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교주 구속이나 사망이 분열과 몰락 낳는 사례 많아
비리 드러나거나 예언 빗나가도 교리 바꿔 존속 꾀해
이만희 총회장 기자회견 |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2000년대 들어 경이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던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국내 확산을 계기로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과 12개 지파 대표 등은 당국의 방역 대책을 방해해 많은 시민을 감염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고발됐는가 하면 정부와 여당도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개신교와 천주교계 주요 단체는 일제히 신천지의 이단성과 사이비적 행태를 부각하며 집중 공격에 나섰고, 그들에게는 좋지 않은 이탈자들의 폭로와 피해자들 증언도 속출한다. 언론의 비판과 함께 네티즌을 비롯한 시민들의 규탄과 항의도 쏟아진다. '신천지 강제 해산'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게시 보름 만인 8일 오후 낮 12시 현재 참여 인원이 125만 명을 넘겼다.
신천지는 이만희 총회장이 2일 기자회견에 나서 사과의 뜻과 적극적인 협조 방침을 밝힌 데 이어 5일 코로나19 퇴치 기금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20억 원을 기부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으나 의심의 눈초리에서 벗어나고 악화한 여론을 달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으로 보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구시는 기부금 수령을 거부하기로 했다.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신천지의 명백한 고의가 밝혀지면 막대한 피해에 따른 구상권 청구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서울시는 비영리법인 설립허가 취소 절차에 들어갔다.
신천지 고발장 접수 |
◇ 이만희 총회장 신변에 큰 이상 생긴다면?
신천지는 이번 사태를 '마귀의 짓', '환난' 등으로 지칭하며 신도들의 동요를 막으려 애쓰지만, 교단 이미지 훼손과 총회장 신뢰 추락으로 이탈자 증가와 새로운 신도 영입 중단 혹은 감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욱이 주변에 자신이 신도임을 드러내지 않다가 코로나19 검진과 격리 조치 등을 계기로 신분이 노출되는 바람에 가족이나 직장 등지에서 탈퇴 종용을 받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시설 폐쇄와 집회 금지 명령 등도 어려움을 더한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는 교리의 이단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요건에 따라 종교법인 설립을 허가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당국의 법인 설립허가를 두고 마치 정부가 해당 종교를 공인한 것처럼 내세우는 신흥 종교단체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서울시의 설립허가 취소 결정이 내려지면 신천지가 종교단체로서 누리는 행정절차 간소화나 세제 혜택 등이 끊기는 것은 물론 종단 위상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수사의 진행 경과에 따라 이만희 총회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에게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뿐만 아니라 사기, 횡령, 탈세 등의 혐의가 추가로 적용될 수도 있다.
이 총회장의 건강도 중대 변수다. 기자회견 당시 청력 이상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문제를 드러내진 않았으나 89세라는 고령에다가 이번 사태로 큰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신천지 신도들이 믿는 것으로 알려진 '영생'(永生)은 고사하고 몇 년 앞도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신천지의 핵심 교리는 심판의 날에 이만희 총회장의 육신이 재림 예수의 영(靈)과 결합하는 것을 비롯해 선택받은 성도(聖徒) 14만4천 명이 앞서 순교한 14만4천과 영육합일(靈肉合一)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 총회장은 재림 예수와의 합일이 약속돼 있을 뿐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실상을 증거하고 예수 말씀을 대신하는 유일한 대언(代言)의 사자(使者)다. 따라서 적어도 교리상 신천지에 2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드러난 후계자는 없는 상태다. 사실상 2인자로 꼽힌 전 부인 김남희 씨는 이 총회장과 갈라서 신천지의 비밀을 폭로하며 재산을 놓고 소송전을 벌인다. 인천 지역 마태지파장을 지낸 양아들이자 조카 이모 씨도 후계 다툼 과정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태에서 이 총회장한테 신변에 큰 이상이 생긴다면 교단은 지도력 공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교리를 수정할 수밖에 없어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5천억 원대로 알려진 재산과 지역별 경쟁체제로 운영되던 지파 조직도 신천지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다. 급속 성장의 열쇠였던 권역별 분할 체제가 분열의 단초가 되고, 성장의 과실인 막대한 재산이 다툼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종교 전문가는 "예수와 석가모니는 말씀만 남겼기에 제자들이 전도와 포교에만 전념했다"면서 "신흥종교의 막대한 재산은 교단을 지키는 버팀목이 되기보다 분열과 내홍의 씨앗이 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천지 전국지파 |
◇ 대순진리회는 창교주 사망 후 어떤 길을 걸었나
해방 이후 탄생한 신흥종교나 이른바 이단성 종파들은 창교주 사망 이후 대부분 급격한 교세 몰락을 겪었다. 특히 창교주가 재림 예수, 미륵의 화신, 상제(上帝)의 현신 등의 메시아를 자처해 신격화한 경우에는 2세나 제자가 교단을 물려받는다고 해도 카리스마를 발휘하기가 어려워진다.
증산교 계열 최대 교파인 대순진리회는 최고지도자 박한경(박우당) 도전(都典)이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1996년 화천(化天·별세)하자 교단 운영권과 재산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에 이어 폭력 사태까지 빚었다.
박우당은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강증산)과 태극도 도주(道主) 조철제(조정산)의 법통을 이어받아 1969년 서울 중곡동에서 대순진리회를 창립했다. 강증산이 상제임을 유일하게 알아본 인물이 도주이고 도주의 진법을 유일하게 구현한 인물이 도전이어서 다른 신격화 대상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도전이 종통 승계에 관해 어떤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사망하는 바람에 문제가 불거졌다. 박우당의 처남으로 명목상 종단 대표자였던 경석규 씨와 실제로 재산을 관리했다는 이유종 씨를 따르는 세력이 양분됐고 얼마 후 정대진·윤은도 씨 등 일부 지역 대표도 분열에 가세했다. 오랜 소송전 끝에 일부 소송 당사자는 사망했으며 2006년 12월 대법원은 "누구도 종단을 대표할 권한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현재 중곡동 본부도장과 여주 본부도장 계열이 별도로 운영 중이며 성주 방면은 대진상조회란 이름으로 분리 독립했다. 용화대미륵선도, 대순진리성도회, 천제단성회, 대미륵봉심회, 대순성도회 등도 대순진리회 분파로 알려졌다.
통일교는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란 이름으로 출발했다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이름을 바꿨다. 통일교에서는 예수가 인류의 영혼을 구원하러 왔다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하나님이 육체까지 구원하러 메시아를 다시 보냈는데 그가 바로 문선명 총재라고 본다.
통일교도 제자 그룹에서는 2인자가 없고 가족을 중시한다. 2012년 문 총재가 92세를 일기로 성화(聖和·별세)한 뒤로는 부인 한학자 총재가 교단을 이끌지만 슬하 7남 6녀 가운데 2008년 통일교 세계회장에 임명된 7남 문형진 씨가 2015년 5녀 문선진 씨에게 밀려나자 미국에서 지위 확인 소송을 내는 등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
천부교(전도관), 영생교(승리제단) 등은 교주 혹은 창시자 사망 이후 뚜렷한 후계자 없이 교세가 약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천지 '새언약 이행시험' |
◇ 창교주 구속 뒤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명맥 이어
통일교에서 문선명·한학자 부부를 참부모라고 신봉하듯이 천존회는 모행룡·박귀달 씨를 각각 천부(天父)와 천모(天母)로 받들어왔다.
천존회는 1979년 창립 이후 천도선법(天道仙法)이라는 독특한 수련법과 시한부 종말론 등으로 교세를 넓혀오다가 교주 부부와 주요 간부가 사기죄 등의 혐의로 200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종교계에서는 천존회 관련자들이 정심회, 선문화원 등의 천존회 유사 단체를 만들어 명맥을 잇는 것으로 본다.
신도 성폭행 등의 혐의로 10년간 복역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총재는 2018년 2월 출소 후 활동을 재개했다. 최근 충남 천안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줌바댄스 강사가 JMS 소속으로 추정되는 교회에서 예배를 본 것으로 나타나 시선을 끌었다. JMS는 정 총재 수감 이후로도 측근들을 중심으로 교세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MBC 사옥 주조정실에 난입해 방송 중단 사태를 빚은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는 성폭행 혐의로 2019년 대법원으로부터 16년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며 딸 이수진 목사가 목회를 이끈다.
17살 유재열이 1965년 경기도 과천에서 창시해 화제를 모은 장막성전은 1975년 교주 구속과 함께 교세가 기울고 분열이 가속했다. 이만희 총회장도 장막성전을 나와 신천지를 창립했으며, 유재열은 1980년 기성 개신교단에 교회를 헌납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해 사업가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휴거(携擧·공중 들림) 파문의 장본인인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사기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이듬해 출소해 '이답게'로 개명한 뒤 목회 활동을 재개했다. 2000년 저서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시한부 종말론이 잘못됐음을 뼈아프게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목사와 함께 휴거론을 주장한 다베라선교회 하방익 대표는 2000년 기자회견을 열어 "시한부 종말론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종말론 휴거 주장 다미선교회 |
◇ 쇠퇴·소멸 단계 거치며 분파와 변종 낳아
신흥종교는 생성·발전·쇠퇴·소멸 단계를 거치며 분파와 변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신천지도 장막성전에서 갈라져 나왔고 이미 새천지란 이름의 분파가 생겨났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교주의 사망이나 구속, 중대한 비리 증거 노출, 예언 불발 등의 중대 사태가 닥치면 신도의 대거 이탈과 내분 등이 뒤따르며 이 과정에서 1987년 오대양 집단자살 같은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내우외환에 휩싸인 신천지가 해산 위기를 맞는다 해도 신도들이 일제히 빠져나오거나 교단이 한순간에 몰락하는 일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예측도 만만치 않다. 교단 지도자들이 상황에 맞게 교리를 변개(變改)하며 존속을 꾀하기 때문이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는 "교리를 바꾸면 신도들이 속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라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신념 체계를 바꾸는 일이 많다"고 한다. 신천지를 나올 경우 그때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과 재산은 되돌릴 수 없는 매몰 비용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희망을 끈을 놓지 않으려고 유사 단체에 매달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천지 신도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예상 시나리오는 이만희 총회장을 비롯한 14만4천 명이 구원과 영생을 얻는 날이 속히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