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속성(Attributes of God) 1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2.3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대한 서론
8. 하나님은 자신을 오직 그분의 이름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알리시는가?
그렇지 않다. 그분 자신의 속성을 통해서도 [계시하신다]. 하나님의 속성들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알려진다는 점에서 바로 하나님의 계시된 본질 자체이다.
9. 하나님의 속성들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제기되는 두 가지 질문은 무엇인가?
1) 첫째는 속성들이 본질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고,
2) 둘째는 속성들 서로 간에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이다.
2.4 하나님의 본질
10. 옛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하여 무엇을 가르쳤는가?
1)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모든 정의는 더 높은 속개념(geslachtsbegrip; genus)과 속개념과 종개념(soortbegrip; species)의 구별, 나아가 이 둘의 복합을 전제한다. 그런데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높은 것은 없고, 하나님은 어떤 복합도 없이 단순하시다(eenvoudig zonder samenstelling).
2) 하나님 안에는 본질(het wezen)과 존재하는 것(de Wezende), 본질과 존재(het zijin), 본질과 실체(de zelfstandigheid), 그리고 실체와 그 속성들이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단순한 현실태(aller zuiverste en allereenvoudigste daad)이시다.
2.5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의 구별
11.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그분의 본질과 속성들을 분리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우리 [인간]에게서도 그의 본질과 속성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만일 그분의 속성들이 계시된 본질 이외에 어떤 것이라면 이로부터 그분의 본질에 또한 본질적인 신성이 돌려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본질적으로 신적인 것(wezenlijk –Goddelijks)과 파생된 신적인 것(afgeleid Goddelijks) 구별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12.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들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너무나 위험한 말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서로 가장 깊은 내적 통일성 안에서 침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속성들이 서로 일치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도, 예를 들어, 사랑과 의가 서로 완전히 일치 속에서 함께 역사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둘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범심론적인 방식으로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혼합시키려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의 객관적인 신지식은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13. 하나님 안에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그의 속성들을 구별해야만 하는가?
1) 하나님의 이름들, 곧 하나님이 피조물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에서 유래한 것들이 있다. 이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창조자, 섭리자, 통치자로 불리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언급된 술부(Predikaten)에 따라 칭한 것이다.
2) 위격적 특성들, 곧 거룩한 삼위일체의 각 위격들에게 고유하고 이로서 그들이 서로서로 구별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낳으심(Genereeren), 나심(Gegenereerdworden), 나오심(Geblazen-worden) 등이다. 이것은 고유성(“독특성”)이라 부를 수 있다.
14.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속성들을 분류하려고 시도하였는가?
1)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성들을 세 가지 방식으로 분리하려고 했는데 이를 통해 그 속성들을 인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A. 원인의 방식
B. 부정의 방식
C. 탁월성의 방식
그러나 이것은 속성들에 대한 분류라기보다는 자연신학에서 신의 속성들을 확정하여 알려고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2) 또 다른 분류는 긍정적 속성들과 부정적 속성들(stellende en ontkennende eigenschappen)로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부정적 속성들은 우리에게 단지 하나님이 아닌 것만을 말해 준다. 따라서 단어의 충만한 의미상 어떤 속성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좀더 면밀히 생각해 보면 대부분 소위 부정에 의한 속성들이라 할지라도 어떤 확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서 이 구분이 사라지곤 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영원성이란 그분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원성이라는 말은 또한 그분께는 모든 것이 나누어지지 않는 현재인 것을 뜻한다.
3) 세 번째 분류는 절대적 속성들과 상대적 속성들(volstrekte en betrekkelijke eigenschappen)로 나누는 것이다. 또는 동일한 것을 내재적인(inblijvend) 속성들과 밖으로 표출되는(overgaande) 속성들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은 절대적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속성들의 토대는 하나님의 존재에 있고, 세계의 존재와는 상관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일 세상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분의 속성들 중 어떤 것들은 작용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예, 은혜와 긍휼).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 안에는 어떤 의미에서 임시적인 속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어떤 속성들로서, 그가 계시하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한 것에 근거하며, 그것[계시한 것]은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요 전달된 것이다.
4) 네 번째로 어떤 사람들은 본성적인(natuurlijke) 속성과 도덕적인(zedelijke) 속성을 구별한다. 이들은 도덕적인 것들을 선함, 의로움 등으로 칭하고, 이런 특성을 결여하고 있는 나머지 것들을 본성적인 것이라 부른다. 이 구분에 반대하여 두 가지 반론이 있다:
A. “본성적”이라는 용어가 모호하다. 이 말은 마치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은 그분의 본성과 그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
B. 또한 마치 하나님 안에서 도덕적인 것과 본성적인 것이 분리되고 후자는 하나님 안에 있는 좀더 낮은 차원(lagere orde)에 속하는 원리인 것으로 보는 오류가 나올 수 있다.
5) 다섯 번째로 슐라이에르마허(F. Schleiermacher)의 분류가 있는데, 이는 완전히 그의 체계에 따라 형성한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하나님의 속성들을 우리의 의존감점이 그것들에 대하여 표명하는 다양한 방식을 따라 나눈다: 이 [의존]감정은 하나님의 영원성이나 전능함 등에 대하여는 어떤 저항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이 제 1그룹에 속한 속성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성이나 의 등에 대하여는 저항이 일어난다. 이러한 것들이 제 2그룹을 형성한다. 이 저항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제거된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접하게 되는 속성들[사랑, 지혜 등]은 제 3그룹을 형성한다.
6) 가장 통상적인 분류로서, 우리 또한 따를 수 있는 것은,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비공유적 속성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A. 자존성(het van-zich-zelf-zijn)
B. 단순성
C. 무한성
D. 불변성
공유적 속성들은 다음과 같다:
A. 영성(“영-됨”; het Geest-zijn)과 인격성
B. 이성
C. 의지
D. 능력
E. 하나님의 복되심(de Gelukzaligheid Gods)
15.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으로 나누는 이 옛 분류 방식에 반대하여 제기된 반론이 있는데, 이 반론에서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이 분류가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비공유적 속성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공유적인 것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영원성은 시간에 대한 제한없는 관계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도 시간에 대하여 제한적인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상응하는 점이 없지 않다. 반대로, 우리 [인간]의 경우 단지 제한적인 선과 의가 있지만, 하나님 안에는 이 둘 모두가 완전하다. 따라서 무한한 간격이 있다. 그러므로 각 속성은 비공유적이면서 동시에 공유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고, 어떤 측면에서 그것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성이란 그가 시간에 대하여 무제한적인 관계 속에 있다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원성은 하나님이 시간 위에 완전히 초월해 계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인간 안에는 어떤 흔적(spoor)이나 표지(teeken)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원성은 실제로 단지 정도에 있어서가 아니라 원리에 있어서 비공유적인 것이다.
16.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의 관계에 대하여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하는가?
전자가 후자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그리고 그분은 이성을 소유하고 계시다. 그런데 우리는 무한성과 이성을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무한한 이성을 소유하신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다른 속성들에 적용할 수 있다. 이 둘(de twee teeksen)은 결코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관통한다.
2.6 비공유적 속성들
2.6.1 하나님의 자존성(aseitas)
17. 하나님의 자존성(Gods van-zich-zelf-zijn)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존성이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와 본질에 대한 자충족적 근거(de zelfgenoegzame grond)를 가지신다.
부정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이것은 독립성(onafhankelijkheid)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하나님이 아닌 것 외에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기 스스로부터 존재함”이라는 말은 이[부정의 방식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답을 확정한다. 증거 구절로는 행 17:25; 요 5; 26이 있다.
2.6.2 하나님의 단순성(simplicitas)
18. 하나님의 단순성(Gods eenvoudigheid)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단순성이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복합과 구별로부터 자유로시다. 하나님은 [다음 사항에 대하여] 자유로우시다:
1) 논리적 복합으로부터; 그분 안에는 속(genus; geslacht)과 종(species; soort)의 구별이 없다.
2) 자연적 복합으로부터; 그분 안에는 질료(stof)와 형상(vorm) 사이의 구별이 없다.
3) 초월적 복합으로부터; 그분 안에는 잠재적 가능태(sluimerend vermogen)와 현실태(werking) 사이의 구별이 없다. 증거구절로는 요일 1:5; 4:8; 아모스 4:2; 6:8 등이 있다.
소시누스주의자들과 보스티우스(Vorstius)는 이 속성을 부인했는데, 이는 그들이 삼위일체 곧 [하나님의] 본질 안에서 세 위격들의 하나됨을 더 잘 피해가기 위함이었다.
2.6.3 하나님의 무한성(infinitas)
19. 하나님의 무한성(Gods oneindigheid)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무한성이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이것을 통해 그분은 자신 안에 어떤 경계나 제한이 없는 모든 완전함을 소유하신다. 이 하나님의 무한성은 다음으로 더 세밀히 나누어진다:
1) 무한한 완전성
2) 영원성
3) 광대함(Onmetelijkheid)
20. 이 무한성이라는 개념은 부정의 개념인가 아니면 긍정의 개념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순수한 부정의 개념이며 따라서 어떤 내용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 물론 다음은 사실이다:
1) 우리는 무한한 것이나 무한한 일에 관한 명확한 상을 가질 수 없다. 본다는 것은 항상 제한되는 것이고 제한되는 것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2) 또한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어떤 무한한 것에 대한 개념도 만들 수 없다. 생각한다는 것은 항상 제한되는 것이어서, 생각은 무한한 것에 이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분명한 것 또한 사실이다:
3) 우리의 이해 속으로 들어오는 유한한 것의 배후에는 어떤 무한성이 존재하고 있다. 무한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마치 우주와의 관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상상으로 아무리 멀리 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아직 그 끝에 이르지 않았으며, 또한 한 걸음 더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4) 이 무한성은 하나님 자신에게는, 마치 우리에게와 같이, 무제한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무한성 자체를 완전히 포괄하시고 지배하신다. 아무리 우리가 그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실제(werkelikheid)이다.
21. 하나님의 무한성이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의 존재를 통해 제한되지는 않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무한하다는 것은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범신론에서는 후자[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로 무한을 파악한다.
22. 성경에서 하나님의 무한성을 가르치는 곳은 어디인가?
욥 11:7-9과 시 145:3이다.
2.6.4 하나님의 영원성(aeternitas)
23. 하나님의 영원성(Gods eeuwigheid)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원성이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이것을 통해 그분은 모든 시간적 경계들과 모든 시간의 연속에서 초월하시고, 단 하나의 나뉘지 않는 것 속에서 자신의 생명의 내용을 완전히 소유하시는 것(그리고 자체로 시간의 원인이 되시는 것)이다.
24. 영원의 개념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두 가지가 있다:
1) 좀더 일반적인 개념: 영원이란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이다.
2) 좀더 추상적이고 정밀하게 정의된 개념: 영원이란 시간 위에 있는 어떤 것이며 시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 두 개념은 서로 함께 하며 서로의 의미를 채워 준다. 전자에 따르면, 시간은 그 자체로 본래적인 것이고 영원은 단지 연장된 시간일 수 있다. 후자는 극단으로 밀고 가면 우리를 범신론적 오류로 이끈다. 이에 따르면 시간은 단지 영원의 변화이다. 그러나 두 가지, 곧 하나님 안에 영원성과 세계 안에 시간이 [엄연히] 존재한다. 성경에는 영원에 대한 두 가지 정의가 모두 나타난다(시 102:12; 90: 2,4; 벧후3:8).
25. 여기서 어떤 질문이 제기되는가?
어떻게 하나님은 시간적 것들에 대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가? 곧 이 지식과 함께 시간이 하나님의 생각과 또한 그의 전 존재 안으로 침투하게 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시간에 대하여 어떤 관계에 있는가?
26. 이에 대한 대답은 무엇인가?
1) 우리는 결코 시간 또는 공간에 대하여 그 실제적인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여 이들[시간, 공간]이 단지 사람이 사물을 상상하는 주관적인 형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칸트와 같은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와 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은 객관적이며 실제적이다.
2) 시간과 공간이 자존적인 것인지 또는 존재 방식인지, 사물들의 서로에 대한 관계인지, 완전히 특별한 실제의 종류인지, 아니면 우리가 더 자세히 말할 수 없는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 질문들은 형이상학 영역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에 대하여 더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3) 실제로서 시간과 공간은 그 실제들의 존재를 아는 하나님께도 실제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실제들과 맺는 관계와 하나님이 맺는 관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실제로서 우리 밖에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시간과 공간]은 또한 사고의 형식들로서 우리의 영혼에 새겨져 있다. 따라서 우리의 내적 삶은 이들을 통해 지배되고 있고, 우리는 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공간 안에서 볼 수 있고 시간 안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전혀 다르다. 그분의 신적 삶은 이런 형식들 속에서 진행하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그 위에 초월하여 계시고 바로 그분의 이 영원성이 그분의 보편편재성을 결정한다. 그분은 유한한 것을 시간과 공간 안에서 아신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시간적인 또는 공간적인 방식으로 알고 보지 않으신다.
27. 모든 “일어난 것들”(alle “geschieden”)은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도 시간진행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건을 야기한 자와 사건이 야기된 것이 존재하고, 따라서 실제적인 사건, 곧 아들의 나심과 성령의 나오심은 시간 밖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2.6.5 하나님의 광대성(immensitas)
28. 당신은 하나님의 광대성(Gods onmetelijkheid)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나님의 광대성이란 하나님의 완전성으로서, 이것을 통해 그분은 모든 공간적 구별 위에 초월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공간의 모든 각 지점에 그의 전 존재로 현존하시고 자신이 직접 공간의 원인이 되신다.
29. 그러면 광대성과 보편 편재성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이 둘은 동일한 것을 표현하나 다른 두 측면을 가리킨다. 전자는 하나님이 어떻게 공간 위에 초월하시는지를 가르친다면, 후자는 어떻게 그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모든 각 점에서 그분의 전존재로 채우시는지 말한다.
30. 이 하나님의 보편 편재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서는 안되는가?
우주 공간 위에 확장으로 보면 안 된다. 어떤 신학자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완전히 전 우주 안에 계시고 또한 완전히 전 우주 밖에 계신다”[Bonaventura].
31. 실재하는 존재들을 공간에 대한 관계에 따라 몇 가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 물질체(stoffelijke lichamen)는 공간 안에 경계가 정해진 방식으로(omschrevener-weise) 존재한다. 이들은 공간을 통해 완전히 제한되고 둘러싸여 있다.
2) 피조된 순수 영들은 공간 안에 구속되는 방식으로(bepalender-weise)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한다. 비록 영적인 존재들은 물질체와 같이 어떤 확장(uitbreding; extentio)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과 그 법칙들을 통해 구속을 받는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공간을 충만하게 하는 방식으로(vervullender-weise) 존재한다. 즉 공간은 하나님이 태초에 공간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완전히 충만하게 하신 것과 같이, 그분의 섭리가 지탱하는 힘을 통해 유지된다.
32.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과 지식으로만 보편 편재하시는가 아니면 그분의 존재로도 그렇게 하시는가?
전자를 옛 소시누스주의자들, 보스티우스(Vorstius) 그리고 몇몇 재세례파 사람들이 주장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의 무한성을 고려할 때, 후자가 옳다.
33. 하나님은 어디서나 동일한 방식으로 현존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분의 현존을 하늘에서는 잃어버려진 자들의 장소에서와는 다르게, 또 지상에서는 그 위에서와는 다르게 계시하신다.
34. 당신은 어떤 성경구절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광대성을 증명하겠는가?
엡 1:23; 렘 23:23-24; 시 139:7-12; 행 17:24-28.
35. 우주의 무한성이 하나님의 무한성을 제한한다는 반론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1) 우리는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을 증명할 어떤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우리는 우주의 끝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한계]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2) 설사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무한성을 제한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무한하다는 것은 그분이 모든 것이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기 때문에 두 무한성들이 서로 제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3) 만일 우주가 무한하다 할지라도, 그 우주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그분의 광대성도 그러하다.
2.6.6 하나님의 불변성(immutabilitas)
36. 하나님의 불변성(Gods onveranderlijkheid)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의 완전성으로서, 이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되는 것’(wording; becoming)과 발전(ontwikkeling)을 초월해 계신다. 나아가 그분은 모든 줄어듬(afneming)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동일하게 머물러 계신다.
37. 왜 이 속성을 강조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범신론은 하나님 안에 발전이 있다고 가르치고, 나아가 세계발전(wereldontwikkeling)이 하나님이 자기의식에 이르는 과정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마르텐센(Hans Lassen Martensen; 1808-1884)은 범신론에 물든 신학자였는데, 그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생명없는 것들의 불변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단지 영원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생산성이 되심으로써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분의 영원성은 영원한 산들의 영원성처럼 정지된 영원성이 아니다. 나아가 그것은 영원한 별들의 영원성과 같이 일종의 수정과 같은 영원성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기력이 쇠하지 않는 젊음이 계속해서 넘쳐나는 영원성이다.” 멋있는 말이나 하나님을 부인하는 생각이다!
38. 어떻게 창조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의 모든 행동들이 그분의 불변성과 조화될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이 모든 행위들이 결코 변화를 야기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물론 이 행위들은 시간 안에서 실현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시간도 요구하지 않는다.
39. 하나님의 불변성을 어떻게 더 구분할 수 있는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본질의 불변성
2) 본질적 속성의 불변성
3) 작정과 약속의 불변성
-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개혁교의학(Reformed Dogmatics), 1.1.2, pp. 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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