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복음서!!!

복음서 개관손재익 목사

하나님아들 2020. 8. 30. 23:51

복음서 개관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1. 복음서란 무엇인가?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을 예수님의 제자들이 설명한 책이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직접적으로(마태, 요한) 혹은 간접적으로(마가, 누가) 목격하였고, 그 목격한 것을 기록하였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 아래 나름대로의 관점에 따라 사실들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관점들은 모두 예수님을 통한 구속사의 성취를 지향한다.

 

 

2. 각 복음서의 명칭

 

     복음서가 처음 기록되었을 때에는 ‘복음서’라는 명칭이 붙여지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마태에 의한 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마가에 의한 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rk) 등과 같은 명칭은 주후 2세기 중순이나 말경에 붙여졌다.

     그러나 누가, 왜, 그리고 언제 이런 명칭을 붙였는지는 여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마가복음이 이 명칭을 붙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마가복음1:1에 ‘복음’(gospel,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에서 책의 명칭이 유래한 것 같다.

 

 

3. 왜 복음서는 네 권으로 되어 있을까?

 

1) 왜 복음서는 4권으로 되어 있는가?

     복음서가 네 권이라는 사실은 일찍부터 사람들을 혼란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시리아의 변증가인 타티안(Tatian, 주후 165년)은 사복음서를 조합하여 ‘디아테싸론’(Diatessaron, 4복음조화서)이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이는 ‘넷을 관통함’이라는 뜻이다. 그는 디아테싸론을 만들면서, 마태복음을 기본적으로 따랐으며, 다른 복음서들을 필요한 곳에 적절히 집어넣어서 총 55장(sections)의 두꺼운 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책은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했으며, 예수님의 행적과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원래 이 책을 헬라어로 기록했으나, 지금은 다른 언어로 기록된 것만 남아 있다.1)

     이후에 리옹의 교부 이레니우스(Irenaeus, 주후 2세기 말)는 바람이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불고 방위도 동서남북 네 방향이 있듯이 복음서에 네 권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는 복음 저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의 차이에 따라 복음서들이 다양하게 지어졌다고 주장했다. 즉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고, 마가복음은 예언을 중요하게 여기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을 드러내고,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서의 다양성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네 얼굴 가진 짐승에 비유하여, 마태복음은 사람, 마가복음은 독수리, 누가복음은 송아지, 그리고 요한복음은 사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2) 하지만 이레니우스의 이러한 설명과 대조는 지나치게 인위적이다. 우리가 복음서를 자세히 연구해 보면, 그의 말에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레니우스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복음서의 측면을 인유적으로 설명하려 했지만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거스틴(Augustine)과 칼빈(Calvin)은 사복음서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복음서가 네 권인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즉 복음서가 네 권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네 권의 복음서를 주셨으며, 이들 네 권의 복음서는 ‘놀랄만한 조화’(astonishing harmony)를 이루고 있고, 결국 우리가 네 권의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에 관하여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어거스틴은 『복음서 기자들의 일치에 관하여』(On the Agreement of the Evangelists) 라는 저술을 통하여 복음서들 간의 불일치에 대한 비평에 반박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겼다.3) 비록 이 작품이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수세기 동안 제 목소리를 내었다. 어거스틴은 복음서 기자들이 같은 사실을 소개함에 있어서 서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으로 무리한 해결책들을 피했다. 어거스틴의 작품은 중세 시기에 장 카를리에 게르송(Jean Carlier Gerson)에 의해 재개되어 완성되었다. 그는 ‘모노테사론’(Monotessaron)이라는 저술을 통해 네 복음서를 종합해서 하나의 문서로 만들었는데, 이는 네 복음서의 본문 전부를 결합하여 제5의 통합된 역사적 이야기를 엮어냈다. 게르송의 작품은 어거스틴의 원칙들에 근거하여 만든 한 칼럼(single-column)으로 된 ‘조화 복음서’(harmony of the Gospels)였다.4)

     칼빈은 복음서 주석의 헌사에서 말하기를 복음서는 ‘사두(四頭)마차’(quadriga)와 같다고 비유하였다. 어거스틴은 네 복음서 기자들을 온 세상 방방곡곡에 울려퍼져 동서남북에서 모인 교회가 믿음으로 하나되어 한 길을 가도록 불어대는 네 나팔에 비유하였다.

     19세기 들어 성경에 대한 비평의 입장을 취하는 자들은 ‘조화’라는 단어에 극도로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았고, 복음서들은 조화될 수 없고 부분적으로 서로 상충된다고 하는 관념이 하나의 교리가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 지금도 여전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이다.5)

 

     복음서는 한 권이 아니라 네 권이다. 복음서는 각기 다른 네 명의 사람들에 의해 각기 다르게 기록되었다. 즉 이들은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해설했던 것이다. 복음서가 4권의 책으로 교회에 주어진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 은혜이다. 즉 다양한 각도에서 비치는 주님과 그 사역을 보여주심으로써 우리가 더욱 풍성한 깨달음을 갖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6)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복음서가 4개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고대 역사에서 1개가 넘는 기록을 남기게 했던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복음서가 4개나 있다는 것은 유일무이한 문학적, 역사적 사건이다.7)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권의 복음서를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메시지와 행적을 보다 정확하고 생생하게 알 수 있게 하려는 그분의 깊은 뜻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복음서는 동일한 사실을 다양하게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서를 읽을 때 각기 다른 강조점을 보지만, 동시에 그들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의 지향점을 발견한다.

 

2) 4개의 복음서를 연대기순으로 정리해서 읽어나가는 것은 어떤가?

     앞서 말했듯이 복음서의 내용은 서로 간에 약간 씩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는 의도적으로 연대기순으로 정리하고 그에 따라 공부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의 저자가 의도적으로 연대기에 맞지 않게 기록한 의도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성령님의 영감으로서, 우리는 각 저자의 가르침의 초점들을 따라 읽어가야 한다.8)

 

 

4. 왜 복음서는 시간적 순서가 다른가?

 

     복음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독자의 상황에 맞게 ‘다시 말한 것’(re-telling)이다. 즉 복음서는 특정한 목적(구속사)을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차용해서 만든 이야기이다. 복음서의 저자는 삼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5. 각 복음서의 특징

 

 

대상

주제

마태복음

유대인

왕으로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

로마의 이방인

종으로 오신 예수님

누가복음

이방인 

(소외된 집단)

인자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말씀이신 예수님

 

1) 마태복음 -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를 언급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는 5개의 강화(discourses)가 있다.

2) 마가복음 - 예수님의 이야기에 대해 단순하고 단도직입적인 기사로, 연대기적에 상당히 충실하다. 어느 한 이야기와 그 다음 이야기를 연결해 주는 밀접한 혹은 상세한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장소들을 지리적으로 정확하게 알려주려고 하지도 않고 이야기들이 아무런 설명없이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바뀌기도 한다.9)마가복음의 주제구절은 막10:45이다.

3) 누가복음 -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는 참 사람으로 오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답게 성령을 강조하고 있다. 누가복음의 서술 목적은 눅1:1-2에 잘 나타나 있다.

4) 요한복음 -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1:1에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서의 예수님을 강조하고, 성전 중심으로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서술 목적은 요20:30-31에 잘 나타나 있다.

 

 

6. 외경 복음서들

 

     역사적으로 네 권의 영감된 복음서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영감되지 않은 복음서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도마의 유년 복음(Infancy Gospel of Thomas), 나사렛 복음(The Gospel of the Nazarenes), 에비온 복음(The Gospel of the Ebionites), 히브리 복음(The Gospel of the Hebrews), 베드로 복음(The Gospel of Peter), 마가의 비밀복음(The Secret Gospel of Mark), 도마복음(The Gospel of Thomas) 등.

     이 책들은 내용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하여 이 책들은 정경에 들지 못했기에 ‘외경복음서들’(Apocryphal Gospels)이라고 불린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될 수 없으며, 다만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1) 참고. The Earliest Life of Christ ever Complied from the Four Gospels being the Diatessaron of Tatian, 1894, Edinburgh: T&T Clark..

 

2) Jakob Van Bruggen, Christ on Earth: The Gospel Narratives as History (Grand Rapids: Baker, 1998), 박호석 옮김, 『지상의 그리스도』(서울: 익투스, 2011), 114.

 

3) H. J. Vogels, St. Augustins Schrift De consensu Evangelistarum unter vornehmlicher Berücksichtigung ihrer harmonistischen Anschauungen (Freiburg: Herder, 1980). Merkel, Widersprüche, 218-261.

 

4) Van Bruggen, 『지상의 그리스도』, 102.

 

5) Van Bruggen, 『지상의 그리스도』, 104.

 

6) 이광호, 『예수님 생애 마지막 7일』(서울: 깔뱅, 2006), 17; 칼빈의 공관복음 주석 서론.

 

7) R. T. France,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 G.E.래드 지음, 『신약신학』, 신성종, 이한수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5), 255.

 

8) cf. R. T. France,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 256-257.

 

9) Donald English, The Message of Mark: The Mystery of Faith (Leicester: IVP, 1992), 정옥배 옮김, 『마가복음 강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서울: IVP, 200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