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스크랩] 선재은총(preventing or prevenient grace)

하나님아들 2019. 2. 4. 14:42

 선재은총(preventing or prevenient grace)

 




루터, 캘빈등의 개혁주의자와 웨슬레 사이에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선재은총”이다.
그만큼 웨슬레와 감리교 신학에게 있어서 선재은총은 중요한 특징이 된다.

선행은총이란 선행(先行: Pre), 즉 “-보다 앞서는, -보다 먼저, 예비하는 은총”이란 의미이다.
즉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기 이전부터,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며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가는 은총을 말한다.
성경적인 표현으로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롬5:8)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말한다.
웨슬레목사는 이렇게 선재은총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선행은총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처음으로 싹트는
    하나님의 마음을기쁘시게 하려는 마음과,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과, 일시적으로나마 하나님께 범죄
    하였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등이다.(웨슬레조직신학 111쪽)

인간은 누구나 타락하고 전적으로 부패하여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 개혁주의의 주장이다.
물론 웨슬레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분명하게 동의하고 있다.
다만 웨슬레는 이러한 인간을 “자연인”(The Nature Man)이라는 용어로 설명하였다.

“자연인은 완전 타락하였고 전적으로 부패하였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이다. 그는 영적으로 수면상태에 있으며 선악을 분별할 수 없으며 그의 자유의지는 악만을 선택할 뿐이다.그 자신에게는 어떠한 구원의 능력과 가능성이 없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유일한 희망은 인간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웨슬레는 말한다.(웨슬레조직신학 94쪽)

다만 그러한 죄인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미리 역사하심으로, 그를 구원으로 이끌며 구원을 준비시킨다는 것이 웨슬레가 개혁주의자들과 다른 내용이다.
즉 자연적인 인간은 완전 타락하였고,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나,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주시는 선행적 은총에 의하여 어느 정도는 부분적으로 회복이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인간의 의지로서 인간의 타락과 죄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단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하나님의 선재적인 은총으로서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선재은총이란 무엇인가?

(1) 죄인인 인간을 회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선행하시는 은혜다. '선행하시는 은혜'라는 말의 뜻은 인간이 먼저 스스로 구원을 향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은 원죄 하에서 자신이 죄인이 아닌 듯이 착각하며 하나님 없이 살고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먼저 그에게 사랑과 자비를 가지고 오셔서 역사하심으로써(이와 같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일을 하나님이 먼저 사랑으로써 값없이 손수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은혜'라고 부른다) 비로소 인간이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닌가?' 하고 희미하게나마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2) 사람이 지금까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오다가, 어느 때에 뜻하지 않게 일시적으로나마 자기의 죄에 대하여 어느 정도라도 느낌이 있다든지, 혹은 하나님이 나에 대하여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원하시는 것이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그것을 전혀 모르고 또는 무시하고 살아 온 것이 아니가 하는 느낌이 최초로 동이 터듯이 생긴다면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행하시는 은혜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눈멀고 무딘 마음, 즉 하나님과 그 하시는 일을 전혀 모르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에 의하여 건짐을 받기 시작하는 아주 초기 단계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 없이 살아오다가 이런 마음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연도 아니고 또는 어떤 환경의 영향도 아니고, 또는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그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가지고 임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있게 되는 현상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자연적 양심', 즉 누구나 태어날 때 갖추고 태어나는 일종의 도덕적 기능이라고 흔히 이해하나, 웨슬리는 이것을 명백히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라고 말한다.

(3)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많건 적건 간에 이 하나님의 先行하시는 역사를 느끼게 되는 것인데, 여기에 응하며 나가면 전도라든가 교회라든가 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응하지 않고 소위 이 '양심'의 빛, 정확히 말하여 선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거역했을 때는, (다소간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불안을 느끼게 된다."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아서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이미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활용하지 않는 까닭에 범죄하는 것이다".

(4) 그러나 양심의 현상이라 하는 이 '선행하시는 은혜'에 응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양심적으로 사는 것만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양심적으로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 하며 복음에 대하여 완악하여 질 수 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선행은총에 대하여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적절한 비유는 될 수 없지만, 예를 들자면 자동차에 휘발유가 떨어졌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자동차는 결코 움직일 수 없다는 상황을 생각하여 보자.
그런데 최소한의 휘발유, 즉 주유소까지 갈 수 있는(목적지까지는 결코 갈 수 없는) 예비된 기름이 차 안 어딘가에 이미 주어져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선재적 은총이다.
그 은총을 그가 스스로 찾아내어 주유소까지 차를 몰고 간다면 그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있다.
물론 예비된 기름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를 버릴 선택도 그에게는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 웨슬레는 이렇게 말한다.(송흥국, 웨슬레신학 80쪽)

    나는 비록 내 성품의 부패 때문에 내 마음을 통제할 능력을
    갖지 못했으나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아래 선이나 악을 택할
    자유를 누릴 수 있다.(웨슬레전집 7권 228-229) 

은총이란 무엇인가?
은총이란 “죄인인 인간이 구원얻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것으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발적이며 무조건적이며 공로없이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하나님의 은총뿐이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이 가진 “양심”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선물이며, 또 하나님과 선과 악에 대한 부분적인 지식, 하나님을 찾으려는 욕망, 율법이 없지만 율법대로 행하려는 이방인의 양심을 선재은총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롬2:12-15)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도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행14:16-1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행17:27)

선행은총에 대한 신학적 사상은 이미 많은 초대교회 교부들로부터 나타나 있다.
특히 웨슬레는 크리소스톰으로부터 은총의 독특한 개념을 배우게 되었고, 어거스틴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총의 부르심이 신앙을 결단하는 의지보다 앞서 있음을 말하였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믿음을 갖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은총이 먼저 선재하여 있다는 것이 곧 선재적 은총인 것이다.
알미니우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인간은 응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고 하였고, 어거스틴은 “선재적 은총은 의지를 움직이며,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벼운 폭력으로 자극한다”고 하였으며, 크리소스톰은 “신앙과 회개는 자유의지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주장하였다.(웨슬레복음주의총서 2권, 194쪽)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유의지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구원을 이루어야만 한다

창세기 3장15절의 최초의 복음은 선행은총을 말한다.
인간이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미6:8)

이 선재은총은 만인을 위한 은총(Universal Grace)이며, 만인 안에서 작용하는 은총이며 거저 주시는 은총(Free Grace)이다.
디모데전서 2장 3,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되어 있으며, 또 에스겔 33장 11절에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는 말씀이 있고, 베드로후서 3장 9절에도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가 부르심을 거절함으로서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은총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범죄하고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바 은총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캘빈은 “불가항적인 은총”을 주장하였지만, 웨슬레는 이 은총을 응답하거나 혹은 거절할 수 있는 “가항력적인 은총”을 주장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대등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구원의 성취는 오직 하나님만의 은혜에 의하여 가능하지만, 인간에게는 부르심에 응답하며 믿음을 선택하는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스스로 져야만 한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요3:16)

웨슬레의 신학, 나아가서는 감리교의 선재은총에 대해서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오해와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웨슬레의 신학을 펠라기우스와 비교하기도 하며 인본주의적인 구원론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웨슬레는 인간의 의지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 적이 결코 없다. 그는 Free Grace를 주장하였으며 Free Will를 주장한 적이 없었다.
웨슬레가 말한, 인간의 응답과 책임은 언제나 “은총 안에서” 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분명하다. 다만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구원을 받지만, 예수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어느 인간이 구원을 받지 못하기로 이미 결정되어있으므로 믿음을 선택하여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강요된 선택이었므로 하나님의 책임이지 인간 스스로의 책임이 아니다.

다음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선재은총에 대한 결론이 된다.

1) 구원에 있어서 인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하고 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3) 또한 이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으로 우리는 전도해야만 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으리니”(롬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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