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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개혁주의 교회와 신조

하나님아들 2018. 10. 10. 14:27

개혁주의 교회와 신조

  

신앙고백 또는 신조는 성경에 근거한 신앙을 요약한 [신앙의 규칙](rule of faith) [신앙의 상징](simbol of faith)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같은 신조의 권위와 유용성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는 신조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신조무오설이요, 다른 하나는 신조의 가치를 부정하는 신조무용론이다. 그리이스 정교회와 로마 천주교회가 전자에 속한다면, 소씨니안과 경건주의자들이 후자에 속한다.

 

신앙고백은 무오한가? 그리이스 정교회와 로마 천주교회는 신조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보는 대신 절대적으로 이해한다. 그리이스 정교회는 초대 교회의 7대 회의에서 결정한 바 있는 교리들은 무오한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즉 아리우스 이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325년 니케아에서 열렸던 니케아 회의 이후 787년의 제2차 니케아 회의까지의 교회회의들에서 채택한 교리만은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로마 천주교회 역시 교회회의에서 결정한 교리들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특히 니케아 교회회의(Council of Nicea)에서 트렌트 종교회의(Council of Trent)에 이르는 시기에 작성된 신조들은 절대적으로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로마 천주교도들은 이와 같은 신조무오론에 근거하여 1854년에는 성모 마리아의 무죄 잉태설을, 1870년에는 교황의 무오설을, 그리고 1950년에는 성모 마리아가 죄없이 태어나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였다는 교리를 제정하면서 이와같은 것들은 무오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오한 것은 성경뿐이다. 신조는 성경과 동등하지 않고 오직 성경에 예속될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만 신앙고백은 인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조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즉 그것이 얼마나 성경적인가에 따라서 신조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성경은 신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나 신조는 상대적이며 단지 교회적인 권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조 무오론을 펴는 자들과 같이 신조를 절대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징을 절대화하는 것은 하나의 우상숭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건주의와 신조무용론 = 신조무오설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해독을 주는 극단적인 입장은 신조무용론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17세기와 18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주의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에 의하면 교리를 강조하게 되면 자유로운 성경해석만이 아니라 신학적인 진보에 장애가 된다고 한다. 또한 교리적인 기초에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성경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므로 하나님과의 실존적인 체험을 배제케하여 결국 외식적인 신앙인을 양성케 한다. 그리고 신조에 대한 강조는 다른 신앙을 부정하는 독선으로 이끌 수 있고, 고집으로 인한 분당이 교회 안에 일어날 수 있게 하여 성도들 간에 적대적인 감정을 고무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경건주의자들은 교리적인 무관심주의 또는 교리에 대한 비관주의를 표방하였다. 그러나 경건주의 운동 이후 교리를 무시하는 풍조가 독일에 번지면서 독일의 교회들이 자유주의화 되어갔다는 점은 우리들에게 하나의 경종이 된다. 이같은 신조무용론에 동조하는 무리 중에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부정하는 소씨누스파(Socinians), 말씀보다 성령의 사역만을 강조하는 퀘이커교도(Quakers),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단일신론자들(Unitarians), 신앙에서 기적과 신비를 부정하는 합리주의자 등이 있다.

 

개혁주의 교회에 있어서의 신조의 위치 =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위의 두 극단을 부정한다. 오히려 개혁주의자들은 신조는 상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다른 신학활동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경과 교회 역사가 신조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선언하기를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증거한다(12:34). 이는 곧 사람이 믿는 것을 고백한다(Credo ergo confiteor)는 말이다. 신앙의 상징으로서의 신앙고백은 이미 신약교회가 생기기 전에 이미 존재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16:15-18 참고)이라고 베드로는 신앙을 고백하였다. 도마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러한 고백을 기초로 하여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주인이시오,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이들을 성도로 간주하였다. 그 단적인 예로 빌립은 이디오피아의 내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을 할 때 세례를 베풀어 신자로 인정하였다. 이와같이 성경은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에 대하여 [신앙의 규칙화] 또는 [신앙의 상징화]를 하였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28:19)는 세례의 형식(Baptismal formula)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교리화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교훈의 교리화 작업은 성경에 기인하는 것이다.

 

신앙은 교리화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다. 교리가 무시되는 곳에는 언제나 이단 사상이 일어난다. 기독교 교리가 체계화되지 않았던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 마르시온(Marcion), 그리고 몬타누스파(Montanists)와 같은 이단들이 나타나 교회를 혼동케 하였다. 따라서 교부들은 이단으로부터 성경적인 신앙을 구별하기 위하여 그들이 믿는 신앙을 교리화하였다. 예를들면 이레니우스(Irenaeus)는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을 주장하는 이단들에 대하여 신약과 구약을 강조하였고 이단과 성경적인 신앙을 구별하기 위하여 [신앙의 규칙]을 만들었다. 이와같은 과정을 통하여 340년경에 나타난 신앙고백서가 바로 [사도신경]이다. 신조들은 이와같이 바른 신앙과 그릇된 신앙을 구별하여 성도들의 신앙 교육, 곧 학습 교육과 세례 교육에 이정표가 되어왔다.

 

따라서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서 서며,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침묵한다}는 신학 원리 아래 교리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만](Sola Scriptura)이 신학의 시초가 되지만 교리적인 도움없이는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使徒信經

 

Apostles' Creed

 

Apostolicum이라고도 함.

로마 가톨릭 교회, 영국성공회,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사용하는 신앙 고백서.

 

동방정교회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12사도들이 작성했다고 하나 실제로는 초기의 세례예비자용 문답례에서 발전했다. 200년경 로마에서 사용한 문답례의 한 실례가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전승 Apostolic Tradition에 보존되어 있다. 주교는 "당신은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으십니까?"와 같은 그리스도교의 주요신앙에 대해 질문하곤 했다. 긍정적인 명제로 씌어진 이 진술들은 신조(信條)가 되었으며, 이 신조들은 이후에 세례신조로 알려졌다.

 

현재의 사도신경 본문은 3, 4세기에 로마에서 사용한 세례신조와 비슷하며, 그 최종적인 형식은 6세기말 또는 7세기초 프랑스 남서부지방에서 확립되었다. 이것은 점차 세례신조를 대신하게 되었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1198~1216 재위)가 서방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신앙 진술로 인정했다. 이당시 채택된 라틴어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Creatorem caeli et terrae.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jus unicum, Dominum nostrum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descendit ad inferna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ascendit ad caelos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inde venturus (est) judicare vivos et mortuos. Credo in Spiritum Sanctumsanctam ecclesiam catholicamsanctorum communionemremissionem peccatorumcarnis resurrectionemvitam aeternam. Amen."

 

현재 한국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은 다음과 같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느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신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신조

 

信條

 

creed

 

종교 공동체의 필수적인 신앙조항에 관한 공인된 간략한 형식의 진술.

 

공중예배나 입교의식 때 전례문(典禮文)의 형태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신조는 일부 개신교 교회의 신앙고백과 비슷한데, 신앙고백은 훨씬 확대된 공식용어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종교적 신념은 대개 신조나 신앙고백처럼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며 의식이나 신화로 표현되는데, 특히 원시종교에서 그렇다. 원시종교 이후의 시대에는 신념이 의식집전서, 경전, 법전, 신학적 사변 등 비()신조적인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그리스로마의 고대 종교와 전통적인 도교유교힌두교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 어떤 종교가 타문화에 전래되는 경우에는(셈족 문화가 헬레니즘 문화로 전래됨) 단절변화개종다원주의에 대처하는 상황에서 종교의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공적인 신조가 생긴다. 진정한 의미의 신조를 소유하고 있는 종교는 조로아스터교불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및 몇몇 현대 힌두교 운동 등의 세계 종교들뿐이다.

 

동양의 종교에서는 특정 단어와 어구가 부분적으로 신조적 선언의 역할을 한다. 유교의 ''(적합한 행동 법칙)''(부모에 대한 도리), 도교의 ''()는 각 종교 전통의 중요한 특징을 총괄하는 것이다.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만트라'(신을 부르는 성스러운 말)는 세상(로투스)에 아발로키테스바라(보석)가 존재함을 믿는다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힌두교의 '만트라'도 신앙을 공표하는 데 많이 쓰이는데, 브라만 계급의 청년이 입교 의식의 일환으로 배우는 리그 베다에 나오는 가야트리 기도문이 특히 그렇다. 사실상 대부분의 종교는 주로 종교의식의 표현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고 종교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소승(小乘) 불교의 신조적 표현은 초기의 '트리라트나'에서 보다 완전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부처교리공동체 속에서 피난처를 구한다는 고백이다.

 

신조 형식의 진술은 서양 종교, 특히 3개의 고전적인 유일신 종교에 가장 많다. 이슬람교도 개개인의 삶은 '샤하다'라는 고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신이며, 마호메트가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고백이다. 유대교에서는 연례 절기 예배 때 고백했음이 분명한 초기의 신조 형식의 진술이 히브리어 성서에 보존되어 있다. 중세 때 유대교에서는 신조를 작성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그 가운데 마이모니데스의 13개조는 비록 공식적으로 승인된 적은 없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유일성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고백이다. 유대교에서는 신조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의 정체성이 교리의 수용보다는 구전율법을 지킴으로써 정의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수많은 신조를 내놓았다. 부분적인 이유로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출발부터 뚜렷이 교리적인 성격을 지닌 특수한 복음 또는 '케리그마'(선포)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시대부터 이 선포는 예배시의 공동고백(예를 들면 "예수는 주이시다")과 부분적으로 정형화된 보다 긴 신앙개요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서로마 교회의 신조 작성 과정은 사도신경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사도신경은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례의식과 공중예배에서 쓰인다. 사도신경이 현재의 형태로 사용된 것은 아마 8세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도신경은 그 이전의 세례 신조, 특히 고대 로마 신경에서 시작된 것 같은데, 그 내용의 골자는 2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니케아 신조는 정통 교리에 대한 권위 있는 규범으로 입안된 것으로,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최초의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작성되었다. 이 신조를 개정한 이른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동로마 교회와 서로마 교회가 다같이 받아들였다. 니케아 신조는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는 이단의 주장들, 특히 성부와 성자의 동등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 이단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일본질(homoousion)을 지닌다고 규정했다. 서방교회는 또한 성령이 성부에게서뿐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나온다는 뜻의 '필리오쿠에'(성자로부터)라는 구절을 채택했다.

 

서방교회의 3번째 에큐메니컬 신조는 아타나시우스 신조이다 (색인 : 아타나시우스 신조). 16세기 이래로 동방교회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한 이 신조는 로마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가 공식적으로 채택하고는 있지만 최근 몇 세기 동안 예배에서 이 신조를 사용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논쟁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이 신조는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삼위일체의 주제들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 신조는 450~500년에 남부 프랑스에서 생겨난 듯하다.

 

니케아 신조

 

――信條

 

Nicene Creed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라고도 함.

그리스도교 신앙 선언서.

 

로마 가톨릭 교회, 동방정교회, 성공회, 주요 개신교 교파들이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것이 유일한 에큐메니컬(전 그리스도 교회적) 신조이다. 사도신조와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몇몇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지만 모든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20세기초까지만 해도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보편적으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선포한 니케아 신조를 확대 개정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아가 이 확대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가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 발흥한, 성육신과 성령에 관한 이단에 대해 니케아 신조를 최신화하려는 목적으로 실행한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그 당시의 상황은 더 복잡했고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학자들의 논쟁 과정에서 발전되었다고 한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명백히 진술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공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세례신조에 기초를 두었던 것 같으나, 독자적인 문서였고, 니케아 신조가 확대된 것은 아니었다.

 

"성령은성부로부터 나셨고"라는 말 다음에 들어가 있는 소위 '필리오케'('필리오쿠에''그리고 아들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 구절이 6세기초 서방교회에서 점차 신조의 일부로 전해졌는데, 11세기에 교황권에 의해 최종적으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 개신교 교회들에서는 이 구절을 그대로 간직해왔으나 동방교회에서는 이 구절이 신학적으로 그릇된 것이며, 신성한 문서에 덧붙일 만한 권위가 없다고 여겨 거부해왔다. 본래 그리스어로 씌어진 니케아 신조는 교회의식, 즉 서방교회에서는 성찬 때, 동방교회에서는 세례와 성찬 등에 중요하게 사용된다. 이 신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 한 분을 믿는다. 그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이요,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자다.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느님의 독생자이시며, 모든 세상이 있기 전에 하느님으로부터 나셨으며,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하느님이시요, 빛으로부터 나온 빛이시요, 참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하느님이시다. 그는 피조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셨다. 그는 모든 것을 지으신 아버지와 동일 본질을 가지신다. 그는 우리 인간을 위해 무엇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성령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몸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사, 우리를 위하여 본티오 빌라도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는 고난을 당하시고 매장되셨다가 3일 만에 성서의 말씀대로 부활하셨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가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의 나라는 영원무궁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성령을 믿는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셨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신다. 이 성령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우리는 또한 하나요,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사죄를 위한 한 번의 세례만을 인정한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장차 임할 하느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바라본다."

 

아타나시우스 신조

 

── 信條

 

Athanasian Creed

 

Quicumque Vult(라틴어로 된 이 신조의 첫 구절에서 따옴)라고도 함.

40절가량으로 된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몇몇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그 권위를 인정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며 하나는 삼위일체를, 다른 하나는 성육신을 다룬다. 각 부분은 그 진리들을 굳게 믿는 것이 구원을 얻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엄격한 경고로 시작하고 끝난다. 이처럼 냉엄한 저주가 담긴 구절 때문에 특히 성공회의 일부 비평가들은 이 신조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해왔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라틴어로 작성한 이 신조는 12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리스 정교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17세기 이래로 학자들은 아타나시우스 신조가 아타나시우스(373 죽음)에 의해서 씌어진 것이 아니라 5세기에 프랑스 남부에서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해왔다. 저자에 대한 추측은 다양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1940년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레랭의 빈켄티우스(440 활동)가 쓴 선집 Excerpta이 발견되었는데, 이 작품은 이 신조에서 사용된 많은 용어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신조를 쓴 사람은 빈켄티우스이거나 아니면 그를 존경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초로 알려진 이 신조의 사본은 아를의 카이사리우스(542 죽음)가 쓴 설교집 첫머리에 실려 있다. 이 신조는 주로 6~7세기에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9세기에 독일 교회의 예배의식에서 사용되었고, 얼마 후에는 로마에서도 사용되었다.

 

 


출처 : 광주화원교회(독립개혁장로회)
글쓴이 : 강상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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