 세워둔 채 그는 기름 사기 위하여 주유소로 갔습니다. 주유소로 가는 길에 그는 돼지에게 밥을 주지 않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옥수수 창고로 가서 돼지 사료로 쓰이는 먹이 자루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루들을 보자 저장고에 있는 감자에 싹이 트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감자 구덩이를 향하여 가는 길에 장작더미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아내가 장작을 가져달라 말 한 것이 기억났습니다. 몇 개의 나무토막을 줍고 있는데, 병든 닭이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저 닭이 왜 병들었을까 해서 장작을 내려놓고 그 병든 닭을 쫓아갔습니다. 이미 해는 서산에 넘어가지만 결국 그는 들판에 세워둔 트랙터에 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목표 없이 우왕좌왕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일본인 작가 미네노 다쓰히로가 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대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받아 원하던 대학에 들어간 후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비통하게 여긴 부모들이 애통하며 아들을 장례 지내고 난 다음 아들의 일기장을 들췄습니다. 일기장에는 유서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는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위해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합격한 지금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떤 가치와 목적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가? 본질적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 무엇인가 빈자리가 있고 안개 낀 것처럼 불안합니다. 그 이유는 인생전체를 이끌어 가는 올바른 목표와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의 이야기입니다. 23대 해리슨 대통령이 그에게 체신부 장관직을 제의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일성수를 할 수 없다는 것과 주일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런 조건을 보장받고 장관직을 맞게 됩니다.
나중에 기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장관은 부업입니다. 고작 몇 년이면 끝납니다. 하지만 신앙은 평생 하는 본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 중간에 끝납니다. 세상 끝까지 지속될 일은 신앙생활입니다. 여기에 인생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목표는 과연 무엇입니까?
본문 12 - 을 읽습니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사도 바울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라 했습니다. 부르심을 ‘calling’이라 하는데, ‘위에서 부르셨다’는 말은 ‘high calling’으로 아주 차원이 높은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고상한 소명, 고귀한 소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내 중심으로, 내 자랑을 하면서, 내가 기뻐하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러나 이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내 인생의 고귀한 목표입니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는 나에게 상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달려갑니다.” 그런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낮은 곳에 목표를 두고 살아갑니다.
일본의 기독교문학자 ‘노베쯔’ 라는 분분의 시에 <너의 둥지는 너무 낮았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분의 정원에 작은 새가 둥지를 트는데 너무 낮은 곳에 둥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생각하기를 “저기에 둥지를 만들면 조금 있다 어려움을 당할텐데...”라 걱정했습니다. 알을 낳고 새끼가 태어나 먹이를 가져다주고 아주 행복하게 지내는데 그분이 짐작했던 대로 어느 날 고양이가 뛰어 올라 둥지속의 새끼를 다 잡아먹어버렸습니다. 어미 새는 졸지에 새끼를 다 잃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지은 시의 제목이 <둥지는 너무 낮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사십니까? 너무 낮은 것을 구하지 마세요.
여러분, 돈이 무엇입니까? 돈은 일생의 목표가 아니라 삶의 한 방편입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돈을 잘 쓰면 하늘나라에서 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 곧 물질, 명예, 권세, 쾌락 등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수많은 땅을 정복했는데,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게 되자 땅을 치며 한탄했다 합니다. 그리고 임종이 가까워오자 이렇게 유언을 했답니다. “내가 죽거든 관에 구멍을 뚫어 내 양 손을 밖으로 꺼내 보여라. 인생은 다 빈 손들고 가는 거라고 ... ” 그는 20세에 왕이 되어 세계를 정복하지만 겨우 33세에 죽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고귀한 목표를 향한 바울의 세 가지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나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 지금 바울이 이 빌립보서를 쓰고 있을 때는 로마 옥중에 갇혀 있던 나이 65세 전후의 시기 입니다. 이제 인생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입니다. 긴 세월 선교사역을 마치고 인생을 정리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쯤이면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바울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보다 나은 성숙한 자리로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가질 때 열심히 전진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은퇴하신 노 목사님 한 분을 뵈었답니다. “그렇게 바쁘시더니 요새 어떻게 지내십니까?” 여쭈었더니, 어르신 말씀이 “더 바쁜 것 같아. 전에 한 교회 목회하면서 얽매였던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전적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집중해서 기도할 수 있고, 주변에 소외된 사람들 찾아 돌볼 수도 있고...” 그 어른 말씀이 “담임목회에 은퇴는 있어도 신앙생활에는 은퇴가 없어. 목사로서 사역에는 은퇴가 있어도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역에는 은퇴가 없어”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 목표는 하나님께서 쉬라 하실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다 이루었다고 물러서면 안 됩니다.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씀을 잊지 맙시다.
둘째,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린다 했습니다.
우리는 지나온 과거의 성공과 실패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난날의 업적을 내세우고 자랑하면 자만심에 빠지게 되고 교만해지게 됩니다. 반면에 실패와 실수를 자꾸 생각하면 낙심하게 되고 우울증에 빠집니다.
영국 격언에 ‘이미 쏟아진 우유에 대해 슬퍼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간 실패나 실수에 대해 아무리 괴로워해도 고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실수나 실패에 대해 즉시 잊어버리는 사람은 축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연필에는 지우개가 달려 있습니다. 마귀는 자꾸 지난날을 기록해서 기억하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바로 서면 과거의 것을 지워 버리시고 새롭게 출발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공헌 한 사람들은 거의가 다 자기들이 타고난 악조건을 멋지게 이용하여 그 핸디캡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한 소년이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소년의 부모는 자녀교육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던 분들로서 어머니는 무뚝뚝했고 아버지는 퉁명스러운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소년은 왜소한 체격으로 '비전 없는 아이'로 사람들에게 불리어졌습니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두 가지의 인생철학이 있었습니다. 즉, "좋지 않은 과거는 깨끗하게 잊어버리자. 오늘 내게 맡겨진 일은 반드시 오늘 해내고야 만다." 결국 그는 약점을 딛고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남북전쟁 때 남다른 책임감과 용맹성을 발휘해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밝은 성격은 그의 주변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모이게 했고 훗날 육군대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유리세스 그랜트입니다. 만약 그가 실망스런 과거에 연연했다면 열등감과 증오의 늪에 빠져 방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기억을 잊어버림으로 약점 많은 소년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잊는 사람이 앞을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셋째, 앞의 것을 향해 쫓아간다 했습니다.
이 말의 성경 헬라어 원어는 에펙테이노마이(ejpekteivnomai)입니다. 이 말은 달음질 경주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육상선수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경기를 보면 선수들은 남보다 먼저 결승점에 도착하려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한눈 팔 여유가 없습니다. 오직 결승점만 보고 달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푯대인 상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해 달려야한다 말합니다.
17 - 21절을 읽겠습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우들에게 “나를 본받으라” 했습니다. 헛된 것을 바라보며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예수님의 복음을 귀하게 여기며 확신 있게 살아가는 자신을 본받으라 강조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본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나 본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을 많이 읽게 합니다.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위인들을 본을 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 받는다”라는 말은 “본 뜬다"는 말입니다. 옛날 어머니들이 무명옷을 해 입고 살 때 무명천을 놓고 그 위에 본을 놓고 잘라내서 옷을 만들었습니다. 그 본을 오늘은 모델이라고도 하고 멘토라고도 합니다.
좋은 생활이나 신앙의 멘토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여러분의 멘토는 누구입니까?
우리 주위에 신앙적인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꾸만 흔들리는 시대에 그 모습을 본떠 살게 됩니다. 무엇을 본 받아야합니까?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본받고 천국 시민권자 답게 당당하게 사는 이의 모습을 본받아야합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려고 세계 많은 사람들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시민권을 얻기 위해 아이를 미국에서 낳으려고 산모들이 미국으로 들어간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늘나라 시민권이 최고의 시민권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시민권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얼마 전 한국 시민권을 받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한국 시민권 받으려고 2만 명이 몰렸답니다.
문제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흘은 며칠을 가리킬까요?> <'벼이삭은 잘 될수록 고개를 숙인다'의 뜻은 무엇인가요?> <애국가 4절을 후렴까지 쓰시오.> 쉽지 않지요?
시험 본 2만 명 중 26명만 합격 했습니다. 과천 법무 청사에서 26명이 선서를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국가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할 것을 선서합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시민권이 대단합니다. 외국에 나가 보십시오. 우리나라 시민권을 가진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각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시민권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해방 후 한국 시민권을 취득한 외국인은 모두 54,000명인데 그 중에 중국인이 4만5000명으로 가장 많답니다. 그리고 필리핀, 몽골, 파키스탄 순서입니다. 한국 시민권 따는 것도 영광인데 천국 시민권자의 영광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영광스러운 천국 시민권자들입니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쓴 <왕자와 거지>라는 단편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날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버킹검 궁전에서 태어났고 다른 아이는 거지 소굴에서 태어났습니다. 거지 소년은 늘 왕궁을 그리워하였습니다. 반면 버킹검 궁전에 살고 있는 에드워드 공자는 거지 생활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 둘이는 얼굴이 너무도 닮아 쌍둥이 같았습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왕자가 거지 이이가 왕궁 호위병에게 혼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왕자는 거지를 왕궁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으로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그리고 거지를 꾸짖은 호위병을 꾸짖으려고 문으로 나갔다가 거지로 오해 받아 왕궁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대신 거지가 왕자로 왕궁에 남게 됩니다. 거지와 왕자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뒤바뀐 것입니다.
거지 소굴로 들어간 왕자는 거지 취급을 받으며 거지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도 자신을 거지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밥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그래도 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왕자다. 며칠 후 다시 궁중으로 돌아 갈 것이다.> 모욕당해도 참으며 생각합니다. 땅바닥에서 불편하게 자면서도 중얼거립니다. 구박을 받으면서도 끝내 왕자처럼 살았습니다.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왕궁으로 들어간 거지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생각합니다.
<나는 거지다. 조금 있다 왕자가 돌아오면 다시 거지로 돌아 갈 것이다.> 최고의 호화로운 침대에서 자면서도 말합니다. <나는 거지다. 조금 있다 왕자가 돌아오면 거지로 돌아 갈 것이다.>
드디어 운명이 바뀌는 날이 왔습니다. 왕자는 궁으로 돌아가 자기 신분을 밝힙니다. 다시 왕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제 위치를 찾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성경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 하늘나라 백성입니다. 최고의 시민권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합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내가 행한 대로 상 받을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1926년까지 영국 해협을 수영으로 횡단한 여자는 한 사람도 없었으나 19세 미국의 "에델레"라는 처녀가 도전해서 성공 했습니다. 도중에 그녀가 기진맥진해서 포기를 하려고 하는 순간 자 기가 평생 가지고 싶어 하던 상금으로 걸린 영국제 빨간 고급 승용차가 머리에 떠올라서 새 힘 을 얻어 도전해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목표 설정이 힘을 발휘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서 받을 상중에 가장 큰 상은 생명을 구원하고 전도하는 상입니다.
다니엘서 12: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전도자가 최고의 상을 받게 됩니다.
몇 년 전 홍제동에서 화재가 났습니다. 불을 끄러 갔던 소방관들이 집이 무너지면서 여섯 명이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그 중에 김기석 소방관이 있었는데 사고로 죽기 며칠 전 자기 후배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 내용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내 한 목숨을 순순히 던질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것도 성직으로 여긴다.” 그는 생명을 살라는 것을 성직으로 여기며 그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생명 살리는 것을 성직으로 여기는 사람, 그가 바로 소명의 사람입니다. 우리도 생명을 살리는 그 고귀한 사명을 위하여 달려가야겠습니다. 그에게 고귀한 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문의대를 나오고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부인을 따라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권유에 의해 두 날개 양육훈련을 받게 됩니다. 군사훈련을 마치고 리더수양회에 참석했을 때 그는 목사님으로부터 '당신은 목숨을 걸만한 인생의 가치를 발견했느냐'는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을 그 문제로 고민합니다.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명문의대를 나와 병원을 차리고 돈을 벌고 남부럽지 않는 기반을 잡고 사는 것이 나의 목표였는데 그것을 이룬 지금 나는 과연 그것에 생명을 걸만한 가치를 발견한 삶이었는가?
고민하던 그는 자신의 인생목표를 수정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생명을 살리고 그들을 양육해서 또 다른 제자를 세우는 일에 자신을 드리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병원 응접실에 액자로 걸어 놓은 자랑스러운 학위와 논문액자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교회에서 받은 세례증서와 셀 리더 임명장을 걸어놓고 찾아오는 환자들과 만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양육하여 제자 세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간증합니다. '이제 나는 인생의 바른 목표를 찾았고 지금 최고로 행복하다고...'
올바른 가치와 목표가 없는 물질이나 인기는 물거품처럼 허무한 것입니다.
작은 풍파와 시련 앞에 형편없이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가 가지고 있는 목표가 썩어지고 없어질 이 세상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영원한 생명이며 부활의 날에 받는 빛나는 상입니다.
피나는 훈련을 통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국위를 빛내고 영광을 누리는 것처럼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애쓴 이들의 수고가 천국에서 해처럼 빛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무엇을 위해 달려오셨습니까? 그 것은 과연 여러분의 생명과 영혼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영광의 그날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십니다. 해피데이 진행요원이 되는 것, 그것이 목표를 이루는 출발점입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랍니다. 해피데이 전도 시스템에 어떤 방법으로든 참여하셔서 빛나는 천국의 면류관과 이 땅에서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우리 이 땅에
* 결단의 기도 - 주님, 부르심의 상을 푯대로 삼고 달려가게 하옵소서. 영원한 나라의 시민권자 답게 천국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며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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