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역사.
제1장. 사도들의 순교.
신약 초기의 기독교는 수많은 성도들의 순교를 발판으로 하여 성장하고 발전했다. 기독교의 순교역사는 사도들의 순교로부터 출발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직접 제자였던 12사도와 바울사도가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처참하게 순교 당했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들의 순교에 대하여 전혀 침묵한다. 사도들에 대한 순교는 다만 역사적 전설로 후대에 전해졌다. 우리는 사도들의 순교에 대한 성경의 침묵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 한번 보게 된다. 기독교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역사이지 어느 개인에 대한 역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에 수많은 그리고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이 부름 받아 사역하였고 그들에 의하여 위대한 역사들이 진행되었으나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역사였을 뿐 그들의 역사는 아니다. 그들은 다만 하나님의 종들로서 하나님의 역사에 귀중하게 쓰임 받은 것으로 맡은바 소임을 다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그들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위한 과분한 상급과 면류관을 예비하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는 것이지 이 땅에서 받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이 땅에서 그들에 대한 영광이 반포되어지면 어리석은 자들에 의하여 그들이 추앙되거나 경배되어 그들이 이루어 놓은 영광스러운 역사들이 오히려 빛바래지고 하나님께 죄송스러운 것이 된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와같은 조치를 내리시어 하나님의 귀중한 종들이 이루어 놓은 영광스러운 역사들과 그들의 개인적인 영광들을 보호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로마카토릭에서는 실제로 그러한 비진리적인 행위들이 연출되고 있다. 로마카토릭에서는 기독교역사에 부름 받아 사역한 사도들을 비롯한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을<성자>라는 칭호로 섬기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들의 공로를 나누어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괴이한 비진리적 논리를 내세워 하나님의 은혜를 함부로 삭감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사도들의 순교를 정립함에 있어서 성경이 사도들의 순교를 일일이 증언하지 않기 때문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일반적인 자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전승들이 대부분 정확하지 않다. 전승들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전해내려 오는 과정상의 문제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처음부터의 도적으로 가공되어진 경우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초기부터 특정 도시의 교회들이 자신들의 교회에 대한 사도적 기원의 전통과 역사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사도들의 이름을 교회에 적용하였고 따라서 가공되어진 사도들의 순교적 설화들을 전승시켰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로마카토릭에 의한 베드로 초대 교황설이다. 로마카토릭은 베드로를 초대 교황에 좌정시키기 위하여 베드로가 로마교회를 창립했다고 거짓 주장하였으며 진실이 역사적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가공되어진 전승들은 특히 2세기 말에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그때에 대부분의 큰 도시교회들은 한결같이 사도적 전통들을 만들어 세웠다. 알렉산드리아교회는 로마와 안디옥에 대항하기 위하여 사도 마가를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설립자로 내세웠고 콘스탄티노플이제국의 수도가 되자 콘스탄티노플교회는 빌립을 교회의 설립자로 내세웠다. 히스파니아<스페인>교회들은 바울과 베드로와 야고보가 보낸 일곱 명의 사자들에 의해서 스페인교회들이 세워졌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베드로가 5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스페인을 복음화 했다는 전승은 기원 5세기 경에 등장했다. 반면에 기원 8세기 경에 등장한 야고보사도에 의한 스페인 교회설립 설화는 더욱 구체적이다. 저들은 야고보가 갈리키아
1.베드로.<Πετπος-Petros>
베드로는 예루살렘교회를 인도하다가 로마에 복음을 전하던 중 네로의 박해 때
*에우세비우스의 증언-
*클레멘스의 증언-<클레멘스5장>
*이그나티우스의 증언-<이그나티우스의 로마서4:3>
2.안드레<Ανδρεας-Andreas>
전승에 의하면 안드레는 아가야에서 X자형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 했다고 하며 그 후 X자형의 십자가를<안드레의 십자가>로 부르게 되었다고한다. 한편 안드레의 유물 두 개를 운반해 가던 배가 키프러스섬 북동쪽의 항만에서 난파하여 그곳이 나중에<안드레만>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승도 있다.
에우세비우스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흑해의 북안<北岸>인 스구디아에도 전도했다고 한다.
3.야고보<세베대의아들>
대<大> 야고보로 불리 우는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는 헤롯아그립바1세
4.요한.<Ιωαννης-Ioannes>
전승에 의하면 소아시아의 에베소에서 활동하다가 도미티아누스
5.빌립.<Φιλιππος-Philippos>
빌립은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였으나 예수그리스도의 승천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에우세비우스는 빌립이 골로새지역 근교의 히에라폴리스에서 잠들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전도자 빌립과 혼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6.바돌로매.
전승에 의하면 바돌로매는 인도에서 전도하다가 아르메니아의 알바폴리스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7.도마.<Θωμας-Thomas>
에우세비우스의 전승에 의하면 도마는 파르티아<현재의 이란 북부>에서 전도했다.
8.마태.<Μαθθαιος-Maththaios>
마태복음을 기록하고 유대인 사회에 복음을 전했다는 것 외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9.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하여 소<小> 야고보라고 불리우는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10.다대오<Θαδδαιος-Thaddaios>
전승에 의하면 유브라데강 건너의 에뎃사에서 시리아의 에뎃사 왕인 아브가르5세
11.시몬.<Σιμων-Simon>
시몬의 순교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12.맛디아.<Μαθθιας-Maththias>
예수그리스도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따랐으며 가롯유다 대신에 12사도 반열에 올랐다. 맛디아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는데 교부이레니우스
13.바울.<Παυλος-Paulus>
바울은 네로의 박해 때 순교했다. 바울의 순교는
*나는 그 사도들의 기념비를 보여줄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바티칸이나 오스티안
<유세비우스교회사. 엄성옥 역. 제2권 제25장. P.128>
제2장. 하나님의 종들의 순교역사.
사도들의 순교 못지않게 하나님의 기독교 역사를 위하여 순교한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당시에 있었던 하나님의 종들의 순교상황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기독교 역사에 순교한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의 순교를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다. 따라서 로마의 박해 와중에서 순교한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몇 분의 순교만을 소개한다.
1.바나바
예루살렘교회의 성도였고 70문도 중의 한 사람이었던 바나바는 탁월한 설교와 신앙으로 인하여 예루살렘교회 사도들의 인정을 받아 안디옥교회에 목회자로 파송되었으며 바울을 천거하여 함께 동역하고 선교했다. 성경은 바나바의 순교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으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살라미스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2.전도자 빌립<Φιλιππος-Philippos>
전도자 빌립은 예루살렘교회의 7집사 중 하나였다. 그는 사마리아에 전도자로 파송되었으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구스왕 간다게의 내시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그의 딸들 4명도 선지자 직무를 행했다. 그는 골로새지역 근교의 히에라폴리스 지역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3.디모데<Τιμοθεος-Timotheos>
바울이 극진하게 사랑하였던 제자로서 바울과 동역했다. 성경 이외의 초기 기독교 문헌에는 디모데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후기 문헌에 의하면 그가 에베소교회의 초기 감독이었으며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4.예수그리스도의 형제 야고보.
그는 12제자 중에 들지 않았으나 제자들과 늘 동행했다. <갈2:9>은 그를 기둥같이 여기는 사람이라고 증거 한다. 헤롯아그립바 1세가 유대를 통치하게 되었을 때에 갈릴리에서 대야고보를 죽이어 유대인들에게 호감을 산 것을 생각하고 다시 유대인들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베드로를 죽이려했으나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자 그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유세비우스는 야고보의 순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 한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였기 때문에 베스도
사도시대 직후에 활동한 헤게시푸스
*당시 같은 이름의 인물이 여럿 있었음으로 의인 야고보라고 불리웠던 주의 형제 야고보는 주님의 시대로부터 사도들과 함께 교회의 통치를 맡고 있었다. 이 사도는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졌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생명이 있는 음식을 삼갔다. 또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고 기름을 바르지 않았으며 목욕도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오직 야고보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는 결코 털옷을 입지 않고 베옷을 입었다. 그는 홀로 성전에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종종 무릎을 꿇고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마치 낙타의 발처럼 딱딱해졌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 선포한 것과 같이 그는 지극히 경건했기 때문에 의인 또는 오블리아스
<백성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기대하여 그를 좇음으로 빗나가고 있습니다. 부디 그들을 제지하여주십시오.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러 오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에 관해 올바르게 권면하여 주시기를 당신에게 간청합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모든 백성들은 당신이 의로운 사람이며 사람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확신 합니다. 그러나 높은 곳, 당신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고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음성을 쉽사리 들을 수 있도록 성전의 익면에 서십시오. 모든 지파의 백성들과 이방인들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모여 올 것입니다.>
이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야고보를 성전 익면에 세우고 그에게 소리쳤다.
<오 그대 의인이여 우리는 모두 당신을 믿습니다. 백성들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좇아 잘못된 길로 가면서 우리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문<門>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야고보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왜 당신들은 나에게 인자이신 예수에 관해 묻습니까? 그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전능자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장차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의 증언에서 확신을 얻고 영광을 돌리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외쳤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우리는 예수에 대해 그러한 증언을 제공하게 만드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러니 저리로 올라가서 그를 내려 던집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무서워서 그를 믿지 못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외쳤다.
<오! 오저스투스(Justus)는 미혹되었도다. 이사야서에 기록되어진바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 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는 말씀이 성취되었다.>
그들은 성전으로 올라가서 이 의인을 밀어 떨어뜨리고 의인 야고보를 돌로 치자고 말했다. 그들은 야고보가 땅에 떨어졌으나 죽지 않았으므로 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고보는 몸을 돌려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오 주 하나님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행위를 알지 못하고 있나이다.>
이렇게 야고보에게 돌을 던지고 있을 때에 예레미야가 말한 레갑
<그만 두시오 당신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의인은 지금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때 어느 피혁업자가 북을 두드리는 곤봉으로 야고보의 머리를 쳤다. 이리하여 야고보는 순교했으며 사람들은 그를 성전 옆에 매장했다. 이곳에는 아직도 그의 비석이 남아있다. 야고보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충실히 증거 한 증인이 되었다. 이일이 있은 직 후 베스파시안
이와같은 헤게시푸스의 증언은 클레멘트의 증언과 완전히 일치한다. 야고보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었고 그의 공의로움은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따라서 지혜로운 유대인들은 베스파시안의 예루살렘 공격이 야고보 순교직후에 일어났음을 근거로 하여 그 사건이 하나님의 징계라고 주장한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에 야고보의 순교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이 일들은 야고보를 죽인 죄에 대한 보복으로서 유대인들에게 발생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라 불리 우는 사람의 형제로서 지극히 의로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를 살해했다.*
요세푸스는<고대문물기>제20권에서 야고보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베스도
<유세비우스교회사. 엄성옥 역. 제2권 제23장. P.121-126>
5.시몬
예루살렘교회의 제2대 감독이었던 시몬은 120세까지 장수한 사람이다. 그는 트라야누스황제 치하에서 애티쿠스
*또 한 순교자이며 주님의 친척들로서 모든 교회를 이끌어 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온 교회에 평화가 깃들었을 때부터 트라야누스황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살았다.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 클레오파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엄성옥역. 제2권제32장. p175>
6.이그나티우스
트라야누스황제 때에 수리아 안디옥지방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는 시리아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된 후 로마제국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원형경기장에서 사나운 맹수의 밥이 되어 순교했다.<전승에 의하면 이그나티우스는A.D.30-35년 경에 태어났는데(마18:2)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안으신 아이가 바로 이그나티우스라고 전해진다.> 이그나티우스의 죄명은 기독교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것이었다. 이그나티우스가 체포된 것은 세가지로 전해진다. 첫째는 이교도들이 안디옥의 기독교가 이그나티우스의 인도 하에서 발전하는 것을 시샘하여 고발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당시에 안디옥교회에 ? 개의 이단적 분파들이 있었는데 이그나티우스감독이 그들의 비진리적 교리들을 용납하지 않고 맹렬하게 비난했기 때문에 그들이 분노하여 고발했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로마정부가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에 안디옥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를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게 하여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기독교에게 경종을 울리게 하기 위하여 체포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 어느 것이 과연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세 가지가 모두 일리 있는 주장들이다. 왜냐하면 이그나티우스는 누구에 의해서 고발되었는지가 불문에 붙여진 채 로마로 압송되어 로마제국 법정에서 형식적인 재판을 간단하게 거친 후에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으로 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름답고 훌륭한 종의 순교를 무의미하게 용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그나티우스의 순교를 통하여 당시는 물론이요 후세의 기독교 역사에 매우 아름다운 금자탑을 세우셨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압송되는 와중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맹렬하게 전했고 또한 7개의 훌륭한 서신들을 발송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였다. 이그나티우스가 로마로 압송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인근 각지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가 지나면서 머무르게 될 처소들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그나티우스를 반드시 로마 법정에 세워야하고 또한 반드시 원형경기장에 세워야하는 중책을 맡은 로마 군부는 혹시 중도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호송 군사들로 하여금 그를 철저하게 감시하였고 심지어는 사나운 표범까지 동원하여 엄중하게 그를 호송했다. 당시의 상황을 이그나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시리아로부터 로마로 가는 도중 나는 열 마리의 표범들과 군인들에게 묶여 있었으면서 육로나 해로에서 밤낮으로 사나운 짐승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군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도 그들은 대단히 난폭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불법행위의 와중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 때문에 의롭다함을 얻지는 않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저 짐승들로 인해 유익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나는 나를 해칠 짐승들이 빨리 발견되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그 짐승들이 나를 해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속하게 먹어치우도록 유혹하고 대들 것 입니다. 만일 그런데도 그 짐승들이 나를 해치려 하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나를 해치게 만들 것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순교가 얼마나 큰 유익을 주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제야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얻을 수만 있다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그 어느 것도 나의 야망을 자극하지 못합니다. 내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얻게만 된다면 화형이나 십자가나 사나운 짐승의 공격이나 또는 내 뼈를 찢고 사지를 부러뜨리며 온 몸에 멍이 들도록 매를 맞는 등 그 어떤 마귀의 괴롭힘도 참고 견디겠습니다.*
<유세비우스의교회사 엄성옥역. 제2권제36장. p179-180>
그러나 몰려드는 기독교인들의 애절한 간청과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적 모습에 감명 받은 호송책임자는 엄중한 호위를 늦추지 않는 대신에 이그나티우스가 그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때문에 이그나티우스는 그들과 만나서 신앙적 대화를 할수 있었고 심지어는 자신의 편지를 대신하여 쓸 수 있는 비서를 대동할 수 있었다. 이때에 이그나티우스를 찾아 온 사람들은 마그네시아
*나는 그대들의 친절이 나를 오히려 해치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들은 그 계획을 성공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디 나의 부탁을 들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얻게 하라.....그리하여 내가 단지 기독교신자라고 불리울 뿐만 아니라 기독교신자로서 행동할 수 있게 해 달라.....나는 더 이상 육신의 양식을 탐하지도 않는다....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몸이신 하나님의 떡을 맛보기를 원한다.....또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할 그의 보혈을 마시기를 원한다.....나는 고난을 당할 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할 것이며 언젠가 자유스럽게 그와 함께 다시 부활할 것이다.....나는 그리스도의 순수한 떡으로 바쳐질 수 있도록 짐승들의 이빨에 찢겨야 할 하나님의 밀알이다.....만일 그대들이 나를 위해 침묵을 지킨다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나의 육신에 연연한 사랑에 의해 흔들린다면 나는 단지 인간의 목소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압송된 후트라야누스황제에게 심문을 받았는데 이레니우스의 서신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황제-너는 마귀다.
*이그나티우스-나는 내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셨다.
*황제-폰티우스필라티우스에게 죽은 예수가 그렇게 소중한가?
*이그나티우스-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가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분이시다.
이그나티우스는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짐승에게 던져졌는데 이때에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영화롭게도 순교의 반열에 세워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맹수의 이빨 사이에 끼인 하나님의 곡식가루로 빻아져서 거룩한 빵이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7.폴리갑
폴리갑은 소아시아의 상업도시였던 서머나교회의 감독으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는 비교적 박해가 심하지 않았던 안토니우스피우스
<내가 86년 동안 그를 섬겼으나 그는 내게 은혜만 베푸셨을 뿐 한번도 나를 저버리신 일이 없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할 수 있겠는가?>
이에 총독이 진노하여 산 채로 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폴리갑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잠시 붙었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 된 영원한 형벌의 불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시행하라>
당시에 군중들, 특히 유대교인들은 재판관에게 폴리갑을 사자 밥이 되게 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원형경기장에서의 행사가 이미 종료되었으므로 총독은 허락하지 않았다. 군중들은 폴리갑을 화형에 처하라고 요구하였고 결국 그는 자신이 꿈에서 보았던 대로 화형 당했다. 군중들은 폴리갑을 화형 시키기 위해 기둥에 그를 묶은 후 큰 못으로 고정시키려 하였다. 그러자 폴리갑이 말했다.
<나를 이대로 두시오 나에게 화형을 견뎌낼 힘을 주실 분께서는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하늘을 우러러 크게 기도하였다.
<사랑하는 복된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에 관한 지식을 주신 아버지시여 당신 앞에 살고 있는 모든 천사들과 천군들과 피조물, 그리고 모든 의인들의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잔에 참예할 수 있게 해주시고 내 몸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 않는 축복 속에서 영생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기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는 신실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예비하시고 계시하시고 이루신 풍성하고 가납 될만한 제물로서 당신이 보시는 앞에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영원한 대제사장을 통하여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히 영광이 있을 것 입니다. 아멘>
폴리갑이 기도를 마치자 집행관들이 불을 붙였다. 이때에 사람들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불길이 크게 솟아올랐을 때 불꽃은 마치 바람을 맞은 돗처럼 둥근 형태를 이루어 폴리갑의 육체를 담처럼 에워쌌다. 불길 가운데 있는 폴리갑은 전혀 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용광로에서 정련되는 금이나 은 같았다. 뿐만 아니라 불길은 사방에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었다. 폴리갑이 불에 타죽지 않자 유대인들을 비롯한 박해자들이 집행관에게 칼로 찔러 죽이라고 외쳤다. 집행관이 칼로 폴리갑을 찌르자 피가 솟구치며 불이 꺼져 버렸다. 폴리갑이 순교한 후 기독교인들은 폴리갑을 장사하기 위하여 시신을 요구했으나 유대인들이 벌 떼 같이 들고일어나 반대했다.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유대인들은 폴리갑이 순교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을 두려워했다. 때문에 그들은 혜롯의 아버지이며 달세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엄성옥역-제14장,사도적교부,폴리갑-217P>
폴리갑의 순교에 대한 기록은 서머나교회가 필로델리움
*서머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필로델리움
제3장.성도들의 순교역사.
기독교 순교의 역사는 사도들을 비롯한 하나님의 종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기독교의 순교역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순교에 대한 피어린 역사를 후세에 전해준다. 숫자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순교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순교가 훨씬 많다. 그리고 그들의 순교는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순교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는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었다. 우리는 당시의 기독교역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의 순교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면관계상 그들의 순교에 대하여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들의 순교역사 중에 몇 분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만을 소개한다.
1.오리겐과, 레오니다스.
오리겐의 아버지인 레오니다스는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헬라문학을 가르치다가 셉티무스세베루스 치하의 박해 때
2.퍼페투아
이들은 몬타누스파로서
<현재 나의 고통은 나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야수들에 대항할 때는 또 다른 이가 내 가운데 역사하실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해 고난을 당하니 그가 내 대신 또한 고통을 받으실 것이 틀림없다.>
그녀의 대답은 당시 순교자들의 공통적인 신앙이었다. 그들이 원형경기장에서 순교할 때에 먼저 레보카투스, 세터니누스, 세쿤두르스 등등의 남자 세 명이 끌려 나갔다. 레보카투스와 세터니누스는 비명도 지르지 않고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짐승들이 혼자 남은 세쿤두르스를 전혀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공격을 지시하는 병사들을 공격한 것이다. 이때에 세쿤두르스가 한 표범에게 어서 자신을 공격하라고 말하자 그때에서야 그 표범이 그를 공격하여 죽게 했다. 그 후 이어서 퍼페투아와 펠리시타스가 끌려 나갔다. 이때에 그녀들의 순교는 참으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들은 먼저 사나운 들소들에게 공격당했다. 들소들이 그녀들을 사정없이 공격하여 상처투성이가 되었을 때에 그녀들이 잠시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다. 관리들은 그들이 마음을 바꾸려는 가 싶어서 들소들을 제지한 후 이유를 묻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은 내 생애 가운데 가장 기쁜 날이기 때문에 헝클어진 머리로 죽을 수 없으니 머리를 단정하게 다시 묶고 죽을 수 있게 해 달라. 헝클어진 머리로 죽는 모습은 슬프고 애석해 보여서 내 죽음에 합당하지 않다.>
병사들은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었고 그들은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한 후에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경기장 한 가운데에서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는 마지막 작별의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칼에 찔려 죽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에 감동한 관리들이 더 이상 그들이 고통 받지 않고 죽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동요<動搖>하였다. 사람들은 그녀들의 장엄하고 경건한 순교를 지켜보면서 크게 감격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진하여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3.아피아누스
아피아누스는 리시아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악마에게 제물을 드리는 것은 잘못하는 일입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모두가 경악했으며 그는 즉시 체포되어 심한 매질을 당하였다. 그는 감옥에 갇힌 뒤 사지를 잡아당기는 고문을 받았고 만신창이가 되어 다음 날 재판정에 끌려 나갔다. 재판관은 그로 하여금 황제신에게 경배하게 하려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고문했지만 그의 신앙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심한 고문으로 인하여 그의 몸과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 되었고 그럼에도 그가 굴복하지 않자 재판관은 그의 두발에 기름을 흠뻑 적신 천으로 덮은 후 거기에 불을 붙였다. 불은 그의 살을 태우고 뼈 속으로 파고들어가 체액이 마치 밀납처럼 녹아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굴복하지 않음에 재판관은 오기가 발동하여 기절한 그를 일단 감옥에 가둔 후 사흘 만에 그가 정신을 차리자 다시 고문을 하였다. 그러나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자 분노한 재판관은 그를 바닷물에 던져 버렸다. 이때에 큰 변고가 일어났다.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요동하기 시작했으며 맑고 푸르던 하늘도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먹구름과 천둥번개가 어우러져서 뇌성벽력을 치고 장대 같은 비가 ?아졌으며 바다 역시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일으켜 온 세상이 뒤집혀지는 듯 하였다. 그리고 아피아누스의 시신이 튕겨져 오르더니 성문의 제단 앞에 떨어졌다. 막시미누스황제 치하 크산티쿠스
제4장. 자원 순교자들과 거짓 순교자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의 순교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들은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을 만큼 많고도 다양하며 또한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과 숭고함도 필설로는 다 옮길 수 없는 지경이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초인간적인 신앙으로 그 모든 박해들을 이기고 승리하여 순교의 길을 걸어간 우리의 위대한 신앙 선배들의 순교역사 이야기는 너무도 평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불평과 불만을 쉬지 않는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하나의 질책으로 전승된다. 그러나 이렇듯 아름답고 숭고한 순교역사의 뒤안길에는 참으로 수치스럽고 어이없는 뒷이야기들이 있어서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순교자들의 아름답고 성스러운 순교역사에 흠집을 낸 비정상적인 순교의 유형은 여러 가지였는데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오류적 신앙에 의한 자원 순교.
당시의 순교자들 중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잘못된 신앙으로 인하여 자원하여 순교를 택한 자들이 있었다. 저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나치게 동경하여 하루빨리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하여 자원 순교의 길을 택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순교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여 자원적 순교를 감행하였다. 이러한 오해와 오류는 로마의 지독한 박해를 하나님께서 왜 방관하시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 로마의 이교도들은 기독교인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야유하고 조롱했다. 그들의 야유와 조롱은<전지전능의 하나님, 무소불위의 하나님께서 왜 자신의 자녀들이 저토록 처참하게 죽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방관하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향하여<아마도 너희들의 하나님께서 주무시는가 보다><너희들의 하나님께서 편찮으셔서 누워 계시나 보다.><술에 취하셔서 못 일어나시나 보다.><여자하고 여행가셨나 보다.><돌아가셨나 보다.>라고 조롱하였다. 이때에 기독교인들은 저들의 조롱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생각해도 자녀들의 박해를 돌아보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 낸 것이<하나님께서 순교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라는 것과<순교하여 하나님나라에 하루라도 빨리 가는 것이 더욱 유익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을 조롱하는 자들을 향하여 자신들이 왜 그토록 무서운 박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원하는가? 하는 이유를<하나님께서 순교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라는 것과<순교하여 하나님나라에 하루라도 빨리 가는 것이 더욱 유익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으로 밝히면서 스스로 순교함으로 그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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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같은 순교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순교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나라에 빨리 가겠다는 생각으로 순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위배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내 놓는 것으로서 자살행위에 속하는 것이며 따라서 살인적 범죄행위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순교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순교해야 한다는 생각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순교하기까지 신앙을 지키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마5:10>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순교를 허락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순교를 허락하시는 것은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시기 위함도 아니며 또한 그들의 순교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그것을 방관하심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순교를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기독교 역사를 진행하시는 과정에 존재하는 다양한 섭리역사 때문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자녀 및 종들의 순교를 허락하시지 않고 그것을 일일이 차단하시며 그때마다 박해하는 자들을 일일이 즉결처분 하신다면 과연 어떠한 결과가 될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한 해답이 나올 것이다.
2.명예욕에 의한 자원순교.
사람들 중에는 명예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과감히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를 최고의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죽음 같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시의 기독교인들 중에도 그러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후세에 자신의 이름을 명예롭게 남기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과감하게 자원하여 순교했던 것이다. 이때에 특히 몬타누스주의자들이 명예로운 순교와 순교에 대한 오류적 개념으로 인하여 자원하여 순교하려고 했는데 얼마 후 그들의 허구적 순교가 들어났다. 그들의 순교열정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였고 잠시 후에 그들은 오히려 박해를 피하여 달아나거나 은둔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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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원순교 역시 불순한 것으로서 순교자들의 거룩성에 흠집을 내는 거짓 순교에 속한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오직 진실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기뻐하심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어떤 유익을 위한 신앙은 위선이고 거짓이다.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향하여 준엄한 책망과 진노를 아울러 하신 것이다.
3. 불 신앙자들의 거짓순교.
신앙이 전혀 없는 자들이 단순히 순교자의 명예를 얻기 위하여 거짓 순교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특히 남은 여생이 별로 의미 없는 자들이 거짓 순교를 자행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순교자라고 하지 않고<자살자>라고 비난하면서 당연히 그런 자들을 색출하여 순교자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5장. 배교자들에 대한 처리문제.
한편 모든 박해가 종료되고 새로운 기독교의 역사가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이미 예상되었던 문제들이 대두되었다. 그것은 배교자들과 거짓 순교자들에 대한 처리 문제였다. 데키우스황제 치하의 박해 때부터 기독교내에 새로운 호칭들이 생겼다. 그중에 둘은 명예로운 호칭으로서 죽음으로 신앙을 지킨 자들에게 붙여진<순교자>라는 칭호와 비록 죽음으로 순교자가 되지는 못하였으나 끝까지 박해를 견디면서 신앙을 버리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붙여진<고백자>라는 칭호였다. 다른 또 하나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서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신앙을 버린 자들에게 붙여진<배교자-Apostat> 또는<변절자-Lapsed>라는 칭호였다. 그중에 순교자와 고백자들은 모든 기독교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나 배교자, 변절자들은 무시되고 거부되었다.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배교자, 변절자에 대한 처리문제를 제기하였다. 배교자들 중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파렴치한 자들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배교했음으로 동정 받을 수 있는 자들도 많았다. 배교자에 대한 처리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황제의 칙령이 발표되자마자 앞을 다투어 배교한 자들과 기독교인들을 고발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한 자들은 물론 동정의 여지기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부모형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어쩔 수없이 배교한 자들과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거짓으로 배교증명서를 구입했을 뿐 실제로는 전혀 배교하지 않은 자들과 배교했으나 곧 크게 뉘우치고 회개한 후 정상적인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산자들은 배교자로 처리하기에는 매우 곤란했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박해를 무릅쓰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고백자>들에게 일임하였다. 이때에 북아프리카 지방의 일부 고백자들은 자신들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스스로 주장하면서 일부 배교자들을 교회로 귀환시켰다. 그러자 많은 성도들과 교회의 감독들이 이에 크게 반발했다. 성도들은 고백자들과 감독들이 배교자들을 지나치게 용서한다고 불만하면서 배교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라고 요구하였다. 한편 교회 감독들은 그러한 문제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해결할 수 없으며 교회들이 회의를 열어서 결정해야 정당하고 공평하며 또한 일률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의 감독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결과 칼타고의 감독이었던 키프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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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현재의 것일 뿐만 아니라 후세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사는 언제나 진실과 사실로 후세에 전달되어야 한다. 진실과 사실의 역사를 통하여 후세가 배우고 깨우치는 가운데 제2의 역사를 진행하면서 제3의 역사, 제4의 역사들을 계속하여 후세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역사를 정립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모든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이며 또한 후세를 위한 교육이고 지침서이다. 후세의 기독교인들은 현재의 역사를 지침서로 하여 교육되고 훈련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고 또한 제2, 제3의 지침서들을 후세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실과 사실만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그러한 점을 전제로 하면서 우리는 키프리안이라는 신앙의 선배에 대하여 정리한다. 우리가 그에 대하여 정리하는 것은 그의 신앙적 삶 속에서 우리가 배우고 깨우쳐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 절하 해서도 않되고 또한 함부로 칭찬해서도 않된다. 우리는 오직 그가 걸어간 진실과 사실의 신앙적 삶 속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남겨진 기록들은 우리에게 어떤 진실과 사실을 남겨주기 보다는 당시의 상황들만을 전달해 준다. 때문에 우리는 과연 그가 어떠한 각오로 자신의 삶을 진행시켰는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의 상황과 그의 입장과 그의 삶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의 진실과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첫째 그는 한 지역을 관할하는 감독의 위치에 있었다. 그의 관할 하에는 많은 성도들이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에게는 그들의 신앙적 삶을 보살피고 인도해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특히 당시와 같은 박해의 연속적 상황 하에서 지도자가 갖게 되는 책임과 의무에 대한 개념은 더욱 컸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람들은 그가 박해를 위하여 숨어 다닌 것을 신앙인, 특히 지도자로서 비겁하고 누추한 비신앙적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때문에 훗날 그가 변절자들을 선별하여 교회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자신이 변절자와 같은 입장에 있었음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또 어떤 학자는 키프리안의 행위가 그의 교회관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스토,L,곤잘레스
*키프리안이 이처럼 변절자들에게 교회의 교제에 다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노력한 이유는 그의 교회관 때문이었다.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머리의 승리에 함께 참여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으며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이 물론 신자가 교회의 계급제도에 전적으로 동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키프리안 자신도 로마의 교회체제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교회의 통일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런데 고백자들의 행동이 바로 이러한 통일성을 위협하고 있었음으로 키프리안은 이들의 행위를 거부하고 감독회의에서 변절자들에게 관한 문제를 결정해야만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우리는 곤잘레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다. 당시의 신학사상에 의한 보편적인 교회관을 참고로 할 때에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그와같은 이유 외에 다른 차원에서의 이유를 추가하고 싶은 것이다. 앞에서 말한바 있듯이 이것은 키프리안자신의 실제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우리의 추상적인 생각일 뿐이다.
우리는 키프리안의 당시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추론하여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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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리안은 자신이 순교함으로서 개인적인 명예를 취득하는 것보다는 살아서 성도들을 지도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때에 그는 자신의 그러한 행위가 훗날 어떻게 평가되어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충분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훗날,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행위를 비겁하고 치사한 비신앙적, 비진리적, 행위라고 비난할 것을 충분히 예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수하기로 했을 것이다. 그는 순교는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한번 죽은 목숨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부활 이외에는 다시 살릴 수 없을 것임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순교의 기회가 자신에게 다시 주어질 것이며 그때에 순교해도 늦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 자신이 순교한다면 남은 하나님의 성도들은 지도자 없는 상황에서 더욱 방황하고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고 그리하여 자신이 훗날에 받을 모욕과 비난을 감수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실제로 키프리안은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변증하였다.
<순교의 영광은 하나님의 은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 이전에는 은거하여 신앙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며 참된 기독교인의 삶을 사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당당하게 순교함으로서 자신의 신학과 신앙을 증명하였다. 그는 주후258년 발레리안황제 치하의 박해 때에 총독 갈렐리우스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박해가 끝난 후 키프리안이 변절자들을 선별하여 교회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는 또 다른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한 그의 신학사상과 신앙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인간들이 구원받은 이유는 자신들의 어떤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한 용서 때문이었음을 변절자들의 교회복귀에 적용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변절자들의 일시적인 배교를 그럼에 도 불구하시고 용서하시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와같은 추론을 전제로 하여 우리는 키프리안의 지도자적 신앙모습을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추모하고 본받고자한다. 자신에게 돌아올 온갖 모욕과 비난과 불명예스러운 것들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외롭고 괴롭고 서글펐던 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리고 당당하게 갔던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그러한 길을 그렇게 가야 한다는 각오를 다짐하는 것이다.
제6장. 순교와 하나님의 섭리.
역사학자들은 기독교인들의 순교와 하나님의 섭리 사이의 연관에 대하여 많은 의혹을 품었다. 그들의 공통된 의문은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당신의 자녀, 당신의 종들이 저토록 혹독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그들을 구원하시지 아니하시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순교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의한 의도적인 침묵으로 이해하였다. 때문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자원하여 순교 당하는 사례까지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 문제와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미 전장에서 박해와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논증한바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독교 역사의 진군과 발전을 위하여 로마제국의 박해를 허용하셨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자녀와 종들의 순교를 또한 허용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순교의 고통 속에 있는 당신의 자녀, 당신의 종들을 외면하시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고통스러움 속에 함께 하시어 그들을 담대하게 하셨고 그들에게 신념과 용기를 주시어 그들의 변절을 막으셨으며 그들에게 소망과 평안함을 또한 주시어 그들의 순교를 거룩하고 명예롭고 아름답게 하셨다. 그들은 순교의 과정에서 인간들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불행들을 하나님의 함께하심 속에서 견디고 이겼으며 결국은 승리의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앞에 올라갔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 역사 속에서 고통 받으며 순교하는 신앙의 선배들을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순교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워하심을 바라본다.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면서 자녀삼아주시고 종으로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그 자녀 그 종들의 고통을 허락하실 때의 그 아프심과 안타까움이 과연 어떠하셨겠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제7장. 순교역사와 사단.
한편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의 순교역사를 고찰하는 가운데 그 역사를 스스로 자원하여 진두지휘하였던 사단의 패악한 악행을 본다. 사단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끼어들어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독교가 전 세계를 향하여 진군함에 있어서 사단의 방해가 하나님의 기독교 역사에 장애물이 되지는 못한다. 사단의 온갖 방해와 음흉한 계략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기독교 역사의 발뒤꿈치를 살짝 물었을 뿐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정도는 전혀 느끼시지도 않으신 채 유유히 당신의 역사를 전개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선교를 저지하기 위한 사단의 전의<戰意>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사단은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위기감에 로마 선교를 마지노선으로 간주하고 최대의 결전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로마 선교를 향한 사단의 강력한 저지를 어느정도 수용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로마 선교가 주의 종들의 피 흘림이 없이 무혈입성<無血入城>되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 역사의 세계를 향한 진군에 방해적 요소가 되기 때문이었다. 역사의 결과를 볼 때에 기독교 역사는 심한 박해 속에서는 오히려 힘차게 전진하였다. 기독교 역사는 참으로 오묘하다. 극심한 박해로 인하여 수많은 순교가 진행될 때에는 진리가 솟구쳐 올라 온 누리를 밝히는 역사적 쾌거를 이룩한다. 반면에 평화가 주어지고 안녕이 허락되면 오히려 낙후되고 퇴보되고 침체되는가하면 진리마저 왜곡되고 오류 되고 변질된다. 그것은 예루살렘교회 이후 기독교가 전 세계로 진군되어 가는 역사 속에 언제나 동일하게 발생하였던 역사적 되풀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들의 속성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들이었다. 때문에 바야흐로 로마를 시작으로 한 본격적인 기독교 발진의 역사에는 순교자들의 피어린 고군분투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동참을 잠시 허용하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단은 이번에도 전심전력을 다하여 고군분투 했으나 역시 하나님의 역사에 크게 일조하였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께 상급과 면류관을 받도록 열심히 협력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들을 비롯한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순교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그 역사의 뒤에 지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단의 비참한 모습을 본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렇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온갖 패괴한 악행을 저지르려는지 모르는 사단의 모습은 그러나 참으로 불쌍하고 비참하기까지 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언제나 하나님 앞에 연전연패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에 사용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 날에 받을 형벌을 자신의 머리에 쌓아 놓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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