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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의 히브리적 배경

하나님아들 2024. 3. 1. 20:15

신약 성경의 히브리적 배경              

 

1.서론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장 큰 불행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도록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고 그것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문자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의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하여 예수님이 선포하신 천국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성경에 관심이 있고 그것을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로마서와 같은 서신서에만 집중하고 있고 복음서에는 그만큼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 교리의 근간은 로마서가 주를 이루며 ‘예수님의 복음’이 아니라 ‘바울 복음’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나온 것이다(갈 1:11-12).

우리는 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은 산상수훈에 나타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너무나 아름답고 시적인 말씀이지만 우리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마 5:13-14). 많은 이들은 이 말씀을 읽고 우리는 세상에서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꼭 필요한 존재, 빛과 같이 밝고 선을 행하는 존재로 살아야겠다라는 문자적 의미와 자기만의 해석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예수님의 말씀의 진정한 뜻을 알 수 없는가? 그 이유는 우선 예수님의 말씀이 한글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한글 성경으로는 원래 기록된 말씀의 히브리적 의미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신약 성경이 처음에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알고 있다. 신약이 헬라어로 기록된 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에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공용어가 헬라어였고 이스라엘 밖의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헬라어로 기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히브리어였다.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히브리어라고 증언한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는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후에 요세푸스에게 유대인들에게 가서 ‘그들의 언어로’ 예루살렘을 포기하라고 말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War. 5.9.2). 그 시대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헬라어로 말하지 않았고 헬라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헬라어를 가르치느니 돼지로 기르는 것이 낫다고 말한 전승도 있다. 1세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에 있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대화했고 예수님의 말씀도 처음에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각각의 언어는 생성과 발전 과정에서 고유의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뜻이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그것의 정확한 의미와 범위에 차이가 있다. 또한 각각의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사전적 의미와 무관한 ‘관용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답답하다’는 의미의 ‘고구마’나 ‘시원하다’는 의미의 ‘사이다’는 많은 한국인이 아는 표현이지만 영어로 ‘sweet potato, Sprite’ 등으로 번역하면 영어권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다.

성경도 마찬가지로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언어의 문화적 차이, 관용어의 직역 등으로 인하여 원래의 의미가 소실되는 경우가 많다.

헬라어 신약 사본에서 이런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로 된 관용적인 표현이 헬라어 사본에 사전적 의미로 직역되어 기록된 것이다.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을 모르고 헬라어만 아는 사람에게 이것은 언어적으로 맞지 않거나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표현이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한글 성경은 중국어와 영어로 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그 성경들의 신약은 헬라어 사본을 번역한 것이다. 그 중 마태복음 또는 복음서의 헬라어 사본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우리가 가진 예수님의 말씀은 히브리어 사본의 삼중역, 즉 번역본의 번역본의 번역본이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을 때 히브리적 표현이나 히브리어 관용어구를 한글이나 영어로 그대로 번역한 부분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산상수훈을 비롯한 예수님의 중요한 가르침은 상당수가 히브리적 표현으로 되어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용된 히브리적 표현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말씀을 읽어도 어렵기만 하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많은 히브리적 표현은 히브리적 배경에서만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고 그것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하고 가르치고 기록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언어다. 구약 성경은 많은 말씀이 히브리어 고유의 표현으로 기록되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말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구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구약을 연구하기 위해서 히브리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의 말씀을 깨닫는데 있어서 히브리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다(요 7:16, 3:34, 14:10).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2:50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말씀하셨고 구약의 많은 히브리적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은 그들이 들은 예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이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고(갈 1:11-12)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한다(갈 1:7). 다른 제자들도 모두 예수님의 복음만을 증거했다. 사도들의 서신이 어떤 목적에 의해 처음부터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해도 그 배경은 히브리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사실은 신약 전체가 히브리적 배경에서 기록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히브리어 고유의 표현을 헬라어로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신약을 헬라어로 기록한 역자, 또는 저자들은 히브리적 표현을 헬라어로 의역하지 않고 최대한 그 의미를 살려서 문자 그대로 직역한 부분이 많다.

이것은 히브리적 표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한글이나 영어, 헬라어 원문으로도 말씀의 의미를 깨닫기 힘들게 하는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신약의 헬라어로 번역된 말씀은 히브리어 고유의 표현을 잘 보존하고 있고 그것을 히브리적 표현으로 바꿔서 이해하면 예수님이 원래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2. 교부들의 증언, 사해사본, 동전, 비문

 

1세기 이스라엘에서 사용된 언어가 히브리어라는 것을 가리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그 증거들은 교부들의 증언, 사해사본, 동전과 비문들, 요세푸스의 글, 랍비 문헌 등 다양하다.

 

교부들은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로 그들의 기록은 초기 기독교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세기 중반 소아시아에 있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였던 파피아스는 “마태는 히브리어로 주님의 말씀을 기록했고 다른 이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대로 그것을 번역했다”고 했고 2세기 후반에 프랑스 리용의 주교인 이레니우스는 “마태는 히브리인들 가운데 그들 고유의 방언으로 그의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했다.

 

3세기 초 오리겐은 그의 마태복음 주석에서 “히브리어로 작성한 첫번째 복음서는 마태가 쓴 것으로 유대교에서 믿게 된 자들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라고 했고 기원후 325년 경 가이사랴의 주교인 유세비우스는 “마태는 처음에 히브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려고 할 때 그의 복음을 그들 고유의 언어로 기록하여 전달했다”고 한다.

 

교부들 중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인 나사렛 파에 대하여 증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에피파니우스는 그들에 대하여 “그들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마태복음 전체를 갖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처음 히브리어로 기록된 상태로 그것을 신중히 보관하고 있었다”고 증거한다.

 

교부들 중 히브리어에 대하여 가장 박식한 것으로 알려진 제롬은 마태의 복음서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다. “마태는 유대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히브리 문자와 단어로 기록했다. … 그것은 아직도 가이사랴의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1947년 이스라엘의 사해 북서쪽 해변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성경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성경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사해 인근 쿰란 지역의 총 11개의 동굴에서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발견된 두루마리들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기록된 것이다.

 

이 두루마리들은 크게 성서와 비성서 두루마리로 구분되며 구약 성경에서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성서 사본이 발견되었고 성서 이외의 두루마리들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원후 1세기의 예수님 시대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풀러 신학대학의 윌리엄 샌포드 라소르 교수는 뛰어난 셈어 학자다(히브리어 아람어는 같은 셈어 계열이다). 그는 “사해 사본의 발견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언어는 아람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쿰란에 거주했던 종파는 히브리어로 성서에 대한 주석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온 자들을 위한 지침서(훈련 지침서)와 다메섹 언약서와 같은 공동체 삶의 규칙에 대한 책도 히브리어로 기록했다”고 한다.

 

기존의 학설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사용하던 아람어가 이스라엘 백성의 일상 언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 시대까지 지속되어 성전 제사와 같은 종교적 분야에만 히브리어가 사용되었고 일상적으로 아람어가 사용되었다고 말한다.

 

아람어는 기원전 700-300년 사이에 페르시아, 앗수르, 바벨론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언어였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 당하여 흩어졌고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게 침략당하고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아람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에 바벨론에 끌려갔던 백성들 중에서 소수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람어를 사용했으나 유다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히브리어를 사용했다. 그 시대에는 아마도 히브리어와 아람어 모두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167년 이스라엘 땅을 다스리던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 발생한다. 이 일로 유다스 마카비가 이끄는 반란이 일어나고 그들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였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 사이에 종교적 부흥으로 이어졌고 그들은 점차 조상들이 사용한 히브리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사해사본의 발견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히브리어를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시대에 사용된 동전 또한 그 시대에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에 대한 중요한 증거가 된다. 이스라엘 박물관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발견된 동전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 동전들의 연대는 페르시아 제국 후기인 기원전 4세기부터 바르코크바 혁명이 끝날 때인 기원후 135년에 이른다. 이 중에서 오직 하나의 동전이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이다.

 

또 다른 증거는 죽은 자들의 뼈를 담는 유골 단지다. 예수님의 시대에는 죽은 자를 장사하고 정확히 일 년 후에 그들의 뼈를 돌로 된 작은 용기에 넣는다. 일반적으로 이 유골 단지의 외부에 죽은 자의 이름을 새겨넣는다. 이 비문은 숙련된 장인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가족이나 친구가 새긴다. 그러므로 이 비문은 이 시대에 일반적인 사람들이 말하고 쓰는 언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폴라드의 성직자이자 뛰어난 학자인 아베 J.T. 밀릭은 이렇게 말했다. “유골 단지에 헬라어나 아람어가 아니라 히브리어가 새겨진 것은 그 시대에 중산층이 사용하는 언어가 히브리어이며 이것이 종교적으로만이 아니라 일상 언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나타낸다.”

 

 

3. 랍비들의 문헌, 복음서의 히브리적 표현

 

예수님의 시대에 기록된 문서들 중 가장 많은 것이 랍비들의 문헌이다. 이 문헌들은 몇 구절을 제외하고 모두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이 문헌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미쉬나다. 미쉬나는 구전 율법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기원후 200년 경에 글로 기록되었다. 여기에는 랍비들의 관습, 전통, 격언, 설교 등이 들어 있다. 놀라운 점은 랍비들의 문헌에는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과 비슷한 구절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분의 뜻을 너의 뜻인 것처럼 행하여 그분이 너의 뜻을 그분의 뜻인 것처럼 행하게 하라 아봇 2:4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 26:39

네 동료의 명예를 너의 명예처럼 소중히 여기라 아봇 2:10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예수님의 가르침은 많은 비유들로 이루어졌다. 랍비 문헌에는 약 5천개의 비유가 들어있는데 그 중 두 개만이 아람어로 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이 비유들 중에는 ‘왕의 비유’라 불리는 것들이 있는데 예수님도 왕과 관련된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다. 왕의 비유들 중에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나 마태복음 22장(누가복음 14장)에 나오는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의 비유’와 유사한 비유들도 있다.

 

랍비들이 이런 비유를 말하던 시대에 계셨던 예수님은 그들의 비유에 대하여 잘 알고 계셨고 그들의 비유의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고 기록하는데 사용했던 히브리어로 그 비유들을 말씀하셨을 것이다.

 

복음서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복음서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헬라어로 된 복음서의 원문에는 히브리적 문장 구조만이 아니라 히브리어 특유의 표현을 그대로 직역한 것과 많은 관용구들이 존재한다. 이런 히브리적 표현을 모르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거나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다.

 

우리가 복음서의 히브리적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복음서를 읽게 되면 그 말씀들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하나는 우리가 읽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 뜻을 알기를 포기하고 언젠가 누가 설교나 메시지를 통해 알려주겠지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말씀이 한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되어 있어서 예수님이 원래 말씀하신 히브리적 의미와 전혀 다른 우리가 아는 한국어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다.

 

히브리어의 많은 단어들은 그것과 대응되는 한글이나 영어나 헬라어의 단어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런 단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함축적인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원래 히브리어로 된 말씀을 그 의미가 제한적인 번역된 언어로 읽게 되면 원래 의도한 말씀의 온전한 뜻을 알 수 없다.

 

예를 들면 히브리어로 ‘집’을 의미하는 ‘바이트’는 ‘집’이라는 의미 외에도 ‘가정, 가족, 지파, 왕조, 성전’이라는 뜻이 있다. 마찬가지로 ‘아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베트’는 ‘아들’만이 아니라 ‘후손’, ‘시민’, ‘구성원’, ‘제자’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 성경에는 이런 히브리어 단어들이 문자 그대로 번역된 부분이 많이 있다. 이것은 헬라어나 영어, 한글로는 말이 되지 않고 오직 히브리어의 의미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히브리어 단어가 직역된 것의 예를 들면,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마리아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눅 1:34)라고 대답한다. 마리아는 ‘나는 남자와 동침한 적이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여기서 ‘알다’는 히브리어로 ‘야다’를 번역한 것으로 ‘야다’는 ‘안다’는 뜻과 ‘동침한다’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창세기에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창 4:1)에서 ‘동침한다’에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장 34절의 ‘알다’는 영어 성경에 ‘knew’로 번역되었고 헬라어로 원문에는 ’기노스코’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들은 모두 ‘알다’라는 뜻은 있지만 ‘동침하다’는 뜻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 구절은 오직 원래 기록된 히브리어를 통해서만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아마도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히브리어 단어인 ‘샬롬’이다. ‘샬롬’은 직역하면 ‘화평’, ‘평안’이라는 뜻이지만 구약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에서 ‘Hello’나 ‘안녕하세요’처럼 인사말로도 사용되는 표현이다.

 

‘샬롬’은 우리의 신약 성경에 ‘평안할지어다’(마 27:29, 눅 1:28 등)로 번역되었고 영어 성경에는 ‘Peace be to you’로, 헬라어에도 ‘평안’을 의미하는 ‘에이레네’로 직역되었다. 이것은 세 언어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으로 오직 히브리어에만 있는 관용적 표현이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서 많이 봐서 익숙하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신약 성경에는 히브리어의 관용구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눈을 들어 보다’(눅 16:23 등), ‘~의 이름을 ~라 하라’(마 1:21 등), ‘주의 이름을 부르다’(행 2:21) 등은 모두 히브리어에만 있는 관용구이다.

 

 

4. 기억하다, 잊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분의 좌우에 두 행악자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누가복음 23:42

 

“예수여 나를 기억하소서.” 뭔가 낭만적이고 멋진 대사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기억하다’의 히브리적 의미를 알아야 해석할 수 있다.

 

‘기억하다’는 히브리어로 ‘자카르’인데 ‘자카르’는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자카르’는 ‘은혜를 베풀다’, ‘돕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의미로 구약에서 사용된 예는 하나님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라헬을 ‘기억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창세기 30:22

 

여기서 ’생각하다’는 히브리어로 ‘자카르’, ‘기억하다’이다. 하나님이 라헬을 ‘기억하셔서’, 즉 라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아이를 낳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사용된 또 다른 예는 요셉이 술 관원장에게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창세기 40:14

 

요셉이 ‘나를 생각해 달라’고 한 것은 단순히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뒤에 나오는 것처럼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나를 이 집에서 건져달라’는 뜻이다.

 

‘기억하다’라는 뜻을 갖는 ‘자카르’의 의미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행악자의 말을 다시 보면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누가복음 23:42

 

그 다음에 예수님이 하신 대답이 이해가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3:43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죄인은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구한 것이고 예수님은 그가 구하는 것을 아시고 ‘네가 나오 함께 낙원에, 하나님의 나라에 있으리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기억하다’가 ‘은혜를 베풀다’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잊다’도 그 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잊다’는 히브리어로 ‘샤카흐’인데 ‘돕지 않다’, ‘버리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시편 기자들이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시 13:1, 42:9)라고 탄식하는 것은 ‘나를 버리지 마시고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이 표현은 선지서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이사야 49:14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예레미야애가 5:20

 

예수님은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너희는 참새보다 더 귀하다’(눅 12:6-7)고 말씀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분은 참새들보다 더 귀한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5.하나님의 이름의 우회적 표현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십계명의 세번째 계명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 20:7)는 말씀을 문자적 그대로 지키기 위하여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다른 호칭을 사용했다. 그들은 성경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그것을 ‘주’를 의미하는 ‘아도나이’라고 읽었고 성경 이외의 기도문 등에서는 ‘그 이름’이라는 뜻의 ‘하 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권능’, ‘하늘’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칭호로 사용되었고 이것은 신약 성경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마 26:64)을 보리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는 천국 복음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4:17)고 기록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서 ‘하늘’ 어딘가에 있는 ‘천국’에 가게 된다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하늘’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생긴 큰 오해 중 하나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말하지 않고 ‘하늘’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도 ‘하늘의 나라’, ‘천국’이라고 말한 것이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천국’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고 마가와 누가는 같은 말씀을 보다 직접적인 표현인 ‘하나님의 나라’(막 1:15, 눅 10:9)라고 기록한 것이다.

 

‘하늘’이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동안 잘 알고 있었던 말씀들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유대인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느냐 사람으로부터 왔느냐고 서로 물었는데 이것은 그의 세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마태복음 21:25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신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다’는 뜻이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이 두 가지 표현을 같이 사용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한복음 3:31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  요한복음 3:34

 

마찬가지로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벧전 1:12)도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2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행전 2:33

 

 

6. 히브리어 마태복음 사본

 

1) 뒤틸레의 마태복음

 

뒤 틸레의 마태복음은 1553년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압수한 히브리어 마태복음 사본에서 얻은 것이다. 1553년 8월 12일에 로마에서 탈무드를 금지하는 법령이 재가되었다. 이 법령은 9월 9일에 시행되었고 유대인들의 집과 회당을 강탈하면서 탈무드처럼 보이는 것, 즉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은 무엇이든지 압수했다.

 

그 때에 프랑스 브리외의 주교인 장 뒤틸레가 마침 로마를 방문했다. 뒤틸레는 여러 히브리어 사본들 가운데 있는 마태복음의 히브리어 사본을 보고 놀랐다. 뒤틸레는 그 사본을 얻어 프랑스로 되돌아 가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맡겼다. 그것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히브리어 사본 132번으로 보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뒤틸레의 히브리어 마태복음을 무시했지만 휴 스콘필드와 조지 하워드라는 두 학자는 이 히브리어 본문이 오늘날 우리의 헬라어 본문의 기초가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스콘 필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부 언어학적 증거들은 … (뒤틸레의) 이 히브리어 본문이 헬라어 본문의 기초가 되는 것이고, 헬라어 본문에서 어떤 번역들은 히브리어 원문을 잘못 읽은 것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 성 마태의 복음서의 옛 히브리어 본문, 1927, 17페이지

 

2) 뮌스터의 마태복음

 

세바스찬 뮌스터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스위스어로 많은 책들을 출판한 히브리어 교사이다. 히브리어에 대한 그의 책들에서 그는 유대인에게서 받은 마태복음의 히브리어 사본에서 발췌한 예들을 종종 사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이 히브리어 복음서를 출판할 것을 요청하여 그는 그의 다른 모든 연구를 중단하고 그의 히브리어 마태복음을 출판하는 일만을 했다.

 

뮌스터의 히브리어 마태복음 본문은 뒤틸레의 히브리어 마태복음 본문과 매우 일치한다.

 

뮌스터의 히브리어 마태복음 본문은 1537년과 1557년에 출판되었다. 뮌스터의 히브리어 마태복음은 우리가 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갖고 있을 것이다.

 

지난 백여 년 간 뮌스터 히브리어 마태복음에 대한 학술 문헌 중 대부분은 뭔스터의 본문이 제한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그 이유는 뮌스터가 그의 본문에서 누락된 부분을 스스로 재구성하여 보충하고 그것들에 대하여 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조지 하워드는 이렇게 기록했다.

“뮌스터는 헌정문에서 그가 유대인에게서 받은 히브리어 마태복음은 손상된 것이었는데 누락된 부분이 많이 있었고 필요에 의하여 사본에서 누락된 부분을 복원하였다고 했다. 오늘날 그의 작업은 제한된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가 그가 복원한 구절들을 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마태의 히브리어 복음, 조지 하워드, 19554, 161페이지

 

그러나 사실 뮌스터는 라틴어로 이렇게 썼다.

“원래의, 실제 히브리어로 기록된 마태복음은 히브리인들에게 있던 것과 같이 있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접했을 때는 그것이 나누어져 있었으나 나는 그것을 다시 하나로 만들어서 출판했다.”

 

뮌스터가 말한 것은 그가 얻은 히브리어 마태복음이 몇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가 그것들을 하나로 만들어서 하나의 히브리어 본문으로 출판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뮌스터의 말이 잘못 전달되어 휴 스코필드는 그의 히브리어 사본이 누락되었고 그가 스스로 누락된 내용을 복원했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은 뮌스터의 히브리어 마태복음은 이전에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7. 뒤틸레 본문에 대한 기존의 본문 분석

 

뒤틸레의 히브리어 마태복음에 대한 최초의 본문 분석은 1879년 아돌프 허브스트 박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허브스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927년에 휴 스콘필드는 더 큰 규모의 본문 연구를 했다. 스콘필드의 결론은 현저하게 달랐다.

 

조지 하워드는 1986년에 더 자세한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뒤틸레 본문과 셈 토브 본문 중 어느 것이 변경된 부분이 적은가에 대한 것은 학술적 논쟁의 주제로 남겠지만 스콘필드와 조지 하워드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정확한 것이다.

 

 

8.뒤틸레 마태복음과 공관복음, 필사 오류

 

1) 뒤틸레의 마태복음과 공관복음의 일치

 

예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라는 네 개의 복음서에 각각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앞에 나오는 세 복음서는 서로 공통적인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어떤 기록은 두 복음서에, 어떤 내용은 세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이라고 부른다.

 

뒤틸레의 마태복음에는 헬라어 마태복음과는 내용이 다르지만 다른 공관복음, 즉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과 일치하는 구절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먼저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누가복음 6:27

 

헬라어 마태복음에 이 말씀의 병행구절이 있는데 거기에는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라는 내용이 빠졌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그러나 뒤틸레의 히브리어 마태복음에는 헬라어 마태복음에 빠진 내용이 들어 있어 누가복음의 병행구와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을 선대하며

너희를 박해하고 악의로 너희를 이용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뒤틸레 마태복음

 

마태복음 7장에서도 같은 예를 볼 수 있다. 헬라어 마태복음에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만 뒤틸레의 히브리어 마태복음에는 헬라어 마태복음에 없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마태복음 7:1

 

이것은 누가복음의 병행구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6:37

 

이와 같이 헬라어 마태복음과 다른 공관복음의 병행구절에서 부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뒤틸레의 히브리어 마태복음에서는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 뒤틸레의 마태복음과 필사 오류

 

뒤틸레의 히브리어 마태복음과 헬라어 마태복음이 서로 다른 부분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히브리어 마태복음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8장 21절에서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마태복음 8:21

 

헬라어 사본과 그것을 번역한 한글 성경은 ‘또 한 사람’이라고 나오지만 뒤틸레와 셈 토브의 마태복음에는 ‘한 사람’으로 나온다. ‘또 한 사람’은 헬라어로 ‘헤테로스’인데 이것은 히브리어로 ‘아하르(אחר)’다. 반면 히브리어 마태복음의 ‘한 사람’은 히브리어로 ‘에하드(אחד)’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단어를 나란히 놓고 보면

아하르 / אחר / 또 한 사람 - 헬라어 마태복음 8:21

에하드 / אחד / 한 사람     - 히브리어 마태복음 8:21

 

히브리어의 두 글자는 동일하고 마지막 글자인 레쉬(ר)와 달렛(ד)이 얼핏 보면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게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헬라어 마태복음을 번역한 사람은 히브리어 마태복음의 ‘에하드’를 ‘아하르’로 잘못 보고 번역하였거나, 또는 히브리어 마태복음을 필사한 서기관이 잘못 적은 사본을 번역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마태복음 24장에서 제자들이 세상 끝,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하여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태복음 24:12

 

이 구절이 뒤틸레의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나온다.

배교가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태복음 24:12 뒤틸레 마태복음

 

‘불법’은 히브리어로 ‘라샤 또는 레샤(רשע)’이고 ‘배교’는 히브리어로 ‘파샤 또는 페샤(פשע)’다. 두 사본의 차이도 마찬가지로 히브리어 필사 오류로 인하여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기적이 온 수리아에 퍼졌단는 말씀이 있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마태복음 4:24

 

뒤틸레의 마태복음에는 이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의 소문이 온 백성에게 퍼진지라  마태복음 4:24 뒤틸레 마태복음

 

두 사본의 차이는 ‘수리아’와 ‘백성’이다. ‘수리아’는 히브리어로 ‘아람(ארם)’이고 ‘백성’은 히브리어로 ‘하암(העם)’이다. 두 히브리어 단어는 철자가 비슷하게 보이지 않지만 히브리어의 발음이 비슷하다. 이것은 한 사람이 히브리어 원문을 불러주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아쓰는 과정에서 발음을 혼동하여 다른 단어로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9. 솀 토브의 마태복음

 

솀 토브의 마태복음은 1380년경 솀 토브 벤 이츠학 벤 샤프룻이 그의 저서 에벤 보한(Even Bohan)에 히브리어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것이다. 솀 토브가 쓴 에벤 보한의 원본은 사라졌지만 히브리어 마태복음 전체를 기록한 15세기에서 17세기의 일부 사본들은 남아 있다. 조지 하워드(George Howard)는 솀 토브의 마태복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솀 토브의 마태복음은 뒤틸레나 뮌스터의 마태복음과 같은 것이 아니다. 비록 이들 사이에 내용이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솀 토브의 마태복음과 그 외의 히브리어 마태복음은 두 개의 다른 종류이다. 조지 하워드는 이렇게 말했다.

 

 

10. 초기 기독교의 역사 - 복음의 동진

 

신약 성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믿은 최초의 유대인들은 ‘나사렛파’로 알려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예수님을 믿은 최초의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인(크리스찬)’이라 일컫게 되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최초의 교회는 시라이의 수도인 안디옥에 형성되었다. 그곳 사람들 중 일부는 헬라어를 말했고 대부분은 아람어를 말했는데 아람어를 시리아어라고 하기도 한다.

 

그 후 기원후 70년에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인 나사렛파 사람들은 그들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펠라로 대거 이동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베뢰아와 데가볼리와 바사니티스에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 나사렛파 사람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했고 4세기에 제롬은 베뢰아에 가서 그들이 사용하던 히브리어 마태복음을 필사했다. 신약 성경에서 적어도 마태복음은 처음에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복음이 이방 세계로 전파되면서 아람어와 헬라어로 된 신약 성경이 필요하게 되었다.

 

복음의 동진

 

초기 기독교에서 바울이 지금의 시리아와 터키, 그리스와 이탈리아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이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복음의 서진’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과 똑같이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복음의 동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울이 그의 본거지인 시리아 안디옥에서 서방 세계로 전도 여행을 다니는 동안 대부분의 사도들은 동쪽으로 이동했다. 바돌로매는 앗시리아를 거쳐 아르메니아에 갔다가 다시 앗시리아, 바벨론, 파르티아(페르시아)를 지나 인도까지 내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산 채로 피부가 벗겨졌다.

 

다대오는 시리아 북쪽에 있는 에데사와 앗시리아와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가르치다가 화살을 맞고 순교했다. 도마는 파르티아, 페르시아,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인도의 마드라스 근처에 있는 성 도마산에서 창에 맞아 순교했다. 오늘날까지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성 도마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다.

 

사도들이 히브리어로 기록된 복음을 가지고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교부들의 증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제롬은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에서 시리아,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파르티아)와 아래로 인도에 이르는 모든 근동의 교회를 ‘동방 교회’라고 불렀다. 동방 교회는 멀리는 중국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5-6세기에는 예수님에 대한 논쟁으로 동방 교회는 네스토리우스파와 야곱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동방 교회는 더 많은 그룹으로 나누어졌는데 네스토리우스파, 야곱파, 칼데아 로마 카톨릭과 마폰파다. 그들은 모두 아람어로 된 신약 본문을 사용했다.

 

1498년에 로마 카톨릭을 믿는 포르투갈인들이 인도를 침략했을 때 그들은 말라바 해변을 따라 성 도마 그리스도인의 교회 백여 개를 발견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성 도마 그리스도인들은 1세기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성직자와 결혼할 수 있었고 그림이나 조각을 섬기지 않았으며 성인들에게 기도하지 않았고 연옥을 믿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람어로 된 신약 성경을 사용한 것인데 그들은 그것이 안디옥에서부터 사용되어 온 것이라고 했다.

 

 

11. 초기 기독교의 역사 - 복음의 서진

 

많은 사도들이 메시아의 복음을 동방으로 전하는 동안 바울은 서구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바울은 그의 복음의 전파의 본거지인 시리아의 수도 안디옥에서 유럽으로 수 차례의 전도 여행을 떠났다. 그러면서 헬라어로 번역된 신약 성경이 필요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구 세계에 반유대주의를 크게 부추기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것은 기원후 70년 유대인들의 로마 제국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두번째 반란은 116년에 이집트에 있는 유대인들이 일으켰다. 그리고 132년에 바르 코크바의 반란은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로마 제국에서 반유대주의가 점점 성행했고 그것은 심지어 애국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서구 세계에서 이방인 기독교는 유대교와 유대교의 풍습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사람들은 히브리어 성경보다 헬라어 성경을 선호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히브리어로 기록된 많은 책들이 소멸되었다.

 

기원후 325년에 이르기까지 반유대주의와 서구 세계에서 헬라어 성경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더욱 확고해졌다. 콘스탄틴은 황제가 된 후에 기독교를 보편적 종교, 즉 로마 제국 안에서 강제적으로 믿어야 하는 국교로 만들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 수 있었으나, 이 일 후에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임 당할 수 있었다.

 

콘스탄틴은 반유대주의자였는데 그는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기독교의 기준을 정했다. 이 회의에 유대인들은 배제되었다. 그리고 유대인의 관습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었고 헬라어 번역 성경이 공식적으로 히브리어 성경을 대체하게 되었다.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믿는 유대인들이 배제되었는데 이후에 그리스도론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공의회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앗시리아인들과 시리아인들이 배제되었다. 431년에 열린 에베소 공의회에서는 네스토리아파 앗시리아인들이 소외되었고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야곱파 시리아인들이 소외되었다. 근동 지역에서 예수님을 믿는 셈 민족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분열은 점점 깊어져 갔다.

 

근동 지역에서의 이슬람의 태동은 근동의 기독교 인들과 서구 유럽의 기독교인들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계와 이슬람이 지배하는 근동의 교류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에 서구 세계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지 못하도록 억압하기 시작했다. 일반 대중에게 성경을 유포하려는 자는 산 채로 불에 태워지곤 했다. 이런 억압은 근동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근동 지역에서는 이미 일반 대중의 공용어인 아람어로 된 성경을 사용하고 있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카톨릭 교회에 대한 반발로 개신교의 개혁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헬라어 신약 성경을 처음에 기록한 원래의 성경으로 여겼다. 그 때에 유럽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람어 성경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516년에 유럽에서 최초로 헬라어 신약 성경의 인쇄본이 탄생했다. 이 성경은 에라스무스가 출판한 것으로 ‘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 즉 ‘공인 사본’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헬라어 표준 사본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사본의 1판은 오직 여섯 개의 사본을 기초로 이루어졌으며, 이후에 나온 판들도 열 개의 사본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이 사본들 중에 성경 본문이 모두 들어 있는 온전한 사본은 없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일한 사본도 10세기의 것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후대의 것으로 다른 오래된 코덱스(책) 형태의 사본은 4-6세기에 기록된 것이 있으며 이보다 이른 시기에 사용된 파피루스 사본은 2세기 초의 것도 발견되었다.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신약 성경에 사용한 사본들 중에 어느 것도 온전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계시록에서 누락된 많은 부분을 라틴어로 기록된 불가타역을 헬라어로 번역해서 채울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서구 세계에서 수 세기 동안 헬라어 원본이라고 여겼던 헬라어 성경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 사본은 이후에 킹 제임스 성경의 신약의 원문으로 사용되었다.

 

 

12. 최근의 언어학 연구

 

1946년 사해사본이 발견된 이후 이스라엘의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의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인들이 말하고 기록하는데 사용한 언어는 히브리어이고 공관복음서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자료에서 나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들은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한 학자들로 신약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사해사본이 발견된 것으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말하는 방식이 상당히 히브리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이것을 통해서 복음서를 더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언어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신약 성경의 많은 오역들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예호슈아 M. 그린츠는 “2차 성전 시대 말기에 말과 글로 사용된 언어인 히브리어”라는 글을 썼다. 그는 마태복음과 복음서와 같은 시기에 기록된 다른 문헌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히브리어는 그 시대에 기록하는데 사용되는 유일한 언어이며 우리는 이런 이유로 ‘학문 없는 보통 사람들’(행 4:13)로 이루어진 새로운 종파가 유대인들을 위하여 그들의 중요한 책을 히브리어로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더 나아가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는 팔레스타인, 또는 적어도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서 말하는데 사용된 주요 언어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로 탈무드 네다림 66b에 나오는 바벨론에서 온 아람어를 말하는 유대인 남자가 예루살렘 출신의 아내와 대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그것은 예루살렘 지역 평민들은 아람어가 아닌 히브리어만을 일상 언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아람어만을 사용하는 유대인과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의 데이빗 플루서 교수와 신약과 초기 기독교에 대한 세계의 권위 있는 유대인 학자들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원래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고하게 주장한다. 그는 공관복음서에 오직 히브리어에만 있는 수백 개의 셈어 관용구가 있다고 말했다.

 

모셰 바르-아셰르 박사는 히브리 대학에서 예헤즈키엘 쿠처 교수를 이어 최고의 아람어 학자로 인정 받은 사람이다. 그는 공관복음서가 처음에 아람어가 아니라 히브리어로 기록된 문서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스라엘 이외에도 세계의 뛰어난 학자들 역시 예수님이 사용하신 언어가 히브리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한 학자 중 하나는 노르웨이의 해리스 버클랜드이다. 그는 “예수의 언어”라는 글에서 “예수님 시대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서민들의 언어는 히브리어”였으며 그의 결론은 “예수님은 실제로 히브리어를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패서디나에 있는 풀러 신학교의 명예 교수인 윌리엄 샌포드 라소르는 저명한 셈어 학자다. 1982년 4월 24일 예루살렘의 강의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해사본이 발견되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언어는 아람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쿰란에 있던 종파는 성경의 주석 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온 자에 대한 지침서인 규율 지침서와 다메섹 언약과 같은 공동체의 삶에 대한 책들도 히브리어로 기록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프랭크 크로스 교수는 사해사본의 필사에 있어서 당대에 가장 앞선 권위자일 것이다. 크로스 교수는 쿰란에서 수 세기에 걸쳐 두루마리들을 필사한 다양한 서기관들의 필사본을 관찰한 결과 기원전 130년 경부터 시작해서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언어는 히브리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기원전 130년 이후에 쿰란의 서기관들은 히브리어 본문을 필사하면서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로스는 그들의 주된 언어가 히브리어였고 그들은 아람어의 문법과 문장 구조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고 결론지었다.

 

또 다른 훌륭한 학자로 아베 J.T. 밀릭이 있다. 폴란드의 성직자인 밀릭은 과학과 고고학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쿰란의 발굴자들 중 하나였고 제4동굴에서 나온 두루마리들을 출판하는 일을 하는 국제적인 팀에서 가장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유대 광야에서 발견한 문헌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한 후 밀릭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제2차 반란 때의 구리 두루마리와 문서들은 로마 시대에 유대 지역의 일상 언어가 미쉬나 히브리어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13. 이스라엘 민족과 팔레스타인 땅의 이름

 

마태는 예수님이나 자신이 유대인 민족이나 팔레스타인 땅의 이름을 언급할 때 일관되게 ‘이스라엘’이라고 기록했다(마 2:20, 2:21, 8:10, 10:6, 10:23, 15:24, 15:31, 19:28, 27:41-42 등).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마태복음 2:2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 8:10

 

그러나 이방인의 입으로 유대 민족이나 그들의 땅을 말할 때는 ‘이스라엘’ 대신 ‘유대인(의)’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희롱하며 말할 때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했지만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태복음 27:42

 

로마의 빌라도 총독과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했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27:11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마태복음 27:29

 

‘이스라엘’이라는 일관된 표현은 히브리어 외에 다른 언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유대 민족과 팔레스타인 땅에 대하여 아람어는 변함없이 ‘유대인(의)’라고 말하지만 헬라어는 ‘유대인(의)’ 또는 ‘히브리(인)’으로 말한다. 히브리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말하는 저자가 이런 표현 대신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을 옮기거나 어떤 신학적인 목적을 위해서나 또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그들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항상 ‘유대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의 말을 인용할 때는 ‘이스라엘’로 기록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사도행전 1:6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22

 

사도들 뿐만 아니라 랍비 가말리엘이 자기 백성들을 언급할 때도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사도행전 5:35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만이 아니라 사도들도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 시대에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히브리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민족과 땅을 ‘이스라엘’이라고 말하는 것은 중세 시대까지 계속되었고 성경과 성경 이후의 문헌들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성경과 그 이후에 기록된 랍비들의 문헌인 미쉬나에서 약간의 차이를 나타낸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나타내고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을 말할 때는 히브리어로 ‘브네 이스라엘’, 한글로는 ‘이스라엘 백성’ 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반면 미쉬나에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그 구성원 모두를 ‘이스라엘’이라고 말한다.

 

 

14. 가나안 여인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마태복음 15:21-22

 

‘가나안 사람’은 히브리어로 ‘페니키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다른 언어에서는 그렇게 사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람어나 헬라어에서는 아무런 뜻을 갖지 않는다. 마태복음에 ‘가나안’이 사용된 것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마태복음 본문의 아주 작은 부분도 정확하게 기록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헬라어 저자가 이 외래 용어를 보통 어떻게 번역하는지는 마가복음의 병행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마가복음 7:26

 

‘가나안 사람’을 마가는 ‘헬라인,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표현했다. 히브리어로 ‘가나안’은 이방인과 페니키아 해변에 거주하는 사람 둘 다를 의미한다. 헬라어로 이것을 표현하려면 마가가 기록한 것처럼 더 상세하게 말해야 하기 때문에 마가는 이런 긴 설명을 사용한 것이다.

 

 

15. 반유대주의와 탈유대화

 

서구 세계의 반유대주의는 탈유대화(Dejudaization)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것은 유대적인 모든 요소를 분리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유대적 요소들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탈유대화의 역사적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유대 절기와의 분리

 

기원 후 325년 유대인들이 배제된 가운데 열렸던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 중 하나는 ‘유대 달력에서의 독립’이었다. 이것은 교회의 절기인 ‘부활절(Easter)’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부활절은 유월절(무교절), 초실절과 연결되는 절기이다. 교회에서는 부활절을 이 유대의 절기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유대 달력의 유월절은 니산월 14일이고 이것이 춘분과 일치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춘분과 일치하지 않는 잘못된 달력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추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니케아 공의회는 부활절을 유대인의 달력의 절기와 분리시켰고 이것으로 부활절과 다른 모든 교회의 절기들은 성경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리고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절기들과 다른 날짜에 지켜지게 되었다.

 

유대인의 추방과 학살

 

유럽의 카톨릭 교회는 12세기부터 ‘이교도’를 심판하는 ‘종교 재판’을 시작했다. 종교재판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있었는데 이 두 나라는 중세 후기에 이슬람과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여러 영토를 포함하고 있었다.

 

14세기 말에 스페인의 일부 지역에서 폭력적인 반유대주의 경향이 있었다. 1391년 세비야에서는 수백 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했고 그들의 회당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이 유대인 학살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카톨릭으로 개종하게 되었다. 그리고 1492년에는 개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은 모두 스페인에서 쫓겨났고 카톨릭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까지 이교도로 취급되어 종교 재판을 받았다.

 

포르투갈의 종교 재판은 1536년에 포르투갈의 왕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포르투갈 종교 재판은 ‘세파르딕 유대인들(Sephardic Jews)’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세파르딕 유대인은 15세기 경에 스페인 또는 포르투갈을 포함한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했던 유대인을 말한다.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받았다. 스페인의 종교 재판으로 1492년에 스페인에서 쫓겨난 많은 유대인들이 포르투갈로 옮겨갔는데 그들은 결국 그곳에서도 종교 재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은 유대인에 대한 적대적 발언을 했는데 교회사에서 잘 알려진 크리소스톰, 유세비우스, 오리겐, 키를로스 뿐만 아니라 종교 개혁의 아버지인 마틴 루터도 여기에 포함된다. 마틴 루터는 죽기 며칠 전에 이런 설교를 했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윌리엄 쉬러는 그의 저서에서 독일 교회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두 가지 요인 중 하나는 루터의 반유대적 발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 문헌의 소멸

 

가장 잘 알려진 유대인들의 문헌으로 탈무드가 있다. 탈무드는 기원 후 3세기까지 랍비들의 구전 율법을 정리한 미쉬나와 기원 후 6세기에 작성된, 미쉬나에 대한 주석인 게마라로 이루어졌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성문 율법인 토라와 함께 구전 율법을 같이 받았다고 믿고 이 두 가지 모두를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카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인 니코랄스 도닌은 1236년에 교황 그레고리 9세에게 탈무드를 고발하는 35개의 조항에 대한 메모를 제출했다. 그 중에는 탈무드가 예수님과 마리아에 대한 신성 모독과 교회를 공격하며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 나타낸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유대인들이 성경보다 구전 율법을 더 신성하게 여기며 이것은 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레고리 교황은 프랑스 안의 교회들에게 서신을 보내 1240년에 토요일, 유대인들의 안식일에 그들이 회당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에 유대 문헌을 몰수하도록 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된 책을 갖고 있으나 그것을 몰수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추방시켰다. 그는 또 고발된 내용과 같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거나 이런 종류의 책은 불태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와 비슷한 명령을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의 왕에 의하여 내려졌다. 그리하여 1242년 6월, 마차 24개에 가득 실린 일만 권에 이르는 유대 문헌이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 이 문헌들의 사본은 로마로 수탈되거나 로마에서 파기되었다.

 

유럽 각국의 주교들은 계속해서 탈무드를 불태울 것을 명령했다. 유대 문헌을 불태우는 움직임은 프랑스 이외에도 영국, 남부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도 일어났다.

 

주교들이 명령한 것은 탈무드를 불태우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이 히브리어를 알지 못했던 그들은 히브리어로 된 모든 책들을 보이는대로 불태웠을 것이다. 15세기 중반에 프랑스에서 불에 타서 소멸된 히브리어로 된 문서 중에는 마지막 남은 히브리어 마태복음 원본이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서구 세계의 반유대주의라는 큰 파도 속에서 복음서와 신약 성경의 히브리어 원본이 단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이유로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 지금 우리에게 히브리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의 원본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것이 설명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