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관련 /덴버신학교 정성욱 교수
삼위일체란 무슨 뜻인가요?
삼위일체라는 말을 한자로 옮기면 三位一體가 됩니다. 여기서 '삼위'라는 것은 세 위격이 있음을 뜻합니다. '위격'(person)이란 지.정.의를 갖추고 있으면서 다른 인격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격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일체'는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본체, 또는 하나의 존재가 있음을 뜻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세 위격이 일체를 이룬다' 혹은 '한 본체에 세 위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종합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삼위가 동일한 하나의 신적 본질을 공유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태론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양태론자들은 한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그 한 분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세 가지 양태를 가지고 일하신다고 주장합니다. 한 분 하나님이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하신다고 보는 것입니다. 양태론의 주장대로라면, 결국 성자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은 '원맨쇼'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성자가 성부께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됩니다. 아들의 '역할'이 어떻게 아버지의 '역할'에게 기도할 수 있습니까? 기도는 인격적인 행위입니다. 한 인격적 존재가 다른 인격적 존재에게 기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역할'이란 말은 비인격적 추상명사입니다. 한 역할이 다른 역할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네모난 삼각형'과 같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성자 예수께서 성령을 다른 보혜사로 부르신 것 역시 의미 없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하나의 양태나 역할이 다른 양태나 역할을 인격자로 부를 수 있습니까?
우리는 또한 삼신론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삼신론은 성부도 하나님, 성자도 하나님, 성령도 하나님이시기에, 한 분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세 분의 하나님'들'이 개별적인 존재로 분리되어 계신다고 믿는 이론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유일신앙입니다. 세 위격이 있을지라도, 세 신들이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 세 위격의 통일체이다. 성부.성자.성령은 각각 구별된 인격이시나 이 삼위는 동일한 신적 본질을 소유하고 계시며, 영광과 존귀와 능력 면에서 동등하시되, 세 분의 하나님들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
삼위일체의 신비
신구약 성경 66권 전체를 일관성 있게 읽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가 계시며 그 삼위는 일체를 이루고 계신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며 한 하나님이 세위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조직신학에서 삼위일체를
내재적 삼위일체 (immanent Trinity) 또는 존재론적 삼위일체 (ontological Trinity) 와 경륜적 삼위일체 (economic Trinity)로 구분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내재적 삼위일체란 세상을 창조하거나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외향적 행위 이전 즉 영원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질 내에서의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고,
경륜적 삼위일체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구속하시며 완성하시는 역사 경륜 속에서 계시된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20세기 천주교 신학의 대가 중 한 사람인 칼 라너는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는 동일하다"라는 테제를 주장하게 됩니다.
이 주장은 그 이후 많은 현대신학자들의 공감을 얻어 삼위일체론 논의에 있어서 거의 공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 경륜 속에서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과 영원 안에서 존재하시는 내재적 삼위일체의 모습은 동일하다는 것이 요즘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가 동등한 신적 본질과 권위와 능력과 영광을 가시고 일체로 존재하신다는 삼위일체론, 사실 사람의 말로서 이렇게 저렇게 표현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신비에 속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삼위일체가 왜 중요한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널리 알려진 설교자들 중에
삼위일체에 대한 오류를 보여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한국 교회의 신학적 수준이 얼마나 열악한 가를 적확하게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이들 설교자들은 방송매체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지만
대부분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을 자신들의 신학으로 전개하면서
양태론에 기초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양태론은 이미 고대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상이자
신학적으로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류입니다.
이 오류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양태론적 설교를 하게 될 경우
성도들은 무의식적으로 독성이 있는 음식을 먹게 될 것입니다.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조건은 오직 예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르고 균형잡힌 이해가 없다면
참된 의미에서의 영적 성숙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교회 설교자들의 신학적 미숙은
고스란히 성도들의 신앙적 미숙이라는 열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조만간 출간될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은
한국 교회의 신학적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집필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르고 균형잡힌 이해를 추구해 가십시다...
삼위일체 하나님
우리가 섬기고 예배하는 하나님께서 모든 다른 종교들이 신봉하는 '신'들과 근본에 있어서 다른 점은 우리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는 두 가지 이단적인 사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말하고 주장하는 삼신론적 이단입니다.
요즘 한국의 많은 신학자들 가운데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거부하고 세 분이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충돌합니다.
또 다른 이단은 한분 하나님이 계신데 이 한분 하나님이 세 위의 통일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분 하나님이 세번 반복적으로 역사속에 나타났다는 주장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세 번 가면을 쓰고 구약에서는 성부로 신약에서는 성자로 교회시대에는 성령으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 바로 양태론입니다. 즉 양태만을 달리 했지 본질에서는 한 하나님이 세 번 나타난 것이다라는 주장이지요. 양태론 역시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충돌합니다.
만일 양태론을 받아들이게 되면 성자 예수님이 성부께 기도한 것은 말도 안돼는 원맨쇼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자가 아니라 성자의 양태로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결론이 내려지지요.
성경은 분명하게 성자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고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셨다고 가르칩니다.
양태론은 신학적 미숙을 넘어서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위협하고 허물어 버리는 이단적 사상인 것이죠. 오늘날 소위 잘 나간다는 설교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양태론을 가르치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론의 바른 정립이 한국 교회에 시급하게 요청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이 한 분 하나님이 성부,성자,성령 삼위의 통일체로 존재하신다는 것이 삼위일체론의 핵인 것이죠. 하나님께는 삼위가 계십니다. 그 삼위가 서로간의 분열없이 완전한 통일체로 존재하신다는 것이 삼위일체론의 핵인 것이죠. 바른 삼위일체론의 확립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인터뷰] ‘삶 속에 적용하는 삼위일체 신학’, 정성욱 교수
보통의 크리스천들에게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왠지 모를 신비에 싸여있는 말로 다가온다. 반면 도올 김용옥 같은 이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삼위일체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이론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신도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술된 책이 발간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 덴버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고 있는 정성욱 교수가 쓴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홍성사)이 그것이다.
“평신도들이 신학을 할 수 있게 쉽게 글을 쓰고, 쉽게 가르쳐야”
세계적인 기독교 미래학자 알리스트 맥그래스의 제자이기도 한 정성욱 교수는 그간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이상 홍성사)과 같이 조직신학을 쉽게 풀어 쓴 책들을 펴내 기독교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정 교수가 이렇게 조직신학을 쉽고 재미있고 간결하게 풀어쓰는 작업을 하는 것은 조직신학자로서의 섬김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의 소명의식 때문이다. 기독교 진리가 중요한 만큼 이 진리를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참된 섬김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모든 성도는 신학자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다. 신학은 하나님을 배우는 것, 즉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의 과정이므로 모든 성도는 신학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신학을 해야 하고, 신학자들은 평신도들이 신학을 할 수 있도록 쉽게 글을 쓰고, 쉽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렇게 해서 성도들의 신학적 소양이 깊어질 때 성도 개개인의 성숙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성숙도 가능하다는 것이 견해다. 이에 그는 “평신도들에게서 신학을 빼앗아가는 것은 중세 가톨릭의 잘못된 모습”이라며 “오늘날 개신교가 중세 가톨릭의 잘못을 따른다면 교회의 타락 현상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위일체론 어렵다고 그냥 덮어두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
정 교수가 이번에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을 펴낸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는 “지난 120년 동안 삼위일체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기에 성도들이 삼위일체라는 단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내지는 거리감을 갖게 됐다”며 “이러한 한국교회의 신학적 미숙함으로 인한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우려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저작 동기를 말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신학적 미숙함과 관련 “삼위일체론은 목회자들에게도 어려운 교리”라면서도 “하지만 어렵다고 그냥 덮어두면 신학적 미숙은 장기화되고,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의 미래가 없다는 고민을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삼위일체론과 관련 한국교회의 미숙함으로 그간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적으로 잘못 가르쳐져 왔고, 지금도 그렇게 가르쳐지고 있거나, 아예 신비한 영역이므로 전혀 다루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성립할 수 없어”
이에 무례인 줄 알면서도 ‘삼위일체를 한 마디로 정의해 주고 이어서 간단히 설명해줄 것’을 요청하자, 정 교수는 자신의 저서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 내용의 간단한 정리를 통해 기꺼이 요청에 응했다.
그는 삼위일체를 한 마디로 ‘구별된 세 위격의 통일체 내지 연합체로 존재하시는, 한 분이신 하나님의 존재방식’으로 정의했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위격은 구별되나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영원히 하나의 통일체로 존재하는 한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없으므로, 삼위일체론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이론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관련 “삼위일체라는 단어 자체는 비록 성경에 없으나 하나님이 세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존재하심이 성경 곳곳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곧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대표적인 구절로 꼽았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하는 구절은 삼위이신 성부ㆍ성자ㆍ성령의 삼위가 다 등장할 뿐 아니라, ‘이름으로’에서 ‘이름’이 복수가 아닌 단수 즉, 영어로 ‘in the names of’가 아니라 ‘in the name of’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도 성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삶에 적용해야”
그러면 ‘왜 성도들이 삼위일체 신학을 정립해야 하는가’, 즉 ‘삼위일체 신학을 정립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 교수는 ‘삼위일체 영성의 실천’을 답으로 제시했다.
그가 말하는 ‘영성’이란 ‘성령님과의 교통 속에서 전인(全人)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삼위일체 영성’이란 ‘성령님과의 교통 속에서 전인적으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인 △한 하나님의 통일성과 삼위의 다양성 △삼위간의 상호 페리코레시스(내주) △삼위간의 코이노니아(교제) △삼위간의 디아코니아(섬김)를 삶에 적용하면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가정 속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인정할 때에 더 풍성한 ‘하나됨’을 위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 하나가 되신 것처럼 서로를 향해 끊임없는 일치로 나아갈 때 가정 내의 갈등과 폭력, 이혼, 소외 현상 등이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는 “하나님의 교제를 본받아 함께 교제하고(코이노니아), 하나님의 섬김을 본받아 함께 섬겨야 한다(디아코니아)”고 강조했다.
샬롬~
박보영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고 성현경 목사님께서 잘못을 시인하고 공개적인 사과를 기대하고 기다렸었지만
가스펠펠로쉽 홈페이지에 올려진 성현경 목사님의 삼위일체 하나님 메시지를 듣고 저희 카페에서는 이제 더
이상 성현경 목사님과 관련하여 그 어떤 글이나 메시지도 올리지 않는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메시지 들으면서 타이핑한것입니다.
에베소서1:17 삼위일체에 대해서 처음 정립된것은 카톨릭과 함께예요.AD313년에 그때부터 100년동안...삼위일체가 도가 지나치면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어버려요.성경에 삼위일체는 하나님아버지와.그리고 그의 보내신자 예수그리스도와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부은 하나님의 영이예요.이것이 삼위일체죠?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있지만 성경상으로는 아들 하나님이란 말은 없어요.하나님의 영이란 말은 있는데 ...
녹음날짜 | 2015-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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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경 목사님께서 주장하시는 삼위일체와 다시오실 하나님아버지!!직접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
성현경 목사님은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며, 이를 알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고 합니다 (2013-0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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