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교 우리의 문제들

한국교회갱신의 과제와 방향

하나님아들 2020. 5. 12. 17:56

한국교회갱신의 과제와 방향

 

한국교회갱신의 과제와 방향

Ⅰ. 교회갱신의 4가지 주제

몰트만은 교회의 본질에 관하여 본훼퍼(Dietrich Bonhoeffer)의 저술들을 요약하면서 다음의 4가지 요소들을 지적하였다:
1. 교회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의의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진리의 근본의미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독교진리의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회구조의 활동과 실체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 교회생활은 목사와 평신도의 진정한 인격이 형성되고, 재형성되며, 표현되는 하나의 현장이다.
3. 교회는 단순한 개인들의 집합체이상이다. 교횐ㄴ 그 자체로 하나의 정신, 하나의 성격을 갖는 공동체이다.
4. 하나님의 통치는 사회적 활동과 윤리적 실천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인간의 진정한 인격이 형성되는 것도 사회적 활동과 윤리적 실천안에서이며, 더 큰 사회구조라는 실체의 정신은 사회적 활동과 윤리적실천을 통하여 인간개인의 정신에 감정적인 영향을 미친다(Motmann, 1967, 21-94).

이제 4가지 주제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1. 기독교신앙의 사회적 의미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자기가 이해하는 바에 따라 기독교진리들을 교회와 사회와 개인들에게 적용한다. 대체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개인주의적 가정하에서 목회하고 있다. 그들은 개인을 변화시켜 세상에 나가 선하게 살게 하면 이 세상도 선한 세상으로 바꾸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교리와 신학은 개인의 신앙과 개인 행동의 지침을 제공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기독교진리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믿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기독교 신앙이해는 몇가지 방향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통치의 신학에서 볼 때 개인주의적 신앙이해는 기독교 진리의 부분적 이해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개인을 지해하시는 주권자이실 뿐 아니라 제도적인 교회와 인간사회, 그리고 자연환경까지 온 우주를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개인들뿐 아니라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시며, 온 우주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희망, 수용, 화해, 언약등의 신학적인 진리들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교회제도, 자연환경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진리이며, 사회구조와 교회제도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희망을 생산하며, 화해를 위해 노력하므로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한다.
두번째로 희망, 수용, 성육신, 화해등의 신앙진리들은 사회구조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희망은 인간이 본래적인 성품속에 함양되는 덕목이라기 보다는 사회구조 속에서 창조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회구조는 인간의 삶의 장이요, 인간은 그 속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희망적이 되기도 하고 절망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의 삶의 장이 절망을 주는 갖가지 상황으로 가득하다면 아무리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라도 그 속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사회구조 자체가 인간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고, 절망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사회구조가 악하고 비인간화시키는 구조일 경우에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아무리 개인적으로 선하고 순결하다고 할지라도 구조의 영향을 받아 희망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은 사회제도 속에서 수용을 경험하기도 하고 거절당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회구조 속에서 화해를 격려받기도 하고 소외를 당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뜻과 역사는 사회구조속에서 왜곡되기도하고 영광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개인들에게만 지햐야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제도와 사회의 모든 구조에게도 지향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같이 이 땅위에 있는 개인들에게만 이루어져서는 안되고 이 땅위에 있는 모든 제도, 기관, 조직, 구조들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세번째로 교회제도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사회조직은 그 나름대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형태의 권력을 사용하여 정치하며, 결정과정, 정보전달방법, 상호관계의 원칙들을 개발하여 사용한다. 교회도 다른 모든 사회제도와 같이 하나의 조직이다. 교회는 다른 구조들과 다른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는 자체로서 독자적인 기원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회는 초월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도 하나의인간의 이익과 헌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인간의 제도라는 점에서는 다른 사회제도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들로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를 통해서 자기들의 관심과헌신과 신앙을 표현하려고 한다. 교회도 사회의 다른 모든 제도들과 같이 상호의존적으로 살고 해석하고 표현한다는 존재이다. 어느 교회든지 제도적인 교회는 하나님의 현존의 장임과 동시에 인간들이 만든 인간들의 제도이다. 제도적인 교회는 하나님의 현존의 장임과 동시에 인간들이 만든 인간들의 제도이다. 그 제돈ㄴ 언제든지 인간들의 가지고 있는 확신과 헌신과 관심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렇다면 교회제도-교회의 기구조직, 의사결정과정, 관계원리, 정보전달, 상호관계등-는 기독교신앙를 바르게 표현하고 있는가? 교회제도 자체가 기독교 신앙표현에 장애를 주고 있지 않는가? 교회의 제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있는가? 기독교 진리는 개인들이 믿고 받아들여야 하며, 개인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교회의 제도에도 적용되고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끊임없는 개혁이라는 개혁교회의 전통은 개인들의 개혁뿐 아니라 교회제도의 끊임없는 개혁과 사회제도의 개혁까지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네번째로 교회제도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니다. 그 제도 속에 힘과 권위가 있으나 도덕적인 가치는 결여될 수 있다. 교회는 어떠한 목푣ㄹ과 목적들을 가지고 있을가? 그 목표가 질에 있어 천박하고 자기 중심에 차있고 이런 목표달성을 위해 여러가지 형태의 권위와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교회의 제도는 어떤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중용하고 다른 사람들은 배제시킬 수 있다. 교회의 자체가 희망을 거절하고 화해 보다는 분열을 선택할 수 있다. 지도자들의 조작, 교인들의 권태, 청년ㄷㄹ의 적대감, 새로운 신자들의 소외감등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교회 제도일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진리는 이러한 교호의 현실들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상황들, 관계들과 과정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헌신들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이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희망, 수용, 화해와 같은 기독교 진리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초월하신 하나님의 진리에 서서 현실상황을 있는 그대로 복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기독교진리가 무엇임을 식별하고 이 상황을 개혁하는 자들이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적인 의미뿐 아니라 교회의 제도와 상황들을 성찰하며, 판단하며, 지도하며 개혁하는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진정한 인격형성의장으로서 교회
본훼퍼는 인격이라는 의미자체가 사회성 공공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인격의 진정성 여하의 판단도 사회성안에서만 가능하다고주장한다(Bonheffer, 1961, 227). 월리교수(Robert Worley)도 인격의 전정성은 항상 사회성의 그물(net of sociality)안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Worley, 1983, 105). 이들은 모두 개인적인 고독 가운데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 상황속에서 인격의 진정성이 발견된다고 동의하고 있다. 교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회성의그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교회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교회의 제도와 실천속에서 자기의 인격에 중대한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교회가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의해서도 인격이 형성될 수 있지만 그 보다도 교회 생활의 모든 것, 예를 들면 교회의지도력 스타일, 권력의 형태, 의사결정과정, 상호교제등이 직접적으로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회생활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생활의 성격을 깨들을 때에 그것이 그 개인에게 영향을 주어 인격형성의 과정에 들어서게 만든다. 즉 교인들은 교회아나에서 자기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것과 다른 정보들을 받으며, 그 정보는 그 교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 교인이 자기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목표들과 가치들과 다른 정보들을 받았을 때 그는 이 정보때문에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관점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실재를 보게 될 것이다. 그가 받은 정보가 정확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정보를 받았을 때 그 사람은 그 정보때문에 시각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교인들은 교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떤 정보들을 받고 있을까? 목사들과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자기 교회의 제도들과 과정들이 교인들에게 어떤 정보를 주고 있으며 어떤 시각의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교인들은 초월하신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기와 교회와 세상ㅇㄹ 보는 시각을 얻고 있을까?
두번째로 교회생활은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현존안에서 이웃을 만나는 장을 제공한다. 예수님은 “두 세사람이 내 이름ㅇ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믿는다(고전12:27, 엡1:23, 4:12, 골1:24등). 교회는 하나님의 현존의 장이다. 나와 너의 만남은 곧 하나님의 현존의 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현존안에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였음을 의미한다. 거기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며, 무슨 말씀을 하실까?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만나고 있는 바로 그 이웃을 지고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그 이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자로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시며, 그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죽게하셨다. 우리와 만나는 이웃은 우리가 보기에 평범하고 한시적인 존재에 불고하나 하나님은 그를 존귀한 존재로 만드시고 있다(Barth, 1918, 452).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이 존귀하게 만드신 이웃을 만나며 그들과 교제하며 자기의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인격을 형성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세번째로 교인들은 자기들의 목표를 가지고 교회에 들어온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희망과 기대와 관심과 욕망과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이 교회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교회를 향한 목표를 갖는다. 교회는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목표들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실제로 교회는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목표들을 처리하는 여러가지 구조들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여러가지 권력의 형태들을 사용하여 교인들의 목표들을 수용하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타를 치면서 복음송가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깊이 감동한 청년회가 자기 교회에서 기타치면서 복음송을 교인들과 함께 부르고 싶다고 요청했다고 할 때에 당회는 청년들의 욕구나 헌신이나 관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성하고 경건한 교회에서 딴따라판에서 치는 기타는 웬말이냐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하자. 당회는 지금 권력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도 중세봉건영주들이 개발한 독재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사용하고 있다. 이 때에 청년들은 자기들의 선한 뜻을 전혀 공감하지 않고 전통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욕구를 거절하는 교회에서 자기의 이니격이 무시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날 때 교인들은 교회에서 진정성있는 인격을 개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새신자 관릴ㄹ 위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새신자가 교회에 들어올 때 그들을 교리화시키는 제도와 과정은 있으나 새신자들이 가지고 온 목표들을 나누게 하게 경청하고 수용하여 교회의 정책에 반영하는 새신자 훈련프로그램들을 별로 보지 못한다. 새신자들 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교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며, 그것들이 교회의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를 원한다.그 뿐 아니라 교인들은 누구나 교회를 향한 목표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무의식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할지라도 교인들은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가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 교회가 어떻게 변하여야 할 것인지, 또는 자기가 이 교회를 위해서 어떤 기여를 해야 할 것인지등의 아이디어와 욕망과 기대와 관심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인들의 목표가 부담없이 나누어지고,들려지고, 수용되고, 반영되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이처럼 교회의 제도는 개인들의 목표와 기대와 관심과 헌신들을 무시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며, 존중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한다. 이에 따라 교이늗ㄹ의 전정한 인격은 형성되기도 하고 침해를 받기도 한다. 결국 교횐ㄴ 진정한 인격을 형성하는 장이 될 수도 있고 비인간화시키는 현장이 될 수도 있다.

3. 집단정신을 갖는 공동체로서의 교회
길키(Random Gilkey)는 그의 저서 Shantung Compound에서 세계 제2차 대전시 산동반도에 소재한 일본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미국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아주 조그마한 방속에 9-11명이 수용되어 거의 질식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선하고, 교육을 많이 받고, 고상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로 중국에서 기독교 선교에 힘쓰던 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룹이 되어 수용소에 수용되었을때에 그들은 잠자리 때문에 끊임없이 싸웠다. 조그만한 공간이라도 어 차지하려고 바둥거렸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그처럼 강조하던 사람들이었다.
한번은 미국 적십자사에서 1500개의 음식소포를 보내왔다. 일본인 간수들은 미국인에게는 1½개의 소포를 분배하고 미국인이 아닌 포로들에게는 1개의 소포를 분해하겠다고 제안했다. 미국인들 대부분은 이 결정을 분노하여 미국적십자사에서 보낸 것이니 다른 나라 사람에게 주어서는 안되고 미국인들에게만 소포를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인들에게 7½개씩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도 모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었으나 사회적인 집단이 되었을때에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 변하고 말았다.
사회집단은 개인들이 집합체가 아니다. 사회조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성격 또는 정신을 갖는 유기체이다. 모든 가족들은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부모와 자식들과의 관계, 의사 결정과정, 자녀양육의 방법과 우선순위,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 관심, 헌신등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가족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지교회든지 자세히 관찰해 보라. 그 교회의 당회의 운영과의사결정과정, 그 교회의 기대와 관심, 가치와 규범, 지도력의 모형과 성격, 우선순위결정과 프로그램선정등에 교회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심지어 교회안에 있는 교회학교의 운영까지도 특성이 있어서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교회의 성격은 목사들과 교인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기독교신앙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에도 영향을 주어 꼭같은 성경의 가르침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깨닫고 이해하게 만든다.
우리는 수 많은 교회들이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어떤 교회는 침체되고 폐쇠적이다.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성경경부도 없으며, 실천도 없다. 다른 교회는 양극화 되어 있다.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과 그렇지 않는 교인들이 집단을 이루어 서로 다른 집단을 듣지도,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오직 자기들의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 또 다른 교회는 극소수집단이 모든 결정을 내리고 모든 정보를 지배하며, 자신들의 신학적, 사회적, 경제적 이익유지에 집착한다. 또다른 교회는 개방적이요 새로운 사고개발에 힘쓰며, 환경의 도전에 탄력성있게 대응하며, 신선미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모든 교인들의 에너지를 활용하고 전교인을 교역자화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교회들은 각기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성격은 교인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교회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또는 조직을 중심으로 모인 개인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집단유기체로서 성격, 인격, 그리고 분위기를 가지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제도적인 교회는 교인들에게 여러가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교회의 성격은 교인들이 교회에 어떠한 기대를 가지게 하고 자기들의 헌신을 바치는데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에 들어온 새신자는 그 교회에 충성하고 픈 마음을 가지며, 어떤 교회는 새신자들에게 전혀 매력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목사의 설교가 어떠하냐에도 관계되지만 더 크게는 그 교회의 분위기에 의해 좌우된다. 또한 교회의 성격은 교인들이 메시지를 받고 이해하고 깨닫는데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교회제도는 무언의 교사이다. 교인들은 교사와 목사들에게 배울 뿐 아니라 교회제도가 주는 분위기와 성격에 의하여 더 많이 배운다.  

[출처] 한국교회갱신의 과제와 방향|작성자 금강초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