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
1. 세대주의의 기원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입장을 달리하며 성서적인 기독교를 수호하려 했던 또 다른 신학적 흐름이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세대주의다.
세대주의의 기원은 1820년대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라는 사람에 의해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귀족의 집안에 태어나서 영국 Dublin에 있는 명문대학 Trinity College에서 수학했다. 처음에는 변호사로 일했으나 회심 이후 목사가 되었다. 목회의 길에 접어든지 일 년 만에 수백 명의 가톨릭교회 신자들을 개신교로 개종시킬 만큼 유능한 목사였으나, 기성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특수층인 성직자만 설교하고, 성례식을 집례하는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사상인 ‘만인사장제’에 위배된다 하여 영국교회를 박차고 나와 따로 몇몇 모여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 후 기성교회의 잘못을 비난하는 책(On the Nature and Unity of the Church of Christ)을 1827년에 쓰고 나서, 그의 독특한 목회 스타일로 그의 추종자 몇 사람과 같이 개인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플리머스 형제단’(Portsmouth Brethren)이라는 신령주의적 성경연구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신앙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플리머스 교단의 대표로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의 예언에 기초한 독창적인 성경해석법을 완성시켜 나가던 중, 스코틀랜드에서 10세의 어린 ‘맥도날드 ’양의 예언(대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되는 환상)을 전해 듣고서 그녀의 휴거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대주의적 성경해석방식을 구체화하였다.
그는 매주 한 번씩 성찬식을 거행했고,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교대로 설교하면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으며, 그의 온화한 인품과 탁월한 교수 능력으로 나름대로 그 모임을 잘 인도해 나갔다. Darby는 어학 지식이 대단하여 성경을 불어, 독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그를 <세대주의 신학의 창시자> 라고 부른다. 영국에서의 다비의 이 세대주의가 미국에 상륙한 것이다.
1900년 초기에 다비의 이 세대주의 이론이 미국의 스코필드(Scofield; 1843-1921)에게 전수되어, 1909년 이른바 스코필드 성경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행되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급속도로 세대주의가 전파되게 되었다. 스코필드는 군인 출신 법률가로 성경원어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었고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나름대로 KJV(제임스왕판 성경, 1611)에 여기저기 나름대로 생각해낸 주석을 기입했다. 그래서 스코필드의 성경을 읽는 사람은 나중에 다른 사람과 토론할 때에 어떤 구절을 놓고 그것이 성경본문에 있는 말인지 아니면 스코필드가 한 말인지 혼동을 가져올 때가 있다고 토로(吐露)했다 한다. 특히 다비의 대환난 이전의 휴거설과 7년 대환난과 이후에 전개되는 천년왕국 사상이 주장될 때만해도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았지만, 미국의 스코필드 박사의 손질을 거친 후,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무디 성서신학교 출신으로 회중 교회 목사였는데, 다비의 세대주의적 종말 사상에 심취되어 자신의 스코필드 관주성경(The New Scofield Reference Bible, 1909, 1917)의 주석에 그 내용을 포함시켰다.
2. 세대주의 의미와 전파
세대주의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는데 현저하게 다른 세대들이 있다는 신념이다. 세대주의는 아담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인류의 모든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각 세대에 따라 다르게 역사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 세대주의의 교리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영국에서 건너온 “자연신교”나 독일에서 건너온 “종교사학파(宗敎史學派)" 등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 Princeton 신학교에 상륙하면서 미국의 정통적 개혁주의 신학은 침식되었고 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신신학 (新神學)에 빠져 들어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KJV(흠정역성경) 성경이 급물살을 타고 빨리 펴져나갈 수 있었던 것도 독일의 이상한 비성경적 성경해석 바람이 미국에 상륙하여 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암흑기에 스코필드의 성경은 새로운 오아시스로 받아져서 너도 나도 사서 읽었고, 다비의 신학을 전수받은 스코필드는 그의 성경을 통해서 세대주의 신학이 널리 펴나갔다.
3. 세대주의와 개혁주의의 차이점
세대주의의 신학 개념은 다음 몇 가지 차이가 있다.
1) 세대주의는 역사의 시대를 7가지로 구분한다.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세계 통치에는 분명한 구분이 될 수 있는 서로 다른 세대들이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렬한 기대를 강조하려는 목적에서 일어났다. 즉 세대주의는 세상을 하나님의 뜻(경륜)이 이루어지는 장(場)으로 간주하고, 각 세대마다 여러 단계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다른 역사가 이루어져 간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세대주의자들은 단계적 세대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신학적 과제로 삼았는데, 이 계시는 점진적으로 마침내 완전한 종말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신학 사상을 가리켜 ‘세대주의 종말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세대주의 하면 종말론이 연상될 만큼 세대주의는 현대 종말론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세대주의는 아담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인류의 모든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각 세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믿고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1. 무죄시대 (Innocence, 창조부터 인류 타락 전까지)
2. 양심시대 (Conscience, 인류 타락부터 노아까지)
3. 인간통치시대 (Human Government,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4. 약속시대 (Promise,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5. 율법시대 (Law, 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
6. 은혜시대 (Grace, 교회시대) 7. 왕국시대 (Kingdom, 천년왕국)
이렇게 7 세대로 구분하여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르게 다스리시며, 위와 같은 7가지 세대마다 각각 인간에게는 다른 책임이 주어진다고 말하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의 신학이다. 다시 말해 각 시대마다 구원 얻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양심시대는 양심에 따라 살면 구원을 받고, 율법시대에는 율법을 따라 구원받는다는 식이다. 시대마다 다른 구원의 길을 주셨다는 교리였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7 가지 시대로 나누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엡 2:8) 말씀을 모르는 소치에서 나온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오직 한 가지 방법 즉 하나님의 은혜로 인류를 구원해 주신다고 가르친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고, 신약은 그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예언대로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Immanuel), 그가 구약에서 예언한 그대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고 믿는다. 구약에서 행위계약에 실패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위하여 “은혜 계약”을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것이 개혁주의 구원관이다. 노아홍수 때에도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었다고(창 6:8)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한결같다.
그들은 또 율법과 은혜를 엄격히 구분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은혜시대” 에 살고 있기 때문에 율법인 십계명을 존중은 하지만, 우리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으로 지킬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세대주의에 의하면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단지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것뿐”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은혜와 율법을 완전히 구분하는 것이다.
2) 세대주의 신학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
세대주의의 두 번째 특징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측면으로 해석한다. 성경의 해석은 항상 문맥을 통해서 바른 해석이 나온다. 성경의 해석의 원칙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이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말이다. 이는 성경을 해석할 때는 항상 역사적 배경을 알고, 문법적으로 분석하고, 그리고 앞 뒤 문맥을 통해서 신학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세대주의자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온갖 해석상 오류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2장의 말씀 중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내가 다시 지으리라” 란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문자 그대로라면 46년간 걸려서 지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문자 그대로 단 3일 만에 재건한다는 말이니 예수님은 그런 의미로 말씀한 것이 아니다. 그 다음절 (요 2:21)에 보면 문자 그대로의 성전을 말함이 아니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함이 분명하다. 또 다윗의 보좌가 영원하리라 (삼하 7:13)는 이 땅에서 다윗의 나라가 부활된다고 말하는데, 성경은 로마서 1:3이나 사도행전 2:29-32 등에서 그리스도가 임한다는 말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항상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원칙은 무리가 있다.
특히 세대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대부분의 숫자를 문자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계 7장과 14장에 언급된 ‘144,000’이라는 숫자 역시 주님의 첫 번째 공중 재림과 더불어 부활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혼인잔치를 즐길 때, 지상에 남겨진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의 실제적인 숫자 곧 지상의 7년 대환난 기간 중에 살아남은 자의 이스라엘(유대인)의 숫자가 144,000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이전에 땅 위에 남아 있는 성도들 중에서 구원의 기회를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무리를 가리킨다.
그런데 ‘144,000’은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총수를 상징화한 숫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즉 이 숫자는 12×12×1000으로서 구약의 백성(12지파)와 신약의 백성(12사도)에다 완전성과 무한성을 나타내는 숫자인 1000을 곱하여 나온 숫자로 본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딤후 2: 19). 계시록 7장에서는 이들이 마지막 때의 환난과 사단의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온다.
계시록 13장을 보면 ‘짐승의 표’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데, 666을 짐승의 표,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으로 하고 있다. 세대주의는 이 ‘표’도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그래서 실제로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계시록 전후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컴퓨터의 영자 철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환원하여 합하면, 666이라는 숫자를 얻게 된다고 말하고, 더러는 상품의 통상부호인 바코드(bar cord)도 666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666이라는 숫자를 적그리스도와 연결해서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억측들이 난무하였다. 그러나 계시록에 언급된 ‘표’는 당시 군인들, 노예들, 신전 봉사자들에게 소유물의 증거로서 낙인을 찍는 통상적인 전통에서 빌려 온 상징어이다. 즉 ‘표’는 소유, 충성, 보호를 상징하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적그리스도와 666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은 짐승의 수를 판독하는 일보다 짐승의 도덕적 본질을 파악하려는 통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적그리스도는 짐승의 머리이고,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하수인이다. 집단적 권력의 총체로서 등장하는 적그리스도가 초대 교회에서는 네로로, 중세시대에는 교황으로 지목되었는데, 그것은 바른 지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시록에 언급된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아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전의 적그리스도 보다 훨씬 더 가공할만한 능력과 속임을 가진 인격체로서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는 적그리스도와 짐승이 언제 어느 때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말며 인내와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계 13:10).
3) 구약과 신약은 관계가 없고 구약은 이스라엘만 말한다고 가르친다.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엄격히 구분한다. 세대주의는 교회가 구약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예시되지도 않았으며 오순절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또 세대주의는 교회의 제한적인 역할만 인정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육적인 이스라엘> 나라 (지금의 유대민족) 만을 말한다고 가르친다. 믿는 성도가 모두 영적인 이스라엘임을 그들은 부인한다.
그렇다면 갈 3:29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란 말은 분명히 우리들 이방인들을 말하며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이는 로마서 2장 28절 말씀이 입증한다. 그런데도 세대주의는 모든 예언의 말씀이 이스라엘 즉 육적인, 다시 말하면 지금의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예언이라고 가르치면서 갈 3:29 말씀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예언은 이 땅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므로 이 세상에서 성취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에스겔서 40장에서 48장에 나오는 <성전>은 문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성전이며 장차 이 세상에서 이뤄진다고 가르친다. 또 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도 문자 그대로 <이 땅에서의 성전으로, 앞으로 이 땅에 살게 될 성도들이 영원히 살게 될 곳> 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롬 9:6,7)처럼 <교회가 새로운 이스라엘> 이라고 가르친다.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무조건 항상 이스라엘 나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나라를 말할 때도 있고, 영적인 이스라엘 즉 믿는 성도들을 말할 때도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예수의 피로 죄를 씻음 받은 자들 이 새로운 12 지파가 되었다>고 야고보 1:1에 말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스라엘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음을 믿는다. 즉, 1.유대민족, 2.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 3.솔로몬이 죽은 후 나라가 양분되어 10개 지파로 만들어진 여로보암 왕의 북국 (사마리아 중심) 이스라엘, 4.영적 아브라함의 자녀 즉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는 모든 무리(갈 3:29) 등 이렇게 이스라엘의 의미가 많은 것을 세대주의 신학은 부인한다. 그래서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관을 부인하며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말하기를 “구약에는 교회에 대한 예언은 한 마디도 없다”고 주장하며 모든 예언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나라 백성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말한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을 위함이었는데 유대인들을 위하여 영적이 아닌 이 지구위에서 이루어질 다윗의 왕국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고 가르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자 이 왕국은 장래 왕국시대가 되어야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들은 가르치며 그 사이에 하나님은 “교회시대”를 임시로 주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세대주의자들은 말하기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도래했다는 말을 믿지 않으며 그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 말대로라면 항상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며 현재와는 관계가 없다고 가르친다. 이에 반하여 개혁주의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바로 교회> 라고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도래해 있고 그 마지막 완성은 미래 재림 후에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4)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와는 관계가 없고 항상 미래에 속하며 이 지구 위에서 성취된다고 말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별한다. 천국은 하나님의 지상 통치를 말하며, 하나님 나라는 보편적인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를 통해서 그를 믿는 모든 이미 사람에게 지금 도래했다(마 12:28; 눅 17:21).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살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고(눅 17장) 그 마지막 완성은 미래에 속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개혁주의적 신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지만 아직도 미래에 속한다> 미래에 속한다는 말은 마지막 사탄이 불못에 던져지는 대심판 날에 사탄이 완전히 제거되고 영원한 신천지가 도래할 것을 내다본 것이다.
5) 이중 재림설(전천년설)
세대주의는 7년 환난을 전후로 있을 그리스도의 이중 재림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러니까 환난 전에 첫 번째 (공중) 재림(혼인잔치)이 이루어지는데, 이때에 교회와 성도들이 들림(휴거)을 받을 것이라 한다. 또한 휴거되지 못하고 지구상에 남아 있는 자들은 불신 세계의 심판을 위해 대환난과 아마겟돈전쟁을 겪은 후에야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 또 한 번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중 재림에 대해 말하는 곳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전천년설로 예수 재림 시 의로운 자들의 부활이 있고, 천년 후 세상말에 불의한 자의 부활이 다시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양자가 함께 부활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단12:2, 요5:28~9, 행24:15).
그리스도의 1회 재림은 정통 교부들과 어거스틴으로부터 칼빈과 루터,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에게 공히 지지받고 있는 성경적인 견해이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적어도 19세기 세대주의가 출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중 재림을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7년 대환난을 전후로 각각의 다른 대상을 전제한 첫 휴거와 재림에 대한 견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의 말씀대로 인격적이며, 육체적이며, 가시적이며, 갑작스러우며, 영광스럽고 승리의 단 한 번의 재림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시기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6) 세대주의는 주장하기를, 재림시 성도는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세대주의자는 장차 다가올 ‘대환란’ 전에 믿는 성도는 모두 휴거되어 절대로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대 환란이 오기 전에 교회는 휴거되어 성도는 환란을 면하게 되고 휴거가 있은 후에는 유대인들 중 남은 자가 교회를 맡게 되며, 이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와 이방민족을 회심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마태복음 (마24:21-22)이나 베드로전서에 말한다.
7) 몰래 ‘휴거’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이 쥐도 새도 모르게 몰래 재림할 수 있는가? 물론 세대주의자는 베드로후서 3장10절을 근거로 말하지만 성경 한 군데만 보지 말고 다른 곳도 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4 에는 “결코 도적같이 올 수 없다” 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우리는 빛의 자녀로 옮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은 빛 가운데 행치 아니 하고 아직도 어두움 속에, 즉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벧후 3:10 말씀처럼 도적같이 임할 것이지만 예수를 믿고 있는 성도에게는 도적같이 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늘 그 날을 고대하며 살기 때문이다.
이 성경해석이 정확한 증거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는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천사장의 호령소리로 주님이 강림>하시면 죽은 사람들이 그 나팔소리에 무덤에서 일어난다고 했는데 죽은 사람도 듣는 그 나팔소리를 살아남은 우리가 못 듣겠는가? 주님의 재림은 몰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4. 긍정적인 측면
세대주의의 긍적적 평가는 첫째, 세대주의는 철저하게 성서 제일주의 입장을 취했다. 성서의 축자 영감과 무오설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었다. 둘째, 세대주의는 내적 통일성을 지닌 신학 체계였다. 세대주의자들은 전체 성경 본문을 일관된 체계 아래 논리적으로 배열하려 했다. 셋째, 세대주의는 성경연구, 경건한 생활,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정과 열망을 촉진하고 증진시켰다.
5. 한국에서의 세대주의
19세기 후반의 세계 선교화의 추세에 따라 한국에 들어 온 미국 복음주의 신학교 출신의 선교사들 특히 평양신학교를 설립한 미국 북장로교 목사인 Allen Clark (곽안련)과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이런 세대주의 신학자였으므로 종말론의 정설로 인식되던 세대주의 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초대교회 시절부터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에 깊이 관련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을 많이 강해한 길선주 목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초기 신학자들도 세대주의 종말론의 축자적 논리성에 매료되었는데, 한국 정통 보수주의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박형룡 박사와 성서침례신학교 장두만 교수 같은 이는 세대주의 종말론주의에 확신을 가졌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이 사상이 해방이후 불안한 사회 현실과 맞물리면서 보다 극단적인 종말론 형태로 변형을 거듭하게 된다.
특히 이들은 율법폐기를 주장하였는데, 모세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킬 것을 언약하였지만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주장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지금 성도들은 은혜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십계명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유일한 법칙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세대주의 종말론은 “더 이상 율법이 필요 없다”는 율법폐기론으로 이어져 기독교의 윤리성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대양 사건과 구원파라 할 수 있다.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등도 구원받은 사람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여 가르치고 있다. <로마서>에서 성도가 율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율법의 정죄와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이지 율법의 도덕적 교훈, 즉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세대주의에 영향을 받은 많은 교회들이 은혜를 누린다면서 율법을 무시하는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기독교의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서 주었고, 우리는 율법과 관계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은혜만이 우리가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율법 폐기론이다. 은혜로 교회는 소속교인들이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현실을 무시한 채, 강제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회개하게 만든다고 한다.(다음시간 : 은혜주의와 율법주의 공부함)
특히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한국기독교를 망치고 있고, 많은 이단을 양산하고 있다. 임박한 종말을 강조하며 나타난 이단이 다미선교회와 구원파이다. 기존교회 안에서도 특히 극단적 세대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목사들은 성경을 이스라엘이 독립하던 해 1948년으로부터 한 세대되는 1988년 전후에 예수가 재림하고 신자들은 휴거된다고 가르치던 대형교회 목사들이 있었다. 특히 잘못 선전하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인데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에 기초해서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기록된 순서대로 문자적으로 이해하면서 말세에 될 일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목사들도 있다. 1992년에 한국은 물론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일파의 극단적 종말론 운동은 세대주의적 종말론 해석의 완곡한 적용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다미선교회의 환상이 비극적인 실패로 끝났음에도 오늘날 여전히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의 환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잘못된 요한계시록 해석으로 종말론을 말하면서 성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나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14:36).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 13). “때와 기한은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1: 7). 우리는 복된 소망을 갖고 현실에 더욱 더 충실하고 주어진 사명을 더 충실히 감당하며 충성하고 봉사할 때 약속된 하나님의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날과 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의 거룩한 삶이다(마24:36; 벧후 3:11,12). 요한계시록에서 경고하는 말세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참고 : 말세에는 네 가지 징조가 있다: ①사람의 징조 : “미혹”이다(마 24:4); ②환란의 징조 : “난리”이다(마 24:6); ③자연의 징조 : “재난”이다(마 24: 7-8); ④종교적 징조 : “이단”이다(마 24: 11, 23-24).
※ 천년왕국의 문제
(1)전천년설 : 1000년을 문자적으로 취급하여 그리스도께서 먼저 재림하신 후에 천년 왕국이 건설된다는 견해이다. (2)후천년설 :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에 있다는 학설이다. (3)무천년설 : 이 학설은 문자적 천년왕국이 없다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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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에서 제공한 김명도 교수의 ‘세대주의란 무엇인가?’와, 목창균 목사와, 정동섭 교수의 이론(기독교포털뉴스 http://www.kportalnews.co.kr)을 참고하였음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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