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求贖史)란?
history of Redemption
이 블로그는 구속사적 관점으로 성경을 보는 시각에 의해 "성경의 내용들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블로그의 운영자가 가지고 있는 구속사의 개념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속사에 대한 개념이 모든 신앙인들에게 통일되어 동일한 개념으로만 이해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도 이러한 개념정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개념의 통일이 되지 않으면 이 블로그의 글을 읽으면서 또다시 오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따른 다른 여러 개념들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구속사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1. 구속사의 사전적 의미
먼저 “구속사”라는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사전적 의미는 (물론 편집자의 의도가 개입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보편적으로 거의 모든 교회들이 그렇다고 동의한 내용을 정리하여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말씀사”에서 집필한 “교회용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구속사란 '구원역사'(救援歷史), '구원사'라고도 하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행위가 인간 구속의 역사들을 전개한 것이라고 본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벵겔(J.A. Bengel, 1687-1752년)이며, 동시대에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년)도 같은 맥락의 견해를 폈다. 즉, 성경은 단순한 연대기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목적론적 원칙에 의해(구속사적 관점에서) 기록된 책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사의 중심이요 정점이시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성경은 단순한 연대기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원리와 원칙에 의해 구속사적 관점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과 정점으로 하여 기록된 책이다.
그러므로 구속사를 이야기 하려면 먼저 성경을 기록하신, 또는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먼저 제시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성경의 역사를 진행시키신 원리와 원칙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성경의 중심이며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와 구속사의 관계가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2. 성경의 모든 내용은 기본적으로 구원의 역사(歷史)다.
성경의 모든 내용이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보는 많은 이들이 성경을 구속사라고 정의하고 또 그 러한 정의에 동의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역사를 진행시키시면서 그 내용을 구전(모세이전)과 기록(모세이후)으로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 알게 하신 것이다. 이 모든 구전과 기록이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선 그 내용의 대부분이 역사다. 실제의 역사,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 율법이 제시되고 예언과 교훈과 시와 노래들이 더해졌으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모두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역사로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그리고 그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은 한결같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흘러간다.
구속사란 하나님 나라를 향해 흘러가는 역사의 속성과 그 역사가 흘러가면서 이루어지는 내용을 규정하는 명칭이다. 그 역사가 흘러가면서 그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집단(공동체)과 개인에게 각각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내용이 적용되면서 죄와 사망의 상태에서 의와 생명의 상태로 온전히 거듭나는 과정이 진행되고 완성된다. 그리고 그 내용이 다시 역사로 기록되고 남겨진다. 즉, 구속사란 구원의 역사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시공간의 세계에서 진행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로 진행되는 구원의 역사"로 올바르게 인식된다면 그 역사를 구속사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시각을 갖게 되면 성경의 역사가 단순히 물리적 시공간에서 진행된 사건의 나열 형태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역사를 통해서 죄와 사망의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다시 그 형상을 회복시켜 그 형상의 온전함에 이르게 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진행되어 완성되는 역사를 보게 된다.
3. 성경에는 오직 하나의 원리와 원칙이 적용되었다.
성경이 일관되게 제시하는 원리와 원칙은 거듭남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3장에서 그리스도와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http://blog.naver.com/xmaniahk/221084361609)
성경을 계속 읽다보면 일정한 원리가 그 안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성경이 구속사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구속사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와 그 역사의 흐름과 그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하나의 특징적 원리와 원칙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구속사의 원리와 원칙,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대상인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불러내어 구원의 역사 속으로 이끌어 들어 그 역사를 지나게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죄와 사망의 존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구원의 역사 속에 들어와 그 역사의 길을 걷기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십자가를 통해 온전한 자기부정의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거듭남(새로운 피조물)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논리적 사변이나 이론적 형식이 아닌 역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어떤 원리와 원칙에 따른 일정한 과정이 진행된다. 그리고 그 역사를 지나는 이들에게 그 역사에 따른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 정체성은 반드시 동일한 원리와 원칙에 의해 형성되므로 그 역사를 지나는 모든 이들은 시공간의 차이에 관계없이 하나의 동질성을 이룬다.
그러므로 누구나 체험된 역사를 전제로 한 진정한 구속사를 이야기하게 되면 반드시 이러한 동질성의 원리가 드러나며, 누구든지 그의 삶이 구속사 속으로 들어가면 이러한 원리가 반드시 적용되어 나타난다. 여기에서 구속사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더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이해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 역사를 동행하는 것이다.
4. 이 역사의 주인공은 나(교회-신부)와 예수 그리스도(신랑)다.
교회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체이기도하고 한 개인이기도 하다. 이교회는 성삼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다. 그러나 신부라고 할때에는 하나하나의 개별적 존재가 더 강조된다. 그러므로 구속사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애의 역사이며 결혼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역사의 주인공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죄와 사망의 인간"이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으로, 인간은 신부로 언급된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다른 환경과 형편 속에 있던 두 존재가 만나서 삶을 같이(동행)하면서 하나의 길을 걷다가 너와 내가 따로가 아닌 온전한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동행의 관계를 넘어 하나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혼인으로 표현되었다. 이 모든 역사가 신앙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된 신앙인이 그리스도의 신부로 완성된 존재이며 그렇게 완성된 하나님의 백성이 계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으로 나타난다. 계시록에서 <바벨론 = 음녀>는 영적으로 새 예루살렘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요소로서 구속사가 모두 성취될 때 소멸되는데 이는 죄와 사망의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의 자아다. 이러한 죄와 사망의 자아가 완전히 제거됨으로써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이 진행되는 역사 속에서 진정한 신앙인(신부)은 그리스도와의 동행 과정에 자기가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동원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신랑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따라가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오히려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죄와 사망의 속성으로부터 부정적인 결과들이 나타나 일을 더 어렵게 하거나 그르친다(갈4:21~5:1).
그래서 구속사는 오로지 그리스도로 시작하고 그리스도에 의해 진행되며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는 역사로 증명된다(계5:1~5).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은 결코 구속사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
5. 그의 역사는 곧 그의 정체성이 된다.
한 존재의 정체성은 그 존재가 지나온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 역사가 지워지면 그 정체성도 사라진다. 주님과 동행하여 하나됨으로 진행되는 역사가 없다면 그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없다. 즉,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구속사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이 동행하는 역사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동행은 그 둘이 온전히 하나 됨을 위한 동행이다. 그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유월절에 출애굽을 한 후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며 민족적으로 거듭나는 역사를 지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름받아 인생의 광야를 지나며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생명의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이 진행되는 역사다.
한 존재에게 적용되어 진행되는 역사는 그 존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역사가 없는 정체성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세월의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다. 그 역사는 구속사의 핵심이자 구속사의 본질이다. 그 역사는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진행된 역사였다.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 이전의 역사 또한 구속사다. 그러나 아브라함으로부터 진행되는 구속사처럼 구원역사의 내용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브라함 이전의 구속사가 불완전하거나 미흡한 것은 아니다. 완전하여 부족함은 없지만 섬세하고 치밀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스케치하듯이 구속사를 그려준다.
누구든지 성경을 통해서 성경에 기록된 역사와 사건들은 보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구원역사(구속사)의 진면모를 보지 못하면 그는 살아있는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생명이 제거된, 오랜 역사 속에 이어져 전해온 기독교의 문헌 또는 정보를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 정보 또는 지식이 나의 지식으로 내 기억속에 자리잡고, 내 인식속에 자리매김하고, 그 사실들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굳건하게 믿고있을지라도 그 역사가 나의 역사가 되지 못하면 나는 그 존재가 된 것이 아니다.
정 리
구속사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나의 역사다. 성경은 옛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긴 하지만 그 내용이 나의 역사가 되면 더이상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 순간 성경은 지금 그리스도와 내가 함께하고 있는 역사를 기록한 책이 되는 것이다. 이 때 성경의 모든 내용들은 진정으로 살아있는 생생한 말씀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 내용이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지난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현재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또 때로는 미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므로 구속사를 통해 우리는 구원의 역사를 지나고 있는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본다. 이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역사를 기록한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한 그리고 완벽한 예언서다.
어떤 이들은 성경을 통해서 과거만 본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현재만을 본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미래만을 본다. 그러나 성경은 영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한다. 물론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사라지지만 지금의 우리는 현재에 머물러 있다.
구속사는 시공을 초월한 영의 역사를 시공간의 세계에 끌어들여 그 시공간의 역사를 지나는 이들에게 적용하여 영원의 역사를 현재의 역사가 되게 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현재를 초월한 영원의 존재가 되게 하는 역사다. 구속사의 이러한 속성을 이해할 때 성경을 보는 이에게서 성경의 내용이 본래의 목적에서 왜곡되지 않고 올바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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