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에베소서 4:22-24

하나님아들 2020. 12. 31. 12:27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에베소서 4:22-24

 

지나 가는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깊이 묵상해야 할 말씀은 오늘 본문 말씀과 에베소서 4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우리는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생활 방식, 곧 부패해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정신이 새롭게 하라.” 예수 믿기 전의 생활방식 곧 나를 부패하게 만드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망년회를 연다고 합니다. 묵은해를 떠나보낸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냥 묵은해를 떠나보내면 우리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묵은해와 더불어 옛날의 잘못된 생활 방식과 나를 부패하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만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옛것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격이 비뚤어진 사람들을 보면 대게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에 안 좋았던 일들을 너무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망각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옛것을 잊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2009년도에 안 좋았던 기억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18절에도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가능하면 올 해의 좋지 않은 기억들 뿐 아니라 평생 동안 뇌리 속에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지우고 새날을 맞이해야만 합니다.

 

 

바울 선생은 빌립보3:13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만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쫓아갑니다.” 우리가 이 해가 가기 전에 좋지 않은 습관은 벗어버리고 좋지 않은 기억들은 모두 지워버리고 가야만합니다.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과 미래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늘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줄에 묶인 개와 같습니다. 개는 줄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으나 줄의 한계를 초월해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과거의 영광에 묶인 사람도 있고 과거의 실패에 묶인 사람도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만이 자유의지가 있는 진정한 사람입니다.

원하는 대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비록 과거에 실패의 아픔이 있었어도,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에 하나님께서 펼치실 소망과 꿈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은 광야에서 애굽을 생각하고 애굽을 그리워했던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은 광야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고 결국 가나안 땅의 가장 많은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불평과 원망 증오를 지워버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땅을 바라보며 전진할 수 있도록 옛것을 벗어버려야만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려면 자동차를 잘 관리해 주어야만 합니다. 옛날 30-40년 전에 나왔던 포니나 브리샤를 자동차를 아직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한 결같이 말하기를 자동차 관리만 잘하면 몇 십 년은 거뜬히 타고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엔진 오일을 갈아주는 일입니다. 엔진 오일을 제때에 갈아주지 않으면 엔진에 무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5000-1만 Km 주행 후에 엔진오일과 오일 필터를 갈아주어야만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날과 달들을 주셨고 해가 바뀌게 해 주셨습니까? 인생의 묵은 찌끼들을 버리고 새것으로 새 마음으로 출발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19-20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새사람, 새 마음을 가지면 광야 같고 사막과 같은 인생이 강과 시내와 같은 생명의 젖줄이 흐르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한 것처럼 묵은 마음들을 비우고 하나님 앞에서 새 마음을 갖는 성도들에게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젖줄이 흐르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죄 짐을 벗어버리라

본문 24-25절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오늘 읽은 말씀에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죄는 바로 예배에의 실패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예배에 실패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전은 파괴 될 것이고 성전의 어른들은 욕보임을 당하게 되며 이스라엘 민족은 저주를 입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3절에는 저들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제사를 드렸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마땅히 하나님을 섬겨야할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려야할 예배와 제사를 등한히 하며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일입니다. 24절에 보십시오. “네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등한히 여기는 백성들을 버리려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당신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 백성들의 죄를 다 없애버리고 그 죄를 기억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자식이 죄를 지었다고 자식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식의 죄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지만 결국 자식의 죄를 용서해주며 그 죄많은 자식을 다시 품어주는 것이 부모입니다.

성도 여러분 2009년 예배를 등한히 하고 기도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죄를 다 벗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해야만 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도 예배를 등한이 하면 회개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인생이 하나님말씀에 둔해지기 때문에 죄가 맞습니다.

본문에 죄라고 하지 않고 죄 짐이라고 말한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무거운 짐이 됩니다.

326장 찬송가에 “죄 짐에 눌린 사람은 다 주께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을 고달프고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죄 짐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얽매어 놓고 행복하지 못하게 하고 축복받지 못하게 하고 새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죄 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버리느냐? 죄가 건축폐기물과 같아서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슬쩍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버리는 방법은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고 회개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여기 피아노는 찬양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피아노가 고장이 나서 예배를 돕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지은 존재이며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은 나를 위해 지었고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모른 채 살아가기 때문에 산만한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고 살아갈 때 곧 지어진 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집중력이 생기고 더욱 풍성한 삶을 살게 합니다.

 

 

미국 새들백 교회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 갈 때에 5가지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1) 목적을 아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우리의 삶에 귀중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목적을 알면 우리의 삶이 단순해집니다. 목적을 알 때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갈 곳과 못 갈 곳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헛된 것에 우리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됩니다.

3)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목적이 있고 삶에 초점을 찾은 사람들은 인생을 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돋보기로 태양과의 초점을 잘 맞추면 종이를 태우듯이 목적이 분명하면 더 강력한 힘을 갖게 합니다.

4) 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됩니다. 목적은 열정을 만들어내고, 그 목적을 향한 열정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5) 목적을 앎으로서 영생을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면 세상적인 것,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쾌락이나 무슨 일에 그렇게 연연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잠간 지나가는 것이고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며 사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적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감사와 찬송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수년 전 미국의 프란시스 로셔 박사와 고든 쇼우 박사가 이색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6개월간 모차르트 곡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은 미취학 아동들이 그렇지 않은 아동들에 비해 뛰어난 학습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특히 수학과 과학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좀 더 확실한 근거를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봤는데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쪽엔 10분간 모차르트 곡을 들려주고, 다른 한쪽은 들려주지 않고 수학과 과학 시험을 보게 했답니다. 그랬더니 음악을 들은 쪽 학생들이 반대쪽 학생들에 비해 평균 30%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음악은 어떨까 비슷한 실험을 했답니다.

 

 

록 뮤직(rock music) 등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고 시험을 치렀더니 평소보다 낮은 점수가 나왔다고 합니다. 참 신기하죠.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식물들도 음악에 대해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의 도로시 리틸락 박사는 하루 3시간 록 뮤직(rock music)을 식물에게 들려주었더니 애호박에 주름이 생기고, 토마토가 납작해지고, 옥수수가 구부러졌다고 합니다. 반면에 왈츠나 세레나데를 들려준 식물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열매도 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여러 면에서 유익하다는 사실입니다. 두뇌 활성화, 학습 능력과 생산성의 향상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장애나 질병을 치료해 준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음악 치료학’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누군가 음악을 가리켜 ‘영적인 언어’라고 했는데, 이 말처럼 음악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음악을 선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이 있습니다. 무엇이죠? ‘찬송’입니다. 찬송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맑게 해 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들어오게 합니다.

 

 

 

찬송은 승리의 능력입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펄 벅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모는 중국 선교사였습니다. 한번은 그 어머니 캐롤라인이 마침 남편이 전도 여행을 떠나고 집에 아이들 셋만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무렵 밖에서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중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내용인즉 가뭄으로 온 동네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게 다 서양인들이 들어와서 신이 노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밤이 깊어지면 처치하자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캐롤라인이 질겁했습니다. 대책이 없어 그냥 골방에 들어가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용기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중국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러나 캐롤라인은 침착하게 그들을 맞이하였고 다과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어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했고, 신기하게도 중국인들은 얼굴을 마주보면서 멋쩍어하다가 하나 둘씩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역시 찬송 중에 임하셔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찬송하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찬송을 잃으면 은혜를 잃게 됩니다. 찬송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죄 아래 머물러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새해에는 찬송으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해가 되어야겠습니다.

 

 

모든 것의 위에계신 왕되신 하나님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우리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시오. 거룩한 하나님이시며 창조자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왕되신 하나님이십니다.

43:4 “ 내가 너를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여겨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 내가 다른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네 생명을 구하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여겨 사랑하였다고 했습니다.

16절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군대가 쫓아와 진퇴양난의 위기에 닥쳤을 때에 홍해를 육지처럼 갈라서 하나님 백성이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게 해 주심을 말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지나간 한 해를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막히고 힘들고 넘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 나의 왕 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잘 아는분 이야기가 빠져선 안 되겠지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랭킹 1 ~ 3위를 오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보십시오.

1960년대 초반 고등학교 때 그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외교관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우리나라 국력을 볼때 누구도 그 기도의 실현을 믿지 않았습니다.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죠.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기도하지 않은 채, 찬송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대로 살지 않으면서 걱정하고 염려하며 올 한해를 또 사시겠습니까?

 

이제 작년에 하던 염려는 버리십시오.

안 될지도 모르겠다, 불가능하다는 부정적 생각은 버리고 왕 되신 하나님의 손을 굳게 잡고 새 출발하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