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문 소논문

미국 복음주의 신학의 최근 동향과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확립의 과제- 한상화 (아신대, 조직신학)

하나님아들 2021. 9. 9. 19:54

미국 복음주의 신학의 최근 동향과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확립의 과제
- 한상화 (아신대, 조직신학)
 
I.   서론
II.   복음주의 정의 문제
III.  미국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변천에 대한 간략한 개관
IV.  진보적 복음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V.   한국 복음주의 신학에의 적용 및 정체성 확립의 과제

I. 서론

본 연구는 "새 천년과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과제"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광범위한 주제에 접근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고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접근은 새 천년이라는, Third Millennium의 성격을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기술한 후에, 현 시대의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적 도전들에 대해 복음주의 신학이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겠느냐 하는 일반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본 논문은 그러한 일반 문화 분석에 대한 신학적 대응이라는 접근을 취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약간 더 범위를 좁혀서 미국의 현재 복음주의 신학들의 다양한 발전 양상들을 기술하며 그와 더불어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가 당면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과제들에 대해 내적으로 성찰해 보고자 한다. 왜 하필이면 미국인가의 질문에 대해서는 필자의 좁은 지식의 한계성을 고백해야 하는 동시에, 또한 한국의 기독교가 초반기부터 미국의 선교사들의 성격과 미국의 교회사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아마도 가장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998년 봄에 내한해서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에서 강연한 바 있는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약 신학자 D. A. Carson 박사도 필자와의 개인적인 사담을 통해 한국 보수주의 기독교의 현 상황은 미국의 30년 전의 상황과 유사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가 사대주의적으로 미국을 따라가거나 아니면 혹시 영국이나 독일, 화란 등의 다른 외국의 신학을 직수입하며 따라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로 알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 수정해야 할 것은 비판 수정 해가면서 대내외적인 연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미국 복음주의의 최근의(대략적으로 1970년대 이후) 신학적 변화의 양상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정체성 희석화 현상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날의 현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도에 도움이 될 만한 통찰(insights)을 이끌어내려는 시도이다. 이 논문의 논지는 현재 미국의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새로운 신학적 제의들은 본래 복음주의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으로서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에 위협을 줄뿐만 아니라, 현대 복음주의의 형성과 변천의 역사를 해석하는 그들의 시각도 비판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보다 경계심을 가지고 참된 복음주의 신학이 무엇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해가야 할지에 대해 다시금 심각히 재고해 볼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II. 복음주의의 정의 문제

먼저 본 논의에 앞서서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워낙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복음주의의 정의 문제는 그 자체가 간단히 해결될 수 없는 하나의 복잡한 논제로서 독립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그것은 "깨기 어려운 호두"(a difficult nut to crack) 라는 별명이 붙어 있으며 복음주의자들이나 비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다루어져 오는 문제이다. 이처럼 복음주의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용어가 무척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개념의 넓은 외연 때문이다. 복음주의는 때로 신앙체계를 의미하기도 하고 일정한 신앙체계를 지키려는 운동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일정한 공동체 집단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요사이는 일정한 영성 또는 신앙 스타일이나 경향성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복음주의는 다양한 신학체계들과 기독교 내의 다른 여러 전통들을 포용하는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규정하는 자들에 따라 달리 이해되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하기 무척 쉽다. 복음주의의 정의 문제는 단순한 용어 정의의 범위를 훨씬 넘어, 복음주의 운동의 성격과 정체성과 관계되며, 더 나아가 신학적 또는 역사 기술의 문제들과 얽혀있는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이다. 특별히 미국의 개신교 역사기술(historiography)의 관점은 복음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내 신학적인 변화와도 맞물려 복음주의의 정의에 대한 모델이 변화되고 있으니 이 또한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러한 중요성에서도 불구하고 본 논문의 논제의 초점이 달리 놓여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정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고,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제안과 더불어 한국에서 주로 쓰이는 복음주의의 의미들에 대한 간략한 구분과 함께 복음주의에 대한 필자의 이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제언코자 하는 것은 복음주의의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사용자 자신이 각각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를 명시하자는 것이다. 1997년 "복음주의 신학의 최근의 동향" 이라는 제목으로 성결대학에서 열렸던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 제 28차 논문 발표회를 기억해 본다. 기조 강연 후 토의에서 복음주의라는 개념이해의 혼란으로 인한 대화자들 사이의 토의가 서로 초점이 맞지 않고 어긋났던 것을 되돌아본다. 그러한 용어의 혼란으로 인한 어긋나는 토의는 그 다음 날 있었던 조직 신학 분과에서도 여전히 나타났었다. 그 때 필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복음주의에 대한 신학적 정의와 역사적 정의가 혼돈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복음주의에 대해 논할 때 신학적 정의, 역사적 정의, 사회학적 정의 등의 범주별 이해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복음주의에 대한 논의자들마다 어떤 범주에 대해 논하는지를 어느 정도는 분명히 구분하고 있음을 본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오면서 지향하는 바는 당위적 의미의 "복음주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성경이 증거 하는 대로의 복음을 그대로 믿고 수호하려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과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치고 수호했던 복음을 성경이 가르치는 그대로 천명하고 그에 대한 신앙을 세우는 신학적 노력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의미의 복음주의는 신학적으로 정의되는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즉 교파와 시대를 막론하고 복음신앙를 세우는 모든 신학적 운동과 노력을 포함한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라는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복음주의도 이러한 당위적 의미로서, 장로교뿐만 아니라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파 등 복음신앙을 보수하는 한국의 보수주의 신학자와 목회자의 신학모임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주의는 자유주의 신학과 대별되는 보수 신학적 연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갈라지고 분열된 보수주의내의 진정한 교회연합운동의 기초가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를 중심으로 세워지기를 희망해 본다.

반면에 이와 같이 지향하는 바의 당위적 의미의 복음주의와 구별되는 역사적 의미의 복음주의는 여러 역사적 유형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복음주의와 좁은 의미의 복음주의로 또 다시 나뉠 수 있다. 광의의 역사적 복음주의는 16세기 종교개혁의 복음신앙 회복 운동과, 17세기의 청교도 운동과 경건주의 운동,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웨슬레와 휫필드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과 18-19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한 1, 2차 각성운동 및 다양한 웨슬레적 경건주의 분파운동, 20세기 초엽의 근본주의 운동, 오순절 운동과 20세기 중엽 근본주의 운동의 배타적 경향성을 반대하고 나오는 미국의 복음주의운동 등을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전통을 의미한다. 이 중 특별히 20세기 중엽 이후에 발전 형성되어 오는 미국 중심의 복음주의를 일컬어 협의의 의미의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다.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그것의 신학적 정의와 역사적 정의 그리고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구분하면서 되도록 의미를 좁혀주는 형용사와 함께 사용하여 그 용법을 분명히 해주면 혼란을 다소 줄일 수 있을지 않을까 한다. 본 논문에서는 복음주의를 주로 역사적으로 20세기 중엽 이후의 미국의 복음주의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할 것이며, 한국의 복음주의를 논할 때는 사회학적으로 현재 형성되어 있는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라는 장을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우리가 지향해야할 바의 당위적 의미의 복음주의로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복음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데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한국이건 미국이건 신학적 의미이건 역사적 의미이건, 항상 복음주의는 성경의 역사적 복음과 그것에 대한 개인적 신앙의 두 축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고 본다. 흔히 복음주의에 대해서 신학적으로는 개혁주의적 이해와 알미니안적 이해의 대립을 말하고 역사적으로는 종교 개혁 전통의 이해와 경건주의의 전통의 이해의 대립을 말한다. 이와 같은 대립은 어디까지나 복음주의내의 두 축으로서 신학과 경건 또는 말씀과 체험이 하나가 되어야 하듯 복음주의 운동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함께 포괄되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주의에 대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정의를 결론으로 인용하고자 한다. "복음주의는 바른 교리에 대한 개혁주의적 강조와 '산 신앙(a living faith)'에 대한 경건주의적 강조의 창조적 결합이다" 또한 "복음주의는 에큐메니칼 신조들에 나타난 바, 정통 기독교 신앙으로서 특별히 그러한 신앙의 개인적인 적용과 체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다른 어떠한 것도 복음 전파의 적용의 사명보다 앞서는 것에 대해 허락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 필자는 이러한 맥그라스의 정의가 복음주의의 본질을 바로 기술한 것이라고 보면서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복음주의의 역사를 기술하며 해석해가야 한다고 믿는다. 

 

III. 미국 20세기 복음주의의 변천에 대한 간략한 개관

역사를 개관한다는 것은 역사를 보는 시각이 알게 모르게 전제된다. 복음주의의 역사 개관도 상기한 바대로 복음주의에 대한 역사적 복음과 개인적 신앙의 통일성이라는 본질적 이해에서 출발하여 17세기 청교도 운동이나 18, 19세기 경건주의 부흥운동들과 그 지류들 뿐 아니라 16세기의 종교개혁운동과 20세기 초 근본주의 교리수호 운동을 모두 포괄하는 연속적인 복음운동의 진행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변천을 개관하는 작업은 본 논문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방대한 작업이 요구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두 가지 목적으로 간략한 스케치를 하고자 하는데, 그 첫째 목적은 주로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나오게 되는 배경과 상황을 설명코자 하는 의도이며, 그 둘째 목적은 복음주의 신학의 울타리를 대략적으로라도 그려보기 위한 의도이다.

A. 근본주의 운동과 신복음주의 운동

미국의 현대 복음주의의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논제는 근본주의와의 관계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현대 복음주의의 시발점을 1942년 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결성과 더불어 근본주의에 대한 개혁의 움직임으로 시작하는 소위 신복음주의 운동으로 본다. 우리는 이 신복음주의 운동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 것을 본다. 본래 "신복음주의"라는 용어는 그 운동의 핵심인물인 Carl Henry나  Harold J. Ockenga에 의해 사용되었었다. 그 운동은 본래 세 가지 포부를 가지고 시작되었다고 평가되는데, 첫째는 1920년대의 자유주의자와의 교파적인 갈등을 통해 변질되어버린 미국의 19세기 복음주의 전통의 회복이요, 둘째는 미국 문화의 중심세력으로 다시 부상하기 위한 노력이요, 셋째는 상기한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통 개신교도들 사이의 연합전선 구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신복음주의 운동은 19세기 미국의 찬란했던 복음주의 제국의 새로운 회복을 꿈꾸며 나왔던 운동이다. 그리고 신복음주의라는 용어는 초기 근본주의의 성격에서 변화된 신 근본주의의 반 지성주의와 배타적 분리주의를 극복하려는 개혁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그 운동은 기독교의 복음을 현대 문화에 적응시키려는 수정주의로 매도되어졌고 신복음주의라는 용어는 본래 복음주의에서 벗어난 운동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 관계에 대해 보다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특별히 근본주의 운동의 성격의 변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신복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이질적인 그룹들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근본주의 운동은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그 본질을 "19세기 말 북미에서 일어난 보수적이며 성서적인 기독교 정통주의를 보존하고 촉진하려는 목적에서 일어난 운동으로서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교리 수호에 집중한 운동"이라고 볼 때, 넓은 의미로서의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운동의 의의는 자유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고 교리 수호를 통한 복음 신앙의 보존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정당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성경학원의 설립과 대중 언론 매체를 통한 복음 신앙의 대중적 확산을 추구한 면도 그 의의가 크지만, 그 보다 더욱 더 고유한 그 운동의 특성과 의의는 역시 다양한 성경대회 또는 사경회를 통해 복음 신앙의 근본적인 신조들을 계속해서 수호,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학문 연구와 변증을 통한 근본 교리들에 대한 수호는 12권의 『근본 교리들』(The Fundamentals)이라는 소책자를 1910-15년 사이에 출판 유포시키기에 이르는데 이는 유럽과 미국의 유수한 신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것으로서 LA 지역 두 거부 Lyman과 Milton Stewart에 의해 재정적으로 지원 받아 이루어 진 보수 신학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근본주의의 교리 수호적 신학운동으로서의 성격은 1920년대의 자유주의자들과의 교단 내 세력다툼을 통해 점차로 바뀌어가다 1930년대에 이르러 반 지성주의적, 분리주의적, 배타주의적이라고 여겨지는 다른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1년 Carl McIntire를 중심으로 한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의 연합체인 미국교회협의회(the American Council of Churches)를 결성하게 되고, 1948년에는 WCC에 반대하는 국제기독교협의회(the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근본주의와는 다른 주류를 이루는 남 침례교는 비교적 일관되게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의 입장을 지켜갔으나, 북 침례교에서는 커다란 소용돌이를 겪고 1923년에 침례교 성서 연합을 결성하고 그것이 모체가 되어 1932년에 근본주의 침례교단의 창립을 이룬다. 침례교 내에서의 신 근본주의 운동은 1950년의 성서침례회의 창립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Jerry Falwell이 이끄는 정치적 행동 그룹인 "도덕적 다수"(the Moral Majority)결성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의 행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Harold J. Ockenga와 함께 신복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Carl Henry나 Harold Lindsell 같은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신학적 입장을 초기 근본주의자들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근본주의의 근본 교리 조항들을 모두 수호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주의-근본주의 논쟁으로 인해  분리주의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성을 띄게 된 근본주의에 대해 개혁하는 동시에 복음주의가 다시 한 번 미국 문화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기를 바라며 이 운동을 추진해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본래의 신복음주의 운동은 어디까지나 앞서 기술한 광의의 복음주의 운동의 일환이며 또한 20세기 복음주의자들의 1세대 중심세력으로서 이 운동의 정통성은 후에 Kenneth Kantzer, D. A. Carson, David F. Wells, Mark Noll 등의 2세대 성경 중심의 보수적 복음주의자들로 이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는 근본주의에 대해 보다 완전한 결별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세력이 섞여있었고 신복음주의 운동 내에 잠재해 있던 또 하나의 진보적 성격은 Fuller 신학교의 변천과 함께 표면화되게 되며, 근본주의자나 보수적 개혁주의자들에 의한 공격을 정당화시켜주는 근거가 될 뿐 아니라, 후에는 진보적 역사 해석자들에 의해 진보적 복음주의의 시발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B. 풀러신학교의 변천과 성경관 논쟁

신복음주의 운동의 두 갈래 길의 교차로에서 보다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로 향해 가는 시발점이 되는 사건은 E. J. Carnell의 Fuller 신학교 학장 취임이라고 할 수 있다. 1954년 Ockenga는 보스턴에서 목회 하는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Fuller 신학교의 학장직을 그만두게 되는데 대신에 Carnell이 당시 교수들 사이에서 보다 유력한 Carl Henry를 제치고 스스로 자천하여 학장직에 오르게 된다. E. J. Carnell은 일종의 과도기적 인물(a transitional figure)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정통과 사랑을 함께 강조하는 양면성 때문이다. 또한 그의 성경관은 Warfield의 전통을 따르는 성경의 완전 무오설을 취하지 않고, Orr의 전통을 따르는 성경의 적극적인 가르침에 대해서만 무오설을 인정하는, 제한적 무오설과 가까운 중간 입장을 취한다. 제한적 무오설은 불오설(infallibility)이라고도 하는데 성경은 그것이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에 한해서, 즉 신앙과 계시 등 구원에 관계된 부분에 한해서 무오하고 그 외의 역사, 과학 등의 관점에서 볼 때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의 취임연설은 초기 Fuller 창립에 합세했던, Wilbur Smith, Harold Lindsell, Charles Woodbrige, Gleason Archer등 보수 세력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 후의 발전은 점점 분리를 향해 진행된다. Carl Henry는 1956년에 Christianity Today 잡지에 편집장을 맡기 위해 Fuller를 떠났고, 후에 강한 성경관의 소유자 Harold Lindsell도 그 뒤를 따랐다. 진보적인 젊은 교수들의 임용과 함께 Wilbur Smith와 Gleason Archer등은 그들과의 투쟁을 계속하는 가운데 마침내 바르트 밑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풀러의 창설자 Charlse Fuller의 아들, Daniel Fuller가 1962년 12월 1일 새로운 신학과 학과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의 연설은 분명한 수정주의 성경관의 표명이었고 이는 William Lasor, George Ladd 등의 지지를 받게 된다. 이것이 소위 그 유명한 "Black Saturday" 사건이다. Carnell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를 하지만, 이미 대다수의 젊은 교수들은 수정된 성경관, 즉 제한적 무오설에 동의하게 된다. 1963년 David Hubbard가 새 학장이 되면서 Fuller는 완전히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로 넘어간다. 보수적인 교수들은 일부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로 옮겨가게 되고 1967년에 Carnell도 그의 지병인 우울증으로 인한 약물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렇듯 풀러 신학교의 변천은 신복음주의 운동 내부에 있던 보다 진보적인 세력의 확장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20세기 복음주의 내의 그러한 이질적인 세력들의 갈등은 특별히 성경관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 사이의 성경관 논쟁은 근본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대항해서 강경하게 취하게 된 완전 무오설의 성격과 그 위치를 밝혀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의 Harold Lindsell의 『성경에 관한 논쟁』(The Battle for the Bible)이라는 책과 그 책의 후속편 The Bible in Balance (1979)는 복음주의 내의 강경한 입장을 대변하는 책으로서, 역사적 비평 연구를 전면적으로 반대하며 완전 무오설을 복음주의와 비복음주의로 가르는 척도로 사용한다. 그러나 Carl Henry 같은 경우 그 자신의 입장은 완전 무오설이면서도, 이 완전 무오설을 일종의 반동작용으로서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이 사용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복음주의를 분리시키는 지혜롭지 못한 정책이라고 본다. 그는 현대 복음주의 안에 성경의 무오성의 가르침에서 떠난 복음주의 내의 강한 조류에 대해 비판하면서, - Bernard Ramm, Daniel Fuller, George Eldon Ladd, Paul Jewett, Donald Bloesch, Dewey Beegle, G. C. Berkouwer, F. F. Bruce, Arthur Holmes, 와 Clark Pinnock 등의 - 성경의 무오성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나오는 필연적인 논리적 결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그들의 원류인 James Orr의 제한적 무오설은 논리적으로 잘못되었지만 그의 기본 신학적 입장은 복음적이었다고 보면서 역사적 비평연구도 자유주의적 잘못된 전제를 제외하면서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도 칼 헨리 교수는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을 향해  완전 무오설을 가지고 정통과 이단으로 나누는 정책보다는 복음주의자들이 연합해서 대 사회적, 대 문화적 사명을 감당할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성경관의 도전에 대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대응은 1977년 국제 성경 무오성 심의회(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를 조직해 1978년에 성경 무오성에 관한 시카고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Francis Schaeffer, James Boice, John Gerstner, Gleason Archer, Kenneth Kantzer, R. C. Sproul, J. I. Packer등 이 외의 많은 보수적 복음주의 목회자, 신학자들이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 혹은 이러한 노력에 대한 복음주의 내의 진보적 세력의 더 큰 반동으로- 성경관 논쟁은 계속되고 80년대에는 해석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고조된 성경의 인간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들로 더욱 더 복잡하게 발전되어 갔다.

Jack Rogers와 Donald McKim은 그들의 공저 The Authority and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n Historical Approach (San Francisco: Harper and Row, 1979)의 출판을 통하여 성경의 완전 무오설은 기독교의 전통적 성경관이라기 보다는 17세기 스콜라적 개신교 정통주의의 산물로서 프린스톤의 구학파에 의해 부활된 견해이며 자유주의와의 논쟁가운데 전통적인 견해처럼 오해되어졌다고 하며, 본래 전통적인 견해와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는 제한적 무오설의 견해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Trinity의 John Woodbridge는 Biblical Authority: A Critique of the Rogers/McKim Proposal (Grand Rapids: Zondervan, 1982)출판을 통해 그들의 잘못된 논지로 역사적 기록들을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Clark Pinnock과 같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도 그들의 견해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러한 성경관 논쟁에 대해서 사회 복음주의와 변증법적 신학의 입장을 가지는 성공회 신학자, Gary Dorrien은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그에 의하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둘러싸고 그 견해 자체보다 그것을 정통성의 기준으로 삼는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자들의 전투적이고 배타적이며 독단적인 태도 때문에 갈라서게 된 것이며, 이러한 성경관 논쟁은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두려움과 적대감을 드러내 주며, 복음주의의 발전을 저해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성경관 문제는 종교 개혁의 양대 원리 중 하나로서 복음주의의 근본 성격을 결정하는 워낙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갈등이었다고 본다. 부분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의 반동적인 강경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논쟁은 본래 근본주의의 개혁을 부르짖을 때부터 함께 했던 이질적인 신학적 전제들을 가진 진보적 복음주의의 발전과정으로 보고자 한다. 

C. 복음주의의 진보적 발전과 20세기 말기 상황

Fuller 신학교의 변천과 성경관 논쟁 이외에도 복음주의 내의 진보적 발전은 80년대에 시도되었던 자유주의자와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성공회 자유주의 신학자 David L. Edwards와 복음주의 신학자 John Stott 사이에 여러 가지 주요 문제들을 놓고 대화한 책, Evangelical Essentials: A Liberal-Evangelical Dialogue (Downers Grove: InterVarsity, 1988)와 Clark Pinnock 과 Delwin Brown의 Theological Crossfire: An Evangelical/Liberal Dialogue (Grand Rapids: Zondervan, 1990)의 출판은 불과 2~30년 전 복음주의 신학의 초기의 논쟁적인(polemical) 성격과 많이 달라진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책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유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은 전혀 다른 인식론적 틀에서 행해진다는 사실이 확인되긴 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의 보다 포용적이고 대화적인 태도는 많은 변화를 시사한다.

이 외에도 복음주의 내의 새로운 복음주의자들의 출현을 알리는 다양한 연구가 70년대와 80년대에 있었다. 특히 Richard Quebedeaux의 ‘The Young Evangelicals’(1974)나 ‘The Worldly Evangelical’s(1978), 또는 James Davison Hunter의 ‘Evangelicalism: The Coming Generation’(1987) 등이 주목할 만하며, 그 중에 Hunter는 현대주의적 신학이라고 여겨져 왔던 신학적 입장들을 취하면서도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는 신학자들이 복음주의 내에 많이 생겨났고 그들은 소위 전통적인 이해로부터의 탈피와 자유를 주장하는 자들로서 이러한 움직임은 은밀하고도 조용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간파했다. 이런 연구들보다 덜 자세하지만, 광범위하게 포괄적인 변화를 피력하고 있는 Robert Brow의 글 "Evangelical Megashift" (Christianity Today, Feb 19, 1990)는 복음주의 신학의 커다란 변천을 실감나게 해준다. 그에 의하면, 복음주의 신학내의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각 부분들에 대해서 그러하다고 한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해서 과거의 주권적인 왕이며 공의로운 심판자로서의 이해에서 보다 삼위일체적 사랑과 가족 관계적 따뜻함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또한 법정적 의의 개념과 함께 그리스도의 형벌 대속적 구속의 개념도 사라지고 오직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의 현현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교회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와 죄에 대한 심판, 지옥 등의 주제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고 인간의 신앙의 결단과 마음이 중요하게 되고 무엇보다 보편 구원설적인 이해가 전면에 들어 난다고 했다. 이러한 사상은 C. S. Lewis의 우화 소설들을 통해서 대중들의 생각 속에 저절로 유포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David F. Wells는 복음주의 신학 내에 스며드는 현대주의의 영향이라고 보며 정체성의 희석화를 지적했으나 Clark Pinnock은 이러한 사상은 복음주의 전통 내에 오래 전부터 있어온 알미니안 신학의 발흥이라고 하며 이러한 알미니안 신학이 복음주의 신학의 주도적인 세력으로 발돋움 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90년대에 들어서는 복음주의 신학의 진보적 형태와 보수적인 형태의 분리가 보다 뚜렷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도 정확히 이분화라고 하기 보다는 다양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복음주의 내의 신학적 통일성의 부재는 공공연히 시인되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학적 정체성의 희미화는 신학 뿐 아니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전체적으로 맞이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복음주의 정체성의 희석화 현상은 복음주의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함께, 미국 기독교 주류의 복음주의로의 회귀 현상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는 미국의 복음주의의 부흥기(the Evangelical Renaissance)라고 불렸고, 타임지와 뉴스위크지 모두 1976년을 "복음주의의 해(The Year of Evangelicals)" 라고 썼다고 한다. 이러한 복음주의의 확장과 함께 너무나 넓고도 깊게 문화적 수용이 이루어져 교회들과 일반 신도들은 성경적인 독특성보다는 현대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다고 많은 복음주의 분석가들은 말한다. 이러한 문화적 수용의 분위기는 자연히 신학의 영역에도 영향을 준다. 신학적으로도 이제는 더 이상 자유주의와의 강한 대치 상태에 있지 않고, 그런 사조와 함께 신조들을 중심으로 한 공통의 통일성을 잃어가면서 일정한 중심이 없는 다양하고 잡다한 신학들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또한 역사가들도 더 이상 복음주의의 공통의 정의가 불가능하고 복음주의 일치성은 허구라고 진단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러한 복음주의의 현 상태를 위기(crisis)라고 일컬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드높게 일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와 같은 20세기말의 복음주의의 위기의 모습은 근본주의의 편협한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문화를 향해 보다 열려진 자세로 복음을 수호하며 적용하려고 했던 복음주의 운동의 주변적 부작용이라고 평가된다. 이처럼 넓은 복음주의의 주변의 문화적 수용의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어째든 복음주의는 다시 한 번 미국의 괄목할 만한 세력으로 발돋움 했고 그 중심에는 초창기부터 계속적으로 정체성 확립의 노력을 해왔던 일관성 있는 복음주의 신학적 노력이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언급을 안 했지만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에서 채택된 로잔 언약을 펴내 복음주의자들의 보다 적극적인 사회개혁 의지를 표명한 이후, 상기한 바처럼 성경관에 대한 도전에 대해 세계복음주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국제성경무오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Biblical Inerrancy)를 구성하고 성경 무오에 관한 시카고 선언문을 발표했다. 또한 80년대 말의 복음주의 정체성의 위기의식이 드높았을 때 NAE와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이 공동으로 지원하여 Evangelical Affirmation Conference를 열어 Carl Henry와 Kenneth Kantzer를 중심으로 복음주의의 중심 신조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Evangelical Affirmations (Grand Rapids: Zondervan, 1990)를 펴냄으로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다. 2000년으로 접어드는 현재도 복음주의자들은 계속해서 복음의 통일성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해 가고 있다. 1998년에 두 명의 저명한 신학자들의 제의에 의해 미국 복음주의의 중심이 되는 신학자들 및 지도자들은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표명하는 작업을 또 다시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복음주의 신학이 여태까지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의 도전에 대해서 성경의 권위나 명제적 진리관을 세우는 데에만 주력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현재 후기 기독교 시대에 있어서 그들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복음"에 대해서 함께 통일된 이해를 표명할 것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적 복음"에 대한 복음주의적 이해를 표명하려는 이 시도는 매우 뜻 깊은 것으로서 우리 모두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새 천년의 그들의 첫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과 비교해 볼 때 그래도 복음을 보수하려는 세력이 다수를 이루는 미국의 기독교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반기에 강하게 밀려드는 현대주의에 대한 근본주의의 강력한 대응과 그들의 기본 신조 아래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려는 복음주의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하겠다. 맥그라스가 보는 대로 현재 기독교의 힘의 발전소는 복음주의이며 앞으로 기독교의 미래도 복음주의가 얼마나 그 독특성과 정체성을 지키며 현재의 다양한 도전들을 극복해 가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IV.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신학적 이탈과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문제

A. 진보적 또는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

필자는 앞서 미국의 현대 복음주의의 초창기부터 함께 있어온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발전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간략한 개관과 함께 참된 복음주의의 중심 세력을 기본적으로 근본주의 운동의 연계성 가운데 있으면서도 보다 문화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수용과 비판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세력으로 잡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Richard Quebedeaux의 분류에 따르면, 교파적 복음주의 (Establishment Evangelicalism) 즉 Carl Henry, Billy Graham, NAE, Wheaton College 그리고 초기의 Fuller 등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을 따르는 많은 이 세대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누구인가?

Gary Dorrien은 복음주의자들을 역사적으로 네 종류의 파라다임으로 구분했다. 첫째 파라다임은 "고전적 복음주의"라고 명명하며,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 재세례파들을 이에 포함시켰다. 둘째 파라다임은 "경건주의적 복음주의"라고 명명하면서 18세기 독일과 영국의 경건주의 운동들과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여기에 분류했다. 셋째 파라다임은 20세기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에서 비롯된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라고 명명했다. 그는 복음주의가 이렇게 다원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자들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다원주의에 잘 대응하지 못해왔다고 언급하면서, 넷째 파라다임이야말로 새롭게 기대를 걸어 볼만한 그룹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을 탈보수적 복음주의(postconservative evangelicalism) 또는 진보주의적 복음주의(progressive evangelicalism)라고 명명했다.

그에 의하면, 탈보수적 복음주의는 최근에 점점 복음주의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며 그들은 근본주의자들과 정도와 스타일에 있어서 다를 뿐만 아니라 아예 다른 종류의 신학자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여기에 속하는 자들을 William J. Abraham, Rodney Clapp, Stanley Grenz, Rebecca M. Groothuis, Henry H. Knight III, J. Richard Middleton, Nancy Murphy, Clark Pinnock, Miroslove Volf,와 Brian J. Walsh등이라고 했고 다른 곳에는 Roger Olson, David Dockery, Philip D. Kenneson, Mark McLeod, Steven J. Land 등을 더 첨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들의 성경관은 신정통주의와 수정주의적 견해인 제한적 무오설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복음주의의 명제적 계시관과 진리 상응설적인 실재론을 비판하면서 포스트모던 상대주의 인식론에 영향을 받아 성경과 신학의 내러티브 성격을 강조하며, 구원의 의미와 범위도 상당히 넓게 포괄주의적으로 이해한다. 또한 사회 부정의와 여성 차별에 대한 개혁을 지향하며 그 중 몇 몇은 하나님의 전지성을 부인하기도 하고 또한 지옥에 대한 이견을 펴기도 한다.

B. 신학 방법론

Milard Erikson은 최근에 그의 The Evangelical Left: Encountering Postconservative Evangelical Theology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7) 라는 책에서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특별히 신학방법론, 성경관, 신론, 구원론과 관련하여 몇몇 중요한 신학자들의 새로운 견해들을 소개 비판하고 있다. 첫째로 신학 방법론에 대해서는 Bernard Ramm, Clark Pinnock, Stanley Grenz와 James McClendon의 견해를 소개 비판하고 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전통적 신학방법론에 대해 비판적이나 Ramm의 경우 어떠한 특정한 대안이 없이 Barth의 신학방법론이 실제로 현대주의 도전에 가장 잘 대응한 모델로서 복음주의자들의 재평가를 호소할 뿐이라고 본다. Clark Pinnock 같은 경우 초기의 증거주의적 복음 변증의 입장에서 어떤 특별한 성령체험을 한 이후 신학이 점점 많이 변해 간 것을 볼 수 있는데, 신학 방법론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웨슬레주의의 신학에 있어서의 사중적 권위(the Wesleyan quadrilateral of authority), 즉 성경, 전통, 경험, 이성의 권위를 가르치면서도 이러한 전통에 충실하지 않고 내러티브 신학적으로 흐르고 있다. 그는 복음주의 신학방법인 명제적 접근을 거부하고 신학은 기독교의 이야기를 추상화된 교리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선포하고 탐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신학은 실제의 사실들을 다루는 학문이라기 보다는 단지 이차적 차원(a second-level)의 노력이라고 했다. Staley Grenz도 Revisioning Evangelical Theology에서 신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의하면서 후기 근본주의 복음주의자(post-fundamental evangelicals)들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논쟁에 그대로 영향을 받아서 신학에 대해 교리중심으로 이해하며 접근하는데, 본래 19세기 복음주의는 그렇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의 복음주의였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19세기 복음주의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신학의 기본적 범주로 중요시 한다. 그는  Pinnock등과 함께 계시와 신학에 대한 명제적 접근을 부인하고 내러티브 신학을 할 것을 제의한다. 그는 George Lindbeck의 The Nature of the Doctrine에 나타난 기능주의적 교리관에 동의하면서 신학은 전통적인 방법대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요약이라기 보다 공동체의 신앙에 대한 성찰이어야 한다고 했다. 

에릭슨은 이들의 신학 방법론의 제의에 대해 명확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내러티브에 대한 신학을 하자는 것인지 신학하는 형식 자체를 내러티브로 하자는 것인지 분명치 않으며, 정작 이들 자신도 신학방법론에 대한 논의인 메타 신학을 하고 있지 내러티브 신학을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내러티브 신학은 어떤 형식이 될지? 설교나 기존 성서신학과 어떻게 다를지? 또한 성경의 50%정도만이 내러티브라고 하는데 다른 쟝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등등의 문제들을 제기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들의 진리관은 실용주의적 기능주의 진리관으로서 키엘케고올에게서 기원하는 주관주의적 진리개념에 의존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필자는 진라관에 관한 에릭슨의 마지막 비판이 중요하다고 보며 오늘날 복음주의 내에 흘러 들어온 후기 자유주의자들의 실용적 기능주의적 진리관은(pragmatic functional truth) 무엇보다도 복음 진리의 실재성을 훼손하고, 신앙의 내용이 되는 교리들을 일종의 공동체의 규범들로 인식하면서 그것의 존재론적 진리성에 대해 간과하는 아주 본질적인 도전으로 인식한다. 이것은 서양의 지성계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이 하면서 야기되는 문제로서, 인식론에 있어서 파라다임 변화와 관계된다. 모더니즘의 객관적 진리에 대한 과학적 이성에 의한 방법적인 접근에 회의를 느낀 서구의 지성은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 인식론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아무도 객관적 진리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모든 진리는 각각의 주체에 의해 규정되며 그 주체는 또한 역사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동체의 역사성에 의해 한계 지워 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대주의 인식론은 진리를 더 이상 객관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나 역사에 상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상대주의는 현재 복음주의가 맞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으로서 이러한 도전 앞에 참된 복음주의 신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성경의 진리성을 실재적인 참으로 선포하고 증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복음주의 신학은 여러 가지 반성적 성찰을 통해, 모던적이지도 않고 포스트모던적이지도 않고 오직 성경적이기를 항상 추구해야 한다.

C. 개방적 신론

탈보수주의적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특별히 전통적 신론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일련의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개방적 신론"(The open view of God) 또는 "창조적 사랑의 신론"(creative love theism), "자유의지 신론"(free will theism)이라고 부르는 신론을 주장한다. 여기에 속하는 인물들은 Clark Pinnock, Gregory Boyd, Stephen Franklin, Richard Rice, David Basinger 등으로서 상기한 바 Robert Brow가 "Evangelical Megashift"에서 기술한 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개념을 법정에서의 심판자와 피고인과 같은 이미지보다 가족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이해한다. 이러한 신론은 특별히 구원론과도 밀접히 연관되어서, 개방적 신론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구원의 범위에 대해 보편 구원설적인 경향을 가지는 포괄주의를 함께 주장한다. 개방적 신론은 전통적 유신론을 고정적이면서도 초월적인 신 개념만 강조하는 헬라적인 신론이라고 비판하면서, 보다 하나님의 내재성과 관계성의 측면을 크게 강조한 형태의 신론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하나님의 예지(divine foreknowledge)를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지식과 체험도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새로운 사건들에 상관적이며 깊은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개방적 신 개념을 가르치는 자들은 전통적인 전능자 하나님의 개념과는 달리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 안에서 세상에 의해 한정 받도록 스스로 선택하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체험도 세상과 함께 진보적이며, 발전적이며 개방적이라고 본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사랑의 속성을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보면서 요일 4:8을 가장 중요한 구절로 삼고 이러한 하나님은 그의 사랑 안에서 세상 전체를 품으시고 세상과 함께 고통하고 미래를 창조적으로 헤쳐나가는 분이시라고 본다. 이들은 특별히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결정에 대해 미리 아신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더 이상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상반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특히 Clark Pinnock은 이러한 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알미니안 전통에 늘 있어온 사상으로서 현재 지배적인 칼빈주의적 하나님 이해에 대한 반발로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에릭슨은 평가하기를, 개방적 신론은 고전적 유신론과 과정 신학과의 중간 위치를 차지하는 신 이해로서 성경에 충실하려고 애쓴 흔적은 보이나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침이며,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성, 진노와 심판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사상과 맞지 않는 성경의 가르침들에 대한 설명이 부적합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 사상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서로 상반적으로 이해하면서 하나님의 전지성을 부인하는데, 성경은 분명 양쪽을 다 말하고 있으며 이 점에 대해 한쪽을 희생시켜서 적합한 균형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70년대 유행하던 신정통주의적 성서신학 운동(biblical-theological movement)이 가지고 있던 헬라적 사상과 히브리적 사고의 대비와 후자만이 성경적이라고 하는 잘못된 도식을 전제한다. 더군다나 실천적인 영역에 있어서, 이 견해는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인간의 미래를 주관하시지 못한다면 그런 하나님께 무엇 하러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야기된다. 아울러 종말론의 문제가 심각히 제기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피녹의 경우 자신은 알미니안 전통의 회복을 부르짖지만 사실 그의 견해는 알미니안 전통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않다. 적어도 복음적 알미니안 전통은 하나님의 예지를 부인하지 않았고, 특히 17세기의 알미니우스는 어거스틴의 하나님 인식 방법에 대한 논의를 그대로 따르면서, - 즉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적으로 아시는 초시간적인 하나님의 인식 방식 - 하나님의 예지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피녹이나 개방적 신론주의자들은 오히려 과정 신학, 또는 후기 자유주의 신학의 내러티브 신학 등 현대 문화의 영향이 더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개방적 신론의 가장 근본적인 오류는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을 제한하려 했다는 점으로서 Douglas F. Kelly가 비판한 바와 같이,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가장 유감스럽게 퇴보한 형태의 비정통(heterodox)적인 가르침이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이 가르쳐온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포괄과 종합을 무시하고, 전통적 신론을 무조건 왜곡시켜 제시하면서 자신들의 새로운 신학적 제의를 따를 것을 촉구한다. 더군다나 그들은 고전적 알미니안 전통에도 충실하지 않음을 Timothy George는 다음의 그의 주장에서 암시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전능성과 그의 주권적인 사랑은 개방적 신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서로 상반되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이해되어 왔고, 따라서 루터, 칼빈, 그리고 심지어 알미니우스도 결코 그것의 모순을 발견한 흔적이 없다. 결국 고전적 전통은 개방적 신론주의자들이 말하는 위협하는 하나님 이상의 좀더 포괄적이고, 풍부하고, 위대하면서 복합적인 신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Alister McGrath는 역으로 오히려  전통적인 신 이해 속에 고통 당하며 심지어는 십자가상에서 죽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은 그것들을 간과하며 특별히 Charles Wesley의 찬송가에 나타난 풍부한 그런 개념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 또한 웨슬레 신학에 대한 깊은 연구도 없이- 다른 어떤 것을 위해 그러한 복음주의 전통들을 송두리채 버리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D. 포괄주의 구원론

복음주의 내에서 이러한 특수한 신론보다 더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사상은 포괄주의(inclusivism)라고 할 수 있다. 대개의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개방적 신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구원의 범위에 대해 보다 넓게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아니면 적어도 기독교의 구원의 배타성을 그리 강하게 선포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원주의의 영향으로서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에 가장 심각한 도전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에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구원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유일성까지 선포하는 것이 복음주의적 복음전파라고 할 수 있으며 포괄주의의 구원관은 분명 기독교의 복음을 현대의 다원주의와 타협해 변형시킨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본다. 그러나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종교다원주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종국성은(finality) 인정하나 다른 종교 안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 이전의 신자"(pre-messianic believer)들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대표도 역시 Clark Pinnock이며,  John Sanders나 대부분의 개방적 신론을 주장하는 자들과 영국의 C. S. Lewis 등도 포괄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괄주의가 현재 이렇듯 넓게 지지 받고 있는 주된 배경은 서양의 종교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드높아진 관심 때문일 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던 상대주의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던 상대주의는 다원주의의 기초와 뿌리를 제공하는데, 그것은 각각의 종교와 문화들을 상대화시킴으로서 서로 동등하면서도 각기 고유하고 다양한 현상들로 보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종교도 유일한 진리를 가졌다고 주장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것과 더불어 제 3 세계에 대한 과거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반성과 함께 각 종교와 문화간의 상호 존중과 평화 공존의 당위성을 인식하는 20세기 후기의  정치적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나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종교간의 평화공존의 당위성과 상호 존중을 인식하며 실천해야 하는 동시에 원리상 복음주의자라면 복음 진리의 배타성을 타협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비록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핵심인 구원론의 부분에까지도 수정을 감행하고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대표인 Clark Pinnock이 가르치는 포괄주의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 신학은 구원의 보편성과 포괄성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그것은 딤전 2:4절에나 요일 2:2에 나타난 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에 따라 그러한 것이며, 또한 기독교 밖의 수많은 사람들과 종교들에 대해서 무조건 모두 멸망 받는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정신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도 또한 모든 민족들 간에 역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 생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수령자들이 될 수 있다. 이 견해는 다른 종교들도 인류 구원의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고, 그 역할은 완전한 구원을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본다. Pinnock은 자신의 견해가 Karl Ranner처럼 다른 종교도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강경한 포괄주의와는 달리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인정하는 보다 온건한 양태적 포괄주의(modal inclusivism)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온건한 포괄주의를 표명한 카톨릭의 제 2차 바티간 공의회의 공식 입장에 대해 찬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포괄주의의 견해가 현재 기독교 주류의 견해임을 명시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성령론적 접근(pneumatological approach)이라고 말하며 모든 민족들 간에 역사하는 성령의 비밀스러운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다른 종교와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무의식적 또는 숨은 신앙(implicit faith)을 가진 그리스도 이전의 신자들이(pre-messianic believers)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곧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참된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분리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엔 어디든지 항상 은혜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이전의 신자(pre-messianic believers)들은 그리스도인(Christians)들과 구원 지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며, 전자는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uniqueness)의 개념을 종국성(finality)의 개념으로 바꾸어 이해한다. 이 견해는 더 나아가 무의식적인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점은 이생 뿐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가능하다고 보는 죽음 이후의 개종 가능성(postmortem encounter)에 대해 주장한다. 죽음 이후의 개종 가능성에 대해 베드로전서 3:17-19과 4:6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의 가르침을 가지고 뒷받침하면서, 전생에 그리스도를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이나 아기 때 죽은 사람들 또는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두 번째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해석과 사상을 편다.

여기에서 Pinnock이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사상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하고 다른 사람들은 유기하시기로 예정했다는 이중 예정론으로서 이것은 본래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고 Augustine에 이르러 만들어진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예정은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를 사랑하기 원하는 사람을 멸하시지 않는다고 하면서 인간 자신의 종말에 대한 자유의지의 역할을 강조한다.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포괄주의의 견해에 대해서, 에릭슨은 역시 그들의 성경 구절들의 선택적 사용과 주입식의 해석(eisegesis)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피녹의 경우 낙관적인 해석 원리(a hermeneutic of optimism or hopefulness)로 일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반계시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은총을 주장하기 위해 제시하는 성경의 예들, 고넬료나 멜기세덱, 또는 아브라함 등의 경우도 피녹이나 샌더스 모두 그들의 주장을 읽어내는 방식의 애매한 주석을 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에 대해, 지옥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과정으로 이해되어 오는 것이 보통인데, 그리스도 이후 사람들의 죽음 이후의 개종 가능성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필자가 보기에, 피녹의 낙관적인 포괄주의의 기본 공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의 가르침인데 그것과 하나님의 공의와의 관계가 잘 규명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의 개념은 개방적 신론과 연결지어 볼 때, 결국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만물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의 의지로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해 골고루 기회를 주지만 인간은 자유의지를 사용해 그 기회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논리로서 현대 민주적 사고 방식을 하나님께 대입시킨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여기서 또 다시 개방적 신론이 가졌던 문제, 미래에 대해 제한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과연 하나님이라 할 수 있을까 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되돌아온다.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성경에 약속된 영광의 종말론적인 왕국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희망 사항에 따라 투사된 하나님과 그리고 근거 불명의 낙관주의로 재조명된 구원론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다.

E. 영혼 멸절설(Annihilationism) 또는 조건적 불멸설(Conditional Immortalism)

영혼 멸절설 또는 조건적 불멸설은 새로운 이론은 아니나 현재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퍼져가고 있는 견해로서 여러 형태가 있지만, 한마디로 지옥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불신자들의 종말은 지옥의 형벌을 영원히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며 신자들은 영생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견해를 가르치는 자들로 John Stott, John Wenham, Michael Green, Stephen Travis, Philip Edgecumbe Huges 등의 영국의 신학자들과 미국에서는 대표적으로 Clark Pinnock과 Edward Fudge가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르침들은 접어두고, 일단 그 기본 논점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유한한 죄를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서 고문을 당하게 하신다는 전통적 사상자체가 어불성설의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즉 전통적 지옥론은 비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도 건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히 Pinnock은 성경이 말하는 불신자의 종말은 파멸(destruction)의 개념이 주요이지 영원한 형벌(eternal punishment)이 아니라는 것을 또 다시 성경의 여러 곳을 인용하며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의 불멸성(immortality)은 헬라적 사고에서 온 사상으로서 성경에서는 본래 인간을 유한한 존재로 기술하고 있으며 인간이 죽었을 때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가 없는 한 그 존재가 소멸되고 만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신학적으로 볼 때, 아무리 죄인이지만 영원한 불 못에 던져 놓고 끊임없이 고문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일 수가 없고 피에 굶주린 괴물이거나 Satan일 것이라고 말한다.

John Stott는 Pinnock보다 약화된 어조로 이 이론을 주장하지만 그도 역시 지옥의 형벌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의 고문이라는 사상은 견딜 수 없는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성경에서도 불신자들의 운명에 대해 소멸의 개념으로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견해는 조건적 불멸설과 다르다고 구분한다. 즉 후자에 의하면, 사람은 자연적으로 소멸하게 되어 있고 오직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자들에 한해서 불멸한다는 이론인데 반해, 존 스토트의 이론은 소멸설로서 모든 사람이 죽음에서 부활하지만 회개치 않는 자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소멸된다는 견해인 것이다. 다른 많은 신학적인 문제도 그렇지만 이 문제는 특별히 많은 부분이 성경 주석을 놓고 논의해야 한다. 또한 종말론적으로 고전 15:28; 요 12:32; 엡 1:10절 등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악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가 이루어지고 그의 보편적인 통치가 이루어졌을 때, 회개치 않은 자가 지옥에서 생존한다는 사상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그들의 논지는 어려운 문제인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서 존 스토트는 피녹이나 다른 진보적 복음주의자와는 달리 전통적 가르침과 해석에 대한 존중심과 복음주의의 일치에 대해 보다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잠정적이라고 말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복음주의 내의 심각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이론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모두 중요한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가 임할 때 그것과 함께 계속해서 존재하게 될 악에 대한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악에 대한 심판조차도 하나님의 통치하심의 한 형태라고 믿고 그것이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 정하신 것이라면, 선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판단을 어느 피조물이 악하고 불의하다고 말할 권리가 있는가? 더구나 성경의 너무나 많은 부분에 지옥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이 있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사 66:24; 마 3:12; 막 9:43, 45; 눅 3:17)이나 "구더기도 죽지 않고"(사 66:24; 막 9:44, 46, 48) 등의 표현으로 그 영속성을 말하고 있고, 그것의 표현들이 무서운 결박, 불, 고통, 슬픔, 이를 감 (사 33:14; 렘 17:4; 단 12:2; 막 18:8; 데후 1:9; 계 14:11; 19:3; 20:10) 등의 생생한 의식적인 상태에서의 고통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 이후에 오는 되돌이킬 수 없는 심판과 형벌에 대해 가장 많이 가르쳤던 분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옥에 대해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럴 때 더욱 더 구원에 대해 감사하면서 그리스도를 열심히 붙들게 되며, 죽어 가는 영혼을 구해야 한다는 더 긴박한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악에 대한 심판과 지옥에 대한 가르침은 복음의 필수적인 전제로서 이 가르침이 제거되면 복음의 심각성이 사라지게 되고 더 이상 복음이 아니게 된다. 영원히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부터의 구원과 그냥 사라져 버리는 상태로부터의 구원은 그 심각성과 개념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러한 견해의 부흥은 Robert Brow가 말했듯이,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의 죄나 심판,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의식이 약화된 현대적 상황을 말해준다고 보여진다.

F. 진보적 복음주의자들과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지금까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주장되는 주요 신학적인 이탈들을 개관해 보았다. 이 외에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격에 관한 논의, 즉 형벌 대속설에 대한 부인과 방어, 또한 칭의의 성격에 대한 논의 등 복음의 본질에 관한 더 심각한 내용들에 관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주제들의 무게 때문에 여기서 다루질 못했다. 아무튼 진보적 복음주의자들 또는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가르쳐 오는 많은 교리들로부터 이탈해 (후기)현대주의로부터 흘러들어는 사상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변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복음주의자라고 불리우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들 자신의 복음적 신앙 체험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의 배경과 신학의 장이 복음주의 사회에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이 항상 복음주의에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두는 것은 아마도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와 구별하려는 의도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복음주의의 신학적 정의라고 본다.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따로 깊이 있는 연구와 성찰을 통해 제대로 밝혀야 하겠지만, 지금 다루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20세기 복음주의의 신학 상황에서 대강의 정의를 해본다면, 초기의 신복음주의 운동 때부터 중심부에서 성경의 권위를 보수하고 근본주의의 5개조 교리 등을 포함하여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어온 정통교리들을 존중하여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며 또한 내적으로는 잘못된 이해들을 비판해가면서, 오늘날의 상황에 새롭게 조명하려고 노력해 온 일관된 신학 운동(a consistent theological move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복음주의적인 면모는 항상 성경에 호소하며 성경에 입각한 신학을 세우려고 노력했었다는 점이며 또한 전통에 대한 개혁의 의지였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반면에 그들은 현대의 다양한 사상적 조류에 깊이 젖어 있어서 성경에 대한 균형 있는 주석을 해내지 못하고 신학방법론과 신론과 구원론 등에 있어서 전통적인 방법과 교리들에 대해서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전통과의 연계성 속에서 발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균형 잃은 변질을 초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별히 Clark Pinnock의 경우, 그의 기본 사안(agenda)은 이미 복음주의 신학을 주도하고 있는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알미니안주의의 반발 및 주도권을 위한 항거인데, 그런 그의 사안으로 말미암아 어거스틴-칼빈의 전통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보이는 왜곡된 해석을 가지고 제대로 비판해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밀라드 에릭슨도 개방적 신론을 다룰 때, 이들의 어조와 수사학에 있어서 학적이지 못하고 경멸적인 표현들, 왜곡시키는 표현들 그리고 논리적 비약 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Stanley Grenz의 경우 복음주의적 영성을 강조하면서 19세기 복음주의의 경건주의 전통의 회복을 말하지만, 그의 신학의 이해는 근본적으로는 자유주의의 경험주의적 이해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고, 특별히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인식론적 파라다임 변화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후기 자유주의의 신학 방법론(the postliberal approach)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이탈은 복음주의의 고유한 신학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더구나 그들이 복음주의자들이라고 자처하고 있기에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에 위협을 주는 것이라고 본다.

V.   한국 복음주의 신학에의 적용 및 정체성 확립의 과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은 어떠한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통찰력들을 얻을 수 있을까?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어떠하며 어떠한 과제들이 있을까? 오늘날 한국에서 복음주의에 입각하여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이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의 물음이라고 본다. 이 물음에 대해 초창기부터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운동을 일으키고 이끌어온 한철하 박사는 복음주의 신학은 복음신앙을 무너뜨리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복음신앙을 세우는 운동이라고 했다. 그래서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신앙을 거짓없이 믿고 살기에 힘쓰는 가운데, 복음신앙에서 이탈하여 나간 세계 속의 모든 배도적인 사상들에 반대하여 복음신앙을 세우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정신으로 1972년부터 조종남 박사, 오병세 박사, 김의환 박사 등 네 사람이 주도적으로 함께 시작했다가 1981년 재조직된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는 그 동안의 많은 일꾼들의 노력으로 현재 보수신학의 연합전선으로서 그 자리 매김을 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최근에 한박사는 기독교에는 중심진리가 있으며 그것은 복음 신앙을 통한 구원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중심진리에 대해 신학의 여러 분야에서 함께 조명해 보자는 "신학 공관"이라는 새로운 제의를 하는데 이러한 제안은 참으로 현재 복음주의의 신학적 상황을 판단해 볼 때 적기의 제안이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라 평가되며,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기초를 공동으로 다져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박용규 교수의 『한국교회를 깨운 복음주의 운동』은 넓게 한국 교계 전반에 걸쳐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흐름을 개관하면서, 그 운동의 신학적인 위치를 근본주의와 토착화 운동 사이에 두고, 복음주의 운동은 한편으로는 근본주의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토착화 운동의 현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보수적인 신학의 기초 위에 보다 활발한 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려는 노력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정체성"에 대해 몇 가지 유익한 제의를 하는데, 그 첫째는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진원지인 미국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적 기원과 과정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것과 둘째는 복음주의 신학자들간의 다양한 신학적 배경으로 인한 통일성의 부재에 대해 언급하며 역사적 복음주의 신학의 기본 교리들에 동의함으로서 그 일치점을 찾을 것을 제의하고 있다. 셋째는 성경관에 있어서의 일치점을 찾아야 할 것을 말하면서,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의 신앙 고백서가 미국의 시카고 선언이 표명하는 성경 무오설 보다 좀 더 느슨한 정의에 만족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다.

이상의 제의는 필자도 느낀 바로서 대개는 깊이 동의하고 있으며 특별히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에 참석하면서 문제로 깊이 느꼈던 것은 신학적 일치에 관한 부분이었다. 물론 신앙 고백서가 있고 보수주의라는 커다란 울타리는 있지만 신학자들의 각각의 교단 배경과 유학 배경 등 다양한 배경에서 습득한 다양한 방법론과 접근법을 통해 일정한 이슈들을 제 각각 풀어나가는 현재의 상태는 실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특성이 무엇인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참으로 분명치 않고 혼란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보수 신학이 서양의 카피 신학(copy theology)의 수준에 머물면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렇게 간다면 참으로 지금까지 땀흘려온 선배들의 노고가 헛되이 되고 말 것이다.

전 장에서 살펴본 바,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의 변천과 진보주의 신학자들의 이탈들을 보면서 참으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첫째로, 미국이나 한국이나 21세기로 접어드는 현 시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신학 도전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복음주의와 자유주의가 제 각기 다른 전통을 세우고 있기에 서로 더 이상 세력 다툼을 하는 대치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복음주의 내에 계속해서 스며드는 현대 또는 후기 현대의 사상적 영향이 있음을 분별해내고 그에 따른 변증을 계속해야 하는 지속적인 사명이 있다.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복음주의 전통과 사회 내에 있기를 원하면서 포스트모던 사상을 그대로 좇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복음주의 신학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이다. 그 동안 복음주의 신학은 외부로부터 오는 도전이 있을 때에 비로소 응답하면서 상대적인 정체성만을 찾아왔는지 모른다. 자유주의에 대한 복음주의, 근본주의에 대한 복음주의 등. 이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비로소 참으로 그 이름이 지닌 대로 성경의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동으로 규명해 보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현재 John  Armstrong, D. A. Carson, Timothy George, David Neff, Thomas Oden, J. I. Packer, R. C. Sproul, John Woodbridge 등 15명의 복음주의자들이 마련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복음주의적 경축(celebration)"의 초안을 작성해서 보다 넓은 복음주의자들의 서명과 의견을 받으며 계속 연구 확장하면서 보다 큰 회합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 일이 얼마만큼 호소력을 가지고 전 복음주의의 공동체의 노력을 한데 모아 많은 열매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상황에의 적용이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은 초창기부터 미국의 복음주의와의 연계성 속에서 그들의 변증적 성격을 그대로 가져와 자유주의라는 외부 세력에 대한 보수주의의 연합 전선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은 교단적 배타성이 강한 한국 교계 풍토 속에서도 범 교단적으로 함께 대외적으로 자유주의 또는 토착화 전통이라는 외부 대상에 대한 상대적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상대적 정체성은 외부 도전이 약화되고 연합의 중심의 흐려질 때,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순복음주의 등 이질적인 다양한 신학 체계들의 내적인 대립 앞에 허무하게 무너질 위험성이 크다고 본다. 미국의 90년대 말의 상황이 보여주듯이, - 복음주의자들의 신조들을 중심으로 한 통일성이 약화되면서 다양한 신학들의 춘추 전국 시대가 도래하게 된 상황 -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도 곧 그러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본 논문은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러한 다양한 상황 가운데도 복음주의 중심세력이 있다고 평가를 내렸지만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상황인데 벌써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 안의 이질적인 집단의 분열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보수성"이라는 어떤 외적 울타리로 그 명맥을 유지해 가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다원화되고 복음에 대한 도전도 그 성격이 다양하다.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회가 참으로 명실공히 한국 보수 신학의 맥을 이어가는 공동의 노력을 하는 장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상대적 정체성에만 만족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 바야흐로 내적 통일성에 입각한 진정한 정체성 확립을 추구할 때가 온 것이다.

한국 복음주의의 내적 통일성에 입각한 진정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 모두가 풀어 가야할 숙제이고  앞으로 더 깊이 연구되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필자의 몇 가지 초보적인 생각을 간략히 피력하고 이 논문을 마치려고 한다.

첫째, 내적 통일성에 입각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공통된 특성과 기반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일정한 신학 방법론과 우리 나름대로의 성경 해석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외국에서 따온 또는 각각의 교단 전통만을 고집하는 현행 상태가 계속될 때는 분열된 보수 교단의 모습을 또 다시 재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의 각자 나름대로의 신학들이 함께 모아져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내적인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공동의 노력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고, 그 믿음은 단순한 낙관적인 희망사항의 투사가(an optimistic projection of wishful thinking)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교회가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공통의 복음적 신앙 성격에 근거한다. 서울 신대 박명수 교수의 다음의 말은 참으로 동의할 만하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흐름은 복음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국 기독교는 해방신학이나 세속화신학 같은 극단적 자유주의도, 모든 것을 정통과 이단의 자로 재려고 하는 극단적 보수주의도 배격하는 온건한 보수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복음주의의 이름 아래 수많은 교파들이 모여서 연합 활동을 하고 있는데서 잘 드러난다. 일반 신자는 교역자보다 더욱 더 극단적 보수주의도, 극단적 자유주의도 배격하고, 순수하게 신앙 안에서 연합되기를 바란다.

박명수 교수가 관찰하고 있는 바와 비슷하게, 필자도 한국의 지역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공통의 복음적 신앙성격을 발견하곤 한다. 교파와 교단은 달라도 한국 교회 초창기부터 면면히 흘러오고 있는 한국 복음주의 신앙의 공통성이 있음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신앙적으로는, 장로교라 할지라도, 강한 경건주의적 부흥운동의 성격을 지닌 형태로서 개인의 회심과 중생을 강조하는 비슷한 영성을 지녔다고 보여진다. 장로교 내에서도 개혁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각 지역 교회들의 강단이나 일반 성도들의 신앙 성격은, 사실 19세기 말 Dwight Moody의 3차 부흥운동의 영향하에 대부분의 미국의 선교사들이 가졌던 세대주의적 부흥주의(dispensational revivalism)와 흡사한 성격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찰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 안에서도 느끼는데 한국, 독일, 화란, 영국, 미국 등 어디에서 신학을 했건 다양한 신학적 언어 뒤에는, 한국 교회에서 자라면서 습득한 신앙의 공통된 성격 때문에 토의 때나 질의 응답 시 서로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있음을 감지한다. 필자의 이러한 느낌과 관찰이 매우 애매하고 아직은 학적으로 규명되고 살펴지지 않았지만 바로 이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보는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규명 작업인 것이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독자성과 독특성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 복음주의적 신앙의 영성과 특성에 대한 명명과 개념화 작업을 먼저 공동으로 이루어가야 하며 그에 대한 깨달음에 입각해서 신학적 논의들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접근과 방법이 있을 테지만  필자가 시급하다고 느끼는 것은 한국 교회사 속에서 규명해 내는 것이라고 본다. 즉 한국에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의 신앙 성격을 규명하고 그것이 어떻게 한국적 상황에서 변화되어 이루어져 오는지 등을 밝혀보는 것은 비단 교회사 전공자들에게 한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아울러 우리의 논의와 약간은 빗나가지만 한국 교회사 또는 신학사 읽기의 문제다. 현재 한국 교회사를 읽는 사관에도 일반 한국사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음을 본다. 소위 민족주의 사관이라 하여 복음은 선교사에 의해 전파된 것이 아닌 우리가 먼저 받아들였느니 하는 설은 편협한 민족성을 드러내는 건전한 사관이 아니라고 본다. 또한 사대주의적 태도에 기인한 무비판적인 선교사관도 함께 근절해야 한다. 복음주의 신학의 나아갈 방향에 입각한 해석학적 시각에서의 한국 신학사 읽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작업은 각 교단 내 전통 세우기로부터 해서 현재의 복음주의 신학적 작업을 그러한 전통들과의 연계성 속에서 파악하는 역사의식을 수반한다. 교단 전통의 신학자의 계보가 세워져야 하고 그들의 신학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와의 연계성 찾기 작업으로부터 더 나아가 다른 신학적 전통과의 공통성 찾기 작업까지 다양하게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총신에서 박형용 박사 신학에 대한 재고가 이루어졌던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 Charles Hodge 신학의 재판이라는 비판과 함께 무시되었던 접근에서, 설사 많은 부분이 그러하다 할지라도 그의 창조성과 한국적인 독특성을 찾아내고 또한 오늘날 이어가야 할 부분에 대한 발굴 등 보다 뜻 깊은 한국 신학사 속의 인물로서 연구되어질 때 더욱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오늘날의 신학적 작업을 전통 속에 연계시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는 첫 걸음이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자들간의 보다 활발한 상호 교류라고 본다. 본 논문부터 해서 스스로 비판을 해보면 우리는 학문적으로 너무나 외국 학자들에게만 의존하고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신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서로의 학문의 업적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인용하면서 상호 존중의 분위기 가운데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대응할 것은 대응하며 보다 학문적인 교류다운 상호 교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학파의 형성이 안 되는 우리 나라의  학문 풍토는 신학적으로 항상 식민지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독특한 학풍과 또는 인격적인 서클을 이루며 스승과 제자로 연결되는 진정한 신학의 장과 전통이 없이는 진정한 학문이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다양한 져널리즘 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국내 신학자들의 교재는 그리 많지 않고 번역판만이 난무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보다 열심히 연구하여 한국적이고도 복음주의적인 시각에서 교리들을 다루어 그야말로 신학다운 한국적 신학을 추구해 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미국의 IVP 시리즈처럼 한국의 조직신학자들도 서로의 영역을 나누어 공동으로 함께 교리들을 새로이  규명해 가는 작업을 시도해보는 것이 어떨까 제안해 본다.

다음으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박용규 교수는 성경관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필자는 여기에 숨어 있는 위험성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미국 내 성경관 논쟁을 대강 살펴본 바대로, 성경 무오설과 진리 상응설 그리고 명제적 계시의 개념들이 얽혀져서 성경관에 대한 혼란한 신학적 논의들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이 재현해서는 안될 길이다. 그러한 논의들 배후에는 인식론적 출발점이 필요한 서구적 지성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읽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결코 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그토록 강경하게 주장하여 성경의 무오성의 교리를 제 일의 으뜸원리로 놓아야 하는 그들의 상황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즉 성경 무오성의 교리의 기능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 논쟁에서 보여주는 것은 인식론적 확실성을 보장해야 하는 서구적 불안이(a sort of the Cartesian anxiety) 보인다. 칸트 이후의 인식론적인 출발점이 신학의 모든 출발점으로 되어버린 현대주의의 영향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무오하며 그것이 증거하고 있는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는 진리의 말씀인 것을 믿으며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최고의 권위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성경관에 대해 보다 분명한 이해를 위해 깊이 연구하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오히려 성경에 대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논의는 공통의 해석적 방법론을 수립하기 위한 논의가 되어져야 할 것 같다. 신약 분과나 구약 분과에서 역사적, 문헌적 연구를 통한 다양성에만 치중하지 말고, 성경의 통일성과 조화의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 신학적인 통찰들을 보여 주면 조직신학을 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에 조직신학 분과에서 복음주의 신학 방법론에 대한 독특성을 밝혀내 주면 성경 해석학의 방법론도 아울러 세워지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복음주의 상황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근본주의 논쟁을 통해 복음주의가 가지게 된 반동적인 성격의(reactionary tendency) 탈피이다. 이 점은 보수적 복음주의자나 진보적 복음주의자 모두에게 보이는 모습인데 하나의 조류나 주장에 대해서 반동적으로 반응해 다른 극단으로 치닫는 습성이다. 이러한 반동성은 비판적 사고의 결여이며 항상 분열을 조장한다. 한국 복음주의가 이질적인 신학 체계들과 전통들 사이의 긴장 관계를 적절히 유지하며, 이들 사이의 내적 통일성을 추구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반동성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해야 된다고 본다. 특별히 한국인의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교계나 사회나 참으로 냉철한 분석과 비판적 사고의 결여로 많은 반동성을 보여 왔다. 우리는 역사의 상반된 갈등 뒤에는 항상 그것을 극복해 가려는 종합을 향한 지향이 있음을 배웠다. 참된 종합이 요구되는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현 상황에서 상호 존중과 서로 다른 것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통해, 본래 복음주의의 본질인 역사적 복음과 그것에 대한 개인적 체험의 포괄성을 이루어 가야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칼빈주의적 개혁주의자들과 알미니안적 웨슬레주의자들과 그에게서 나온 오순절적 성령 은사파들은 서로 다른 모습들에 대해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그 다양성의 배후에 있는 공통성이 무엇인지 발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반동성의 진자 운동에 말려들게 되어 소모적인 싸움과 분리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찢어진 보수교단의 모습을 복음주의라는 넓은 우산으로 덮는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말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복음주의는 교파적인 관심이나 교단 정치체제적인 관심들이 복음에 대한 관심보다 앞서도록 허락하지 않는 주의이며; 복음주의라는 말 자체가 복음에 대한 관심을 가장 중심에 강조하면서 그 운동의 핵심과 본질을 나타낸다. 복음주의는 의도적으로 복음이라는 중심 주제 아래 다른 모든 것을 부차적으로 놓는 원리이다." 이렇듯 순복음파 교도이든, 성결교도이든, 감리교도이든, 장로교도이든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하나의 복음 신앙 위에 함께 설 때, 하나님께서 복음주의 신학회에게 허락하신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자료2>
후기-현대 신학 방법론에 관한 연구
- 김성원 (종교철학/조직신학, 나사렛대), 제 41차 복음주의 신학회 발표회


I. 서론  

   21세기 신학교육은 후기 현대(late modernity)와 포스트모던(postmodern)의 전환기의 이중적인 맥락에서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고 해석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대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이고,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 사고와 세계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 포스트모던 세계관과 사고는 후기 현대의 한 부류로 있을 뿐이지,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독교를 향한 현대 사상의 도전에 대한 변증으로 만 신학교육이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포스트모던 사상의 도전에 대한 변증만을 교육하는 것도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가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21세기의 신학교육은 후기현대와 포스트모던의 복합적 도전에 대한 변증과 복음에 대한 명료화 해석(articulative interpretation)을 시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스텐리 그렌츠(Stanley Grenz)는 차세대를 포스트모던으로 보았고, 마틴 마티(Martin Marty)는 차세대를 후기 현대의 연속으로 보면서 포스트모던은 아직 후기 현대의 한 흐름의 유형으로 보았다. 로버트 네빌(Robert Neville)도 마티와 비슷하게 차세대를 후기 현대연속으로 보고 포스트모던도 후기현대의 한 흐름으로 보았다. 토마스 오덴 (Thomas Oden) 은 후기 현대보다는 포스트모던을 선호하고 있다. Thomas C. Oden, Agenda for Theology: Recovering Christian Roots (New York: Harper & Row, 1979), 49.
 여기서는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서 우리의 신학교육의 대상과 그들이 목회 할 세대를 고려할 때에, 시대 문화적 배경을 후기 현대와 포스트모던의 전환기로 보고, 기독교 복음에 대한 시대적 이해의 방법을 논하고자 한다.
  신학이란 신앙에 대한 해석으로서 성서와 기독교 전통과 신앙적 혹은 영적 체험을 주어진 시대적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며,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도록 변증하고 명료화하는 것이다. 신학에 대한 정의는 김성원,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신학방법의 유형에 관한 개론적 고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1장 참조.
 시대적인 맥락에 따라서 시도되는 핵심적인 신학적 접근은 기독교 복음을 명료화하는 작업이다. 복음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후기 현대와 포스트모던의 기로에서 복음의 해석작업이 필요하고, 복음주의 맥락에서 적지 않은 변증적 시도가 나오고 있다. 본 글은 후기 현대 변증적 신학의 가능한 방법을 부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글을 전개하는 방법은 초월성과 세속성의 관계를 변증법적(dialectical)으로 논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도전을 많이 받는 초월성과 현대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인 이성중심주의와 인본주의적인 세속성과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전개한다는 말이다.
  후기-현대와 포스트모던의 시대적 특징을 살피고, 복음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명료화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변증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한상화 교수가 지난 3월에 발표한 “탈자유주의(post-liberal)와 탈보수주의 (post-conservative)애 관한 비평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이 두 가지 흐름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취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성서 중심적인 신학을 한다는 차원, 기독교 유신론, 성서적 현실주의는 같은 입장이지만, 그러면서 여기서는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 입장을 취하는 면이 있는데, 특히 토대주의(foundationalism)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신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기존의 고정된 교리적 토대를 넘어서 인간복제, 기술문명, 지구촌 갈등, 경제 질서 등의 새로운 시대적 문제에 대한 해석을 성서에서 지속적으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변증(apologetic)이라는 말은 복음을 시대적으로 명료화하는 것과 복음의 타당성이 시대적으로 더욱 수용적일 수 있도록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고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후기-현대의 변증적 신학 방법론으로서, 후기현대와 포스트모던 변증적 방법의 하나로서 신학적 미학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II. 후기현대의 도전과 변증의 필요성

  후기현대 신학의 임무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한국 인구의 1/4의 기독교문화와 후기현대의 매우 다른 시대문화 사이에서 이중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후기 현대의 복음주의 신학은 새로운 방법으로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이중성에 대한 적지 않은 격감 작업이 없이는 기독교는 후기현대 사회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기독교가 이방 문화에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지하게 기독교 진리에 대한 변증(apologetics)을 시도하지 않으면, 현대 사회는 기독교를 결국 버리게 될 것이다. Neville, Religion in Late Modernity, 154.
 기독교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신학은 현대적 범주와 역사적 전통에서 일어나는 범주를 활용해서 발전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학적 작업 자체도 현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Neville, Religion in Late Modernity, 153.
 그러나 이차적 질서의 언어를 통해서 복음에 대한 시대적 명료화 작업이 없이는 기독교의 전도는 요원해질 것이다.
  현대주의적 신학자들의 접근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해석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신앙의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그리스도 이상의 초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앙적 초월성은 역사적 해석의 방법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주의자들의 오류는 신앙적 초월성의 그리스도를 역사적 해석으로 이해하려는 오류를 범하였다. 역사적 기독론과 신앙적 기독론은 같을 수 없다. 특히 현대주의의 산물로서 나타난 역사적 기독론은 기독교의 신앙적 기독론과 다르다. 그렇다고 신앙적 기독론이 역사적 예수를 부정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역사적 예수를 더욱 철저하게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초월적인 신앙적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현대주의의 역사적 접근 방법과 실증주의나 분석철학의 영향은 적지 않게 기독교에 도전이 되었고, 역사적 접근은 신앙적 접근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고, 결국 이들의 시도는 실패하였다.
  후기-현대의 형인 현대주의(modernism) 여기서 현대주의는 modernism을 번역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근대주의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는 후기현대라는 어휘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현대주의라는 번역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근대주의보다는 현대주의가 더 이해에 도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는 이성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가 대표적으로 지배하는 아이디어 세트이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이성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고 현대주의의 대를 이어가는 사상적 흐름이다. 포스트모던과 기독교 사이에서 이 둘의 관계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서로 도움이 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 Paul Lakeland, Postmodernity: Christian Identity in a Fragmented Age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1997), 113. 기독교는 이성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파괴하려하는 점에 대해서 포스트모던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이미 사상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번져가고 있으며, 현대주의는 쇠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은 반현대(contra-modernity)적이거나 극단적 현대(ultra-modernity)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를 초월하는 곳에 현대를 대신해서 나타난 곳이다. 인간적인 내용을 포함하면서 현대를 초월한 새롭고 복합적이고 전체적인 시대이다. Hans Küng, Global Responsibility: In Search of a New World Ethic (New York: The Continuum Publishing Company, 1993), 12-24. 한스 큉은 헤겔의 변증법을 이용해서 현대와 포스트모던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Ibid., 24.
 
  그러나 아직은 포스트모던이 보편화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늘날 현실적인 문화는 현대의 역사 문화적 현상이 주요 삶의 장이 되고 있으며, 현대가 진전된 모습으로서 후기 현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 중에서 포스트모던 현상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이성-인간 중심주의의 현대주의가 낳은 역사 문화적 발전은 다양하다. 현대 이전에 이미 15세기의 자본주의의 등장의 시작에서, 서유럽에서 봉건제도와 군주정치에서 민주주의로 변화되는 운동, 18세기의 산업혁명, 20세기의 통신혁명과 같은 것이 현대를 묘사해 주는 것이다. Os Guinness, The American Hour (New York: Free Press, 1992), 26-27; Douglas Groothuis, Truth Decay: Defending Christianity Against the Challenges of Postmodernism (Downers Grove, Il: InterVarity Press, 2000), 52-52에서 재인용.
 현대의 흐름은 오늘날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국제적 자본주의, 정보혁명, 국제여행, 이상으로서의 민주정부, 종교의 자유와 자유적 사고에 의한 다원주의와 같은 것이 현실적인 삶의 현상이다. 아직 포스트모던은 이러한 현상을 잠식시키지 않은 상태이다. Douglas Groothuis, Truth Decay, 53.
 현대와 포스트모던의 전환기에 있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현상은 후기-현대의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모던(postmodernity)은 현대가 심화되고 확장되면서 형성되었다. 포스트모던의 대표적인 모습은 사회 종교적으로 서로 동의하고 있었던 공동의식이 깨어진 것이다. 자유분방한 다원주의가 사회의 응집력을 희석시키는 현상으로 나났다. Douglas Groothuis, Truth Decay, 53.

  현대주의가 기독교에 도전한 것은 심각하다. 현대주의적 무신론을 극복하지 않고는 서유럽의 복음화와 그 영향을 받은 세계에서 종교의 번성은커녕 존립까지 요원할지도 모른다. 니체, 마르크스, 다아윈, 프로이드 등은 신을 살해하려고 했던 중범들로서 현대의 중심적 사상가들이다. 유럽의 기독교가 시들어가고 침체되는 것도 이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런데 아직도 이들의 이론이 공교육의 현장에서 중심적 주제로 여과 없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심히 염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음주의는 이들에 대한 보다 신랄한 비판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부가적으로 후기현대의 결정적인 오류는 세속화(secularization) 현상에 있다. 초월성을 등한시하고 유물론적, 가시적, 현세적 가치와 세계관이 그 본체이다. 인간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세속주의의 오류가 기독교의 초월적 진리에 대한 이해를 결정적으로 방해하는 현상으로 등장했다. 세속주의가 일어나면서 교회의 언어가 보편성을 잃게되고 신앙을 저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에 대한 후기 현대신학 방법은 전통적 신학 방법을 떠나서 독특하게 접근하는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맥락에서 접근이 전통적인 것이나 신앙의 골수와 대치되는 현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한 차원에서 신학은 일차적 질서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스텐리 그렌츠나 조지 린드백(George Lindbeck)은 이차적 질서의 언어로 이루어지는 것을 주장했다. (린드백은 탈자유주의 신학을 시도하였으며, 결국 전근대주의적(Premodern) 신학으로 갔다는 평도 있다. Torrence W. Tilley, Postmodern Theologies: The Challenge of Religious Diversity (New York: Orbis, 1995), 106-107.)그러나 교리신학 혹은 성서를 중심으로 한 신학은 일차적 질서의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교회와 신학의 연속의 문제가 서양에서 심각하게 제기되고, 한국에서도 비연속성의 문제에 대한 교회의 원성이 높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신학교에서조차 신학과 교회의 비연속성의 문제가 종종 제기되기도 한다. 신학은 일차적 질서 언어로 시도될 때에 교회와 신학교육의 연속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신학적 언어는 성서를 중심으로 한 신앙적 언어이어야 한다. 린드백의 언어 문화적 방법으로 본다면 그 기독교의 문화 언어적 맥락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고, 실증주의나 분석철학 혹은 이성중심의의 도전에 대한 변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내적 텍스트(intratextuality)는 그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면서도 신학은 이차적 질서 언어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신학 방법론이나 종교철학 등 신학 교육에 있어서 없어는 안 되는 분야에서는 일차적 질서 언어는 제한성을 지닌다. 후기현대의 언어와 성서적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는 서술적 신학이 필요하다. 이러한 서술은 일차적 질서의 언어로는 어려운 것이고, 이차적 질서의 언어로 복음에 대한 변증과 명료화 작업을 시도해야 한다. 신복음주의의 흐름은 그렌츠를 비롯해서 여러 신학자들이 이차적 언어의 사용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차적 언어 신학의 문제는 다원성과 애매성(plurality and ambiguity)으로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태로서 일차적 질서언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이차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후기-현대적 변증적 신학은 일차적-질서의 명제(first-order proposition)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 일차적-질서의 명제 구조작업은 계시의 핵심인 성서에서 유래해야 하며, 공동체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공동체나 경험에서 나오는 신학적 명제는 그 내용이 다른 종교의 원리와도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을 때에, 다원주의적인 해석의 위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린드백은 교리의 본질에서 교리는 이차적 질서의 명제로 보았고, 그 기능은 다양한 공동체에서 규율적 기능(regulative function)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신학을 이차적 질서의 명제로 보는 것은 다원주의적인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신학과 성서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그랜츠(Stanley Grenz)는 린트백의 이차적 질서의 명제론을 따르면서 종교적 경험과 문화 공동체의 삶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았다. Stanley Grenz, Revisioning Evangelical Theolog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77-78. 후기-현대의 변증적 신학은 일차적-질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핵심적인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이차적-질서의 언어를 외면할 수 없다. 특히 부가적 설명이나 보완으로서 신학방법론이나 종교철학 혹은 해석학과 같은 분야에서는 불가피하게 이차적-질서의 언어 혹은 다른 가능한 언어도 필요한 경우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시대적 복음이해의 현실이다. 
 
  후기현대의 문화와 사상적 흐름에서 복음주의가 대면에서 신학적 변증의 주제로 다루어야할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인 것만 검토하기로 한다. 현대의 질료적 세계관과 기독교의 초월성과 현대주의의 갈등과 인간론의 오류 문제이다.
  후기현대주의는 초월성을 소홀히 하고 있다. 기독교의 초월성(transcendence) 시공간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신의 속성에 대한 이해는 초월성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중심적이고 질료적 세계관은 초월성에 대한 이해의 통로를 차단하고 있다. 질료 중심의 세계관 혹은 유물론적 가치관의 지배적인 문화적 상황에서 시공간적 초월성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시간적 영원성이나 공간적 무한성에 대한 상상은 가능하지만, 신적인 속성으로서 현실적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초월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초월성에 대한 후기현대와 포스트모던의 이해를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원래 자아는 대화 속에서의 자아, 행동 속에서의 자아, 공동체 속에서의 자아, 초월성 안에서의 자아를 생각할 수 있다. Calvin O. Schrag, The Self After Postmodernity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97) 참조. 초월성 안에서의 자아는 신앙적 차원의 세계를 여는 데에 중요한 차원의 자아이다. 여기서는 초월성의 다양한 이해와 신앙적 세계를 향한 열린 자아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한다. 초월성에 대한 후기현대의 다양함 묘사는 Ibid, 110-148을 참조.
 첫째로 의식 안에서 경험하는 인식론적 초월성이다. 훗셀(Edmond Husserl) 은 인식된 객체는 의미했던 객체를 초월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인식론적 현상에서 수평적인 초월성을 의미한 것이다. Calvin O. Schrag, The Self After Postmodernity, 112-113.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초월적 인식을 의미한다. 둘째로 급진적인 초월성이 있다. 오토(Rudolf Otto)는 거룩의 개념을 성스러움(numinous) 혹은 신비적인 경외(mysterium tremendum)로 표현하면서 종교적 경험의 대상을 전적 타자(totaliter aliter)의 주장을 하였다. Calvin O. Schrag, The Self After Postmodernity, 115.
 종교적 경험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개념이나 범주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면(encounter)을 생각하지 않고 논리적 추론(inference)에 비중을 두면 종교적 경험의 세계는 요원해 진다. 셋째로, 잡는 혹은 포위(encompassing, Das Umgreifende)의 초월성이다.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초월성은 포위의 형식(a mode of encompassing)으로서 탐구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았다. 칸트가 언급했던 알려지지 않은(noumenal) 세계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현세적(intramundane) 혹은 일시적(intratemporal) 자아초월(self-transcendence)의 영역이다. Calvin O. Schrag, The Self After Postmodernity, 117.
 
  인간적인 차원에서 영적 초월은 영성형성에 기초가 되는 면이 있는 것을 전적으로 외면할 수 없다. 오토의 급진적 초월성은 성스러움을 경험하는 현상에 대한 묘사로서 복음주의적인 영적 초월성의 경험과 부분적으로 겹치는 면이 있다고 본다. 훗셀의 영향을 받은 라너(Karl Rahner)의 초월적 신학에서 초월적 의식을 가진 순수자아가 보편적 로고스를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주장한 것에서, 초월적 의식은 신앙과 영성형성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면이 있다. 현상학은 순수경험의 본질에 대한 묘사적 이론이다. 현상적 판단 중지(έποχή, abstention)의 원리를 통해서 진리를 경험하기 위한 순수의식을 가지게 된다. Edmond Husserl, Ideas: General Introduction to Pure Phenomenology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 Inc. 1962), 99-100. 라너는 순수 의식의 세계에서 초월적으로 보편적 로고스를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현대주의적인 사람들은 이성중심적인 차원에서 합리적 논리에 우위성을 두고 있으며, 논리적 연속성의 부재라는 이유로 초월성을 외면하고 있다. 영적 차원은 논리적 연속성을 초월한 영역이다. 기독교 초월성은 시공간적인 것과 개념의 한계성을 넘어선 초월적 세계이다. 초월성은 도피적 수단으로 니체처럼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초월성은 이념적 지배의 영향에서 자아를 자유 하게 한다. 예술과 도덕과 과학과 일반 종교적 현혹 현상에서 자유하고 안전하게 한다. 그래서 영적 차원이 가능한 것이며, 반면에 니체처럼 초월의 세계를 도피의 수단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후기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은 시공간적 초월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주의 시작(big bang) 전에 있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가상적 시간과 공간으로 현대물리학에서는 믿고 있다. 우주의 시작과 우주의 종말에 대한 질문은 있지만, 답은 막연하다.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현정준 역 (서울: 청림출판, 2000), 6.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영장으로서 영적 세계를 통한 초월성을 인식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생각으로 우주를 이해할 있다고 하였고, 그의 생각은 현대 과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영장적 특성을 통해서 초월적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영적 차원은 초월성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현대가 초월성에 대하여 등한시 한 것은 영적 차원을 소홀히 한 것과 상통한다. 영적 차원에서 영적 초월성이 경험되는 것이고, 기독교적 신앙과 세계관이 이루어진다. 시공간적 초월성은 영적 초월성의 경험에서 타당성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영적 초월성의 문제는 질료적 세계관뿐만이 아니라, 인간론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도 비롯된다. 현대인간 이해는 현대주의의 사상적 시조인 데카르트가 이해한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형상적 실체와 객관적 실체 혹은 마음과 몸을 인간의 근본적인 구성요소로 보았다. 한국 사상적 전통에서 동양의 성리학에서도 이와 기의 이원론 혹은 이기 일원론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의 정서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이와 기의 이원론적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서양의 현대주의적 합리주의와 이원론적 인간론이 한국에 들어와서 교육되고 문화적 세계에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서로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다.
 
  후기현대주의의 인간론에는 오류가 있다. 현대의 인간론은 이원론적이지만, 기독교 인간론은 삼분설을 믿고 있다. 몸과 정신 세계를 넘어서 영적인 영역을 믿고 있다. 현대적 교육을 받은 사람은 영적 차원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고 복음적 수용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게 한다. 현대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초월성의 계시적 이해를 곡해하거나 불가지론적인 해석을 하게 한다. 계시의 문제는 다원주의 문제와 연계될 수 있다. 자연계시의 다원성이 특히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적 문화와 사상에 대한 해석에 대한 기독교의 명료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신적인 개념이 동양사상 특히 한국의 정신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온 성리학(性理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과 인간이 따라야 할 우주의 근본적인 원리로서 천리(天理), 우주의 질서와 현상을 디자인하고 인간의 삶에 대하여 원초적인 결정을 하는 천명(天命), 우주 생성의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태극(太極), 이들의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도(道)의 개념이 있다. 이들의 개념은 창조성과 절대성과 규범성을 내포하고 있다. 기독교의 신의 속성과 겹치는 부분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 신이 속성은 영적이고 인격적이며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면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개념들이 기독교와 다른 점이 있지만, 자연계시적인 차원에서 다른 종교의 이론을 접할 수 있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더욱 명료화 할 수 있다. 단순히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보다는, 자연계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사회에서 신앙적 대치와 갈등을 줄이며, 기독교의 진리를 명료화해 갈 수 있다. 자연계시를 거부한 바르트의 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접근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상적 흐름을 고려할 때에, 성화(sanctification)의 영적 체험 현상에 의한 내적 변화는 성리학의 수신론(修身論)과 다소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욕을 버리고 천리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은, 인간의 탐욕과 육성(sarx)이 정결하게 되는 것과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화 현상은 영적인 현상이고, 수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 성인(聖人) 군자(君子)가 되는 것은 수신의 궁극적 목적인 것은 기독교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영적인 체험과 생명을 얻는 현상이라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성리학과 다른 것이다.
 
  19세기 후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의 현상은 합리주의 영향을 받은 과학적 방법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수용하였다. 그러나 과학이란 규칙성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 of regularity)일 뿐이다. 과학적 방법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이고 검증될 수 있는 것만을 다루는 방법이다. 그러면서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적 해석에 중점을 두었고, 성서적 진리와 영적 초월성을 잃어버렸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서 텍스트의 진의를 발견하지 못하고 기독교를 현대 문화에 내어 주고 말았다. 사회정의와 심리치료(psychotherapy) 차원에서 기독교를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다. Neville, Religion in Late Modernity, 153.
 기독교는 현대세상을 세상의 시대적 언어로 해석하고, 기독교 성서적인 차원에서 비평하여야 한다. 그리고 성서적인 차원에서 현대적 교회관을 설득력 있게 명료화를 시도해야 한다.
  현대의 인간론은 인간은 세상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측정할 수 있는 질료처럼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의식이나 감성과 같은 것은 기계적인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다루고 있다. 몸과 마음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이 현대주의의 특징이기도 하다. 데카르트가 몸은 마음과 관계없이 이해되어질 수 있고, 마음은 몸과 상관없이 이해되어 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Neville, Religion in Late Modernity, 146.

  현대 문화는 몸과 마음을 이원론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보면서, 약이나 의료행위는 인간을 질료적인 몸으로 보고 치료를 시도한다. 현대 의료행위 특히 생명과학의 분야에서 인간의 몸을 하나의 기계로 보고 기계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질병을 고장(disorder)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치료를 수선(repair)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될 때에 인간의 몸이 기계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이다.
 반면에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연예(entertainment)를 고안하고 심리요법과 교육 시스템을 개발해서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대한다. 정신과 육체를 나누어서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 Neville, Religion in Late Modernity, 148. 현대 문화는 자신에 대한 진지한 사고 없이 자기도취(narcissism)를 조장하고 있다. 왜 공부를 해야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게 하는 교육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Lawrence Cahoone, The Dilemma of Modernity: Philosophy, Culture, and Anti-Culture (Albany: State Univeristy of New York Press, 1988) 참조.
 인간은 몸과 영과 혼이 하나로 되어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인격적 존재이다. 현대문화의 결정적인 오류는 인간을 몸과 마음으로 나누어서 보는 것에 있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현대문화적 이해에는 하나님의 형상적 요소는 사라지고, 힘의 원리와 기계적 개념으로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인간과 세상을 기계적인 것으로 보고, 현대 문화는 사회와 인간의 정리(arrangement)를 힘의 원리로 보았다. 사실 힘(power)이란 원래 물리학적인 전문용어이다. 그런데 힘은 사회적 계급과 개인을 설명하는 은유로 사용되고 있으며, 사회의 조직과 구조는 힘의 등급에 따라 계층 구조적 조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Neville, Religion in Late Modernity, 146.
  
  현대 문화는 사회적 시스템을 기계적으로 보면서, 인간은 사회적 기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이 결정되게 만들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은 사회적인 권위와 힘을 소중히 여기고 초월적인 권위는 거부하는 현상으로 나타났으며, 결국 전통적인 기독교에 치명적인 것이 되었다. Neville, Religion in Late Modernity, 147.
 현대는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 외에 초월적이고 신비적이며 직관적인 것은 소홀히 여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과학기술 문화도 기독교의 은총의 교리를 비슷한 맥락에서 부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Neville, Religion in Late Modernity, 147.
 
  한국의 현대화는 서양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인권 문제와 개인의 자유 혹은 종교의 자유는 서양에서 온 것이다. 정부의 민주적인 형식과 삶에 대한 자유주의적인 견해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현대화의 변화에는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고 몰트만을 강조하고 있다. Jürgen Moltmann, God for a Secular Society: The Public Relevance of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9), 91. 그러므로 현대와 서양의 가치관의 위기는 곧 개신교의 위기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극치에 달하고 있으며, 어떤 단체에 속하거나 사회적 소속감보다 개인의 자유가 우선이 되었다. 인간의 삶의 전통에 의해서 더 이상 구조되지 않는다. 많은 선택이 주어진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개척해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자신의 결정의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운명론이나 결정론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Jürgen Moltmann, God for a Secular Society, 85. 칼빈주의적 예정론이나 동양의 운명론이 결정적인 도전을 받을 수 있는 흐름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 인간중심적이고 이성중심적인 현대주의적인 차원에서 자유롭게 진단하고 비평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적 자유론에 입각한 급진적 비판정신은 결코 기독교의 진리를 올바르게 인식하직 못하게 한다.
 
   인간중심적인 자유란 자율적인 것,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것, 혹은 자유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가능성을 향한 창조적인 열정(creative passion for the possible)이다. Jürgen Moltmann, God for a Secular Society, 155-159.
 그리이스 철학에서는 자유를 개인이 인간 공동체(polis)에 조화롭게 적응하는 것이고, 인간 공동체는 신적인 우주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다. Jürgen Moltmann, God for a Secular Society, 159.
 마르크스와 엥겔도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의해서 대체되고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에 의해서 대체될 것을 가르쳤다. Jürgen Moltmann, God for a Secular Society, 159.

  플라톤과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을 나누어서 생각했고, 몸은 마음의 객체라고 이해하였다. 전통적인 신학은 영혼 구원을 중요시 여겼고, 몸에 욕구에 따르는 것을 경계하였다. 어거스틴은 원죄는 성적 행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몸은 마음에 비해서 저속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교회는 육체의 탐욕에서 영혼을 멀리하는 영적 훈련을 강조하였다. John B. Cobb, Jr., Postmodernism and Public Policy: Reframing Religion, Culture, Education, Sexuality, Class, Race, Politics, and the Economy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2002), 87.
 
  후기현대는 반대로 육체의 감각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면의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영혼 구원을 강조하고 있는 교회는 육체의 상품성을 극대화해서 경제적 도구로 생각하는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복음을 명료화 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몸이 비물질적 물질(immaterial materiality)인 돈의 가치로 측정되는 현상이 도래하면서, 영혼의 가치는 급격하게 쇠잔하고 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는 몸값으로 변했다. 상품의 신인 돈은 인간의 몸을 삼켜버리고 있으며, 그러고도 죄책감이나 책임 의식이 전혀 없는 것이 비물질적 물질인 돈이다. 마르크스는 녹슬지 않고 좀이 쓸지 못하는 돈은 상품의 하나님이라고 했지만, 사실 돈은 하나님이 아니라 무자비한 괴물이다. 인간의 수고와 땀을 상품화하고 영혼을 매도한 괴물이다. 현대인들은 이 무자비한 괴물을 숭배하면서 스스로 영혼을 내동댕이치고 돈 유토피아의 환상에 젖어서 환각적 미소를 지으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마르크스의 경제적 인간론에서 인간은 생산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마르크스는 돈을 교환가치의 가능성으로 보았지만, 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가치관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버마스는 돈은 교환시스템이고 권력은 조절시스템으로 보았는데, 인간은 교환시스템을 활용하는 존재이다.
 
  몸에 대한 영혼의 우위성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육체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될 수 없다. 여성신학 흑인신학 재활신학(A Theology of Rehabilitation)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몸은 차별적 가치를 메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재활신학이란 필자가 쓰고있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몸이 늙고 병들고 장애를 입어도 밝은 영혼을 가질 수 있다. 한 사람의 종합적이고 중심적인 인격성이 영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우위적 위치에 있는 영혼은 몸에서 완전 초월한 것이 아니다. 팔 다리 등의 지체 장애를 입어도 영혼은 얼마든지 정상일 수 있지만, 뇌에 손상을 입으면, 영혼에 변화가 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육체를 완전히 떠나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John B. Cobb, Jr., Postmodernism and Public Policy, 88. 영혼이 몸을 초월한다는 것은 영혼은 몸이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에도 영혼은 사고와 직관과 신앙이 가능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영혼이 단순하기 때문에 영혼보다는 몸의 원리가 더 지배적이고, 어른은 영혼의 지배가 더욱 크다. 어린이는 배가 고프면 바로 울고 반응을 나타내다가 배고픔이 해결되면, 바로 울음을 멈춘다. 어른은 배고픔이 오면 과거의 다양한 경험을 생각하면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측정하고 배고픔에 대해서 울지 않고 참고 견딘다. Ibid. 영혼이 육체를 넘어서는 모습이다. 어린이의 영혼의 단순성은 신앙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는 데에 어른보다 용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몸을 향한 상품화된 나르시스적 감각문화가 극도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몸은 인간 공동체에서 성령의 표출의 도구이며 영혼을 담은 그릇이다. 몸은 감성적인 면과 마음의 차원과 영적 차원을 함께 담고 있는 시스템의 인프라(intra-structure)이다. 인간이 마땅히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하고 때로는 희생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몸의 편리함과 감각적 즐거움이 우선이 된 상품적 가치의 인간관 세계는 시급히 조절되어야 한다. 초월성 인식을 요원하게 하는 후기현대의 인간론과 질료적 세계관 그리고 유물론적 가치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성서적 진리에 대한 변증이 요구된다.

III. 후기 현대의 복음주의적 변증학

  성서적 진리의 초월성에 대한 후기현대의 복음주의적 변증의 시도는 유비적 방법, 합리적 변증, 과학적 해석, 포스트모던 방법이 대두되고 있다. 인간의 몸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넘어서 초월성을 이해하고 묘사하기 위해서는 유비적(analogical) 신학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것은 트레시(David Tracy)의 유비적 방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David Tracy, The Analogical Imagination: Christian Theology and the Culture of Pluralism (Crossroad: New York, 1981).
 신복음주의 입장에 서 있는 에릭슨(Millard Erickson)의 입장에서 지지기반을 찾을 수 있다. 에릭슨은 신복음주의적 입장에서 변증적 신학을 시도하고 있다. 신학은 본질적으로 은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언급했다. 신에 대한 계시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결국 계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계시는 성서의 저자의 언어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Millard J. Erickson, New Evangelical Theology (Westwood, NJ: Revell, 1968), 52. 자유주의 라인에서 은유적 신학은 여성신학자인 셀리 멕페이그가 시도하였다. Sallie McFague, Metaphorical Theology: Models of God in Religious Languag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2. 신에 대한 아버지의 언어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을 여성으로 해석하려는 급진적인 입장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신은 자신과 유사한 요소들을 선택하여서 나타내 보였으며, 유사한 요소들은 신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신을 나타내는 타당한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Millard J. Erickson, New Evangelical Theology, 52.
 성서에 계시된 진리는 그 때의 문화적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해석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고, 계시에 대한 이해는 유비적(analogical)인 차원에서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서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니고, 그 가치는 도구적인 것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성서가 함축하고 있는 하나님과 관계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Millard J. Erickson, New Evangelical Theology, 82.
 
  그리고 에릭슨은 틸리히의 상관관계 신학방법을 수용하면서, 복음의 영속성과 문화적 가변성의 상관 관계를 방법론적으로 시도하였다. Millard J. Erickson, Christian Theology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s, 1983), vol. 1, 73;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1951), vol. 1, 1-8.
 교의학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열린 언어적 신학을 적지 않게 시도하고 있는 면이 있다. 현대의 정교한 이론을 가지고 있는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적이 입장을 취하는 것도 신복음주의의 중요한 시도이기도 하다. 특히 에릭슨이 신의 영속성에 대한 변증을 시도하면서 사실적 객체(actual occasion)에서 존재하는 작은 신에 대한 과정신학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Millard J. Erickson, Christian Theology, vol. 1, 278-281.
 
  초월성의 가능성을 합리적인 차원에서 변증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 소위 합리적 복음주의를 제창한 사람으로서 신복음주의의 대표자로 알려진 칼 헨리(Carl Henry)는 초월적이고 영적인 세계의 경험에 대한 합리주의적 변증을 시도하였다. 합리적인 변증보다는 신보수의(neoconservative) 신학자들은 기독교인 신앙과 삶의 가시적인 형식을 통해서 성육신과 성례전의 능력, 나래티브의 정체성, 신앙 공동체의 힘, 전통의 진가를 알아내지 않으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현존은 없다고 하였다. David Tracy, On Naming the Present: God, Hermeneutics, and Church (New York: Orbis Books, 1994), 19.
 초월적 신에 대한 현대 지성적 이해의 가능성은 신학자들에 의해서 시도되어야 한다. 초경험론적 영역(transempirical realm)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합리적 능력에 근거해서 신의 초월적 실재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Carl H. Henry, Frontiers in Modern Theology: A Critique of Current Theological Trends (Chicago: Moody, 1964), 154-155.
 이러한 맥락에서 헨리는 현대 변증적 신학을 시도하였다. 현대의 특징인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배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성을 활용한 변증의 시도이다. 키에르케골은 종교적 역설(religious paradox)은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반대의 표현을 사용해서 합리적인 표현을 넘어서는 시도이기 때문이고, 이것은 이성의 법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Louis Dupre, Symbols of the Sacred (Grand Rapids, Michigan: Wm. Eerdman Publishing Company, 2000), 59-60.
 특히 그는 계시론을 신론에 전제적인 것으로 보면서, 신에 대한 어떤 이해도 결국 성서에서 기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계시는 신의 정보에 대한 의사소통이라면, 객관성과 명제적인 면을 함축하고 있다고 헨리는 보았다. 신의 계시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이고, 지성적이며 의미 있는 말로서 개념적 언어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았다. Carl H. Henry, God, Revelation, and Authority (Waco: Word, 1976-1983), vol. 3, 248-487.
 계시는 객관적인 것이고, 개념적이고, 지성적이며, 부합성이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Carl H. Henry, The Protestant Dilemma (Grand Rapids: Eerdmans, 1949), 99.
 기독교는 이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성적으로 기인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도 합리적 존재로 언급하였다. 신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신의 실재(the reality of God) 에 의한 해석이라기보다는 현대의 로고스(the logos of modernity)에 의해서 이해되어진 것이다. David Tracy, On Naming the Present: God, Hermeneutics, and Church, 41. 이성중심주의적 변증에서 현대의 로고스에 의한 변증의 범주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학의 임무는 성서적 명제에 대해서 해설하고 조합하는 것으로 주장했다. “신의 계시는 모든 진리의 근원이며, 기독교의 진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성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도구이며; 성서는 그 원리를 증명하는 것이며; 논리적 연속성은 진리와 부정적 테스트이며, 부합성은 종속적 테스트이다. 기독교 신학의 임무는 성서적 계시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정리해서 나타내는 것이다” Carl H. Henry, God, Revelation, and Authority, vol. 1, 215. 헨리는 성서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합리적 복음주의 신학을 시도하였다.
라고 하였다. 헨리가 주장한 합리적 복음주의는 이성중심적 현대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선교를 하는 데에 용이한 통로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언어는 불신자들이 알지 못하는 별개의 실재를 지칭하는 비밀의 언어 혹은 신비의 언어(cryptic speech)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성서적 언어는 불신자들이 알지 못하는 실재를 언급하는 비밀의 언어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초월적 차원의 실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Louis Dupre, Symbols of the Sacred, 61.
 
  과학은 초월성을 부정하는 차원보다는 불가지론적인 입장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헨리가 현대주의의 이성적 도전에 대한 변증을 시도한 복음주의 신학이라면, 현대 과학적 문화에 대한 변증을 시도한 사람은 버나드 렘(Bernard Ramm)이다. 특히 성서와 과학의 관계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복음에 대한 변증적 시도를 하였다. 렘은 근본주의적 신학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학과 성서의 관계성을 세우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과학이란 규칙성에 대한 해석이다. 물론 규칙성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찾아보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과학은 신학의 적으로 존재해 왔고, 서로 긴장관계에서 존재해 왔다. 과학은 창조의 원리를 해석하는 한 분야이지, 신앙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될 수가 없다.
 창조와 구원의 주제자는 하나님으로서, 과학과 성서는 서로 동의하는 부분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유신론적 진화론과 고대 지구에 대한 과학적 해석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사실 렘은 현대 과학의 이론에 지나치게 수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성경 자체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거나 성령에 권위를 믿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핵심적 계시로 믿는다. Bernard L. Ramm, The Pattern of Religious Authority (Grand Rapids: Eerdmans, 1959), 36.
 신약성서에 대한 권위는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한 것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렘이 성서의 영감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시를 보조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Bernard L. Ramm, Special Revelation and the Word of God (Grand Rapids: Eerdmans, 1961), 123. 렘의 방법론은 증거주의(evidentialism)를 넘어서고 있다. 역사적 증거는 진리에 대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지, 진리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진리에 대한 확신은 영적 충만에 의한 확신이라고 주장했다.

  렘은 성서의 언어로 기록된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종교적 확신을 갖는 것은 근본주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Bernard L. Ramm, Special Revelation and the Word of God, 142.
 렘이 근본주의적 입장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성서 언어의 역동적 가능성을 외면한 것은 논의의 대상이 된다고 본다. 렘의 완충적 복음주의는 후기 현대의 과학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수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면을 가지고 있지만, 교의학적 접근에서는 일차-질서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복음을 이해하는 데에 다원성과 애매성의 혼선을 함축하고 있는 면이 있다.
  성서의 역사성에 대한 확신 없이 신앙적 확신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서로 부합성(coherence)을 이루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렘은 개혁신학의 전통에 서려고 하면서, 바르트(Karl Barth)의 신학적 방법론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변증법적 신학과 계시론에 있어서 중점적으로 바르트의 영향을 받았다. 렘은 바르트의 신학을 개혁신학의 대한 새롭게 재언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르트는 구원론에 있어서 보편적 구원을 주장하면서 복음주의 노선과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과학과 성서는 공통된 맥락에서 본다면 둘 다 옳은 주장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과학적 주장은 지속적으로 가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성서적 진리는 항구적인 것이다. 과학적 세계관과 이론은 시대가 변하면서 수정되고 보완되었으며, 때로는 이전의 이론에 대해서 전적으로 다른 주장과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과학적 진리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 해석을 진리로 수용하려고 하는 것은 제한적이고 맥락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서로 만날 수 있는 점이 있을 수 있지만, 이들의 주장이 같이 옳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 영성과 인간 이성과 과학적 방법을 같은 선상에서 보는 위험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에릭슨도 과학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자연과학과 함께 사회과학의 연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과 사회학의 발전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를 다루는 신학이 되었다. 자연과학에 있어서는 버나드 렘과 같이 진행적 창조론을 주장했다. Millard J. Erickson, Christian Theology, vol. 1, 380-382.
 
  핸리의 신복음주의 신학은 이성중심주의의 도전에 대한 합리주의적 변증으로서 진전된 복음주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렘의 신복음주의 신학은 현대의 과학적 도전에 대한 신축성 있는 변증을 시도하였다. 문화적 맥락에서 복음을 이해하는 에릭슨의 유비적 접근도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신학은 고정된 토대주의적 근본주의 신학을 넘어선다는 차원에서는 환영할 만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복음을 지나치게 합리화하고 과학적으로 정당화하고 문화적으로 타당성을 변증하는 일에 지나치게 흐르면, 복음의 영성이 쇠퇴되고 심연의 영적 차원을 놓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러한 시도는 시대적 맥락에 성서적 진리를 부분적으로 내어주는 인상을 보면서, 교회 교의학이나 일차-질서 언어의 성서 말씀의 신학의 약화 현상으로 인해서 염려되는 부분과 새로운 상대주의 해석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점을 함축하고 있다.

   IV. 포스트모던 변증학 방법론

  후기 현대의 한 흐름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과 초월성에 대한 변증을 시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은 해체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과도한 해체주의는 해체될 것이다. 데리다는 이성중심주의를 이성적으로 분석 비평하고 해체를 시도하였다. 데리다는 이성의 한계를 인식했지만, 이성을 도구로 해서 이성을 이해하려고 했던 맥락에서 볼 때에, 그는 이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푸코는 저자의 죽음을 선포하는 책을 썼다. 과연 자신이 쓴 책이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이 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썼는지 모른다. 로티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했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한 명제도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해체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니체가 모든 명제는 다 거짓말이라고 하였고,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한 말도 거짓말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이렇게 간단하게 자기 모순이라고만 몰아 부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주장은 깊이 있고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사상의 주류를 이루어가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해체주의는 해체될 것이다. 이성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이성과 언어를 떠나서 인간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니체는 진리 다른 어떤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세계에서 고안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언어적 세상에서 은유와 의인적 방법으로 진리가 만들어져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포스트모던 해체주의자들은 니체의 해체적 주장에 관심을 가지면서, 언어의 한계와 구조주의적 고정된 진리를 부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어는 인간의 주관성(human subjectivity)을 담고 있다. 성서적 텍스트는 하나님의 주관성이 담겨 있는 것이고, 인간이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하나님과 주관적 진리의 경험을 하는 것이다. 성서적 텍스트는 하나님의 주관성(divine subjectivity)을 담고 있는 것이고, 인간이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되어 있다. 해체주의에 대한 복음주의의 변증은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주관성을 담고 있는 것과 같이, 성서적 텍스트는 하나님의 주관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 복음에 대한 명료화 작업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서는 포스트모던 변증학의 하나로서 “해체주의를 넘어서는 복음”(post-deconstructive Gospel)의 해석 방법을 제안한다. 이 방법의 핵심은 언어의 횡포와 구조적 의미를 해체하는 해체주의를 향해서 언어가 인간의 주관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고, 아울러 성서적 텍스트는 하나님의 주관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복음주의 신학은 포스트모던 맥락에서 복음이 효과적으로 역사 할 수 있도록 명료화하는 작업이다.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은 스텐리 그렌츠(Stanley Grenz)가 제안한 네 가지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의 명료화 과정을 언급한 것에 추가해서 해체주의 이후 복음의 명료화 작업을 제안한 것이다.
  그렌츠가 제안한 네 가지 방법의 내용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Stanley J. Grenz, A Primer on Postmodernism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 Publishing Co., 1996), 167.
 첫째로 개인적 복음을 넘어설 것(post-individualistic Gospel))을 강조했다. 현대주의 핵심적인 특성 중에 하나가 개인의 가치를 올려놓았던 것이고, 개인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인간의 삶을 신률적인 차원에서 자율적인 차원으로 변화시켰다. 이것은 후기 현대의 대표적인 현상으로서 개인적인 인간중심주의는 세속화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세속화(secularization)라는 말은 인간 중심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에서 최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친 개인주의는 인간 중심적인 인간의 자만과 함께 세속화의 결과를 가져왔다.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은 세속화의 원인이 되었던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인 복음의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렌츠가 염려했던 것처럼, 인간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은 신앙의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고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상적인 모형은 “공동체 안에 있는 개인”(individual-within-community)라는 것으로서 현대 공동체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의 정체성은 개인적인 나래티브를 이야기하면서 발전되는 것이며, 그 이야기는 개인이 참여하고 있는 공동체의 이야기 안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Robert Bellah et al, Habits of the Heart: Individualism and Commitment in American Life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5), 81; Alasdair MacIntyre, After Virtue, 2nd ed. (Notre Dame, Ind.: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4), 221, Stanley J. Grenz, A Primer on Postmodernism, 168에서 인용.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은 다른 사람들을 초청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한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에 참여하도록 하여야 한다. Stanley J. Grenz, A Primer on Postmodernism, 167-169.
 
  둘째로 합리주의적 복음의 해석을 넘어설 것(post-rationalistic Gospel)에 대한 강조이다. 현대주의의 강조점은 이성이다. 논리적인 전개와 과학적 방법은 전근대의 사고를 뒤집는 경이적인 변화이었다. 기독교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요구하는 이성적인 도전은 아픈 도전이었지만, 기독교는 여전히 건승 하였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합리적인 지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형성되었다. 즉 기독교의 진리가 비이성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복음주의에서 변증적으로 공헌을 하였다. 그렇다고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이 반지성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복음은 단지 이성적 이해의 가능성으로 해석된 것을 이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성적인 것을 넘어서 복음의 매우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인간의 향해서 심오한 변화를 준다.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은 복음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를 넘어서 그것 이상의 역동적인 신앙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은 범주적(categorial)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명제적(propositional)으로 표현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명제적 표현의 중요성은 텍스트 다음으로 이차적 언어(second-order language)로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명제는 회심의 경험을 도와주고 새로운 신자로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한다. Stanley J. Grenz, A Primer on Postmodernism, 170-171.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신학적 작업은 정확하고 올은 명제만을 찾아서 확인하는 작업을 넘어서, 하나님과의 심오한 대면에서 발생하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 Stanley J. Grenz, A Primer on Postmodernism, 171.

  셋째로,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은 이원론적 차원을 넘어서는 것(post-dualistic Gospel)이다. 몸과 마음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이 현대 사상의 핵심적인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계몽주의와 현대주의가 이루어졌다. 인간을 생각하는 실체(thinking substance)와 육체적 실체(physical substance)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마음과 육체를 나누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합쳐진 전인격적인 이해가 요구된다. 감성적인 요소와 육체적인 감각과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요소들이 한 인격체에서 작용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은 단지 마음과 몸을 하나로 묶는 단계를 넘어서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인격체를 다루는 차원에서 명료화되어야 한다. 성서적 진리에 입각한 포스트모던 인간론은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포함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Stanley J. Grenz, A Primer on Postmodernism, 172.

   넷째로,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은 지식중심주의를 넘어서는 것(post-noeticentric Gospel)이다. 신학은 지식의 축적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지식은 좋은 것이고 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의 축적을 위한 신학은 의미가 없는 것이고, 신앙이 살아서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시도해야 한다. 현대주의의 오류 중에 하나가 지나치게 지식중심의 학문과 교육이 있었던 것이다. 지식은 좋은 것이지만, 지식만을 위한 학문은 열매 없는 지식이 되고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것이 되고 만다. 신학은 신앙을 해석하고 실제적으로 인간의 내적 개선과 외적 관계의 발전이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렌츠는 복음주의적 재구조신학을 제안하고 있다. 원래 재구조신학은 골돈 카프만(Gordon Kaufman)이 시대적 언어의 간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제안한 것이다. 카프만의 신학 방법은 사유적 방법이고 다차원적 신학을 시도한다. 김성원,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신학방법의 유형에 관한 개론적 고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71-72, n.8; 143-145.
 그러나 그렌츠가 주장하는 것은 복음주의적인 차원에서 재구조작업을 제안하였다. 복음주의적인 차원에서 재구조작업은 해체주의 이후의 복음의 명료화 작업으로서 하나님의 주관성을 담은 성서적 텍스트를 시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니다.
  복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명료화 작업은 신앙이 인생의 모든 차원에 연관성이 있도록 하고 영향을 미치도록 강조한다. 초월성 인식에 대한 시대적 보편화 작업이기도 하다. 복음은 단지 우리의 지성적 헌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전체적인 삶의 갱신에 관여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복음은 성령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우리가 옳은 행동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내적 갱신을 한다. Stanley J. Grenz, A Primer on Postmodernism, 173.
 신앙은 옳은 행동을 유출하고, 행동은 내면적 신앙을 반영한다. 포스트모던 복음주의 신학은 단순히 지식의 축적을 위한 신학적 작업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성품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생동적인 신학이 되도록 시도한다. 경직된 언어적 한계성을 넘어서 하나님의 영적 주관성을 담은 성서적 텍스트의 해석이 요구된다. 그리고 아직 신보수주의자들이 다루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영성과 초월성을 이해하는 영적 미학에 관한 것이다. 

V. 후기현대의 신학적 미학 방법론

   미학은 성서적 방법이다. 성서에 있는 사건의 묘사와 표현은 미학적인 것이 많다. 이미지, 시, 찬미, 아름다운 나래티브, 등 심미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미학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한 영향을 받아서 신앙적 자세가 심미적 기준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예술적 표현에 의해서 예배 형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앙적 공동체는 찬송하고, 춤을 추고, 시적인 표현을 하고 드라마적 연기를 하면서 기도를 한다. Louis Dupre, Symbols of the Sacred, 70. 그리고 미학적 이미지는 종교적 경험을 표현하는데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Ibid., 73.
 영적인 내용을 담은 미학적 접근은 현대주의와 포스트모던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본다. 현대주의의 이성적 도전에 대한 대안으로서 조화와 이미지 나래티브와 찬미 등은 논리와 객관성과 규칙성(regularity)의 원리를 다루는 과학적 접근 도전에 대한 놀라운 대안이다. 사실 이러한 도전은 현대 혹은 후기현대의 도전만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를 두고 지속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고수되고 기독교가 성장한 것은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미학의 가능성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후기 현대와 포스트모던의 기로에서 다시 한번 심도 있는 신앙적 미학의 접근이 요구된다.
  후기-현대 신학은 미학적 이해를 도구로 사용해서 복음을 해석하고 보편 명료화해야 한다. 미학(aesthetics)이란 진리의 범주보다 큰 미의 세계에 대한 탐구이다. 미학이란 예술과 심미적 경험에 대한 일반적인 탐구를 의미한다. 예술이란 음악, 드라마, 미술, 시, 등 여러 가지 분야를 포함한다. 성서는 찬양과 시와 같은 미학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미학은 17세기의 바움가르텐(A. Baumgarten, 1714-62)에 의해서 철학의 한 분야로 다루어졌다. 현대 미학은 심미론, 예술 철학, 비평적 예술철학 등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신학은 철학의 도움을 받은 것과 같이 미학적 접근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미학이 방법론으로 제기되는 이유는 우선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성서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이성적 논리보다는 미학적 묘사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논리적 언어의 세계를 넘어서 미학적 묘사의 진수를 맞보는 작업이다. 신앙에 대한 미학적 진수는 이성중심적 혹은 논리적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깊은 이해의 영역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보기에 좋았다고 하였다.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있기 전에 세상이 좋았다는 것은 심미적으로 좋았다(aesthetically good)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답고 순수하고 가능성이 넘치는 현상이다. Douglas Groothuis, Truth Decay: Defending Christian Against the Challenges of Postmodernism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0), 249.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함과 그랜드캐년의 장엄함과 금강산의 기묘한 아름다움은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 한계성이 있다. 언어의 벽을 넘는 창조의 아름다움의 세계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아름답게 창조된 것을 통해서 영광을 받는 사실은 믿을 있다. 객관적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일반계시에 해당되는 것이다(시19:1-16; 행 14:17; 롬 1-2). 성서에서 언급되는 성전 건축은 그 당시의 최고의 아름다운 양식이었다. 값진 돌이 성전에 놓여졌다(역하 3:6). 이 돌들은 어떤 기능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Douglas Groothuis, Truth Decay, 251-252.
 언어 이면에 담겨있는 영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이해하는 신학적 미학의 작업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던 해체주의자들은 객관적인 미와 심미적 가치의 영속성을 무시한다. 그러나 성서적 이해는 문화에 내재해있는 예술적 선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으며, 변화되고 순수해진 문화가 도래하는 세상이 존재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해체주의자들이 예술은 단지 문화적이고 정치적이거나 언어적이고 심리학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을 뒤집어 업는 현상이 된다. Douglas Groothuis, Truth Decay, 252.
 하나님의 선물은 자연적 아름다움과 인간 영혼의 구원을 뜻하고, 전 우주적 조화와 구원을 의미한다.
  여호와를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예배하라고 하였다(시 29:2). 히브리 전통에서 미적 이해는 독특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는 존재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적이거나 사건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다. “이스라엘에서 미는 어떤 것이 존재한 것(that existed)이라기보다는 일어난 것(that happened)이었다.” Gerhard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Vol. 1, trans. D.M.G. Stalker (New York: Harper and Row, 1962), 368.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의 정점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 예술적 표현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자연적인 현상이다. 창조의 자연적 현상 속에서 미학적 이해와 묘사는 중요한 작업이다. 신학적 미학(theological aesthetics)은 현대의 이성중심주의 도전과 과학적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가 될 수 있다. 신학적 미학은 사실 역사적으로 오래된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신학은 미학을 등한시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폰 발타사르(von Balthasar)는 신학자들이 미학적 범주를 도입해서 하나님의 본성과 우주론과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서 묘사하는 일을 하는데 방법론적 타당성을 주장하였다. 그는 신학적 언어가 미학적 진실성과 진리의 명제를 나타내 보일 수 있으며, 명료함(claritas)을 제공할 수 있다. Hans Urs von Balthasar, 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1, (San Francisco: Ignatius, 1982) 참조.
 미학적 방법을 통한 복음의 이해와 해석 작업은 미학적 복음주의로 발전될 수 있다. 언어적 한계성 때문에 현대사상가들 중에서 분석철학자들과 실증주의자들의 도전을 받았다. 이들에 따르면 기독교의 명제는 의미의 실증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상징론, 은유론, 언어개임, 등의 방법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더 가능한 것은 미학적 묘사와 해석의 가능성이다. 상징은 여러 면에서 종교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성스러운 것을 직접 묘사하는 것은 언어이다. 특히 상징이 묘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표현은 언어의 기능이다. Louis Dupre, Symbols of the Sacred, 46. 그리고 Joseph Bochenski, The Logic of Religion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65), 94. 그러한 맥락에서 말씀 혹은 성서 언어 연구는 단순언어적 이해를 넘어서 영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면을 지니고 있다.
 성서 말씀은 언어적 해석을 넘어서는 심오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는 후기 현대의 시대 문화적 흐름을 고려해서 신학적 미학의 가능성과 효율성을 후기 현대의 복음주의 신학에 있어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적지 않은 논란이 제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학적 미학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찾는 신학이 아니다. 보편적 미의 추구는 탈신학적 범주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탈신학적 범주의 미학적 내용은 다원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폰 발타사르가 주장한 것처럼, 신학적 미학은 계시적 미학으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미학이 복음주의적 신학방법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계시와 성서 안에서 신학적 미학이 시도되어야 한다. von Balthasar, The Glory of the Lord, 117.
 
  신학적 미학의 가능성은 일차적으로 믿음과 계시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거룩과 신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시 속에 담겨 있는 진리와 선은 영적 심연의 세계에서 경험되고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von Balthasar, The Glory of the Lord, 117-118.
 성서적 시와 찬미는 미학적 형식을 가지고 진리와 선을 나타내고 있다. 복음서의 나래티브와 명제적 형식의 말씀도 미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언어의 형식과 질서는 미학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시의 세계에서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형식은 합리적 논리와 지성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의 세계에서 직관과 감성 등의 다양한 요소에 의한 경험이 있다.
  거룩을 경험함에 있어서 경외함과 놀라움을 경험하는 것은 합리적 지성 인식의 수단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골돈 카프만은 지성적 신비주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신비적 경험은 지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주장이다. 신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지성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Gordon Kaufman, God-Mystery-Diversity: Christian Theology in a Pluralistic World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1996), 97.
 초월적 영적 경험의 세계는 미학적 도움으로 가능하다. 시의 깊은 맛은 논리적 언어의 틀을 넘어서 인식하는 미학적 인식의 원리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미학은 신학과의 밀접한 관계성을 고려할 수 있다. 미학적 개념과 신학적 개념은 서로 변화를 줄 수 있다. 미학적 인식은 사고의 세계를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신학적 개념은 더욱 진전된 미학적 인식을 증진하는 역할을 한다.
  미학은 상징이나 이미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기독교 신학에서 그러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이미지(Imago Dei)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건을 나타낼 때에 십자가를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상징과 이미지는 의사소통에 있어서 언어적 한계성을 넘어서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언어의 제한성을 초월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성중심주의와 과학적 세계관의 도전에 대한 변증적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상징과 이미지는 해석학적인 차원에서 다원적 이해의 모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견제해야 하는 면이 있다. 신학적 미학의 제한성도 신학적 주제에 대한 미학의 다원적 해석에 있는 것이다.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배타적인 계시적 미학을 발타사르가 주장한 것이다.
  예배는 상징과 이미지와 말씀이 미학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드려진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구속의 핵심적 상징으로써 십자가를 예배의 중심에 두고 있다. 성시를 낭독하고, 말씀과 음악적 소리가 미학적으로 조화를 이룬 찬양을 한다. 수사학적으로 정리된 말씀을 나누고, 아름다운 사랑의 친교를 나눈다. 미학적 요소가 진리 자체이거나 예배의 핵심적 내용은 아니지만, 영적 체험을 위한 예배의 중요한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다. 미학적 요소는 영적 초월성 경험에 도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성중심주의가 예배를 비판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미학적으로 묘사되는 영성형성의 현상은 뒤집을 수 없다. 이러한 면에서 신학적 미학은 현대주의 도전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미학적 변증은 후기현대의 변증신학의 방법론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요즈음 유행하는 탈구조주의적 포스트모던 음악이나 변칙적 삶의 스타일을 옹호하는 입장은 결코 아니다. 계시적 범주 안에서 신학적 미학은 복음적 진리를 명료화 할 수고 영성형성에 도구적으로 이바지 할 수 있다. 신학적 미학은 하나님의 주관성을 접하는데 용이하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대면은 단지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만난다. 그러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역설적인 영적 체험을 하게 되고, 아름다운 경험으로 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공포와 두려움의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의와 사랑의 존재를 원하는 것이고, 불의와 증오의 존재에서 의와 사랑의 존재로 변화되는 것은 아름다운 현상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다락방에서 예배를 드리고 지하동굴 카타쿰에서 교회가 이루어 졌다. 다락방과 카타쿰을 예술적인 미적 조건이 있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모리아산, 호렙산, 시내산, 요단강, 감람산, 다락방과 로마 카타쿰 등은 하나님과 인간이 아름답게 만났던 성스러운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적인 아름다움의 현상이 나타나는 곳은 신학적 미학의 해석이 가능하다.
  내적인 신앙적 현상에서도 미학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경건과 예배를 통해서 성스러움을 경험할 때에 경외함과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어우러져서 심연의 영적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미적인 영적 세계에서 진리를 인식하고 신앙이 형성된다. 후기현대의 합리적 원리가 진리 인식의 도구로 사용되고, 다른 도구는 배타적이거나 무시하는 성향에서, 미학적 이해와 변증은 후기현대의 복음에 대한 명료화 작업과 변증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VII. 결론

  복음에 대한 후기현대의 횡포는 역사상 매우 훼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 의한 후기현대의 세속주의는 유럽의 기독교를 넘어뜨렸다. 한국의 이성중심적 교육은 세속주의를 부축이고 있고, 젊은 세대들은 신앙의 세계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변증으로서 합리적 복음주의, 과학적 복음주의, 포스트모던 복음주의가 나타나고 있고,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신학적 주제로서는 초월성의 문제와 인간론의 문제가 후기 현대에 도전 받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본다. 후기현대의 도전에 대한 복합적 대안으로서 미학적 복음주의를 제시하려고 하였다. 초월성과 세속성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초월성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해석학적 변증 방법으로서 신학적 미학의 가능성을 제안하였다. 신학적 미학은 초월성에 대한 미학적 묘사를 통해서 이해와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며, 인간의 영적인 면도 미학적 접근을 통해서 인식의 타당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역사는 언어적 이해, 신비적 경험,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서 나타나지만, 미학적 도구를 통해서 많이 나타내 보이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미학적 명료화 작업이 가능하고 시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자료3>
현대신학 - 서철원 교수 -

제1강 (2002년 3월 12일)

현대신학은 통상 20세기라는 시간적 공간에서 일어난 토론을 말한다. 이것은 정통신학이 아니라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학이 주를 이루는 신학이다.
이 강의는 두가지 목적을 두고 있다. 첫째, 현대신학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여러분들이 새로운 신학을 만날 때 그것을 식별해 내도록 하는데 있다. 현대신학은 새것이라서 재미는 있을 줄 몰라도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교회를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신학이다. 독일을 가보라. 이것이 살아있는 교회인가 죽어있는 교회인가를 판별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현대신학의 문제점, 특히 배우는 학생들의 문제점이 무엇이냐면, 일찍부터 신앙을 가지고 그렇게 자라면 그 표준으로 인해서 이것이 잘못된 것이구나 라고 알게 되지만, 늦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것이 진짜인줄 알고 받아들이다 보니, 처음 믿을 때의 신앙은 다 없어지고, 현대신학이 다 옳은 것인줄 알게 된다는 말이다.

현대신학은 칼 바르트에게서 시작된다. 칼 바르트는 1919년 로마서 주석을 썼다. 스위스산골의 작은 교회에서 박사학위도 없는 그런 목사가 로마서 주석을 썼던 것이다. 1922년 다시 개정하였는데, 개정된 내용은 이전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이것이 큰 반향을 일으켜서 유명하게 되었다. 1924년 궤팅겐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최고의 신학자가 되었다. 칼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신학을 하게 되었다. 경험이나 감정에 근거한 슐라이어막허의 신학을 반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르트가 아무리 슐라이어막허에 반대하여 매개신학에서 초월신학을 하고, 말씀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그의 아버지가 바로 슐라이어막허이다. 아버지를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테두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바르트를 하기 전에 슐라이어막허를 이야기해야 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슐라이어막허는 독일 개혁파 신학자였다. 그는 루터파 신학과 개혁파신학을 합칠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책을 적을 때나 토론을 할 때, 먼저 루터파 신학을 언급하고 그 다음 개혁파 신학을 말한 다음 토론을 하였 던 것이다. 그는 경건주의와 모라비안의 영향을 아주 깊이 받았다. 그래서 그는 종교를 하나의 감정이고 그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삼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그는 철학적 묵상을 많이 해서 낭만주의에 속하게 된다. 그가 친하게 지냈던 괴테가 낭만주의였던 것처럼, 낭만주의는 이성에 반대하여 감정을 강조한 철학적 사상이었다. 그는 플라톤을 독일어로 번역을 했다. 플라톤의 원전 - [아티카 반론]에 적힌 최고의 코이네 헬라어를 번역했던 최고의 헬라어 학자였다. 그래서 성경신학자가 될 줄 알았는데 조직신학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자 뿐 아니라 칸트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를 했다. 그는 결혼을 할 때, 유태인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신학을 반대하였다. 그런데도 그 말을 듣지 않아서 근세신학의 시조가 되고, 19세기의 교부가 되었다. 교부라고 하면 5세기에서 7세기동안 말씀을 정리하고 재구성했던 역할을 했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의 신학으로 그는 19세기의 교부가 되었던 것이다.
루터파 신앙고백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따라서, 맨 처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신학의 시작이고, 그것이 모든 교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야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종교 감정, 절대의존의 감정... 종교라는 것은 지식이나 행동의 영역이 아니고 감정이라고 했다. 슐라이어막허는 종교의 영역을 감정의 영역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그가 처음 신학을 시작할 때 정통적인 방법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다. 바로 칸트의 철학, 헤겔의 철학이다. 칸트의 영향으로 모든 것에서 철학적으로 하지 않는 영역이 없었다.

슐라이어막허가 베를린 대학 신학부에 있을 때, 그가 학위라고 하는 것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을 신앙으로 재구성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교수들이 이야기했다. “슐라이어막허가 김나지움을 나오고 대학도 나왔을 텐데... 저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슐라이어막허도 신학을 함에 있어서 학(學)을 하고 싶었다. 신학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의 종교경험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바로 신학이라고 했다. 이성으로 출발한다고 하는 것은 모두 자기의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중세 철학에서는 모든 것에 대한 인식과 지식은 이성에서 얻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지식을 얻는 방식이 인간 바깥, 즉 외부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근세에서는 인간 내부에 있다고 했다.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에서 논리적인 법칙을 따른 추론을 통해 나온다고 하는 것이 바로 합리론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이성의 논리적인 추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얻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경험론이었다.
지식을 얻는 방법이 인간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근세철학을 내재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이냐 악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 표준이 된다. 확실성의 문제도 전부다 인간의 이성의 문제이다. 인간이 아름다운지 아름답지 않은지에 대한 것도, 아름다움의 표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그렇다.

제일 아름다운 꽃이 무엇인가? 장미, 수선화, 백합....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서 아름다움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주관적인 판단 기준에 의해서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판단의 기준도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표준이 인간 내부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영국 사람들은 이것이 학적인 지식이 못된다고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성에 대해서 정의하기를,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그런데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사물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직접적인 감각기관을 통해서 얻지 않고서 얻는 것은 없다고 했다. 즉 인간의 이성에 오성의 법칙을 집어넣게 되면, 인간의 이성이 감각기관을 빼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던 것이다. 거기서 바로 출발해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영역은 없다는 것이다. 지식을 세우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전통적인 방법처럼,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존재에서 시작한다면, 그것은 학(學)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학함에 있어서 그 출발점이 인간의 종교감정에 두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내재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에서 신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주어진 것에서 출발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방법론에서 모든 신학을 완전히 재구성한다. 용어는 “하나님” “예수” “성령” 등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위대한 사람은 학파를 만들지 않고, 시대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슐라이어막허는 개혁파 신학자였다. 개혁파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주권”하니까 우리는 물리적인 힘을 자꾸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체험에 구체적으로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개혁파에서 말하는 절대주권이라는 개념을 절대의존이라는 것으로 바꿔버렸다. 절대자가 계신 것처럼, 절대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식론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사물의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나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다. 윤리는 더 그렇다. 윤리는 나가야 된다. 행동해야 된다. 그러나 감정은 수동적이다. 이 영역은 외부와의 연결이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감정이 종교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는 교양인으로서 종교를 무시하는 이들에게 글을 적어서, 독일 등지의 예술이 발달한 지역에 그 본질을 가르쳐 주었다.


제2강 (2002년 3월 19일)

지난 시간에는 슐라이어막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슐라이어막허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칸트철학의 도식에 의해서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존재이다. 이 모든 현상 전체를 만드신 이가 있다면, 그런 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식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종교 경험과 의식 속에서 만나야 된다. 종교적 감정은 절대자가 있어서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에 매달리는 것이다.
우리의 종교 감정이나 의존의 감정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런 하나님은 창조의 주가 되지 못한다. 창조에 대해서 말하기를 한다. 우리의 의존의 감정이 어떻게 이 세계에 미치는 가에 대해서 창조를 말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만드시고 동물을 만드시고... 이런 창조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그렇다. 신론에서 말하지 못하고, 부록에 실어놓았다. 유대교에서 유일신론에 대해서는 절대의존의 감정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귀신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가? 절대의존의 감정이 의존하는 대상이 많으면 다신교이고 하나로 고정되어 있으면 유일신이 되는 것이다. 로마교는 다신교이고 유대교는 유일신교이니까 이것을 합치기 위해서 삼위일체를 말한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창조의 중보자라고 한다. 중보자란 창조가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아들이 창조했다고 하는, 실제 창조자라고 이해한다. 아버지에서 뜻해진 창조를 아들이 실제로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보자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규명을 못하는 가운데서,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할 수 있겠는가? 슐라이어막허에게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육신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가? 예수도 인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 예수는 신의식이 있다. 우리에게는 신의식이 별로 없다. 우리는 주일날도 너무 바쁘다. 예배도 많고 사역도 많다. 우리는 하나님 생각이 별로 없다. 밥 먹을때도 그냥 아멘만 한다. 그런데 예수는 신의식이 충만하다. 고정이고 불변이다. 우리는 연애할 때는 온통 여자생각 뿐이다. 여자생각이 고정이고 불변이다. 그런데 예수에게는 하나님 생각이 고정이고 불변이다. 그래서 그것이 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신이다. 그래서 예수를 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돈 없을 때는 돈 생각만 고정이고 불변이다. 예수에게는 하나님 의식이 충만할 뿐만 아니라 고정이고 불변이다.

왜 구주라고 부르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예수에게서 전달되어 졌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구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슐라이어막허에게서는 십자가가 없다. 의미가 없다. 죄에서 구원되는 것은 없다. 다만 신의식이 전달되어 져서 우리가 갖게 되는 것으로서 구원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예수는 신의식이 충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행복을 갖고 살았다. 애인들은 만나면 그냥 좋다. 생각만 해도 좋다. 길에서 걸으면서 생각만 해도 좋다. 애인생각을 하면 너무 좋다. 이처럼 예수도 하나님 생각만 하면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다. 우리도 이렇게 예수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의 생각을 하고 기쁨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고난 주간이 다가오고 있다. 슐라이어막허는 성경을 하나의 참조사항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동정녀 탄생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믿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조지 오웬의 [1984년]에 보면, 포드총재 밑에 일하는 모든 사람은 모두 부화장에서 목적을 따라서 길러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 제임스는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얼마나 더러운가? 양수가 터지고 피도 나오고.... 더럽다고 이야기를 자꾸 들었다. 그래서 탈출했다. 현대문명이 가는 추세를 말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처럼, 예수라고 하는 하나님의 인격이 나오는데, 사람들끼리의 남녀의 관계를 통해서 나왔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더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정녀 탄생이 나왔다는 것이다. 부활은 성경에 씌어 있기 때문에 있다고 말할 뿐, 그것을 믿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승천도 마찬가지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참조사항일 뿐이지, 그것이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의 예수의 신의식을 가져서 예수의 행복을 얻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19세기는 기독교가 성할 때인데, 범죄가 드러날 수가 없었다. 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구속을 말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물을 가지고 성찬식을 해도 괜찮은 것이다. 개혁파는 성찬식을 1년에 4번 이상 실시했다.

성령론에 대해서 말해보자.

각 민족마다 특성이 있다. 한국민족은 “빨리 빨리” 정신이다. 교회도 예수믿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공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 그것이 성령이다. 고대교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성령은 인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교회가 혹은 믿는 자 전체가 가지는 특색이 있다. 성령은 교회가 공통으로 나타내는 특색이다. 실제로 성령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2002년 3월 26일
지난 시간까지는 근세신학의 아버지 슐라이어막허에 대해서 배웠다. 슐라이어막허는 교회에서 시작해서 신학을 재구성했기 때문에 교회의 필요에서 시작한다. 절대감정, 종교의존의 감정을 다룬다. 창조도 무에서의 창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현상이 절대의존의 감정과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에 대해서만 창조를 다룬다. 절대의존을 감정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면,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가 될 수가 없게 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예수에게는 신의식이 무한하고 충만하고 고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왜 구주냐? 우리는 신의식이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의식을 나눠 가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애인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듯이, 하나님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이런 신의식에의 동참이 우리를 구원하게 하는 것과 동일하게 만든다.
내세가 있고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좋은 감정 -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신의식이 가득하도록 해주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말을 한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이 공통으로, 또는 교회가 공통으로 나타내는 특성이다.
19세기의 교회는 종교경험에서 절대의존을 감정에서 시작하게 되니까 이런 결과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리츨은 슐라이어막허의 자유주의를 완전히 내재화 했다. 그래서 종말론까지도 내재화했던 것이다. 리츌은 슐라이어막허의 틀에 위배되는, 그냥 자기 조상만 생각하는

20세기의 신학은 칼 바르트에게서 시작한다. 바르트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신학책의 시작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했다. 그는 독일에서 신학적 자유주의학자들에게서 직접 배우게 된다. 하르낙... 바르트는 82세의 나이로 죽었다.
“자유주의신학으로는 하나님을 믿기는 하되 구원은 없다"고 보았다. 하르낙은 역사적 과학적으로 신학을 정리했다. 선포하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고 했다.

슐라이어막허는 인간의 종교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했다.
지난 200년 동안 역사적 비평에 의해서, 성경속에 하나님의 말씀도 들어있다...라고 한 것이 구자유주의이다. 이에 대해서 프린스턴이 대응하면서 정리했다.
바르트신학은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신학을 시작했던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라고 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했다. 프린스턴에서도 바르트의 신학을 환영했다.


2002년 4월 2일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칼 바르트 신학까지 왔다. 구원도 말하고, 화해도 말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을 강조하고 반복한다. 그런 신학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단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만 틀리다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를 가장 중요한 교리로 생각한다. 바르트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언약을 중요시한다. 언약에 있어서 이신론이다. 理神論이 아니고 二神論이다. duotheism
삼위일체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계시에서 시작한다.
계시자가 있고, 계시의 작용 혹은 행동이 있다. 내가 지금 말하고 있다. 스피커다. 여러분은 듣는다. 내가 왜 말하는 사람인가? 말하는 동작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입만 벌려서 중얼 중얼거리기 위해서 말하는가? 아니다.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서다. 계시의 내용이 있다. 말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 - 말하는 작용 - 말하는 내용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작용이 있으면 말하는 내용이 있는 것이고, 이것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구분은 되지만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계시자다. 무얼 전할 내용이 있기 때문에 계시의 행동을 한다. 이 셋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삼위일체다. 삼위일체는 그렇게 계시에서 보아야 된다. 하나님은 계시자를 하나님의 거룩에. 계시작용을 자기, 계시내용을 ____ 에 적용시킨다. 이것은 구분되기는 하지만 분리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 개를 합쳐서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이다. persona는 어떤 의미일까? 위격이라고 하니까... 우리는 이것을 인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양사람들에게는 각각 세 개의 인격이 존재하게 되기도 한다. 칼빈은 위격이라는 말을 무엇이라고 했느냐면, subsistance라고 했다.

마주 서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두 인격이 서로 마주 서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도 인격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영원하시다.


2002년 4월 9일 

우리는 지금 바르트의 신학을 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기독론에 있어서 그냥 삼위일체라고 말할 수 없다. 창조를 빼고 삼위일체를 말할수 없다. 그런데 바르트는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에서 벗어낫다. 그래서 그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과 다르다.

삼위일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존재방식이다. 位라고 해서 잘못 오해할 수 있다. 존재의 방식이다.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을 양태론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고대의 전통적인 양태론과 다른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이 다르고 신약에서 다르고 성령시대에 또 다르다는 것이 양태론이다. 바르트의 것은 계시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양태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의 구주는 성육신하신 말씀이라고 했다. logos en sarkos 그러니 저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의 아니다. 그게 무슨 하나님인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 그 분만이 진정 우리의 하나님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또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가?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기 때문에 교제가 있다. 삼위간에 서로 교제가 있다. 사랑의 표현 방식이 있다. 그런데 바르트에게서는 그런 교제가 없다. 하나님은 한분이시기 때문에 교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이 사랑의 교제를 원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이다. 교제를 원하셨는데 그 교제의 상대가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언약이다. 교제의 대상을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언약이 곧 창조가 되는 것이다. 언약에 의해서 창조가 이루어진다. 언약이 없으면 창조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이 이루어질 내적근거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피조물을 끌어 올려서 자기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하셨는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했다. 하나님은 이 파트너를 만드셔서 언약의 당사자가 되도록 하셨는데, 이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게 하셨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계획을 영원 전부터 하셨다. 그래서 예수는 영원전부터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케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에서 나서 살다가 죽었던 사람이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게 되었으니, 그가 우리의 구주가 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logos a sarkos는 우리와 관계가 없는 하나님이다. 그런 하나님은 하나님일 수 없다. logos en sarkos 성육신 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하나님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부활은 과거의 한 식간에 일어난 것이지만, 시간내의 현존이 바로 부활이다. 인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좌에 앉히는 것이 부활이다. 보좌가 무엇인가? 인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좌에 앉히는 것이 부활이다. 인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다. 부활은 예수가 정말 살아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살아있다고 한다.

내가 69년에 군목이 되어서 저-- 해안 부대에 있다가 누군가가 죽어서 국립묘지에서 추모예배가 있는데... 기장 목사님이 하는 말이 그것이었다. 우리 아들이 죽었는데, 그 아들이 부모의 마음에 계속 살아있는 것... 그것이 부활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타락-구속의 순서인데, 바르트에게는 다르다. 하나님은 교제/ 즉 언약을 원하셨기 때문에 창조를 이루셨다. 즉 언약은 창조의 내적근거이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여기서 우리가 바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런 것이 없다. 하나의 하나님에게서 운동이 일어나서, 대칭이 생겼다. over against 이것이 대칭이다. “마주섬”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래서 나와 너가 생겼다. 이것이 관계이고 창조이다. 하나님을 보고 당신이라고 말하고, 하나님도 우리를 너라고 당신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결혼하기 전에도 남녀가 마주섬, 결혼후에도 부부의 마주섬으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디에서 창조했는가? 그것은 chaos에서 나온 것이다. chaos는 하나님이 지나쳐버리고 배척한 실재이다. 이것이 바로 어둠이다. 이 혼돈을 실재의 가장자리까지 밀어내셨다. 창조의 가장자리까지 간 것이다. 태양이 빛을 비추이면 어둠이 물러간다. 촛불을 피우면 그 빛의 거리만큼 어둠이 물러간다. 창조 자체가 은혜이지만, 창조를 어둠에서 바로 Das Nitie에서 보호하신다.

그러면 이런 창조는 실제 창조인가? 아니다. 창조기사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어디에서 드러나는가? 바로 낙원의 실재에 대한 의문에서 드러난다. 에덴동산이 어디에 있는가? 그 위치가 대충이라도 어디인지 알고 있는가? 그 위치를 잘 모른다. 아라랏산 부근인가? 가까울 수는 있겠는데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낙원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는 말이다. 환타지의 랜드가 있다. 노동자의 천국이다. 일하면 안 된다. 먹고 자고 놀고 자고... 일하면 안 되는 곳이다. 그런 곳이 노동자의 천국이다. 그곳이 어디 있는가? 크리스마스 25마일 뒤에 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낙원인 환타지일 뿐이라는 것이다. 에덴동산은 이스라엘의 경험을 역투사한 것일 뿐이라고 바르트는 말한다. 에덴동산을 역투사 해서 만든 것이 그것이 바로 낙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왜 이런 게 생겼는지를 말해주는 신화일 뿐이다. SAGA다. saga가 무엇인가? saga를 무엇이라고 번역하면 좋을까? 선사시대의 영웅담을 saga라고 한다. 신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창조 신화... 에덴동산의 역사는 점(占) 하는 역사라고 한다. 점을 치면 몇 % 이루어지는가? 그의 점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 점인가? 역사인가? 실재인가?


2002년 4월 16일 화요일

점... 운명적 신앙... 운명적 구원에 대해서... 이것이 바르트 신학의 핵심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구원을 화해라고 본다. 왜 화해라고 하는가? 화해는 두 사람이 싸워서 뒤틀어진 사이에서.. 술로 풀고 화해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화해를 구원이라고 한다. 우리는 구원이 죄와 사망에서의 구원이라고 하는데, 바르트는 구원이란 존재에의 동참이라고 한다. 피조물이 죄의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이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기 때문에... 예수는 참 하나님이고 참 사람이다.

logos en sarkos : 성육신에 있는 구주...
화해 = 구원 = 존재에 동참함

하나님은 이 일을 창조하신 다음에 정하신 것이 아니다. 이 일을 창조전에 언약전에 영원에 작정하셨다. 신존재의 동참을 영원전에 작정하셧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니까, 교제하고시고... 창조보다 앞선 것이 구원이요 이것을 영원에서 정하셨다. 누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래서 그는 모든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이다. 하지만 그는 시간 내에서 나서 우리와 꼭같이 살다가 죽으셨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개념은 없고,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함을 구원이라고 한다.

미국 북장로교회가 이러한 바르트 신학에 근거해서 신앙고백서를 다시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서 한국에서도 1960년 말에 회의를 열었다,.

칼빈은 이중 선택을 말했다. 이중 예정이요 이중 선택이다. 칼빈은 좁아서 그랬다. 바르트는 이에 대해서 더 확대해서 만인 구원설을 택했다. 결국 바르트가 더 큰 인물이라는 것이다. 선택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 존재에 동참하도록 미리 선택하셨다. 다 선택하셨다. 그러니 만일 구원이다. 왜 이것을 은혜라고 하는가? 피조물인 우리는 이것을 요구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로 미리 미리 정하셨으니... 우리가 바랄 수도 없는 일이 이루어졌으니, 이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은 선택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서 선포해주어야 된다는 것이다.
바르트에 대해서 질문 있으면 하세요.
2002년 4월 23일 

현대신학은 그의 아버지 슐라이어마허를 벗어날 수 없다.
오늘 부터는 불트만을 보자. 불트만은 바르트보다 나이가 2살이 더 많다. 바르트는 개혁파지만 불트만은 전통적인 루터파다. 92세의 나이로 죽었다. 자유주의자도 장수해요..(하하하) 불트만은 바르트가 신학운동을 펼쳤을 때 합세했다. 하지만 불트만은 과격하게 자유주의신학을 배운 사람이어서 바르트 정도의 수준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서 독립해서 자기만의 방법을 세웠던 것이다. 궁켈을 이어서 성경학을 공부했고, 그래서 신약학을 전공했다. 헤르만 궁켈에게서 배워서 종교사적인 방법을 이어갔다. 신약학은 희랍어만 잘하고 구약학은 히브리어만 잘해서는 안된다. 그 정도만 한다면 신학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구약을 해도 희랍어에 라틴어도 하고 그 외에도 고대 근동어도 해야 된다. 신약학도 그렇다. 여러분 중에서 좋은 성경학자가 나오면 좋겠다. 그래서 바르게 신학을 하는 사람이 나와야 할 것이다. 말부르그에서 신약학 정교수로 가르치고 있을 때, 28살 먹은 하이데거가 들어왔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이라는 강의를 했고, 그의 강의를 듣고 불트만은 그것이 바로 신학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이데거라고 한다면, 철학에서도 존재 문제를 다루어야 된다. 이제까지는 존재자만 다루었다. 존재자의 특성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존재는 못 다루었다. 바로 존재자의 존재를 다루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존재자의 존재를 어디에서 접근하느냐 하면, 인간에게서 접근해야 된다는 것이다.

현존재.. 
존재자의 존재를 접근할 때, 인간- 즉 존재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의식할 수 있는 존재에게서 접근한다. 사람이 존재 방식은 관심(sorge)이라고 한다. 여러분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 빨리 큰 교회를 맡아서 부흥하는 목사가 되는 것이죠?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을 가면, 엄마는 옷에 관심이 있고 아이는 장난감에 관심이 있지요. 사람은 이렇게 관심에 의해 살아간다. 일상적인 삶... 이것도 현존하는 존재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언제 본래적인 자기 존재로 돌아오는가? 죽음에 이르면... 돌아온다. 죽음 앞에서는 이제까지 의지했던 재산이 아무런 힘이 안 된다. 도움이 안 된다. 이게 진짜 아무것도 아니구나... “無”를 깨닫는다. 본래적인 자기 존재 - 실존으로 돌아온다. 이거로구나... 신약이 말하는 것이 바로 저것이구나...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불신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십자가의 선포로, 믿음으로, 영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불트만은 이렇게 “得道”했다. 그래서 불트만은 신학작업을 하기로 했다. 비신화화 작업과 실존주의적 해석을 했다.
불트만은 과격하게 자유주의 신학에 젖어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본래의 자유주의신학으로 신학작업을 수행하기로 했다. 성경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관으로 되어있다. 그 안에 신약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을 현대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신화적인 부분을 벗겨내고 번역하면, 현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된다는 것이다. 병들면 병원에 안 가고 기도부터 하는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 보라. 그런데, 기도하고 귀신 쫓아내서 병 나았다고 하면, 누가 그걸 믿겠는가? 그것은 신화다. 1세기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신화를 믿고 있었다. 선이 있고 악이 있고, 선한 영이 있고, 악령들이 있었다. 양 영역에 있는 영들이 가운데 있는 세상의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이끌려고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상계 - 위가 어딘가? 그런 데에 선한 영이 있기는 한가? 하계는 어디 있는가? 지옥이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와서 순회전도자가 되어서 전도하다가 잡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 다 신화다. 귀신이 있는가? 어떻게 귀신을 추방하는가? 어떻게 십자가에서 죽은 몸이 무덤 밖으로 나왔는가? 한 개인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승천으로 올라갈 곳이 어디인가? 인공위성을 타고 지구를 돌아보면,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밑인가?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현대인의 과학적 사고로 배양된 틀에 의하여 보면, 신약은 비신화화가 필요한 글일 뿐이다. 받아들일 수가 없다. 비신화화 하면, 그 껍질을 벗기면, 그 안에 남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인간이해이다.

이런 신화적 세계로 포장된 이유는, 교회가 예수가 했다고 하는 자기 주장들과 칭호들을 만들어서 그에게다 덧붙였던 것이다. 실제로 예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교회가 이스라엘에서 희랍-로마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다른 종교에서도 그러는데, 우리가 경배하는 예수에 대해서, “구주”나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못 붙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방종교와의 교류에서 교회의 신앙이 자라간다. 그래서 교회의 신앙이 예수에 관한 것들을 만들어서 예수에게 넣었다.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예수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교회가 만든 것이다. 교회가 그 신앙에 대해서 예수에게 투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예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신앙고백일 뿐이다.

이것이 구 자유주의이다. 그 이후가 신현대주의-신신학이다. 구자유주의- 헤르만과 하르낙에 의하면, 비평적 방법으로 분석하면 역사적 예수, 즉 순수한 예수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신앙진술 뒤에 있는 순수한 예수 그리스도를 분석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불트만은 “No”라고 대답한다. 모든 성경은 신앙진술이지, 그것이 사실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약의 복음에서에서도, 역사적 진술과 신앙의 진술을 분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신앙의 진술이다. 단지 실제는,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알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신앙진술이다. 그런데 신앙진술을 할 때, 모두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신화적 틀에 들어있다. 이걸 다 벗겨내어야 된다.

人間理解는 1세기 γνοσις의 인간이해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해도 이 틀을 벗겨내야 된다. 십자가의 사건을 선포한다. 선포하면 변화가 일어난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구원사건으로 만드는 것은 선포다. 그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불신앙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돌아오게 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다. 선포의 능력이다. 부활은 십자가의 의미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는가? 누가 보았는가? 그런 기사를 사실이었는지... 죽은 사람이 시신을 끌고 밖으로 걸어나온다... 무슨 의미인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구속의 사건으로, 마지막 사건으로 규정짓는 의미이다. 신자유주의는 비신화는 다 없애버리지만, 신자유주의에서는 이것에다가 모두 의미를 덧붙인다. 부활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와 함께 한다고 선포한다. 그러니까 아멘 한다. 부활은 선포가 일으킨 사건이다. 그래서 우리 맘속에 살아있다.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말이 일으킨 사건이다. 믿음으로 부활을 받아들이면, 예수를 믿는 사람의 마음에 부활하여 함께 계신다.

2002년 4월 30일

우리는 아직 불트만 토론 가운데 있다. 불트만에 의하면, 복음서가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의 기록이 아니라, 교회의 신앙고백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수에게 붙어있는 칭호들은 예수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아니고 교회의 신앙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교회의 신앙이 자라감에 따라 랍비로 주로 그리고 하나님으로 된 것이다. 복음서는 하나님의 역사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신앙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은 역사고 어떤 것은 신앙이고..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자유주의다. 그것이 1920년대까지 구자유주의가 했던 역사적 비평적 방법이다. 역사적 요소와 신앙적 요소를 구분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불트만은 모두가 신앙에 의해서 각색된 것이라고 했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적 예수를 구분해 낼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복음서 뒤로 돌아가서, 여기에서 예수상을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있는 것은 선포뿐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 왜 죽엇는지에 대해서 불트만에게서 설명은 없다. 다만 선포가 부활사건을 만들 뿐이다. 선포가 일으킨 사건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죽음앞에 직면하면 세상에서 의존하고 의지하던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불트만은 신앙인이다. 죽음앞에서는 십자가를 붙든다. 십자가의 선포를 받아들이면, 그것이 믿음으로 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십자가와 부활은 별개의 사건인데... 십자가는 역사적 사건인데,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그런 의미의 사건이 아니다. 부활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의미이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가 자기들과 같이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살아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가 부활했다고 하는 부활은 언제 이루어지느냐? 선포할 때 이루어진다. 죽은 자 예수가 부활했다고 할 때 그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있는 것이다.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선포가 일어난 사건이다.
이것이 제일 걸려 넘어지기 쉬운 점이다.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골고다 언덕에서 살아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부활이 사건으로 발생하는 것은 선포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허공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간과 장속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이다. 선포가 일으킨 사건이다.

그래서 신약의 사건들은 선포가 일으킨 사건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런 것에서 당대 랍비들과는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케제만이 불트만 학파인데.. 불트만에게 물어보기를... 복음서에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전혀 알수가 없다고 하는데... 분명히 당대의 랍비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새역사적 예수탐구”를 이루었던 것이다. 예수 자신이 자기 자신을 신앙의대상으로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믿음의 증인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른 믿음의 자세라고 증거했던 것이다. 그런데, 복음서를 잘 보면, 기독론을 알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간접기독론”이 나온다. 이를 간접기독론이라고 한다. 이것은 콘첼만에 의해서 시작된다. 복음서는 학파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불트만과의 차이다. 이것은 기독론이 될 수 없다.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의 기록이 아니라, 학파의 신앙이라는 말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십자가와 부활은 어떻게 된 것인가? 불트만은 선포가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말이 일으킨 것이다. 언어가 일으킨 것이다. 언어 사건이다.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것이다. “야..! 너는 오늘부터 내 동생이다...” 실제로 동생은 아니지만 오늘부터 그렇다고 말하니까, 그렇게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부활은 없었지만, 부활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서 언어가 된다. 언어사건이 된다. 십자가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했다고 하는 것에서 언어사건이 된다. 구자유주의에서는 순수한 예수상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편집비평에서 불트만은 있는 것이라고는 선포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포뒤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도, 언어사건이다. 이 언어사건은 틸리히로 연결된다. 하나님도 언어사건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비평이론은 구비평이론에서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문서설에서 종교사적 비평, 전승사적 비평으로 이어진다. 벨하우젠 - 궁켈... 이런 비평은 다양성에는 기울이기는 하지만 통일성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성을 이룰 방법은... 기존의 재료에서, 신화, 민요, 소설, 법조항, 법체계 등을 합쳐서, 비록 무명의 저자라도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소설식으로 창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존의 비평학에서 가질 수 없었던 성경의 통일성을 찾아낼 수 있게된다. 그것이 바로 문학비평이다. 이전의 비평에서는 헬라-로마문학을 표준으로 삼지만, 문학비평에서는 고대중동의 문학이나 작품에서 그 표준을 삼는다. 언약과 율법의 전수가 나오는 것도 다 소설이요 창작이다. 그런데 왜 모세가 등장하는가? 모세의 이야기도 소설이다. 요셉의 이야기? 룻기... 연대가 사사시대라고 되어있다. 소설이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도 소설이다. 노아의 이야기도 소설이다. 이스라엘에 남북으로 갈라질 때 제일먼저 북쪽 이스라엘의 선동으로서야 될 지파가 베냐민 지파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다. 유다지파에 붙어 있는다. 왜? 그 옛날 유다가 베냐민을 감싸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을 만든 것이다. 무명의 저자가 비록 저술했어도, 이 사람은 큰 신학자다. 뒤에 모세의 이름을 등장시킨 것은 율법의 권위를 더 강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면 우리나라에도 문학비평이 들어와서 보편화되어있다. 웨스트민스터도 받아들였다...문학비평의 특징은 소설로 창작한 것이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5월 7일 화요일

사회과학적 비평(socio-scientific criticism)

고대사회는 patron - client 의 관계다. 하나님은 patron이 되고, client는 이스라엘이다. 옛날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patron과 client의 관계다. 그런데 예수가 와서는 new patron으로서 broker가 된다. 일반적으로 broker는 얼마를 받는가? 중개의 비용으로 5%를 받는다...? 이러한 patron과 client의 관계는 “명예와 수치”의 관계다. 그런데 예수는 성전에서 화를 내기도 하고 뒤집어엎기도 했다. 왜 그랬는가? new patron 개념이다. 성전을 훼방하는 일은 성전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out-cast 추방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위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사용된 일이다.

회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야이로의 사건에서도 그렇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 가난하고 볼 품없는 사람들이 명예의 공간, 사회적 공간을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회당에는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참여할 수가 없다. 예수와 같이 바울도 이렇게 노력했다. 소외계층을 위해서 사회적인 공간을 마련해주는 일을 했던 것이다.
틸리히를 하자(1886-1965)
이는 먼저 철학박사가 되고 그 이후에 신학박사가 되었다. 종교철학을 연구했고, 종교사회주의에 가담하고 활동했다. 결국 나치에 의해 교수직에서 해임되자,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는 1차대전 때 군목을 했다. 1886년의 일이었다. 한번을 깨어 일어나 보니 자기가 시체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관념론을 버리고 실존주의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도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영향을 받았다.
“존재에의 동참함”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왜 신문제가 나왔느냐? 절대자가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실존이다. 존재다.

2002년 5월 14일 

틸리히... 우리는 지금 틸리히의 신학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저 하늘에 계신 창조주로서 인격적인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생긴다. 우리는 존재다. 있음이다. being “있음”이라는 말이 더 낫지 않는가? 우리는 자기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존재에 부딪히게 된다. 죽게 된다. 우리는 비존재에 둘러싸여있다. 그래서 불안하다. 불안은 우리의 심리적인 느낌이 아니다. 우리의 존재적인 본질에 해당되는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언제 존재가 끝날지 모른다. 비존재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불안한 삶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존재로 있는데, 비존재의 충격에서 자기의 존재의 문제를 문제로 삼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존재자로 존재한다. “있는 것”이다. 존재자로 있는 것은 개별자로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궁극적인 존재라고 하는데, 존재자는 궁극적인 존재가 못된다. 틸리히는 깨어 일어나보니 시체가운데 있었다고 한다.
종교 사회주의에 가담했다. 라인홀드 니버가 틸리히를 청했다.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 그런데 이 사람이 존재 문제에 대한 심각한 고뇌가 있었다.
개별 존재자는 궁극적인 존재가 못된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공간에 존재한다. 개별자로 존재한다. 끝이 있으니까 궁극적인 존재가 못된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 무, 비존재에 의해서 위협 당하면서 존재한다.
그때 신이 발생한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누가 보았는가? 아니다. 존재의 깊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발견하게 된다. 미소짓고 웃는 여공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라고 할 때의 그 하나님이다. 아내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 우리는 시적으로 표현하지만 이것이 바로 틸리히의 신개념이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존재의 힘이다. 존재의 기반이다. 모든 존재가 있게되는 기반이 바로 하나님이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궁극적인 관심사를 대변하는 것이 하나님이다.
죽고사는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나깨나 문제가 된다. 나한테 죽고사는 것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이다. 자나깨나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이다. 여자문제? 그게 하나님이다. 박전도사에게는 학생부 부흥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래야 연말에 쫓겨나지 않고 교회에 계속 붙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조는 무엇인가?
슐라이어마허가가 창조를 종교의식과 관련해서 설명했다. 독자적인 창조는 없다고 했다. 그러니 그의 후예들도 똑같다. 틸리히에게서 창조는 괴물들이 존재에 동참해서 있는 것을 창조라고 부른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타락은 무엇인가?
타락이라는 말은 소외다. 하늘에서 갑자기 뭘 하나 따먹고 타락했다고? 아니다. 그런건 신화다.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것이 바로 소외고, 그것이 바로 타락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시작부터 본래 존재의 근원에서 떨어져있다. 존재의 근원에 합쳐야 된다. 그런데 존재의 근원이 별도의 존재로 있어서 그것에 합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본래 있어야 할 존재의 기반, 근원에 합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왔다. 그러니까 새존재를 바라는 것이다. 예수에게서 새 존재가 있었다. 없던 존재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존개의 기반에 서 있는 것이 새존재다. 한 사람이 예수를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고백함으로 그리스도가 되었다. 존개의 근원에 합쳤다. 똑같은 실존의 상황에 종속되었지만, 존재의 근원에 합쳤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그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서 그리스도가 되었고, 그에게서 새존재가 나타났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에게 합쳤을 때 구원에 이르게 된다.
내세를 보았는가? 못 보았다면 내세는 없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에 합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2002년 5월 21일 화요일 

기독교는 하나님이 있든 없든 간에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된다. 용어가 있으니까 그 용어에 대해서 설명은 해야 된다. 영에 대해서 틸리히는 이야기한다. 영이 무엇이냐면, 생명과 의미를 합친 것이라고 한다. 슐라이어막허는 삼위일체가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이를 안 할 수가 없다. 성경비평이 왜 생겼는가? 삼위일체를 해체하는 데서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없다. 예수는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결혼을 안해서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삼위일체가 무엇이냐? 신에게서 로고스가 나와서 그게 예수에게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삼위일체다. 신이 무엇인가? 존재의 힘이다. 그게 무엇인가? 그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다. 힘을 내어서 무엇을 한다고 할 때, 그 힘이 바로 로고스의 원리다. 그게 예수에게 임했다. 이게 삼위일체다. 삼위일체라는 말을 쓰니까 기독교가 된다.

칼 라너를 하자.
바티칸 공의회에서 신학을 결정한 사람이다. 20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를 능가한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한다. 그의 책은 16권이 연속으로 나오고 있는데, 아티클을 모아놓은 글이다. 그의 조직신학 - 신론은 틸리히와 똑같다. 바티칸공의회에서 종교다원주의를 교리화할 때 라너의 신학을 채택했다.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라고 할 때, 기독교에도 구원이 있고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이해한다. 이슬람은 원래 너무 비슷하니까 구원이 있고, 다른 종교에서는 상징의 빛이 있으니 영원한 구원을 이루도록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라너의 신학은 그런게 아니다. 무신(無神)신학이다. 예수는 사람이다. 그런데 결혼을 안했고 아이가 없으니 우리와 다르다. 그런 것 뿐인데 구원이 무슨 구원인가? 구원이 없는 것이다. 기독교에 구원이 없으니, 다른 종교와 차이가 있을 것이 없는 것이다.


2002년 6월 4일 화요일 

라너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주의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그 오메가 포인트는 예수 그리스도다.
인간은 하나님이 허공에다가 자기를 발설하심으로 생겨난 것이다. 자기를 비움으로 생겨난 것이다. 자기 초월과 하나님의 존재 통보가 합치된 것, 이것이 역사내에서 한 시점에서 일어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이렇게 말하면 전통적인 신으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보면 또 안된다. 하나님은 신이 아니다. 이 시간내에서, 시간의 한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 구주다. 하나님의 존재 통보와 인간의 자기 초월이 합쳐져서 생겨난 것이다. “왜 그일이 예수에게만 일어나는가? 그건 정당하지 못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면에서 절대적인 구주다. 예수 그리스도는 왜 죽었는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자기 존재를 통보해주신 것이다. 인격적인 존재가 성육신 한 거? 이런 거는 신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인가? 예수는 처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러면 부활이 어떻게 가능한가? 부활은 가능하지 않다.
로마교회에 의하면 예수가 교회를 세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가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교회에서 예수를 만난다. 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까 몰트만으로 가자.
2차대전에서 독일이 패하고 마샬 플랜에 의해서 60년대에는 미국의 경제가 엄청 좋아졌다. 그때 독일에 간 사람들은 엄청 부자가 되었다. 1960년 《소망의 원리》를 펴냈다. 이는 결국 “소망의 신학”의 글이 되었다. 근세를 움직인 동기는 “자연과 자유”다. van Riessen이 적은 책이 있다. 그 책의 예언대로 거의 다 일어졌다. 그 자유를 실현하는 데는 이 부로리한 사회가 그런 것을 정당화 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

몰트만도 개혁파 출신이다. 그의 자전적 길에 남아잇다. 정통적인 율법의 해석과 이해에 거슬리니까, 하나님 모독자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었다. 예수는 로마의 권력에 대항했다가 반역자로 죽은 자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신 모독자로 죽었고, 반역자로 죽었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들이 못박혀 죽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본다. 아버지가 아들을 버림으로 하나님 자신도 버리고 있다. 죽음은.... 아들이 당하는 고통... 아버지는 그런 고통을 함께 당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아들을 죽음에 내어준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버림받아 죽었지만만, 하나님이 아들도 죽이고 자기도 고통을 다루j고../ 십자가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이냐?  인간의 인간성이다.
삼위일체는 우리의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부활은 오고있는 하나님의 본체이고, 예수가 그것을 입었던 것이다

 

 

 

 

 

 

 

 

 

 

 

 

 

 

 

 

 

 


<자료4>
신복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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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는 19세기 개신교 신학에서 나타난 진보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며 진정한 복음주의 즉 개신교 정신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영미 지역의 개신교 사상을 지칭했다. 현재는 원래 신복음주의 의미 이외에 미국 개신교 내 온건파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목차  [숨기기]
1 역사 1.1 근본주의와의 결별
1.2 미국 복음주의운동
1.3 영국 복음주의 운동

2 전미 복음주의자 협의회(NAE)의 신앙고백
3 바깥고리
4 주석


역사[편집]

근본주의와의 결별[편집]

근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대중문화, 진화론,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반대하는 폐쇄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는데, 실례를 듣면 1925년 테네시 주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압력으로 공립학교의 진화론교육을 반대하는 버틀러 법을 통과시킨 바 있으며,독일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므로 독일신학에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심지어는 근본주의자들은 교육을 선호하는 자유주의자들에 반발, 신학 교육에 반대하는 반(反)신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세상을 멀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근본주의와 자신들을 구분짓고자 했는데, 이들을 신복음주의자라고 부른다.

미국 복음주의운동[편집]

신복음주의자들은 1942년 전미복음주의자협의회(NAE,National Association Evangelicals)를 만들었는데, 현재 협의회장은 레이스 앤더슨(Leith Anderson)이다. 신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의미로 그리스도 신앙을 통한 구원을 믿는다면 로마 가톨릭 신자나 진보기독교인들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1947년에는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나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풀러신학대학원)를 설립했으며,1956년에는 극단을 피하는 중용노선의 복음주의 잡지 《크리스처니티 투데이》(Chrsitanity Today)창간을 하기도 했다.[1]하지만 1976년 지미 카터 대통령 당선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개입하는 등 교회가 정치문제에 간섭하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미국과 하나님 나라(미래적이며, 현재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영국 복음주의 운동[편집]

영국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주의 신학교인 런던 바이블 칼리지(London Bible College, 약칭:LBC)를 1943년 설립하였다.[2] 이듬해인 1944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내에 성서연구기관인 틴테일 하우스(Tyndale House)를 설립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 성공회내 복음주의자들도 복음주의 운동에 참여하는데, 윌리엄 템플 전 캔터베리 대주교다음으로 영향력있는 신학자로 불리는 존 스토트 신부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존 스토트는 개혁파 감리교회 출신의 칼빈주의자 마틴 로이드존스와 비교된다. 존 스토트 신부는 세계복음화대회인 로잔 회의(1974년)에 로잔언약 초안 심사위원회장으로 참여, 복음주의 신학의 가장 대표적인 선언으로 불리는 로잔언약(Covernant) 작성에 기여하였다.[3]

전미 복음주의자 협의회(NAE)의 신앙고백[편집]

신(新)복음주의자들이 1942년 결성한 전미 복음주의자 협의회(NAE)에서는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1.우리는 영감되었고, 유일하게 무오하며, 하나님의 권위로운 말씀인 성경을 믿습니다.
2.우리는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영원히 세 위격, 곧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심을 믿습니다.
3.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죄 없으심, 기적들, 그의 피 흘리심을 통한 대속적인 죽음, 육체의 부활,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의 승천, 권세와 영광 속에서 다시 오심을 믿습니다.
4.우리는 성령을 통한 중생이 버려지고 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효함을 믿습니다.
5.우리는 성령의 현재적 사역을 믿는데, 그를 통하여 신자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습니다.
6.우리는 구원받은 자와 버려진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단 구원받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그리고 버려진 자들은 심판의 부활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7.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간의 영적 연합을 믿습니다.

 


<자료5>
김의환 박사,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이 글은 김의환 박사의 「도전받는 보수 신학」에 수록되어 있는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편을 요약한 것이다.

신복음주의 운동

근본주의 운동은 확실히 자유주의 신학으로 침체된 미국교계에 새 전기를 일으킨 것만은 사실이었다. 특히 성경연구와 전도의 열심 미국내 교회의 부흥 및 해외 선교 운동의 열매를 맺게 했다. 그러나 근본주의 운동에 가담한 보수 진영 안에서 근본주의 운동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즉 2차 세계대전 후 젊은 학자들 간에 근본주의 운동의 교리적 축소주의와 방법적 편협주의에 불만을 가지고 보수신학의 학적 방어 및 보수주의 교회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칼 헨리, 카넬, 오켕가등의 글을 볼 수 있다. 이들의 결론은 근본주의만으로는 보수주의 신학을 대변할 수 없고 1909년에 일어나 학구적 근본주의에서 오늘의 근본주의는 이미 멀리 떠나 버렸기 때문에 보다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오르, 위필드, 메이천에 지난날 보여준 보수신학의 학적 우수성이 사라지고 오늘의 보수신학은 나고의 여광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학문을 통한 보수신학의 새 아침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늘의 근본주의 정신 구조에서 소아병적 부정주의를 염려하고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부정을 위한 긍정의 철학을 모색하기에 힘썼다. 지난날 자유주의가 하나의 멘탈리티로 체질화되어 버린 것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오켕가는 오늘의 근본주의가 근본적 자체 개혁 없이는 미국교회에서 승리할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카넬도 보다 더 예리한 비판을 했다. 그는 근본주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관념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치우쳐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는 메이천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메이천은 관념적 사고방식 때문에 그 당시 재판에서 문제가 된 것은 교회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지 정통주의와 현대주의의 교리적 불용성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교회 내부의 현대주의자가 있다고 해서 그 교회가 배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비난했다. 교회의 본질을 규정하려는 노력이 메이천에게 없어서 엄격한 신학적 탐구가 아니라 오히려 부정주의의 생리 속에 현상유지나 하려는 소극적 교회관을 계속 분열의 연쇄 작용을 빚어내고야 말았다고 한다.

학적수준의 향상

초기 근본주의 운동이 가고 워필드, 메이천의 서거로 한때 보수신학계는 신학적 저조 현상이 있었다. 기성 신학교들이 자유주의 신학으로 기울자 보수주의 교회들은 성서대학 출신들을 목회자로 인수하여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성서대학의 학적 수준은 낮았다. 풀러 신학교는 이런 경향에서 오켕가를 초대교장으로 초빙 초교파의 보수신학교로 출발한다. 칼 헨리, 카넬, 해리슨등의 유명한 학자들을 모아 학적 수준을 향상시켰다.
풀러신학교에 이어서 트리니티 신학교, 보스톤의 고든신학교등도 학적 향상을 보여주었다. 또 하나의 현상은 복음주의 신학회 ETS의 탄생이다. 1949년 12월 고든 신학교는 이 운동을 시작했다. 칼 헨리는 과거 자유주의자들이 과학의 결론을 성경의 진리보다 더 중시하여 문제를 가져왔고 근본주의자들은 무조건 과학을 적대시하여 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카넬은 신학과 과학의 차원 분리를 시도하여 상호 모순성을 극복하려 했다. 이같은 카넬의 과학과 진화론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진화론의 입구라는 비유를 듣게 된다.  

복음의 사회적 적용

칼 헨리는 기독교가 중생하지 않은 인간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자유주의적 사회복음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구속적 종교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감화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복음의 메시지를 생명력있게 전하려면 결혼, 가정, 노동, 경제, 정치, 국가, 문화예술 등 생의 각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나타내야 한다. 심지어는 자고깨는 시간까지 그리스도 중심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봉사가 되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기독교의 사회참여와 관련해서 기독교인의 생활윤리 면에서 근본주의적 윤리관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복음주의의 결함은 무엇인가?

신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최근에 와서 서로 상이한 신학 입장이 드러나고 있어 신복음주의를 일괄적으로 다루어 평가하기 어렵다. 카넬과 램은 좌경성이 농후하고 칼 헨리와 클라트, 오켕가는 자신들을 신학적으로 근본주의자와 동일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같은 현상은 근본주의가 처음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오켕가는 그의 신학 입장을 밝히며 복음주의 신학은 근본주의 신학과 정통주의 신학과 같은 것이다. 교리에 있어서 복음주의자는 근본주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신복음주의는 성경관에 있어 근본주의가 믿어 온 축자영감설에 동의하기를 주장한다. 그리고 유신진화론을 주저없이 따른다. 그래서 과학적 결과 앞에 성경적 창조설을 쉽게 던져버리고 만다. 카넬은 화석학, 지질학, 진화론의 결론을 받아들여 마치 오늘의 진화과정 자체도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창조는 없는 가운데 있게 하시는 것이므로 진화 과정은 오히려 창조 과정으로 보기보다는 섭리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또 신복음주의자들의 교회관은 종교개혁자들의 교회관과 다르다. 카넬은 교회가 교리적으로 배교하지 않는 한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 교권을 장악해도 그대로 그 교회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신복음주의는 복음적 교리를 그대로 믿지 않는 자의 자리를 교회에서 용납할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이 교회를 주관하는 현실 속에서도 모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개혁신앙은 자신의 거점을 복음적 교회에 두고 복음 운동을 하지만 신복음주의는 그들의 거점을 비복음적 교회에 두고 복음 운동을 시도하는데서 양자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신복음주의의 교회관은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의 교회관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신복음주의의 또 하나의 특색은 근본주의의 부정주의의 재부정으로 긍정주의에만 치우치고 있는데 있다. 이는 근본주의를 반동주의로 비난한 바로 그 올무에 신복음주의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성경은 긍정주의만 말하지 않고 동시에 부정주의도 말한다. 


<자료6>
간하배 교수, “신복음주의-그 메시지” 

이 글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으로 총신대학교에 교환교수로서 사역했고 귀국하여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선교학 교수로 사역했던 간하배 Harvie M. Conn 교수의 「현대신학해설」이란 책에 수록된 신복음주의라는 부분을 발췌 요약 소개한 것이다.
 

1948년 캘리포니아 주 풀러 신학교의 개학식에서 해롤드 오켕가 박사는 신학계에 신복음주의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이 신어는 과거의 근본주의에 복음주의 신학의 새면을 관련시키고 동시에 과거의 어떤 교수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려는 시도였다. 오켕가와 그 외 인사들이 정통주의의 새 시작, 곧 근본주의의 부활이라고 느꼈던 것을 표시하기 위해 새 말이 필요했다.
그날 이후 그 말과 그 뒤에 있는 운동은 미국과 기타 지역에서 거대한 규모로 자랐다. 그러나 그것이 팽창함에 따라 문제도 커 갔고 비판도 높아갔다. 최근에는 그 운동이 어떤 신학적 문에게서는 일관성이 약한 듯하다. 칼 메킨타이어나 밥 존스 대학교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새로운 중립주의 혹은 현재주의와 신전통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지탄을 받는다. 달라스 신학교의 라이트너와 같은 세대주의자들에게는 그것은 비현실주의적 낙관주의, 교리에 대한 경시, 근본적인 것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고 함, 무력한 메시지로 전락함, 너무 많은 양보와 불신과의 융합등의 위험을 지닌다.

근본주의와 같이 신복음주의도 항의에 근원을 둔다. 그러나 이 경우는 항의가 자유주의 신학과 아울러 복음주의 신학에도 똑같이 강하게 향하였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전 편집자이며 이 운동의 창시자 칼 헨리는 신학으로서의 고전적 근본주의가 부정적이고 반동적인 정신으로 미묘하게 변천했다고 느꼈다. 이 후기 단계, 이 신근본주의가 근본주의로 하여금 정당한 신학의 위치에서 실격시켰다고 한다. 헨리와 그의 사람들은 근본주의가 고전적 기독교의 충실한 표현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그들이 버리고자 한 것은 근본주의의 참 뜻을 정당하게 반영하지 않는 특징이었다. 1940년-50년대 새로운 논의의 중심자들이 서부의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칼 헨리 같은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보수주의의 새로운 인식을 촉구했다. 고든 클라크 같은 사람은 모든 국면의 지적 취미, 철학, 사회학, 과학, 정치적을 연구하는 현금의 기독교 문서 운동의 필요를 역설했다. 세대주의에서 떠나고 여러 종말관에 대한 좀 더 관용하는 태도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특히 신복음주의권 자체 내의 신학적 소요와 내부 불화의 증거가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침례교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버나드 램은 과학과 성경의 관계를 다시금 검토해야 할 것을 촉구했다. 1955년 그 제목에 대한 그의 폭발적인 책을 냄으로 그는 그러한 재검토를 제공했다. 램은 진보적인 창조설을 주장한다. 수백만년의 지질학사를 통해 하나님은 주권적 명령으로 더욱더 고차적 형태의 생명을 창조하여 왔다. 이 과정은 하나님의 마음의 개념, 관념, 형상, 계획, 목적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공허, 무의 평면에 창조의 주권적이며 명령적 행위가 따른다. 이후에는 과정 혹 부차적 창조가 온다. 자연 밖에서 명령에 의해 주권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제는 자연 안에 계신 성령께 창조의 일을 위임하신다. 자연의 구현자이신 성령은 하나님의 청사진을 아시고 공허의 단계로부터 일을 시작하여 온 과정을 통해 자연계 내에서의 하나님의 의도하신 형상을 실현시킨다. 우리 다수에게는 이것이 유신론적 진화론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같이 안 보인다. 1959년 카넬이 역시 신복음주의 운동과 연관되었다. 당시 풀러 신학교 교장으로 진화의 가능성이 축적되어 어느 단계에 이르면 진화가 시작된다는 진화의 임계성이란 술어를 토론장에 소개했을 때 과학에 대한 토론은 더 열을 띠게 되었다. 카넬은 양보하여 정통주의는 인간 진화의 증거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증거는 생각해 보게 할 만큼은 충분하며 생물학의 판단은 견고한 조소로 물리칠 수는 없다고 했다. 카넬은 다른 사람과 함께 구조적으로 흡사하나 시간적으로 앞서고 천부의 재능이 있어 열등한 아담 이전의 종족을 가정하기를 주저치 않는다. 신복음주의는 또 비보수주의 신학자들과의 신교의 문제를 두고 토론을 열었다. 이 세 경향 내에서 다수가 자유주의 및 변증법적 신학자들과 대화할 의사가 있음을 표시했다. 다수는 WCC의 포용주의와 관용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ICCC의 배타주의와 협량을 비판했다.

특히 카넬의 변론은 메이천의 분리주의라 부른 것에 대한 예리한 비판에서 매우 신랄했다. 카넬은 근본주의의 위대한 지도자에 대해 교회론은 정당히 존중치 않아 정당한 근거 없이 교회 분리를 조장함으로 무정부 상태의 씨를 뿌렸다고 공격했다. 카넬의 견해는 신근본주의와 근본주의로부터만 아니라 신복음주의와 칼빈주의 진영으로부터 중한 공격을 받았다. 자연히 카넬을 신복음주의의 대표적 대변자로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정죄하면서 그 운동 전체를 정죄했다. 카넬은 신복음주의의 전형적 대변자로 보는 이 견해는 그럴듯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그 자신이 속한 신복음주의 내에서도 그의 의견에 대해 비판을 하기 때문이다.
신복음주의 자들에 대해 일어난 가장 격심한 토론 제목은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이었다. 다시금 카넬의 견해들이 많은 논쟁의 중심이었다. 그의 입장에 대해 격노가 일어난 가운데 카넬 자신이 자기는 성경 모오성을 믿어 왔노라고 주장했으나 워필드와 고전적 보수 신학의 여러 견해에 대한 그의 비평들과 구약사에 있는 부조화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인정한 사실등으로 인해 다수가 이 문제에 대한 카넬의 최종적 견해를 의아하게 생각하게 했다. 여기서도 카넬은 신복음주의의 정조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그 운동 전체를 그와 함께 정죄하게 된다.

그러나 카넬의 측면에서의 이 견해가 신복음주의의 중심의 좌편에 치우친 것이라고 가정할지라도 신복음주의가 영감과 모호성 간의 간격을 더욱 넓히고 있는 듯하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이 경향은 지난 10년 간에 특히 현저히 나타났다. 많은 신복음주의자들에게는 영감과 무오성은 동등 가치의 개념이 아니다. 이는 반드시 신복음주의자가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순전히 분명한 이해를 위하는 이유로 영감과 무오성을 별도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다수 있다. 로날드 내시가 이런 견지의 소유자이다. 반면에 현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편집자 헤롤드 린셀 박사는 최근 1960년대에서는 신복음주의자 중에 드는 사람 중 어떤 이는 예리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경의 무오성의 교리와 결별하였거나 그 과정에 있는 자들이 있다고 했다. 린셀 박사는 자신이 신복음주의자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약한 성경관을 가진 자들에게는 미래가 위험한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이가 결국 어떤 데로 갈 것인지는 물론 지금 예측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그 자라나는 근거는 부인할 수 없다. 성경의 권위를 위한 20세기의 투쟁이 그처럼 용감하게 행해졌던 바로 그 정통 진영 안에서 성경의 무어성에 대한 반대의 소리가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놀랍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귀납적 성경 공부의 훌륭한 개척적 연구방법이 창안된 복음주의 중심지였던 뉴욕의 성경신학교 Biblical Seminary에서 1963년에 듀이 엠 비글의 성경의 영감 The Inspiratio of Scripture이라는 책이 나왔다. 거기서 교수의 일원인 그는 신정통주의 진리의 성격에 대해 변증법적 전제들을 받아들여 그것을 성경에 적용하여 무오성을 부인하고 복음주의자들이 지적인 재조정으로서 무오성을 주장할 필요없이 영감설을 보존할 수 있으며 그로써 주도적 신교에큐메니칼 신학에 재연합할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했다. 시카고의 노스 파크 신학교도 오랫동안 타협없는 자유교회 정통주의와 경건으로 알려졌었으나 지금은 성경이 진리되는 가치를 그 말씀이 가진 역사적 건전성이나 사실의 일관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요 영적 경험을 일으키게 하는 능력에서 찾는 것이라고 했다. 즉 성경에 대해서 반무오성의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성 루이스의 콘코디아 신학교도 시어도어엥겔더 T. Engelder와 안트 W.F. Arndt때에는 성경적 정통주의의 요새였으나 지난 10년간에 그 입장을 상당히 약화시켰다. 미국 복음주의 진영의 여러 곳에서 동해안에서 서해안에 이르기까지 성경이 전적으로 진리 됨을 증거하고 있어야 할 신학자들이 무오란 말을 오히려 회피하고 성경 안에서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며, 그 대신 진리를 재정의 하여 성경이 사실상 역사적 정황성 없이도 그 절대적인 게시의 진정성을 보존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신복음주의는 기질상, 엄격히 사용 지역의 현상은 아니다. 피선교 교회 지역의 생활도 신정통주의의 동일한 주관주의와 미 대륙과 유럽에서 신복음주의를 일어나게 한 신근본주의의 동일한 변덕이나 극단적 일들의 침해를 받아 왔다. 그래서 이런 지역에서도 우리가 옳건 잘못 되건 신복음주의라 부르게 된 복음주의 사상의 정화를 촉구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세계의 복음주의자들 다수는 근본주의가 이 이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신앙이 아니요 세상 도피의 공포증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으로 근심한다. 그들은 학계에 정통주의 학식의 결여로 슬퍼한다. 복음주의 문서 운동이 절름발이 격인 이유는 보수주의의 반지식주의가 아닌가 하는 의구가 있다. 헌신적이며 존경받는 학자단의 결여가 사회와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관계를 복음주의가 소홀히 취급하는 때문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그래서 토착 신학에 대한 강한 요청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안들에 곁들여 교단들을 자유주의 세력에 포기할 것이 아니고 교단의 주도권을 재획득하려는 욕망도 있다. 세계의 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 신학자들과 문서로 또는 직접 대면하여 대화할 기회를 노린다. 그들은 그들의 증거의 순결성에 대한 위험을 한편으로 기억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또 그들의 증언을 위한 기회가 열려 있음도 기억한다.

같은 정신에서 세계복음주의는 대사회 관심에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다른 나라에서 그랬었고 또 그래야 할 것처럼 기독교로 하여금 3세계에서 사회개혁의 주요 동인이 되게 할 길을 찾으려 한다.

이들은 비록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공공연히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강조하는 바가 논조에 있어서 신복음주의적이다. 이 논조를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칼 메킨타이어와 기타의 근본주의자들은 그것을 도매금으로 정죄한다. 신복음주의자는 미지근한 이단에 가까운 자로 호칭을 받으며 그 운동은 절충에서 태어나서 지적 교만으로 양육받고 악을 무마함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을 기다린다는 말로 정죄를 당한다.  
1. 불완전한 성경 영감관

신복음주의는 권내의 지도자들이 성경의 권위와 영감에 대한 복음주의의 토론을 재개하고자 하였다. 성경을 연구하자는 노력이라면 장려해야 할 일이나 이 토론의 진로는 순전히 유익하지 못했다. 램과 카넬등은 과학과 성경의 관계를 많이 취급하였는데 과학을 성경의 빛에 의해서가 아니고 성경이 과학의 빛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하는 인상을 남겼다. 또 다른 사람들은 클라스 루니아와 같이 성경에는 아무 오류도 없다는 축자영감설을 주장한다고 하면서 워필드의 입장 같은 것에 대조시켜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구분한다. 랄프 이얼, 다니엘 풀러같은 여타의 사람들은 영감과 무오성을 엄격히 구분하여 영감을 믿으나 무오성은 부인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라이트너는 풀러의 영감관을 “하나님이 알리시기를 원한 모든 것의 권위 있는 기록을 우리가 가지도록 보장하신 일이다. 그러나 지엽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무오를 확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이 아니었다. 지엽적 문제들은 중쵸이 않는 역사적 사실들, 문법적 구조등등의 신앙과 생활에 무관한 성경상의 자료들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카넬의 성경관은 흔히 이 후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다른 사람들은 카넬만큼 강하게 표현치는 아니할지라도 완전하고 전적 무오를 강조하는 것은 주저한다.

신복음주의 진영 내의 지도자들은 교회론의 연구를 고려할 것을 요구해왔다. 특히 그들은 교제와 분리 문제에 대해 새 검토를 촉구했다. 신자가 어느 때 자유주의 교훈을 묵인하는 교회를 떠날 것인가? 타교단과는 교제를 가질 수 있는가? WCC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들은 해답이 용이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복음주의자가 그런 문제에 우리의 주의를 끈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신복음주의가 아직 그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지 못함을 우리는 또한 명기해야 한다. 특히 최근년에는 사실 그것이 자유주의자들과 동등한 동료들 간에 하는 식의 신학적 대화로서 자유주의자들과 협동할 의사를 보였다. 카버난트 신학교의 존 샌더슨 교수가 지적한대로 이런 경우의 위험은 자유주의의 태도들을 수용함으로 복음주의의 특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의 토론을 위해 베풀어진 기회는 만일 그것이 신학적 순결성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면 좋은 기회로 포착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균형은 안전선 건너편을 두 발을 디디어야만 깨뜨리는 그런 균형은 아니다.  

2. 이중 계시설과 자연과학에 대한 비성경적 태도

신복음주의는 과학과 성경의 관계를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결과는 일률적이거나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램의 조화작업은 여러 곳에서부터 성경을 과학에 예속하려는 노력이라 비평을 받았다. 존 휘트콤은 그러한 견해를 이중 계시설이라 불렀다. 이 설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진리에 대한 두 가지 계시를 주셨다고 한다. 곧 성경과 자연인데 각각 자기 영역에서 완전히 권위를 가진다. 성경 안의 하나님의 게시와 자연 속의 하나님의 계시가 각각 그렇다. 신학자는 하나님이 세운 성경 해석자이며 과학자는 하나님이 세운 자연의 해석자이다. 그리고 각각은 자기가 연구하도록 위촉받은 독특한 계시의 책의 진의를 규정하는 특별한 도구들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 결과는 인류 및 거대한 홍수의 근원 같은 문제는 신학자에게서가 아니라 과학자에게 풀도록 하자는 식의 방법만 남는다고 휘트콤은 논한다. 이 이론은 과학의 영토는 성경이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문을 닫는다.

휘트콤이 그의 분석에서 이런 말을 사용치 않았으나 칸트학파의 범주를 이 이중 계시설에 그대로 옮겨서 궁극적으로 보아 본체의 세계는 현상계의 영역을 탐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고 말하기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입장은 참으로 기독교적 과학적 방법론 철학을 수립할 수 없다. 이를 수립하려면 현대 과학적 방법론의 대부분의 저변에 흐르는 거짓된 형이상학적 기초들 곧 성경과 과학 간의 관계에 대한 신복음주의 견해에 가장된 듯한 기초들을 도전해야 한다. 만일 과학이 자기 직무를 다하려면 성경만이 제공하는 전제들이 필요하다.

이 신복음주의의 과학에 대한 분석과 개방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가 정연치 못함을 볼 때 그것이 진화론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라고 정당한 우려를 표시하는 자가 많다. 카넬이 진화의 임계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전한 것이 공격을 받았다. 비록 카넬이 그 용어 사용을 충분히 모르고 했다고 해도 좌우간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누가 카넬의 입장을 지적했듯 이런 문구는 약간 거짓된 가장으로 현금 진화론자들의 흥미를 끄는 언어의 환영을 이룰 뿐이다. 카넬의 현행되는 과학상의 술어를 반대의 뜻으로 사용함으로 그러므로 불필요한 변명의 모험을 무릅씀이다.

3. 사회적 행위에 대한 제안과 이의 비판들

신복음주의는 사회적 필요에 대한 확실한 반응과 성경적 사회윤리를 촉구한다. 많은 신근본주의자들에게는 이것이 사회복음주의로 돌아가는 것처럼 들려 강한 규탄을 받았다. 동시에 신복음주의는 역시 그들의 개개인의 책임들을 기준으로 그들의 사회적 책임들을 측정하는 위험을 무릅쓴다. 다수가 특히 칼빈주의 진영에서 신복음주의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제안을 경건주의의 현대판이라 공격하며 그리스도의 공동체적 몸으로서의 교회의 속성을 무시하고 노동, 교육, 정치, 사회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적 해답을 요구치 않는다고 비판한다.

4. 자증하시는 그리스도와는 불일치한 변증

그들은 자증하시는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하는 변증을 하지 않는다. R. 내시는 이 운동의 주요 인물 칼 헨리, 카넬, 고던 클라크, 버나드 램등이 말하는 바에 공동의 의향이 있음을 잘 보았다. 이것이 전제주의라고 불러져야 할 것인지 코넬리우스 반틸의 이름을 이들과 함께 관련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끝으로 그들이 18세기-19세기의 버틀러, 페일리 및 기타의 인물들의 변증의 방법의 기초와 다른 기초 위에 선 기독교의 변증을 하고 있는가는 입증하기 어려운 가상들이다.

반면에 이 모두는 하나님에서 출발함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신토마스주의의 자연신학의 가상들을 거절하려 하고 신앙이 현대과학의 자연주의 가운데까지 행사하는 역할을 강조하려 한다. 그런데도 반틸은 자기 입장과 그들 사이에 거리를 두며 누누이 천명한대로 이들은 이상의 원칙들과 아울러 비모순의 법칙(카넬), 진리를 시험하는 이성의 작용으로서의 논리(고든 클라크), 희랍 유신론(칼 헨리)을 그들이 사용하는 범주로 혹은 전제들로 강조한다. 그래서 바로 이 점에 이 변증학의 기본적 약점이 있다. 반틸은 그들의 약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그것은 저급한 형의 비기독교 사상을 반대하기 위해 고급형의 비기독교와 손잡고 나아가 최고급형의 비기독교 사상도 제공치 못하는 더 놓고 더 독특한 것에 이르려는 시도이다. 이 방법의 난점은 최고 형식의 비기독교가상도 최저급의 비기독교 사상과 동일한 기초 위에 서 있는 사실이다. 이 기초는 자존인 체 스스로 해석이 가능한 체하는 인간이다. 최저급의 비기독교 사상 못지 않게 최고급의 형식도 세계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지 않고 우연에 의해 존재한다고 가상한다. 만일 이것이 참이라면 사람이 신의 존재를 위한 변론을 구성하는데 사용하겠다고 생각하는 논리적 추리의 법칙들 자체도 우연의 소산이다. 이 터 위에서는 모순의 법칙 자체도 우연의 산물이다. 조직적 연관성이란 관념이 모두 무의미할 것이다.”

 


[출처] 미국 복음주의 동향- 한상화 (바로선개혁교회) | 작성자 아리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