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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주의 요약

하나님아들 2023. 8. 9. 23:17

정통주의 요약              

 

  1. 정통주의 신학의 배경

1) 종교개혁이 가져온 긍정적인 모습으로는 중세 천년의 틀을 깨었다는 것과 잘못된 예배의 모습과 교리 그리고 신학을 새롭게 구성하여 성경적 신학을 형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학적 흐름이 후기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됨으로 발생한 것이 정통주의 신학이다.

2) 당시 교회개혁파는 루터파와 칼빈파 쯔빙글리 파가 있다. 즉 자파를 나타내는 신학과 위상을 정립할 필요를 느끼다 보니 교단별로 신앙고백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영국교회 신앙고백, 벨기에 신앙고백 등이 나오게 되었고, 결국 자파의 신앙만을 주장하는 신앙고백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루터파 정통주의와 칼빈파 정통주의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신학의 다양성은 사회병리 현상을 야기시켰고 급기야는 싸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2. 정통주의 신학의 부류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신앙고백을 통해서 신론, 구원론, 예정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칼빈의 신학적 유산을 영구화 시킬 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루터파 정통주의자들은 축자영감설을 강조하여 루터파 정통주의의 대표적인 학설로 뿌리 내리게 되었다.

1) 칼빈 또는 그 이전

(1) 스위스에서 개혁운동을 진행한 쯔빙글리는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는 말씀을 들어 성만찬의 “기념설”을 주장했다. 예를 들면 고등학생들이 교복에 뱃지를 달듯이 상징으로 보았다. 루터는 성만찬의 공재설을 주장했다. 칼빈은 이것을 강력히 반대했다.

2) 칼빈 이후

(1) 베어미글리 - 베어미글리는 “개혁파 스콜라주의”라는 평가를 받는다. 파두아 대학을 중심으로 각광을 받고 있던 '방법론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도입하여 예정론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사변적 경향의 신학으로 흘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2) 잔키 - 베어미글리의 제자로서 그의 예지예정론은 숙명론적 성향을 지닌다. 확정적이며 단정적인 절대예정론을 주장하여 모든 사건은 미리 결정되는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했다.

(3) 베자 - 칼빈의 제자로서 칼빈의 예정교리를 옹호한다. 그러나 사변적인 경향으로 흘렀으며 칼빈 신학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4)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하였다. 우루시누스는 멜랑히톤의 제자로서 온건한 칼빈주의를 옹호하였다. 그는 예지예정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여 유기된 자들에 대한 숙명론적 입장에 빠지기 쉬운 점을 보완하였다.

3) 스위스와 독일의 칼빈주의

(1) 제 2 헬베틱 신앙고백 - 칼빈 사후 개혁주의 전통을 담은 신앙고백서가 스위스에서 간행됨으로 개혁주의는 신학적 기틀을 마련케 되었다. 이는 언약신학의 시조 중의 하나인 불링거가 작성하였다. 이 고백은 초기개혁주의 신학의 기틀을 놓아주는 역할을 하였지만 역시 스콜라신학의 사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베네딕트, 프랑소와 튜레틴 부자 - 이들은 베자 이후 개혁파 정통주의의 대변자로 불리운다. 돌트회의 지지자였던 아버지 베네딕트는 베어미글리나 잔키와 같이 극단적인 예정론을 따르고 있다. 아들 프랑소와는 조직신학자였으며 하지와 워필드의 조직신학이 나오기 전까지 전 유럽이 그의 저서 “신학적 논박의 강요”로 조직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17세기의 대표적인 개신교 스콜라주의자로 평가되는 이들도 정통주의 신학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3. 오늘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정통주의

1)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정통주의 신학의 단점은 스콜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콜라주의 신학은 이성적 개념으로 하나님을 논증하려고 했다. 종교개혁시대에도 “프로테스탄트 스콜라주의”로 말미암아 신학이 지나치게 사변화 된 것이다. 중세시대에 일어났던 사변화와는 또 다른 사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통주의 신학은 논리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인 예를 들자면, 오늘날 순복음 교회는 신학이 바로 서 있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 신앙생활에서는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굉장히 많다. 따라서 이런 정통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경건주의”가 나오게 된 것이다.

2) 그러나 정통주의는 정말 좋은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있다. 중세 1000년의 잘못된 신앙을 고치고 아름다운 신학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신학적 방법론을 통해서만 규명하려고 하여 교리주의와 교조주의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신학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되 모든 교회 공동체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신학적 배경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3) 사실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보다 더 체계적인 신학 사상을 발견할 수는 없다. 오늘 우리는 칼빈주의 신학이 가장 성경과 적합한 사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신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상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기에 무오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통주의 신학을 우리 신학의 토대로 가지고 있지만, 그 유산 중 잘못된 부분은 파헤쳐서 좋은 부분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4) 실제로 칼빈의 신학과 삶은 모두 탁월했다. 그러나 우리는 칼빈주의 신학은 잘 고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칼빈주의적 삶에 있어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개혁주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종교개혁 이후의 많은 고전의 본문들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한다.

5) 결론적으로 오늘 우리에게는 Purity와 Unity의 조화가 있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진리와 비 진리를 결정하는데 너무나 많은 피 흘림이 있었다. 결국 Purity가 무엇인지는 결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Unity가 문제이다. 물론 “어디까지가 Unity인가?”하는 문제는 쉽게 풀려지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Unity에 대한 노력은 버려질 수 없다. 장로교가 그러한 것처럼 감리교는 감리교의 방식으로, 성결교는 성결교의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