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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어령이 말하는 이어령, “나는 우물 파는 사람, 내가 마시려는 게 아니다”

하나님아들 2022. 2. 26. 22:29

故이어령이 말하는 이어령, “나는 우물 파는 사람, 내가 마시려는 게 아니다”

 

입력 2022.02.26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오늘(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4년생으로 향년 88세입니다. 고인은 3년 전부터 암을 선고받고 투병해 왔습니다.

고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석학으로 꼽힙니다. 초대 문화부 장관,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기획위원 등을 역임했고, 언론사 논설위원, 대학교수, 문학 평론가, 기호학자, 문명학자 등 다채로운 직함을 가지며 창조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60년간 문화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했습니다.

대한민국 지성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 하는 고인의 삶을 생전 본인의 육성을 통해 직접 들어봤습니다.
이어령(1934~2022)

‘우상의 파괴-문학적 혁명기를 위하여’(한국일보_1956.05.06.) 한국일보는 당시 4면 발행이던 지면 가운데 문화면 1면 전체를 할애해 이어령의 평론을 실었다.

■ 20대 : 스물 둘, 「우상의 파괴」로 등단하며 반향을 일으키다

그는 1956년 한국일보에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스물두 살, 당시 제도화돼 있던 문예지 추천 형식이 아닌 신문 지면을 통한 파격적인 등단이었습니다. 그가 설명하는 등단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약관의 나이였지만 이미 문단에 알려 졌었는데 나는 신춘문예 안 받는다, 누가 내 작품을 심사하냐. 이런 건방진 생각 때문에 안 했는데 당시에 모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가서 또 한바탕 한거에요. 막 공방한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모 신문사에 부장(한운사 한국일보 문화부장)께서 전화를 걸어서 날 찾아서 맘대로 지면 줄 테니까 마음대로 욕 한번 써 봐라, 그게 「우상의 파괴」예요." (KBS 한국현대사 증언 TV 자서전_2010.04.16.)

그의 등단은 제목 그대로 '우상의 파괴'였습니다. 전후 권위주의가 팽배해 있던 1950년대, 원로 몇 명이 문인의 등단을 좌우하던 시절에 기성 문단의 권위에 대한 거침없는 도전이었습니다.

고화질 표준화질
 

그는 문학 비평이 작가가 아닌 작품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 같은 소신을 담아 25세 때인 1959년 공식적으로는 첫 저서인 평론집 『저항의 문학』을 출간했습니다.

1960년, 26세 때는 서울신문에 파격적으로 최연소 논설위원으로 발탁된 뒤 여러 신문사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삼각주'(서울신문), '메아리'(한국일보), '여적'(경향신문), '분수대'(중앙일보), '만물상'(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쓰며 논객으로 활동했습니다.


■ 30대 : 토박이말로 쓴 한국 문명론『흙 속에 저 바람 속에』

경향신문 논설위원으로 재직 중이던 1963년, 그는 신문사로부터 한국의 풍토에 대한 연재 형식의 글을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해 8월 12일부터 10월 24일까지 연재한 에세이 50편을 묶어 낸 책이 바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입니다.

"그것은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이었다"로 시작해 "징검다리같이 무수히 단절된 그 역사에 새로운 교두보가 놓이게 될 때까지 서낭당에 쌓이는 돌은 자꾸 높아만 갈 것이다"로 끝나는 이 책의 부제는 '이것이 한국이다' 로, "자국문화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라 비판을 통한 전진"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고화질 표준화질
 

한자 투의 낡은 표현 대신 쉬운 토박이말을 감각적으로 구사하며 시골길, 한복, 고려청자, 서낭당 등 전통적인 일상 소재에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해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를 새로이 풀어낸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라 그의 이름을 문단뿐만 아니라 지식인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1982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뒤 한국어판과 영어판이 나왔다.

■ 40대 : 일본어로 쓴 일본에 대한 통찰 『축소지향의 일본인』

독창적인 시각에서 일본의 정체성을 해부한『축소지향의 일본인』은 1982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습니다. 한일 수교 이후 한국인이 쓴 책으로는 일본에서 최초로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그는 1981년부터 1년여 동안 일본 도쿄대 비교문화 객원연구원으로 도쿄에 머무르며 일본어로 이 책을 썼습니다. 쥘부채, 가나 문자, 하이쿠, 도시락, 분재 등을 사례로 들며 한국 문화와 비교했을 때 일본 문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축소지향성'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화질 표준화질
 

그는 당시까지 서구 학자들이 쓴 여러 일본론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한·중·일 세 나라의 관계를 간과한 채 서양과 일본만 비교하다 보니 오류가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에는 있고 서양에는 없는 문화를 일본만의 고유한 문화라고 보는 시각은 허구라면서 한국과 중국 등 같은 동아시아권의 문화와 풍속을 일본과 비교해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일본인의 정신 세계 근간을 짚어냈습니다. 특히 일본이 축소지향에서 확대지향으로 탈바꿈하려 할 때 자신과 주변에 비극을 불러왔다는 지적은 출간 40년을 맞은 현재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일본은 확대지향적이었을 때 언제나 패배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은 ‘확대지향성’을 가슴속에 방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은 그들의 축소지향성이 확대지향으로 변할 때 주변 국가에도 위험을 주었다. 그들의 뛰어난 문화는 모두 ‘축소지향’에서 비롯된다. ‘확대지향’이 될 때 그들의 섬세한 성품은 변질되고 만다. 참다운 대국이 되고 싶으면 더 작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오니(도깨비)가 되지 말고 잇슨보시(난쟁이)가 되어야 일본은 더욱 빛날 것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중에서)


‘침묵’ (1988 서울올림픽 개회식_1988.09.17.)

■ 50대 : 원고지 대신 운동장에 쓴 시…'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

그는 강단의 학자이자 평론가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도 과시했습니다. 그는 1988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식전 상임위원으로 참여해 개회식에 선보인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를 기획했습니다.

단 1분에 불과했지만 이후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가장 인상적이고 상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 퍼포먼스에 대해 그는 후일 한 인터뷰에서 "원고지에 쓰던 것을 잠실 운동장에 펼친 것"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고화질 표준화질
 

■ 60~70대 : '디지로그' 새 천 년 문명론을 제시하다

그는 급변하는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을 '디지로그' 라는 키워드로 제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말로 둘 사이 이항대립을 넘어 경계를 관통하는 융합 개념입니다.

그는 디지털이 아날로그 세상과 접목해야 힘을 얻으며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역설하며 후기 정보사회 '메타버스'의 탄생을 예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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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이상의 집’에서 강연을 마친 이어령_2019.12.17.
■ "나는 우물을 파는 사람…마시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는 2019년 초 자신이 암 투병 중임을 밝혔습니다. 그해 12월, '이상의 집'에서 열린 강연을 마친 뒤 그는 암세포가 몸 구석구석에 퍼졌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암과 친구로 지내고 있다면서 마지막까지 문학 선생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글과 함께하며 자신의 소망이자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일부에서는 글 쓰는 사람이 왜 이곳저곳 기웃대며 외도를 하느냐, 지긋이 한 영역만 파고 들었으면 세계적인 대가가 됐을 것이라며 비아냥대기도 했는데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