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마귀의 이해
구약성경에 나타난 마귀의 언어적 의미
엉거(Merrill F. Unger)는 구약성경의 귀신(demon)이라는 낱말은 다이모니온(daimonion)에서 왔고, 초기에는 다이몬(daimon)이라고 하였는데, 그 출처는 확실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플라톤(Platon, BC 427-347)는 “안다” 또는 “영리하다”라는 뜻이 있는 다오(dao)에서 온 형용사 양식의 다에몬(daemon)에서 끌어내어 사용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많은 현대 학자는 “가른다” 거나 “과제를 나누어 준다”라는 뜻이 있는 다이오(daio)에서 끌어냈는데, 이것은 그 뜻이 “나누는 자 또는 운명의 분배자”라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엉거는 말한다. 플라톤의 정의는 초인적인 지식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이 영들의 우수한 지식을 지적하였고 따라서 웅변가들이 그들에게서 지식을 구했으므로 더 바람직한 표현이라고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엉거에 따르면 이 낱말의 역사적인 발전에 대한 연구는 그 정확한 성경에서의 사용을 위하여 그 낱말을 형성하고 작성하는 하나님의 솜씨를 알게 된다.
1) 헬라어에서 “귀신”(Demon)의 의미
엉거는 귀신이라는 낱말인 다이몬(daimon)의 네 가지 원칙적인 의미를 소개한다. 이 낱말은 70인 역에서, 신약성경에서의 정확한 사용을 위하여 그 발전과정에서 호모의 시대(the Homeric Period)부터 70인 역의 시대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엉거는 첫째로, 이 언어의 초기역사에서 다이몬은 데오스(theos)라고 말하는 신(神, god)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프레러(Ludwig Preller) 는 신들과 다이몬들은 호머와 고대 시인들에 의하여 같은 존재로 표현되었으며, 전자는 이방 종교와 신화에서 정의한 대로 신의 어떤 인격을 더 결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며, 후자는 생물과 자연 속에 나타나는 그의 능력과 활동을 말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엉거에 의하면 다이몬이라는 낱말의 발전에서 두 번째 단계는 호머 이후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귀신들은 신들과 사람들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또한 모든 사람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그를 위한 특별한 『다이몬』과 짝지어진다는 기록을 찾아낸다. 이 개인 각자의 『다이몬』은 이 문제를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399)의 『다이모니온』(daimonion)에서처럼 분명히 사람의 영혼이나 영과 같지 않으며, 그 사람과 분리될 수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특별히 아테네의 저술가들은 선신(善神, agathoes daimon)으로 표현하였다.
이 단계에서 엉거는 귀신들이 신들보다 낮은 존재들로서 표현되었더라도 적어도 그들은 도덕적으로 악한 자로 생각되지 않아서 그들을 선한 귀신들과 비교하여 생각했다고 한다. 『다이몬』이란 낱말의 발전의 제3단계는 헬라인들이 귀신들을 사람처럼 어떤 면은 선하고 어떤 면은 악하여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로서 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낱말의 개념이 점진적으로 저하 되는 이 단계는 신들을 높이 찬양하려 하고, 일반적인 신화에서 그들에게 속한 열정과 추문을 책임질 중개자인 “귀신들”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결과라고 말한다.
엉거는 크노크라테스(Xenocrates)가 말한 선신과 악신 사이의 차별은 특별히 사람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미덕의 도수에 따른다고 주장하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과 헬라의 역사가 플르타르코스(Plutarch, c. 46-120) 등과 같은 후기 저술가들에 의하여 계승되어 왔다고 한다. 주전 1세기의 스토아 철학자의 한 사람인 포시도니우스(Posidonius, 135-50 BC, 스토아 철학자)는 귀신들을 죽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의 영혼으로 보는 이론을 만들었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보다 선한 사람의 영혼은 보다 높은 지역에 살며 부정한 영혼들은 땅에 가까운 데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낱말의 발전과정에 대한 마지막 단계에 대한 엉거의 견해는 70인 역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있는 것처럼 모든 귀신은 악하며 사탄 왕국의 부하들로서 그의 활동 요원이라는 것이다. (마 12:22-30) 기독교의 초기 저술가들도 모든 귀신은 악하다는 증거를 많이 하였다. 예를 들면 순교자 저스틴 (Justin Martyr, 100-165)은 분명히 구약성경의 교훈(신 32:17; 시 106:37)과 신약성경의 교훈(고전 10:19-20; 딤전 4:1)을 따라서 귀신들이 헬라의 신화에 감동을 주었고 마술사 시몬(행 8-9장)과 마르키온(Marcion, c. 85- c. 160)과 같은 이단자들과 같은 악한 사람들을 일으켜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도록 힘을 주는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2) 70인 역(Septuaginta) “귀신”의 의미
엉거에 따르면 다이몬과 다이모니온(daimon, daimonion)은 구약성경에 사용된 헬라어에서 자주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에 해당되는 히브리어의 번역 어미이다. 헬라 문화에서 사용하던 헬라어 단어 다이몬이나 다이모니온(daimon, daimonion)과 정확하게 같은 히브리어가 없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다섯 가지 이상의 히브리어가 이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1) 쉐드힘(skedhim)
엉거는 귀신(daimon, daimonion)이란 낱말이 70인 역에 의하여 히브리어 낱말 쉐드힘(Shedhim)과 이와 비슷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몇 가지 다른 낱말을 헬라어로 번역함으로 성경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쉐드(Shedh, 언제나 복수인 Shedhim으로 나옴)는 흠정역에서는 “악마들”(devils)이라고 하였고 개역성경(the Revised Version)에서는 정확하게 “귀신들”(demons)이라고 번역한 신명기 32장 17과 시편 106장 37절에 나타나고 있다. 그 어원(語源)은 그렇게 잘 알 수는 없으나 아라비아어로 사라(sala)라는 말과 같은 쉐드(Shedh), 즉 “다스리는 것, 주(主)가 되는 것”이라는 말의 근원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히브리인들은 우상 의 형상은 단순히 사람에게 숭배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귀신들의 보이는 상징으로 생각하여 왔으므로 우상들은 당연히 “주(主)들”이 되는 것이 그 기본적인 의미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노래(the Song of Moses)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흘러갈 때 “신이 아닌 귀신들(쉐드힘)에게 제사하였으니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들이라”라고 엉거는 말한다. (신 32:17)
또한, 엉거는 쉐드힘은 실재로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처럼 가정하여 만든 우상의 형상을 의미할 뿐 아니라 동시에 인간들 배후에서 숭배하도록 힘을 더해 주는 실제적인 영적인 존재가 아님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이같은 양면성은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우상숭배로 떨어질 때 시편의 말씀에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邪神, daimonia, Shedhim)에게 제사하였도다 무죄한 피 곧 저희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 우상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 (시 106:37-38)라고 그녀는 말한다. 가나안 우상은 생명이 없는 우상의 표현으로서 허구의 가시적 조형물에 불과하다. “귀신들”(shedhim)은 잘못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실제적인 영적인 실재들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 영적 실재의 이름은 앗수리아의 “쉐드”(shedu)와 비슷한데, 그것은 분명히 신들보다 아래에 있고 그들에게 예속된 제니(genni, 아라비안 나이트의 귀신)나 수호신들을 의미한다고 엉거는 말하고 있다.
(2) 세이림(seirim)
엉거는 레위 족속의 제사법(레 17:1-7)은 광야에 있던 히브리인들에게 장막성전에 들어갈 때 희생의 제물을 잡아서 바치라고 명령함으로써 그들이 광야에 나가서 “전에 음란히 섬기던” 수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않도록”(레 17:7) 했는데, 이 수염소를 원어에서 『세이림』(Seirim)이라고 하였고 70인 역에서는 다이모니아(daimonia) 라고 했다고 한다. 이 독특하고 다양한 귀신숭배가 여로보암 1세(BC 929-909) 치하에서 다시 고개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성행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레위인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기를 거부하고 “여러 산당과 수염소 우상(히브리어로 세이림, 70인 역의 헬라어로 다이모니아)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스스로 제사장들”(대하 11:15)을 세웠기 때문이다.
또한, 엉거는 어원학(語源學)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 낱말은 “털 많은 자” 또는 “수염소”를 말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귀신들은 모양과 성격이 염소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시적인 말씀들에서 이들 호색적인 마귀들이 바벨론의 폐허에서 춤을 추며 폐허의 도시에서 서로 부르는 장면을 그렸다. (사 13:21; 34:14) 본문에 나오는 “들양”과 “수염소”는 둘 다 세이림(seirim)으로서 다이모니아(daimonia)로 번역된다. 이는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유대인들이 그들을 귀신들로 생각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3) 우상들(idols)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또는 우상, 히브리어로 예리림, 70인 역의 헬라어로 다이모니아)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 96:5; LXX 95:5) 이 고전적인 말씀에서 엉거는 귀신들을 우상들과 같은 것으로 말씀하였으며, 귀신숭배는 우상숭배의 활기로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히브리어의 예리림(elilim)은 단순히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닌 “헛것”, “없는 것”을 의미하는 “없음, 빈, 공허한”의 형용사적 의미를 가진 낱말의 복수이다. 우상들은 헛것이지만, 그들 뒤에 있는 귀신들은 실재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4) 갓(gad)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운명의 신인) 갓(gad)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면”(gad을 70인 역에는 다이모니온으로 번역) 다시 우상숭배는 귀신들과 관계되어 있음을 확인하여야 한다고 엉거는 말한다. 운명의 신(gad)은 바벨론 사람들에 의하여 숭배되어왔다. 이 운명의 신은 어디나 있으며 바알(Baal), 벨(Bel)이라고도 불리어 왔으며 동양 전 지역에서도 행운을 주는 자로 생각되었다. 70인 역 구약성경에는 그의 특징과 힘 때문에 “귀신”으로 번역되고 있다고 한다.
(5) 파멸
“암흑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퀘테르, qeter)을 두려워 아니 하리로다”고 하신 말씀에서 또한 엉거는 “백주의 악령”, 즉 “귀신”을 말씀하였다고 주장한다. (시 91:6; LXX 90:6) 이러한 사실에서 일반적인 귀신의 관념이 번역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음을 추적해 낼 수가 있다. 민족적인 방종 가운데는 밤낮으로 모든 순간에 악한 원수 갚는 영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70인 역 구약성경에서의 “귀신”이라는 낱말은 언제나 불길한 것을 말하고 있다. 요세푸스(Josephus, 37-100)에 있어서는 이 낱말은 신약성경에서처럼 변할 수 없는 악령들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헬라적인 용법에서의 변화는 첫째로 그 낱말의 사용에서 더욱 더 악한 것이 되는 악신들에게서 선신을 구별해 내는 일이며, 둘째로 이방신들에게 속하는 사악한 이름의 범위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엉거는 말한다.
신약성경에서 “귀신”의 의미
호머의 시대로부터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이몬과 다이모니온의 뜻은 그와 같이 점진적으로 신보다 하위(下位)로 내려갔으며 더욱 더 악하다는 개념이 더해졌으며 마침내 신약성서에서 “악령” 또는 “마귀의 사자와 일”이라는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이름까지 얻게 된 것 같다고 엉거는 말한다. 귀신들은 영적인 존재들로서 지성적이고 악하고 부정하고, 사람의 육체를 해치고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더럽히는 일을 함으로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능력이 있다고 엉거는 말한다.
1) 다이모니온(δαιμόνιον)
예영수는 이 용어 대부분은 복음서에서 발견되고 있고(53회/ 마태복음 11회, 마가복음 13회, 누가복음 23회, 요한복음 6회), 나머지는 신약 각 문서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한 곳에서 다이몬(δαίμων, 마 8:31)이 다이모니온을 대체한 것으로 나타난다. 신약에서 다이모니온이 등장하는 경우는 그 대부분이 공관복음서 중 예수께서 치료의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이다. 그 가운데 몇몇 병행 구절들(막 1:23, 26, 눅 4:33, 35, 마 8:28, 31, 막5:2, 눅 8:27, 막 5:8 이하, 눅 8:29이하, 마 10:1, 막 6:7, 눅 9:1, 막 9:20, 눅 9:42 등)을 보면 다이모니온이 ‘영’(πνεύμα), 특히 ‘더러운 영’(πνεύμα άκαθάρτον)과 같은 의미로 복음서 기자들에 의해 이해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2) 디아볼로스(διαβόλος)
예영수에 의하면 이 단어는 원래는 “디아발로”(διαβόλλω)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인데 ‘분리시키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희랍 언어의 콘텍스트에서는 “불평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중상(中傷, calumination)의 뜻을 나타낸다. 주후 1세기에 살았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경우엔 사탄을 지칭하면서 이 호칭 이외에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거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70인 역의 경우 여성형 “디아볼레”(διαβολη)는 비방의 뜻으로 사용되든가, “디아볼로스”(διαβόλος)의 뜻으로는 참소자(讒訴者, accuser)라는 의미로 불리는데, “대적자, 원수”의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70인 역에서도 디아볼로스를 사탄(분리시키는 자, 원수, 중상자, 유혹자의 의미가 있음)의 뜻으로 사용한다. 그 뜻은 참소자, 유혹자의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대적자”라는 뜻이 가장 합당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대적자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키는 자로 파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사타나스(Σατανας)
사탄(satana, Σατανας)이라는 명칭에서 예영수는 신약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된 귀신의 이름들은 ‘사탄, 벨리알’(고후 6:15), 바알세불(마 10:25, 12:24, 27 등 7회 등장) 뿐이라고 한다. 다른 것들은 악마적 존재를 지칭하는 일반적 호칭일 뿐이고 고유한 이름으로 지목되는 것은 이들 셋이라고 예영수는 말한다.
이들 세 명칭 중에서 바알세불이란 이름이 주목하게 한다. 이것은 공관복음서에만 등장하는데, 예수가 귀신들을 내쫓는 것이 ‘귀신의 왕’이라는 바알세불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는 장면에서 이 호칭이 나타난다. (막 3:22-26, 마 12:24-27, 눅 11:15-19) 특별하게 마태복음 10장 25절에는 예수가 직접 이 명칭을 사용한 유일한 예가 발견된다고 한다.
바알세불이란 이름을 어원적으로 규명하기는 어렵다고 예영수는 말한다. 몇 가지 해석이 제시되는데, 첫째로 이 말이 시리아 번역자들이나 제롬 등에 의해서 블레셋 에그론의 도시 신인 ‘바알세붑’(Beelzebub, 파리 바알: 왕하 1:2, 3, 6, 16)으로 표기된다는 사실과 우가릿 문서로부터의 조명 등을 고려하여 “파리들(flies)의 주(主)”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하나의 해석은 ‘세불’이란 말이 “거처, 처소”의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바알세불’은 “거처, 즉 신당의 주”로 번역되며 결국 야훼의 대적자인 사탄의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제안은 바알세불을 ‘세불’이 갖는 고대 중근동의 유사어인 분(糞)과의 상관성을 고려하여 “대변(大便)의 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밖에 바알세불을 “불꽃의 주”로 이해하는 제안 등이 나타나지만, 그 어원이나 명확한 정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복음서에서 바알세불을 사탄과 동일하게 하고 있다는 점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4)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귀신의 의미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의 치유와 이적 이야기에 나오는 “귀신”에 대해서 복음서의 기자의 의도가 상당히 반영된 부분이 있다. 같은 부분을 다루면서도 기록된 공관복음서 내용이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특징인데, 각 성경의 주제가 시대적 상황에서 각기 다른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도 균일하게 등장하고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어나가고 있음을 볼 때, 그리스도의 사역에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가 마귀와 귀신들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과의 관계성에서는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새 창조이지만, 마귀 입장에서 십자가란 자신의 완전한 패배이며, 소멸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 마태복음에 나타난 귀신의 의미
예영수에 의하면 마태는 마가에 비하여 매우 뚜렷하게 이적 보도가 축소되어 나타난다고 한다. 마가에 나타난 이적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 마태에도 등장하고 있지만(막 7:31-37, 8:22-26은 제외), 이야기의 내용은 현저히 축소되어 소개되고 있다. 그것도 마태복음 산상수훈 직후 부분에 중점적으로 모아진 상태다. 마태에서 쉽게 발견되는 교훈 부분에 이적 보도는 보론(補論)으로 추가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인데, 이 점은 마가복음서의 경우 교훈과 기적 보도가 균형 있게 등장하고 있는 사실과 비교할 때 주목받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적 일반에 관한 마태의 특성은 귀신과 관련된 내용에서도 예영수는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 마가복음 7장 27절~8장 3절의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장면과 병행 부분인 마태복음 15장 26절~32절을 비교할 때 이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귀신과 관련된 묘사는 마태의 경우 7장 22절에 딸의 상황 묘사를 하면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들렸나이다.”라는 한마디의 말밖에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하여 마가의 경우는 7장 25절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라는 표현과 26절의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주기를 간구하거늘”이란 표현 그리고 29~30절의 예수 말씀인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 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마가의 경우엔 뚜렷하게 귀신의 현존과 축귀를 지적하는 한편, 질병 치료의 이적을 생생한 필치(筆致)로 강조하여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마태의 그것은 확연히 축소된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정황의 결론에서 예영수는 마태는 귀신 추방이나 병의 치유 등의 이적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그것을 행한 예수의 인격에 대한 관심보다 그러한 행위의 상징적 의미나 그에 결부된 교훈적 내용에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고 한다. 마태는 자신들이 절박하게 대결하고 있던 유대교와의 투쟁에서 기독교 신앙의 우위를 확신시키기 위한 “가르침”에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마태는 가르치며 훈계하고 꾸짖는 “교훈의 예수” 모습을 좀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 마가복음에 나타난 귀신의 의미
예영수는 마가가 나타내는 예수가 행한 최초의 지상 활동은 귀신 추방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하고 있는 마가복음 1장 21~28절에 이 축귀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회당 귀신 들린 자의 귀신 추방 이야기는 신약성서 축귀 사역을 행한 기록의 전형으로 간주한다. 다음과 같은 네 단계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귀신은 축출자를 알아채고 저항한다. 둘째, 귀신 축출자의 위협과 명령이 나타난다. 셋째, 귀신은 시위하며 떠나간다. 넷째, 이를 지켜본 주변 사람들의 인상이 서술된다. 이러한 사례는 지금도 축사에 있어서 똑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보아야 한다.
예영수는 예수의 첫 번째 활동인 귀신 추방의 기록에서 예수 당시 사람 들의 일반적 질병 의식을 지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의 질병이 필연 적으로 귀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신약 시대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다르게 깊이 할 필요가 있다. 당시는 자연법에 대한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고착된 생각이 없었을뿐더러 현상계의 운행과 그 질서를 설명함에 있어서 신적 작용과 개입에 대하여 훨씬 개방적인 이해를 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고대 이방 사회에서나 유대 사회에서 질병의 원인이 귀신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이해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예영수는 역사적 예수가 생전에 여행하는 치료자, 기적의 행자(行者)였고, 축귀자(逐鬼者, exorcist)였다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질병 치료라는 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막 1:34, 39, 6:13, 마 7:22, 9:34, 10:8; 눅 11:15, 13:32 등) 따라서 예수 당시의 사람들은 귀신 추방과 질병의 치료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다. (막 1:32-34, 눅 6:18 이하) 일종의 치료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예수 메시지의 본질적 부분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예수의 치유 행위는 곧 악마의 세력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귀신들에 대한 이러한 승리는 하나님 나라를 도래하게 하기 위한 예수 사역의 근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3) 누가복음에 나타난 귀신의 의미
예영수는 누가의 사탄에 대한 이해는 누가복음 4장 1~13절에 나타나는데, 누가복음 4장 5~7절(‘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의 내용을 보면 사탄이 ‘세상 모든 나라’(πάσας τά ς βασιλείας της οίκουμένης)를 다스리는 권세와 영광을 줄 수 있는 존재로 표현된다고 한다.
그는 여기에서 ‘세상’(오이쿠메네)의 명확한 뜻은 ‘사람이 사는’ 세계를 가리키는데, 그렇다면 이 구절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권세가 사탄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누가는 사탄을 세상 속에서 강한 권세를 휘두르며 자기의 권위 아래 인간들을 복속시키는 그러한 존재로 파악한다. 사탄은 인간에게 질병과 귀신 들림이라는 현상을 통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며 세상과 그 가운데 사는 인간들을 지배한다. 그 지배권을 예수에게까지 확장키 위해 광야의 시험을 통해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마침내 예수의 사탄에 대한 우위와 사탄의 패배가 확증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누가복음서 전편에 등장하는 귀신 관련 기록에서 발견되는데, 그 모습을 누가는 비유적 묘사(눅 11:21-22)를 통해서 잘 그려주고 있다. 즉, 귀신(사탄)을 ‘강한 자’, ‘잘 무장된’ 존재로서 ‘그 소유’를 안전히 지키는 자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러한 귀신을 예수는 단호히 축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누가의 관점은 다른 공관복음서 기자와 비교해서 자신의 직업과 예수의 치유사역이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4) 사도행전에 나타난 귀신의 의미
예영수는 사도행전이 묘사하고 있는 바울을 비롯한 초기 선교사들은 그들의 선교 영역 확장의 와중에서 귀신, 또는 귀신 들린 사람들과의 대결 결과 그 승리를 통하여 많은 결실과 긍정적 효과를 본 것으로 제시한다. 사도행전 13장 4~12절에서 바울이 소위 제1차 전도 여행 동안 구브로의 바보라는 곳에서 유대인 거짓 예언자인 마술사(τινά μάγον) ‘바예수’의 방해를 받게 된다. 여기서 바울은 ‘성령의 사람’으로 ‘바예수’는 ‘귀신의 아들’과의 대비임을 극적으로 부각한다. 대조의 요점은 성령과 귀신의 대결이다. 그리하여 ‘바예수’, 곧 귀신에 의해 조종되는 자가 성령에 의해 지배받는 이의 선교 사역을 반대한다는 초기 선교가 갖는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초기 선교에서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적대자의 존재는 귀신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처음 선교사들의 귀신에 대한 투쟁과 승리는 심지어 사도행전 19장 11~12절과 같은 놀라운 이적을 행하였다고 누가는 전한다. 이적과 축귀로 점철된 사역을 통하여 이방 교회의 확장, 즉 땅끝으로 향한 복음의 점진적 이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사탄을 나타내는 성경의 또 다른 표현들
성경은 마귀를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묘사한다. 아바돈 혹은 아볼루온, 파괴자(계시록 9:11), 형제의 참소자들(계시록 12:10), 대적자(벧전 5:8), 광명의 천사(고후 11:14), 무저갱의 사자(계 9:11), 적그리스도(요일 4:1-4, 요이 7), 바알세불-에그론의 배설물 신(dung god 마 12:24, 27), 벨리알(고후 6:15), 정죄자(딤전3:6), 기만하는 자(계 12:9, 고후 11:3), 귀신-참소자, 중상하는 자(마 4:1, 요 8:44), 용(계 12:9), 원수(마 13:39), 악한 자(마 13:19), 이 세상의 신(고후 4:4), 왕(계 9:11), 거짓말쟁이(요 8:44), 살인자-생명의 파괴자(요 8:44), 압박하는 자-지배하는 자(행 10:38), 공중권세 잡은 자(엡 2:2), 우는 사자(벧전 5:8), 악한 영들의 지배자(마 12:24), 이 세상의 지배자(요 12:31, 14:30, 16:11), 사탄-대적자, 반대하는 자(마 4:10, 슥 3:1), 독사, 뱀(창 3:1, 계 12:9), 유혹하는 자(마 4:3), 도둑(요 10:10), 늑대(요 10:12) 등 다양한 단어로 성경은 마귀를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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