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문학이란?
Ⅰ.묵시, 묵시주의, 묵시문학 1.개념 정의 묵시란 일종의 문학 장르이다.묵시록 ,또는 묵시문학이란 묵시를 일정한 체계 속에 담고 있는 글의 총체적으로 일컫는 명칭이다.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는 초월적 실재를 사람에게 은밀히 소개하는 형식의 계시를 담은 언어 표현이다. 묵시주의는 일종의 “사고형태” 또는 묵시(문학)에 담겨 있는 사상이나 주제 따위에 조종되는 세계관이다. 묵시란 문학적인 유형을 일컫는 용어이다. 하나의 유형으로 정리할 때 최소한 다음 몇 가지 사항이 보충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묵시란 일종의 계시 문학이라는 사실이다.묵시의 저자는 자기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계시의 수령자는 과거 유명한 영웅들의 이름으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셋째, 묵시의 내용은 수평적이고도 수직적인(또는 시간적이고도 공간적인) 차원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 즉 종말론적 구원을 애타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적이고, 저 세상 혹은 다른 초자연적 세계를 희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간적인 차원을 지닌 초월적 실체의 계시가 그것이다. 2. 역사적인 묵시와 묵시적 종말론 “역사적인 묵시들”은 “저 세상 여행”을 다루고 있는 묵시들과는 달리 공관보다는 시간을 ‘저 세상의 탈출보다는 천년왕국의 임박한 도래를 설파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묵시적 종말론이란 묵시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적 묵시”에 들어 있는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행위에 관한 특별한 관점을 지칭한다. 예언자적 종말론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역사를 장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라는 컨텍스트 속에서, 정치적 사건들 안에서, 여러 세계 지도자들을 통하여 활동하신다. 이때 예언자들의 선포는 어느 날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세계의 중심부가 되게 하고 거기에 다윗의 후손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앉히시리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스라엘의 적들은 파괴하고 말리라. 경건한 무리들은 보상을 받을 것이나 사악한 무리들은 심판을 당하고야 말 것이다. 이런 모든 사건들이 이 땅 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역사의 한복판에서 가시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들을 매개자로 하여 그런 일들을 이루시게 될 것이다. 예언자적 종말론은 역사 안에 성취될 “마지막”을 기대한다. 이 점에서 예언자적 종말론의 역사관은 역사에 대해서 퍽이나 낙관적이다. 예언자적 종말론이 묵시문학의 종말론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 준다. 그렇지만 묵시문학이 토로하는 마지막에 관한 신념은 예언자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질 그 무엇이 물거품에 불과하다고 판명나게 될 때 태동되게 되었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지나갈 것은 “이 세계”, “이 역사”, “이 땅”에 대한 희망이 묵시문학 종말론의 등장과 함께 “저 세계”, “저 땅”. “저 역사”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낙관론적 신뢰가 상실되게 될 때, 묵시 주의자들의 머리 속에 떠올랐던 생각은 이제 하나님은 결코 정상적인 방법을 사용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세력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키신다. 묵시문학의 종말론은 그러기에 궁극적 희망을 미래에 둔다. 이 희망은 사악한 현실 세계에 종언을 고하게 하는 형태를 취한다. 새 세계가 창조되리라. 아니면 최소한 현실 세계가 새로운 형태로 모습을 전환하게 되리라. 거기에서 새 시대의 도래가 이루어지게 되리라. 그리고 묵시문학이 개진하는 종말론은 현 세계의 파멸에 관심하기 보다는 죽음 이후에 맞는 응분의 보상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역사적인 묵시의 종말론은 사악한 현실세계의 종언을 꿈꾸는 희망을 강조하는 신념이고 또하나는 사악한 현실세계의 파멸보다는 그 세계에서 당한 의인의 “원수갚음”을 강하게 희구하는 신념이다. 3.묵시주의 묵시주의는 일종의 “사고의 형태”또는 묵시에 담겨 있는 사상이나 주제 따위에 조종되는 세계관이다.묵시주의는 항상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4.묵시문학의 기원 논의의 재 검토 묵시문학의 기원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2가지로 구분된다.첫째 유대 묵시문학이 “이방종교의 영향”이 낳은 산물이라는 주장과 묵시문학은 이스라엘 옛 전승의 열매라는 주장이다. 후자의 노력은 묵시문학의 사고구조가 지혜 전승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폰 라드) “묵시문학이란 포로기 이후 유대인 귀환 공동체에 의해 태동된 초기 예언에 대한 종말론적 재해석이다” -----찰스, 로울리, 러셀 폴핸슨. ----- 누가 묵시문학 운동을 일으킨 주체 세력인가,또는 유대인 묵시문학 공동체의 구성원이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는 “다양한 묵시적 공동체들”을 기대해야만 하며 아울러 묵시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계층과 지위에서 다양할”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5.유대 묵시문학 태동의 정치,사회적 배경 주전587년 유대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의 멸망은 유대 민족의 역사를 식민지살이의 시대를 이끌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유대 민족들은 고향 땅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을 외쳤던 예언자들의 비전은 그 땅 위에서 실현되지 않았다. 하늘은 비를 그쳤으며, 땅은 이슬을 못 내었고, 사람들 사이에는 겁탈과 강포, 시기와 분쟁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수난의 역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역사에 대한 선대 예언자들의 낙관주의적 신뢰가 회의와 실망, 분노와 저항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신뢰가 포기된 그 자리에 신화의 세계에서나 엮어 낼 수 있는 것 같은 새 우주의 창조가 환상적으로 제시되기 시작한다. 포로 후기 시대의 암울함에서 비관적인 묵시, 묵시주의, 그리고 묵시 문학적 종말론이 태동되게 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묵시문학의 태동은 예언자들의 낙관주의적 역사 이해가 벽에 부딪치게 되면서부터이다. 주전5-4세기이래 계속되는 포로 후기 시대의 수난은 현실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적 성격의 묵시 문학적 종말론을 탄생시키는 환경을 조성한다. 6.묵시문학들---묵시문학의 다양성 ,기능 , 위기와 정화. 히브리 성서에서 묵시문학에 속하는 책은 다니엘서이다. 신약성서에서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는 책이 비록 요한계시록 한 권뿐임에도 불구하고 신약성서의 저술들에는 묵시적 세계관이 보편화되어 있다. 묵시문학은 위기 문학이다. 유대 묵시문학은 유대 민족의 생존이 위협을 당하는 시절에 억압받는 유대인들에게 위로,권고,희망을 주기 위해서 생성된 문학이다. 묵시문학의 기능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묵시문학은 독자들을 위기에 처해 있다고 느끼는 자들을 위로하고 고무하는 힘을 제공한다. 둘째, 묵시문학은 기존 질서에 대해서는 강한 저항 의식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이 두 가지 기능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위치에 있다. 묵시문학의 기능을 오직 위로와 희망의 책으로 단정한다면 묵시문학은 자칫 현재의 삶에서 각자가 책임을 져야 될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망각한 채 다가올 미래에만 매달리도록 독자들을 이끄는 함정 속에 빠지고 말 우려가 있다. 반대로 묵시문학의 “읽기”에서 오로지 현실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색깔만을 강조한다면 묵시문학이 설파하는 “역동적 초월의 힘이 상실되고 마는 결과에 봉착하게 된다. 묵시 문학자들이 꿈꾸고 설계하는 새 세계는 결코 인간의 손과 발로 이룩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손과 발로 이룩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새 세상, 하나님이 건설하시는 새 창조의 세상이다. 이와 같은 묵시문학의 두 가지 기능 - 위로를 주면서도 도전을 주고, 저항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위안을 주는 - 은 오래도록 묵시문학을 경건한 책의 일부로 존속시켰던 중요한 열쇠이다.묵시문학은 어떤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위로와 권고를 제공한다. 따라서 묵시문학은 절망,박해,수난의 현장에서 “희망과 위로를 선포”함으로서 현실 역사의 억압을 이겨 나가고 있는 것이다. Ⅱ. 다니엘서의 지혜정신 1.묵시적 지혜와 다니엘서 우리가 맛소라 본문( Masoretic Text,MT)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어 성서는 다니엘서를 성문서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그러나 헬라어역 구약성서 (Eptuagint,LXX),라틴어역 구약성서(Vulgate)이래 모든 번역본들은 다니엘서를 이사야서, 예레미야, 에스겔서에 버금가는 “대예언서”로 여겨 왔다. 그러나 정작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다니엘서가 예언서가 아닌 성문서로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서 본문의 최종형태,즉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현존하는 다니엘서 본문에 대한 연구는 구약성서의 두 정경--맛소라 본문( Masoretic Text,MT)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어 성서과 헬라어역 구약성서 (Eptuagint,LXX)안에서 다니엘서가 차지하는 위치의 확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이 두개의 정경은 다니엘서 본문에 대하여 각각 서로 다른 자리 매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서에는 구약성서 묵시문학이 수렴한 지혜가 담겨져 있다. “묵시적 지혜”가 듬뿍 담겨 있는 것이다. 처음에 유대인들은 다니엘이 기술하는 역사의 마지막에 관한 상징이 마카비 시대의 통치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관한 것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로마 황제의 유대인 박해를 다니엘이 이미 정확하게 예고했다고 인정하게 되면서, 다니엘이 전하는 “마지막 때의 괴물”은 일종의 “유형론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최후의 적이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대적들의 표상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니엘서의 유형론적 해석, 재해석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다니엘은 “마지막 계시”라는 지위를 상실한다. 다니엘은 어느 상황, 어느 때이고 새롭게 적용될 수 있는 계시로 인정받게 된다. 다니엘을 예언서 중의 하나로 읽고자 노력했던 때에는 다니엘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역사의 마지막에 관한 가르침”으로 고정시켜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랍비들이 다니엘서를 예언서에서 끄집어내서 에스더나 에스라 같은 포로기 마지막, 포로 후기 시대의 시작 사이에 집어넣게 되면서, 다니엘서다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도는 종말론에서 일상 교육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위기에 처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가르치는 교훈서로 다니엘을 읽게 된 것이다. 보수적인 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의 환상부분은 기원전 167년과 164년 사이에 기록, 문헌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박해와 탄압이 종말에 대한 환상을 야기시킨 배경이다. 2. 다니엘서의 구조, 장르, 의도 다니엘서의 최종형태, 곧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다니엘서 본문은 유형상 “설화”를 보도하는 1-6장과 “환상”을 고백하는 7-12장으로 크게 구분된다. 1-6장의 설화는 히브리어로 씌어진 서론(1장)으로 시작하여 아람어로 씌어진 본론(2-6)으로 끝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반면 7-12장에 걸쳐 다니엘이 독백하고 있는 환상 보도는 아람어로 씌어진 서론(7장)으로 시작하여 히브리어로 기록된 본론(8-12장)으로 마감한다. 다니엘서는 분명 역사의 암울한 시기인 주전 167-164년이 겪었던 역사의 혼돈에 대한 반성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찌기 유포, 회람되던 전설적인 이야기에 후대의 환상의 기록을 첨가시킨 하나의 문학적 작업을 통해 생겨났다. 그것은 다니엘서가 통속신앙을 반영하고 있는 문헌들이라기보다는, 학식 있는 서기관들의 집필활동의 산물로 여겨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점이다. 다니엘서는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의 개별양식들이 저자 편집자의 의도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그럼므로 묵시란 여러가지 양식들의 결합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서의 언어 표현은 어떤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언어를 듣는 자로 하여금 저자의 세계관에 전적으로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유대인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 위기에 처한 유대인 사회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고와 위로를 전하는 것이다. 다니엘서가 독자들에세 주는 권고는 평화주의에 가깝다. 땅의 통치자를 거부하기보다는 그 밑에서 어떻게 하면 유대인으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권고가, 어떤 정치적, 종교적 혁명보다는 인내하며 때룰 기다리라는 권고가 전편에 걸쳐 공간적, 시간적으로 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겉으로 보기에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다니엘서는 주전2세기 중반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인들로 하여금 세상이 아무리 암울해도 하나님께 대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말 것을 다짐시키고 있다. Ⅲ. 비 평 1. 묵시 문학의 정의와 기본구조 묵시문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것을 만족할 만큼 定義하는데 지금까지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묵시문학 연구는 참으로 그 범위가 넓다. 아직 다니엘서를 포함한 계시록과 다수의 위경들이다. 우리가 묵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정의조차 희미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구약학계에서 묵시 문학을 새롭게 이해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은 많이 있다.특히 카나다의 Stanley B.Frost와 영국의 D.S.Russell 독일의 Otto Ploger, J. M Schmidt , J. Schreiner, Klaus Koch, Walther, 블란스의 Andre Lacocque, Marcel Delcor, 또한 미국의 J.Bloch ,Frank M.Cross와 그이 제자들 Paul D.Hanson, John J. Collins등이다. 이들은 다양하게 묵시문학을 접근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공통점 도출이 부족함을 느낌니다. 묵시문학은 고통과 비애로 가득찬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대망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미래에 그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기원전2세기 초에서 기원후 2세기 초까지의 시대에 생겨난 묵시문학에는 이러한 대망이 중심 주제가 되어 있다 묵시문학의 명칭은 요한 계시록의 첫 말씀에 언급되어 있는데 묵시적인 문헌이나 그 안에 표현되어 있는 표상들을 명명하기 위하여 희랍어 아포칼립시스, 즉 계시라는 말을 사용한다. 묵시문학은 역사의 흐름이 좋게 변화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무서운 경악 속에서 종말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이 일어 키시는 새로운 세상과 함께 시작될 것이고 경건한 사람은 무궁한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묵시문학은 계시록 ,다니엘서,위경에서 알 수 있듯이 개별적인 문헌안에 있는 표상들과 진술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도처에서 알게 되는 묵시 문학의 기본 구조는 이원론을 통해서 결정된다 .이러한 이원론적 구조는 구약 성서적 유대적 전승의 연속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묵시 문학은 구약 성서적 전통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종말을 향한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처음 기독교인들의 종말 기대는 때때로 유대교가 만들어 낸 묵시 문학적 표상들과 개념들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묵시 문학적 문헌들을 읽었어며 그 안에 기록된 약속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명백하게 된 구원으로 해석하였다.대부분의 문헌들은 번역되어서 전승되었으며 그것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읽혀지고 계속 전해졌다. 묵시문학 전통의 역사 이해에 있어서 가장 핵심되는 부분은 그 종말론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도, 묵시문학은 예언 전통과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나 학계에서 묵시문서을 종말론의 해답을 주는 교과서 처럼 해석하고 주장하고 있는데 비하여 본 서는 “헬라어역 구약성서 (Eptuagint,LXX)안에서 다니엘서가 차지하는 위치의 확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시작하면서 종말론의 해석 부분이 상당히 소외됨을 느낀다. 묵시문학 연구에서 역사적 종말론과 묵시적 종말론을 비교하여 설명할 때 묵시적 종말론이 이원론이라는 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어느 계급에서 발생했고 구약의 어떤 전승에서 이해해 하는지, 종말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물론 지혜 문서로만 해석한다면 이해되어진다. 오늘날 묵시문학의 연구 동향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구약의 묵시문학이라면 일반적으로 다니엘 생각해 왔다.또한 묵시문학의 기원을 찾는 문제에 있어서도 종래 까지는 이스라엘의 신앙전통 밖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했었다.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구약 묵시문학은 이스라엘의 신앙 전승안에서 자생적으로 배태된 것이 아니라 외래적인 영향으로 생겨난 것이라는 말이 된다..즉 오늘날 묵시문학의 연구의 공통적인 경향은 구약 묵시문학의 기원을 포로기 직후의 예언서 안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결론은 구약 묵시문학의 뿌리는 이스라엘의 예언 전승에서 찾을 수있고 페르사의 종교의 영향과 같은 외래적인 영향은 구약 묵시문학의 기본적인 성격과 구조가 이미 형성된 이후에 받아 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서는 다니엘서가 ( “ 맛소라 본문( Masoretic Text,MT)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어 성서는 다니엘서를 성문서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그러나 헬라어역 구약성서 (Eptuagint,LXX),라틴어역 구약성서(Vulgate)이래 모든 번역본들은 다니엘서를 이사야서, 예레미야, 에스겔서에 버금가는 “대예언서”로 여겨 왔다. 그러나 정작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다니엘서가 예언서가 아닌 성문서로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서 본문의 최종형태,즉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현존하는 다니엘서 본문에 대한 연구는 구약성서의 두 정경--맛소라 본문( Masoretic Text,MT)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어 성서과 헬라어역 구약성서 (Eptuagint,LXX)안에서 다니엘서가 차지하는 위치의 확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이 두개의 정경은 다니엘서 본문에 대하여 각각 서로 다른 자리 매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혜문서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본서는 묵시문학의 태동이 포로 후기 시대의 암울함에서 비관적인 묵시, 묵시주의, 그리고 묵시 문학적 종말론이 그길을 열며, 묵시문학의 태동은 예언자들의 낙관주의적 역사 이해가 벽에 부딪치게 되면서부터이며, 주전5-4세기이래 계속되는 포로 후기 시대의 수난은 현실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적 성격의 묵시 문학적 종말론을 탄생시키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묵시묵학을 탄생시킨 자들은 누구인지 어떤 계급인 지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묵시문서는 6세기말 페르시아 바벨론을 정복하고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동부 연안 지역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집단들의 귀환이 수차례걸쳐 일어나며,귀환의 동인은 주로 페르시아의 서부 지역 통치를 둘러싼 정책과 관련된다. 이 과정에서 페르샤 중앙 정부의 제국 서부지역에 대한 지배권 강화 전략과 유대의 舊지배층인 귀환계 집단의 정치적인 헤게모니 재획득 전략이 상응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본 서에서는 이부분의 설명이 약한것 같습니다. *이상과 같이 본서를 비평하면서 느낀점은 다니엘서를 지혜의 글로 보았던 교수님과 그리고 G. von Rad와 J.J.Collins의 견해를 솔직히 수용하는 바이다. 그러나 암울했던 시대에 태동되었다는 묵시문학이 이시대의 모든 문학이 묵시문학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가 묵시문학의 대표성을 뛸수 있느냐 하는 의문은 계속 가지게 된다. J.J.Collins는 묵시문학을 태동시킨 자들이 소외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소외계층이였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경에서 많은 묵시문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나 소개가 미흡했음을 아쉬움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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