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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성의 시학적 이해

하나님아들 2020. 2. 4. 23:17

기독교 영성의 시학적 이해

 

. 머리말

 

범죄한 인류의 인간 역사 가운데 영적 각성운동이 시대마다 일어났던 사실을 우리는 발견한다. 기독교 영적 각성 운동이란 본래 영적 존재로 지음받은 인간이 범죄, 타락하여 육체가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람들과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성이 소생, 회복되어 하나님과의 관계 및 인간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하나님의 임재앞에서의 본래적 삶을 살게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시대마다 일어났던 영적 각성운동은 개인개인의 삶의 영역 뿐아니라, 사회 및 문화 일반의 광범위한 삶의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

 

요즈음 한국교회에서 영성훈련이니 영성개발이니 영성신학이니 하는 용어들이 많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쓰일 때 흔히 신령성에 대한 한국교회의 전통적이며 통속적인 견해들이 무의식적으로 끼어 들어와 바른 성경적 관점을 형성하는 데 혼란을 일으킬 수있다. 사실 최근 우리의 현실 교회의 상황은 성경적인 바른 관점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여러모로 혼란을 겪고 있다. 참된 영성에 대한 혼란된 이해는 단순히 교리적인 것 뿐아니라 경험적인 차원 까지 곁들여지고 있다. 이런의미에서 기독교 영성의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기독교 영성의 시대적 발전을 알아 보고 한국교회의 영성에 대한 진단을 하여 한국교회의 영성의 바른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 기독교 영성

 

1. 기독교 영성의 신학적 이해

 

1) 일반적 영성의 이해

 

영성을 사전에서 보면 신령스럽게 총명한 품성,또는 성질그리고 인간 능력의 전 범위’ ‘인간성의 모든 속성-..’ ‘신의 힘’ ‘거룩한 사람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2)

일반적으로 영성하면 어떤 종교에 사로 잡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 종교의 절대적인 정신에 따라 살면서 가장 이상적인 삶?’ ‘인간의 최고의 덕과 가치와 목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영성이란 자기의 이상적인 정신을 자기의 정신으로 받아들여 그 정신대로 살기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성은 인간이해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여기서 오성춘 교수는 스토아 영성을 예를 들면서 이상으로 생각하는 영성을 최고의 가치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3)

 

우리 인간을 자기 나름대로 누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신을 개발하며, 삶의 스타일을 갖는다. 그러나 자기의 정신과 삶의 스타일이 제한이 있고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가장 위대한 정신과 삶의 스타일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정신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사랑에 잡힌바 되어 그 넓고, 깊고, 높은, 그리고 긴 그의 사랑과 은총을 우리 삶의 현장에 구체화 시키면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길(9:12)을 부단히 추구하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삶의 과정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삶의 정신에서 이루어 진다.4)문제는 최고의 가치의 차이가 영성의 차이를 가져 올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수많은 영성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들은 인간의 내재적인 정신이나 종교성에 근거 하고 있으므로 죽은 이후에 대한 확신 내지는 보장이란? 그 어떤 근거도 약속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은 출발부터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이므로 끊임없이 생존하는 동안 그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만남에서 본질을 받으며 행동하는 역동적인 삶인 것이다.5)

 

2)성서적 영성의 의미

 

성서적 영성으로서 기독교 영성은 역사적인 예수의 삶과 인격과 정신을 본받아 살며 그의 성품을 그리스도인 속에 형성하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작은 예수가 되어 살고자 힘써 훈련하는 것이다.6)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하면

- 오먼(Jordan Aumann)은 영성이란 인간의 초월적인 가치와 능력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 노만 쇼우척(Noman Shawchuck)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예수님의 성령과 교 제 가운데서 경험하는 삶의 과정 이라 정의 하였다.

- 컬리(Cully) :

첫째로, 명상과 기도, 예식, 성경공부와 영적 자료를 통한 삶의 개발,

둘째는 그 영상을 표현하여 찬양과 하나님의 사랑을 공동체의 사람들 속으로 전달하는 삶이라고 하였다.7) - 오성춘 교수 :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과 인격적 교제를 이루어 가며 그리스도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기독교 영성의 의미를 정의했다.8)

 

위에 제시한 영성의 이해들에서 기독교 영성이 포괄해야 할 5가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 영성은 본질적인 용어에서 보다는 관계적인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기초하나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초월적인 체험과 새로운 의식을 얻는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실체는 역사적인 삶의 상황 속에서 공급받는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삶을 통하여 얻는 새로운 힘을 사용하여 주체적인 참여의 삶을 결단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 영성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는 강조점을 서로 달리하고 있으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종합하여 요약 정리해보면, 기독교 영성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 맺게 하시는 성령의 열매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의 마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을 본받아 예수가 하신 일을 하여 살아가는 삶, 그리고 이런 모든 노력이 우리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안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여 그 성령 안에서 순종하면서 살아가려고 힘쓰는 삶이 바로 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인 것이다.

 

2. 기독영성의 시대적 고찰

 

1) 초대교회 영성

 

초대교회 영성은 포로기 이후부터 전래되어온 회당 중심의 예배훈련과 관련된다. 따라서 영적성장을 위한 훈련을 살펴보면 Dath, 즉 어떤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분별하는 지식의 습득이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공동체와 함께함을 이해하는 지식(이것을 하나님의 현존하심에 의존) 등이다. 이러한 지혜는 성전의 지성소나 토라를 명상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이해하는 지식으로서 <Shekinah>이라는 용어에 나타난다.9)

 

그리고 초대교회의 영성은 플라톤주의적 영향과 영지주의와의 투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플라톤주의의 흐름은 영혼이 영원한 세계로부터 내려와서 일시적으로 우리의 육체와 관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몸이 죽으면 영혼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플라톤주의적 전통과 기독교의 영성은 비슷한 점이 있다. 즉 그것은 인간이 지상생활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에서 중요한 점은 우선 인간이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서 즉 일시적인 생활로부터 거리를 두고 정신적으로 떨어져 살면 우리가 영원히 세계와 통한다는 것이다.10) 이것이 기독교 이전부터 있었고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었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비 기독교적인 입장이었다. 즉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와같은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기가 매우 쉬웠다.11) 기독교의 영성과 이 비기독교적 영성정신과는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혼동되기 쉽고 실제로 당시 사람들도 혼동 하였다.

 

기독교 신학의 출발점은 역사적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영성의 구원에 관련된 가르침은 하나님의 은총에 관계된 것이지 자연에 관계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역사적 중요성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문제에 지혜롭게 주의 하면서 기독교 영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전반적으로 초대교회 영성훈련은 금욕적 방법을 많이 사용 했으며 마음의 청결과 단순성을 중요시 했으며 관조적이며 상상적 영성을 통한 합리주의로 흘렀다.

2) 중세교회의 영성(A.D.500-1500)

 

중세기의 영성의 특징은 상상적이고 정적이다. 이 시대에는 점차 영성이론이 조직적인 단계로 발전해 나가면서 교리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성격으로 나타난다.

 

초대교회의 영성에 이어 중세의 영성 생활은 그 출발점을 수도원 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영성은 수도원 제도를 통해 역사적으로 기독교 세계에 보존되어 왔다. 수도사들이 발전시킨 영성에는 몇가지 특징들이 있다.

 

첫째, 명성(Contemplatio)이다. 이것은 명상의 자세와 방법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나님을 보는 그 상태까지를 말한다. 명상은 복합적으로 세 단계가 있는 데 첫 단계는 정화로 청결과 청결한 생활방식이고

 

둘째, 단계는 계몽, 조명의 단계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데 하나님을 깊이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셋째 단계는 중세 신비주의 요소로서 결합이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나와 하나님의 인격과 직접적인 만남을 말하는 것이다. 수도사들은 이러한 형태의 영성생활을 가르치면서 지도 했다.12)

 

또한 수도원 운동에 기록될만한 인물로 평가되는 사람은 성 베네딕트(St.Benedict)가 있다. 그의 수도 규칙은 8세기-13세기 까지의 서방 수도원 생활을 거의 독점적으로 지배하다 시피 했다. 베네딕트를 중심으로 한 수도원은 개인 중심적 금욕주의와 고행주의를 보다 높은 영성신학으로서 진리의 빛을 찾는 하나님을 찾는 학교로 수도원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공동생활을 통한 공동체의 몸의 신학과 경건훈련을 확립하였다. 그의 규칙은 엄격성을 피하고 분별력과 중용의 정신을 담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요소인 은세와 청빈, 겸손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넉넉한 수면과 의복과 음식을 허락하였으나 공동소유와었 청빈, 겸손을 요구하였으며 그들의 하루 일과는 세가지 성무일도, 영적독서, 노동이다.13)

 

이처럼 수도원 운동을 통한 영성훈련과 교회갱신, 사회정화, 구제사업, 교육제도 발전, 농업기술개발, 위대한 성인(聖人)을 배출하는 등 큰 공헌을 하였다고 볼 수있다. 이는 영성생활의 승리이다. 결국 중세 영성의 흐름은 U. T. Holmes에 의하면 상상적인 것과 관조적인 것의 통합으로 흐른 것이다. 14)

 

3) 근세시대의 영성(A.D 1500 이후)

 

근세의 영성은 초대, 중세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영성의 폭이 훨씬 광범위해졌다. 국가적인 문화와 전통의 특징이 나타나고 영성생활의 대중화, 개인현상과 또한 훈련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내놓게 된다. 성서연구를 영성훈련의 중요한 방편으로 응용하게됨으로서 성경의 말씀을 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스페인의 영성가로서는 이냐시오 로욜라 (1495-1556)와 테레사(1515-1582)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등이 대표적이다. 스페인의 영성은 매우 추상적이며 또한 금욕적이었다. 로욜라는 경건주의와 낭만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노예와 주인관계이며 자신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명을 다하는 기사로서 생각하였다.

 

그의 영성의 표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절대적 순명이었다.15) U. T. Holmes 에 의하면 근대 영성훈련의 특징은 유연성이 있고 쉬우며, 간결, 명확하다는 점이다. 그의 영성은 상상적이며 관조적이다. 이러한 영성운동은 영국,미국으로 이어져 19세기초 영적 대각성운동으로 이어졌다.

 

4) 현대교회와 영성

 

영성에 대한 깊은 관심은 개신교에 있어서 최근의 움직임이라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카톨릭교회는 12세기를 전후해서 꽃을 피운 신비주의의 신학을 계속 보완 발전시켜 오늘날의 영성신학으로 발전되었고 현재에도 많은 수도자들과 신자들도 영성에 대한 이해와 실천적인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현대교회의 영성운동의 방향에서 신선한 자극을 주는 제3세계의 국민은 서구 선교사들에게 교육을 받고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 성숙되면서 복음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일어났다. 혁명의 신학은 흑인들이 억눌린 자신들의 모습을 하나님께 울부짖는 모습을 신학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남미의 해방신학도 정권과 금권과 교회구조가 부단히 결탁되어 그 구조악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 이것이 해방신학의 배경이다. 소위 제3세계 신학이라 불리워지는 해방신학,정치신학, 민중신학등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발생되는 체험들을 정리해주고 또 그 체험들을 더 깊게, 더넓게 개발되도록 이끄는 새로운 성령운동이라 볼 수 있다. 해방신학은 남미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차츰 싹텄고 신학적으로 적립되어 뿌리를 내리면서 세계적으로 여러방면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개신교 영성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해방신학의 뿌리는 하나의 신비사상 즉 뚜렷한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16)

 

구스타보는 모든 위대한 영성은 그것이 형성되는 시대의 위대한 역사적 운동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연결은 기계론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인간역사의 과정안에 깊숙히 꿰뚫고 들어가는 어떤 것이다. 새로운 영성의 길은 교회가 당시 획득하였던 권력과 부에 대하여 사회적이고 복음적인 반발을 보였던 가난한 자들의 그러한 운동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해방의 영성의 주체는 민중이다. 그리고 예수를 따름은 공동체적인 일이다. 해방신학의 영성은 결과적으로 가난한자들의 영성이며 이 세계에서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성을 강력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공동체의 영성인 것이다. 17)

 

.한국교회의 영성

 

1.한국교회의 영성의 발전

 

한국교회의 싱앙적 특성을 형성하게 되었던 이 성령운동은 한국교회가 시작된지 20년만에 일어난 운동으로서 한국교회는 완전히 이 땅에 부리를 내리면서 교회가 질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이 부흥운동은 1903년에 원산에서 일만의 선교사들의 성서연구에서 시작되어 원산지역 교회에서 퍼지더니 1907년 평양에서 그 절정을 이루면서 전국적이 현상으로 퍼져갔다.

 

이 운동을 시작했던 하디는 원래가 의지적인 의사였고, 그의 사람됨은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정적이며 카리스마적인 부흥사 타입은 아니었고, 과장이나 흥분에 좌우되지 않는 지칠 줄 모르는 양심적인 일꾼이었다.

 

그가 강원도 지역에서 목회하면서 열심히 일하려 해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동료선교사 6명과 함께 일주일간 성서연구회에서 성령의 충만한 은사를 받았다. 이 은사의 특징은 죄에 대한 깊은 의식(사랑의 결핍) 과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강박관념이었다.

 

이런 깊은 종교적 경험을 한 그는 이 성령의 체험을 그의 동료 선교사들에게 간증하고 다음에는 자기의 죄를 부끄러움없이 한국교인들 앞에서 공공연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 선교사들의 부흥운동의 불길을 이어 받아 평양의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로 등장한 이가 길선주였다. 그는 안수를 받고 1935년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그의 부흥운동의 특색은 새벽기도,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방법으로 요한계시록을 만독하고 요한일서를 500독했다고 한다. 그의 신념은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복음을 믿도록 전파 해야 한다는 것이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는 말세를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님의 재림과 세계의 종말을 강조하고 사태의 긴박성을 주장하는 것이 그의 말년의 설교였다.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 특별한 전통이 되었다. 박아론은 이 새벽기도의 신학을 정립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는 이 새벽기도회는 신비와 고요와 생기의 3가지 특성요소가 있다고 주장하였다.18) 여기서 한국초기 교회의 영성을 볼 수 있다. 열심히 기도하고, 성서를 읽고,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여 생기가 넘치는 것이었다. 1920년 중반에 들어오면서 교회의 성장이 둔화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 기독교는 1907년대의 후반 부터 1930초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성장이 둔화되고 성령운동이 사라지게된 이유는 그 당시의 교회가 안팎으로 무서운 시련과 여러 가지 도전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도전이란 대체로 경제적 공항,사회주의 도전 ,교회에 대한 일제의 계속적 억압,반선교사 감정 등을 들 수 있다. 19)

 

이러한 시련속에서 교회는 침체되어 갔고 또 형식주의, 교조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의병이 일어나고 또는 민영익 등이 죽음으로 주권상실에 항거하였고, 전덕기목사,김구, 이준, 등이 보호조약 무효투쟁을 벌였고, 주기철, 조만식등 끝없이 항거하여 현실 교회와 나라를 구하려 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교회는 이 사건들을 계기로 부흥이 일어났다.

 

그후 60년대의 신학의 토착화논쟁 70년대의 사회적 영적 각성운동 사회 선교논쟁과 성령운동의 도입, 그리고 각 교회 기도원 설립과 기도운동의 활성화등에 이어서 80년대에 들어와서 교회교육의 중점을 두는 교육목회 지향적인 태도등은 그 나름대로 정체성을 확립을 위한 노력의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체성 확립을위한 과정속에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수의 운동’ ‘성령의 운동등의 성령의 사역을 인간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영역인 공공적인 차원으로 확대시킨 사회선교의 분리20) 잘못된 기도원 운동, 복을 받기위해 예수를 믿는 기복신앙과 신비주의의 오류 그리고 그릇된 성령운동의 영향으로 즉각적인 성화 성취, 급속한 경제성장, 도시화, 산업화의 결과로 나타난 물량주의가 교회안에 침투되어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혼란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부터는 그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는 데 그것은 교회안에 일기 시작한 성서 연구운동이었다.21)

루터의 벧엘성서, C.C.C의 십단계, 네비게이토의 성경교재, I.V.F의 성경교재등을 한국교회 청년층, 장년층이 주측이 되어 본격적으로 익히게 되었다. 이 성서 연구열은 단순히 성서를 지식적으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적용시키고 생활하는 데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서연구는 한국교회의 성숙이라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고 건전한 면을 가지고 있다. 이전 성서모임과 더불어 진정한 영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그것이 ‘Q.T 훈련과 건전한 기도원 운동이다.

 

그 중 경건의 훈련은 좋은 자료들이 많이 출간됨에 다라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또한 70년대 성령운동은 그 구체적인 예가 심령대부흥회, 대중집회, 순복음교회의 성령운동등 이 네 운동들은 성령체험을 강조하면서 은사를 강조하고 개이의 회개와 물질적 축복을 강조한다. 이런 운동은 대중을 회개시키고 그들의 삶에 활기와 기쁨을 주고 교회의 양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자칫하면 샤머니즘으로 오해되어 기독교 신앙을 하나의 미신으로 변질 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22) 그리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교단의 교세 확장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이런 모습속에서 요청되는 영성신학은 신학교육과 목회 현장이라는 맥락에서 그리고 신학자와 목회자와 교인들의 역동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2. 한국교회 영성의 문제점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양적성장이 급속하게 이루어진 만큼 또한 문제점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점을 인식하면서 지난19848월에 한국 개신교 백주년 기념대회가 있었는 데 그때 교회 지도자들은 첫날감사와 회개의 밤이란 주제를 가지고 지난 1세기 동안 개신교의 성장을 감사하면서 다른 한편 선교21세기를 바라보며 반성하고 회개하였다.23) 이대회 이후 한국교회는 개신교회에 대한 반성의 소리가 높았는 데 거기서 나타난 공통된 문제는 첫째, 물량주의다.

 

70년대 한국사회가 급속한 경제성장, 도시화 및 산업화에 더불어 경제 제일주의, 물질우선주의가 편만하게 되었다. 다라서 상대적으로 정신, 도덕, 인간의 존엄성은 평가절하되었다. 이와 같은 가치의 전도는 아노미현상의 와중에서 교회는 마땅히 서야할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이 물결에 휩쓸리게 되었다. 둘째, 교회 분열의 양상이다. 개신교회의 분열은 해방이후 노골화 되면서 최근에 와서 그 현상이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크게는 보수진영과 자유진영의 분열, 선교적으로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양극화 현상 또 같은 교단에서도 지연, 혈연 등으로 인한 분열 현상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의 남북분단의 현실에서 통일이라는 민족사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 분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알고 통일의 과제를 적극 실현하려면 먼저 화해, 일치 , 평화를 신학과 목회의 주요 과제로 삼아야 한다. 셋째, 선교2세기를 맞이한 한국교회는 불건전한 신비주의 운동, 역사와 사회를 외면하고 극단으로 달리는 사이비 성령운동들이 크게 침투하여 자리를 잡고 있다. 24) 넷째, 한국교회는 개인주의 와 개교회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이 현상은 신자들이 개인구원에 역점을 지나치게 두고 공동적 책임에는 매우 둔감하기 때문에 교회는 사회구원 즉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당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감이 적지 아니하다. 다시말해 우리만 구원받고 우리 교회만 부흥되고 우리 교회만 천국을 이루면 그만이라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다섯째, 오늘날 20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오순절 카리스마적 현상 문제이다.

 

이 문제 때문에 어느 교회든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칭 오순절 성령운동을 주장하는 방언, 방언통력, 신유은사를 절대시하는 신자들이나 신유적 영권을 과시하는 지도자들은 몇가지 그럴듯한 이유들을 들어 20세기를 설령의 시라고 말하고 있다. 여섯째, 영육에 관한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영적인 것에 반물질적, 반시간적, 비사회적 이해이다. 한국교회의 영적인 것에 대한 이해는 영지주의적 양태에 가깝고 무교적 영육이론 그리이스적인 영육이론에 깊이 젖어 있다.

 

그것이 단순하게 사물을 파악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에 그치지않고 모든 사유와 가치관, 구원관과 생활윤리를 지배하는데 문제점이 있다. 한국교회의 수많은 기도원과 부흥회가 한국교회의 성장에 공헌한점을 우리는 공정하게 평가해야 하고 도식적 비판은 삼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대중집회의 영성의 방향이 하늘과 땅이 하나로 어우러져 전개되는 오늘의 현실적 삶 그 자체, 지금 이곳의 삶을 영성적 생명체로 승화시키는 데 초점이 있었는가 아니면 얄팍한 기복신앙에 영합하거나 현대사회의 불안 심리에 영합하거나 제도적, 기구적 교회의 확산과 지탱에 그 초점이 놓여 있었는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바른 기독영성이해와 한국교회 영성 훈련의 방향.

 

1. 한국교회 영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

 

인간이 영성이란 인간의 본래의 모습이며, 인간성 속에 신성과 그리스도성이기도 하다. 인간의 영성이란 하나님의 형상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영성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와 통전적 이해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영성이해를 바로잡아 주는 척도가 된다. 이것을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것은 먼저 영육의 이원론에 대한 바른 시각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영적인 것에 대한 이해는 영지주의적 양태에 가깝고,무교적인 영육이론, 그리이스적인 영육이론에 깊이 젖어 있다. 그것이 단순하게 사물을 판단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에 그치지 않고 모든 사유와 가치관과 구원관과 생활윤리를 지배한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또한 한국교회의 영성의 극복은 영성의 사회성의 결여이다. 전체와의 관계속에서 개체는 존재하며, 개체의 건전한 내실성없는 전체는 공허할 뿐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의 약점이다. 그것은 개인성에 유폐되어 있고 사물을 볼 때, 죄와 구원을, 회개와 찬양을, 감사와 금식을 전체적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5)

 

그리고 한국교회는 기독교생활의 핵심인 자유케하는 능력, 기쁨으로 창출해 엮어가는 사랑의 삶을 가져야하는 영성에 집중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교회는 성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구분 또는 구별을 말하지만 그 분리는 도리어 죄의 원인과 시초가 됨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교회의 영성 이해에 있어서 개회기에 한국 선구자들이 가졌던 과학사상과 물질을 다루고 변형시키고 활용하는 도구로서의 학문과 종교철학을 두려워하면서 의심을 했다. 그리고 서학을 의심했다. 그 이유는 과학적 세계관이 인간성을 상실시키고 기계화처럼 되어 간다는 것이다. 또한 영성이란 존재의 합리적인 구조요소와 힘의 요소 위에 의미라는 요소를 가미시켜서 생명의 불꽃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영성의 이해를 하고 있다. 26)

2.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의 방향.

 

위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의 현황과 여러 가지 영성이해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한국교회 영성 생활의 발전되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영성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쓰일 때는 문자 그대로 정신을 뜻하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의미로는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신학이나 수덕신학과 거의 동의어로 쓰여왔다. 최근에 와서 이 영성성신학을 새롭게 정의하려고 하지만 미흡한 점이 많다. 왜냐하면 기독교영성을 바로 표현하려면 영성의 개인적 차원, 사회적 차원과 내향적 운동과 외향적 운동등이 균형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의 균형을 잃은 운동은 잘못되 길로 흘렀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경건주의 운동이다. 초기와는 달리 경건주의 운동은 현대에 이르러 더욱 개인주의적 차원으로 치중하고 말았다. 27) 경건주의가 개신교 영성신학을 대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 불균형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의 방향은 보다 전체적, 통체적인 개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을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 나아갈 것인가를 살펴보면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개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28)

첫째, 기독자의 삶의 스타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성서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성서의 진리의 적용이라는 점에서 리차드포스터가 제시한 단순화 훈련이라든가 특히 공동체 훈련이 강조될 것 같다.

둘째, 묵상훈련이 크게 강조될 것이다. 이것은 광야의 교부들이나 동방교회의 영성의 특징이었던 묵상의 중요성이 젊은 층에서 재발견되면서 확산되고 있는데 있다.

셋째, 오늘날 개신교 안에 일고 있는 예배갱신 운동은 어떤 의미에선 선례전적 영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특히 개혁교회들이 초창기에 무시하고 없애 버렸던 예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면서부터 모든 개신교 안에 파급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도 이 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예배에 있어서 성만찬의 회복, 예배기도 찬양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될 것이다.

넷째,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초교파적이고 신.구교의 영성을 겸한 평화, 일치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

 

영적운동은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매개와 사역으로 이루어 진다. 따라서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기를 간구하는 회개와 간구의 기도를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드림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적 각성을 위한 준비와 훈련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종들은 감정적 흥분이나 인위적 확신에 의해 조작되어질 수 있는 은사개발에 빠져서는 안된다.

둘째, 영적운동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적각성운동이 우연히 또는 준비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되고 훈련된 자들에게 주어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29)

셋째, 위의 두 가지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는 개교회 단위의 영적각성 훈련의 시도하는 한편, 목회자들을 위한 또는 평신도들을 위한 연합적 영적각성 집회를 마련하고 준비와 훈련을 격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영적 운동이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생활에 구체적으로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서 한국교호는 구체적인 헌혈운동”, “소년 소녀 가장 돕기 운동”, “장애자 격려운동”, “결식아동 급식운동”, “탈선자 선도운동”, “세계 난민 돕기 운동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이에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적극 참여케 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므로 서 영적각성운동이 균형 잡히게 될 것으로 본다.

다섯째, 영적운동이 한국교회에 지속적으로 퍼져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신학교가 신학생들의 영적 자질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신학교는 이론과 더불어 기도,금식,공동체생활,경건서적 읽기,전도 및 봉사훈련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성령은 생명의 영과 사랑의 영인 동시에 선교의 영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구체적인 선교사 훈련, 파송, 및 관리 프로그램을 연합적으로 개발하고 운영하고 제공해야 할 것이다.

 

.맺은 말

 

지금까지 기독교 영성을 통한 한국교회 영성을 진단해 보았다. 그 중에서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교회가 백 년의 역사를 지내오면서 괄목할만한 발전과 성장을 이룩해 왔다. 그러면서 한국과 세계를 향한 선교와 봉사의 사명을 감당할만한 저력을 갖추게 되었다. 사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한국교회가 선교와 봉사사역을 감당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남북통일의 민족적 과업을 앞둔 한국교회에 주어진 사명은 참으로 막중하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자체 성장과 자기성취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개교회주의와 세속주의의 심각한 문제에 빠져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어느덧 교회의 저력을 의지하게 되었고, 섬기려는 겸손의 자세 대신 주장하려는 자세를 지니게 되었다. 사회로부터의 신뢰를 상실해 가고 있으며 비난과 정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30)

 

이러한 상태에서 한국교회는 교회로서의 참모습을 되찾고 교회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적 운동과 훈련이 경험되어야 한다. 참된 영적인 운동과 훈련은 본래의 기독교 영성을 기초로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영성운동과 훈련의 바탕이 된다 하겠다. 이것은 다가오는 미래의 한국교회의 영성회복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각 주

 

1) 신학정론, 1990, 12, 통권 16, p. 411

2) 새 우리말 큰사전, (삼성출판사;1991), p. 2392

3) 오성춘, 영성과 목회, (장신대 출판부;1989), p. 40

4) 황화자, 기독교 영성의 이론과 실제, 기독교교육(1987. 2), pp. 16-17

5) 오성춘, 기독교 영성의 기본 요소에 관한 연구, 교회와 신학, 8911, pp. 252-279

6) 오성춘, op. cit. p. 45

7) 엄세천 영성신학개론, (기독교 한국연수원;1986), p

8) 오성춘, Ibid, p. 21, Ibid, p. 21, . 19

9) Urban T. Holmes, A History of Christian Spirituality(New York : The Seabury Press, 1930), p. 14

10) 박대인, 초대와 중세의 영성생활, 4회 연신원 목회자 세미나(서울:연세대 출판부, 1985), pp. 346-347

11) Ibid.,p.346-347.

12) lbid.,p.349-352.

13) 김경재,영성신학(서울:대한 기독교 출판사,1985),p.136.

14) 염세천 ,영성생활(서울:기독교 한국 연수원출판부,1986),p.30.

15) Alain Guillermou,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와 예수회, 김정옥역(서울:한국예수회,1981),p.46.

16) 레오나르드보프,구원과 해방 ,정한교역(왜관:분도출판사.1986),pp.10-11.

17) Gustvo. Gutierre,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86),pp.9-10.

18) 박아론,새벽기도의 신학(서울:세종문화사,1980),p.64.

19) 송길섭, 한국 교회와 성령,신학전망 (1974년 가을호)

20) U.T 홈즈, 목회와 영성, 김외식역(서울:대한 기독교서회,1985),p.225.

21) Ibid.,p.228.

22) 김균진, 성령운동과 한국교회, 목회의 전문화 영성(서울:연세대출판사,1985),p.251.

23) Ibid.,p.229.

24) U.T.홈즈, Op, Cit.,p.230.

25) 김경재, 그리스도인의 영성훈련(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pp.95-96.

26 Ibid.,p.99.

27 U.T홈즈, OP,Cit.,p.233.

28 Ibid.,p.235.

29 신학정론, 12,통권16,p.423.

30 Ibid.,p.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