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와 21세기 한국교회
오늘은 우리 한국교회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세계교회 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 즉 WCC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일반 평신도들은 아마도 잘 들어보지 못한 분들이 많으리라 봅니다만,) 오는 10월 30일부터 10일간, 우리 울산과 가까운 부산에서 매우 큰 행사가 하나 열리게 됩니다. 바로 제10차 세계총회>가, 우리나라 제 2의 도시 부산에서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 교인들이, 여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평가, 그리고 바른 자세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에, 이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WCC의 역사적 흐름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창립된 것은, 역사적으로는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5년 전인, 1948년 8월23일 에, 전 세계의 1백47개 교회들과 351명의 대표들이 네델란드 암스텔담에 모여 세계교회협의회를 창립한 것을 그 시작으로 보는데, 물론 그 앞에도 여러 번의 사전 모임이 있었습니다만, 공식적으로 WCC의 시작은 이 1948년의 암스텔담 총회로 보고 있습니다. 그 뒤로 거의 6년을 주기로 해서,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에서 모여 왔는데, 이들은 모여서 주로 전 세계의 주요 사회문제 즉, 가난 빈곤 불평등 심지어 권력의 압제 등에 대한 기독교적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하며,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는 취지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여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내부적으로는 기본적인 신앙고백만 같다면, 요17장 21절의 예수님의 말씀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를 모토로 해서,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힘써 왔다고 합니다.
WCC에 대한 주요 평가 비교
그런데, 문제는 WCC가 이런 좋은 취지를 갖고 출발하였으나, 실제로는 교리적으로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진정한 기독교적인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기독교 안팎에서 많이 받아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 WCC 운동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오히려 우리 한국교회의 일치와 단합을 헤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우리 한국교회 내에서도, WCC에 가입한 교단이 많이 있는가 하면, 가입하지 않고 있는 교단도 여럿이 있으며,그 두 입장이 서로 맹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심하게 현재도 대립하고 있을까요? 서로 간에 큰 시각 차이를 가져오고 있는 부분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두 가지 면이라고 사료가 됩니다.
첫째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입장 차이입니다. WCC를 반대하는 분들은, WCC가 종교다원주의 즉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다른 구원의 길이 있으며, 그러므로 일반 종교의 가치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WCC측에서는 결코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부인합니다. 혹 WCC 회원 교회들이나, 신학자중에서 개인적으로나 부분적으로 그런 자들이 있을 수 있지만, 공식적인 WCC의 입장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공산주의에 대한 입장 문제입니다. WCC를 반대하는 분들은, WCC가 공산주의 국가들이나 그 가치관에 동조하고 있고, 심지어 그러한 용공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WCC측에서는 결코 그러한 사실이 없으며, 다만 각 나라들의 약자들을 돕는 차원에서 고통당하고 독재 정권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단체들을 인권 차원에서 지원한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기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의 문제도 깊이 개입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보시다시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성경을 보고,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이렇게 입장 차이가 다르고,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사실은, 교회가 서로 하나 되고 서로 연합하는 일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사회에도 보수와 진보,진보와 보수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교회도 이처럼 WCC를 놓고, 보수적인 교회와 진보적인(자유적인) 교회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정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WCC의 영향들
그러면, 이 WCC가 도대체 우리 한국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전체 세계 교회들이 반드시 가입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다만 같은 취지로 활동하기 원하는 몇 몇 교회들이 모여서 하는 운동이라면, 굳이 우리 교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WCC문제가 실제로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큰 폭탄으로 터지게 된 일이 있었으니, 이른 바 <장로교 교단 분열> 사건인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959년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제 44회 총회에서, 당시 세계적인 큰 대세였던 이 WCC에 우리 한국교회도 가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가 되었는데, 그 가입 건으로 놓고, 반대쪽과 찬성 쪽이 크게 나눠지면서, 결국에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합동>측과 <통합>측으로, 분열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실로 한국교회사에 가장 큰 분열의 역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 WCC 문제로 말입니다.
참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세상의 아픔과 분열을 치유하고 온 교회들이 더 하나 되자고 일으킨 운동이, 우리나라에는 분열의 단서로 쓰이고 만 것입니다. 이 얼마나 통탄스러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지요...
좀 더 자세히 그때의 경위를 말씀드려본다면, 1950년대 초에 일어난 6.25전쟁을 겪은 후에, 우리 한국교회(장로교가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장로교로 대변됨)는, 공산주의에 대해 굉장히 예민한 촉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48년에 시작된 이 WCC가, 놀랍게도 신학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심지어 공산주의를 용납하고 있다는 소문이 한국교회(당시에 이미 NCCC를 통해서 WCC에 가입하고 있었음.)에 들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교회의 신학적 현실은, 이미 그 전부터, 당시 보수신학의 거목이었던 박형룡박사를 대표로 하는 WCC 반대쪽(NAE측이라고 불림)과, 당시 신신학(=자유주의 신학)을 대변하는 한경직목사를 대표로 하는 WCD 찬성쪽(에큐메니칼측이라 불림)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한국 장로교 2차 분열의 후유증.)
그런데, 교회에 분열과 시련의 바람이 점점 불어오기 시작하더니, 마치 욥의 경우처럼 한꺼번에 터지게 되는데, 하필이면 또 이 때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직영신학교인 총회신학교의 교장으로 있던 박형룡박사의 <3천만환 반환사건>(일종의 공금 횡령 사건)이 발생합니다. 박형룡박사는 당시 보수주의 즉, WCC를 맹렬히 반대하는 쪽의 리더였기에, 신학적인 대립과 아울러 이 횡령사건으로 인해, WCC찬성 측, 즉 에큐메니칼 측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됩니다. (결국, 교장직을 사퇴하게 되지요.)
그러던 차에 제 44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9월 24일에 개최되면서, 이번에는 <경기노회 총대의 자격 시비>가 일어나는데, 거기에도 신학적인 대립 관계에 있던 WCC반대측과 찬성측의 사람들이, 서로 자기 쪽 사람들을 총대로 지지하는 가운데, 마음대로 되지 않자, 결국 총회는 파행으로 치닫고 맙니다.
그 뒤에 WCC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9월 29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따로 모여 총회의 속회로 모이고, 나머지 WCC를 지지하는 총대들은 총회에서 결정한 대로 11월 24일에, 서울 연동교회에 속회로 모여서 총회를 개최하니, 이로 인해 각각 합동측과 통합측으로 나누이고 만 것입니다. 한국교회 역사적으로 볼 때, 세 번째 분열이요, 역사상 가장 큰 분열을 낳고 만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WCC에 대한 견해 차이(신학적인 문제)에서 시작된 갈등이, 이권 문제(3천만환 사건)와 정치적인 문제(경기노회 총대 문제)와 개입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한국교회(장로교)에 던지고 만 것입니다.
이 일을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교훈을 많이 느낄 수 있는데, 특히 한 가지 - 우리는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이라도, 이와 같이 서로 간에 마음이 안 맞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더 불미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도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에 동역자로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결국에는 크게 다투고 헤어졌다는 기사가 나오지 않습니까? 선교라는 좋은 일을 하면서, 다툼과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바나바와 바울 같이 가장 존귀하고 훌륭한 주의 종들 사이에 말입니다....!
실로, 하나됨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왜 이 하나됨을 위하여,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시고 소망하셨던가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돌이켜보건대, 이 WCC문제는 이와 같이 큰 아픔을 우리에게 안겨준 것이므로, 이제 곧 제 10차 WCC총회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WCC에 대한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으며,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크게 확대되어서 대립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교회에서 이 WCC에 가입하고 있는 교단은 대한예수교 장로교(통합측)뿐만 아니라, 그 외에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그리고 순복음교회로 알려져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입니다. 반대로 가입하지 않은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최대 교단인 합동측과 그 외, 고신측, 대신측 등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몇 가지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1) 일치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사실, WCC에서 주장하는 교회의 일치(본인은 연합이 더 어울리는 단어라고 봅니다만,)라는 가치는, 기독교의 매우 소중한 가치요,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 점에서 있어서는 보수쪽에서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강력히 명령하고 있고, 주님이 그것을 위해 기도할 것을 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요17:21).
하지만, WCC가 일치라는 명목으로, 타종교의 구원의 가능성까지 인정해버린다거나, 성경적인 기준을 넘어서는 인본주의적 견해와 활동에 동조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기본인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경적 기준이라고 하는 큰 잣대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할 수 있을 때, 온전한 사랑이요, 참된 가치가 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진리의 기준이 약화되고 자칫 지나친 일치와 연합이 강조될 때, 그 안에 이단과 사이비를 비롯한 거짓 교리가 기생할 수 있는 틈을 제공하게 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면에서 WCC가 바른 진리를 잘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 진리 수호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더 우선임!)
한편으로, WCC를 반대하는 소위 보수진영의 교회들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진리의 가치 역시 소중하다는 사실을 또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행4:21) 이 가치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순교자가 나온 것이 바로 참된 기독교의역사요, 특히 우리 한국기독교의 자랑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과 일치, 연합과 봉사라고 하는 또 다른 가치의 존재와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러한 부분을 더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WCC를 반대하는 쪽, 즉 보수진영의 교회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시대적인 흐름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WCC가 내세우는 일치와 화합, 섬김과 봉사라는 가치를 더 좋아하고 반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진리 수호를 외치는 보수측(WCC 반대측)이, 그것만 외치면서 교회간의 화합과 사랑의 실천을 소홀히 한다면, 이 사회로부터 차디찬 냉대와 조롱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엄연한 우리 한국교회가 당면한 현실인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의 한국교회의 수치스러운 일들, 예를 들어 목회자의 도덕성 문제, 교회 재정 횡령 문제, 학력위조 사건 등이 주로 어떤 교회들에게서 일어나는가를 본다면, 부끄럽게도 진리 수호를 가장 크게 외치고 있는 보수 진영 쪽 교회에서 많이 나온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참된 진리 수호는 말이 아니라, 생활로 보여주기를 세상은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도 그러실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은 바로 완벽한 의와 완벽한 사랑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사랑, 이 두가지를 함께 이루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희생의 죽음을 통해서! (이것이 참된 기독교 정신이 아닐까요?)
3) 둘 다 지키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줍시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어떤 결론을 가져야 할까요? 이 어려운 교회 일치와 연합, 그러면서도 진리의 수호를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진리와 사랑의 온전한 겸비요 조화일 것입니다. 둘 다 중요한 가치요, 어느 하나라도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가치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기도의 소원을 가지고 이번 WCC 부산 총회를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여! WCC 부산 총회를 앞두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됨을 잘 실천하게 하소서!
그러나 동시에 진리에 대한 변함없는 철저한 헌신과 가치를 잃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이 두 가지 가치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와 같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진리와 사랑이 완벽하게 일치된 모습을 보게 하시고,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의 모습을 생활 속에서 이루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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