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멸망의 징조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 16 : 2]
마지막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여 피할 길을 찾으라!!!
-머리말-
나는 당신이 이 두 부류 중에 한 부류에 속할 것을 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계 22:11,12]
신학교 다닐 때 사복음서 과목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사복음서에서 어떻게 각기 표현하고 있고 다르게 표현 되어 있는 부분을 찾아 분석하는 레포트가 있었다.
나는 "예수님의 예언"이라는 주제로 도서관의 책과 주석을 뒤지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고 제자들이 세상 마지막에는 어떠한 징조가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때의 징조를 순서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때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변화" 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이 이 글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변화되기 바라고 피할 길을 찾기 바란다.
예수님이 "성전에 돌이 다 무너지리라"는 말에 제자들이 세상 끝 날의 징조를 묻는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들을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말한다....
"예전에도... 지진은 있었고, 기근도 있었고, 전염병도 있었다, " 라고
그렇다!!! 예전엔 그 뿐이었고 다른 예언의 부분들이 뒷 받침 해주지 못했다.
그런데 나머지 부분들도 이루어 졌으며 이루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은 2천년 역사속에 1948년에 와서야 성취가 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EU공동연합국의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 지금에서야 이루어졌다.
그리고.... 일월성신의 징조, 하늘의큰 징조가 이루어 지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이 코앞에 다가왔다. 믿는자는 예비하고 준비하기 바란다.
멸망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 그 징조를 순서적으로 나열해 보겠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 모든 곳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예언을 설명하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2000년 21세기가 시작 되면서 한꺼번에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1. 미혹 하는자의 출현 -
예수님은 첫 번째로 있을 징조에 대해 적그리스도 즉, 거짓그리스도의 출현을 언급하고 있다. [마태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요즘, 이단과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많다. 자신이 또 다른 예수라는 사람도 있으며 예수님이 자식을 두었고 그 자식의 핏줄이라는 사람도 있다. 이단 연구소에서는 우리나라에만 이런 자들이 3백여명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이단은 모든 면에서 완벽할 정도로 복음적이며 성서적이다 그러나 삶속에 기도가 전혀 없으며 회개 또한 하지 않는다. 교인 전부가 완벽한 구원을 이루어 신이 되었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문제로 모이면 찬양과 말씀이 아니라 사업과 구좌(돈)이야기를 하면서도 그것이 교제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이단” 교회와 관련이 있다면 속히 그곳을 떠나기 바란다.
2. 난리와 난리 소문과 소문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마24:6,막13:7,눅21:9] 911테러 같은 엄청난 소문들로 2000년 21세기가 시작이 되었다. 또한 난리와 소문의 매체가 된 정보화 시대도 인터넷 보급과 맞물려 시작되었다. 지난 역사 속에서 현대에 사는 우리처럼 순간적으로 세상의 모든 소문과 각종 재해와 재난을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컴퓨터나 TV를 통해 접했던 역사는 없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매일 더 놀랍고 끔직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은 마지막 시대에 이루어진다고 예언하고 있었다.
3. 전쟁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마24:7,막13:8,눅21:10] 911테러 후 "테러와의 전쟁"시작 되었고 우리나라도 파병했다. 또한 세계 여러 곳에서 아직까지도 전쟁이 끈이지 않고 있다.
4. 기근 -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마태 24: 7 ,마가 13: 8,누가 21:11] “이는 재난의 시작이라" 는 말씀이 선포되었다. 지금 현재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기상이변을 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고 있다. 즉, 이 기근 이후부터 온갖 재난들이 벌어진다는 것인데 실지로 몇 년 전부터 각국에 심한 기근들이 있었다. 살펴보면 인도는 극심한 가뭄으로 자신의 딸과 아내를 팔았다는 뉴스를 접했고 호주는 6년 대기근으로 전 세계 밀 값 상승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브라질은 아마존 강이 말라 식수가 없어 고통 받는 원주민에게 식수를 헬기로 제공하기도 했다. 몽골과 중국의 가뭄은 국토가 사막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황사 발생의 원인이 되어 우리나라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있는것이다. 또한 남미 쪽에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너무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식수가 부족하여 형무소 범죄자를 출감시킬 지경까지 되었고 경찰은 물탱크를 지켜야만 했다. 또한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이 가뭄이 심해 수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 세계 기근으로 인해 많은 대형 산불을 접했고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5 지진 -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마태 24: 7 ,마가 13: 8,누가 21:11]
(최근 역대 최대의 지진들이 발생하고 있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 쓰나미로 30만명 이상 사망
2008년 쓰촨성 지진 8만 7천여 명이 사망
2010년 아이티 지진 23만명 사망
최근에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지진이 있었고 이제 진도 6의 지진은 지진으로 취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미약하지만 진도도 점차 강해지고 있으며 횟수도 잦아지고 있다.
6. 전염병-
[누가 복음 21:11]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그리고 세계적으로 공포의 전염병으로 확산된 "신종플루"가 등장했다. 이 신종플루는 1차 세계대전 때 5천만명이 사망한 스페인독감과 같은 전염병으로 판명되었으며 전 세계가 신속하게 방역과 대비를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염병이 변이를 일으키게 되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2011년 구제역으로 소와 돼지 200만 마리를 살처분하고 약이 없어 생매장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AI까지 번지면서 더욱 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지진피해를 당한 아이티는 콜레라로 수많은 사망자와 전염자로 신음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예수님의 예언의 순서를 분석하면서 "전염병"이 올 수 있다고 많은 분들에게 예견했다. 또한, 요한 계시록의 예언에 의하면 더 강한 전염병이 올 수 있다.
구제역의 확산을 막지 못해 수많은 가축들을 생매장했던 것처럼 인간에게도 비극의 전염병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정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그 마지막 때가 지금의 그 때라면 말이다.
7. 무서운 일 -
그럼 이 온역 다음에는 어떠한 징조들이 있을까? 누가복음 21장 11절 후반을 보면 “또 무서운 일과”라는 말씀이 있다. 상상해 보자.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갔는데 폭탄이 터져 수백명이 피 흘리며 죽었다 하자 우리는 이것을 '테러'라고 한다. 하지만 '테러'라는 단어가 없었을 땐? '무서운 일'이다. 전쟁, 기근, 지진, 전염병을 뺀 재앙 중에 하나 '테러'가 그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매일 테러의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는 “어디 무서워서 살겠나!” 라는 말을 한다. 이처럼 예수님은 예수님 시대에 맞는 표현으로 “테러”를 무서운 일로 표현한 것이다.
8. 하늘의 큰 징조 -
그리고 다음 구절엔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누가복음 21 : 11] 지금 '지구 온난화'로 30년 안에 지구가 6도 상승한다고 하고 세계 이곳저곳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한다. 수없는 과학자와 환경연구자들이 “이미 때가 늦었다며” 경고 하고 있다. 우리는 각종 태풍과 홍수의 영향으로 사건 사고를 보면서 그것이 심각한 지구 온난화의 문제라는 것을 이제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대두 된 적이 없었다. 앞으로 우리는 매일 이 지구 온난화의 문제로 많은 뉴스를 보고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지구온난화를 예수님은 “하늘로서 큰 징조들” 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예전엔 없었다. 최근 현대에 와서 더욱 심각해 졌다.>>
9. 복음의 세계 전파 -
다음에 마지막 때의 징조는 마태, 마가, 누가 복음 모두 복음이 세상에 전파됨을 예언하고 있다.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 “온 세상에 전파 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약 2천년전 지금의 터키에 있는 안디옥 교회에 있던 사도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A.D. 3-4세기 로마의 콘스탄틴대제 때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한 후 복음이 유럽 전역에 전해졌고 그 이후에 영국의 청도교들에 의해 미국에 기독교가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 이후에 19세기 아시아에 기독교가 전해졌고 21세기가 되면서 다시 아시아 국가에서 이슬람권 국가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2007년 터키에서 독일선교사가 동료들과 함께 무자비하게 순교당하면서 터키에 숨어있던 기독교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우리도 기독교인이다 우리도 죽여라!'고 가두행진을 했으며 이스라엘도 2007년부터 기독교 교육을 허용했다. 이러한 추세로 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에 기독교 신자가 늘고 있다.
이스라엘 공교육에서 기독교 교육 가르쳐...2007.01.01
<< 이스라엘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있다. 이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또한 신학자들은 복음이 처음 시작된 이스라엘과 터키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복음이 처음 시작된 곳에 다시 전해짐으로 인해 세상 마지막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10. 멸망의 가증한 것-
다음 구절을 살펴보면, 마태, 마가복음에서 선지자 다니엘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는데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곳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찌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느부가넷살 왕이 꾼 꿈을 해석한 것인데. 바벨론 -> 페르시아(바사) -> 그리스(헬라) ->로마 -> 흩어진 유럽 (이 나라에 열 왕이 일어나고 그 후에 한 왕이 일어나 세 왕을 복종시키고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즉, EU 유럽연합국의 탄생과 그 나라를 다스릴 왕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니엘서 2장과 9장을 살펴볼 것
그런데 지금 2009년 11월 19일 EU 초대 대통령 선출이 되었다. 이 예언의 성취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기근과 지진과 전쟁 그리고 전염병은 인류 역사 속에 지속적으로 벌어진 일들이었지만 이 예언만큼은 없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예언의 성취로 인해 마지막 때의 예언중에 하나가 성취된 것이다.
<< 모든 예언중에 마지막에 있을 예언이 드디어 성취 되었다.>>
11. 넘겨 주는 일 -
그리고 다음으로는 누가복음 21장 16절에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복음이 전파 되면서 많은 이들이 서로를 팔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리고 이 예언에 대해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다. 만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죽는 일에 넘겨주는 일이 발생한다면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며 그런 일은 일어 날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TV를 보던 나는 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수영을 하던 사람들은 무척이나 불편한 사항이 있었다. 그것은 수영을 하다가 배가 고프고 마실 것을 먹어야 하는데 번번이 벗어둔 옷을 뒤져서 지갑을 꺼낸 후 돈을 내야만 했다. 그래서 비치호텔 운영자는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몸속에 칩을 삽입하여 자동으로 계산을 하도록 하게 했다. 이 아이디어가 히트를 쳤고 누구나가 어깨와 손등에 칩을 받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중에 일부 소개를 하면 젊은이들이 나이트 장에 갔다. 그런데 다들 들어가는데 젊은 한 청년이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어깨에 칩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권유를 하게 되었고 그 청년도 칩을 삽입하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친척들과 형제들끼리 갔다가 하지 않은 사람에게 삽입을 권한다. 꼭 이 사건이 이 말씀과 연관 되어 진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요한계시록에는 표를 받는 예언이 있으며 절대로 이 표를 받지 말라고 되어있다. 받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에 고난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계 14 : 9~]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즉, 서로가 편하고 좋아서 권하는 일이지만 결국엔 죽는 일로 넘겨주는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금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는 사람 중에 자신은 현금도 없고 카드도 없고 손등에 있는 칩으로만 결재를 하기 때문에 십일조도 그렇게 하는 성도가 발생하였다. (미국 언론에서 발표한 내용)
<< 베리칩을 손이나 어깨에 삽입하는 것을 항의하는 대모집회 >>
<< 마지막에 있을 예언들이 하나씩 성취 되고있다.>>
12. 이스라엘의 징조-
[누가복음 21 : 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4절에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 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예수님의 예언처럼 이스라엘은 2천년동안 국가를 잃고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렇게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2차 세계 대전 때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계획으로 6백만이 죽었다. 그렇게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철저하게 짓밟힘을 당하고 유대인들은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 이방인의 때가 끝이 나고 이제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했다. 29절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이스라엘만 독립한 것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이 끝이 나면서 많은 식민지로 있었던 나라들이 독립을 하고 해방이 되었다. 모든 나무를 보라는 말씀처럼 우리나라도 그때 해방을 맞이한 나라 중에 하나였다. 즉, 무궁화 꽃이 핀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이후로 6일 전쟁과 지속적인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거의 다 차지하고 그들을 몰아냈다.
2008년 12월 이스라엘은 또다시 가자지구에 폭격을 감행하여 수없이 많은 아이들과 민간인들을 죽게 했고 전 세계가 이스라엘을 맹비난 하였다. 그런 일이 진행되면서 중동의 이란은 더욱 강력하게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6년 전부터 핵개발을 준비하면서 이란의 대통령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스라엘은 곧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탄도 미사일 발사에 성공을 했을 때는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적을 지옥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라고 공식 석상에서 발표를 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즉각 이란을 폭격을 하려고 했고 이로 인해 유류 인상이 된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자 이란도 폭격을 할 경우에는 가만히 안 있겠다는 식으로 나왔고 두 나라를 중재한 것이 유럽과 미국이었다. 이스라엘의 폭격을 미루게 한 것은 2009년 6월에 있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친미의 개혁파가 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거후 개표 결과는 보수파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월등한 표차로 이기게 되었고 부정선거의 의혹으로 국민이 대모를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지식인들이 옥에 갇히거나 죽었고 지금은 이러한 문제로 유럽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이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로 이스라엘은 폭격에서 지상군 투입할 수 있음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이란의 핵개발 관련 컴퓨터를 해킹하여 3년 동안 핵개발을 저지 또는 방해해 왔다. 현재 이스라엘과 주변국가의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쟁 가능성은 누가복음 21장 20절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는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 때문에 우리는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의 전쟁위기를 예의주시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래스타인을 점령한 상황)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발발 하게 될 것이다. >>
13. 일월성신의 징조-
누가복음 21장 25절에는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 중에 곤고하리라” 마가복음에는 13장 24절에는 더욱 자세하게 “그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는 말씀으로 설명되어 있다. 눈부시게 발전한 천문학과 첨단 망원경에 의해 수없이 많은 소행성과 행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지구를 위협할 소행성들까지 발견 되었는데 2009년 10월 8일 인도네시아 남슬라웨시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공황 상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얼마 뒤 캐나다의 천문학자 피터 브라운이 지진이 아닌 지름 약 10m의 소행성이 시속 4만 5천마일로 지구 대기권과 충돌하였음을 발표하게 되었고 NASA에서도 이를 공식 발표했다. 그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3배에 해당했다고 하였다. 이 소행성의 충돌을 미리 알 수 없었던 것은 지름 10m의 작은 소행성은 미리 관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알려진 '아포피스' 소행성, 행성X '니비루'를 참조하기 바란다)
[계 8 : 10]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 행성(소행성)과의 충돌이 이루어 질것이다.....>>
그러나 믿는자는 피하게 될 것이다.
14 -당부-
예수님은 마지막에 있을 징조를 말씀하시고 당부를 하신다. [마태 24:44절]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가 13: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 엘는지, 밤중 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누가 21 :35]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비하고 준비해야 할까?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피하는 길은 어떤 길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교회만 다니면 피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만 하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있는 분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 7 :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심지어 마귀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다. [막 3 :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즉, 교회만 다닌다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고 엎드려 부르짖어도 모두가 예비 되고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며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바란다. 그리고 변화 된 삶, 경건과 의의 향기가 나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15 재림, 휴거-
마지막으로 공관복음 세 곳 모두에서 예수님의 재림이 묘사되어 있다. [마 24 : 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막 13 : 26]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눅 21 : 27]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때 까지 믿지 않던 많은 자들은 통곡을 하며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 재림의 사건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인데 더 살펴보면 37절 부터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사건 즉 휴거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40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누가복음 17장에도 이와 같은 말씀이 있는데 3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말을 해석해 보면 낮에 일하고 있는 두 사람, 밤에 자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매를 갈고 있는 두 여자는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낮과 밤, 아침과 저녁 하루 한 날 동시에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알려준 사실들 -
이제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멸망의 징조에 대해 순서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세상멸망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신학교를 입학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저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7번의 큰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고 이후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 쓰촨성 지진, 아이티 지진, 칠레 지진이 있었습니다. 아직 몇 번의 이보다 더 큰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산 골짜기에서 산들이 흔들리며 무너져 내리고 무수한 사람들이 매몰 되는 것도 알려주셨고 그 이후에 중국,인도, 멕시코등 각국에서 산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았고 최근엔 또 브라질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6백여명이 사망한 사건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 하나님은 또 다른 무서운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학교 관련된 건물이 보이고 어떤 한 사내가 들어가는 것이 보이는데 곧이어 건물에 화재가 일어났고 수많은 아이들과 노약자들이 연기에 질식되어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2010년 11월 15일 상하이에서 아파트에 불이나서 백여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이 학교와 관련된 교직원 건물이었기에 아이들과 노약자들이 화염에 희생되었습니다. 저는 눈물로 기도하며 왜 이런 이들이 죽어야 하며 아이티같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그들에게 지진과 콜레라라는 질병을 주어 고통 받게 하시냐며 매일 원망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에게 잠언을 읽어 보라고 하셨지만 제가 아는 잠언에는 이런 일과 관련된 말씀이 없는데? 하며 원망의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다 두 번째 잠언을 읽어 보라는 말씀에 그날 밤 잠언을 읽었는데 원망의 기도가 회개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잠언 1장 24절~ "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에 귀 기울이는 자 이기를 소망합니다. 죄악으로 인한 환란과 재앙에서 피하는 길은 바로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방법으로 피해야 합니다.
이글을 끝까지 읽으시고 그 피하는 방법을 깨닫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 기도 -
하나님.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가 불의한자에 자리에 서지 않게 하시고,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시며, 더러운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거룩한 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게 하시며, 어떠한 모습이라도 악이 틈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의지로 나아가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에 이끌려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가는 길에 동행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안과 밖으로 감싸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오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비? 준비? -
처음 말씀 드렸듯이 마지막 때는 오직 하나님만 알고계십니다. 단지 우리는 어느 때이든지 예비가 된 자들, 준비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2012를 보면 지구의 지각변동을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재난을 당하는 영화입니다. 엄청난 지진과 해일(쓰나미)을 지질학자들의 예견으로 인해 중국에 피난처를 만들고 세계 인류 중 일부만 살아남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사람이 만든 장소로 피한다 해도 피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 6 : 14~17]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 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 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우리의 힘으로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늘에 우주 정거장을 만들고 우주 기지를 만들어 대피하는 계획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자들도 피할 수 없다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옵 1 : 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방법으로 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뜻을 찾아야 합니다.
- 멸망의 사건들을 통한 교훈 -
예수님의 예언은 앞으로 있을 마지막의 환란(멸망)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미 있었던 멸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멸망들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해야 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피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1. 노아의 방주-
성경에는 멸망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은 노아의 방주 사건입니다.
창세기 6장~9장에서 그 사건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창 6 :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는 말씀으로 그 시대의 죄악 된 상황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은 물의 심판을 하십니다.
-2. 소돔과 고모라-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이야기 속에 롯이 선택한 땅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성 또한 타락하고 죄악이 가득한 도시었습니다. 그곳을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려하자 아브라함은 의인 50명, 45명, 30명, 20명, 10명이 있어도 멸망하시겠냐고 하나님께 여러 번 묻습니다. 결국 의인 10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합니다.
[창 19 :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이 멸망하는 도시에는 죄악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 3. 요나와 니느웨-
요나서 1장 2절을 보면 니느웨도 악으로 가득한 도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 1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니느웨성은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멸망을 그 성에 선포 했을 때 3장 5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며 강력하게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회개합니다. 이러한 결과로 하나님은 그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 공통점 -
멸망의 원인은 죄악이었고 죄악을 회개하지 않음은 멸망에 이르는 길이었고 철저하게 회개한 경우에는 그 뜻을 돌이키셔서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연관된 사항입니다. 마지막에 있을 멸망, 이 세상 마지막의 환란도 죄악과 타락으로 인한 것입니다. 지금 세상도 엄청난 죄악으로 가득합니다. 매일 살인과 성범죄 약탈과 사기, 낙태, 폭력, 비리, 등 무수한 죄들이 뉴스에 보도 됩니다. 바로 현대의 이세상도 그 죄악으로 인해 멸망의 기로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 멸망에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계획 -
인간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알아 가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가를 느끼게 됩니다. 이해가 쉽도록 복잡하게 말씀 드리지 않고 주제와 함께 오직 원리와 목적에 대해서만 설명 드리겠습니다.
- 예수님 -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든 이름에는 뜻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뜻은 열국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이삭의 뜻은 웃음이란 뜻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이름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평생 외쳐왔지만 그 뜻을 물으면 당황해 하며 “뭐였지?”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마태 1장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구원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가장 먼저 외쳤던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왜 이렇게 외쳤을까요? 이렇게 외침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인류를 죄에서 구하실 목적으로 예수님을 보내심이요 죄에서 구하심이란 먼저 백성 스스로가 죄를 인정하고 자백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성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지만 모든 백성이 만약 스스로가 “죄인이 아니다!” 또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의미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 회개의 열매 -
사람들은 세례를 주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위해 요단강가로 나아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3장 7절 찾아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독설을 뿜어 버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례를 받으러온 그들에게……. 그 이유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성경에 능통한 자들이었으며 율법적으로 생활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8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당부하며 9절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 우리라” 말씀하십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무슨 나무입니까? 8절에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라고 말 했듯이 좋은 열매란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해석을 해본다면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마다 불에 던지 운다는 말씀입니다. 12절에도 이러한 해석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장경동 목사님은 수시로 말씀하십니다. “교회에 회개가 점점 사라지고 쭉정이 투성이다”라고요. 교회에서 회개가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그럼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5절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세례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바로 자기들의 죄를 자복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복했기 때문에 세례받기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 예수님 가라사대 -
마태복음 4장부터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 17절“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하시면서 예수님의 첫 외침이 있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외치셨을까요? 세례요한과 똑 같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백성을 죄에서 구할 목적이요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도 “구원자”요 먼저 와서 광야에서 외친 세례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요. 마찬가지로 예수님 스스로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 -
예수님이 12제자들을 부르시고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귀신을 제어 하는 권세를 주시고 전파하게 하십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나가서 외칩니다. [막 6 :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에 나가서 전파할 때 먼저 능력을 행하기 전에 “회개하라”고 전파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 이었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그렇게 외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 속에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고 그 집 앞에 거지인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둘 모두가 죽었습니다. 부자가 죽어 음부에서 고통 중에서 눈을 들어보니 자기 집 앞에 있던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안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건너 갈수도 건너 올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부자는 나사로를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보내어 형제 다섯에게 증거 하여 저희가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부자가 말 합니다. 30절 “가로되 그렇지 아니 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 라고 말하면서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는 부자는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이 “회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회개는 지옥을 가느냐. 안 가느냐를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회개치 아니하는 자-
[롬 2 :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롬 2 :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
*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치 아니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반성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회개의 필요성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필수 사항인 것입니다.
- 살인 -
마태복음 5장 21절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이 아니라 살인하기까지의 모든 동기조차도 살인이라는 겁니다. 살인자가 아무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처음에 어떠한 이유로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 미움이 커지면 화가 납니다. 더욱 미워지면 욕하게 됩니다. 그 미움이 계속해서 진행 되면 살인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미움이 실천이 되면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살인의 동기가 이러하듯이 예수님은 이러한 동기들조차도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하는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졌던 미움도, 화도, 욕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 송사 하는 자 -
마태복음 5장 25절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여기서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라는 말씀은 예를 들어 음주 운전 중에 차사고가 나서 피해자와 법원을 가야 하는데 법원까지 가서 심판을 받고 재판을 받아 감옥까지 가지 말고 그 가는 길에서 서로 합의를 하여 받을 고난을 받지 말라는 뜻이며 다시 해석해서 말하면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운명이지만 인생의 길에 있을 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여 세상 끝 날 심판자 앞에 가서 재판을 받고 지옥에 가지 말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호리”라는 말은 가장 작은 단위를 말합니다. 즉 먼지만큼의 죄라도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그 지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전능하신 분입니다. 결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죄라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길에서 저지른 모든 죄가 있다면 해결해야 합니다.
- 간음 하는 자 -
마태복음 5장 27절에는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간음한 자가 아무이유도 없이 동기도 없이 간음을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습니다. 이것부터가 첫 단추입니다. 지속적으로 이성을 생각하고 음욕을 품습니다. 그리고 계획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천을 했을 때 간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처음부터 시작된 쳐다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이미 죄 라는 것입니다.
- 하와의 죄 -
창세기에서 인류최초의 범죄가 일어납니다. 처음 하와의 범죄는 선악과를 쳐다보는 것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것부터가 죄의 본성이 나타 난 것입니다. 쳐다봤다는 것은 죄에 대해 관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인자, 간음자 뿐만 아니라 죄를 생각하고 품은 것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본즉 먹음직도 하고” 아직 먹지 않았지만 쳐다봄으로 인해 다음에 먹음직스럽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죄는 이렇게 시작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보면 볼수록 죄는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이 생겼습니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결국 행동으로 옮겨져 함께한 사람까지 범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란 “먹어야”만 죄가 아니라 따 먹기까지의 모든 동기가 죄라는 것입니다.
- 죄를 발견 하라 -
마태복음 5장 29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절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널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스스로 저지른 죄로 인해 그 죄가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은 정말 찍어내고 빼 내라는 뜻이 아니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죄를 발견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발견했다면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마태복음 7장 20절~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바로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하는 자에게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22절 그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예수님이 말씀 하십니다 23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들은 위대한 일을 해 보인 듯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회개의 중요성을요.
- 죄인을 부르심-
마태복음 9장 12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건강한자가 병원에 가서 치료 받는 것 봤습니까? 의원도 병든 자에게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이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목적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 속에 나는 죄인임을 모르고 있었고 진정한 자백과 회개가 없는 자는 성경 속에 많은 비유와 사건처럼 “독사의 자식들아” 하며 세례를 주지도 않고,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는 강도처럼 낙원에 들어가지 못하며,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며,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게으른 종처럼 가지고 있던 달란트마저 빼앗기고 어두운 곳에 쫓겨나 이를 갈며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 태평양 -
제 간증을 보시면 20년 전 저는 “죄” 문제로 태평양 한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죄를 발견 했던지 사방을 둘러 봐도 오직 내 죄만 가득 했습니다. 그곳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발목 정도만 있다고 생각하며 첨벙거리며 세상에 살아갑니다. 만약 그를 예수님이 건져 주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아~ 시원하고 좋은데 왜 건지는 거요?”할 것입니다. 그 정도의 죄는 죄라고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슴 정도의 물에서 수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도 예수님이 건져 주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도 “아~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왜 건지는 거요?”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태연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물이 자신의 키를 넘기고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자는 다릅니다. 자신이 거기에 빠져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바로 “누구든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 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 어부 -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며 말씀 하셨습니다. [마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바로 이 죄악의 바다에서 죄인 된 사람을 건지심입니다.
- 회개의 비유 -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3장5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시면서 회개에 대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세례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쳤던 것처럼 여기서 실과는 “회개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삼년을 기다려 왔는데도 실과가 없었습니다. 찍어 버리려하자 과원지기가 금년에 거름을 주고 관리를 했음에도 실과가 없으면 찍어 버리소서.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오래도록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 기도 -
기도하기를 간구 합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에 세리가 기도한 것 같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기도를 하시고 다음을 계속 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죄인 됨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눈이 가리워지고, 마음이 강퍅하여 나의 죄 됨을 발견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였나이다. 아버지 세상에 치우쳐 살아온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무릎 꿇게 하소서 회개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 인류 역사 속에 하나님의 계획 -
이제 성경의 전체 흐름 속에 우리와 하나님 관계 속에서 무엇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1. 에덴동산 -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우리를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 2. 돌단 시대-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 아벨과 가인이 돌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이 제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 3. 성막 시대 -
그 이후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고 성막 건축을 알려주십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어지고 광야에서 성막도 함께 이동하였습니다. 이 성막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죄를 사함받기위해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용서를 받았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 4. 성전 시대 -
가나안에 입성하고 이스라엘이 솔로몬왕 때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광야생활속의 성막이 아닌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 5. 예수님 시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신 후 부활 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사역은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 6. 교회 시대 -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 시대가 시작이 됩니다.
- 돌아 봐야 할 문제 -
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흘러온 모든 시대를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1.에덴동산에서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를 범한 후 아담과 하와가 부끄러움에 있자 하나님께서 직접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즉 태초로피 흘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의 죄를 덮으셨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2. 돌단의 시대에서 아벨이 어린양을 제사를 받으신 것도 어린양의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다가 하나님이 그를 대신하여 준비하신 수양도 피 흘림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졌습니다.
3. 성막시대에서도 번제단에 제물을 드릴 때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자는 소나 양으로 그 머리에 안수를 했으며 이 안수는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짐승이 죽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머리와 기름을 베어냈으며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었습니다.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피를 전부 단 밑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불로 태웠습니다.
4. 성전시대에도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1장 13절을 보면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말씀하시면서 먼저 헛된 제물의 헛된 피 흘림 1장 11절에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시면서 16절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라고 말씀하시면서 진실함 없이 가져오는 제물에 대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5.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러 그러한 성전에 가져오는 헛된 제물과 스스로 자신의 죄를 생각지 아니하는 피 흘림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이 이루어졌습니다.
[히 9 :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롬 3 :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계획은 바로 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피로, 피 흘림으로 역사 속에 있는 모든 죄인들의 영원한 속죄의 피 흘림으로 사용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바로 나의 죄를 위한 제물 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제물을 바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어린양의 모습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1 :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세상 죄에 우리의 죄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계획 이었습니다
[요 3 : 16]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제사에 제물로 하나님의 독생자를 내어 주신 것입니다.
[행 4 : 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님 이름의 뜻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할 자” 우리의 구원자 인 것입니다.
[마 20 :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그렇게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눅 2 : 10 ]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주는 바로 구원하실 주님입니다-
[요 5 :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할 때 영생을 얻습니다. -
[요 1 :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바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
6. 그렇게 예수님은 죽임 당하시고 부활 하시어 다시 오실 예수님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 시대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일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예수님의 피로 사신 신부의 모습입니다.
- 제가 깨달았던 구절 -
제가 20년 전 그렇게 죄의 바다에 빠져 살려달라고 주님을 붙잡고 매일 눈물로 기도할 때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를 보면서 내가 탕자였고 허랑방탕하게 살아온 죄인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하며 한탄을 합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18절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렇게 죄인임을 회개합니다. 이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하나님은 기다리셨던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더럽고 추악한 모습으로 돌아온 절 상거가 먼데 미리 나오셔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던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희생하면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여 그 길에서 돌아서서 아버지께 발걸음 하여 돌아오면 24절 처럼 기뻐하십니다. 24절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믿음-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죄인 됨을 알았으며, 예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를 멸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이 모든 사실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고 살아가면 됩니다.
[롬 10 :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 :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기독교에서 믿음! 믿음! 믿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 속에서 오신 예수님이 우리(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진정으로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기로 지금 작정하셨다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당신도 구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존재-
하나님의 뜻에 따라 회개하며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어 의에 이른 우리는 어떠한 존재일까요? 하나님은 자녀의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요 1 :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리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말씀하시면서 “내안에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15 :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며 결코 떠나서는 안 됩니다.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 기도하며 신부가 된 교회에서 뜻을 함께한 자들과 함께 봉사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 베드로의 당부-
[벧후 3 : 7~14]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렇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죄에서 벗어나 평강가운데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 착각해서는 안 되는 죄 -
그럼 앞으로 살아가면서 격게 되는 많은 죄 문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죄에 대해서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회개하면 무엇이든지 다 용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닌데 오랜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죄를 저지르고는 주일날 교회가서 회개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매주 반복 되다 보니 “이정도의 죄는 괜찮아 또 주일날 교회가서 회개하면 되지!”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죄에 대하여 만성이 되어 무감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귀가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무서운 병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기독교인들의 죄에 대한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빨래 가방을 들고 2층 난간으로 올라갑니다. 믿지 않는 분들은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오르는 모습은 바로 기독교인들 자신이 죄를 회개하기위해 올라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올라가 보니 이미 널어논 빨래들이 가득했고 더 이상 널 곳이 없었습니다. 즉, 성도들이 매주 마다 교회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만 그의 죄들은 포화 상태였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날씨 였는데 화창한 날씨가 아니었고 장마 비처럼 계속되는 빗속에 무거운 빨래들이 마치 노숙자의 옷처럼 널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된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빨래를 가져온 가방을 보니 그 속엔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더러움의 오물과 배설물들이 보였고 기생충들이 바글 바글 기어 다녔습니다. 성도들은 그런 빨래들을 널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빨래를 널었던 사람의 손을 보니 이미 오물과 배설물이 묻어있었고 기생충들이 손바닥을 파고들고 잠시 뒤 오른손을 갈아 먹어 버렸고 시간이 지나자 그의 한쪽 눈까지 파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본 성도들의 죄였습니다. 잠시 뒤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변화" 없고 "경건"의 삶도 없고 "의"롭지도 못한 체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고 그 죄를 교회에서 회개하면 다 용서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예수님의 피로서 죄 사함 받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라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변화”된 사람으로 결단하며 살아야 하며 베드로의 당부처럼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는 말씀처럼 경건과 의와 거룩한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 기도 생활 -
신앙생활에서 기도는 무척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대화의 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이나 이기주의적 기도는 응답이 늦으시거나 들어주시지 않으십니다. 저 또한 많은 기도 생활 가운데에서 무수한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기도 했고 보았습니다. 저는 세상적인 기도는 거의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기도 자체가 죄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칼을 달라고 한다면 주겠습니까? 이러하듯 자신이 잘못 요구하는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엔 칼과 뱀과 같아서 응답을 안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막 9 : 28,29]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처럼 기도는 엄청난 기적과 일을 만들어 냅니다. 성경에 모든 기적과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사실을 보면 모두가 기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당신이 매일 열심히 기도생활을 한다면 당신도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은혜의 일들을 삶속에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함께 성경 말씀을 열심히 묵상하시고 또한 열심히 찬송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저의 간증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 기도하는 삶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성경 속에서 깨달았던 부분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내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 -
-가난이 준 선물-
저는 서울 상월곡동 산꼭대기 가난한 판잣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했지만 그것이 가난인지 몰랐습니다. 6~7살 때 저는 우연히 어머니를 따라 시장을 갔다가 간식꺼리를 찾았습니다. 그 이후에 어머니 몰래 시장을 돌며 썩은 고구마, 감자를 주워 연탄불에 구워 먹으며 행복해 했습니다. 어떤 날은 누가 먹다 버린 사탕이라도 땅에 떨어져 있으면 흙을 털어버리고 먹으면서도 그 맛에 감사했습니다. 하루는 연탄가스를 마시고 정신이 몽롱한 저에게 어머니는 50원을 주셨습니다. 10원도 받기 힘든 용돈을 50원을 받았으니 수시로 연탄가스를 마셔야겠다는 생각까지도 할 정도로 용돈이 참 궁했던 시기였습니다. 10원 가지고 무엇을 하지?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땐 아이스 깨기가 10원에 두 개였으니 지금의 아이스크림 값의 두 배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목에서 놀고 있던 저에게 어떤 어른들이 사탕과 과자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횡제한 날이었습니다. 그분들 말이 교회에 나오면 더 주신다고 하셨고 그렇게 저의 신앙생활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 처음 시작한 전도-
매주 교회로 향한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은 100%의 믿음과 감사였습니다. 그때 친한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그 친구를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저의 일생의 처음 전도라는 것을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 친구를 만나 교회를 가자고 했더니 내 생각과 의지와 다르게 그 친구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하나님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야 하나님은 계셔” 하자 그 친구는 “어디에?”하고 반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난 당당하게 “하늘과 우리 맘에 계셔” 하자 그 친구는 비웃으며 “하늘에 있으면 떨어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비웃는 것에 맘이 상했고 믿지 못하는 그 친구를 몹시 답답해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멱살을 잡고 싸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전도는 싸움으로 끝이 나 버렸지만 나에겐 큰 경험이었습니다.
- 비전 -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넌 커서 뭐가 될래? 하루를 고민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아와 같은 사람이요” 그 이후로 성경말씀대로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하나님이 만들라고 하신 방주를 만드는 노아처럼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간은 흘러서 중학생이 되었는데 우리 집이 이사를 수도 없이 해서 교회를 한곳만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 다니던 집 앞에 있던 교회는 목사님이 안수 기도를 해주신다며 머리와 등을 때려서 다시는 그 교회에 가지 않았고 친구의 권유로 차를 타고 40분을 가야하는 작은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 친구가 있어 쉽게 교회에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 방황과 절망 -
고3 송별 예배에 밤을 새며 청년부 형들과 교제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 저의 신앙의 전한점이 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형들의 질문에 “여기서 구원 받은 사람 있니? 확신이 있니?” 라는 질문에 마치 하나님의 심판대에 선 사람처럼 저의 심령은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 하지만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손을 들고 확신에 찬 소리로 대답한 친구는 나를 인도한 그 친구 뿐 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저에게도 그러한 확신을, 구원의 확신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매일 밤 베개가 젖도록 기도를 해도 저에게는 절망감뿐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온통 “나는 죄인”이라는 생각뿐이었고 늪에 빠진 사람처럼 몸부림 칠 뿐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심정은 마치 태평양 한가운데 빠져 있고 누구도 나를 건져줄 사람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결국 나의 결정은 “그럼 성경 말씀대로 살아보자”였습니다. 욕도 하지 말고, 화도 내지 말고, 착하고 선하고 의롭게 살며 법에 어긋나게 살지 말자였습니다. 그래서 며칠은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길을 건너려는데 좀 늦은 듯 했습니다. 순간 나는 달렸고 그만 중간에 신호가 바뀌고 말았습니다. 나는 찻길 한가운데 서있어야 했고 지나치는 차들 속에서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나를 보며 손가락질을 하는 듯 했습니다. 순간 나는 “아~ 나는 이런 아무것도 아닌 신호등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존재이구나.” 우울한 마음에 그 길을 건너 걸어가며 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걸어온 삶이 죄와 율법으로 가득한 삶이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날 저녁 마치 사생결단 한 사람처럼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태평양 같은 곳에 빠져 있는 날 건져 달라고요 하지만 새벽에 지쳐 잠이 들 때까지 예수님은 대답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 확신 -
그렇게 지쳐 있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누가복음 15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고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읽고, 읽고 읽었습니다. “아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구나.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확신으로 바뀌고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드디어 그 태평양 같은 곳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의 삶은 변화되었고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절대로 바꾸지 않을 확신이 꿈틀거렸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죽어간 순교자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나도 이 귀한 복음을 위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교회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며 회사에서는 술, 담배 절대 하지 않는 “돌연변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도 구분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 옥합 -
교회에서 교회 건축 헌금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매일 기도하며 교회 건축 헌금에 괴로워했습니다. 주께 돌아올 영혼들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교제를 해야 할 아름다운 교회 건축에 헌금을 많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실정과 환경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시간이 흐르자 원망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회사일로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왜 절 가난하게 하셨나요. 절 삼성그룹의 아들이나 손자로, 현대 정주영 회장의 아들이나 손자라면, 아니 그 회사의 회장이 아니더라도 사장 아들로만 태어났어도 헌금을 10억을 할 텐데” 하며 원망의 기도를 중얼거리고 있을 때 그때 내 뒤에서 소곤거리듯 들려 왔습니다. “넌 그의 아들이 아냐 넌 내 아들이야” 순간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 나는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의 아들이 아닌 그 이상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야!” 그리고는 신협으로 달려가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한 큰 금액을 대출하여 헌금을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미친놈이란 소리를 하기도 하고 교회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말도 했지만 저는 기뻤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대출한 돈을 5년 동안 갚으면서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신 것처럼, 내가 갚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갚으시는 것처럼 쉽게 갚을 수 있었습니다.
- 교만 -
그렇게 10년을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듯 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라는 마음가짐 때문에 누구의 말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가르치는 사역과 성가대를 하고 청년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역임하면서 나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다는 식의 마음가짐이 되었고 많은 분들 중에 저를 시기하는 분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부 수련회 때 전도사님과의 마찰로 학생부 전도사님을 교체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생들 간에도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저는 그런 가운데 있으면서도 능력 없고 말씀 위주가 아닌 전도사님이 교체된 것이라며 위안을 했습니다. 며칠 후 성경을 읽다가 우연히 누가복음 15장을 읽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또 그 구절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해야만 했습니다. 탕자가 된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그 길에 있을 때에 그는 “나는 아버지의 아들로써 가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아버지 집에 돌아가면 품꾼으로 사용해 달라고 해야지”하는 낮은 마음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에 나의 모습이 거울처럼 보였습니다. 나의 모습은 이미 아버지가 준 옷을 입고, 반지를 끼고, 신을 신고, 송아지 고기를 먹고 있는 교만 덩어리였습니다. 내가 교회에서 얼마나 교만했는가를 말씀으로 깨닫게 되었고 그 이후로 모든 분께 사죄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생활하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 신학교 -
학생들 하나하나 이름을 호명하며 기도하면서 그 영혼이 하나님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친구 때문에 교회를 나오고 분위기에 휩싸여 신앙생활을 하며 성경말씀에는 관심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매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제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듯 했습니다. “그럼 저 길에 있는 수 없는 영혼들은 어떻게 할 거니?” 할 일이 너무나 많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가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하며 그 인도하심이 무엇이던 간에 노아처럼 순종하기로 하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이사를 돕기 위해 이사한곳을 가보니 신학교 바로 앞이었고 친구는 “너는 신학교 안가?”라는 질문에 가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선뜻 모든 내 삶을 포기하고 신학을 한다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제자 중에 한명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선생님 저 대학 그만 둘까 봐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아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들어간 대학인데……. 저는 그를 불러 3시간동안 성경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며 네가 가는 길이 하나님과 함께하심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기도를 하는데 그 아이가 내 모습으로 보여 지는 것 이었습니다. 순종하며 가겠다던 다짐은 사라지고 먹고 살아야하는 환경에 치우쳐 신학의 길을 가지 않는 내 모습이 그 아이를 통해 보여 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응 답 -
신학교를 들어가면서 항상 나의 기도와 기도 제목은 “나의 혀로 상처받는 영혼이 없게 해주세요.”라는 기도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가 함부로 말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말 한마디 잘못해서 상처를 받는 성도님들을 보았고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선배 중에 자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잘 아는 선배는 아니었지만 학교 전도부에 소속이 된 선배였기 때문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와주는 분들이 없어서 곤란한 지경에 계셔서 최대한 남아서 도와주기로 했는데 죽은 자녀의 핸드폰을 우연히 보고나서 저는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워했고 선배님이 사역도 중요하지만 가정에 충실했다면 아이가 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연히 전도를 나갔다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여름날 나무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선배님 사역도 중요하지만 가정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렇게 서두를 꺼내어 말하려는데 그때부터 내 양쪽 귀가 막히더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순간 속으로 “왜 이러지?” 하면서도 양쪽 귀에 손가락을 넣고 흔들며 들리지는 않아도 말은 할 수 있으니까 하며 1시간동안을 선배를 설교 하듯이 다그쳤습니다. 성경에도 가정을 우선하라는 말씀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을 끝내자 그때서야 양쪽 귀가 뚫렸습니다. 그 이후 그런 일이 없다가 후배 중에 예쁘게 생긴 여자 후배가 있는데 이 후배에게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아무나 보고 뭐든지 사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친한 동기들 끼리 있을 때 그 후배의 뒷담화를 하려는데 또 내 양쪽 귀가 막히더니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말할 수 없었습니다. 동기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까지도 기도의 응답이 온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증세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보니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동기 중에 담배를 몰래 피다가 저에게 걸렸습니다. 그는 절대로 피지 않았다고 거짓말 까지 했고 난 그의 나쁜 버릇과 거기에 거짓말과 그의 행동에 신학생으로써의 자질이 되지 못했다고 다그치며 회개할 것과 결단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변함이 없는 그를 보고 매일 설교하듯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힘들게 살아온 환경을 이야기하며 이해해 달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위해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부했고 저 혼자서 금식기도를 하기로 하고는 결단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금식3일째 그날은 단식을 했습니다.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힘든 상황 속에서 함께 서울역으로 전도를 나갔습니다. 결국 저는 1시간가량을 찬양을 하다가 쓰러져 차에 누워있었고 그는 2시간가량을 더 전도와 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차에 탄 그 동기의 몸에서는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에게 그 냄새는 구토를 일으킬 만큼 강했습니다.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실망했습니다. 그 이후 그를 쳐다보려하지 않았고 그를 위해 기도하지도 않았으며 그를 “악의 축”이라고 생각하며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이후 저에게 맡겨진 설교 시간이 있어 설교를 준비하고 강대상 앞에 섰습니다. 내 눈엔 그 가시 같은 동기가 성경책을 펴놓고 나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잘 들어 너에게 하는 말이야” 하며 설교를 시작하는데 또 내 양쪽 귀가 막히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감동과 은혜로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설교를 해야만 했습니다. 설교가 끝이 나서야 귀는 뚫렸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나의 혀로 남에게 상처주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날 바로 선배를 찾아갔습니다. 주위에는 다른 선배들이 계셔서 제가 이분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니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는 그분에게 잘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선배님의 사역에 함께 하십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선배님은 그때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은 후 자녀의 죽음 때문에 절망과 좌절 속에 있던 선배님은 열정적인 사명으로 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
- 전도 그리고 열매 -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말씀을 증거 했지만 길거리에서, 아니면 집으로 방문을 해서 믿지 않는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담대함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막에 관련한 공부와 자료 수집을 하며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발견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그대로 전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서 매주 토요일 마다 나가는 전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함께 가기로 한 동기가 갈수 없어 그는 교회에서 절위해 중보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파주의 한적한 공원을 지나가는데 불량해 보이는 아이들이 둘러 앉아 침을 뱉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다가가 보니 땅에는 교복을 벗어 발로 짓밟아 놓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명을 바라보니 머리는 빡빡 깎았고 흉터 투성이었습니다. 삐딱하고 험악한 그 아이가 제 눈에는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네가 원하고, 가지고 싶고, 세상에 모든 것이 다 있는 섬이 있단다. 그곳에서 살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좋겠지? 하자 그는 웃음 지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그건 아무도 없이 너 혼자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야 살 수 있겠니? 아마도 한 달? 두 달? 아마 일 년은 살만 할 거야 하지만 계속 그렇게 평생을 살라고 하면 절대로 살수 없을 거야 세상에는 사람이 살면서 가야 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단다. 그곳은 감옥이야 그런데 그 감옥에 살고 있는 사람도 가장 무섭고 두려운 곳이 있단다. 그곳은 바로 독방이지 그리고 그 독방에서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에 더 두려워 떤단다. 즉 사람은 혼자서는 살수 없어 왜일까? 그건 사람은 사랑의 존재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야해 그런데 왜 우린 그런 존재일까? 그건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졌기 때문이야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거야 하나님은 직접 우리를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넣으셨어. 창세기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는 말씀을 들려주자 아이는 눈이 반짝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이유와 죄인 됨을 알려주고 회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자 아이의 표정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아저씨는 교회 어디 다니세요?” 그 아이는 한 번도 교회 나가 본적이 없었습니다. 계속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옛날에 아주 못된 강도가 있었단다. 이 강도는 교회 가본적도 없고 사람들의 돈을 빼앗고 못된 짓을 많이 저질렀단다. 착한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 결국 붙잡히게 되었고 사형을 당하게 되었지 그가 바로 예수님 옆에 십자가형을 받은 두 강도란다 그때 십자가의 형벌은 가장 두려운 형벌이었으며 그 형벌의 의미는 강도들이 많은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그전날 밤 강도들은 함께 죽을 또 한사람의 이름을 듣게 되지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야 그런데 그 예수님의 죄목은 스스로 메시아요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 모독죄라는 거야 그 다음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단다. 예수님 옆에 달린 한 강도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외치며 비방했단다. 하지만 다른 강도는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분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며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단다. 자 우리들도 이와 같단다 지금까지 나쁜 짓, 못된 짓 많이 하고 남을 괴롭혔다고 해도 오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한 번도 교회를 나가본 적이 없더라도 예수님 앞에 잘못을 회개하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예수님도 너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고 우리의 삶이 다되어 죽을 때가 되면 낙원에 가게 될 거란다. 하며 저는 함께 있던 모든 아이들과 함께 그동안 저질렀던 많은 죄를 예수님 발 앞에 내려놓고 회개의 기도를 하자고 했고 기도를 하자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인정하고 영접하겠니?” 하자 그 아이를 비롯하여 모든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고 함께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한명이 잘 다니지는 않았지만 다니던 교회에 모두 함께 나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주님 오시는 그날, 만나는 그날까지 열심히 신앙생활 하자며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에 전도를 하며 많은 분들을 만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가까운 교회로 나가기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 주의해야 할 신앙관 -
주의해야할 신앙관 중에는 잘못 이해한 “종말론”입니다. 저도 세상멸망의 징조라는 주제로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현대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해서 예수님 시대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드리지 않고 과학적인 근거와 눈에 보이는 사실을 보여 주었을 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믿게 되기 때문에 이처럼 설명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보고 삽니다. 이점을 악용하여 이단은 각자의 삶을 포기하게 하고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며 맹목적인 헌물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대학은 가서 뭐하며, 사업은 해서 뭐해? 라는 식의 신앙관으로 흐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두 사람이 밭에 있을 때, 두 여인이 매를 갈고 있을 때, 두 남자가 밤에 자고 있을 때”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대려감을 당한다고 하셨듯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위에 있는 가족, 벗, 이웃, 동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한다”는 말만을 강조 하여 고난과 핍박을 일부러 받아야 하는 식의 신앙관도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정을 불화로 만들면서까지 “나는 십자가를 지고 있다”라고 하는 개인주의적인 신앙관도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라”라고도 하셨고 [마 10 :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때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핍박과 고난도 감수해야 겠지만 뱀과 같이 지혜롭게 하여 믿지 않는 주위에 있는 분들과 전투적인 방식의 신앙관이 아닌 포용하고 이해하며 그를 주께 인도하는 희생과 인내와 사랑의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교회에는 많은 목사님들이 계시고 목사님마다 사역의 방향이 조금씩 다릅니다. 선교에 목적을 두기도 하고, 제자양육의 목적을 두기도 하며, 교회부흥의 목적을 두기도 하며, 노숙자나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목적을 두기도 합니다. 목적을 어디에 두었던 간에 그 교회에서 함께 뜻을 같이하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순종하며 봉사하며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때론 교회안에도 아직 믿음이 없는 분도 있고 확신이 없는 분도 있고 심지어 예수님도 하나님도 모르고 “내가 죽으면 장사를 잘 치루어 줄 것 같아서” 교회 나오신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표적만을 보고 따르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심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런 분들이 계심을 빨리 인식하여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올바른 신앙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글을 통하여 많은 분들이 구원을 이루시길 바라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신앙생활 잘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때에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사랑(가족,이웃,벗)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요한 계시록!!! 마라나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말이란 무엇인가"-정지련 교수- (0) | 2019.12.28 |
---|---|
존 웨슬리의 종말론 (0) | 2019.12.28 |
천년설 비교 (0) | 2019.11.27 |
[스크랩] 성경공부 - 요한계시록 요약 및 서론 (0) | 2019.02.21 |
[스크랩] 재림(예수님의 승귀3) (0) | 2019.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