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1)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행 13; 16-24
경륜과 역사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경륜을 알면 역사가 보이고, 역사를 들여다 보면 경륜을 알 수 있습니다. 경륜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경륜을 이루시며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여선교회 회원들이 설악산에 가서 하룻 밤 쉬러 가기로 하고 출발하였습니다. 대형 뻐스가 서울을 출발하여 설악산으로 갑니다. 설악산에 간다는 계획은 움직일 수 없는 목표입니다. 그러나 뻐스 안에서 노래를 부리고, 기도를 합니다. 휴게소에 들러서 화장실도 가고 커피로 한 잔 마십니다. 그런 것은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불러 사용하시다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폐하시고 다른 사람을 불러 사용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을 하나님의 경륜을 위하여 역사속에 불러 쓰시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불러 쓰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불러 사용하신 이유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다윗을 쓰셨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22)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는 지 그 이유는 본문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라는 이름은 구약에 800번 가량, 신약에 60번 가량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인입니다. 정치가입니다. 제사장입니다. 군인이자 지도자입니다. 왕이자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어떤 성품을 지녔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일까요?
1. 섬기는 사람
다윗은 섬기는 데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섬기는 생애였습니다. 어려서는 양을 섬겼습니다. 8형제가 갈이 살고 있었지만 다윗 혼자서만이 들판에서 양을 칠 때가 종종 있었던 것같습니다. 7 형제가 다 사무엘 앞에 섰을 때 다윗만 혼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더라도 다른 목동과 달랐습니다. 항상 양을 세 종류로 나주었습니다. 어린 양, 병든 양은 따로 기르면서 막 피어나는 연한 물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건강하나 아직 어린 양은 보통 풀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양들은 억센 풀을 먹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아! 네게 양을 맡겨 보니 너무나 잘 돌본다. 네가 내 백성을 맡겨도 그렇게 잘 할 것같다. 내가 너를 왕으로 삼으리라”
다윗은 어려서는 양을 섬겼고, 청년 시절에는 사울 왕을 섬겼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다윗은 사울을 섬겼습니다. 사울 왕이 병들었을 때 수금을 가지고 가서 연주하여 주었습니다. 다윗이 기분좋게 악기를 연주하여 줄 때 악귀가 나가고 사울의 병이 상쾌하게 나은 적이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는 온 백성들을 정성껏 섬겼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으려고 엄청난 금을 준비하였습니다. 금만도 10만 달란트를 준비하였습니다(대상29;3-5) 10만 달란트는 우리 돈으로 약 9조원입니다. 200억 정도 교회 45,000개를 지을 수 있는 돈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양이나 사람이나 하나님이나 모두를 잘 섬기는 사람을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국에 귀족을 공작이라고 합니다. 공작이라는 뜻은 정말 훌륭합니다. <누구보다 먼저 앞을 내다 보고, 전진할 때 선두에 서서 길을 인도하고, 적에게는 제일 먼저 대 들어야 하며, 공격을 당할 때에는 제일 먼저 희생 당하는 자> 라는 의미입니다.
영국에서 수상이라는 말은 <수석 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잘 섬기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교황으로부터 성자란 칭호를 받은 이가 있었습니다.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입니다. 로마의 한 수도사가 그 성자를 보고 싶어 일부러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수소문하여 찾아 찾아 가서 만나고 깜짝 놀랐습니다.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초라하게 구두를 수선하고 있었습니다. 수도사가 물었습니다.
“당신을 향하여 성자라고 하는 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왜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성자라고 말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삶의 철학 한 가지만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두를 맡기면 나는 언제나 예수님의 구두를 수선하는 마음을 가지고 수선합니다. 나를 찾아 오는 사람을 예수님을 섬기는 것처럼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섬기는 마음이 그를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난하지만 남을 정성껏 섬기기를 좋아하고 성실한 청년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에 충성하였습니다. 그 교회에 미국인 선교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어느 날 장작을 좀 쌓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선교사집 귀퉁이에 장작을 힘들여서 잘 쌓았습니다. 힘들게 다 쌓고 나니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이 곳은 비가 맞을 염려가 있으니 저 쪽에 다시 쌓아 주시겠습니까?”
그 청년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유학 비행기 표와 유학 허가증이었습니다. 그 선교사는 일년동안 그 청년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하여 본 것이었습니다. 성실성, 정직성 그리고 충성성 그리고 남을 섬기는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을 섬기는 사람을 축복하시며 마음에 합하다고 하십니다.
2. 회개하는 사람
다윗은 죄를 안 지은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지었을 때 멋진 회개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였습니다. 죄가 탄로날가 두려워 하면서 남편 우리아 장군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습니다. 침상이 눈물에 뜰 정도로 울었습니다. 철저한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더중요한 것은 그 후 다시는 그 죄에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회개가 멋있고, 회개한 후가 깨끗하였습니다. 다윗은 회개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점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된 동깁니다.
스탈린이 공산주의를 만들 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소위 KGB 비밀 경찰대를 만들어서 왠만하면 살린 것이 아니라 왠만하면 죽여 버렸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알려졌습니다.
스타린이 어느 날 한 마을에 가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밤 중에 개가 짖어 댔습니다. 스타린은 옆에 있는 신하에게 “밤잠을 못 자게 하는 저 놈을 죽여 버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가서 개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돌아 와서 “죽였습니다”라고 보고하였습니다.
“무엇을 죽였나?” “개를 죽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스타린은 말했습니다.
“아니 개 주인을 죽이란 말야”
신하는 총을 들고 뛰어 나갔습니다. 조금 후 총소리가 나자 스타린은 평안하게 잠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수 천만명을 죽인 사람이 스타린입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철저한 회개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점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칭찬받는 사람
다윗은 누구에게나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라고 하는 말 자체가 <극진히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1) 스데반이 칭찬하였습니다.
최초이 순교자 스데반이 다윗을 이렇게 칭찬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행7;46)
(2)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윗을 칭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났을 때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모세는 최고의 선지자로, 다윗은 최고의 왕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도 예수님을 부를 때 “다윗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습니다.
(3) 다윗의 원수 사울도 다윗을 칭찬하였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엔게디 굴속으로 숨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 굴속으로 들어와 피곤하니까 잠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옷자락만 베었습니다. 그리고 굴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사울 왕이 한 잠 자고 나왔습니다. 그 때 다윗은 옷자락을 높이 들고 말했습니다.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삼상24;11-16)
이 말을 듣고 사울 왕이 다윗을 칭찬하였습니다.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삼상24;17)
(4) 가까운 신하들이 다윗을 칭찬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인 베들레헴을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을 그리워 하며 말했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대상11;17)
이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세 신하다 목숨을 걸고 들어가서 우물 물을 길어 왔습니다. 신하들이 무심코 한 말에 목숨을 걸 정도였습니다. 물을 길어 왔을 때 다윗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그 물을 땅에 쏟으며 말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대상11;19)
이렇게 말 한 마디에 생명을 걸 정도로 대단히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로부터 존경받는 남편으로부터 인정받는 아내, 자기 교회 교인들로부터 존경받는 목사가 정말 참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가까운 사람이 칭찬하는 사람이 참 된 사람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목사님은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성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 부목사는 얼마나 욕하는 지 아주 대조적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칭찬하여야 진실입니다. 다윗은 신하들이 칭찬하였습니다.
(5) 하나님이 칭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이같이 다윗은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윗은 완성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22)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죽었습니다.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 도중에 죽는 사람도 비일비재합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대합니다. 우리는 잘 살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잘 죽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잘 죽는 것도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일을 다 이루고 죽게 축복하셨습니다. 하여야 할 일을 다 하고 하나님 앞에 가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서울 총각과 강원도 처녀가 결혼을 약속하였습니다. 결혼식 날을 잡았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강원도로 내려 갔습니다. 신랑은 부유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 갔습니다. 대단한 행렬이었습니다. 강원도 시골 마을이 떠들석할 정도였습니다. 모두가 어리둥절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부조차 그 날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결혼을 약속하여 놓고 갈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고 왠 일이요?”
신부가 오히려 놀라며 물었습니다.
“오늘이 아닙니다”
“오늘이요?”
신랑은 수첩을 보이며 소리를 지르듯이 말했습니다.
알고보니 신랑은 양력으로, 신부는 음력으로 날자를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는 한 달 차이가 났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았습니다. 신랑신부 마음이 맞지 않아 결국은 깨진 결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 가요? 다윗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 섬기는 사람
2. 회개하는 사람
3. 칭찬받는 사람
그래서 모든 뜻을 다 이루고 하나님앞에 간 사람입니다. 인물을 보면 인격이 보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는 은총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윗(2)
다윗의 정치 철학
대상 11;4-9
무슨 일을 하든지 철학이 분명한 사람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하여서는 아무렇게나 됩니다. 배는 아무리 커도 키가 움직이게 합니다. 나는 유럽에서 크루즈 배를 탄 적이 있습니다. 10,000 명 타는 거대한 배입니다. 7층이었습니다. 길이가 200m였습니다. 거대한 섬이 움직이는 것같았습니다. 파도가 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배였습니다. 그렇게 큰 배도 결국은 조그만 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철학입니다. 그 철학이 결국은 그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싱가폴 수상 이 광요는 취임하면서 <12345 꿈>을 가지고 정치를 하였습니다.
1. 하나의 아내
2. 두 자녀
3. 세 방 가진 내 집
4. 네 바퀴 달린 마이카
5. 주급 500불
이 광요는 이를 이루겠다는 일념의 철학을 가지고 수상직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완성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 가운데 그래도 인정을 받고 나라를 사랑한 대통령은 박 정희입니다. 그는 <오직 조극 근대화>라는 철학을 굳세게 가지고 부르도자처럼 일하였습니다.
전 두환은 정치철학이 없었습니다. 오직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유모어가 있습니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하고 수 백억원이 탄로났을 때 이런 유모어가 나온 것입니다.
<이 주일과 전 도환이 공통점 세 가지>
1. 둘 다 머리가 벗겨졌다.
2. 둘 다 TV에 자주 나온다.
3. 둘 다 엄청 웃긴다.
정치 철학이 없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정치 철학이 분명한 분이었습니다.
링컨은 한 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으로 불리웠습니다. 어머니는 사생아로서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사는 여자였습니다. 네 살 때 동생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돌아 가셨습니다. 열여덟 살 때 사랑하는 여동생이 죽었습니다. 아내가 정신이상자가 되었습니다. 두 아들이 그의 품에서 죽었습니다.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좋은 친구들을 다 잃었습니다. 정치계에 들어 갔으나 당선되지 못 하고 낙선만 거듭하였습니다.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때 링컨은 이런 철학을 가졌습니다.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또한 주인이 되고 싶지도 않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한 존재다>
그래서 노예를 해방시켰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려고 애를 썼습니다. 철학은 그 사람을 움직이는 키입니다.
미국 현 대통령 부시도 정치 철학이 분명한 분입니다.
미국을 움직인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강력하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커서 큰 사람이 되었습니k다. 여자들의 너무나 중요합니다.
부시 전대통령과 부인 바바라 여사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한 번은 부시의 동생 조나단이 야구경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 와서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홈런을 날렸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이 때 어머니가 엄하게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네 자랑은 하지 다.중요한 것은 네 팀이 어떻게 됐느냐는 것이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단다>
지도자는 개인보다 전체를 생각하여야 한다는 엄한 교육을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배우며 자랐습니다.
<개인보다 전체>
이것이 부시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 되었습니다. 철학이 분명한 사람은 무엇인가 해내고 맙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른 왕의 무덤은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의 무덤은 예루살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정치 철학은 무엇이었을 가요?
1. 말씀 중심
본문을 보면 다윗의 정치 철학은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정치하는 것이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토인이 거기 거하였더라. 여부스 토인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 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4-5)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에게 다시 확인하셨습니다. 야곱에게 다시 보장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와 보니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7족속이 자리를 차지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7 족속을 다 죽이거나 내쫓거나 종으로 굴복시켜야 그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 됩니다. 그래서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곳 한 곳 점령하여 나갔습니다.
드디어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들이 차지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간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말씀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 다윗이 시온 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다윗은 인간의 말에 좌우되지 않았습니다. 그 땅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강하였습니다. 여부스족도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말씀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으면 주실 것이라고 하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드디어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정치 철학이었습니다.
대청산에 눈이 덮여 있을 때 나는 눈위에 엎드려 하나님께 우리 교회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12345의 꿈>을 주셨습니다. 나는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믿음의 철학은 놀라운 역사를 창조하게 됩니다.
<기도는 기적을 만든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완도에서 가난하게 대어난 이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서 개구리를 잡아 먹으며 살았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아르바이트생으로 골프연습장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깨 너머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 바로 프로골퍼에 입문하였습니다. 비교적 잘 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합에 임하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6년 동안 출전하였는 데 한번도 입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승을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계속 우승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들이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등수에 들지 못 하였었는 데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우승만 하게 됩니까?>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올해 신앙의 눈을 떴습니다. 경기에 앞서 반드시 기도를 드립니다. 위기 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줄을 그어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응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믿고 담대하게 공을 칩니다 이것이 우승의 비결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최 경주 골퍼(29)입니다.
말씀 중심 철학- 이것이 다윗의 철학입니다.
2. 일 중심
다윗의 정치 철학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일 중심이었습니다. 노 무현 대통령은 자기 주변에 사람을 고를 때 우선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박 정희 대통령은 차 지철을 경호실장으로 부를 때 무엇이 기준이었습니까? 자기를 위하여 생명을 걸 사람을 선택하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혁명을 일으킬 때 당시 차지철은 대윗였습니다. 대위가 감히 권총을 들고 장군에게 들어가 총을 들이 대며 <같이 혁명 대열에 동참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라고 들이 댄 사건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충성을 하니까 박 정희가 그를 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떤 사람을 자기 주변에 같이 일할 사람으로 선택하였습니까? 오늘 본문에 그 방법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먼저 여부스를 점령하는 사람에게 장군 자리 준다>
요압이 먼저 나가서 생명을 걸고 여부스를 점령하고 돌아 왔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장군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임명하여 일을 시키지 않고 일 한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다윗의 정치철학이었습니다.
일도 하지 않고 아부하고 뇌물을 주는 이를 들어 사용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에게 충성한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에게 소위 감투를 주고 길르고 있음을 본문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 일 많은 신혼부부에게 인기쑈 입장권 두 장이 배달되었습니다. 봉투 뒤에는 보낸 사람 이름이 적혀 있지 않고 다만 이렇게 적여 있었습니다.
<누가 보냈겠나 알아맞혀 봐요>
도무지 누가 그렇게 비싼 표 두 장을 보냈는 지 짐작이 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하여 보다가 포기하였습니다. 부부는 할 일이 태산같은 데 다 뒤로 미루었습니다.
<일은 나중에 할 수 있지만 저 쑈는 입장권 날자를 못 맞추면 영영 볼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극장에 가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오랫 동안 가졌습니다. 보기 드문 즐거운 쑈였습니다. 밤늦게 집에 돌아 왔습니다.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온통 방안이 수라장이었습니다. 값나가는 물건을 모조리 도둑놈이 가지고 가고 말았습니다. 여유있게 담배도 피웠고 앉아서 술도 느긋하게 마신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엌 탁자에는 쪽지 한 장이 놓여있었습니다.
<이제 알겠지!>
자기 할 일을 잃어 버리고 사는 이를 다윗은 일군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걸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이미 일한 사람을 일군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우선 보여야 합니다. 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오래 전 <라이프지>에 실린 유모어 기사입니다.
2차대전 후 각 나라 사람들을 싣고 가던 B29 비행기가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뛰어 내려야 살 수 있습니다. 곧 비행기가 폭팔할 것같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겁이 나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낙하산이 주어졌지만 훈련도 받지 못 한 이들이 낙하산을 짊어지고 뛰어 내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장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지혜를 짜냈습니다. 기장은 독일인을 보고 말했습니다.
<히틀러의 명령이다. 뛰어내려!>
독일인은 <하이! 히틀러>하고 뛰어내렸습니다.
다음으로 일본인을 보고 말했습니다.
<천황폐하의 명령이다>
일본인은 이 말을 듣자 <쏘데스까>"하고 뛰어내렸습니다.
기장은 프랑스인에게 말했습니다.
<먼저 뛰어 내린 저 모습을 보십시요. 스타일이 멋지지 않소. 뛰어내려요>
프랑스인은 서슴치 않고 뛰어 내렸습니다.
기장은 미국인 승객에게 말했습니다.
<모두들 뛰어내리는데 민주주의 원칙을 따라야지요>
미국인은 이 말을 듣자 말자 뛰어내렸습니다.
이제 보니 한국인이 하나 남았습니다. 기장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뛰어내리는 것은 공짜요>
이 말을 들은 한국인은 <진짜로 공짜입니까?> 하고 뛰어내렸습니다. 무슨 유모어입니까?
나라마다 움직이는 것이 있습니다. 일중심이 아닙니다. 철학이 없습니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분명한 철학이 있습니다. 다윗을 움직이게 하려면 일하면 됩니다. 목숨을 걸고 일하면 다윗의 마음에 들게 됩니다. 일하는 사람을 다윗은 일군으로 불러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정치철학입니다.
3. 완성 중심
다윗의 세 번째 정치 철학이 있습니다. 말씀 중심, 일중심이었지만 언제나 부족을 메꾸어 나가며 완성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가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한 고로 무리가 다윗 성이라 일컬었으며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남은 성은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7-9)
다윗이 여부스 족속 땅을 점령하고 나니 불완전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밀로에서부터 성을 쌓았습니다. 지금도 다윗이 그 때 쌓은 밀로부터의 성이 그대로 있습니다. 나는 다윗이 쌓은 밀로 위에서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며 실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 밀로는 지금도 그대로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차차 완성하여 나가는 것이 다윗의 정치 철학이었습니다. 누구나 불안전합니다. 무엇이나 처음부터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완전을 향하여 나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하던 중에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였습니다. 이들을 도와 주는 이가 있었습니다. 둘이는 서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갚자고 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남의 도움을 받고 공부하였으니 남에게 도움을 주자고 굳게 약속하였습니다.
그 후 남편은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약속한지 40년이 지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는 아내와 둘이서 경희대 평화 복지 대학원에 장학금으로 1억원을 헌금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하자 <40년 전에 약속을 지킨 것뿐입니다>라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그가 82세 된 한 표욱씨입니다. 그는 1억원을 헌금나서 말했습니다.
<허허 이제야 약속의 부담의 짐을 덜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완성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정치절학이 분명하였습니다.
1. 말씀 중심
2. 일 중심
3. 완성 중심
이런 정치 철학을 가지고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놀라운 보상을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보상이 무엇입니까?
9절 말씀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론 이렇게 하니까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갔습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