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사전

구원의 확신과 영적성장

하나님아들 2020. 10. 14. 17:03

구원의 확신과 영적성장

 

 


구원의 확신은 교파적인 쟁점으로 바뀌었다:

1. 로마 카돌릭의 신학은 이 세상을 살면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을 부인하고, “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 확신을 두게 한다.

2. 존 칼빈(개혁 전통)은 확신을 선택(예정)에 두지만,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삶 이후에 심판의 날 때까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칼빈은 예정론 아래 참조).

3. 요한 웨슬리(감리교 전통)는 완전한 사랑(알고 있는 죄를 넘는 사랑)에 확신을 두고 있다.

4. 많은 침례교인은 거저 주시는 은혜라는 성경의 약속에 확신의 근거를 두는 경향이 있다(그렇지만 경고와 권고는 모두 무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확신에 대한 신약의 역설적 제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위험성이 있다:

1. “한 번 구원받았으면 언제라도 구원받았다”라는 것의 지나친 강조.

2. 구원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행위에 대한 지나친 강조.

인간의 노력(선행)은 신자가 구원받은 것을 유지하도록 돕지 않는다(참조, 갈 3:1-14). 그러나 선행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다(참조, 엡 2:10). 이것은 하나님을 만난 일과 내주 하시는 성령을 모신 것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진정한 회심의 증거이다.



구원의 확실성과 교제, 회복
우리가 믿는 순간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고 그 영원한 관계는 취소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을 사용해 나타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하나님께서 이 연합의 안전 보장을 위한 모든 것을 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지위를 취소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우리는 결코 우리 멋대로 하도록 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붙들려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덕성, 순종, 선행이나 종교적인 관습의 준수 따위로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우리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은혜로써 그리고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것이지 결코 우리가 얻어냈거나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므로, 우리의 구원을 잃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또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 것처럼 우리의 영생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보장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가 주신 것은 끝까지 보장하십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 1:4-5 후).

한 사람의 신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손에서 빼앗기지 않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함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 절대적인 기준에 의하면 은혜로 얻은 값진 구원을 우리의 실수로 상실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하는 수단을 제공하며 영적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적인 상태에 빠지면, 구원(하나님과의 영원한 법적인 관계)은 상실하지 않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의 관계는 멀어지거나 소원해 집니다. 육적인 상태란 죄성의 지배하에 있는 하나님과의 교제 밖에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영적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육적일 수 없습니다. 그 둘은 상호 배타적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기로 결정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원 밖으로 나오게 되며 이 땅에서 일시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는 육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회개(영적 리바운드)를 하면 다시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요한일서 1:9)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님 아버지께 고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원 안으로 되돌아갑니다. 농구 경기에서처럼 리바운드를 함으로써 점수를 얻고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에서도 우리는 리바운드를 함으로써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일시적인 교제 관계를 나타내는 원 안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R. B. THIEME, JR."의 'OLD SIN NATURE vs. HOLY SPIRIT(죄성과 성령의 대결)'에서]



• 칼빈의 예정과 선택
<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에 따른 영원한 작정 >

예정의 경륜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 아무도 신적 경륜에 대한 이유를 물을 수 없다. 진흙이 토기장이와 쟁론하여 그릇의 어떠함을 다툴 수 없듯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마15:13)

유기가 없다면 선택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예지하시되 그냥 방임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작정대로 주장하신다. 하나님의 뜻에서 우리는 사물들의 필연성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의 넘어짐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죄악 때문에 넘어진다. 타락의 원인은 그분의 예정에 있지 않고 사람의 불순종에 있다. 그러므로 예정론이 무책임한 사람을 만든다는 비난은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의 예정은 편파적이지 않다.
구원에는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나 성품에 따른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공의의 하나님이 유기된 백성에게는 마땅한 형벌을 부과하시고 선택된 백성에게는 공로없는 은혜를 베푸신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값없는 은혜를 나누어 주시지는 않는다. 그분은 구원주시며 동시에 심판주 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으므로 만인에게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하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을 확신하는 사람마다 거룩한 생활을 힘쓰게 된다. 성도의 거룩한 삶은 성령의 은밀한 역사로 확신되는 ‘내적인 소명’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선택의 보증이 된다.

만세 전 하나님의 선택이 그리스도 안에서 협약되었다.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라면 무조건적 선택이 무의미하다. 무조건적 선택의 값없는 은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부터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출처: https://mybiblenotes.tistory.com/398?category=884687 [묵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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