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Theology (이야기 신학) 이성호
이성호
"이야기 신학"은 현재 학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학방법이다. 이야기신학은 정의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지만 "이야기"를 신학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양식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일치하고 있다. 이야기 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신학이 무슨 이야기냐라"고 의아하겠지만, 성경 자체가 이야기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간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신학의 대가로서는 Hans Frei를 들 수 있는데 그는 본문 자체를 강조하는 "신비평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근대의 역사 비평적 성경해석이 성경의 의미를 성경 안에서 찾지 않고 역사적 상황 속에서 찾으려는 오류를 범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역사 비평학은 성경을 일반인의 손에서 빼앗아 전문가들의 손에 넘겨 주었다고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역사비평학은 본문에 대한 철저한 원어 이해와 본문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오직 수십년간 성경 연구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만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성경을 분석하다 못해 갈기 갈기 찢어 놓고 말았다. 그리하여 Frei는 오히려 중세와 종교개혁의 해석방법이 근대의 역사비평적 방법 보다 뛰어남을 논증하엿다.
이야기 신학이 근대의 역사비평적 방법에 대한 반발이었다면 이야기 신학은 또한 전통적인 명제적(propositional) 신학에 대한 반발이었다. 전통적인 신학은 명제적으로 진술되어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하나의 명제이다. 그리고 이 명제에서 유추하여 여러가지 다른 명제들을 이끌어내고 보다 종합적인 명제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 방법은 너무나 정형화 되어 있고 도식적일 뿐만 아니라 성경자체의 역동성을 잘 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떤 신학 논문처럼 쓰여진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명제적 신학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명석한 지성이 요구된다면, 이야기 신학은 우리의 풍부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이야기 신학은 특히 인간을 말하는데 보다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 그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자랐고, ... 등등, 그 사람의 삶을 이야기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할 때, 성경을 통하여 자신이 삶을 이야기한다. 특히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이야기이다. 명제적 신학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설명(explain)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면, 이야기 신학은 하나님을 묘사(describe)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신학을 이야기로 볼 때 가장 큰 장점은 성경을 전체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역사 비평적 방법에서 볼 때, 성경을 한 저자가 쓴 책이 아니라 수많은 여러 전통이 짜집기 된 책이다. 하지만 이야기 신학은 하나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보게 한다. 따라서 이야기 신학은 역사비평적 신학으로부터 전통신학을 효과적으로 변증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하겠다.
또한 이야기 신학은 계시의 우선성을 변증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탁월한 저서는, Ronald F. Thiemann, "Revelation and Theology"가 있다). 이야기는 이야기 하는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청중이 없어도 이야기는 불가능하지만, 화자가 없는 이야기는 더욱더 불가능하다. 이야기는 청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야기의 우선권과 주도권은 청중이 아니라 화자에게 주어진다. 즉 계시의 우선권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있다. 이런 계시관은 계시가 없어도 하나님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무력화시킨다.
하지만 이야기 신학은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야기의 주제만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성경의 역사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많다는 것이다. 이야기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이야기가 실제로 사실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소설가에게 역사적 사실성을 요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소설의 목적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이야기로서만 받아 들이면, 우리의 신앙은 토대가 연약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야기신학을 너무 백안시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야기 신학은 하나의 방법론이다. 우리가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것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이다. 만약 우리가 성경의 확고한 역사적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이야기 신학은 우리의 신학적 사고를 좀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이야기신학을 논평한 글로, John Bolt, "The Necessity of Narrative Imagination for Preaching," ed Arie C. Leder, [Reading and Hearing the Word], 203-217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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