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스크랩]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이다 박종기 교수(한일장신대)

하나님아들 2012. 11. 21. 11:47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이다  

박종기 교수(한일장신대)



1. 서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 비교 눅 11:2). 이것은 세계의 모든 크리스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하고 있는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일부분이다. 이 귀절의 중심적인 의미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립은 주기도문 전체의 주제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교훈의 핵심이기도 하다. 특히 공관복음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를 극히 강조하고 있는 바 이것은 공관복음서에서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늘나라(천국)"란 용어의 빈번한 사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나라(왕국)"란 말은 마가복음에 20회, 마태복음에 54회, 누가복음에 46회 사용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늘 나라(천국)"라는 표현에 사용된다. 각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련하에서 소개함으로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한 묘사를 시작하고 있으며(막 1:14-15, 마 4:23, 눅 4:21 등)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 전체를 "하나님의 나라"에 촛점을 두고 묘사해 나가고 있다.

예수님의 교훈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다(참조 마 6:33, 8:18-22 등). 그리고 여러 비유들(예: 마 13:44의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마 13:45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삿군의 비유 등)은 이러한 최고의 가치를 한 번 경험한 사람이면 이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 공관복음서에서 이렇게도 강조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근본 성격은 무엇인가?

2.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왕적 통치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에서 "나라"의 정확한 의미에 대하여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구약 시편 145:13이나 신약 누가복음 19:11-12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라"의 일차적인 의미는 "통치" 또는 "주권"을 뜻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로서 하나님의 왕적 주권이 역동하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신 곳이라면 가정이든, 교회든, 사회든 국가든 어디든지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운동은 하나님을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왕으로 삼는 운동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용어 자체는 구약에 별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그 개념은 구약성경 도처에서 나타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출 15:18, 사 43:15 등)으로 또는 온 세상의 왕(왕하 19:15, 사 6:5, 시 29:10 등)으로 강조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왕권이 확립되는 날을 소망해 왔다(사 24:23, 슥 14:9 등). 신약에서도 이러한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왕적 통치의 개념은 신약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예수께서 "왕"으로 오셨다는 사상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예수께 부여되고 있는 "그리스도" 또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특히 마태복음) 등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수난시 로마 군인들과 유대인들의 조롱에서 극히 잘 나타나고 있다(마 27:27-31, 37-44, 막 15:16-20, 26-32, 눅 23:35-38, 요 19:1-3,. 19-22).

3.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순종

"하나님의 나라"의 기본적인 의미가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라는 말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필연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순종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에서 순종"이라는 두 주제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에도 잘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백성으로서 왕의 뜻에 대한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되기를 포기한 것이다.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마 21:33-46, 막 12:1-12, 눅 20:9-19)가 주는 교훈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했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이것은 특히 마태복음에서 21:43에서 잘 드러난다).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는 말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참조 눅 6:46).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왕께 대한 순종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인간의 헌신과 결단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손발이나 눈을 절단할 수 있어야 하고(마 18:6-9, 막 9:43-48),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하기도 하며(마 19:16-30, 막 10:17-31, 눅 18:18-30),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지 않아야 한다(눅 9:61-62). 주기도문에서의 하나님 나라을 위한 간구를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전능에 모든 것을 부탁하고 자신은 수동적인 자세로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우리의 헌신과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수께서는 율법 성취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촉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당시 유대인들의 사상을 거부하셨다(참조 마 24:44, 50, 막 13:32 등).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는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순종 또는 헌신은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보여야 할 응답의 표현이다.

4. "사랑" - 하나님의 뜻의 요약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마땅한 도리인 왕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무엇보다도 사랑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이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율법과 선지자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음 강조하셨다(마 22:34-40, 막 12:28-31, 눅 10:25-28). 마태복음 5:21-48에 나오는 예수님의 교훈이나 마태복음 15:1-20 등에 나오는 안식일 규례에 대한 논쟁 등 예수님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의 많은 논쟁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명확히 말해주고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당시 인간의 기준에서는 가장 하나님의 뜻을 잘 준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셨다(참조 마 6:1-18, 눅 18:9-14).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꼭 있어야 할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사랑이 하나님의 뜻의 요약임을 분명히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는 사랑없이 인간을 예속하고 있는 많은 형식적인 규례들을 초월하셨다. 안식일에 손 마른 병자를 치유하시기도 하시며(마12:9-14, 막 3:1-6, 눅 6:6-11),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제자들이나(마 12:1-8, 막 2:23-28, 눅 6:1-5)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제자들을 변호하시기도 하셨다(마 15:1-20, 막 7:1-23, 눅 11:37-41). 심지어 예수께서는 때로는 나환자에게 손을 대시기도 하시고(마 8:3, 막 1:41, 눅 5:13), 이방인의 집에 들어 가시려고 하시기도 하시고(마 8:7, 눅 7:6), 세리와 함께 먹기도 하셨다(마 9:10, 막 2:15, 눅 5:29).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희생과 용서라는 신적인 차원의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신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셨다(참조 마 5:45, 48). 이러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인간의 도덕성에의 호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의 체험에 있다는 것이다(마 18:23 이하). 즉 사랑의 실천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사랑의 결과로서의 열매이다(눅 7:47).

5 하나님의 나라: 그 미래적 성격과 현재적 성격의 역동성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 성격과 현재적 성격의 역동성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교훈 속에는 그 나라의 미래적 성격과 현재적 성격이 동시에 강조되고 있다. 앞으로 파루시아를 통하여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마귀가 완전한 파멸을 당하고(참조 마 25:41), 심판을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구별되어(마 13:36-43, 25:31-46) 메시야적 잔치에 참여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게 될 것(눅 13:28-29)이다. 이러한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강한 소망은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현재의 고난을 참고 이겨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힘을 공급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는 현재적인 성격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만 한다(참조 마 7:21, 막 10:15 등).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위에 도래하였다. 눅 4:21, 마 11:2-6는 각각 구약의 메시야 예언인 사 61:1-2, 사 35:5-6의 인용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한다. 마 12:28-29(막 3:27, 눅 11:20-22)은 예수의 귀신축출 기적을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 나라를 확립하는 사역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록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 미래적으로 남아 있기에 그의 나라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활동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왕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헌신으로 이 은혜에 응답하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경험은 미래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추상적인 희망이 아닌 구체적 소망으로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해 주게 된다.

6. 결어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날의 교회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자체는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자들의 교제로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확립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공동체(마 28:16-20, 참조 마 10:7, 눅 10:9)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사랑의 결핍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부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길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우리의 뜻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뜻을 시인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공관복음서, 특히 마태복음은 교회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경고를 주고 있다. 즉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구별하기 위한 최후의 심판은 교회내에 있었던 자들과 교회 밖에 있었던 사람들간의 분리일 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에 있었던 사람들 간의 분리의 시점으로 그 기준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했는가라는 것이다(마 7:21-23, 13:47-49, 24:45-25:46).

하나님 나라의 확립으로 요약할 수 있는 주기도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 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출처 : 포커스
글쓴이 : 포커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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