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론
하나님의 존재(存在)
하나님은 계시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인간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다.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니...」(요4:24)「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며...」(요일4:12),「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기」(딤전6:16) 때문이다. 그래서 소발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11:7)라고 했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비록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알 수 있는 길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이다.
우리는 앞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두 가지 방법(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이 있음을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만큼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1) 일반 계시를 통한 지식(종교성)
(1) 선천적으로 아는 지식이다.
1단계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절대자’에 대한 흠모에서 오는 종교심이 있다
[행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
다” in every way you are very religious.
그래서 위급함을 느낄 때 인간은 “아이구! 하나님!” 하고 하나님을 향해 도움을 청하는 가냘픈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 후천적으로 갖는 지식이다.
또한 인간은 선천적 지식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반계시 즉 천문학을 하다가, 의학을 하다가, 생물학을 하다가, 우주공학을 하다가...,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노력과 연구를 통하여 일부 획득할 수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일반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알게 하는데는 도움을 주지만,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 분은 무엇을 하시며, 그 분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또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에 대한 지식은 제공해주지 못한다.
2) 특별 계시를 통한 지식
특별 계시인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라고 하는 선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선언은 천지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존재하셨음을 의미하는 말씀이다.
또한 성경은 선언하기를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출3:14)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은 그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신 분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은 위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하려고 애쓰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당당히 선포한다.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은 우리의 이해나 인정(認定)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논리적인 설명이나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선언한 성경을 믿음으로 그의 존재하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했다.
그 반면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해 어리석은 자라고 못 박았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라고 했다.
칼 막스(K. Marx,1820-1895)는 ‘하나님이 없다’고 했다. 니이체(Friedrich Nietzsche,1844-1900)는 ‘하나님이 죽었다’, ‘하나님은 자기의 도끼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야스퍼스(Kari Jaspers, 1883-1969)는 ‘하나님의 보좌에 인간이 앉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외치던 저들은 모두 죽었고, 야스퍼스도 죽었고, 니체는 정신병으로 미쳐서 죽었다. 그러나 저들이 죽었다고 외쳤던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신다.
하나님의 본질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하나님은 영(靈)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요4:24, 고후3:17),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요4:24)고 하였다.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말은 하나님은 어떤 종류의 육체를 가지셨거나,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눅24:39).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거나(畵像), 조각하는 따위는 엄청난 모욕이다(카톨릭교회가 행하는 성상(聖像) 숭배는 우상숭배이다.
영이신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요,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이다(출20:4,5, 사40:18,19)
[출20:4-5]“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이사야40:18-19]“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사슬을 만든 것 이니라”
그렇다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신체적 지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제시한 표현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즉, 하나님의 손(사65:2, 히1:10), 발(창3:8, 시8;6), 눈(왕상8:29, 대하16:9), 귀(느1;6, 시34:15) 등의 표현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은 영이신 하나님을 인간으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한 것일 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현은 결코 아니다(神人同形同性的 表現임).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난 이런 표현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거나 그려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실상으로 나타난 유일의 모습은 오직 「예수님」뿐이다(빌2:6-8)
[빌립보서 2:6-8]“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함은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살아 계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수3:10, 삼상17:26, 시84:2, 마16:16).
[여호수아3:10]“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삼상17:26]“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
[시편84: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
[마태16: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러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은 모든 생명(식물, 동물, 인간)의 근원이시며(시36:9), 영적이고도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므로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제공해 주시는 분이시다(요5:26, 24,29,10:28, 롬8:6), 하나님은 부활 사건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생명의 주관자임을 유감없이 드러내셨다.
3)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어떤 절대적인 힘이나 세력이 아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존재임을 알고 계시며(自意織,
출3:14, 사45:5), 자신의 뜻을 정하시고, 그 뜻을 변경치 아니하시고 실행에 옮기시는 분이시다(自己決定, 욥23:13, 롬9:11) 또한 하나님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소유자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어디에서나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과 교제도 하시고, 말씀도 하시고(창1:3), 생각도 하시고, 탄식도 하시고(창6:6), 기뻐하기도 하시고(습3:17), 화를 내기도 하시며(신1:37), 질투하기도 하시고(출20:5), 인간 생활 속에 들어와 더불어 호흡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시다.
또한 그 분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사63:16, 마6:6, 말2:10, 롬8:15, 고후6:18)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그 분 앞에 나아가 그 분과 더불어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격적 나타남의 최고의 표현은 바로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바로 보이는 하나님이시다(골1:15), 그래서 예수님 자신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4:9)고 하였으며,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10:30)고 했던 것이다.
4)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自存者)이시다.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서 「스스로 있는자」(출3:14)이시다. 이 말은, 하나님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속에 자기 존재의 근거를 지니고 계신다는 말이다(하나님의 自存性)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므로 하나님께는 시작이나 끝이 없으며,
하나님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시므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신다(하나님의 永遠性), 그래서 하나님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창21:33)이라 불려졌고, 시편 기자는「..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102:27)라고 했으며,
하나님은 공간의 제한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공간을 초월해 계시며(왕상8:27), 모든 공간 어디든 존재하신(하나님의 無限性)
하나님의 이름(名稱)
- 구약 -
사람의 이름은 그 인격의 대명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자신의 신격(神格)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소유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적 존재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의 특색은 인간의 고안에 의해서 불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이방 종교는 모두 사람에 의하여 신들의 이름이 붙여진 것임).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 계시의 한 방편이다 (출3:13-15
1)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들
(1) 엘(El), 엘로힘(Elohim)(하나님, Goe, 神)
엘(El)이나 엘로힘(Elohim) 은 하나님의 위엄, 창조, 능력을 강하게 나타내주는 호칭으로 하나님은 곧 경외의 대상이심을 가르쳐 주는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자신을 최초로 계시하실 때 사용하신 이름이 바로 엘로힘이다.
엘로힘은 ‘알라흐’(경외로 두려움에 휩싸이다)에서 기원했는데, 복수형으로 사용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과 능력의 충만함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이름이다.
엘이나 엘로힘이란 이름은 구약에 2,570회 사용되었다. (창세기에서 201회)
(2) 엘욘(Elyon)
엘욘이라는 이름은 ‘올라가다’, ‘고양되다’라는 의미의 ‘알라’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번역되었다. 피조물보다 높고 초월하신 하나님, 즉 숭고한 자, 존귀한 자, 가장 높은 자, 숭배와 예배의 대상이 되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명칭이다(창14:18, 19, 민24:16, 사14:14, 눅1:32, 35, 행16:17)
(3) 아도나이(Adhonay, 主)
아도나이는 둔(dun) 혹은 아단(adan, 재판하다, 통치하다)에서 기원한 명칭으로, 하나님은 만물이 복종하고, 섬겨야 할 전능하신 통치자(주인)이시며, 만물의 소유주가 되심을 드러내는 명칭이다. 아도나이는, 초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불렀던 일상적인 이름이었으나 나중에 그 이름은 주로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을 대신해서 사용되었다.
(4)샤다이, 엘-샤다이(El-shaddai, 전능자)
여호와라는 ‘힘(능력)이 있다’는 의미의 샤다드(shadad)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소유하신 전능하신 분이며, 자기 백성에게 위안과 복을 주시는 분임을 나타내는 명칭이다(창28:3, 창35:11, 출6:3)
(5) 여호와(Jehovah, Yahweh)
여호와라는 이름의 출처는 출애굽기 3장14절로 15절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출애굽의 소명을 받은 모세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3:13)라고 질문하였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계시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 설명하시면서, 자신을 「너희 조상의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
라고 소개 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영원 자존자이시며,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에 있어서 변함이 없는 신실하신 분임을 표현하는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명칭은 ‘구원자’의 의미도 강하게 나타낸다(출6:6,7)
여호와란 명칭은 구약성경에 6,823번 사용되었으며, 1520년까지 여호와란 발음은 사용되지 않았고, ‘야훼’로 발음되어 오다가 아도나이 혹은 엘로힘의 모음에 따라서 여호와로 발음되어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란 단어만 나오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24:16)고 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감히 ‘여호와’라고 소리내어 부를 수가 없어서 얼버무리거나 아도나이나 엘로힘으로 대체해서 부르곤 하였다.
또한 다른 단어들에는 모음부호(아,에,이,오,우)가 붙지만 ‘여호와’에는 절대로 붙이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자음만 남아있으므로 ‘여호와’에 대한 정확한 발음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서기관들이 히브리어 원본을 사본으로 베끼다가 ‘여호와’란 명칭이 나오면 밖에 나가 손을 깨끗이 씻은 후에 그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경외심이다. 사실 이 세상에 유대인처럼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백성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名稱)
- 신약 -
2) 신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들
신약에 나오는 명칭들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구약의 이름들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뿐이다.
(1) 데오스(하나님)
데오스는 구약의 엘, 엘로힘, 엘욘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명칭으로서 가장 통상적으로 널리 쓰이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특히 이 이름은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 등으로 사용되어 소유주의 의미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여 국가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으나, 신약에서는 ‘나의 하나님’이라 함으로써 개인적인 의미를 더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명칭은 구원의 개인성을 시사하는 명칭이라 할 수 있다.
(2) 퀴리오스(主)
퀴리오스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몇 군데서 ‘알파와 오메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 ’,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으로 사용되었으나(계1:4, 8,17, 계2:8, 계21:6, 계22:13) 나머지 모두가 70인 역에서 ‘아도나이’로 대치된 원리에 따라 퀴리오스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 퀴리오스는 여호와보다는 아도나이에 더 가까운 명칭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주, 소유주, 통치주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퀴리오스는 인간의 소유주인 ‘주인(主人)’으로서의 의미가 강렬한 명칭이다.
(3) 파테르(아버지)
이 명칭은 모든 신자들의 ‘아버지’(父親)되시는 하나님을 지칭하니 하나님과 신자는 ‘부자지간(父子之間)’이라는 따뜻한 가족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다정스런 명칭이다(마6:9, 롬8:15)
파테르(아버지)란 명칭이 신약에 처음으로 소개된 하나님의 새 이름으로 종종 언급되지만, 실상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지시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던 명칭이기도 하다. 구약에서 ‘아버지’란 명칭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신정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고(신32:6, 시103:13, 사63:16, 64:8, 렘3:4,19, 31:9, 말1:6,2:10), 하나님 편에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자녀로 말씀하실 때 사용되었다(출4:22, 신14:1), 또한 신약에서는 창조주로서 사용되었으며(고전8:6, 엡3:15, 히12:9, 약1:17, 18), 기도의 대상자로 나타났으며(마6:9),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에서 아버지 하나님으로 나타나셨고, 믿는자와 영적 자녀들의 아바 아버지로 나타나셨다(롬8:14, 15)
3) 하나님이 다양한 이름을 갖고 계신 이유
모세가 하나님에게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물었을 때, 하나님은 「여호와가 나의 영영한 표호(表呼)」라고 가르쳐 주셨다(출3:13-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야웨)이다. 그밖의 칭호는 본명(本名)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여러 성품(性品)과 사역(事役)에 대한 이름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하나님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여호와’를 대신한 통상적 호칭이다. 신(神)이요, 창조주요, 절대자라는 의미의 ‘하나님’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감히 함부로 부를 수 없다. 당신은 당신 육신의 부친 이름을 마구 부를 수 있는가?
‘하 나 님’
우리 말의 ‘하나님’이란 단어의 어원은 ‘한얼님’, ‘하늘님’ 등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전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말의 ‘하나님’ 혹은 ‘하느님’과 기독교의 ‘하나님’(여호와)과는 엄연히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말의 ‘하나님’(하느님)은 단순한 ‘절대자’, ‘신’, ‘조물주’에 대한 일반적인 신(神) 개념으로 ‘하늘에 있는 신(神)’이란 개념이 강한 용어로 많은 신(바다에 있는 신, 강에 있는 신, 산에 있는 신, 나무와 돌에 있는 신 등...)중에 가장 우월한 신을 일컫는 용어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하나밖에 없는 신(神)을 일컫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범신론적 영향을 깊이 받은 일반적인 신으로서의 ‘하느님’과는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용어를 일반적인 신 개념의 용어와 함께 사용하고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그 이유는 복음이 들어가지 아니한 지역에 처음으로 들어간 선교사들이 그곳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번역하려고 할 때, 그들의 언어 가운에 ‘엘’, ‘엘로힘‘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개념을 찾아서 사용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하나님은 ’상제‘(上帝)이며, 영어로는 ’갇‘(God)이고, 일본은 ’가미(天神)이며, 아랍인의 하나님은 ‘알라’(Alah)가 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결합된 성호들
(1) ‘여호와 이레’(Jehovah-Jir도) - 준비하시는 하나님(창22:14, 시111:9, 롬8:32, 갈1:4)
(2) ‘여호와 랍파’(Jehovah - Rapha) - 치료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출15:26, 벧전 2:24,사53:5, 눅9:1,2, 막1:34)
(3) ‘여호와 닛시’(Jehovah - Nissi)- 승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춟17:15, 삼상 17:47, 계19:11-16)
(4) ‘여호와 콰다시’(Jehovah - Quadash)-거룩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레11:44, 레20:6-8, 히10:9,10, 벧전1:16)
(5) '여호와 샬롬‘( Jehovah - Shalom)- 평강의 여호와 하나님(삿6:24, 엡2:14, 롬 5:1, 10,111)
(6) ‘여호와 치드케누’(Jehovah -Tsidkenu) -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렘23:5,6, 사9:6,7, 말4:2, 마6:33, 고전1:30)
(7) ‘여호와 삼마’(Jehovah - Jehovah-Shammah) -거기게신 여호와 하나님(겔 48:35, 35:10, 계21:3, 마28:20)
(8) ‘여호와 츠바오트’( Jehovah - Tsebhaoth)-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삼상1:3, 출 12:41, 왕하6:17, 롬9:29)
(9) ‘여호와 로에’(Jehovah-Roeh)-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시23:1, 벧전2:25, 요 10:11,14)
하나님의 성품(屬性)
- 절대적 속성 -
하나님은 어떤 성품의 소유자인가?
하나님의 성품, 곧 속성(屬性, attributes)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절대적 속성이요, 둘째는 보편적 속성이다.
절대적 속성은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단독 성품이요,
보편적 속성은 하나님 뿐 아니라 인간도 같이 가질 수 있는 상통하는 성품을 가리킨다.
그래서 절대적 속성을 비공유적 속성(非共有的 屬性)이라고도 부르며,
보편적 속성은 공유적 속성(共有的 屬性)이라고도 부른다.
비공유적 속성은 하나님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존재임을 강조하는 속성이며, 공유적인 속성은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들과 여러 가지 관계를 맺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속성이다.
1. 절대적 속성(絶對的 屬性)
절대적 속성은 비공유적 속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간에게는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는 고유의 성품을 일컫는다.
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다(자존(自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서 「스스로 있는 자」(출3:14)이시다. 이 말은 하나님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속에 자기 존재의 근거를 지니고 계신다는 말이다(사43:10), 또한 이 말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므로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알파와 오메가」(계1:8), 「처음이요 나중」(계2:8)이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계1:8)이시므로 영원한 현존(현존)이시다.
2)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분이다(불변 (不變)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 ①존재와 ② 작정과 ③약속과 ④목적에 있어서 불변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이 그 존재에 있어서 불변하시다함은 하나님은 낡지도 쇠하지도 않으시며, 불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으시고, 그의 완전성이 언제나 변함없이 계속 유지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불변성에 대해 성경은 말하기를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는 분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는 분으로서 영원토록 그의 존재, 속성, 작정, 사상, 의지, 목적, 언약을 변함없이 지키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계획을 변경치 아니하시며, 자신이 그의 백성과 하신 약속을 변경치 아니하실 뿐 아니라, 그 약속 이행과 성취에 있어서도 변함이 없으시고, 자신이 본래 목적한 바를 완벽하겜 이루시는 분이시다(히6:17)
이에 대해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고 했으며,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말3:6)라고 했다.
그렇다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후회하시고(창6:6, 삼상15:11), 그 뜻을 돌이키셨다고(삿2:18, 대하12:12, 욘3:10)한 표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와 같은 표현은 단지 신의 감정을 사람의 감정처럼 표현한 신인동형동성적 표현(神人同形同性的 表現)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뜻을 돌이키신 경우라 할지라도 뜻을 돌이키심 자체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결코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3) 하나님은 제한을 받지 않는 분이다(무한(無限)하신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은 모든 한계에서 자유하신 분이시다.
①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 무한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 능력이 무한하시고, 부한히 거룩하셔서 어떠한 한계나 결핍으로 부터도 자유하시고, 무한한 지식과 지혜와 사랑과 의를 갖고 계신 분이므로 모든 것에 완전하신 분이시다(完全性,욥11:7-10, 시145:3, 마5:48)
②하나님은 시간에 있어서도 제약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시다(시90:2), 언제나 살아서 현존하시는 분이시다(永遠性)
③또한 하나님은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든지 존재하며 모든 피조물과 함께 거하면서도(무소부재하심), 우주를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시다(廣大性, 시139:7-10, 렘23:23, 24)
4) 하나님은 단일하신 분이다(단일(單一)하신 하나님)
단일하신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의미(唯一性, 單數性, 신6:4)와, 하나님은 여러 부분의 성질로 이루어진 복합체가 아닌 완전 단순하신 존재이며 동시에 분할될 수 없는 분이라는 의미(單純性,엡4:5,6)가 포함된 하나님의 속성이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장 잘 표현하는 속성이다.
인간은 영과 육으로 합쳐진 존재이다. 모든 피조물은 여러 가지 성질이 모여서 존재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생명이며, 빛이며, 의이며, 동시에 진리인 분이다. 이때 하나님은 조금의 사랑과 조금의 생명과 조금의 빛과 조금의 의로움과 조금의 진리가 모여서 하나의 하나님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충만한 사랑이시며, 동시에 완전하고 충만한 생명이시며, 완전하고 충만한 빛이시며, 완전하고 충만한 의이시며, 완전하고 충만한 진리이시므로 어느 것 하나도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다(엡1:23),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진 하나님이면서도 어느 성품에만 제한되지 않고 전 포괄적인 완전이시다(충만, fullness)
하나님의 성품(屬性)
- 보편적 속성(1) -
2. 보편적 속성(普遍的 屬性)
보편적 속성은 공유적(共有的)속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과 인간이 공동으로 가질 수 있는 속성을 의미한다. 이는 절대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하시며 자신의 속성을 계시해주심으로 나타나는 인격적 속성을 말함이다. 이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이지만, 하나님에게 있는 속성은 무한하고 완전한 성품이다.
1)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지식과 지혜의 하나님)
(1) 하나님의 지식(Knowledge of God)
하나님은 자신을 아시고,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다 아시며, 그 모든 것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실제적인 일이든, 또는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든, 혹은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미래의 일이든, 언제, 어느 곳에서 일어날 일이든 관계없이 모든 일을 다 아시되, 완전하게 아시고, 또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물을 아시되 직접적으로, 동시적으로, 철저하게 그리고 진리적(참되게)으로 아신다.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의 지식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①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의 지식과 같이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다(욥21:22)
②인간의 지식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머무는 반면,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들을 아시되 그것들이 창조되기 이전, 즉 우주가 시간과 공간 안에 유한한 실재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영원한 생각 속에서 그 피조물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③인간의 지식은 유한한데 반하여,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몀 영원하므로 전지(全知,Omniscience)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모르시는 것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이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사물들의 숨겨진 본질까지도 다 알고 계신다(삼상2:3, 시94:9, 잠15:3,11, 사29:15, 42:9, 시104:24)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지식에 대하여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시134:2-6)라고 고백하였다.
2) 하나님의 지혜(知慧)(Wisdom of God)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식의 한 특별한 측면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지식은 학문에 의하여 얻어지지만, 지혜는 사물에 대한 직관적인 통찰력으로부터 생겨난다. 지식은 이론적이지만, 지혜는 실제적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정하시고 계획을 세우는 데는 당신의 지식을 활용하시지만,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당신의 지혜를 동원하신다.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때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이라고 하는 목적을 정하심에는 하나님의 지식을 사용하시고,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할 것이냐 하는 방법을 택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김에는 하나님의 지혜를 사용하신다(롬11:33, 14:7,8, 엡1:11,12)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란 가장 좋은 수단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낳게 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도 불완전하지만 지식과 지혜를 허락하셔서 그것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있다.
2) 진실(진실)하신 하나님(The Veraciy of God)
하나님은 ‘참’(진,true)되시다. 거짓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다고 할 때,
① 하나님은 존재하심에 있어서 모든 거짓된 신들과는 구별되는 진정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시96:5, 97:7, 115:4-8, 사44:9,10)
② 또 하나님은 그 자신에 대한 계시(성경)에 있어서 진실하므로, 하나님의 계시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민23:19, 롬3;4, 히6:18) 또한 하나님은 사물을 대하심에도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 아시므로 하나님의 진리는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된다.
③ 또한 하나님은 그의 언약에 있어서 신실(信實)하신 분이시다. 그는 언제나 그가 자기 백성과 하신 언약을 생각하시고, 그 언약을 성취시키는 일에 신실하신 분이시다(히10:23, 6:17,18, 신8:9), 그래서 이 하나님의 신실성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매우 실제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신뢰의 근거가 되며, 소망의 근거가 되며, 기쁨의 원인이 된다(사49:7, 고전1:9, 딤후2:13)
하나님의 성품(속성)
- 보편적 속성(2) -
2. 보편적 속성(보편적 속성)
3) 선(선) 하신 하나님(The Goodness God)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10:18)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①본질적으로 선하시며,②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도 선하게 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 되시며, 하나님의 선은 윤리(倫理)의 기초가 된다. 또한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는 것도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의 선하심은 창조와 섭리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은 조하신 후에「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세상에 대하여 행하신 선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친히 나타내 보이셨다. 또한 피조물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노래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시145:9,15,16)라고 했다.
(2) 하나님의 선하심은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베풀어지나 성도를 향하여 더욱 풍성히 베풀어진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당신의 선하심을 베푸신다(마5:45, 6:26-30, 행14:17)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특별히 성도를 향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풍성히 베푸신다. 이유는, 하나님은 모든 성도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며,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선하신 복에 대하여 늘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는데 그 복을 사용하기를 열망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며, 더 많은 것으로 더욱 풍성하고 충만하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베푸시는 것이다(마6:25-34)
4) 사랑(愛)이 많으신 하나님(The Love of God)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하나님의 선이 그의 이성적인 피조물들을 향하여 나타날 때, 그것은 더 고상한 사랑의 성격을 띠게 되며, 그 사랑의 표현은
① 은혜(恩惠)와 ② 자비(慈悲), 또는 긍휼(矜恤)과 ③ 오래 참으심(관용, longsuffering)으로 나타난다.
(1) 하나님의 은혜(grace)
은혜라는 말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상실하고, 정죄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들에게 실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은혜로 인하여 구원의 길이 그들에게 열렸으며(롬3:24, 고후8:9), 은혜로 구원의 메시지가 세상에 선포되었고(행14:3), 은혜로 인하여 그들은 의롭다 함을 받으며(롬3:24, 4:16, 딛3:7), 영적인 복으로 부요해지며(요1:16, 고후8:9, 살후2:16), 궁극적으로 구원을 상속받게된다(엡2:8, 딛2:11)
그러므로 죄인들은 자신들 스스로는 구원받기에 합당한 아무런 공로도 없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의지하는 길만이 자신이 살길임을 깨달아 하나님의 은헤에 전폭적으로 의지해야만 한다.
(2) 하나님의 자비(긍휼)(mercy)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을 하나님 앞에 있는 죄인으로서 용서를 필요로 하는 자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자비 곧 긍휼은, 인간을 죄의 결과 때문에 비참한 상태에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사랑, 곧 불쌍히 여기심이라 할 수 있다(눅1:54, 72, 78, 롬15:9, 엡2:4)
(3)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관용, longsuffering)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인간의 계속적인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자와 악인에 대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롭2:4, 9:22, 벧전3:20)
이 모든 것은 세상적인 ‘사랑’(스톨게=가족애, 필레오=우정, 에로스=성애)과는 구별되는 ‘아가페(Agape)의 사랑으로서 항상 ’죄‘(죄)와 관련하여 죄인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과분한 용서를 나타내 주는 무조건적 사랑을 말함이니, 곧 구원적 의미가 그 핵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의 최대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성품(屬性)
- 보편적 속성(3) -
2. 보편적 속성
5) 거룩(성)하신 하나님(The Holiness of God)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고 할 때,
①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절대적으로 구별(聖別)된 분으로서, 신적 존엄성을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 위에 높이 계시면서, 모든 피조물로부터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의미한다(사6:3, 출15:11, 사57:15, 호11:9)
② 또한 하나님은 불순(不純)이나 죄성(罪性)으로부터 완전히 구별된 분으로서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분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를 지으실 수도 없고, 죄와 더불어 교제할 수도 없으며, 죄인을 차마 그대로 용납하실 수도 없는 분이다(욥34:10, 합1:13),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혐오하시고,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향하여 순결을 요청하신다(fp11:44,45)
6) 의로우신(의) 하나님(God's righteousness)
하나님의 의는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① 하나님은 자신을 향하여 절대적으로 정직하시고 본성적으로 의로우시므로 불의(不意)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과
② 사람을 향하여 공의(公儀)를 시행하시되 성실히, 조금의 오차도 없이 실행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는 철저하셔서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 대하여
㉠순종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시며,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리시되,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대하심에서 나타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하였다.
이때,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죄인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순종한 자에게 상을 베푸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창조주 앞에서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의 법을 지켰다고 해서 내세울 수 있는 아무런 공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상을 베푸시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시행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이다(눅17:10)
그러므로 상선(상선)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고, 징악(징악)은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한 것이다(시99:4, 사33:22, 롬1:32, 시145:17, 벧전1:17, 사3:10, 11, 롬2:6)
7) 주권의 하나님 (The Sovereignty of God)
① 주권의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을 향하여 당신의 뜻(意志)을 가지고 계시고, 그 뜻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임의적 능력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뜻이다(롬11:36)
그러므로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그 만물의 소유주이시며, 자신이 창조한 만물의 통치자이시고, 섭리자이시며, 보존자이실 뿐 아니라 만물의 심판자 이시기도 하시며, 그 만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만물의 모든 소유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를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허용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들에 피는 풀꽃 하나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피는 법이 없으며,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 한 잎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는 법이 없다(시135:6, 계4:11, 잠21:1, 단4:35, 행18:21, 약4:15, 마10:29)
②주권의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세우심(계획)에 있어서 자유하시고, 그 뜻을 실행하심에 있어서 자유로우시며, 그 뜻을 성취시키심에도 자유하신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며, 그 뜻을 실행하시는 방법도 선 그 자체이며, 실행의 결과도 항상 선하고 아름다우시다(시115:3, 사10:15, 19:16, 마20:15, 롬9:15-18)
③ 하나님의 주권의 범위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 전 영역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의 전 영역인 천체계, 자연계, 동물계, 식물계, 광물계, 미생물계 등 그 어느 곳이든지 미치지 아니하는 곳이 없으며, 인간사의 일반 영역인 교육,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과학 등의 영역 전반에 미치고 있다.
④ 특별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구속사에 당신의 절대 주권을 동원 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구원할 자를 선택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그 구원을 성취시키시며, 성령 하나님은 구원을 적용시키신다(엡1:4-6, 요10:11, 요3:8)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 주권적인 뜻을 받들어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것을 삶의 최대 목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칼빈주의 사상의 핵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성경은 ‘토기장이 권세’로 설명한다.
토기장이는 같은 재로를 가지고 ‘도자기’도 만들 수 있고, ‘항아리’도 만들 수 있으며, ‘요강’(변기)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토기장이의 마음에 달려있으며, 그 누구도 토기장이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고 비난하거나 항의할 수 없는 그의 절대 주권이다.
한낱 ‘항아리’나 ‘요강’이 왜 날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어찌 감히 토기장이에게 반발할 수 있겠는가? 토기장이는 맘에 안드는 것은 깨뜨려 버리고 다시 만들 수도 있다. 그는 천하게 보이는 것도 귀한 용도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이 그러하다. 더욱 우리 성도가 그렇게 된 자들이다. 바울은 ‘그릇’으로 비유하여 우리에게 은혜로운 교훈을 한다(딤후2:20-21)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재자가 아니냐고 누가 물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하나님은 ‘선한 독재자’라는 것이다.
삼 위 일 체
(삼위일체)(1)
어거스틴(Augustine)은 어느날 해변을 따라 걷다가 모래밭에 도랑을 파고 있는 한 작은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왜 도랑을 파느냐고 물었더니 그 소년은 “나는 내 도랑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바다를 비우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어거스틴은 깊은 사색에 잠겨 생각했다. “이 아이는 자기가 모래밭에 만든 작은 도랑으로 바다를 비우려고 생각한다. 때로 나도 그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성을 우리 마음의 작은 한계에 가두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무한히 어리석다. 하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 중 가장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삼위일체」에 관해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삼위일체」교리는 신비로운 진리이므로 신비중의 신비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 교리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그러니 이해가 잘 안되더라도
아직 우리의 지혜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줄 알고 믿는 수 밖에 없다.
종교개혁자 칼빈의 말처럼 ‘신은 명확하게 설명되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 삼위일체(삼위일체)의 뜻
삼위일체(Trinity)란, 하나님은 본질상 하나이시나 이 한 분 안에는 ‘성부’, ‘성자’,‘성령’이라 불리는 삼위(삼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위(위)란 인격(인격, Person)을 말함이다.
즉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는 ‘세 인격’이 존재하는바, 곧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 령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세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일체’(일체, one Essence)‘ 곧 한 본질 되신 한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다.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지만, 삼위일체의 개념과 교리는 성경적인 기초 로부터 출발한 것이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정확하게 성경적이다.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제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초대교회 교부인 ‘터툴리안’(Terullian)이며 삼위일체 교리를 확인해 주는 것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아타나시우스 신경 (The Athanasian Creed, 약 A.D.350)이다.
이 신경은 삼위일체에 대해 정리하기를 ‘우리는 삼위의 한 하나님을 섬기며, 삼위는 일체이며 각 인격들을 혼합한 것도 아니고 본질을 구분한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삼위일체 교리 논쟁
삼위일체 교리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모호(?)하고 신비로운 것으로 간주되어 그 논쟁과 변증이 끊임이 없었다.
옛날(A.D.325년경) 콘스탄틴 황제 시대에 ‘아리우스’라는 말 잘하는 신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예수는 하나님과 다르다. 예수는 피조물이다. 예수는 신성(신성)이 없다’고 온 천지를 향해 떠들어댔다. 그 때문에 기독교계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걷잡을 수 없이 논쟁이 일어 나자 황제는 교회 대표 318명을 소아시아의 ‘니케아’란 동네로 모아놓고 친히 종교회의를 열었으니, 그것이 저 유명한 ‘제1차 니케아 세계 종교회의’였다.
수많은 대표들이 그 말 잘하는 미남 ‘아리우스’의 웅변에 홀딱 넘어가고 있었다. ‘성자 예수는 하나님보다 열등한 피조물’이라는 그의 설에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저 한쪽 구석에서 까무잡잡하고 키 작은 촌사람 하나가 ‘아니오!’하고 소리치며 일어섰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감독의 수행원으로 따라온 아타나시우스(Athanasius,A,D, 297-373)집사로 당시 30세의 청년이었다.
“호모우시아!”(Homoousia=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하시다)
「성자는 본질이나 영광에 있어 하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바로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역시 모든 것에 동일하신 분」이라고, 삼위일체(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신성)을 단호 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대세가 ‘아리우스’파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 ‘아타나시우스’의 추상같은 포효(포효)였던 것이다.
참으로 기적의 순간이었다.
비록 말은 능하지 않지만 진리와 성령 충만한 아타나시우스!
황제와 니케아 종교회의는 그의 정통변증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진리는 승리한다.
소수의 진리는 다수의 이단을 격파한다. 아리우스는 완전히 정죄 당하고 말았으며, 그리하여 ‘니케아 신조’가 작성되었고, 뒤이어 ‘아타나시우스 신조’같은 정통 신조가 뒤를 이었으니, 이것은 ‘사도신경’을 근거한 진리의 확인이며, 후의 ‘돌트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조’등의 유명한 신조들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삼 위 일 체
(삼위일체)(2)
2. 성경이 밝히는 삼위일체
2) 신약성경
구약성경에서는 암시적으로 나타났던 삼위일체의 교리가 신약에서는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1)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나타난 삼위일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성부)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성자)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6-17)고 하였다.
(2)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삼위일체
예수께서는 삼위일체 교리를 믿으셨고, 또 그것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셨 다. 예수께서 이 진리를 가르치실 때, 제자들은 이미 예수께서 성자 하나님이시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성자) 아버지(성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성령)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라고
(3) 예수의 최후 명령에 나타난 삼위일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성부)와 아들(성자)과 성령(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9)라고 하였다.
(4) 성령의 은사 설명에 나타난 삼위일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성신)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성자)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성부)은 같으니...」(고전12:4-6)라고 하였다.
(5) 바울의 축도에 나타난 삼위일체
「주 예수 그리스도(성자)의 은혜와 하나님(성부)의 사랑과 성령(성신)의 교통하심 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라고 하였다.
3. 구원론적으로 본 삼위의 사역(Works)
1) 성부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시고(예정,선택), 만물을 창조하셨다.
2) 성자 하나님은 계획된 구원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성취하셨다.
3) 성령 하나님은 성취된 구원을 인간의 마음과 생활에 적용시켜 완성시키신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잘못된 견해들
1) 삼신론(三神論, Tritheism)
삼신론은 하나님은 한 분 안에 삼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별된 세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2) 양자론(養子論, Adoptionism)
양자론은 A.D. 195년경에 데오도투스라는 사람에 의해 주장되어진 견해로, 예수 는 흠 없이 산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견해이다.
양자론자들은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신비스럽게 탄생하였다. 이 예수는 의로운 사람으로 그가 세례를 받을 때 성령(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는 의롭게 살다가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가 부활하자 하나님은 그의 안에 있는 성령을 보고 그를 양자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는 예수는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3) 양태론 혹은 사벨리안주의(Modalism, Sabellianism)
양태론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마치 물이 고체인 얼음, 액체인물, 기체인 수증기로 나타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위일체란 한 하나님이 세 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오직 성부 하나님의 존재만을 인정하는 것 이며, 독립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성자와 성령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단으로 정죄 되었다.
4) 아리안주의(Arianism)
아리안주의는 아리우스에 의해 주장되어진 것으로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을 창조
하셨다고 주장한다. 아리우스는 오직 성부만이 태초부터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 나님이시며, 성자와 성령은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하나님에 의해 무로부터 창조 되었다고 가르쳤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성자와 성령은 피조된 존재이므로 거룩 하다 거나 신적 속성들을 소유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성자와 성령 이 창조되었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오히려 성자와 성령이 만물의 창조에 참여하였 다고 가르치고 있다.
5) 모나키아니즘(군주신론, Monarchianism)
모나키아니즘은 그리스도나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속성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예수께서는 단순히 인간에 불과했는데,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 께서 그에게 특별한 에너지를 부어주셨으나 죽을 때에 그의 본질적인 신성을 제물 로 바쳤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가 지니는 오류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 - 작정
하나님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는 선언으로 창세기 1장1 절을 시작하고 있다.
이 한 구절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근원적인 질문인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는가’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그분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에 대한 충족 한 답변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태초의 시간이 존재하도록 하신 시간의 주인이시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라는 사실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구절이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사역)은 계획(계획)d, 창조(창조), 섭리(섭리)로 나누어지며,
계획은 일반계획(작정)과 특별계획(예정)으로, 창조는 물질 세계의 창조와 영적 세계의 창조로, 섭리는 보전과 통치와 협력으로 나누어진다.
1.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뜻(=의지)에 따라 계획을 세우시고, 당신의 하시는 일 (사역)이 그 계획에 따라 조금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도록 완벽하게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관계없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작정과 예정이 있다.
1) 하나님의 작정(Divine Decrees)
(1) 하나님의 작정의 의미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7문은 ‘하나님의 작정은 그 뜻대로 하신 영원한 경륜(계획)이신데,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되어 가는 일을 미리 정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의미하는 것으로,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다스리스는 것, 특히 인간을 향한 구원계획까 지도 그의 작정 속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엡1:11)이므로 그가 일단 작정하신 것은 반드시 실천되고 성취되어 영원 불변적인 효능을 갖게 된다.
(2) 하나님의 작정의 특징
①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지혜에 기초하고 있다(작정의 기초)
우리는 어떤 계획을 세울 때 대게 우리보다 지혜로운 사람의 조언을 구한 후에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 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11:33-34)라고 말 씀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전지하심에 기초하여 계획을 세우시고, 당신의 전능하심을 동원 하여 당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신다.
②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 전에 있었다(작정의 시기)
‘하나님께서 그 광대한 계획을 언제 세우셨느냐?고 물을 때, 그 답변은 ’영원 전에 세우셨다‘이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날마다 계획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계획 은 이미 영원 전에 완벽하게 종결되었다. 다만,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만이 시간 안(역사 세계)에서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시33:11)라고 노래 했다.
③ 하나님의 작정은 효과적이다(작정의 시행)
하나님께서 한번 작정하신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대로 시행되어진다.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 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사46:10)고 하였다.
④ 하나님의 작정은 무조건적이다(작정의 조건)
하나님께서는 우리 편에 있는 어떤 조건이나 우리의 공로에 의지해 당신의 계획 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계획을 세우셨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고 하였다.
⑤ 하나님의 작정은 불변적이다(작정의 성격)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계획들을 종종 변경한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그러한 것도 상상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불변하시고, 미쁘신 분이므로 무지나 무능에 의한 어떠한 실수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욥23:13-14)고 하였다.
⑥ 하나님의 작정은 전포괄적이다(작정의 범위)
하나님의 작정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작정을 벗어나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6)고 하였다.
⑦ 하나님의 작정은 죄에 관해서 허용적이다(작정의 예외)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기시나, 그것까지라도 주장하시고 섭리하셔서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데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 하셨으나」(행14:16)라고 했고,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17:30)라고 하였다.
(3) 하나님의 작정의 목적
하나님께서 완전하고 전포괄적인 계획을 세우신 이유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이 세상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으며, 그를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모든 만물을 통하여 기뻐하시기를 원하시며, 모든 만물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계4:11, 롬11:36)
하나님의 계획 - 예정
2) 하나님의 예정 (Predestination)
(1) 예정의 중심내용은 구원이다.
예정은 ‘미리 정하셨다’는 뜻으로, 특별히 언약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에 관련된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을 가리킨다.
성경은 이 예정에 대해서 말하기를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이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 5)라고 했으며, 로마서 8장 30절에는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예정은 ‘구원’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특별계획임을 알 수 있다.
(2) 예정은 철두철미하게 성경적이다.
① 예정론을 주장한 칼빈
예정론을 주장한 사람은 칼빈이다. 그러나 우리는 칼빈이 예정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예정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정론이 성경에 있는 진리이기 때문에 예정을 믿는다. 칼빈은 다만 성경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고 체계화한 것 뿐이다.
② 예정론을 부인한 무리들
알미니우스(J.Arminius)와 그를 따르는 알미니안주의자들(Arminianists)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인하고, 예정을 부인한다. 인간은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므로 인간에게 있는 자유의지로 자신의 구원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라고 말씀하며,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고 하였다.
③성경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에정을 말하고 있다.
누가 집을 지으면서 아무런 계획이나 준비도 없이 무작정 짓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물며 이 엄청난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인생을 구원하여 천국에 들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아무런 계획도 없이 되는대로 일을 진행하실 수 있단 말인가?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1:4-9)라고 하였다(벧전1:2)
(3) 예정에는 선택과 유기가 있다.
① 선택(選擇)
㉠ 선택이란 인류 중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한다.
성경은 선택에 대하여 말하기를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11:5)고 했으며,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3-5」고 말씀한다.
㉡ 그러므로 인간이라고 모두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선택한 일정한 무리에게만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고 하는 것이 선택의 교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선택한 자는 다 믿게 된다.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고 했다.
㉢ 그렇다면, 나는 과연 선택되었는가?
아멘! 우리는 믿음으로만 자신이 선택(예정)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예수 믿어지는 그 자체가 우리가 선택받았다고 하는 증표이다(롬8:30)
㉣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선택의 일차적 목적은 택자의 구원(롬11:7-11)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엡1:6, 12, 14, 2:10, 딤후2:21)이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5-6)고 하였다.
② 유기(遺記)
선택이 있으면 반드시 ‘버려짐을 당한 자들’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 중 일부만을 구원키로 했다는 말은, 그 나머지는 자연히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성경도 여러 곳에 버려짐을 당한 자들이 있다고 말씀한다.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3)고 하셨고,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8)고 했으며,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2:13)고 했다.
하나님의 창조
(創造, Creation)
1. 창조의 특징
1) 창조는 하나님의 작정(계획)의 첫 시행이다.
2) 창조는 하나님 계시의 시작이며, 모든 종교생활의 기원이 된다.
3) 창조는 시간의 시작이요, 공간의 시작이다.
그래서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고 하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태초에」(베레쉬트, 처음에)라는 단어는 시간과 공간의 시작을 의미하며, 세계의 시작을 의미하고(요1:1-3, 시90:2, 히1:10-12), 인류의 시작을 의미한다(창1:26-27, 마19:4, 막10:6)
4) 창조는 무(무)에서 유(유)의 창조이다.
하나님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창조 하셨다(롬4:17, 히11:3)
5)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대로 되는 것만이 피조 세계의 할 일이었다. 하나님의「가라사대」
는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했고, 하나님의 「가라사대」는 모든 만물에게 생명을 부여 하였다(창1:3, 6,9,11,14,20,24,26,29)
6) 창조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창조의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4,10,12,18, 21,25,31)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결과에 대하여 대단히 만족하셨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뻐하신 이유는, 지음받은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님 자신의 의도대로 그의 영광을 선포했기 때문이다(시19:1-6)
2. 창조의 내용
1) 영적 세계의 창조
하나님은 영적 세계 즉 보이지 않는 것들도 창조하셨다.
(1) 천사(天使)
① 천사는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실존하는 존재이다.
② 천사는 하나님께 지음받은 피조물로서 영적이고 무형적인 존재이다.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살과 뼈가 없고(눅24:39), 결혼하지 않으며(마22:30), 매우 제한된 공간에 다수로 존재할 수 있으며(눅8:30),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골1:16), 그럼에도 저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사람보다는 자유롭지만 하나님처럼 자유로운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저들은 동시에 둘 혹은 그 이상의 장소에 있을 수 없다. 때로 천사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이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눈에 보인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저들의 나타남을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가견적인 모습을 취하게 하신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③ 천사들의 임무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며, 옹위하고, 인간(성도)들의 시중을 드는 것이다(히1:14, 마18:10)
④ 천사들은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그 룹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임재(임재)를 호위함(창3:24,출25:18,시18:10,80:1)
스 랍
하나님 보좌를 옹위, 찬양, 화해 사역의 심부름을 함(사6:2-6)
가브리엘
계시를 전달, 해석해줌(단8:16,9:21, 눅1:19,26)
미 가 엘
하나님의 천사장, 마귀와 싸우는 용감한 천사(전사)(단10:13:21, 유1:9, 계12:7)
(2) 악한 천사
① 악한 천사의 기원
천사는 원래 선하게 창조 되었으나 일부는 자기의 위치를 떠나 교만하여 하나님께 반항하고, 하나님의 지위까지 넘보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 지옥에 떨어짐으로 악한 천사가 되었다. 그것들이 ‘사단’(붉은 용, 마귀)과 그의 무리들(귀신)이다(벧후2:4, 유1:6, 살후2:4,9, 마25:41, 9:34)
② 악한 천사의 활동
악한 천사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을 비난하고,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받은자 (예수)를 대적하여 싸우며,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하며, 선택된 자들까지라도 유혹하여 멸망에 빠뜨리려고 광분한다(딤전4:1, 마24:24, 막13:22)
③ 악한 천사의 활동 영역
악한 천사, 곧 사단은 ‘이 세상의 임금’(요12:31, 14:30, 16:11)과 ‘이 세상의 신’(고후4:4)으로 불린다. 이것은 그가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세상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며,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그 권세를 위임받은 예수만이 이 세상을 다스릴 권세가 있다. 그럼에도 이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도덕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탄이 이 사악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④ 악한 천사의 종말
저들은 끝날에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계20:1-3)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고 하였다.
2) 물질 세계의 창조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창1:1-2:3)
첫째날
빛
둘째날
궁창의 창조와 물들의 분리
셋째날
땅과 바다와 식물
넷째날
해와 달과 별
다섯째날
새와 물고기
여섯째날
들짐승과 육축, 땅에 기는 것, 사람
하나님의 섭리
(攝理, Providence)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세상이 자신의 선한 목적대로 유지되도록 보존하고, 협력하고, 통치하시는 일을 말한다.
1. 보존(保存)
1) 보존은 만물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지켜 나가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때로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한 것이므로 창조 이후 하나님이 간섭치 아니하셔도 이 세상은 창조시에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따라 저절로 운행되도록 되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존 사역은 불필요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나님은 그저 방관자처럼 이 세상 자체가 스스로 운행되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보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존 사역을 통하여 만물이 유지되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존은 필연적이다.
2) 보존은 성경이 증명하고 있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보존을 지지하는 성경 구절은 너무나도 많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9:6)라고 했으며, 히브리서 1장 3절에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다.
3) 보존의 대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 세계이다.
하나님의 보존의 대상은 사람은 물론이고, 생물과 무생물까지를 포함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 세계이다(시104편, 시36:6), 특별히 하나님은 당신께서 택하신 택자(성도)를 보존하심에 열정적이시다. 성경은 이에 대해 표현하기를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시37:28)라고 했으며,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8)라고 하였다.
2. 협력(協力)
협력이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과 세우신 법칙, 인간의 의지 등을 통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도록 역사함을 의미한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과 떨어져 자력으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과의 협력 관계는 성도의 신앙생활 특히 ‘성화’(聖化)의 과정에서 가장 긴밀하게 나타난다.
구원은 인간의 협력없이 하나님의 독자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성도의 성화 생활은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에 의해서만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다(빌2:13, 행17:28),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축복은 행함으로 받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화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했다.
3. 통치(統治)
1) 하나님의 통치 방법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그 존재 목적에 맞도록 다스려 나가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만물을 그의 선하신 사용용도(사명)에 따라 아름답게 지배해 나가신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고 하였다.
2)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이유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므로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이요(행17:24), 「천지의 주재」(마11:24)이시며,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주」(딤전6:15, 1:17)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3) 하나님의 통치 범위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아니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의 통치는 태초부터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사역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건들, 존재하는 모든 세계의 모든 일들에 미친다. 가장 하찮은 일들(마10:29-31)과 우연으로 보이는 일들(잠16:33) 그리고 사람들의 악한 행실들(행14:16)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선한 행실들(빌2:13), 이와 같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지만(사33:22), 열국을 통치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시47:9), 그러므로 그의 통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시103:19)
4) 하나님의 통치 목적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6)라고 하였다.
출처 : 총회신학 광주캠퍼스 | 글쓴이 : 익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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