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리!! 교의신학!! 변증학!!

[스크랩] 조직신학 신론

하나님아들 2018. 10. 21. 00:43
조직신학 신론

 

 

 


1. 하나님의 존재론(存在論)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는 없다. 다만 인간은 선천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을 소유할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능력은 계시와 접촉할 때 필연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선천적 지식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계시나 특별계시와 접촉할 때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선천적 지식을 넘어선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에 대한 참지식의 구체적 내용을 소유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 인식을 대전제(大前提)로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나 그 신앙 자체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유한하여 무한하신 하나님을 측량하고 이해할 수가 없다고 증거한다. 그렇다면 이는 불가지론(不可知論)과도 그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과 그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존재 유무에 대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즉 하나님은 불가이해한 분이시지만 하나님에 대한 불가지론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1. () 인식


하나님의 존재론에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하여 논의한다. 즉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이 인간과 그 역사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본래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관념(=신론)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인간의 이성과 사고에 의한 논리로서 전개해 왔다. 그래서 나온 것들이 종교 인류학, 종교 심리학 등 종교학의 제() 분야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규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기를 계시한 성경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존재(=본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한된 범주 안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허용하신 범위 내에서 부분적인 지식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불가지성(不可知性)은 성립되지만 하나님에 대한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은 성립되지 않는다. 비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부분적으로만 허용되었지만 이 지식은 참되고 진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1) 계시를 통한 신 인식


하나님은 신비적 존재이시기에 인간의 이성만으로 인식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절대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열어 보여 주시는 계시 곧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계시되었다. 그러므로 신 인식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2:45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2) 피조물을 통한 신 인식


피조물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물이므로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심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자연 인식).


1: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나 이 같은 자연 인식은 특별계시를 받은 신자에게만 가능한 것이고 불신자에게는 구원을 위해서 충분한 인식은 아니다. 참된 신 인식은 그리스도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학이나 신론이나 신 인식 등의 주제는 성령을 받은 신자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2. 신 존재 증명


 


 


1) 신학의 선행(先行) 조건


일반적으로 신학이 성립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존재사역에 대한 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후에야 하나님과 그 피조물과의 관계, 즉 구원의 대상이 되는 인간에 대하여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규명 작업을 유신(有神) 논증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이 갖는 가장 큰 의문이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 합리적 유신논증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제() 증명


 


우주론적 증명


우주 만물이 존재하는 그 원인자(原因者)인 자존재(自存在)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과 논증(因果論證)이다. 즉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하는 인과론적 접근 방법으로서, 만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들을 존재케 하는 제일의 원인이 반드시 있다는 논증이다. 물질적인 우주는 서로 상호 작용하는 구조로 나타나고 있으며, 무한한 우주는 몇 부분으로 구성되는 단위로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일원적인 근거를 갖는 집행자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19: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고 하였다. 생명이 있는 실존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론적 증명


자연만물이 질서를 유지하되 혼돈에 이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 질서를 유지하는 어떠한 이성적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다는 논증이다. 간단한 유추로 볼 때에, 사계절의 날씨와 비와 햇빛과 식물의 결실은 모두 인간과 동물의 음식과 깊은 유기적 관계를 갖고 있음으로 그 생존 자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볼 때에, 이러한 자연만물의 질서와 법칙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으며, 이 모든 세계가 지식과 목적의 증거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론적 증명에는 자연 속에는 불변하는 법칙과 일정한 질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배후에는 이성적 존재가 있어서 한 목적에 따라 질서를 주었다는 정서론(定序論)과 자연 특히 생물들의 뛰어난 적응성과 계획성은 그것을 창조한 지혜와 능력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의장론(意匠論)이 있다.


(1:18-20)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도덕론적 증명


이 사회에는 권선징악을 권장하는 도덕적인 판단이 있다. 또한 개인의 양심도 악을 미워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선을 지향하려는 도덕적 성향은 곧 이 사회를 도덕적으로 인도하려는 도덕적 주권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Kant). 즉 인간은 선과 악에 대한 의식과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은 선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학은 이것을 지고선(至高善, a highest good)이라고 부르는데, 사람의 인식과 도덕적 이상에 대한 탐구가 어떤 실재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필연케 한다. 양심은 선을 행하고 악을 물리치는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데, 그 배후에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주장이다.


(17:29)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존재론적 증명


불신자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피조물이며 창조주가 있다는 내적감각을 가지고 있다(1:25). 바울은 악한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꾼다”(1:25)라고 말했다. 또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인다고 말했고 이는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즉 인간이 신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관념을 갖게끔 하는 절대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진실로 그를 믿고 사랑하게 되는데, 성경은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우리에게 증거한다”(8:16)고 기록하고 있다.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은 누구나 비록 부정확하게나마 무한하고 완전한 신의 관념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신 관념의 존재는 결국 그 관념의 실체인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종교론적 증명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지상의 모든 종족이 보편적인 신관의 관념과 종교를 가졌다는 것은 절대자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의 인종과 민족이, 과거이든 현재이든 자연적으로 모든 형태의 신과 그 종교를 갖고 있으며 외적인 제사(external cultus)의 형식을 갖고 있다.


즉 사람의 본성이 본능적으로 종교적 형식을 갖고 있는 것은 신적 실유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종교가 있으며 그 종교들이 형태는 비록 다르나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실재를 추론한다.


 


 


 


심미적(審美的) 증명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미적인 요소의 원천적 근거로서 하나님의 실재를 증명하는 논증이다.


 


성경적 증명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상과 같은 합리적 유신논증(有信論證)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증명 시도로서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불충분하다. 물론 믿는 자에게는 약간의 가치를 주기는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론적인 유추에 의해 증명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믿는 자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가장 완전한 증명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구태여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는 분으로, 나아가 모든 존재에 앞서 계신 분으로 전제되어 있다.


 

3.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지식


유신논증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구체적 속성을 알 수 없지만 특별 계시의 기록인 성경을 통해서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구체적 속성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성의 유추의 대상이 아니라 계시를 통하여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성경이 보여 주는 일반적인 면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영성(靈性) -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이시므로 어떤 종류의 육체를 가졌거나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육신이 없으신 영이시므로, 손으로 만져지거나 눈으로 관찰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초월하실 뿐만 아니라 편재(偏在)하실 수도 있다.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딤전 6:16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23:23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2) 인격성(人格性) -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다


하나님은 지적이고 도덕적이시므로 자기 결정을 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인격적 교통도 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의 무의식적 원인, 세계의 보편적 원리, 우주의 전 포괄적 목적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는 인격적 계시이다.


14:9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3) 완전성(完全性) - 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한 분이시다


혹자(或者)는 하나님을 유한하며, 발전적이며, 투쟁하고, 고난당하며, 인간과 같이 실패와 승리를 경험하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신들 중의 하나가 아니고 유일하신 분이므로, 투쟁하거나 혹은 발전하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어 피조물과도 철저히 구별되시는 분이기에 당연히 유한한 피조물의 속성과는 구별되신다.


15:11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147:5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4) 단순성(單純性) - 하나님은 단순성을 지닌 분이시다


하나님은 다른 요소들과 혼합되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직 절대 완전하심으로 자존(自存)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도움도 필요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단순성(Unitas Simplicitatis)은 하나님의 근본적 특성 중 하나로서 그 존재하심과 속성이 동일함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생명이시며, 사랑이시며, 의로우신 그 속성을 이질적 요소의 침범함을 받지 않으신 채 보존하시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사역론(事役論)


하나님의 사역론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창조 사역 및 주권적 통치의 방법인 섭리를 고찰한다.


영원 전에 관계 된 사역들 : 계획 - 신적 작정, 예정


시간과 피조 세계에 관계 된 사역들 : 창조, 섭리


 


1. 창 조


 


창조자 하나님은 영원한 권능과 자혜와 선하신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1차적으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2차적으로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창조 사역 6일만에 완료하셨다.


 


1) 창조의 주체


창조는 특히 성부의 사역(고전 8:6)이나 다른 두 위, 즉 성자(1:3;고전 8:6;1:15,16)와 성령(26:13, 104:30)도 이 일에 동참하셨다(1:2, 1:3). 이와 같이 하나님만이 창조의 주체가 되신 것, 즉 창조가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행위란 사실은 창조의 주체와 객체를 혼동하는 범신론과 엄연한 차이를 지닌다.


 


2) 창조의 시기와 방법


시간의 시작인 태초(1:1)에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만드셨다(33:6, 1:3, 11:3). 그러나 그 직후 이미 있던 재료, 즉 흙이나 갈빗대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2:7,22)도 창조의 영역에 속한다.


 


3) 창조의 목적


혹자(或者)는 창조의 목적을 인간의 행복에서 찾으려 하나 궁극적인 목적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시는 데 있다. 그러나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과 안전을 맛보며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을 이끌어 내려는 데서도 종속적인 목적을 찾을 수 있다(43:7, 36:21,22, 2:14, 9:17, 고전 15:28, 1:5,6,12,14, 1:16).


이로써 우리는, 창조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은 피조물과 관계를 맺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무에서 창조하신 초월자 하나님이시며, 피조 세계에서 자유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피조 된 세계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세계이며, 하나님의 긍정하신 세계이며, 결코 신격화 될 수 없는 세계라는 사실도 알게 되는 것이다.


 


4) 창조 교리에 대한 반론


하나님께 의한 세계의 창조를 거부하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주로 아래 세 가지 범주에 속한다.


 


(1) 이원론


하나님과 물질은 다 같이 영원하다. 하나님께서는 조잡한 상태에 있던 물질로써 우주를 만들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라 단순한 구성자에 머물고 만다. 이 이론은 성경의 묘사와 어긋남은 물론 두 가지 영원한 무한자가 병존한다는 주장으로 귀착되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


 


(2) 유출론


우주는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필연적으로 유출되었으므로 우주는 하나님의 일부분이며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다. 이 이론은 불완전하고 변하는 물질을 완전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과 동일시한 점, 우주 안에 있는 죄악을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리는 점, 그리고 하나님의 자기 결정 능력의 여지를 박탈한 점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3) 진화론


어떤 기존물로부터 진화되어 우주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기존물이 창조에 의한 것인지, 영원 전부터 있었다고 가정하는 물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이론은 증거의 불충분은 물론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2.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께서 사역하실 때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 다루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일반 계획(작정)과 특별 계획(예정)이 있다. 작정(作定)은 우주 만물에 대한 보편 계획이고, 예정은 인간 구원에 관련된 특수 계획이다.


 


1. 하나님의 작정


작정이란 앞으로 발생하게 될 일체의 사건들에 대하여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혹은 목적을 가리킨다.


 


1) 작정의 특성


(1) 작정은 하나님의 치밀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즉 작정은 신적 지혜에 기초하고 있다.


11: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11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2) 하나님의 작정은 시간 시작 이전에 세워져서 역사의 과정 속에서 변함없이 지속되는 영원한 것이다.


(1: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3) 작정은 효과적이므로 아무것도 이 작정을 방해하지 못하며 반드시 성취된다.


(46:10)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4)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참되시므로 작정은 변경되지 않는다.


23:13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14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22:22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5) 작정은 외부의 의존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6) 작정은 포괄적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선한 행위(2:10)와 악한 행위(16:4), 모든 사건(5:20), 인간의 생명(39:4) 그리고 거처(7:26)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7) 죄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피조물의 결정에 의한 범죄를 억제하지 않으시고 허용하신다는 뜻이다.


78:29저희가 먹고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도다


 


14: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2) 작정에 대한 반론 - 펠라기우스파, 소시니안파, 알미니안파


 


(1)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동을 작정하셨고 인간은 또 그대로만 행동해야 한다면 인간은 그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없다.


- 그러나 인간의 도덕적 자유 역시 작정 가운데 포함되어 있으므로 행위에 대한 책임은 당사자가 져야 한다.


50: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23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 인간의 구원 여부가 작정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구원에 대한 인간의 노력을 게을리 하게 만든다


- 그러나 인간은 구원의 작정을 알 수 없고, 작정 속에 결과뿐만 아니라 방법까지도 포함된다.
2: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3) 죄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을 죄의 조작자로 만든다.


-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직접적으로 산출하지 않으시며 단순히 허용하셨을 뿐이다.


92:15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1: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요일 1:5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2. 하나님의 예정


인간과 관련될 때는 선택자와 유기자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으로 볼 수 있으나 좀 더 확대하면 모든 이성적 피조물인 천사와 마귀 그리고 특별한 의미에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예정의 대상이 된다.


 


1) 선 택


(1) 선민 이스라엘의 민족적 선택(4:37; 13:5)


(2) 특별한 직무와 봉사에 합당한 인물의 선택(18:5; 삼상 10:24; 78:70)


(3) 구원받을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1:4,11; 3:48; 벧전 1:2; 11:5)


세 가지 중 마지막이 예정 교리에서 주로 다루는 선택이다.


 


2) 유기(버리심)


구원을 위한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된다(11:25,26; 9:13,17,18,21,22; 벧후 2:9).


 


3) 예정의 순서


전택설(前擇說)과 후택설(後擇說)등 두 가지 주장이 있으나 후자, 즉 타락 후 선택설이 전자, 즉 타락 전 선택설보다 타당한 듯하다. 돌트 회의에서도 후자를 채택했다.


 


(1) 타락 전 선택설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를 선택하신 후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선택할 자와 유기할 자를 창조하셨으며


그 계획의 완성을 위하여 인간의 타락을 허용했고


선택자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2) 타락 후 선택설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를 작정하신 후


타락의 허용을 작정하셨고


타락자 중 일부를 선택하여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과 생명으로 선택하고자 결정하신 사건, 곧 은혜의 선택을 예정하셨다.


 


 


 


3. 하나님의 섭리


섭리란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고, 사건 속에서 활동하심으로써 당신의 작정한 목적에 맞게 만물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세계를 그의 전능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자비하심 가운데서 유지하고, 동반하고 인도하셔서 그가 계획한 목표에 이르게 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섭리로써 인류를 구원하고 역사와 우주를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유지시키신다.


 


1) 섭리의 대상


자연신론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해 일반적인 관심만 표하신다고 본다. ,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법칙을 세우셨으며 그후 그것을 가동시키고 물러나셨다는 것이다. 한편 범신론은 하나님과 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양자를 동일시하며 자연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연신론의 입장과 같이 방관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이 신에게로 돌아가는 범신론의 입장도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와 지배를 가르치고 있다. 성경에 묘사된 섭리의 대상은 아래와 같다.


우주전체(103:19; 1:11)


이 세상의 창조물(104:14; 5:45)


들짐승들(104:21,28; 6:26)


국가의 크고 작은 사건들(12:23; 17:6)


인간의 출생과 운명(139:16; 1:15,16)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16:33; 10:30)


의인의 보호와 악인의 처벌(4:8; 8:28; 7:12,12)


성도의 필요에 대한 공급(4:19)


기도의 응답(65:2; 7:7)


 


 


2) 섭리의 요소


 


(1) 보존


하나님만이 주권적이며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분이시고, 모든 피조물은 항상 하나님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만물은 신적 권능의 계속적인 행동으로 인해 계속 존재할 수 있다. (63:8; 9:6; 17:28; 1:17; 1:3)


 


(2) 협력


만물의 행동과 변화는 1원인이신 하나님과 2원인인 자연 세력 및 인간과의 협력의 소산이다. 그러나 이때 어떤 사건의 동인(動因)자체가 양적으로 반반씩 하나님과 피조세계에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피조세계의 일반 법칙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훼손함이 없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궁극적 능력이자 궁극적 원인이신 하나님께서 종속적 능력과 원인인 피조세계의 질서와 인간의 자유의지에게만 모든 것을 맡겨 동작, 진행하게 방치하지 않으시고 직접 당신의 뜻과 목적을 따라 종속적 능력의 방향과 모든 동작을 주도하심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주 만물의 운행은 하나님 의지의 일방적 작동도 아닌 것이다. 이 협력은 자연 세계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두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그 자유의지 안에서의 또는 그 자유의지를 통한다는 의미에서의 협력이요, 일반 자연세계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세워두신 기존의 질서와 이법(理法)을 통한 하나님 당신 의지의 계속적 섭리이다. 한편 섭리를 전체와 각 개체란 관점에서 일반 섭리와 특별섭리로, 통상적, 일상적 방법이냐 일적, 특수적 방법이냐에 따라 통상섭리와 비상섭리로 나눌 수 있다.


 


 


3) 신적 협력의 특징


(1) 선재적(선결적)이다 이는 신적 협력이 시간적이 아니라 논리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8:18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고전 12:6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1: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2: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 동시적이다 - 피조물은 그 어떤 경우에도 독립적으로 역사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나 자연의 모든 움직임은 그 어느 한 순간도 동시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협력에 힘입어 기동하는 것이다.


17:28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3) 직접적이다 - 신적 협력은 피조물에게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4) 신적 협력과 죄의 원인 관계


(1) 신적 협력 없이 피조세계는 그 어느 것도 동작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범죄 행위도 결국 하나님의 관할 아래 있는 것이므로 궁극적 책임은 하나님이 져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우리는 이 문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그 궁극적 원인인 (why)” 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결과론적 해답의 부분적 이해에 머문다고 겸손히 고백할 필요가 있다.


(2) 그러함에도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정리해 보면, 죄도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하나님께서 기계적으로 죄에게 동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다만 제2원인으로서의 인간의 죄에 대한 자유의지의 실행을 허용하셨을 뿐이라는 것이다.


45:5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50: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14:8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66:4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9:22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살후 2:11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신적 협력과 인간의 자유의지 간에는 논리적 갈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 협력도, 그리고 하나님은 그 존재론적 특성상 죄와는 전혀 무관하며 죄에 대해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책임져야 하며 하나님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런 것은 아니다라는 부정적, 소극적 측면의 고찰만은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작정과 예정의 섭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역으로, 성경의 계시로써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실 나의 죄는 내가 스스로 범한 것이고 또 그것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내 양심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그에 선행하는 체험적 사실로서 우리에게 더욱 명료한 것이다.


 


 


5) 통 치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당신의 창조 목적에 맞게 다스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선악(2:13; 14:10)은 물론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으로부터(10:29-31) 우주적인 것(103:19; 4:34,35)과 영계(靈界) 그리고 과거에서 미래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6) 비상섭리(이적)


물질세계에서는 자연 법칙에 따라, 그리고 정신세계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법칙에 따른 통상섭리가 있고 또한 이러한 통상 섭리를 능가하는 비상섭리가 있다. 이러한 비상섭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로서 이는 주로 하나님 당신의 임재와 당신의 것들의 권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때 비상섭리는 자연 법칙의 위배가 아니라 그 자연 법칙까지도 제정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의 표현인 것이다.


 


3. 하나님의 속성론(屬性論)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을 규명하는 가운데 그분의 속성(=성품)” 이 자연스럽게 그 가운데서 드러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하여서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과 속성의 세 가지를 하나님의 자기계시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본체는 계시된 속성, 즉 하나님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계시로써 확인된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 가운데서 신적 존재에 돌리는 완전성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다.


 


 


1. 본체적 속성(비공유적 속성)


하나님의 속성들 중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시고 인간은 지니지 못한 본체적 속성, 혹은 비공유적(非共有的) 속성이 있다.


 


1) 독립성(자존성)


하나님은 그의 존재 근거를 자신 안에 가지신다(3:4). 하나님은 그 속성에 있어서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필연적 존재이시며, 무엇에 의존적인 피조물과는 달리 스스로 자존하신다.


 


사상적으로 자존하신다.


11: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의지적으로 자존하신다.


4:25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9:18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독립적인 능력으로 자존하신다.


115:3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독립적인 계획으로 자존하신다.


33:11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2) 불변성


하나님은 그의 사상, 의지, 목적, 작정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그의 존재와 본체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으신다.


3:6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그 존재와 속성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신다.


1:17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작정, 사상, 의지, 목적, 언약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신다


102:27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활동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신다는 뜻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간에게 적용하신다.


1:11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며(삼상 15:11,35) 한탄하시는(6:6) 분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심정을 인간적인 말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23:19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3) 무한성


하나님은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시다.


 


본질적 무한성(절대적 완전성)


- 하나님은 그의 존재나 속성에 있어서 무한하시다. 이 무한성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이다. 즉 인간의 지식과 사랑은 유한하나 하나님의 지식과 사랑은 질적인 측면에서 무한하다.


145:3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시간적 무한성(영원성)


- 모든 피조물이 시작을 가지며 시간 속에 존재하나, 하나님은 모든 시간적 제한과 순간의 연속을 초월하셔서 모든 것을 현재로 파악하시며 행동하신다.


90:2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02:26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공간적 무한성(무변성, 편재성)


- 하나님은 공간을 초월하셔서(왕상 8:27 - 무변성), 모든 공간에 계신다(23:24 - 편재성). 즉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에 내주(內住)하시지만 조금도 구속받지 않으신다(17:27; 139:8). 그러므로 만물 속에 신이 존재한다는 범신론(汎神論)과는 구별된다.


 


4) 유일성


하나님은 절대자존(絶對自存)하시며, 불변하시며, 무한하신 하나의 영(4:35)이시다(=단수성). 그러므로 신적 본질은 나뉘어 있지 않고 또 나눌 수도 없다(=단순성). 하나님께서는 절대 유일하시므로 나눌 수 없다는 이 주장은 삼위일체 교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자는 본질과 관계된 문제이고, 후자는 존재 양식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2. 보편적 속성(공유적 속성)

인간에게서 유사한 속성을 찾아 볼 수 있으나 인간의 것은 유한한 반면 하나님의 것은 무한하고 완전함을 보여 주는 속성이다.

 

1) 영적 속성

인간은 영과 육으로 볼 수 있으나(2:7; 고전 11:7; 3:9)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다.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여기서 파생되는 세 가지 속성이 있다.

(1) 불가견성(不可見性)

육체를 갖지 않으신 순수한 영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오관(五官)으로 식별되지 않는다.

딤전 6:15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요일 4: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아브라함(18)과 야곱(32:24-30)에게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은 그 본체를 보이신 것이 아니라 단지 유형적 계시를 위해 인간의 형체를 취하신 것에 불과하다.

 

(2) 생명성

천사, 마귀, 인간이 영적 존재이며 생명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살아계신 분이시다.

5: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3) 인격성

영이신 하나님은 도덕적 속성을 지니며 결정을 스스로 하시는 인격적 존재이시다. 성경 가운데는 오고 가며 말씀하시는 인격적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여러 번 나온다.

2) 지성적 속성

인간은 한정된 지적 존재이나 하나님은 무한의 의식적이며 지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참으로 아신다.

 

(1) 하나님의 지식

- 하나님은 인간과 구별되게 하나님 자신과 모든 사물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아시되(全知) 원형적·직각적·독립적·동시적·개별적·불변적으로 명확하고 완전하게 아신다(21;17; 4:13)

 

(2) 하나님의 지혜

- 하나님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기 지식을 응용하시되 자기를 가장 영화롭게 하는 방식대로 하신다(11:33; 147:5).

 

(3) 하나님의 진정성(眞正性)

-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진실하시므로(34:6)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아시며 또한 인간에 대한 그의 계시도 진실하시다(117:2).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을 진실되게 지키신다(7:9).

 

 

3) 도덕적 속성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 즉 거룩·의로움·선하심은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보다 돋보인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구별되어 무한한 위엄을 갖고 계시며(15:11; 57:15) 따라서 죄로부터 완전히 떠나 계신다(5;16).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나타날 때 ()” 로서 표출된다(99:4). 이 속성은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 원리가 의(32:1)라는 점(정치적 의)과 의로써 통치할 때 순종자에게는 상을(7:9), 그리고 불손종자에게는 벌(2:9)을 내리신다는 점(분배적 의)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님의 선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선이시며(10;18) 피조물에게도 선으로 대하신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선은 다움과 같다.

자선 - 일반 생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이다(145:9,15,16)

사랑 -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는 이성적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선 이다(10:31; 12:12; 3:16; 5:8)

은혜 - 죄인에게 공로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이다. 인간은 아무런 자격이 없으나 이로써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3:24; 고후 8:9; 2:11)

긍휼 - 죄로 인해 고통하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이다(삼하 24:14; 79:8; 119:77; 3:22)

오래 참으심 - 죄인들이 회개하기까지 심판을 연기하시는 하나님의 선이다(34:6; 15:15; 9:22; 벧전 3:20).

 

 

4) 주권적 속성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므로 모든 피조물을 기쁘신 뜻에 따라 다스리시며 처우하실 수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행동방향을 계획하거나 결정하는 능력인 주권적 의지와 이루고자 의지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성취시키는 주권적 능력이 있다.

 

주권적 의지

하나님은 스스로 행동방향을 결정하는 자아결정(自我決定) 기능을 지니셨다. 창조와 보존(4:11), 통치(21:1; 4:35; 1:11), 그리스도의 고난(22:42), 선택과 유기(9:15,16), 중생(1:18), 성화(2:13), 성도의 고난(벧전 3:17), 인간의 생명과 운명(18:21; 15:32; 4;15), 그리고 미생물에 이르기까지(10:29) 하나님의 의지는 만물의 궁극적 원인으로 나타났다.

주권적 능력(전능)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나(18:14; 32:27; 19:26; 1:37), 스스로 모순되는 일, 즉 거짓말(23:19; 삼상 15:29; 6:18), 뜻을 변경하는 일(삼상 15:29; 6:17), 자신을 부인하는 일(딤후 2:13)은 못하신다.

 

 

5) 유복적(有福的) 속성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시므로 모든 덕의 요소를 지니시며, 자신을 아시는 절대적 지식(=신적 지식)과 자신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가지셨으므로, 스스로에 대하여 자충족적(自充足的) 기쁨(=신적 기쁨)이 있으시다(딤전 1:11; 6:15). 이러한 내면적 유복성이 외향적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96:6; 6:3).


3. 하나님의 성품과 신자


신앙인의 모습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인간에게 자신의 영광을 부어주시고 자신을 찬양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신 것이다.


 


1) 신실하신 하나님


인간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고, 자신의 성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으시며 항상 미쁘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기댈 수 있다.


 


2) 사랑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존재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의 운명을 자신과 동일시(同一視)하시며, 피조물을 가슴에 품으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주신 분이시다.


 


3)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인 동시에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이 자신에게 거역한 것을 오래 참으신 하나님이시다. 탕자를 회개시킨 것은 아버지의 풍족한 재산이 아니라 자신을 오래 참고 기다린 아버지의 마음이었듯이, 오늘도 불신자를 신자로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성품이다(벧후 3:9).


 


4) 거룩하신 하나님


거룩함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도쉬는 구별된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지칭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거스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단지 정적인 거룩함이 아니라 동화(同化)시키는 거룩함이며, 닿는 것마다 거룩함으로 변화시키는 거룩함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신자의 성품도 동화시킨다.


 


5) 의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란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행하지 않으시며, 죄 없으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내적인 거룩함에 합당한 성품을 갖고 계시는데, 이를 의로움이라 한다.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이란 도덕,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신자의 성품 안에 전달되며,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의로운 사람으로 불러주시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하신 여러 이름들을 갖고 계시는데, 이로써 하나님의 성품의 일면을 계시하신다.


 


1. 일차적인 구약의 이름


 


1) 여호와


스스로 존재하는 자(3:14)” 라는 의미로서 이는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고유명사이다. 특히 이 명칭은 자기백성과 언약 관계를 맺으시는 언약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성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이 이름이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의 자존성(自尊性)과 거룩성 및 영원불변성이 강조된다. 거룩하심과 영원불변하심이 강조된다.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야훼라는 명칭으로 번역되었다.


 


2) 엘 혹은 엘로힘


성경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최초의 명칭이 엘로힘이다. 이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으며, 우리말 성경에서는 하나님으로 번역되고 있다. '''강한 자'란 뜻을 갖는 가장 단순한 이름으로서, 강하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방신과 대조되는 강하고 능력 있으며 참되신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는 명칭이다. 특히 엘로힘은 의 복수형으로서 위엄있는 하나님,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암시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3) 아도나이


()” 라는 의미를 지닌 이 명칭은 경우에 따라 인간에 대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될 때에는 인간을 포함한 전() 피조 세계에 대한 소유자이시며, 통치자 되신 그분의 무한 광대한 주권성을 가리킨다.


15:2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2. 복합적인 구약의 이름


 


1) 엘의 복합어


강력이란 의미를 지닌 에서 파생된 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여러 종류의 복합어를 가진다.


엘 로이 - 감찰하시는 하나님(16:13)


엘 샤다이 - 전능하신 하나님(17;1)


엘 올람 - 영원하신 하나님(40:28)


엘 엘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14:19).


 


2) 여호와의 복합어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호와와 합성 형태를 취한 하나님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준비하심(22:13,14)


여호와 니시 - 여호와는 나의 깃발(17:15)


여호와 샬롬 - 여호와는 나의 평강(6:24)


여호와 체바오트 - 만군(많은 천사)의 여호와(삼상 1:3)


여호와 메타디쉬켐 -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31:13)


여호와 로이 - 여호와는 나의 목자(23:1)


여호와 치드케누 - 여호와는 우리의 의(23:6)


여호와 엘 게물로트 -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51;56)


여호와 나케 - 멸망시키는 여호와(7:9)


여호와 삼마 -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48:35)


여호와 라파 여화와가 치료하심(15:26).


 


 


 


 


 


3. 신약의 이름


구약의 히브리어 명칭을 같은 뜻의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세 가지 형태가 있다.


 


1) 데오스


구약의 ”, “엘로힘의 번역어이다. 신약에서는 이 낱말을 사용하여 나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등의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구약 이스라엘의 신정국가적인 하나님 관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녀들의 하나님 즉, 성도 개인과 직접적 교제를 나누시는 하나님 관념으로 발전한 것을 보여준다. ''이나 '엘로힘'은 민족적 종교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과 관계하여 주로 사용되었으나, 이것은 신자 개인과 관계하여 사용된다.


 


2) 퀴리오스


구약의 아도나이”, “여호와에 대응하는 명칭으로서 로 번역한다.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스도에 대하여도 사용되었는데,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에게 더 많이 사용된다.


 


3) 파테르


아버지로 번역되는 이 명칭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아버지인 하나님(32:6; 63:13)에 대응되는 명칭이다. 만물의 창조주이시며(고전 8:6; 3:14; 12:9; 1:17) 성도의 아버지(8:15; 4:5) 되시는 하나님을 지칭한다.





1. 하나님의 본질 

  


1) 하나님에 관한 지식 

 

하나님 지식의 가능성은 몇 가지 다른 근거에서 부정되어 왔다. 그러나 어떤 경우, 이 같은 부정은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물론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지식을 갖고 하나님을 알며 신적 존재의 무한한 심연을 측량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 한 일이다. 그러나 반면에 인간이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은 참되고 진실한 지식인 것이다. 인간이 가지는 하나님 지식은 일반적으로 둘로 나눠진다. 

 

 

⑴ 선천적 지식(Innate Knowledge)  

이는 본유적(本有的)혹은 생득적(生得的) 지식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이 본유적으로 하나님 지식을 가진다는 말은, 단순히 그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생득적으로 소유하였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날 때 어떤 하나님 지식을 세상에 가지 고 왔다는 것도 뜻하지 않는다. 본유적인 하나님 지식이란, 인간이 정상적인 상태 하에서 하나님 계시에 접촉하자, 곧 자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생득적인 것임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이 성숙하였을 때 필연적으로 발전하는 지식이요, 자기가 임의로 선택하여 얻은 지식이 아니다. 나면서부터 이 같은 지식은 오히려 일반적 성질의 것이다. 

  

⑵ 후천적 지식(Acquired Knowledge) 

한편 후천적 지식은 하나님의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에서 나온다. 그것은 정신속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지식에 대한 의식적이며 끊임없는  추구의 결과로 생겨지는 것이다. 그것은 감각과 반성, 논구(論究)와 토의 등

지루한 과정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의지의 자원적인 탐구와 끊임없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만 가능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유적인 하나님 지식의 한계를 훨씬 더 넘게 한다. 


우리의 하나님 지식이,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대하여 가지시는 관계에만 한정되어 있고, 하나님의 본유적인 존재에까지는 확대되지 않는다고 흔히들 말하고 있으나, 그러나 이것은 거의 타당한 말이 못된다. 하나님의 성질과 인간의 성질의 얼마를 알지 못하고는 이러한 관계를 아는 것조차도 있을 수없는 것이다. 물론 제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참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2) 특별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지식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존재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을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에 대한 정의가 수 없이 많이 내리어졌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무한한 완전성을 지니신 

영'이시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서술방법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⑴ 하나님은 순결 혹은 순수한 영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라고 하신 말씀에서, 정의에 가까운 표현을 보게 된다. 이것은 그가 본질적으로 영이시라는 것, 그러므로 영의 완전한 관념에 속하는 모든 특질들이 필연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자의식적(自意識的)이며, 자기 결정적(自己決定的)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순결한 영이시라는 사실은, 그가 일종의 영기적(靈氣的)이며 순화(純化)한 육체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한 초기 노스틱파(Gnosticism)와 중세 신비주의의 관념을 필연적으로 배척한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가견적(可見的)이며, 따라서 육체적 감각으로도 식별될 수 있다는 관념을 거절한다. 

 

  

⑵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다 

하나님께서 영이시라는 사실은 또한 그가 인격적인 존재임을 뜻한다. 왜냐하면 영은 지적이며 도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라고 말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임을 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인격성은 분명히 이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지적이며 목적 있는 행위의 발자국에서, 또는 인간의 이성적이며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성질에서 밝히 나타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인격적 하나님에 의해서만 산출될 수 있는 것이다. 

 

 

⑶ 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하시다 하나님은 무한한 완전성 때문에 그의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신다. 그는 어떠한 제한이나 불완전한 것이 없이 그의 존재와 덕을 소유하신다. 그는 무한히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한계나 제한이 없을 뿐 아니라, 숭고함과 형언키 어려운 위엄 속에서 그의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시는 것이다. 이 무한성은 모든 신적완전성들을 특징짓는 것이며, 피조물의 속성들이 아무리 출중하다 하더라고 그 신적 완전성들은 모든 피조물의 속성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⑷ 하나님과 그의 완전성은 단일하시다 

단일성은 하나님의 근본적 특성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한 영으로서 여러 다른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본질과 특성들은 단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의 속성이 타계(他界)에서부터 첨가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의 전체는 속성의 각자 속에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의 완전성이란, 일반적으로 그가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대로 하나님 자신임을 뜻한다. 하나님의 완전성들은 그의 신적 본질을 더욱 상세하게 서술하는데 이바지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요,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2.하나님의 명칭

 

하나님은 사람과 사물에 의미가 있는 명칭을 부여하셨는데 이는 본성을 밝혀준 명치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에게도 하나님을 표명하는 칭호이며, 존재성을 표현하신다. 


  

1) 구약에 나타난 명칭

 

하나님이 지고하신 분임을 나타낸다. “엘”과 “엘로힘”은 하나님이 강하고 능력이 있으신 분으로 마땅히 경외의 대상임을 지적해 주며, “아도나이”는 항상 모든 인간의 소유주와 지배자인 주를 뜻한다. 또 다른 명칭들은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과 우호적 관계에 들어감을 표현한다. 족장들은 “사다이” 또는 “엘 샤다이”라는 명칭을 선호함은 자기 백성의 위안과 축복의 근원이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자연력을 지배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역사하심을 말한다. 신성이신 하나님의 가장 존엄한 명칭은 야훼인데 이 명칭의 기원과 의미는 출애굽기 3장 14절로 15절에 나타나 있다. 이는 언약관계에서 불변하시며 약속의 성취에 신실하심을 말한다. 그리고 천군 천사에 둘러싸인 영광의 왕의 모습은 만군의 여호와이다. 

 

 

2) 신약에 나타난 명칭

 

(1) 하나님: 단순히 하나님을 나타낸 보편적인 명치이며, 소유격으로는 “나의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당신들의 하나님” 등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국가적 형태를 대신한 적도 있다. 

 

 

(2) 주: 그리스도를 말하는 주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의미상으로 아도나이에 가깝지만(항상 모든 인간의 소유주와 지배자인 주) 만물의 소유자이며, 특히 그의 백성의 소유주이시며 지배자이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3) 아버지: 신약에서 새로운 명칭으로 소개됐고, 구약에서도 사용되었다(신 32:6; 사 63:16).이는 의미상으로 아도나이와 같다. 신약에서 모든 성도들의 아버지 되시는 분보다 개인적인 명칭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8:6절에서는 만물의 창조주로 지칭한다. 

 

  

3.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그의 명칭 가운데 계시하실 뿐 아니라, 그의 속성 즉, 신적 존재의 완전성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 하나님의 속성은 비공유적(절대적) 속성과 공유적(보편적) 속성으로 구별되는데, 비공유적속성은 피조물에게서는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으나, 공유적 속성은 피조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속성이다. 

 

  

1) 절대적 속성(非共有的 屬性) 

 

절대적 속성(비공유적속성)은 하나님과 피조물이 절대적으로 구별됨을 강조하는데 다음과 같은 속성들이 있다. 

 

 

⑴ 하나님의 독립성(獨立性) 혹은 자존성(自存性) 

이 속성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 안에서 자신의 존재의 기반을 가지시며, 인간과는 달리 자기 자신 외에 어떤 것에도 의존하시지 않으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존재하심에 있어서 독립적이시며 그의 모든 덕과 행위에 

있어서 독립적이시므로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자신을 의존하도록 하신다. 이런 개념은 여호와라는 명칭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는데, 다음 성구에 명백히 표현되어 있다(시 33:11, 115:3; 사 40:18; 요 5:26; 롬 11:33-36). 

 

⑵ 하나님의 불변성(不變性)

성경은 하나님께서 불변하신 분이심을 가르치고, 하나님은 그의 신적 존재와 자신의 완전성에 있어서 영원히 동일하시며, 자신의 목적과 약속에 있어서도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시다(민23:19, 시 33:11, 히 6:17, 약 1:17)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활동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왕래하시며, 자신을 숨기기도 하시며, 나타내기도 하시는 분이시라 한다. 하나님이 후회하신다고 하지만, 이 말은 단지 하나님에 대해 인간적 화법(話法)으로 표현한 것뿐이며(출 32:4; 욘 3:10), 실제로는 인간 편에서의 변화를 지적하는 것이다. 

 

 

⑶ 하나님의 무한성(無限性) 

이 속성은 하나님이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성에 대해 몇 가지 면을 말할 수 있다. 

 

 

①절대적 완전성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시켜 하나님의 무한성을 생각할 때, 절대적 완전성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그의 지식과 지혜에 있어서나, 그의 선과 사랑에 있어서나, 그의 의와 거룩하심에 있어서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욥 11:7-10; 시 145:3). 

 

②영원성  

하나님의 무한성을 시간과 관련시켜 말할 때, 하나님의 영원성이라 부른다. 영원이란 성경에서 항상 끝없는 기간으로 표현되지만(시 90:2, 102:12), 실제로는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시므로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과거나 미래는 없고, 영원한 현재만 있을 뿐이다. 

 

 

③무변성(無邊性) 

하나님의 무한성을 공간과 관련시켜 말할 때, 하나님의 무변성(편재성: 遍在性)이라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곳에든지 존재하시며, 모든 공간을 채우시면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거하지만, 결코 공간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으신

다(왕상 8:27; 시 139:7-10; 행 17:27-28). 

 

 

⑷ 하나님의 단순성(단일성) 

하나님의 단순성이란 하나님께서는 영과 육으로 형성된 것처럼 여러 부분의 성질로 이루어지신 분이 아니시므로, 나누이지 않으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삼위란 하나님의 본체가 여러 부분의 본질로 구성되어진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존재는 각 위(位)에 종속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의 속성이 하나이요, 또 하나님은 생명이시며, 빛이시며, 사랑이시며, 의로우시며, 진리라고 할 수 있다. 

 

  

2) 보편적 속성(共有的 屬性) 

 

하나님의 보편적 속성(공유적 속성)은 인간에게서도 유사한 것을 찾아볼 수 있는 속성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에게 있는 속성은 다만 유한하며, 하나님의 무한하고 완전한 속성에 비할 때 불완전한 속성이라는 것이다. 

 

⑴ 하나님의 지식(知識) 

하나님의 지식이란, 독특한 방법으로 그 자신을 아시며, 가능성 있는 일과 실재하고 있는 일을 다 아시는 그의 완전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 안에 이러한 지식을 소유하셨으니 외부로부터 지식을 얻어지지 않으신다.

 

이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하며 그 의 지성 안에 항상 현존한다. 또 이 지식은 총 포괄적이므로 전지(全知)라고 칭한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아시며, 실제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능적인 모든 것까지도 아신다

(왕상8:29; 시 139:1-16; 사 46:10; 겔 11:5; 행 15:18; 요 21:17; 히 4:13). 

 

⑵ 하나님의 지혜(智慧)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지식의 독특한 한 국면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최고의 가치 있는 목적을 설정하시고,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해 최선의 방법을 택하시므로 자신의 지식을 나타내시는 그의 덕행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용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영광을 위함이다(롬 11:33; 고전 2:7; 엡  1:6,12,14; 골 1:16). 

 

⑶ 하나님의 선(善) 

하나님은 그 자신이 선이시다. 즉, 완전히 거룩한 선이시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하려는 것은 선이 아니다. 여기서 생각하려는 것은 행동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선 곧 타자에 대한 선행에서 나타나는 신적인 선을 언급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이란 자신으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을 친절하고 관대하게 취급하도록 자극시키시는 신적완전성을 말 한다(시36:6, 마5:45; 행 14:17). 

 

⑷ 하나님의 사랑(愛) 

이 속성은 하나님의 가장 중심적인 속성이다. 하나님의 다른 완전성보다 더 중심적인 속성으로 간주해야 할는지는 의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의 속성에 의해 자신의 완전성과 자기 형상의 반영체인 인간을 보고 즐거워하신다.

이 속성은 몇 가지 관점에서 고찰된다. 

 

①하나님의 은혜(grace): 죄를 용서하시므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과분한 사랑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른다. 그것은 아무 가치 없는 죄인들에게 주어진 모든 영적 축복의 원천인 것이다(엡 1:6,7, 2:7-9; 딛 2:11). 

 

②하나님의 자비(mercy) 혹은 긍휼(tender compassion): 죄의 결과를 짊어진 자들의 비참을 제거하려는 사랑을 하나님의 자비 또는 긍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 하나님의 가장 엄격하신 공의와 조화하여서만 시행된다(눅 1:54,72,78; 엡 2:4). 

 

③하나님의 오래 참으심(long suffering): 하나님의 교훈과 경고에 무관심한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또는 관용이라고 칭한다. 이것은 훈계와 경고를 반복하며 특히 마땅히 받아야할 심판을 연기하여 주심에도 불구하고, 계속 범죄하고 있는 죄인을 돌보시는 사랑이다(롬 2:4, 9:22; 벧전 3:20). 

 

 ⑸ 하나님의 거룩하심(聖)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란, 그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며, 무한한 존엄으로 그들을 초월하시는 신적 완전성이라 하겠다(출 15:11). 그러나 우리는 도덕적인 악, 곧 죄와 분리되어 있는 하나님의 윤리적인 聖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 聖에 관한 근본적인 관념은 분리의 관념이지만, 역시 그것은 적극적인 무엇, 곧 하나님의 도덕적 초월성, 혹은 윤리적 완전성을 뜻하기도 한다. 이 거룩함 앞에서 인간은 죄의식의 중압감을 받는 것이다(욥 34:10; 사 6:5; 합 

1:13). 이 하나님의 聖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도덕적 탁월성을 영원히 의지, 보존하시고, 죄를 미워하시며, 또한 인간에게서 순결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완전성이라 정의할 수 있다. 

 

⑹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 성에 위배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거룩한 존재로 보존하시는 신적 완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에 의해 세상을 도덕적으로 통치해 가시며 적당한 법을 인간에게 부과시키므로 순종하는 자를 보상하시며, 불순종하는 자를 벌 하신다(시 99:4; 사 33:22; 롬 1:32). 

 

①상 주신 공의(公義): 보상으로 나타난 공의(사랑 표현).

②벌주신 공의(公義): 벌을 통해 나타나는 공의(진노표현).

 

 

⑺ 하나님의 진실성(眞實性) 

하나님의 진실성이란 하나님이 그의 내적 존재하심에 있어서 참되시며, 그의 계시에 있어서 참되시며, 그의 백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참되심을 나타내는 신적 완전성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상들과는 다른 참신이시며, 존재하는 사물의 실상 그대로를 아시며, 그의 약속을 시행하심에 있어서 신실하시다. 이 속성을 약속 하나님의 신실성이라고 할 수 있다(민 23:19; 히10:23). 

 

 ⑻ 하나님의 주권(主權) 

하나님의 주권은 두 가지 견지(주권적 의지와 주권적 능력)에서 고찰되어질 수 있다. 

 

 ①주권적 의지: 하나님의 의지는 만물의 궁극적 원인으로 나타난다(엡 1:11; 계 4:11). 신명기 29:29에 보면 하나님의 의지는 감추어진 의지와 계시된 의지, 둘로 구별되어 있다. 감추어진 의지란 하나님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섭리의 의지이며, 결과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는 의지인데 반하여, 계시된 의지란 율법과 복음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교훈적 의지이다. 피조물들에 관계된 하나님의 의지는 절대적으로 자율적이시다(욥 11:10, 계 4:11). 인간의 죄 된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작용에 달려 있다(창 50:20; 행 2:23). 

 

②전능(주권적 능력): 전능이란 하나님의 의지를 집행한 능력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 함은 무엇이든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기보다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성경이 말한다. 즉, 하나님은 거짓말과, 죄를 지으실 수 없으며, 자신을 부인하실 수도 없으시다(민 23;19; 삼상 15:29; 딤후 2:13; 히 6:18; 약 1:13,17).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취하시기로 결정하셨던 것이면 무엇이든지 뜻을 따라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그가 원하시면 그 이상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창 18:14; 마 3:9, 26:53).

 


4. 삼위일체 

  

 

1) 삼위일체(三位一體)의 교리 개관 

성경은 한 하나님이 삼위(三人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특별계시의 교리로서 자연에는 계시되지 않은 교리이며, 인간이성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교리인 것이다.  

 

⑴ 이 교리의 진술 

성경이 가르치기를 하나님은 본질상 한 분이시나 한 분 안에 성부, 성자, 성령님이신 삼위가 존재한다. 이 삼위는 보편적 의미로서의 세 분이 아니다. 즉, 세 개체가 아니라 오히려 신적 본질이 그 안에 삼위가 존재한다. 동시에 인격적 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 성질을 각각 가지고 있다. 성부는 성자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반대로 성자는 성부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파송한다. 삼위일체 교리의 오묘한 신비는 삼위 중 각위가 신적 본질의 완전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삼위의 테두리를 벗어나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순서에 있어서나 그들의 사역에 반영된 순서에서 볼 때 삼위 중 성부가 제 1위요, 성자가 제 2위요, 성령이 제 3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3위는 본질상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위에 종속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이 삼위는 어떤 인격적 특성에 의해서 구별된다. 곧 성부는 성자를 발생(generate)하고, 성자는 성부에 의해서 발생되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proceed)된다. 이 교리는 신앙의 위대한 신비들 중의 하나로, 인간의 이해를 훨씬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⑵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명 

 

①구약의 증거 

구약에는 하나님에게 한 위 이상이 존재함을 지적해 주는 구절들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복수로 나타내시기도 했고(창 1:26, 11:7), 여호와의 천사는 한 신적 위로 나타났으며(창 16:7-13, 18:1-21, 19:1-22), 여호와의 영도 또 다른 하나의 위로 표현되었다(사 48:16, 63:10). 이외에도 메시야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다른 두 인격에 대하여도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다(사 48:16, 61:1, 63:9-10). 

 

②신약의 증거 

계시의 진전으로 말미암아 신약은 더욱 명백한 증거들을 갖는다. 가장 유력한 증거는 구속의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성부는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성자는 성령을 보내신다. 더욱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몇 개 있다. 즉, 예수님의 명령(마 28:19)과 사도의 축복(고후 13:13)에 잘 나타나 있다.

 

③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그릇된 견해 

초대교회 사벨리우스파(Sabellian)는, 삼위를 단순히 신적 행위, 혹은 신적 현현의 많은 형태로 보고, 하나님은 창조와 율법수여에서는 성부로, 성육신에서는 성자로, 중생과 성화에서는 성령으로 각각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삼위는 한 위로 축소되어 버렸다. 이 교리는 종교개혁시대에는 소시니안 학파들에 의해 부인되었고, 오늘날에는 유니테리안 파와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논박을 받는데, 그들은 삼위일체를 성부하나님과 인간 예수와 하

나님의 영이라고 칭하는 신적 영향력이라는 그릇된 주장을 한다. 

  

  

2) 삼위의 개별적 고찰 

 

⑴ 성부(聖父) 하나님 


하나님에게 적용된 이 성부: 아버지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항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아버지”라는 말은 만물의 창조자(고전 8:6; 히12:9; 약 1:17)요, 이스라엘의 아버지(신 32:6; 사 63:16)요, 성도들의 아버지(마 5:45, 6:6,9,14; 롬 8:15) 되시는 삼위 하나님께 적용되는 말이다. 더 깊은 의미로 보면 성부란 말은 제 2위와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삼위일체의 제1위에 적용되는 용어이다(요1:14,18, 8:54, 14:12,13). 이것은 본래부터 아버지 격이므로 지상의 모든 아버지는 이것의 희미한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성부의 독특한 특성은 그가 영원으로부

터 성자를 낳으신다는 것이다. 특별히 그의 사역은 구속 사업을 계획하시며, 창조하시며, 섭리하시며, 삼위일체를 구속의 계획 속에서 나타내는 일이다. 

 

⑵ 성자(聖子) 

 

삼위 중 제 2위는 성자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자가 이러한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성부의 독생자(요 1:14,18, 3:16,18; 갈 4:4)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된 메시야가 되기 때문이며(마8:29,26:63;요1:49,11:27), 성령님의 작용으로 말미암은 그의 특별한 탄생에 의한 것이다(눅 1:32,35). 삼위 중 제 2위인 성자의 특별한 특성은 그가 영원 전부터 성부에게서 출생했다는 것이다(시2:7;행13:33;히1:5). 영원한 출생에 의해서 성부는 신적 존재에 있어 성자의 인격적 존재의 원인이 되신다. 특별히 성자의 사역은 중재의 사명이므로, 그는 창조의 사역을 중재하셨고(요 1:3,10; 히 1:2,3), 또 구속의 사역도 중재하신다(엡 1:3-14). 

 

⑶ 성령님(聖靈) 

 

소시니안파와 유니테리안파와 현대주의자들은 성령님을 단순한 하나님의 능력이나 영향력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하나의 인격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요 14:16,17,26, 15:26, 16:7-15; 롬 8:26). 성령은 지식(요 14:26)과 감정(사 63:10; 엡 4:30)과 의지(행 16:7; 고전 12:11)를 가지신다.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이 말하시며, 탐구하시며, 증거 하시며, 명령하시며, 계시하시며, 노력하시며, 중재하시는 분으로 표현한다. 또 그는 분명히 자신의 능력과는 구별 되신다(눅 1:35, 4:14, 행전 10:38, 고전 2:4). 성령의 특별한 특성은 그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생된다는 것이다(요15:26, 16:7; 롬8:9; 갈 4:6). 성령의 사명은 창조와 구속을 완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창 1:3; 욥 26:13; 눅 1:35; 요 3:34; 고전 12:4-11; 엡 2:22). 

  

 

5. 하나님의 작정(作定) 

  


1) 하나님의 작정의 일반적 의미 

 

하나님의 작정이란 하나님께서 장차 발생할 모든 일들을 미리 정하시는 그의 영원하신 계획 혹은 영원하신 목적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 하나님의 작정은 여러 가지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상은 단일한 작정이지만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작정을 복수형으로 말하곤 한다. 하나님의 작정은 창조와 구속에 있어서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포함하며, 인간의 죄 된 행위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내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은 죄가 세상에 들어옴을 명백히 드러내 주지만 하나님을 우리 인간의 범죄행위의 책임자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죄와 관련된 하나님의 작정은 허용적인 작정이라 말할 수 있다. 

 

⑴ 하나님의 작정의 특성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이 항상 이해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지혜에 근거한 것이다(엡 3:9-11).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 전에 형성된 것이므로 영원 적이시다(엡 3:11). 하나님의 작정은 효과적이므로 작정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분명히 발생한다(사 46:10). 하나님의 작정은 불변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참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욥 23:13,14; 사 46;1 눅 22:22). 하나님의 작정은 무조건적이다. 

 

즉,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는 인간의 어떤 행위에 근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인간의 행위를 명백히 하신다. 하나님의 작정은 총 포괄적이다. 하나님의 작정 안에 인간의 선악간의 행위(엡 2:10; 행 2:23)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창 50:20)과 인간 생명의 기간(욥14:5; 시 39:4)과 거할 장소(행 17:26)까지 포함된다. 하나님의 작정이 세상에 들어온 죄와 관련지을 때는 허용 적이다. 

 

⑵ 작정교리에 대한 반대설

 

많은 사람들이 작정교리를 믿지 못하는데, 특별히 다음의 3가지 반대설을 보자. 

 

①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모순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를 작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인간은 자유로우므로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명백히 가르쳐 준다(창 50:19,20; 행 2:23, 4:27-29). 우리는 이 양 면을 함께 조화시킬 수 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본래부터 모순되었다고 성경이 증명해 주지 않는다. 

 

②인간으로 하여금 구원받으려는 노력을 나타나게 한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들의 구원여부를 결정하셨다면, 인간들은 인간의 노력과 완전무관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그릇된 견해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에 관해 어떻게 작정하셨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인간의 최종적 운명을 결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실현되어가는 방법까지 작정하신 것이다. 목적이란, 지정된 방법의 결과로서만 작정되어짐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을 낙망케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격려시켜 준다. 

 

③하나님을 죄의 조작자로 만든다. 

그러나 작정은 다만 하나님을 죄의 장본인들인 도덕적 존재자들의 창조자로 만들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죄가 작정 가운데 들어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직접적 행위에 의해 죄를 산출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와 관련된 문제 역시 인간으로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없는 신비로 남아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2) 예정(豫定) 

  

예정이란 도덕적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인 것이다. 예정 속에는 선인과 악인 즉, 모든 인류, 천사와 마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포함 한다. 

 

⑴ 선택(選擇) 


성경은 선택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면으로 말하고 있다. 

 

①하나님의 구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선택(신 4:37, 7:6-8, 10:15; 호 13:5) 

②특별한 직무와 특별한 봉사를 위한 인물의 선택(신 18:5; 삼상 10:24; 시 78:70 

③구원 받을 개개인의 선택(마 22:14; 롬 11:5; 엡 1:4)이들 중 맨 마지막 것이 우리가 고찰하고자 하는 선택이다. 그러므로 선택이란 인류 중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⑵ 유기(遺棄; 버리심) 

 

선택교리는 하나님이 모든 인생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자연히 암시해 준다. 하나님께서 인생 중 일부만을 구원하시려고 목적하셨다는 말은 나머지는 자연히 구원치 않기로 목적하셨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성경적 근거를 갖는다(마 11:25,26; 롬 9:13,17,18,21,22, 11:7,8; 벧후 2:9; 유 4). 유기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작용 속에서 어떤 사람을 간과하시고, 그들의 죄를 따라 그들에게 벌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기는 실제로 이중적인 목적이 있으니 

①구원의 은총을 베푸심에 있어 어떤 사람을 간과하시 

②그들의 죄를 따라 그들에게 벌하시려 함이다. 

 

예정론에 대한 반대설 

 

이 예정교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불공평의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그릇된 견해이다. 우리 인간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 권리요청을 할 때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원한 구원을 베푸실 의무가 있다고 할 때 불공평이다. 그러나 전 인류가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해 버린 이 마당에서 상황은 아주 다른 것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향해 왜 어떤 사람은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느냐에 대한 설명을 요청할 권리가 없다. 있다면 자기가 하나님을 만드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두 멸망시켜도 공평하시다.

 


6. 하나님의 창조(創造) 

  

작정의 시행은 창조 사업부터 시작된다. 이 창조 사업은 모든 계시의 시작이요, 기초이며 모든 종교생활의 근원인 것이다.   

 

 

1) 창조에 관한 일반적 고찰 

  

창조란 말은 성경에서 항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엄밀한 의미로 정의하자면 창조란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부분적으로는 먼저 있었던 물질을 사용치 않고 창조하시고 한편으로는 본질상 불충분한 물질로부터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산출해 내신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창조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 나타나 있다(창1:2; 욥26:13, 33:4; 시 33:6; 사 40:12,13; 요1:3; 고전 8:6; 골1:15-17). 우리는 범신론과는 반대로 창조가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행위임을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엡 1:11; 계 4:11). 또 우리는 자연신론에 반대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므로, 이 세상은 항상 하나님을 의존함으로 존속한다는 것을 주장해야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상을 섭리하신다(행 17:28; 히 1:3). 


⑴ 창조의 시기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 곧 현 물질세계의 시작을 가르쳐준다. 이 태초 전에는 끝없는 영원이 존재한다고 본다. 창조사역의 첫 부분은 엄밀히 무(無)에서의 창조이며, 기존 재료를 사용치 않은 창조이었다(창 1:1). 무에서의 창조란 표현은 성경에서는 직접 찾아볼 수 없지만, 외경 중의 한 책에서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마카비 2서 7:28).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다음의 성구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창 1:1; 시 33:9, 148:5; 롬 4:17; 히 11:3). 

 

⑵ 창조의 궁극적 목적 

 

어떤 학자들은 창조의 궁극적 목적을 인간의 행복에서 찾는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에게서 충족함을 가지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창조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피조물의 찬양을 받기 위해 벌려놓은 하나의 허황한 구경거리로서 꾸며진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안녕을 촉진시키고, 피조물들로 하여금 창조주를 찬양하도록 이끌어 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사 43:7, 60:21, 61:3; 겔 36:21,22, 39:7; 눅 2:14; 롬 9:17, 11:36; 엡1:5,6,12,14, 3:9,10; 골 1:16). 

 

⑶ 창조교리에 대한 이설(異說) 

 

창조교리를 반대하는 자들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그릇된 이론을 주장한다. 

  

①이원론(二元論) 

어떤 학자는 본래의 물질은 영원한 것인데, 이 물질로부터 세상이 우연히 또는 고도의 직접적인 힘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두 영원자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즉, 두 개의 무한자가 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②유출설(流出說) 

다른 학자들은 하나님과 세상이 본질상 하나라고 주장하며, 세상은 신이 존재할 때 필연적으로 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하나님에게서 자기 결정의 능력을 박탈하였으며, 인간에게서는 자유와 도덕적 책임의 특징을 빼앗은 격이다. 또 이 이론은 하나님을 모든 악의 책임자로 만든다.

 

③진화론(進化論) 

이 이론 역시 분명히 잘못된 견해이다. 왜냐하면 진화란 우주의 기원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며, 이 이론은 이미 기존 물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2) 영적 세계의 창조 

 

하나님께서는 물질계 뿐 아니라 영적 세계도 창조하셨다. 

 

⑴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증명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영적 세계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러나 성경은 천사들의 존재와 그들의 참 인격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삼하 14:20; 마 24:36; 유 6; 계 14:10). 어떤 학자들은 공허한 존재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성경에 어긋나는 이론이다. 천사들은 우수한 영적 존재이며(엡 6:12; 히 1:14, 혹 어떤 때는 육체적 형체를 취하기도 하지만), 살과 뼈도 없으므로(눅 24:39), 볼 수도 없는 존재이다(골 1:16). 천사 중에도 어떤 천사는 선하고 거룩하며, 선택받은 존재(막 8:38; 눅 9:26; 고후 11:14; 딤전 5:21; 계 14:10) 인데 반하여, 나머지 천사는 그들 본래의 

위치에서 타락함으로 악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요 8:44; 벧후 2:4; 유 6). 


⑵ 천사의 부류: 분명히 몇 가지 천사의 부류가 있다. 

 

①그룹: 

성경은 천사의 부류 중 그룹들에 대하여 말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존엄과 영광을 선포하며, 에덴 동산에서나 성막과 성전에서나 지상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에 하나님의 거룩 성을 호위 한다(창 3:24; 출 25:18; 삼하 22:11; 시 18:10, 99:1; 사 37:16). 

 

②스랍: 

천사들 중에는 스랍들이라 부르는 천사가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이사야 6장2절로 3절과 6절에만 언급되어 있다. 스랍들은 하늘의 보좌를 옹위하여 시종들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그들은 화해의 목적을 수행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올바로 접근하도록 준비시킨다.


③가브리엘과 미가엘 

성경에는 가브리엘과 미가엘 두 천사가 있다. 가브리엘(단 8:16, 9:21; 눅 1:19,26)의 특별한 업무는 신적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며, 그 계시를 해석해 주는 것이다. 미가엘(단 10:13,21; 유 9; 계 12:7)은 천사장이라고 하는데(유 9), 그는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을 대항하여 여호와의 전투를 대행하는 용감한 전사(戰士)다. 성경에는 이 천사들 외에도 정사와 권세와 보좌와 주관자라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엡 1:21, 3:10; 골 1:16, 2:10; 벧전 3:22). 이러한 명칭들은 천사들 사이에 등급과 위엄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한다. 

 

⑶ 천사들의 하는 일(업무, 봉사) 

천사들은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찬양하고 있다고 한다(시 103:20; 사 6장; 계 5:11).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천사들은 구원 받은 자들을 위해 봉사하며(히 1:14), 죄인들의 회개를 기뻐하며(눅 15:10), 신자들을 돌보며(시 34:7, 91:11), 소자를 보호하며(마 18:10), 교회 안에 있으며(고전 11:10; 엡 3:10; 딤전 5:21), 신자들을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한다(눅 16:22). 또 천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전달하며(단 9:21-23; 슥 1:12-14),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축복을 전달하며(시 91:11,12; 사 63:9; 단 6:22; 행 5:19), 하나님의 대적들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기도 한다(창 19:1,13; 왕하 19:35; 마 13:41). 

 

⑷ 악한 천사들 

선한 천사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를 즐겨하는 악한 천사도 있다. 악한 천사들도 본래는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그들 본래의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벧후 2:4; 유 6). 악한 천사들의 특별한 죄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들은 아마도 하나님을 대항 했으며, 신적권위를 열망했을 것이다(살후 2:4,9). 사단은 천사들 중 높은 위치를 가진 자로서 타락한 천사들 중에 공인된 우두머리가 되었다(마 25:41, 9:34; 엡 2:2). 사단과 그의 무리들은 초인간적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파괴하고자 하며, 심지어는 선택받은 자까지라도 우매하게 하여 미혹하려 하고, 간악한 방법으로 사람을 범죄 하도록 미혹한다.

 

3) 물질세계의 창조 

우리는 창 1:1에서 천지의 원시적 창조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 1장 2절 이하는 제 2차적 창조 곧 6일간의 창조사역의 완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⑴ 창조의 기간

창조의 기간 중에서 문제시 되는 것은 창조 시의 날들이 보통 우리가 말하는 하루 24시간이냐 하는 문제이다. 지질학자들과 진화론자들은 창조의 날을 시간적으로 오랜 기간이라고 말한다. "날"이란 말은 성경에서 항상 24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창 1:5, 2:4; 시 50:15; 전 7:14; 슥 4:10). 그러나 창조론에 있어서 "날"이란 용어에 대한 문자적 해석은 다음의 이론에 의해 주장된다. 


①히브리어(욤; 날; 

yom)은 원래 정상적인 날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 문맥이 다른 해석을 요하지 않는 한, 본래의 의미 그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②아침과 저녁이라는 말의 반복은 이 문자적 해석을 지지해 주는 것이다. 

③여호와께서 구별하사 거룩하게 하신 안식일은 분명히 정상적인 하루이다. 

④출 20:9-11에 보면 이스라엘은 엿새간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도록 명령을 받았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엿새간 천지를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⑤마지막 3일은 분명히 정상적인 하루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 날들은 지구와 태양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날들이 정상적인 날인데, 어찌 다른 날들이 정상적인 날이 아니겠는가? 

 

⑵ 6일간의 사역 

  

①첫 날에 99%가 빛과 함께 창조되었는데, 빛과 어두움이 분리됨으로 밤과 낮이 생기게 하셨다. 이 이론은 태양과 달과 별들이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는 관념과 모순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빛 자체가 아니라 빛의 운반체들이 기 때문이다.

②둘째 날의 일은 분리하는 일인데, 궁창을 만듦으로 물이 위 아래로 나누이는 작업이었다. 

③셋째 날에도 분리작업이 바다와 땅이 분리되는 가운데 계속되었다. 그뿐 아니라 풀과 나무들의 식물계가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권능의 말씀으로 각기 그 종류대로 씨 맺는 꽃 없는 나무와 채소와 과수를 땅에 자라게 하셨다.

④넷째 날의 태양과 달과 별은 다양한 목적으로 따로 봉사하도록, 곧 낮과 밤을 나누며, 기후 상황의 징조를 나타내며, 계절과 날과 연한의 계속을 결정하고, 지구를 위한 빛으로서 활동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⑤다섯째 날의 사역은 공중과 물 속에 사는 새와 물고기를 창조한 일이다. 

⑥마지막 여섯째 날은 창조사역의 절정이라 규정할 수 있다. 이 날에 지상 동물 중 최고의 계급이 창조되었는데, 모든 창조사역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의 창조에 의해 절정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땅의 흙(티끌, 먼지)으로부터 형성된 반면에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인 것이다

⑦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창조의 사역을 끝마치고 쉬셨고, 그의 창조사역을 보고 좋아 하셨다. 처음 3일과

다음 3일의 창조 내용의 유사성이 있다. 

1. 빛의 창조 

2. 궁창(공간)의 창조와   

3. 물과 마른 땅의 분리 : 

4. 빛을 가진 물체의 창조 

5.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 물의 분리 고기 창조

6. 땅의 짐승과 육축과 기는 것과 인간과 짐승이 거처할 땅의 준비의 창조. 

 

⑶ 진화론 

진화론자들은 만물의 기원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반대하여 만물 기원의 진화론적 입장을 주장한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식물과 동물은(인간도 포함) 물론 지성, 도덕, 종교와 같은 생활의 여러 형태마저도, 자연력의 산물인 완전한 자연적 과정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하나의 가정이므로 잘못된 이론이며, 성경적 창조론과 완전히 불일치한 논리이다. 

 

7. 하나님의 섭리(攝理)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창조하신 세상을 유지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자연히 창조교리 다음에는 섭리교리를 생각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며,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 속에서 활동하시며, 만물을 정해진 목적에 맞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섭리는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데, 그 첫째는 존재에 관계된 것이며, 둘째는 활동에 관한 것이며, 셋째는 만물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 

 

1) 하나님의 섭리의 요소 

하나님의 섭리는 세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1) 보존(保存)

보존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사역이다. 세상은 별개의 존재로서, 하나님의 한 부분이 아니지만, 계속적인 존재의 근거를 갖는다. 세상은 만물을 존재케 하시고 활동케 하시는 신적 권능의 계속적인 행사를 통하여 유지된다(시136:25, 145:15; 느9:6; 행17:28; 골1:17; 히 1:3). 

 

(2) 협력(協力)

협력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과 협력하시며 피조물로 하여금 그들의 해야 할 일을 행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 속에 자연력과 인간의 의지와 같은 실제적 제 2의 원인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원인들이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선악간의 모든 행위 속에서까지라도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행동하도록 자극시키며, 순간순간마다 그들의 행동에 함께 해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을 동일한 원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제 1원인이요, 인간은 제 2원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팀을 이룬 말들이 각기 그 일에 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일의 한 부분을 각기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인간이 행한 동일한 행위라도, 전체적인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행동인 동시에 인간의 행동인 것이다. 또한 우리 신인(神人)협력교리가 인간의 죄악 행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라는 그릇된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신1:18 빌2:13).


(3) 통치(統治)

통치란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들의 존재하는 목적에 맞도록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신구약에서 우주의 왕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다스리시는 피조물의 성질에 맞도록 자신의 법칙을 적용시키셨다. 즉, 육체적 세계의 통치와 영계의 통치와는 다르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주적이시며(시103:19; 단4:34,35), 가장 무의미한 것까지도 포함하며(마 10:29-31), 얼른 보기에 우연적인 것까지도 포함하고(잠 16:33), 인간의 선악간의 모든 행위까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속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빌 2:13; 창 50:20; 행 14:16). 

 

2) 섭리교리에 대한 그릇된 견해 

 

⑴ 자연신론 적 관념(自然神論的 觀念) 

이 관념은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관념이 가장 일반적 성질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의 법칙을 확립하셨고, 세상을 움직이게 해 놓으시고는 세상에서 손을 떼셨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님께서 시계태엽처럼 세상을 자동으로 해놓고 무엇인지 잘못될 때면 그때에만 하나님께서 간섭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분에 불과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⑵ 범신론적 관념(汎神論的 觀念) 

범신론자들은 하나님과 세상을 구별하지 않고, 이 둘을 동일시하므로 섭리교리를 인정치 않는다. 또 세상에 제2원인이 없다고 보며, 하나님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직접적인 조정자라고 본다. 심지어는 인간의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행위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가까이 계신 분이라고 주장한다. 

  

3) 비상섭리(非常攝理; 이적;異蹟) 

 

일반섭리와 특별섭리로 구별하는데, 이 특별섭리 속에서 이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적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제 2원인의 중재 없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 2원인을 사용하시는 경우, 하나님은 제 2원인을 비상의 방법으로 사용하시므로, 결국 제 2 원인을 사용하되 비상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므로 초자연적인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적이란 자연법칙을 어기는 것이므로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소위 자연법칙이란 하나님의 통상적인 방법을 표현해 주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정한 질서를 따르심이 그 질서를 떠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며, 자연 질서를 어기거나 혼란시키지 않고 특별한 결과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적은 계시의 방법이다(민 16:28 요 2:11, 5:36).

 

이현채 목사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神論
 


    A.  知識
    B.  實存(본질, 속성, 진리)
    C.  役事(창조, 천사론)
    D. 神正論
    E. 救援論
    F. 豫定論 歷史
    G. 三位一體論
 
1. 회의주의 : 불가지론이 형성되기 전에 인간의 지식 취득에 대한 회의주의가 선행했다. 이것은 소피스트들과 키레네학파의 인식론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이성은 물체 내부의 실체에까지 파고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물체 뿐이다.” 따라서 이것이 그렇다고 하는 것보다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혹은 그것이 그럴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게 된다. 지식에 대한 이런 회의주의에 대해 Augustin은 반박한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고 함으로서 기독교 인식론의 확실성을 강조했다. 17C 경험론, 과학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더 확대되어 형이상학적 대상과 신에 대한 회의주의는 신 죽음의 신학을 이끌어간다.
 
2. 불가지론 : 신의 존재에 관해서 우리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신은 절대적 존재요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신앙은 있어도 신의 존재는 증명할 수 없으므로 신에 대해서는 모른 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불가지론(Agnosticism)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Hoxley이다. 그의 불가지론은 현대 자연과학과 진화론과 유물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결과 
    ① 모든 사물의 판단의 기준을 내재화한다.
    ② 초경험적 대상에 대해서는 적극적 판단 보류.
    ③ 과학이 제공한 자료를 최대한으로 신용.
    ④ 경험을 토대로한 실증주의 입장을 긍정.
 
3. 否定神學(Theologia Negativa)
(하나님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우리는 有限者이기에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무엇이 아니다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Origen에서 시작 T. Aquinas가 대표.)
: 우리는 상대적 존재요 죄인이기 때문에 직접 신을 볼 수도 없으며 우리의 思考 言語로서 絶對者이신 신을肯定的으로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의 肯定은 신을 인간의 말로 制限하는 結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Origen이 처음으로 기독교에 도입했다. : 신은 存在 自體이기에 우리의 知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신을 말할 때 否定的으로 말해야 한다.
T. Aquinas = 신에 대해서는 긍정적 표현으로는 정의할 수 없다. 부정적인 묘사로서 그의 본질을 어느정도 말할 수 있다.
P.Tillich = 신을 모든 존재의 근원 또는 존재자체라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 신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비판 : 그리스도를 통한 신의자아계시를 경시하는데서 초래된 매우 소극적인 신 이해가 되고 만다. 부정만으로서는 신에 대한 긍정은 조금도 얻을 수 없다.


 
1. 우주론적 증명 : 우주에는 시작이 있고 그 시작에는 반드시 최초의 원인이 있을 것인데 그 원인이 곧 하나님이다.
비판 = 인과율의 근거가 무엇이냐가 문제가 된다. 하나님에게도 원인을 적용해야 된다는 근거가 된다.
 
2. 목적론적 증명 : 우주 안의 모든 존재들은 질서, 법칙, 조화가 있는데 이것을 한 목적전달만 들어낸 정신적 존재, 정신이 곧 하나님이다.
비판 = 질서와 인간에 의해서 초래되는 모든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져야 한다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3. 존재론적 증명 : 모든 인간의 내면에 신에 대한 관념, 사상, 신념, 종교성 등이(Anselm) 있는데 이것을 생득적으로, 직관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에 상응하는 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이론.
비판 = 신은 개념이나 사물은 아니다. 생각으로 신이 존재한다 볼 수 없다.
 
4. 도덕론적 증명 : 인간 사회에 있는 도덕법은 지고신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그 지고 신이 곧 신이라는 것이다.(Kant)
비판 =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가치가 신을 증명할 수 없다.
 
5. 역사적 증명(인류학적 증명) : 신이란 관념을 역사적으로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뜻한다.
비판 = 신적 감정으로 신의 존재를 말할 수 없다.
 
<종합비판> : 위의 다섯 가지 방법은 자연을 통한 간접적 지식에 불과하다. 이것으로 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고 우리와 어떤 인격적 관계를 가지는가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이 방법을 의지해서는 않되고 하나님의 계시를 통 해서만 바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계시만이 신을 증명할 수 있다.
 
A.  知識 (神知識)
 
1. 계시를 통한 신지식
 
1) 啓示 : “아포카룹시스를 번역한 말. “나타나게 하다.” “뚜껑을 열다.” 라는 뜻.
- 구약성서에 계시된 
 역사를 주관하시는 신
 성자로 나타나심과 동시에 자비하신 자.
 이스라엘에 계시된 신은 세계의 창조주요 주관자.
- 신약성서 = 공관복음 = 구약시대에 숨겨지고 가리워진 신과 그의 나라가 이 역사 속에서 계시될 것을 강조.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신의 계시자인 동시에 신 자신이라고 한다.
 
2) 그리스도를 통한 신 지식.
: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계시자로서 성육신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그 본체를 같이 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 삼위일체론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성과 인성에 대해 우리는 케리그마적 (역사적, 지적) 취급보다는 예배하는 태도로 그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3) 성서를 통한 신지식
: 신언으로서의 성서는 신의 명칭들을 통해 신을 알게 한다. 종교철학에서는 하나님을 “IT” “HE”로 표시하나 기독교의 신은 "THOU"(성서의 계시의 신)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이다.
* 유신론과 기독교신학을 같은 차원에서 보는 Van Til은 그리스도의계시의 절대성을 약화하는 경향이 있다. 또 대다수의 종교철학자나 철학적신학을 주장하는 학자나 과정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계시성 보다 일반계시 또는 합리주의적 유신론을 더 강조하므로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절대계시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2. 被造物을 통한 神知識
* 합리주의적 신존재증명  신비주의적 신존재증명(이 종성 참고)
= 인간의 이성과 논리와 도덕성을 토대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요청하여 따라서 신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이다.
 
1) 우주론적 증명(consmo logical argument)
( Aristotels  Thomas Aqunas  이 세계의 보편적 모습을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
: 모든 결과는 적당한 원인에 기인하는데 우주는 시작이 있고 그 시작에는 반드시 최초의 원인이 있을 것인데 그 최초의 원인이(이 최초의 원인은 부동의 동자로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다른 것을 움직인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다.) 곧 하나님이다.하는 이론.
이 증명은 이 세계의 운동과 원인, 그리고 이 세계의 가능성존재와 필연적 존재로부터 출발한다.
반대이론 : 인과응보의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설명이 인과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모든 것은 대체로 이 인과율에 의해 생성 소멸 된다해도 그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설명치 못한다. 따라서 이 증명에서 나타나는 신은 너무나도 추상화된 신이다.
자유, 공의, 사랑, 자비 같은 성품을 가질 수 없는 존재이다.
 
2) 목적론적 증명(Teleological Argument)
: 우주 안의 모든 존재물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놀라운 조화, 법칙, 질서가 있다. 그러나 물질은 스스로 어떤 목적이나 질서나 법칙이나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질서, 법칙, 조화 이런 것을 만들어낸 놀라운
정신적 존재가 있다는 것이 상정되어 그 존재정신이 신이라는 이론이다. 즉 우주는 지성과 조화를 가진 신적존재를 표시한다는 것이다.
* 에밀부르너 : 이 우주 자연 신비로움을 보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우연히 됐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것이 아니다.
* 칸트 : 어느 정도 이 증명을 인정.
 
3) 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
이 증명의 대표는 Anselm이다.
: 이 증명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로부터 출발한다. 신의 관념이 곧 신의 실재와 직결된다. 즉 모든 사람의 내면에 신에 대한 관념, 사상, 신념 혹은 종교심이 있는데 이것은 생득적으로 직관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에 상응하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이론이다.
- 칸트의 반대이론 :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신에 대한 생각만으로는 신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즉 존재는 관념의 한 부분이 아니다.
- 기독교 신학적 입장의 반대
: 이러한 신존재 증명을 찬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고방식과 논리에 의해 얻어진 결론은 너무나도 사변적이고 추상적이며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관념을 아무리 종합해도 거기에 실재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성서는 이런 신 이해를 배척한다.
 
4) 도덕론적 증명
: 도덕론자로서의 신에 관한 지식은 실천이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참된 행동은 도덕법과 일치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최고의 선의 가능성을 위해 하나님의 존재가 돌연적이어야 하는데 이것은 실천적인면에 있어서의 요청이다. 하나님은 경험의 대상이 아니어서 지식으로 얻을 수 없다.(불가지론 주장 - Kant)
, 자유, 영혼은 경험이 않되는 것이기에 도덕이 있어야 한다. 도덕은 이러한 것들을 요청한다. 이것을 도덕론적 증명이라 한다.
 
5) 역사론적 증명(또는 인종학적 증명)
: 신이란 관념을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신이 실재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 개념은 종족의 발전과 함께 발전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예배의 대상을 생각하게되며 그러한 존재가 실재함을 느끼게 한다. 그 느낌에서 신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킬케로 - 락탄티우스(초대교회) - Calvin - 근래에 M.Kahler 주장.
그러나 이 증명은 사실에 있어서 증명이라 말할 수 없다.
 
종합비판
: 이런 다섯 가지 합리적 방법은 어디까지나 자연(인간이성, 오성, 도덕심)을 통한 방법으로 간접적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 방법으로는 신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분이며 우리와 어떠한 인격적 관계를 가지시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이 방법에 의존해서는 않된다. 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계시만이 신을 증명 할 수 있는 것이다.
 
B.  實存(本質, 屬性, 眞理)
 
1. 하나님의 본질(본성 = Essentia)과 속성(Attributa)


전통신학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진 그의 성격을 그의 속성이라 하고 
피조물과의 관계를 떠나서 하나님 자신이 가진 성격을 하나님의 본성이라고 부른다.
문 제 점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이라는 두 가지 다른 개념을 사용할 때 하나님은 둘로 나누어 생각될 수 있다.


현대신학 
그러므로 본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속성이라는 개념만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진 속성과 하나님의 내적인 존재 자체가 가진 속성을 구분하기도 한다.
 
1) 비공유적 속성(절대적 속성)
  : 그의 영원한 존재 자체 안에 계신 
    하나님이 가진 속성, 단순성, 단일성, 무한성, 영원성, 불변성, 편재성, 전지, 전능.
  ① 영성(Spirituality) = 하나님은 관념이 아닌 실체로서 영적존재이다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비물질적이고 무형체적 존재이며 
     불가시론적 존재이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며 인격적 존재이시라는 것이다.
  ② 자료성(self-existence) = 하나님은 자기 자신 안에 자신의 존재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기원인적 존재라고 부를 수 있다. ( 3:14)
  ③ 광대무변성(Immensity) = 공간과의 관계에서 무한성을 가진다
     유한한 공간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 편재성과 동일한 느낌을 준다.
  ④ 영원성(Eternity) = 시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무한성을 의미.
  ⑤ 편재성(Omnipresence) 내재성에 치중. = 패조물과의 관계에서의 하나님의 무한성의미.
  ⑥ 전지(Omniscience) = 하나님 자신과 다른 모든 존재들에 대해 완전히 아신다.
  ⑦ 전능(Omnipotence) =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본질 본성에 의해 제한된다.
  ⑧ 불변성(Imnutability) = 하나님은 그의 본질들이 불변하고 그 속성들이 불변하고 
     그의 뜻과 약속이 불변하다.
 
2) 공유적 속성(상대적 속성, 활동적 속성)
   인간을 위한 행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가진 속성. 공의, 사랑, 거룩.
   ① 神性(거룩, Holines) =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분리, 초월해 계시고 
      모든 도덕적, , 죄에서 분리 떠나 계신다.
   ② 하심(Goodness) = 하나님은 그 자신으로서 영원히 완전히 선하시며 
      모든 피조물들에 대해 선하시다. 그리고 우주에 있는 모든 선의 원천이다.
   ③ 사랑 = 하나님의 창조물 중 이성을 가진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선은 사랑의 성격을 띤다
      그 사랑에 의해 죄인을 구원하신다.
   ④ 恩惠 = 인간에게 언제나 공로가 없는데도 베푸시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⑤ 公義 = 구약 공의” - 체다카.
              신약 공의” - 디카이오수네.
              Paul 공의적의 마 5:10,  3:24    인간적 차원에서 구별되나
                    도덕적의 마 6:1.               신은 동시적으로 주관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존재에 존재방향과 행동규범을 제공해 준다
      인간 공동체의 규범인 인간 이성, 양심, 체험으로서 부족하기에 인간 공동체의 표준을 세우기 위해 
      성서를 통해 神言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말해준다.
 
C.  役事(創造, 攝理, 救援,  神正 問題)
 
1. 하나님의 사역
 
1) 창조사역 : 단일회적 사건이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시고 공의로우신 야웨 하나님이 완전하게 하신 사역이다. 사역의 결과에 대하여 더 첨가하거나 수정하거나 어떤 부분을 제거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사역이었다. 이 창조사건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이 사역의 결과로서 발전하고 성장한 것이다.
 
* 기독론적 창조신앙
창조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구원의 새로운 경험을 통하여 규정된다. 구약성서의 창조신앙의 근거는 구원사의 신앙에 근거하므로 기독교의 창조신앙의 근거도 구원의 사건, 곧 그의 계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인 창조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 하나님은 창조자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창조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전제와 시작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새로운 창조를 뜻한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만의 창조사역이 아닌 성자와 성령이 참여하고 있는 삼위일체적 사역이다.
 
2) 십자가의 사건 : 일회적 사건이다.
하나님의 일류 구원사역의 결정적 사건으로서 그 한 사건으로서 인류 구원의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2. 攝理論
이 말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그의 전능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자비하심 가운데서 유지하고 동반하며 인도하여서 그가 계획한 목표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다.
 
1) 개념 : 라틴어 Provideo에서 나온 말과 희랍어 προνοια에서 유래된 말로서, 미리 본다(예지), 미리 보시고 아시고 그것에 대해 대책을 세운다라는 뜻 이있다.
 
2) 의도 : 섭리론은 창조자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의 관계는 과거에 일어난 창조의 사건과 함께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신학적 사변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앙과 신뢰를 표현하고자 한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고백이요 선포이다. 즉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나 악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섭리론은 고백하고자 한다.
 
3) 근거와 출발점
: 이 세계의 현실, 인간의 경험이 아니고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사건에 있다. 그가 지으신 피조물의 주가 되신 하나님이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을 배우고자 하시며 그의 의도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답변된다.
 
4) 섭리론의 내용
: 하나님은 세 가지 활동을 통해 그의 피조물들을 돌보신다.
 維持(CONSERVATIO)
: 하나님도 그가 창조한 피조물의 세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으로서 그의 사랑과 성실하심을 보이신다. 따라서 그의 능력은 태초의 창조부터 지금까지 계속 활동하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지는 계속적 창조이다.
 同伴(CONCURSUS)
: 하나님은 피조물 세계를 유지하시고 또한 피조물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안에서 함께 활동하며 이것을 동반하신다. 이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고난을 당하기로 한 하나님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引導(gubernatio)
: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피조물 안에 함께 있고 그 속에서 그의 목적을 이루며 결국 모든 것을 자신의 목적을 향하여 인도하신다.
 
5) 섭리의 구분
 보편적 섭리 : 피조물 세계 전체에 보편적으로 해당하는 하나님의 섭리.
 특별한 섭리 :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 당하신 인간에게 해당하는 하나님의 섭리
 가장 특별한 섭리 : 신앙의 순종과 사랑과 감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하나님의 섭리.
 
3. 구원사와 세계사
 
1) Pannenberg의 구원사와 세계사의 一致
Pannenberg Hegel의 역사이해의 반복으로서 세계사와 구원사를 같은 것으로 본다. 헤겔은 세계사의 모든 것은 정신의 자기 활동이라고 했는데 이 정신이 곧 하나님이라면 세계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기 활동인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하나님과 세계의 화해의 보편적 실현인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신앙의 영역에 제한되어서는 않되고 세계사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Pannenberg는 구원사와 세계사를 분리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는 구원사를 일반적인 사건과는 다른 종류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예수 안에 미리 앞당겨 일어난 구원사는 세계사와 마찬가지로 원칙상 이성에 의하여 인식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역사적인 구원의 사건을 통하여 자기를 계시하며 세계사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를 뜻한다며 세계사는 곧 구원사를 뜻하게 된다는 것이다.
 
2) 구원사와 세계사의 관계성
Pnnenberg : 예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긴밀하게 결합되어있으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역사이다.
O.Cullmann : 구원사는 점진적 감소와 점진적 확대의 형식으로 일어난다. 즉 창조  인류  이스라엘  남은자들  예수 그리스도(감소의 형식)으로 일어나며,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  최초의 공동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교회  세계(확대형식).
 
점진적 확대
창 인 이스 남은 예 수 사 최 초 교 하나님의
조 류 라엘 자들 그리스도 도들 공동체 회 세계통치
점진적 감소 (역사의중심)
 
결국 이런 형식으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사는 역사 안에서 전개되며 이런 뜻에서 구원사는 역사에 속한다.
결론 = 세계사의 내적인 근거와 의미는 구원사에 있다. 구원사를 통해 세계사는 보존고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사의 목적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구원하는데 있다. 따라서 구원사는 세계의 중심이요 열쇠이다. - K.Barth - 반면 세계사는 구원사의 외적인 근거를 형성한다.
 
3) 구원사와 세계사의 구분
이런 밀접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동일시 될 수도 없다.
- 피조물의 활동을 하나님의 활동으로, 하나님의 활동을 피조물의 활동으로 보며 따라서 세계사를 곧 구원사로 이해하는 Hegel, Pannenberg의 입장을 거절한다.
- 또한 구원사를 세계사의 안에있는 것도 아니고 곁에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모든 역사의 계속적위기라고 보는 Barth의 입장도 동의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사는 세계사 안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모든 피조물들 안에 계시면서 그들의 고난을 함께 당하며 그들 안에서 활동하시고 그들을 그의 구원의 목적으로 인도하고자 하신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구원사에 속한다. 구원사는 하나의 은폐된 역사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신앙 될 수 있다.
* 분명 이 두 역사는 거부되나 구원사는 세계사적 지평(HORIZONT)을 상실하고 개인의 내면적실존의 역사성으로 위축되어서는 안된다. 구원사는 세계사적 지평에 있다.
 
4) 신앙을 통한 구원사의 인식
구원사는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것’(Pannemberg)이 아니라 은폐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 가운데서만 인식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재하면서 성령의 빛과 능력 가운데서 인식된다. 궁극적으로 구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에 대한 신앙 가운데서만 인식된다.
 
* 神正論
라이프니츠로 부터 유래하는 개념인데 하나님이 의로운 분이라면 악은 어디로부터 오는가하는 문제인데 여기서 악이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의로움이 문제가 된다. 악을 막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전능성이 문제가 된다.
* Augustin = 하나님의 창조에는 악을 포함하지 않고 선의 결여가 악이다.
* Luther = 악은 비본래적인 사역으로 이 악을 통해 선을 이룬다.
* P. Tillich = 악은 비존재이다.
* K. Barth = 하나님께 도전하려는 타락된 인간 사건과 카오스가 하나님께로 위협적으로 나타나는 파괴적 세력이다.(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된 것이다.)
 
<전체 결론>
현대신학자들이 악의 실체를 인정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神正 問題 * 하나님의 전능성과 하나님의 義性이 문제다.
 
神正(Theodizee)이란 하나님의 義認 내지 칭의를 뜻하는데 라이프니츠로 부터 유래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이 제기하는 문제는 이 세계의 악의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의로운 분이라고 불릴 수 있겠는가의 문제이다.
만일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면 악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 ” 하는 것이다.
 
Luther : 악은 선을 위하여 있다. 하나님은 악을 통하여 선을 요구하며 죄를 통하여 의를 완성하신다. ”노예의지에서 하나님이 인간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의롭다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한다. (소극적)
 
Hegel : 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기 疏外로부터 오며 하나님의 자기 활동이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은 아니며 모든 유한한 것은 그 속에 부정적인 것 즉 악한 것, 불완전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것은 신적 정신 혹은 영(Geist)으로서의 하나님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변증법적 운동으로부터 오는데 악은 정신의 변증법적 자기 활동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요소이며 정신에 의하여 부정되고 고양된다. 결국 Hegel에 있어 악은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정립된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악은 선으로 넘어 가는 과정 속에 있으며 악의 요소가 전혀 없는 완전한 선이란 유한한 세계 속에 있을 수 없다.
 
P.Tillich : 악은 비존재(Nichtesein)로 생각되고 있다. 비존재란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론적 구조를 형성한다.모든 존재자들은 비존재 곧 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유한한 존재로 존재한다. 실존하는 모든 것은 존재의 힘에 참여하고 이는 동시에 비존재와 화합된다. 그러므로 실존하는 모든 존재자들은 비존재 곧 악의 위협과 존재의 힘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 있다. 절대적으로 선한 것과 절대적으로 악한 것으로 부터 선한 것으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악의 근원 :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하고자 하는 사건, 곧 하나님과 같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타락의 사건과 함께 (카오스)는 인간과 그의 세계를 다시 로 돌리려고 하는 위협적인 세력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파괴하는 세력으로 곧 악으로서 모든 죄된 행위다. 사건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 악으로 나타나는 무를 허용하셨는데 결국 무로 인하여 인류가 당하는 불의와 고난은 인류 자신이 이끌어 온 귀결이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써 참된 자유를 상실하고 무를 악으로서 경험하는 것이다.
 
해결 : 이러한 인간의 악의 문제를 인간 스스로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악은 문제를 해결 하셨는데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조물이 되시고 피조물의 죄와 벌과 고난과 심판을 스스로 당한다. 이와 같이 악에 대하여 궁극적인 승리가 일어난 곳이 골고다의 십자가이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일어난 이 승리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피조물 세계 속에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악은 하나님에 의하여 극복된 악이다. 그러면서도 악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활동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더 이상 그의 세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 하나님의 사역 -
작정(DECREES) : 장차 일어날 모든 사건들을 미리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것이다.
예 정 :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재적인 일.
 
Calvin의 예정은 절대적 예정이고 이중적 예정이다. 인간의 공로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하나님이 선택할 인간과, 유기할 인간을 이중적으로 예정하셨다.
 
Barth의 예정은 이중적 예정으로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하여 선택하셨고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는 유기를 예정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만인구원설은 아니다. 하나님은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에게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는 반면 이 인간이 당해야 할 저주와 죽음을 자기에게 예정한다.
 
E. 三位一體論
 
1. 삼위일체론의 의도 :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역사적 사건에 있어서 하나님의 하나되심을 고백하고자 한다.
 
2) 성령을 통하여 오늘도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구언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하나되심을 고백하고자 한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오셨음과 그의 현재적 오심과 그의 미래적 올 것임을 동시에 고백하고자 한다.
 
4) 모든 종속론적 표상과 양태론적 표상은 삼위일체론과 함께 거부될 수밖에 없다.
 
* 양태론 :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태에 불과하다.
 
2.  人格들의 仕役
 
1) 內在的 三位一體 經綸的 三位一體
 
(1) 內在的 三位一體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영원히 자기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의 사역, 본질의 삼위일체이다. 두 가지 사역을 가진다.
 성부로 인한 성자의 출생.
 성부와 성자를 통한 성령의 내어쉼.
(2) 經綸的 三位一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있어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계시의 삼위일체이다. 즉 성부의 창조(creatio),성자의 구원, 성령의 성화로 구성된다.
 
3. 삼위일체론은 십자가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삼위일체의 흔적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얼굴 위에 있다.
 
4. Filioque - 동서방 교회 분열.
동방교회는 신성의 근원이 오직 하나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성령은 오직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하였다.
서방교회는 성령은 성자와 아무 관계 없이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부는 오직 성자와의 관계에서만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방교회는 성령은 성부와 그리고 성자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여 그리고 성자로부터”(Filioque)라는 단어를 삽입했다. -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서 - 이 때문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분리되었다.
 
5. 학자들의 견해.
1) Arius : 종속론 There was when He was not. = 그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 성부는 가장 높은 실체이고 나뉘어질 수 없는 단일성으로 인해 모든 존재자들의 해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모든 존재자들의 고통을 위한 중간존재인데 하나님의 최초의 피조물이다. 그는 다른 모든 피조물에 대해 모범이나 하나님 아래에 있는 존재이다.
 
2) Tertulian : 종속론과 양태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삼위일체론의 기초형성.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계시지만 혼자는 아니고 그의 단일성 수적인 단일성이 아닌 이미 구분되어 있는 단일성이다. 성자는 영원한 출생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이를 통하여 성자로 된다. 성부는 성자를 성령을 통하여 파송하며 성령은 신적인 실체의 단일성을 통하여 성부와 성자와 결합되어 있다. 이것을 터툴리안은 UNA SUBSTANTIA - TRES PERSONAE(한 실체 - 세 인명)이라 하고 Disti, non divisi, discretim non separati(구분되어 있으나 나누어져 있지 않고 구별되어 있으나 분리되어 있지 않음)라고 표현했는데 한 마디로 TRINITAS(삼위일체)라고 말한다.
 
3) 양태론(modalism) : Sabellius
하나님은 한 분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계시와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세 가지 양태를 취한다.
성부의 양태 속에서 그는 창조자로
성자의 양태 속에서 그는 구원자로
성령의 양태 속에서 그는 생명을 주시는 자로 나타난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세 가지 방식 내지 양식이다.
 
4) K. Barth
삼위일체로의 뿌리를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발견한다. 즉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계시자와 계시의 사건과 계시의 능력을 볼 수 있는데 따라서 계시는 삼위일체로의 근거이고 삼위일체론을 계시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이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은 한분 하나님의 반복 혹은 존재양식 이라고한다. 결국 바르트는 양태론으로 빠져있다.
 
5) Moltmann
Moltmann은 과거와는 달리 세 분의 신이 어떻게 하나의 신이 될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Moltmann은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은 숫자상의 하나가 아니라고 한다. 동일에서 하나라는 단어는 EINIG(하나로 혹은 일치하여) EINER(숫자 1)가 있는데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은 EINIR라는 것이다. Moltmann은 이러한 그의 삼위일체론을 설명하기 위해 Hegel의 사랑의 원리를 도입하여 삼위가 하나되는 것은 세분 하나님 사이의 깊은 사랑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칫하면 삼신론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
 
神 名.
 
1. 구 약
 
1)  ( ) = 능력 있다. 강하다. 주가 된다.
하나님에게만 사용될 뿐 아니라 강한 인간이나 능력있는 천사, 이방신에게도 적용(217)
2) 엘로아( ) = 두려움의 대상, 존경의 대상.
3) 엘호힘( ) = 강한 자, 권능 있는 자, 주관자, 존경 있는 자라는 뜻. 재판장에게도 쓰이고 천사, 이방신에게도 쓰임. 경외의 하나님(창조주)
4) 야웨( ) = 고유명사, 스스로 있는 자.(자존자)
5) 엘솨다이( ) = 전능자. 언약을 세울 때는 엘솨다이, 약속을 성취하실 때는 야웨로 보여 준다.
6) 츠바오트( ) = 야웨라는 말과 복합되어 사용된다.
) 만군의 여호와(삼상 7:17에서 부터 사용되기 시작) 전쟁 군대에서 유래. 전쟁하시는 하나님.
7) 아도나이( ) = 심판자, 통치자, 주권자 하나님, 구속의 주.
8) 엘리욘( ) = 노래나 시에서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 지극히 높으신 자라는 뜻.
 
2. 신 약
1) θεοσ = 하나님에게 족용된 일반적인 명칭. 개인적인 하나님.
2) κνριοσ = . 법적 권세자. 통치자.
3) πατηρ = 아버지의 개념. 영적자녀로서 윤리적 개념.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