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스크랩] 조직신학 (신론)

하나님아들 2018. 8. 6. 22:10

 

 

 

조직신학 (신론)

 

 

신론(Theology)

신학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먼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한 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후 하나님과 그 피조물과의 관계가 비로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이 설명되어야 하며, 이어 하나님의 성품이 인간에게 혹은 역사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창조사역 및 주권적 통치의 방법인 섭리를 고찰하여야 한다. 그 후 비로소 구원의 대상이 되는 인간에 대하여 규명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본질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한 계시만이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한다.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인간의 사고에 맞추어 논리로서 전개할 때, 종교철학의 일부분이 원시인 및 미개인의 신 관념을 수립할 때, 종교 인류학이 인간 개인의 심성 속에 있는 신 관념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때, 종교심리학이 태동될 수는 있으나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규명하지는 못한다.

1)하나님에 관한 지식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신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해 비록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계시하신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구원에 필요한 만큼은 밝히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에 대해 불가이해성은 주장하더라도 불가지론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즉 하나님이 허용하신 범위 내에서 부분적인 지식은 가질 수 있다. 이 지식은 부분적이나 참되고 진실하다.

(1)선천적 지식
인간은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을 소유할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능력은 계시와 접촉할 때 필연적으로 성숙한다.

(2)후천적 지식
선천적 지식을 가진 인간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와 접촉할 때 한정적이기는 하나 선천적 지식을 넘어선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에 대한 참지식의 구체적 내용을 소유할 수 있다.

2)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여러 증명
하나님의 계심은 인간이 갖는 가장 큰 의문이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여로 합리적 유신논증이 대두되었다.

(1)우주론적 증명(Cosmological Argument)
우주 만물이 존재하는데 그 원인자인 자존재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과논증이다.(시19:1)

(2)목적론적 증명(Teleological Argument)
자연 속에는 불변하는 법칙과 일정한 질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배후에는 이성적 존재가 있어서 한 목적에 따라 질서를 주었다는 정서론과 자연 특히 생물들의 뛰어난 적응성과 계획성은 그것을 창조한 지혜와 능력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의장론이 있다.
(롬1:18~20)

(3)도덕론적 증명(Moral Argument)
양심은 선을 행하고 악을 물리치는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데, 그 배후에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주장이다.(행17:29)

(4)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은 누구나 비록 부정확하게나마 무한하고 완전한 신의 관념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신 관념의 존재는 결국 그 관념의 실체인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5)종교론적 논증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종교가 있으며, 그 종교들이 형태는 비록 다르나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실재를 추론한다.

(6)심미적 논증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미적인 요소의 원천적 근거로서 하나님의 실재를 증명하는 논증이다.

(7)성경적 유신 논증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구태여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는 분으로, 나아가 모든 존재에 앞서 계신 분으로 전제되어 있다.(창1:1)

3)특별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지식
하나님은 이성의 유추의 대상이 아니라 계시를 통하여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분이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면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이시므로 어떤 종류의 육체를 가졌거나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요4:24 딤전6:16)

(2)하나님은 인격체이시다
하나님은 지적이고 도덕적이시므로 자기 결정을 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인격적인 교통도 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의 무의식적인 원인, 세계의 보편적 원리, 우주의 전포괄적 목적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는 인격적 계시이다.
(요14:9)

(3)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한 분이시다
혹자는 하나님을 유한하며, 발전적이며, 투쟁하고, 고난 당하며, 인간과 같이 실패와 승리를 경험하는 분으로 생각하나 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하신 분으로 이러한 유한한 피조물의 속성과는 구별되신다.(출15:11 시147:5)

(4)하나님은 단순성을 지니신 분이시다
단순성(Uni~tas Simplicitatis)은 하나님의 근본적 특성 중 하나로서 그 존재하심과 속성이 동일함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은 진리시며, 생명이시며, 사랑이시며, 의로우신 그 속성을 이질적 요소의 침범함을 받지 않으신 채 보존하시는 것이다.

2.하나님의 이름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하신 이름을 갖고 계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본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중요성을 갖는다.

1)일차적인 구약의 이름

(1)여호와
“스스로 존재하는 자”란 의미를 지닌 이 이름은 인간과의 언약 관계를 맺으시는 언약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성을 강조하는 이름이다.(출3:14) 특히 이 이름이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원불변하심이 강조된다.

(2)엘 혹은 엘로힘
이방신과 대조되는 강하고 능력 있으며 참되신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는 명칭이다. 특히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으로서 위엄 있는 하나님, 그리고 삼위 하나님에 대한 암시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3)아도나이
“주”란 의미를 지닌 이 명칭은 경우에 따라 인간에 대하여 사용되기도 하나,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될 때에는 특히 전인류의 소유자이시며, 통치자 되신 그분의 무한광대한 주권성이 보여진다.

2)복합적인 구약의 이름

(1)엘의 복합어
“강력”이란 의미를 지닌 “울”에서 파생된 “엘”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여러 종류의 복합어를 가진다.
①엘 로이~감찰하시는 하나님(창16:13)
②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창17:1)
③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사40:28)

(2)여호와의 복합어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을 나타내기 위해 “여호와”와 합성 형태를 취한 하나님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①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심(창22:13~14)
②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출17:15)
③여호와 샬롬~여호와는 나의 평강(삿6:24)
④여호와 체바오트~만군(많은 천사)의 여호와(삼상1:3)
⑤여호와 메카디쉬켐~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출31:13)
⑥여호와 로이~여호와는 나의 목자(시23:1)
⑦여호와 치느케누~여호와는 우리의 의(렘23:6)
⑧여호와 엘 게물로트~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렘51:56)
⑨여호와 나케~멸망시키는 여호와(겔7:9)
⑩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겔48:35)

3)신약의 이름
구약의 히브리어 명칭 같은 뜻의 헬라어로 옮겨 놓은 것으로 3가지 형태가 있다.

(1)데오스
구약의 “엘” “엘로힘”의 번역이다. 신약에서는 이 낱말을 사용하여 “나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 등의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구약 이스라엘의 신정 국가적인 하나님의 관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녀들의 하나님, 즉 성도 개인과 직접적 교제를 나누시는 하나님 관념으로 발전한 것을 보여준다.

(2)퀴리오스
구약의 “아도나이” “여호와”에 대응하는 명칭으로서 “주”로 번역된다.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스도에 대하여도 사용되었다.

(3)파테르
“아버지”로 번역되는 이 명칭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아버지인 하나님(신32:6 사63:16)에 대응되는 명칭으로 만물의 창조주이시며(고전8:6 엡3:14 히12:9 약1:17), 성도의 아버지(롬8:15 갈4:5) 되시는 하나님을 지칭한다.

3.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본체는 계시된 속성, 즉 하나님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계시로서 확인된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 가운데서 신적 존재에 돌리는 완전성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다.

1)본체적 속성
하나님의 속성들 중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시고 인간이 지니지 못한 본체적, 혹은 비공유적 속성이 있다.

(1)독립성, 자존성
하나님은 그의 존재의 근거를 자신 안에 가지시며(출3:4), 하나님은 그 속성에 있어서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필연적 존재이시며,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으시고 아래와 같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신다.

①사상적으로 독립(롬11:33~34)
②의지적으로 독립(단4:35 롬9:18)
③독립적인 능력(시115:3)
④독립적인 계획(시33:11)

(2)불변성
하나님은 그의 사상, 의지, 목적, 작정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그의 존재와 본체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으신다.(말3:6) 그의 불변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하나님은 그 존재와 속성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신다.(약1:17)
②하나님은 작정, 사상, 의지, 목적, 언약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신다.(시102:27)
③하나님의 불변성은 활동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뜻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간에게 적용하신다.
(히1:11~12)
④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며(삼상15:11,35), 한탄하시는(창6:6) 분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심정을 인간적인 말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민23:19)

(3)무한성
하나님은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우신데, 여기에는 3가지 요소가 있다.

①본질적 무한성(절대 완전성)
하나님은 그의 존재나 속성에 있어서 무한하시다. 이 무한성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이다. 즉 인간의 지식과 사랑은 유한하나 하나님의 지식과 사랑은 질적인 측면에서 무한하다.(시145:3)
②시간적 무한성(영원성,)
모든 피조물이 시작을 가지며 시간 속에 존재하나, 하나님은 모든 시간적 제한과 순간의 연속을 초월하셔서 모든 것을 현재로 파악하시며 행동하신다.(시90:2 102:26)
③공간적 무한성(무변성, 현재성)
하나님은 공간을 초월하셔서(왕상8:27, 무변성), 모든 공간에 계신다.(렘23:24, 편재성) 즉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에 내주하시지만 조금도 구속받지 않으신다.(행17:27 시139:8) 그러므로 만물 속에 신이 존재한다는 범신론과는 구별된다.

(4)유일성
하나님은 절대자존하시며, 불변하시며, 무한하신 하나의 영(신4:35)이시다.(단수성) 그러므로 신적 본질은 나뉘어 있지 않고 또 나눌 수도 없다.(단순성) 하나님께서는 절대 유일하시므로 나눌 수 없다는 이 주장은 삼위일체 교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자는 본질과 관계된 문제이고, 후자는 존재 양식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2)보편적 속성(공유적 속성)
인간에게서 유사한 속성을 찾아 볼 수 있으나 인간의 것은 유한한 반면 하나님의 것은 무한하고 완전함을 보여주는 속성이다.

(1)영적 속성
인간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으나(창2:7 고전11:7 약3:9),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다. 하나님이 영이므로 여기서 파생되는 3가지 속성이 있다.

①불가견성
육체를 갖지 않으신 순수한 영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오관으로 식별되지 않는다.(딤전6:15~16 요일4:12) 아브라함(창18장)과 야곱(창32:24~30)에게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은 그 본체를 보이신 것이 아니라 단지 유형적 계시를 위해 인간의 형체를 취하신 것에 불과하다.

②생명성
천사, 마귀, 인간이 영적 존재이며, 생명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살아 계신 분이시다.(요5:26)

③인격성
영이신 하나님은 도덕적 속성을 지니며 결정을 스스로 하시는 인격적 존재이시다. 성경 가운데는 오고 가며 말씀하시는 인격적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여러 번 나온다.

(2)지성적 속성
인간은 한정된 지적 존재이나 하나님은 무한히 의식적이며 지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참으로 아신다.

①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은 인간과 구별되게 하나님 자신과 모든 사물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아시되 원형적, 직각적, 독립적, 동시적, 개별적, 불변적으로 명확하고 완전하게 아신다.(요21:17 히4:13)

②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기 지식을 응용하시되 자기를 가장 영화롭게 하는 방식대로 하신다.(롬11:33 시147:5)

③하나님의 진정성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진실하시므로(출34:6)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아시며 또한 인간에 대한 그의 계시도 진실하시다.(시117:2)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을 진실되게 지키신다.

(3)도덕적 속성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 즉 거룩, 의로움, 선하심은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보다 돋보인다.

①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구별되어 무한한 위엄을 갖고 계시며(출15:11 사57:15), 따라서 죄로부터 완전히 떠나 계신다.(사5:16)

②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이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나타날 때 “의”로서 표출된다.(시99:4) 이 속성은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 원리가 의(사32:1)라는 점과(정치적 의), 의로서 통치할 때 순종자에게는 상을(신7:9), 그리고 불순종자에게는 벌을(롬2:9) 내리신다는 점(분배적 의)에서 잘 드러난다.

③하나님의 선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선이시며(막10:18), 피조물에게도 선으로 대하신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선은 다음과 같다.

㉠자선
일반 생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이다.(시145:9,15~16)
㉡사랑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는 이성적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선이다.(마10:31 12:12 요3:16 롬5:8)
㉢은혜
죄인에게 공로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이다. 인간은 아무런 자격이 없으나 이로서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
(롬3:24 고후8:9 딛2:11)
㉣긍휼
죄로 인해 고통하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이다.(삼하24:14 시798 119:77 애3:22)
㉤오래 참으심
죄인들이 회개하기까지 심판을 연기하시는 하나님의 선이다.(출34:6 렘15:15 롬9:22 벧전3:20)

(4)주권적 속성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므로 모든 피조물을 기쁘신 뜻에 따라 다스리시며 처우하실 수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행동방향을 계획하거나 결정하는 능력인 “주권적 의지”와 이루고자 의지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성취시키는 “주권적 능력”이 있다.

①주권적 의지
하나님은 스스로 행동방향을 결정하는 자아결정 기능을 지니셨다. 창조와 보존(계4:11), 통치(잠21:1 단4:35 엡1:11), 그리스도의 고난(눅22:42), 선택과 유기(롬9:15~16), 중생(약1:18), 성화(빌2:13), 성도의 고난(벧전3:17), 인간의 생명과 운명(행18:21 롬15:32 약4:15), 그리고 미생물에 이르기까지(마10:29) 하나님의 의지는 만물의 궁극적 원인으로 나타났다.

②주권적 능력(전능)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나(창18:14 렘32:27 마19:26 눅1:37), 스스로 모순되는 일, 즉 거짓말(민23:19 삼상15:29 히6:18), 뜻을 변경하는 일(삼상15:29 히6:17), 자신을 부인하는 일(딤후2:13)은 못하신다.

(5)유복적 속성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신적 지식을 지니셨고, 스스로 사랑하시며, 자신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충족하시므로 복 있는 분이시다.(딤전1:11 6:15) 이러한 유복성이 외면적으로 나타날 때 영광으로 투사된다.(시96:6 사6:3)

4.삼위일체(Trinity)

삼위일체란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있어서 각각 독립된 세 분의 실재적 개체이며, 본질에 있어서는 서로 완전 동일)한 일체라는 것이다. 한편 기독교의 신앙 대상을 유일신이라 할 때 그것은 하나님 같은 존재와 품성, 능력을 가지신 분이 없으며, 또 하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라는 점에서의 유일성을 말한 것이지 하나님의 수자적 단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대표적 오류는 하나님을 수자적 하나로만 강조하려는 단일신론과 각 삼위 하나님의 독립적 존재를 마치 어느 한 인간이 집에서는 가장이고 교회에서는 장로고 회사에서는 사장이듯이 하나님은 각 상황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양태론이다.

이것은 둘 다 인본주의적 사고에 젖은 것으로서 성경이 제시하는 완전히 상호 독립된 세 분의 실재이시면서도 또한 서로간의 본질이 서로 완벽히 동일한 일체시라는 신비한 진리를 왜곡한 것이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본질적 속성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각각 다른 세 개체가 나누어 갖고 있는 상태. 즉 그 세 개체는 공통의 속성을 각기 다른 상태로 갖고 있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세 개체이면서도 독립된 세 개체의 모든 본질이 완전히 일치됨에 따라서 그 본체가 하나임을 말한 것으로서 물질세계에서는 그 유례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오묘한 진리이다.

1)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거
이 진리는 자연에는 계시되지 않았으며, 인간 이성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특별계시의 교리이다.

(1)구약의 증거
“삼위일체”란 용어가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음은 물론 구약은 이 교리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구약 가운데는 삼위를 암시하는 내용이 아래와 같이 나온다.

①일체성의 강조.(창16:7~13 18:1~21 19:1~22 신6:4 사44:6 출20:3 사48:16 63:10)
②개체성의 강조.(창1:26 3:22 11:17 사6:8 시110:1 사6:3 48:16 61:1 민6:24~26)

(2)신약의 증거
신약에는 구약보다 더 명확한 삼위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특히 성자의 성육신(incarnation)(요1:14)과 성령의 강림(요15:26)이 그 절정으로 다음 사건에서도 잘 나타난다.

①일체성의 강조.(요10:30 약2:19 고전8:4 엡4:5~6 계22:1~3)
②개체성의 강조.(고전8:6 갈1:1 엡4:6 요6:27 롬9:5 요20:28 딛2:13 요1:1 행5:3~4 고전2:11 요15:26 마3:16 28:19 눅1:35 고후13:14)

2)삼위의 개별적 고찰
본체적 일체인 하나님 안에 삼위가 있다. 삼위 하나님은 언제나 성부, 성자, 성령의 순을 기술된다. 그러나 이것은 삼위 사이의 질서와 논리적 순서를 밝힌 것이지 어느 한 위가 다른 위에게 지위와 능력과 기원에 있어서 종속됨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이를 보다 상술하면 성부는 다른 위에서 발생하거나 발출하지 않으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발생(generation)하였으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발출(pro~cession)하신다. 한편 삼위는 상호간에 인격적교제를 나누신다. 이제 삼위의 각 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1)성부
만물의 창조자이며(고전8:6 히12:9 약1:7), 이스라엘 선민의 아버지요(신32:6 사63:16), 성도들의 아버지(마5:45 6:6,9,14 롬8:15) 되시는 성부 하나님의 사역은 다음과 같다.

①성부는 성자에게 속죄언약, 즉 인간의 죄 값을 담당할 사명을 주셨다.(시2:7~9 요6:37 눅22:29)
②구속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다.(엡1:3~5 벧전1:2)
③창조와 섭리의 창조자이시다.
④구원의 계획자이시면서 또한 구원으로 부르시고(소명), “의롭다” 선언하는(칭의) 자이시다.(고전1:9 갈1:15~16)

(2)성자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눅1:31~32), 메시야적인 지위를 부여받은 분이므로(마26:63 요1:49), 또한 제 2위란 고유한 위치 때문에(요1:14 마28:19~20 고전1:9)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워지는 성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성자에 대해서는 기독론에서 특히 상술된다.

①성자는 성부로부터 나셨다.(영원한 발생) 즉 성부는 성자의 발생 원인이며(시2:7 행13:33 히1:5), 인격적 존재가 되게 하신 분이다.
②그러나 성자는 신적 속성을 지니셨으므로(요1:1 롬9:5 빌2:6 딛2:13 요일5:20) 영광을 받으실 만하다.(요5:22~23 고전14:19 고후13:13) 따라서 인간은 마땅히 성자에게 기도와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14:14 눅24:51~52 행7:59 히1:6)
③성자의 주된 사역은 속죄 사역이다. 성도는 성육신(incarnation) 하시고 고난 당하여 죽으셨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다.

(3)성령
성령에 관한 교리는 구원론과 교회론에서 일부 다루어지나 이 항목에서 비교적 상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①성령의 인격성
성령은 지(고전2:10~11), 정(엡4:30), 의(고전12:11)를 가진 인격체로서 가르치시고((요14:26), 인도하시고(롬8:14), 위임하시고(행13:3), 명령하시고(행8:29), 제어하시고(창6:3), 중보하시고(롬8:26), 말씀하신다.(요15:26 벧후1:21) 그러므로 성령을 단순한 능력이나 감화력으로 이해하여서는 안된다.

②성령의 신성
성령은 삼위의 다른 인격과 동등하게 관련지워지며(고전6:11) 오직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일을 행하신다.(롬8:15 요14:16) 즉 신성을 지닌 성령은 신적인 전지성(고전2:10~11), 편재성(시139:7), 전능성(창1:2), 진리(요일5:6), 거룩함(눅11:13), 생명(롬8:2), 지혜(사40:13)를 소유하시며, 하나님만이 하시는 창조(창1;2), 영감(벧후1:21), 그리스도의 탄생(눅1:35), 인간을 확신시킴(요16:8), 중생시킴(요3:5~6), 위로(요14:16), 중보(롬8:26~27), 성결(살후2:13)의 사역을 감당하신다.

③다른 위와의 관계
성령은 성부(요15:26)와 성자(요15:26 16:7)로부터 나오셨다.(영원한 발출) 이 사실은 성령을 가리켜 “나의 신”(창6:3), “하나님의 영”(고전2:11), “주의 영”(고후3:17) “그리스도의 영”(롬8:9)이라 부른데서 알 수 있다.

(4)성령의 사역
성령 사역의 특징은 항상 삼위일체 사역의 종결과 완성이라는 데에 있다. 즉 성자의 사역은 성부의 사역을 따르고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성자의 사역을 따라 모든 구속 및 일반 사역을 피조물에게 직접 적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성령의 주된 임무이다.

①자연계에 있어서의 사역

㉠생명의 전달: 존재는 성부로부터, 말씀은 성자로부터 주어지고 생명은 성령을 그 매개로 하여 주어진다. 이런 사실에서 성령은 피조물 창조 사역의 최후 완성을 달성하셨다.(창1:3 욥26:13 시33:6 104:30)
㉡일반에게 일반 은총적 영감과 능력을 부여하신다.(출28:3 31:2 35:35 시51:11~12 삼상11:6 16:13~14)

② 구속계에 있어서의 사역

㉠예언의 은사를 주심
신,구약의 주의 종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진실한 예언을 행하였다.(벱후1:21 요16:13 행11:28)
㉡성경에 영감을 주심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서 무오한 구원의 진리를 전달한다.(고전2:13 벧후1:21)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예비하시고 능력으로 충만케 함(눅1:35 히10:5~7 눅3:22 요3:34)
㉣구속의 적용
성자께서 성취하신 구속사역을 최종적으로 인간에게 적용하여 인간이 성부께 최종적 영생을 얻을 때까지 구원의 여정을 걷게 하신다.(요3:58:14 고전12:3)
㉤교회의 설립과 보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교회가 비로소 실체화되었으며 그 후 교회사의 전개에서 성령의 지속적 사역으로 교회는 보존되어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전개될 것이다.(엡1:22~23 2:22 고전3:16 12:4 요14:26 15:26 16:13~14 행5:32 히10:15)

5.하나님의 계획

하나님께서 사역하실 때 어떤 방법을 취하실 것인가에 대해 다루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일반계획(작정)과 특별계획(예정)이 있다. 즉 작정은 우주 만물에 대한 보편 계획이고, 예정은 인간 구원에 관련된 특수 계획이다.

1)하나님의 작정
앞으로 발생하게 될 일체의 사건들에 대하여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혹은 목적을 가리킨다.

(1)작정의 특성
하나님의 사역의 중요한 일면의 작정에 대한 교리는 이미 언급한 바 있는 하나님의 속성과 아래와 같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①작정은 하나님의 치밀한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즉 작정은 신적 지혜에 기초하고 있다.(롬11:3 엡3:1,11)
②하나님의 작정은 시간 시작 이전에 세워져서 역사의 과정 속에서 변함 없이 지속되는 영원한 것이다.(엡1:11)
③작정은 효과적이므로 아무것도 이 작정을 방해하지 못하며 반드시 성취된다.(사46:10)
④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참되므로 작정은 변경되지 않는다.(욥23:13~14 눅22:22)
⑤작정은 외부의 의존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⑥작정은 포괄적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선한 행위(엡2:10)와 악한 행위(잠16:4), 모든 사건(창5:20), 인간의 생명(시39:4), 그리고 거처(행7:26)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⑦죄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피조물의 결정에 의한 범죄를 억제하지 않으시고 허용하신다는 뜻이다.(시78:29 행14:16)

(2)작정에 대한 반론
역사적으로 펠라기우스파(Pelagianist)와 소시니안파(Socinianist) 그리고 알미니안파(Arminianist)는 작정의 교리를 거부하거나 변질 시켰다. 반론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동을 작정하셨고 인간은 또 그대로만 행동하여야 한다면 인간은 그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적 자유 역시 작정 가운데 포함되어 있으므로 행위에 대한 책임은 당사자가 져야 한다.(창50:19~20 행2:23)
②인간의 구원) 여부가 작정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구원에 대한 인간의 노력을 게을리 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구원의 작정을 알 수 없고, 작정 속에 결과뿐만 아니라 방법까지 포함되므로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엡2:10 빌2:13)
③죄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을 죄의 조작자로 만든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직접적으로 산출하지 않으시며 단순히 허용하셨을 뿐이므로 이 주장 역시 신빙성이 없다.(시92:15 약1:13 요일1:5)

2)하나님의 예정
인간과 관련될 때에는 선택자와 유기자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으로 볼 수 있으나 좀더 확대하면 모든 이성적 피조물인 천사와 마귀 그리고 특별한 의미에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도 예정의 대상이 된다.

(1)선택(election)
아래 3가지 중 마지막이 예정교리에서 주로 다루는 선택이다

①선민 이스라엘의 민족적 선택(신4:37 호13:5)
②특별한 직무와 봉사에 합당한 인물의 선택(신18:5 삼상10:24 시78:70)
③구원받을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엡1:4,11 행13:48 벧전1:2 롬11:5)

(2)유기(버리심)
구원을 위한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된다.
(마11:25~26 롬9:13,17~18,21~22 벧후2:9)

(3)예정의 순서
전택설과 후택설 등 두 가지 주장이 있으나 후자, 즉 타락 후 선택설이 전자, 즉 타락 전 선택설보다 타당한 듯 하다. 돌트회의에서도 후자를 채택했다.

①타락 전 선택설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를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선택할 자와 유기할 자를 창조하셨으며 ㉢그 계획의 완성을 위하여 인간의 타락을 허용하셨고 ㉣선택자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②타락 후 선택설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를 작정하신 후 ㉡타락의 허용을 작정하셨고 ㉢타락자 중 일부를 선택하여서 ㉣구원의 길로 인도 하셨다.

6.하나님의 창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1차적으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2차적으로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만드신 창조사역은 6일만에 완료되었다.

1)창조의 주체
창조는 특히 성부의 사역(고전8:6)이나 다른 두 위, 즉 성자(요1:3 고전8:6 골1:15~16)와 성령(욥26:13 시104:30)도 이 일에 동참하셨다.(창1:2 요1:3) 이와 같이 하나님만이 창조의 주체가 되신 것, 즉 창조가 하나님만의 자유로우신 행위란 사실은 창조의 주체와 객체를 혼동하는 범신론과 엄연한 차이를 지닌다.

2)창조의 시기와 방법
시간의 시작인 태초(창1:1)에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만드셨다.(시33:6 요1:3 히11:3) 그러나 그 직후 이미 있던 재료, 즉 흙이나 갈빗대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창2:7,22)도 창조의 영역에 속한다.

3)창조의 목적
혹자는 창조의 목적을 인간의 행복에서 찾으려 하나 궁극적인 목적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시는데 있다. 그러나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과 안전을 맛보며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과 사랑의 표현을 이끌어 내려는 데서도 종속적인 목적을 찾을 수 있다.(사43:7 겔36:21~22 눅2:14 롬9:17 고전15:28 엡1:5~6,12,14 골1:16)

4)창조교리에 대한 반론
하나님에 의한 세계의 창조를 거부하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주로 아래 3가지 범주에 포함된다.

(1)이원론
하나님과 물질은 다 같이 영원하다. 하나님께서는 조잡한 상태에 있던 물질로서 우주를 만들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라 단순한 구성자에 머물고 만다. 이 이론은 성경의 묘사와 어긋남은 물론 두 가지 영원한 무한자가 병존한다는 주장으로 귀착되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

(2)유출론
우주는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필연적으로 유출되었으므로 우주는 하나님의 일부분이며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다. 이 이론은 불완전하고 변하는 물질을 완전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과 동일시한 점, 우주 안에 있는 죄악을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리는 점, 그리고 하나님의 자기 결정 능력의 여지를 박탈한 점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3)진화론
어떤 기존물로부터 진화되어 우주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기존물이 창조에 의한 것인지, 영원 전부터 있었다고 가정하는 물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이론은 증거의 불충분은 물론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5)천사(Angel)의 창조
창조된 피조물의 종류에 따라 크게 영적 세계의 창조와 물질 세계의 창조로 나누어진다. 영적 세계의 창조는 그 대상이 천사인데 여기에는 그 대상의 일반적인 성격인 천사의 존재, 속성, 조직, 사역까지 다루어진다. 천사의 타락은 별도의 항목에서 취급된다.

(1)천사의 존재
천사는 세상 창조 전에(욥38:6~7) 신성한 상태로(유1:6)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골1:16) 성경 중 34권이 천사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으며, 천사란 단어가 약275회 등장함은 물론 그리스도께서 천사의 존재를 알고 가르치셨다는 점에서(마18:10 26:53) 천사가 확실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2)천사의 속성
①인간과 같이 지(벧전1:12), 정(눅2:13), 의(유1:6)를 지닌 인격적 존재이다.
②인간은 영과 육을 지녔으나 천사는 영만을 가진 무형적 존재이다.(히1:14)
③육이 없으므로 결혼하지 않으며(마22:30), 따라서 종족 번식의 능력이 없다.(막12:25) 천사는 성경에서 남성(男性)으로 쓰이고 있다.(창18:1~2)
④영이므로 죽지 않는다.(눅20:36)
⑤하나님과 같이 무한한 지식과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나 인간보다는 월등한 지식과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마24:36 벧후2:11)

(3)천사의 조직
“천만의 천사들”(히12:22)이라 불리울 만큼 수효가 많은 천사는 개별적으로 창조되었으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

①천사장, 군장, 미가엘~악한 영계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우는 천사(유1:9 계12:7 단10:13,21)
②가브리엘~“하나님의 영웅”이란 뜻, 계시의 전달자며 해석하는 천사(눅1:19 단8:16)
③그룹~하나님의 거룩함을 수호하는 천사(창3:24 출25:18 삼하22:11 시80:1 사37:16)
④스랍~인간을 하나님께 접근시키며 예배를 수종드는 천사(사6:2~3,6)
⑤수호천사~성도들과 어린 아이를 보호하는 천사(히1:14 마18:10)
⑥정사, 권세, 능력, 주관하는 자, 보좌~천사들 중에 등급과 위엄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계급적 명칭
(엡1:21 3:10 골1:16 2:10 벧전3:22)

(4)천사의 사역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고 시중드는 일 외에 아래와 같은 일을 한다.

①그리스도에 대하여
㉠탄생을 예언함(눅1:26~33)
㉡탄생을 알림(눅2:13)
㉢아기 예수를 보호함(마2:13)
㉣시험 후 그리스도를 강하게 함(마4:11)
㉤그리스도를 수호할 준비를 함(마26:53)
㉥겟세마네에서 힘을 북돋아줌(눅22:43)
㉦무덤의 돌을 굴려냄(마28:2)
㉧부활을 알림(마28:6)

②성도에 대하여
㉠일반적인 돕는 사역(히1:14)
㉡기도 응답에 관여함(행12:15)
㉢지켜 봄(고전4:9 딤전5:21)
㉣위험시 용기를 줌(행27:23~24)
㉤전도 노력에 관심을 가짐(눅15:10 행8:260
㉥사망시 의인을 돌봄(눅16:22 유1:9)

③민족들에 대하여
㉠미가엘은 이스라엘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단12:1)
㉡천사는 하나님의 섭리 수행에 있어 대리자이다.(단10:21)
㉢천사는 환난의 심판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계8장 9장 16장)

④불신자에 대하여
㉠임박한 심판을 알림(창19:13 계14:6~7)
㉡벌을 내림(행12:33)
㉢세상의 마지막 심판 때에 추수꾼으로 일함(마13:39)

6)타락한 천사들

(1)사단(Satan)
세상 창조 이전에 피조된 천사(욥38:6~7 골1:16)의 일부가 타락하였는데(벧후2:4 유1:6 사14:12~20) 사단은 그 무리의 두목이다.(마25:41 9:34) 성경 여러 곳, 특히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도 사단이 등장한다.(마13:39 눅10:18 11:18)

①사단을 지칭하는 용어들
직접적인 이름으로는 사단(마4:10 계12:9 욥1:6), 마귀(벧전5:8 계12:9), 바알세불(마12:24), 벨리알(고후6:15) 등이 사용되었고, 간접적인 명칭으로는 악한 자(요일5:19), 시험하는 자(살전3:5), 이 세상 임금(요12:31), 이 세상 신(고후4:4), 공중 권세 잡은 자(엡2:2),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계12:10), 미혹하는 자(계20:10), 대적(벧전5:8) 등이 사용되었다. 또한 사단을 상징하는 말로는 뱀(계12:9), 용(계12:3), 광명의 천사(고후11:14) 등이 있다.

②사단의 속성
㉠사단은 영적인(엡6:11~12) 피조물(겔28:14)이며 원래는 천사로서 그룹이라고 불리우는 서열에 속한 천사 중 뛰어난 존재였다.
(겔28:12)
㉡사단은 지(고후11:3), 정(계12:17), 의(딤후2:6) 및 도덕적인 책임성을 가진 인격체(마25:41)로서 인칭대명사로 그를 지칭한다.
(욥1장)
㉢사단의 인격적 특성은 살인자(요8:44), 거짓말 장이(요8:44), 상습적인 죄인(요일3:8), 참소자(계12:10), 대적(벧전5:8),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요10:10), 미혹하는 자(계20:10)라는 말로 요약된다.
㉣사단은 유한성을 가진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욥1:12), 예수께 패배 당하여(요일3:8 요12:31) 결박되고 늑탈 당하였으므로(마12:29) 성도를 만지지도 못하며(요일5:18) 성도들이 대적하면 피할 수 밖에 없다.(약4:7 요일2:13)

③사단의 타락
교만한 천사(겔28:11~15 사14:13)가 하나님 같이 높아지려다가(딤전3:6 겔28:17 사14:14) 오히려 벌을 받았다.(겔28:17~19)

㉠사단의 죄
사14:12~20은 사단의 타락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융통성 있게 해석하면 사단이 “하늘에 올라 다른 천사 위에 보좌를 만들고 천사 혹은 메시야 왕국 위에 좌정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강탈하여 천지의 소유자가 되리라”는 교만한 마음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딤전3:6)

㉡사단에게 내린 심판
하늘에서의 본래 지위에서 쫓겨남을 당한 후(겔28:16) 에덴에서 심판이 선고되었고(창3:14~15) 십자가에서 그 심판이 성취되었으며(요12:31) 내 쫓김을 당하여(계12:13) 무저갱에 감금되고(계20:2) 장차 불못에 던지움을 당할 것이다.(계20:10)

④사단의 사역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리스도께 대항하여 구속사역을 방해하리라는 예언(창3:15)대로 직접 그리스도를 시험했을 뿐 아니라(마4:4~11) 간접적으로 그의 사역을 훼방했고(마2:16 16:23 요8:44) 유다를 충동하여 못박는 일을 도모했다(요13:27)

㉡열방들에 대하여
열왕들을 충동하여(계20:3)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킴으로 그의 권세를 드러내려 할 것이다.(계16:14~16)

㉢성도에 대하여
거짓말하도록 유혹하며(행5:3), 성도들을 고소하고 참소하며(계12:10), 일을 훼방하며(살전2:18), 귀신을 고용해 성도들을 패배시키려고 시도하며(엡6:11~12), 부도덕에 빠지도록 유혹하며(고전7:5), 성도들 가운데 가라지 씨를 뿌리며(마13:38~39) 박해를 야기시킨다.

㉣불신자에 대하여
불신자를 지배하여(요일5:19 요12:31) 마음을 어둡게 하며(고후4;4), 그들 가운데 역사하여(엡2:2) 말씀을 제거하며(눅8:12), 하나님을 대항하게(계2:13) 미혹한다.(계13:14 18:23)

⑤사단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
사단을 경계하며(벧전5:8),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엡6:11~18) 말씀으로(엡6:17 마4:4~11) 사단을 대적하며(약4:7),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단을 이용하실 수 있음을 인식하여(고후12:7)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인하여 사단을 이길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2)귀신(Devil)
헬라인들은 귀신을 죽은 악인의 영으로 보았고, 혹자는 아담 이전 종족의 육을 떠난 영으로 이해하며, 세대주의 자들은 홍수 이전에 천사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종족으로 보기도 한다.(창6:1~4) 그러나 사단이 천사이며 귀신의 왕으로 불리운 점을 염두에 둔다면(마12:24 엡6:11~12) 귀신 역시 천사였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①귀신의 속성
어떤 귀신은 감금을 당했으나(벧후2:4 유1:6) 어떤 귀신은 매이지 않고 사단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양자는 그 속성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영적 존재이다
마17:18과 막9:25에서 이들은 더러운 영으로 불리고 있다.

㉡지적 존재이다
그들은 예수님(마1:24), 자신의 운명(마8:29), 그리고 구원의 계획(약2:19) 등을 알았으며 그들 나름대로 잘 발달된 지적체제를 가지고 있다.(딤전4:1~3)

㉢부도덕한 존재이다
그들은 더러운 영이며 부도덕한 행위를 초래한다.(딤전4:1~2)

②귀신의 활동
귀신은 불화케 하며(삿9:23)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고(약3:13~15) 번뇌케 하며(삼상16:14) 거짓말하게 하며(왕상22:21~23) 점장이가 되게 하며(마9:32~33) 눈멀게 하며(마12:22) 귀머거리가 되게 하며(막9:25) 간질하게 한다.(마17:15,18) 이런 귀신의 여러 활동을 두 가지 측면에서 분류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활동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려 하며(단10:10~14 계16:13~16), 사단의 명령을 행함으로서 사단의 권위를 확장하려 한다.(엡6:11~12) 그러나 이러한 귀신의 활동이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 수행에 역으로 이용되기도 한다.(삼상16:14 고후12:7)

㉡특별한 활동
인간(마4:24)과 동물(막5:13)을 사로잡아 병들게 하며(마9:33 눅13:11,16) 하나님의 자녀의 영적인 성장(을 저해하고(엡6:12) 그릇된 교리를 유포한다.(딤전4:1)

③귀신들림
귀신이 어떤 사람 안에 거하면서 그 사람에게 직접적인 통제력과 영향력을 행사하여 마음이나 몸을 혼란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귀신들림은 인간과 관련한 귀신의 영향력이나 활동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후자의 귀신의 사역은 외부로부터 온다. 그러나 귀신들림에 있어서 그것은 내부로부터 온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내주하므로 귀신이 들릴 수는 없으나 그가 성령의 뜻을 계속 거스려 성령의 도우심을 일시적으로 제한시켰을 경우에는 귀신의 활동으로 인하여 신들린 듯이 보이는 정도까지는 이를 수 있다.

㉠귀신들린 현상에 대한 성경의 묘사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갈 때 미쳐 날뜀(막5:5,15)으로, 간질로(막9:18), 죽이기 위해 위험에 빠뜨리는 것으로(막9:22), 각종 병에 걸리게 하는 것(막9:33 12:22 눅4:40)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막9:20~22,29,35)

㉡귀신들림의 범위와 시기
사람(막5:2,8,13) 혹은 짐승(막5:13) 속에 하나 혹은 여러 귀신이 들어가(막5:9 눅11:26) 하나님의 선하심에 반하는 행동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 불신자만이 귀신이 들릴 수 있다. 그리스도 당시 귀신들린 경우의 대부분이 비이스라엘인 가운데서였다. 또한 귀신들림은 그리스도 당시와 같이 진리의 빛이 강할 때 더욱 반항적으로 강렬해진다.

④귀신의 운명
공관복음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의 사역의 2/3는 복음전파와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고친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힘입어(마12:28) 수없이 귀신을 쫓아내셨으며(마4:24 막1:34 눅4:30) 이 권능을 사도들에게도 주셨다.(마12:1)
그러나 사도들(행8:7 16:18 19:12~13)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도 귀신을 쫓아낼 수 있으며(막16:17) 이것은 복음전파를 가속시킨다.

㉠일시적 운명
귀신은 성령의 이름으로(마12:28) 쫓겨날 뿐 아니라 매이지 않은 귀신들은 훗날 무저갱에 던지움을 받는다.(눅8:31) 그러나 갇힌 어떤 귀신들은 환난 때에 놓임을 받기도 한다.(계9:1~11)

㉡영구적 운명
궁극적으로 모든 귀신은 사단과 함께 불못에 던지움을 당한다.

7)물질 세계의 창조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는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가 있는 반면 물질도 있다. 이러한 물질의 창조 역시 하나님의 완전함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된다.

(1)창조에 대한 성경 기록의 특징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창조 전모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물질세계 창조에 대한 가장 확실한 기록이다.

①구속론적 입장
창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과학적, 지질학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즉 창세기 1장은 타락한 인간(창3장)이 아닌 원래의 인간(창2장)이 거주했던 처소 및 환경에 대한 기록으로서 구속사의 서장이므로 마땅히 신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②확실성
창조 전모에 대한 기록은 아니라 할지라도 모세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창조 기사는 확실성을 지닌다. 반면 세계 각처에 산재해 있는 창조 설화들은 창조가 있었던 사실은 알려주나 세부적인 부분은 채색 와전된 것이므로 신뢰성을 갖지 못한다.

(2)창조의 연대 문제
지질학이 말하는 우주 조성 연대와 성경의 기록을 조화시키려는 시도와 더불어 어느 일방을 무시하는 주장이 병행되어 왔다.

①서론설, (제목설)
창1:1~2을 이어 나오는 3절 이하 기록의 서론으로 보려는 입장이다. 즉 실재적인 창조를 3절의 빛의 창조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 입장에 따르면 창조 역사의 연대가 B.C. 4004년이 되는데 이는 지리학의 연대와 큰 차이를 보인다.

②중건설
태초에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으나(창1:1) 타락한 천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땅이 공허하고 혼돈되었으며(창1:2)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는 그 후 다시 창조된 것이다.(창1:3) 즉 창1:1~2과 3절 사이에는 큰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성경의 증명을 얻지 못한다.

③시대설, (장기설)
창1장에 나오는 날은 정확한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이 정하신 미지의 기간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날(히: 욤)의 용법과 이 주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④육일설, (일자설)
창세기의 문맥(“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이나 안식일의 규례(출20:9~11)로 보아서 천지창조는 6일만에 이루어졌다.

⑤반일자설
육일간의 창조 기간 중 태양이 창조된 제 3일을 기준으로 하여 전 삼일의 하루는 장구한 세월로 보고, 후 삼일의 하루는 오늘날의 하루로 보는 견해이다.

⑥과학과의 조화
하나님께서 마치 아담을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으로 창조한 것처럼 완숙한 형태의 우주를 창조했다면 6일 창조설은 과학과 모순되지 않는다.

(3)창조의 순서
6일간의 창조사역은 조직적이며 합리적인 순서에 따라 이루어졌다. 6일간의 창조 순서와 일곱째 날의 하나님의 안식 문제에 대해서는 그 세부 사항이 본 주석(톰슨 2 주석성경), 창1장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4)진화론이 잘못된 이유
성경적 창조론과 배치되는 주장 가운데 진화론이 있으나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닌 정설이 아닌 가설에 불과하다.

①무기물은 유기물로 변하지 않고 무기물로 남는다.
②이성적, 도덕적, 종교적 능력을 가진 인간은 본질적으로 짐승과 구별된다.
③종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7.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유지시키신다. 섭리란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고 사건 속에서 활동하심으로서 당신의 작정한 목적에 맞게 만물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이다.

1)섭리의 대상
자연신론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해 일반적인 관심만 표하신다고 본다. 즉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법칙을 세우셨으며 그 후 그것을 가동시키시고 물러나셨다는 것이다. 한편 범신론은 하나님과 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양자를 동일시하며 자연을 하나님의 자기계시로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연신론의 입장과 같이 방관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이 신에게로 돌아가는 범신론의 입장도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와 지배를 가르치신다. 성경에 묘사된 섭리의 대상은 아래와 같다.

①우주 전체(시103:19 엡1:11)
②이 세상의 창조물(시104:14 마5:45)
③들짐승들(시104:21,28 마6:26)
④국가의 크고 작은 사건들(욥12:23 행17:6)
⑤인간의 출생과 운명(시139:16 갈1:15~16)
⑥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전16:33 마10:30)
⑦의인의 보호와 악인의 형벌(시4:8 롬8:28 시7:12~13)
⑧성도의 필요에 대한 공급(빌4:19)
⑨기도의 응답(시65:2 마7:7)

2)섭리의 요소

(1)보존(Preservation)
하나님만이 주권적이며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분이시고, 모든 피조물은 항상 하나님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만물은 신적 권능의 계속적인 행사로 인해 계속 존재할 수 있다.(시63:8 느9:6 행17:28 골1:17 히1:3)

(2)협력(Concurrence)

①개념
만물의 행동과 변화는 제 1원인이신 하나님과 제 2원인인 자연 세력 및 인간과의 협력의 소산이다. 이 때 어떤 사건의 동인 자체가 양적으로 반반씩 하나님과 피조세계에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피조세계의 일반법칙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훼손함이 없이 통치하시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궁극적 능력이자 궁극적 원인이신 하나님이 종속적 능력과 원인인 피조세계의 질서와 인간의 자유의지에게만 모든 것을 맡겨 동작, 진행하게 방치하지 않으시고 직접 당신의 뜻과 목적을 따라 종속적 능력의 방향과 모든 동작을 주도하심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주 만물의 운행은 제 1원인이신 하나님 없는 피조세계 전체만의 범신론적 작동도 아니요 제 2원인이 없는 하나님 의지의 일방적 작동도 아닌 것이다. 이 협력은 자연세계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두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그 자유의지 안에서의 또는 그 자유의지를 통한다는 의미에서의 협력이요 일반 자연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이미 세워두신 기존의 질서와 이법을 통한 하나님 당신 의지의 계속적 섭리이다. 한편 섭리를 전체와 각 개체란 관점에서 일반섭리와 특별섭리로, 통상적, 일상적 방법이냐 아니면 일시적, 특수적 방법이냐에 따라 통상섭리와 비상섭리로 나눌 수 있다.

②신적 협력의 특징
㉠시간적이 아니라 논리적 관점에서 선재적이며 선결적이다.(고전12:6 엡1:11 신8:18 빌2:13)
㉡동시적이다
피조물은 그 어떤 경우에도 독립적으로 역사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나 자연의 모든 움직임은 그 어느 순간도 동시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협력에 힘입어 기동하는 것이다.(행17:28)
㉢직접적이다
신적 협력은 피조물에게 직접적으로 작동한다.(빌2:12~13)

③신적 협력과 죄의 관계
신적 협력 없이는 피조세계는 그 어느 것도 동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렇다면 범죄 행위도 결국 하나님의 관할 아래 있는 것이므로 궁극적 책임은 하나님이 져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자연히 제기된다. 이 문제는 이미 예정론에서 약간 다루었으나 개혁신학자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이 문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그 궁극적인 원인이 왜(why)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결과론적 해답의 부분적 이해에 머문다고 겸손히 고백할 필요가 있다. 하여튼 일단 문제를 정리해 보자면 죄도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하나님이 기계적으로 죄에게 동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다만 제 2원인으로서의 인간의 죄에 대한 자유의지의 실행을 허용하셨을 뿐이라는(창45:5 50:20 출14:8 사66:4 롬9:22 살후2:11) 것이다.

분명히 신적 협력과 인간의 자유의지간에는 논리적 갈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 협력도, 그리고 하나님은 존재론적 특성상 죄와는 전혀 무관하며 죄에 대해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책임져야 하며 하나님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두 사실 모두가 성경의 정언명법적 진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양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나 정언명법에 의거하여 적어도 이런 것은 아니다라는 부정적, 소극적 측면의 고찰만은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작정, 예정, 섭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역으로 성경의 계시로서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실 나의 죄는 내가 스스로 범한 것이고 또 그것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내 양심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그에 선행하는 체험적 사실로서 우리에게 더욱 명료한 것이다

(3)통치(Government)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당신의 창조 목적에 맞게 다스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선악(빌2:13 행14:10)은 물론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으로부터(마10:29~31) 우주적인 것(시103:19 4:34~35)과 영계 그리고 과거에서 미래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3)비상섭리(이적)
물질세계에서는 자연법칙에 따라, 그리고 정신세계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법칙에 따른 “통상섭리”가 있고 또한 이러한 통상섭리를 능가하게 하는 “비상섭리”가 있다. 이러한 비상섭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로서 이는 주로 하나님 당신의 임재와 당신의 것들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비상섭리는 자연 법칙의 위배가 아니라 그 자연 법칙까지도 제정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의 표현인 것이다. 
 

 

 

신론

하나님의 정체를 설명코자 하는 접근으로는 그 본질적 규명, 속성적인 접근, 그리고 구약에서 하나님이 갖는 명칭들과 신약에서 갖는 명칭들의 성격을 찾아봄으로써 가능하다. 하나님의 본질은 그가 영이시고 인격적인 존재이심을 우선 들수 있는데 하나님은 그 본질상유일하시고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 이시다.따라서 하나님은 영이신 까닭에 시간이나 공간의 제한을 벗어나신다. 하나님은 역사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한 순간에 읽으시므로 그 역사를 경영하여 나가시며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현재 세계는 물론 우주와 사후의 세계까지 통치하신다. 이러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인격을 소유하고 계신다. 이러한 점에서 철학적 사고자들의 '막연한 궁극자' 또는 우주 밖에서 세상을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절대자' 라는 개념의 신관과는 판이하다. 기독교에서 언급되는 성부 하나님은 유일의 하나님인 까닭에 자연주의의 범신론 이나 서방종교의 다신론과 구별되는 독특성을 갖는다. 더구나 인간들의 사고나 필요에 의하여 표상화되어지고 의미가 부여된 타종교의 신과는 달리 우리 하나님은 그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개시하여 주는 자존적 존재이시다. 기독교에 있어 나타나는 독특한 신관은 바로 이 하나님의 본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속성을 살펴봄으로써 그 정체를 보다 적절히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의 속성에 나열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분의 거룩성이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의 이상 가운데서 하나님께 스랍들이 거룩함을 강조하여 찬양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참조; 사6:2). 하나님은 또 영원하여 시작과 끝이 없으시다. 이 영원하신 하나님은 전능성과 전지성을 겸유하고 계신다. 전능하시므로 무에서 유의 창조를 이끄셨으며 전지하시므로 자신의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전능성과 전진하심은 곧 그 운동 거취의 무소부재하심에 귀결된다.
하나님이 세상의 경영과 우주의 통치에서 일관되게 적용하여 오시는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과 공의의 선하신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성에 내재된 자비와 진실하심, 그리고 변치 않으심은 이 실천들의 세밀한 구체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위에서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살펴봄으로써 성체규정을 어느 정도 정리하였다. 요컨대 성경 속에서 무수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제명칭들은 이러한 본질과 속성이 잘 응용된 이름들이다. '그 스스로 계시다'라는 어의를 반영한 '여호와'라든가 '전능자'라는 뜻의 '엘로힘'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란 의미의 표현 '아도나이'등이 바로 그 예라고 하겠다. 성서 기자들의 이같은 하나님 표현은, 가까이 계시고 함께 동행하시는 사건 속의 하나님을 나타내 주는 증거가 된다.

[본문 주해]

1) 각양 좋은 은사(pa'sa dovsi" ajgaqh; ; 파사 도시스 아가데)
하나님은 좋으신 성품을 가지고 계신다. '은사'라는(dovsi"; 도시스)는 기본동사(divdwhi; 디도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는 것' 함축적으로 '선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물'이라는 의미로 본절에서(dwvrhma ; 도레마)가 또 쓰이고 있는데(dovsi";도시스)가 주시는 '행동'을 의미한다면, (dwvrhma; 도레마)는 주신 '선물'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는 행위는 선하여 전연 불순한 동기나 부족한 태도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악으로 시험을 하지도 않으시며 오히려 좋은 선물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다.

2)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ajpo; tou' patro;" twn fwvtwn ; 아포 투 파트로스 톤 포톤)
'빛'이라는(fw'" ;포스)는 폐어가 된 (favw ;파오)에서 유래하였는데 광범위한 적용으로 '발광, '불', '빛'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빛들의 아버지'란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든 빛을 창조하신 창조 주이시니, 그 자신은 더욱 '빛'이시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가 빛이시므로 그에게 어두움의 요소는 전혀 없으며, 그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므로 하나님의 선함에는 전혀 변동이 없으시다.

[주제 해]
본문에서 야고보는 하나님의 본질을 '그림자도 없는 무형 실존이며 변함이 없는 불변적인 존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의가 하나님의 본질을 완벽하게 증거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의 본질의 일단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비록 부분적이고 국부적이긴 하더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진실을 계시하신 성경을 통해서 확신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하여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영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본질을 '영'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영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무형적 존재, 비물질적 존재라는 뜻이며 따라서 불가시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1) 비물질적, 무형적 존재로서의 하나님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참조, 눅22:39) 영적 존재는 비물질적임과 동시에 무형적 존재입니다.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불변하고 영원하며, 무형적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비물질적이고 무형적 존재이시므로 영원 불변하시며 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디든지 계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2) 불가시적 존재로서의 하나님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딤전6:16).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불가시적 존재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하고 있고(참조, 요1:18; 요일4:12), 이사야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사45:15)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나 야곱, 모세 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참조; 창18:1;창32:28;출24:9,10) 하나님의 실체가 아니라 인간 또는 영광의 상징으로 가시적 형체를 취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데 불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직접 인간에게 나타나신다면 그 앞에 살아남을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참조, 출33:20).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이 인간의 죄성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
'하믈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시2:4,5).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하시는 것은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와는 다른 인격적 관계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격적 산물인 것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데 연유하고 있습니다(참조; 창1:27).

1) 지·정·의를 가지신 하나님
하나님은 지식의 근본이시며(참조; 잠1:7) 완벽한 감정의 소유자이시며(참조; 요일4:16) 절대적 의지를 행사하시는 분이십니다(참조; 삼상15:29; 계1:8;계22:13). 하나님이 인간과 갖는 관계는 이 지·정·의를 통한 인격적 관계입니다.

2) 인간으로 계시하는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이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빌2:7,8). 하나님이 자기를 가장 완벽하게 계시하신 것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벽한 하나님이셨으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여기에서 완전한 사람이셨다 함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셨다는 뜻입니다.

3. 유일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딤전2:5).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사실은 구약(참조; 신4:35)과 신약(참조; 고전8:6)에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신관입니다. 그러나 이 유일신관은 단일신관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즉 성경이 말하고 있는 유일신관은 삼위일체의 유일신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이라 할 때 그 유일성은 단수성(單數性)과 단순성(單純性)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단수성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사45:5).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나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원인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므로 완전합니다. 완전한 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시므로 오직 하나이십니다. 하나님은 세 인격(3위)을 가지신 한 분이시므로 그 유일성에 있어서 독특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시므로 오직 한 분이십니다(참조; 사44:8).

2) 하나님의 단순성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삼상2:2). 하나님의 단순성의 근거는 거룩하심에 있고 하나님의 순수성, 공의성, 선성은 모두 이 거룩함에서 비롯됩니다.

4. 자존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하실 때 그것은 원인 없이 존재한다는 뜻과 완전히 독립된 존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무원인적 존재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므로 원인 없이 존재하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절대성과 완전성은 이에서 연유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원인이 없이 존재하시므로 인과적 존재가 아니십니다. 인과법칙은 자연에 있어서는 진리이지만 영적 진리는 인과법칙을 초월합니다.

2) 독립적 존재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므로 완전히 독립된 존재이십니다. 여기에서 독립성은 완전한 자유와 비의존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원인 없이 존재하는 분이므로 무엇에도 제약되지 않으며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적이며, 완전하시며, 영원하십니다.

[주제 관주]

· 하나님의 본질
1. 영이신 하나님

a.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지로 존재하신다(눅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b.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도 신체적 가시적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다(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자니

c. 하나님의 유형적 출현 ㉠ 영광으로 출현(출33:18-23) ㉡ 여호와의 사자로서 출현(창2:11,12) ㉢ 성육신하신 예수로(요1:18).

d. 하나님의 유형적 출현의 의미

㉠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심이다(출33:18,19) ㉡ 하나님의 본체는 볼 수 없다 ① 본질적 하나님의 형상을 오늘까지 본 사람이 없음(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② 하나님의 본체를 보는 자는 살지 못함(출33:20). 또 가라사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③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심(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 지어다 아멘(딤전6:16).

2. 인격적인 하나님

a. 하나님은 지·정‥의의 인격신이시다.

㉠ 지(知)의 하나님(시33:13-15)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 정(情)의 하나님(시2:4,5)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 의지(意志)의 하나님(욥23: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b. 하나님은 인격신으로서 무인격의 우상과 구별된다(행14: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이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c. 자의식과 자기 결정에 의하여 역사하신다.

㉠ 우주 만물을 창조하심(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피조물을 보호하시고 섭리하심(마10:29,30)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 유일하신 하나님

a. 하나님 이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사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b.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시다(시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c.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d. 하나님 이외에 선한 이가 없다(막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e. 하나님은 유일한 주이시다(막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4.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a. 영원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b. 무시 무종이신 하나님이시다(사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본문 주해]

·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tiv" ouj mh; fobhqh'se; 티스 우 메 포베데세)
성서가 가르치는 하나님을 향한 태도 중에 한 가지가 두려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준 계약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이 두려움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세력들 가운데서 갖는 염려가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의 힘, 그 자체가 곧 두려움이며, 그 속에는 기타 모든 두려움을 파괴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함은 그의 전능을 의식한 데서 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그의 유일성에 호소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두려워하는 것은 도덕의 기초가 된다. 왜냐하면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만 거룩한 삶을 모색하게 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의 기본형은 (fovbo"; 포보스)이다. 희랍어에서 '두려움'을 뜻하는 것 중에서 역사가 더 오래된 단어는 (devo"; 데오스)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우려, 염려, 불안'으로서의 두려움을 말한다. 반면에 (fovbo"; 포보스)는 '놀람, 당황함'으로서의 두려움을 나타낸다. 이러한 두려움을 일반적으로 '경외'라고 표현한다.

[주제 해]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계15:4). 이 세상에서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거룩하십니다. 따라서 '거룩하다'라는 단어는 하나님께만 적용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속성이란 하나님의 본질 또는 실체 안에 들어 있는 고유한 특성에 대한 분석적, 구체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함에 있어서는 자연적 속성과 도덕적 속성, 내재적 속성과 타동적 속성, 적극적 속성과 소극적 속성,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윤리적 속성과 비윤리적 속성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1. 비윤리적 속성

1) 무소 부재하심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4). 하나님이 천지에 충만해 계시다는 것은 그분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은 나누이거나 제한할 수가 없는 공간을 초월한 존재이므로 아니 계신 데가 없습니다. 또한 동시에 하늘에도 계시고 음부에도 계십니다(참조; 시139:7-12). 음성이 방 안에 가득 차듯이 하나님은 우주 공간,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득차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무한성은 초월성을, 하나님의 편재성은 내재성을 뜻하며 이 무한성과 내재성이 무소 부재(초월과 편재)를 있게 합니다.

2) 전지하심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하나님은 그 자신과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 즉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지식은 절대적이며 완전한 지식으로서 직관적으로 아시는 지식이며 총괄적이되 동시적이고, 원형적 지식이므로 완전 무결하고, 철저하게 투시적이므로 정확 무오한 지식입니다.

3) 전능하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렘32:17).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능은 절대적 능력과 일반적 능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절대적 능력은 2차적 원인의 개입이 없이 발휘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창조, 기적, 직접 계시, 영감, 중생 등이 이에 해당하고, 일반적 능력은 2차적 원인의 질서적인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섭리적 활동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본성에 합당한 무제한적인 능력을 행사하실 수 있으나 자제하시기도 하며 거짓말, 범죄, 사망, 변화 등 하나님의 본성과 부합되지 않는 일은 하실 수가 없기도 합니다.

4) 불변하심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절대성과 완전성에 기인합니다. 그분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불변하고, 완전하시기 때문에 변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본질, 속성, 계획, 목적, 언약, 사랑, 공의 등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존성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은 무원인적 존재이기 때문에 변화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이시므로 불변합니다. 시간 안에 있는 것은 모두다 변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초월해서 영원 안에 계시므로 불변합니다.

5) 영원하심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 하나님이 영원하시다 함은 하나님이 무소 부재하시다는 공간적 개념에 대한 시간적 개념에서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자로서 기간의 원인이시므로 시간을 초월해 계십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시간에 대하여 자유 자재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하나이며 하나님의 시간에는 언제나 현재만 있습니다. 영원은 초월적 현재입니다.

2. 윤리적 속성
1) 거룩하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속성이 바로 이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다른 속성과 같은 동렬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속성 전부의 바탕이 되는 속성이며 하나님의 절대적 위엄과 영광이 이 거룩에서부터 연유합니다. 하나님의 이 거룩을 절대적 거룩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에는 또한 윤리적 거룩도 있는데, 이는 죄로부터의 거룩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거룩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의 간격을 두게 하는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그 절대적 거룩에 대해서는 경외심으로, 또 윤리적 거룩에 대해서는 죄의식으로 표현됩니다(참조; 사6:5;눅5:8;벧전1:16,17). 인간에게 있어서 거룩은 그의 영적 삶의 목표입니다(참조; 고후7:1;딛2:12-14;히12:14).

2) 의로우심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딤후4:8). 하나님의 의를 우리는 절대적 의와 상대적 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 의는 하나님의 완전성에 근거하는 스스로 가지고 계시는 내적 의이며, 상대적 의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외적 의로서 이를 '공의'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다시 주권적 공의와 분배적 공의로 나누어지는데 주권적 공의는 '율법'과 같이 '포상'하고 '심판'하심에서 나타나는 공의입니다. 그러므로 분배적 공의를 보상적 공의와 형벌적 공의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거룩의 한 표현입니다.

3) 선하심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10:18). 하나님은 홀로 선하시므로 그분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은 모두 선합니다. 모든 피조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이면 모두 선합니다. 그러나 변질된 것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창조된 인간이 불순종함으로써 변질되었을때 죄악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선이 인간에게 자기를 계시하시고 자기를 전달하려고 하실 때 '사랑'이 되고, 하나님의 선이 일반 생물들에게 나타날 때는 '자비'가 됩니다. 하나님의 선이 비극적 상황이나 곤경에 처한 자에게 나타날 때는 '긍휼'이 되고, 죄에 빠져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타내는 선은 '은혜'입니다.

4) 진실하심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신32:4).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하나님 자신, 즉 그 실체적 진실성과 윤리적 진실성, 그리고 지적 진실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완전하시므로 진실하고(참조; 요17:3; 요일5:20) 윤리적으로 완전하시므로 진실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계시, 언약 등 인간과의 윤리적 관계에 있어서도 진실합니다. 하나님에게는 거짓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참조; 딛1:2). 그리고 하나님은 그 지식이 완전하시므로 진실한데 이는 신들의 구조와 법칙에 있어서 객관적 진실성을 확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도덕, 종교, 학문계에 있어서 그의 진실성은 진리의 원천이 됩니다.

[주제 관주]

· 하나님의 속성

a. 절대적 속성(비공유적 속성)

㉠ 독립 자존성(신6:4) ㉡ 영원 불변성(삼상15:29) ㉢ 무한성(시90:2)

b. 보편적 속성(공유적 속성)

㉠ 지성적 속성(왕상8:39) ㉡ 도덕적 속성(사42:3) ㉢ 주권적 속성(잠21:1)

1. 거룩하신 하나님

a. 모든 세속과 구별된다(레11: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b. 의로우시다(사5: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c. 순결 무흠의 상태이시다(골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d. 하나님의 거룩하신 결과

㉠ 죄를 미워하시고 의를 사랑하심(시5:4) ㉡ 악과 불의를 행치 않으심(욥34:10) ㉢ 형벌받을 자를 면죄하지 않으심(출34:6,7) ㉣ 죄인을 격리하심(사59:3)

2. 영원하신 하나님

a. 자존하신 하나님(출3:14) b. 영원 존재자이시다(사40:28) c. 만세 전부터 계심(합1:12) d. 영생하심(창21:33) e. 영존하시고 여상하심(시102:26,27)

3. 전능하신 하나님

a. 주권적 의지로 행하시는 능력이다(창18:14)

b. 주권적 능력의 제한이 있다.

㉠ 거짓말하시는 일(히6:18) ㉡ 죄를 범하시는 일(욥34:10) ㉢ 변절하시는 일(삼상15:19)

4. 전지하신 하나님

a. 하나님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시다(왕상8:39)

㉠ 자연계를 다 아심(시147:4) ㉡ 세상 모든 거민의 행사를 아심(시33:13-15) ㉢ 뭇 사람의 마음과 계획을 아심 (대상28:9) ㉣ 모든 역사를 아심(사46:10) ㉤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심(마10:29,30).

b.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아신다(사46:10)

c. 하나님의 지혜는 지식의 국면으로 궁극적 목적은 자신의 영광을 위함이다(롬11:33)

d.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것

㉠ 창조에서(시19:1) ㉡ 섭리에서(시33:10,11) ㉢ 구속 사업에서(고전2:7)

5.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

a. 우주 전체에 계심(시139:7-10)

b. 천지에 충만하심(렘23:23,24)

6. 의로우신 하나님

a. 하나님의 거룩을 보전함에 나타나는 완전성이다(사45:21)

b. 의의 표현 방법

㉠ 공의(사45:21)

① 악한 자에게는 형벌의 보응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시99:4)

㉡ 보수적 의

① 선한 행위에는 선으로 나타낸다(신7:9)

② 인간과 천사에게 상을 베풀어 주시는 데서 나타난다(시58:11)

③ 공로에 근거하지 않고 신적 사랑의 표현이다(눅17:10)

㉢ 응보적 의

① 악행에 대한 신적 진노의 표현이다(살후1:8)

② 악인이 받을 형편이다(시1:6)

c. 공의의 실현 방법

㉠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임으로(롬3:21-26) ㉡ 세우신 언약을 지키심으로(느9:7-8) ㉢ 자복하는 자의 죄를 용서함으로(요일1:9) ㉣ 공의를 심판하심으로(시9:8) ㉤ 영벌과 영생을 세우심으로(마25:46) ㉥ 의인을 상주심으로(딤후4:8)

7. 사랑의 하나님

a. 하나님은 사랑의 근본이다(요일4:8)

b. 사랑의 표현

㉠ 은총(엡1:6,7) ㉡ 긍휼(눅1:54)

c. 사랑의 대상

㉠ 예수 그리스도(마17:5) ㉡ 예수를 믿고 사랑하는 자(요16:27)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잠8:17) ㉣ 인류와 개인(벧후3:8,9)

d. 사랑의 방법

㉠ 독생자를 보내심으로(요3:16) ㉡ 회개하는 자를 사랑하심으로(사38:17) ㉢ 죄로 죽은 영혼을 구원하심으로(엡2:4,5)

8.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a. 변역지 않으심(말3:6) b. 여상하심(시102:26,27) c. 변함없으심(약1:17)

d. 대적들에게 공포를 주심(시7:11) e. 신실한 자녀에게는 위안을 주심(말3:6)

9. 진실하신 하나님

a. 공평하시고 진실 무망하심(신32:4) b. 언약을 이행하심(신7:9) c. 하늘까지 사무침(시36:5) d. 언제나 신실하심(딤후2:13)

[본문 주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awvl *yhla hwhyA!vAta act al; 로 티솨 에트-수엠-예호와 엘로헤카 랏솨웨)
구약성서에서 '이름'이란 단순한 표식으로서의 기능이 아닌, 그것을 가진 존재의 심원한 실재 또는 본질을 표시한다. 창조된 모든 것이 이름을 가지기 전까지는 창조가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창조 기사에서 마지막에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이름을 주신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구약성서의 이름들은 그 사람의 본질적인 인격을 드러내는 중요성을 지닌다(예: 아브라함, 야곱, 이스라엘). 그래서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창32:30)라고 이름을 묻는 질문을 회피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서는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여호와의 주권자다운 자유로움을 나타내 주며, 동시에 인간을 향한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이름을 대답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행위 가운데서 그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름에 있어서의 여호와의 이러한 자유성은 하나님은 결코 대상이나 객체가 될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해 준다.

[주제 해]

성경에서의 앎은 체험적인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의 칭호를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칭호를 아는 사람은 풍요로운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감옥에 갇힌 것이나, 매를 맞고 착고에 매여 있음이 기도할 수 있는 행복과 찬미할 수 있는 풍요로움에 전혀 장애가 될 수 없는(참조: ?6:22-25), 초월하여 간직되는 솟아나는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칭호를 아는 사람은 늘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1). 왜 이렇듯 하나님의 칭호를 아는 이들이 복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칭호는 당신께서 사랑하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칭호속에는 하나님의 인격적 실유와 속성과 모든 아름답고 부요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칭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엘(la) 하나님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지시하는 가장 단순한 명칭은 이 '엘'(la)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가 '엘'은 '울'(lwa)에서 기인하여 '주' 되는 의미를 가지거나 '강', '유력'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게니우스'(Gesenirs)는 '엘'을 '강하게 된다'라고 보며 따라서 '강한 자'(Storong one)를 의미한다고 주장했으며, '노엘데케'(Noeldeke)는 '앞에 있다'를 뜻하는 아라비아 어근과 연락시켜 '지도자', '치리자'라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엘'의 의미하는 바를 찾는데 그 해석이 한 가지로 정해진 바는 없으나 대체로 위엄과 권위를 표현한다고 봄이 그 원 의미에 적합하다 할 수 있습니다. '엘'(la)로 지칭되는 하나님은 우주 위에 위엄과 권위의 대주재가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2. 엘로힘(!yhla) 하나님
'엘로힘'이라고 하는 칭호는 전기와 같은 어근에서 인출되었거나 혹은 '알라흐'(hla)에서 온 것으로 경외의 대상으로써 특히 강하고 유력한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고 있으며, '엘로힘'의 복수형에 나타나는 그 의미는 이교 민족들이 여러 신들에게 분배한 권능의 충만 전부를 소유하신다는 것을 중요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엘로힘'으로 지칭되시는 하나님은 능력의 충만으로써 세계의 창조와 통치주로써 섭리의 하나님의 일반적인 면을 지시합니다.

3. 엘리욘(@wyl[)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엘리욘'이라는 칭호는 '알라'(hl[)에서 나온 것으로 '올라간다' 또는 '높아진다'를 의미하여, '숭고, 존귀, 가장 높으신 자'로 하나님을 지시함을 보게 됩니다(참조: 창14:19,20;민24:16;사14:14).

4. 아도나이(ynda)주
앞에서 전술한 칭호들과 관계를 가진 것으로 '재판하다' 또는 '지배하다'를 의미하는 '뚠'(@wd) '띤' 또는 '아단'에서 유래되어 하나님을 전능하신 통치자로서 모든 것의 굴복을 받으시며 특히 모든 사랑을 소유하시는 분이심을 지시합니다. 이 명칭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일컫는 일반적인 명칭이었으나 후기에는 '여호와'라는 명칭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아도나이'즉 주 되시는 하나님 앞에 모든 인생은 기뻐 순종하는 백성으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참조: 삼상15:22).

5. 샤다이, 엘 샤다이(ydv la) 전능하신 하나님
출애굽기에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출6:3)라고 말하는 가운데 나타난 칭호로써 '전능자'(ydv), '전능하신 하나님'(ydv la)이라는 명칭은 '샤다드'(ddv)에서 인출되어 하나님을 천지의 모든 권세를 소유하신 자로 지시합니다. 특히 이 명칭은 하나님을 모든 자연 세력을 굴복시키어 은혜의 사역에 합한 강조로써 창조와 자연을 의미하는 '엘로힘'과는 중요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샤다이, 엘샤다이, 로 지칭되시는 하나님은 행복과 위안의 원천으로 하나님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는 창조자와 피조물과의 진정한 어울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행복과 위안이 있음이 이에서 증명됩니다.

6. 여호와(hwhy) 여호와 하나님
이 '여호와'라는 칭호는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의 하나님으로 계시하는 명칭으로써 가장 신성하고 탁월한 성호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여호와'라는 용어를 신성시함의 증거는 레위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레24:15)라고 기록하였고 실제 역사 속에서도 이 명칭 사용을 미신적으로 두려워하였으며 그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면 주 혹은 하나님이라 읽어 이 '여호와'라는 명칭의 진정한 어원가 발음이나 의미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지칭하고 있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 명칭에서 보여주는 불변성은 하나님의 본체적 실유의 불변성보다도 자기 백성에 대한 관계의 불변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7. 여호와 체바오트(twabx hwhy)만군의 여호와
체바오트'는 만군이라는 뜻인데 이 만군이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 천사 ② 이스라엘 군대 ③ 하늘의 별들 이러한 해석 가운데 천사를 뜻한다고 봄이 바른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참조; 삼상4;4;삼하6:2;사37:16;사12:4,5). 또한 '만군의 여호와'라는 용어는 전쟁에 능한 하나님이시며 필요하면 모든 것을 자기의 군병이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는 소유주이시며 영광의 왕이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맺는 말

하나님의 성호는 위엄과 존귀, 은혜를 포함하며 동시에 권능과 권세를 수반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호는 자기계시임과 동시에 성도의 힘이 되고, 풍요가 되며, 인간 됨을 발견하는 근원이 됩니다.

[주제 관주]

· 하나님의 명칭

1. 여호와(Jehovah)

a. 영원 자존자이신 하나님(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b. 불변하시고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사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2. 엘로힘(Elohim)

a. 창조와 주권적 통치의 신이다(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3. 아도나이(Adonai)

a. 모든 것의 굴복을 받으시는 하나님(창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b. 다스리는 주이심(창15: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4. 여호와 이레

a. 준비하시는 하나님(창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5. 여호와 닛시

a. 승리의 하나님(출17: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6. 여호와 샬롬

a. 평강의 하나님(삿6: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 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7. 여호와 라파
a. 치료하시는 하나님(출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게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8. 여호와 체바오트
a. 만군의 하나님(삼상1: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9. 여호와 치드케누

a. 의로우신 하나님(렘23: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10. 여호와 로이

a. 목자되시는 하나님(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닌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1. 여호와 샴마

a.재하시는 하나님(겔48: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12. 여호와 엘리욘

a. 가장 높이신 하나님(창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13. 여호와 마케

a. 진노의 하나님(겔7:9)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치는 줄을 네가 알리라

14. 엘 엘리욘

a. 높으신 하나님(사14:13,14)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b. 솔로몬의 성전에 적용되는 용어임(대하7:21)
이 전에 비록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c.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민24: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d. 찬양받으실 자의 이름임(시9: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본문 주해]

·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toi'" foboumevnoi" to; o[nomav sou: 토이스 포부메노이스 토 오노마 수)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to;n misqo;n; 톤 미스돈)을 주신다고 하셨다. 이 상은 마지막 날 주님이 재림하실 때 각자의 공적에 따라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는 단순히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이름을 높이고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섬긴 자들을 말한다. 즉 하나님에 대한 섬김과 예배와 신앙이 '주의 이름'에 대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또 그 의미하는 바가 다양하다. 성도는 그 이름에 대하여 바른 지식을 갖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겨야 한다. 그것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광의 상급을 가져다 준다. 반면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지 않은 자, 곧 주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다'(diafqei'rai: 디아프데이라이). 즉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하신다는 것이다.

[주제 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온전히 계시된 하나님의 명칭은 세 가지입니다. 즉 '하나님(qeo")', '주님(curio")'그 다음 바로 '아버지(pathr)'입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명칭들은 복합적인 의미로 이 세 가지 명칭에 응집되어 있습니다. 그 중 '아버지'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기독교 신관의 핵을 이루는 은혜로운 명칭입니다. 이제 그와 같은 신약의 명칭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데오스(qeo")

(qeo") 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말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께 대한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구약에서 '엘', '엘로힘', '엘리욘'이라는 명칭을 그리이스(헬라)어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계시되었던 '하나님'보다는 인생들과 더욱 친근하신 분이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은 데오스(qeo")를 하나님의 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1) 구약의 '하나님'은 민족적인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약의 명칭을 공부할 때 하나님을 한결같이 '지존자', '전능자', '만군의 하나님'등으로 부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엘리욘'이라는 명칭만 해도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지극히 높으신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구약에서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은 우리 죄인 된 인생들이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룩'하신 분으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뵈온 자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사6:5)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오직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즉 율법과 성전을 통하여 뵐 수 있는 분이시기에 오직 이스라엘의 신실한 신앙인들에게만 친근한 명칭이요, 온 인류에게는 아직 구체적으로 계시되지 않은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2) 신약의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속죄 사역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은 구약과는 달리 민족적인 색채나 인간과 거리감을 지니신 분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명칭에다가 '나의' 혹은 '너희의'라는 '소유격'을 많이 붙여 불렀습니다(참조; 마5:48;마6:4,9). 즉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신실하신 자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모든 인생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나의 구원주라는 의미로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들 중에 오직 우리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성호를 즐겁게 부를 수 있습니다.

2. 퀴리오스(curio)

즉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에 공부했던 바대로 히브리 사람들은 감히 '야훼'라는 하나님의 성호를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칭 대신 '주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 '아도나이'라는 히브리 명칭을 그리이스(헬라)어로 '퀴리오스'라는 했는데 신약성경은 이 명칭을 계속 사용하였습니다. 구약의 '여호와'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 '주님'으로 계시된 신약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신앙 고백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예배의 유일한 대상임을 고백함

히브리 민족뿐만 아니라 그리이스 세계의 사람들도 그 '예배의 대상'을 '퀴리오스' 즉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고전12:3)고 고백하는 이 명칭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시며 예배와 신앙의 대상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혈육 관계를 지닌 '야고보'사도가 그리스도를 '주님'(약1:1)이라고 부른 사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신약에서 '주'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리이스 세계의 종교적 관행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 사역과 부활에서 '하나님'으로서의 권세를 나타내셨기 때문에 유일하시고 경배하실 분으로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참조; 롬1:4).

2) 성도들의 왕이심을 고백함

또 '주님'이라는 명칭은 신약 시대에는 왕이나 황제에게 붙였던 명칭이기도 합니다. 로마인들은 황제를 '퀴리오스'라고 호칭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만을 '주님'이라고 불렀던 기독교인들은 자연히 당히 로마 판도의 세계 속에서 반체제적 불순 분자들로 낙인 찍히고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데에는 생명을 건 결단이 필요했습니다(참조; 롬10:9). 오늘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은 결심을 지니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나와 나의 교회와 가정과 세계의 '왕'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또 그분의 권세만을 의뢰하고 삽니까? 그분의 말씀을 '왕'의 말씀으로 순종하고 있습니까? 다음과 같은 주님의 경고를 기억합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3. 파테르(pathr)
이는 '아버지'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낸 명칭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그리이스 신관에도 '제우스'를 신 중에 '아버지 신'이라고 했고, 또 구약 시대 이스라엘 민족도 때때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참조; 신32:6; 시103:13). 그러나 신약의 '아버지'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만물의 조성자'라는 철학적인 신관이나 또 이스라엘 민족의 조성자라는 히브리적 민족주의적인 신관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신약의 '아버지'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은총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생명적인 아버지'라는 개념을 지녔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요(참조; 요15:9;요16:32;요17:1),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돌아온 성도들의 '아버지'도 되어 주십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성도들과의 관계는 그 옛날 상실했던 '에덴 동산의 창조 관계'로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안에서 결합될 관계라는 것을 '아버지'라는 명칭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제 관주]

·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칭

1. qeo"(데오스; 하나님)

a. 민족적 개념으로 사용됨

㉠ 우리의 하나님

① 모든 신보다 크신 하나님(대하2:5) ②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사8:10) ③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사25:9) ④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롬8:31) ⑤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4:5) ⑥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땅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출20:2)

㉡ 너희의 하나님

① 너희중에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레26:12) ② 너희 중에 계신 하나님(신7:21) ③ 아브라함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심(창17:8)

b. 개인적 개념으로 사용됨

㉠ 나의 하나님

① 그는 나의 하나님(출15:2) ②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롯1:16) ③ 주는 내 하나님(시31:14) ④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요20:28) ⑤ 내 하나님(계3:12)

㉡ 너의 하나님

①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너의 하나님(출20:2)

② 네 하나님께서 치게 하심(신7:2)

③ 네 아버지의 거룩하심(마5:16)

④ 질투하시는 너의 하나님(출20:5)

2. kurio"(퀴리오스: 주)

a.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가리킴

㉠ 천지의 주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14:19) ㉡ 만물은 네 하나님께 속한 것(신10:14) ㉢ 온 만물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심(느9:6) ㉣ 만물이 그에게서 남(고전8:6) ㉤ 만물이 그에게서 남(고전8:6) ㉥ 만물이 그의 뜻대로 있고 지으심 받음(계4:11) ㉦ 기뻐하시는 일을 만물에게 행하심(시135:6) ㉧ 여호와께서 통치하심(시97:1) ㉨ 지극히 높으신 자의 명정하심(단4:24)

b. 백성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가리킴

㉠ 왕의 마음을 임의로 인도하심(잠21:1) ㉡ 불쌍히 여길 자와 긍휼히 여길 자를 선택하심(롬9:15) ㉢ 사람의 생과 운명을 주관하심(약4:15) ㉣ 원하시는 모든 일을 행하심(시115:3) ㉤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막을 수 없음(욥11:10) ㉥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심(고전12:11) ㉦ 모든 신보다 더 크심(출18:11) ㉧ 우리 하나님 전능자가 통치하심(계19:6) ㉨ 자기 뜻대로 사람을 중생케 하심(약1:18)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심(엡1:5) ㉪ 그 역사하시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심(롬9:18) ㉫ 하나님의 판단을 측량 못하며 그 길을 찾을 수 없음(롬11:33) ㉬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예정하심(벧전1:11) ㉭ 하늘과 땅의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심(엡3:14)

3. pathr (파테르: 아버지)

a. 만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가리킴

㉠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시89:26)

㉡ 영존하시는 아버지(사9:6)

㉢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는 우리의 아버지시라(사63:16)

㉣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고전8:6)

㉤ 하늘과 땅의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엡3:14,15)

b.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 그리스도에 의해 아버지라 불리워진 예

①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25)

②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③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2:27)

㉡ 사도들에 의해 불리워진 예

① 한마음과 한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15:6)

② 찬송하리로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1:3)

③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요1:14)

 

장로교조직신학- 신론



제1부: 하나님의 존재

1. 하나님 존재의 증거들

하나님에 관한 성경의 진리들을 정리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한다. 만일 그가 계시지 않다면, 그에 대한 모든 신학적 토론은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도 말씀하기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다(히 11:6).



1-1. 이성적 증거들

역사상,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성적 증거들이 제시되어 왔다.

첫째로,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이란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제시한 매우 오래된 논증으로서 인과 논증(因果論證)이라고도 불리운다. 이 논증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어떤 원인의 결과이며, 어떤 결과가 있으면 그것의 원인도 존재하는데, 우주는 한 결과이고 하나님은 그것의 궁극적 원인 혹은 제1 원인이시므로,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둘째로,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이란 소크라테스나 키케로나 필로 등이 제시한 역시 매우 오래된 논증이다. 이 논증에 의하면, 모든 설계된 작품들, 예를 들어 집이나 시계 등은 그 설계자의 존재를 증거하는데, 우주는 한 놀라운, 설계된 작품이며, 그것의 놀랍고 신비한 질서와 적응성, 예컨대 천체의 질서나 동식물과 사람의 구조 등은 그것을 만드신 이지적(理智的) 창조자 곧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본체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이란 안셈이나 데카르트 등이 제시한 논증으로서 존재론적 논증 또는 관념론적 논증이라고도 불리운다. 그것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하나님 개념으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는 방법이다. 이 논증에 의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개념은 하나님이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시라는 것인데, 하나님의 '완전'이라는 이 개념 속에는 '존재한다'는 성질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함으로,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넷째로, 도덕적 논증(Moral Argument)이란 칸트 등이 제시한 것으로서, 사람의 양심 곧 도덕적 분별력은 그것을 주신 도덕적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며, 또 세계의 상선벌악적(賞善罰惡的) 역사에서 나타난 도덕질서도 그것을 시행하시는 도덕적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이러한 이성적 논증들은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촬스 핫지는 "그것들[이성적 논증들]은 소크라테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지혜로운 자들에 의해 건전하고 결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고 말했고(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I, p. 203), 로레인 뵈트너도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위한 우주론적, 목적론적, 본체론적, 도덕적 변론들은 개방되고 편견없는 마음을 가진 누구에게든지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고 논평했다((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 82). 박형룡 박사도 말하기를, "유신논증들은 큰 가치를 가진 것이다. 성경과 기독교 경험에 의하면, 성령이 사람의 심령(心靈)에 확신(確信)과 회심(回心)을 산출하시는 과정에 논증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이 논증들 자체들은 아무 사람도 중생시키지 못하나 오히려 전도의 과정에 기구(器具)로 되어 왔다"고 했다(신론, 32쪽).



1-2. 성경의 증거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2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답: "사람 속의 본성의 빛 자체와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명백히 선포하지만, 그의 말씀과 성령께서만 사람들에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그를 충분히 그리고 효력있게 계시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고, 단순히 그 사실을 전제(前提)하고 선포한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더 강력한 증거이다.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온 우주는 그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 그를 전제하지 않고서 인간은 이 세상의 아무 것도 바로 알 수 없고 논할 수 없다.

성경에 처음부터 전제되고 선포된 하나님은, 무엇에 의해 존재하는 자가 아니요, 스스로 존재하시는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출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번역된 원어(에예 아쉐르 에예)는 직역하면 "나는 '나는 있다'(혹은 '나는 이다')이다"이다. 헬라어 70인역은 "나는 있는 자이다"(에고 에이미 호 온)고 번역했고,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직역했다('I am that I am'). 우리 말에 '여호와'(예호와)로 번역된 하나님의 히브리어 명칭은 '이다' 혹은 '있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서 위의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성적 추론들을 인정한다. 시편 19:1-4,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궁창이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는 말씀은 우주론적 논증이나 목적론적 논증을 암시한다.

로마서 1:19-20,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인간 본성 속에 보인다는 말씀이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는 말씀도 우주론적 논증과 목적론적 논증을 암시한다.

히브리서 3: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이것도 우주론적 논증과 목적론적 논증을 내포한다.

시편 94:8, 9,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이 말씀은 다음의 두 구절들과 함께 목적론적 논증과 관계된다.

사도행전 14:16, 17,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7:24-28, ". . .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자연적 증거들보다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들, 즉 신현(神現, 직접 나타나심)과 말씀과 기적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충만한 증거들이 아닐 수 없다. 신명기 4:32-35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증거하였다: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끝에서 저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1-3. 무신론의 어리석음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주장하는 무신론(無神論)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많은 증거들, 즉 자연만물과 성경의 증거들을 무시하므로 참으로 어리석다. 그래서 시편 14:1은 말씀하기를,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고 했다. 무신론자는 무슨 증거를 제시하는가? 그는 아무런 믿을 만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무신론은 어리석은 사상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 죄악이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 자체가 큰 죄이다. 또 무신론은 인간의 종교적, 윤리적 죄악들의 뿌리이다. 시편 14:1은 말씀하기를, "저희[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죄 가운데 내버려 두셨다. 로마서 1:28은 증거하기를,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다.



2. 하나님의 속성들

하나님의 속성(屬性, attribute)이란, 하나님의 존재와 그 사역들에 있어서 그에게 돌려지는 성질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결코 그 둘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전(全) 본질은 각 속성에 관계되어 있고,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은 전 본질에 관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비록 하나님의 본질(what) 자체에 대해서 묵상하거나 파악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시된 속성들(what kind of)을 통하여 그의 본질에 대해 좀더 많은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존재이신지 즉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정의(定義)하기 어려우나, 그의 속성들로 그를 서술할 수는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4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답: "하나님은 그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과 의와 선과 진실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영이시다."



2-1. 영(靈)이심

첫째로,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을 만드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신 것은 그의 영성(靈性)을 잘 증거한다. 우상숭배는 성경에서 가장 큰 악이다. 요한복음 4:24에서, 예수께서도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증거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영이심은, 우선 그가 육체를 가지고 계시지 않으며 물질적 존재가 아니심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24:39에서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증거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는 인간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계시지 않으며 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존재도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영이심은, 또한 그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18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라고 증거했고, 로마서 1:20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 . . "라고 말씀했다. 골로새서 1:15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디모데전서 1:17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 그리고 디모데전서 6:16은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라고 말씀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2계명은 하나님의 이 불가견적(不可見的) 영성에 근거한다.

물론, 성경에 하나님의 손(출 3:20), 하나님의 팔(출 6:6), 하나님의 귀와 눈(사 37:17) 등의 표현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런 표현들은 하나님의 속성들과 능력들과 활동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들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형상화(形象化)하는 자들은, 이 표현들을 오해한 자들이요,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명백한 성경 진리에서 탈선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와 같은 육체를 가지고 계신다고 주장했던, 17세기의 스위든볼그(Swedenborg) 같은 신비주의자들이나 오늘날의 몰몬교도 같은 이들은 다 잘못이다.

성경에 때때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표현한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하였다(창 18장, 창 32장). 출애굽기 24:9, 10, "모세와 아론과 . . .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러나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천사나 사람의 형상으로 낮추어 계시하신 모습 곧 그의 영광의 단면을 보았다는 의미이다.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표현도(마 5:8),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단면을, 보다 밝아진 영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는 뜻이요, 하나님의 무한하신 영의 본질을 본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유한(有限)한 인간은 무한(無限)하신 하나님의 본질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이심은, 또한 그가 살아계신 분이심을 내포한다. 하나님은 생명 없는 이론이나 개념이 아니고 살아계신 영이시다. 그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모든 우상들과 하나님의 다른 점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 10:10은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라고 증거하였다. 디모데전서 6:16도 "오직 그[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라고 말씀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시며 생명 자체이시다.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팔, 하나님의 귀와 눈 등의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활동하심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영이심은, 특별히 그가 인격적 존재이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이시지만, 동시에 인격적 존재이시다. 하나님께서 인격적이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이심을 말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생각하시고 감정을 가지시며,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2:4, 5은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라고 말씀했다. 에베소서 1:11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라고 말씀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 표현들은 그의 인격성의 한 증거이다. 또한, 인격적 하나님이신 그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과 교제하신다.



2-2. 무한(無限)하심

둘째로, 하나님은 무한(無限)하시다. 하나님의 무한성은 그의 존재와 그의 속성들에 적용된다. 우선, 하나님은 그의 존재에 있어서 무한하시다. 시편 145:3은 "여호와는 광대하시니[크시니] 그의 광대하심[크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키, 하나님의 가슴둘레, 하나님의 몸무게가 얼마이겠는가? 누가 하나님을 측량할 수 있겠는가? 솔로몬을 말하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殿)이오리이까?"고 하였다(왕상 8:27). 이사야 66:1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라고 증거하였다. 예레미야 23:24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했고, 시편 139편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고 말씀했다(7-10절).

하나님의 무한성은 공간적 무한성을 포함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들의 총화(總和)가 아니고 그 이상이다. 그것은 모든 공간적 제한성을 초월하심과 동시에 모든 공간의 각 부분에 현존(現存)하시는 성질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유한성 즉 공간적 제한성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초월적 방식으로 모든 공간에 충만하시다(Turretin, Berkhof, 박형룡). 그는 초월자로서 안계신 곳이 없으시며(無所不在) 어디에나 계신다(遍在, omnipresent).

물론 그를 단순히 만물의 총화(總和)와 동일시 하는 소위 범신론(汎神論, Pantheism)은 잘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존재에 있어서가 아니고 단지 지식이나 능력에 있어서만 모든 곳에 존재하신다고 생각하는 소위 자연신론(Deism)이나 소시너스주의(Socinianism)도 또한 잘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성과 편재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고 표현하였다. 모세는 신명기 26:15에서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下鑑)하시고"라고 표현하였다. 솔로몬은 열왕기상 8:30에서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라고 말했다. 역대하 30:27은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고 말씀했다. 예수께서도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마 6:9).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므로, 때때로 성경은 그가 세상에 내려 오셨다고 표현하였다(창 11:5). 또 에녹과 엘리야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주 예수 자신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러한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그의 특별한 영광을 나타내시는 한 처소를 두셨다는 것을 증거한다. 성경에서 '하늘'이 장소적 의미가 없이 단지 하나님의 초월성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성경에 자세히 증거된 엘리야나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하늘 위로의 장소적 이동은 무의미할 것이다(왕하 2:11; 행 1:9-11).

하나님은 또한 그의 모든 속성들에 있어서도 무한하시다. 그것은 그의 완전성(完全性)이라고도 표현될 수 있다. 그는 지혜와 지식과, 능력, 거룩과 의, 선에 있어서 무한하시다. 즉 그는 완전자이시다. 그는 완전충족하셔서 어떤 점에서도 부족이 없으시다. 그의 완전성은 곧 그의 영광이다. 그는 빛 가운데, 영광 중에 거하시며 피조물들에게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엄위하시다. 그는 하늘과 땅에서 인생이 유일하게 영원히 사모할 만한 분이시다(시 73:2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2은 하나님의 완전성 혹은 완전충족성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 안에 그리고 그 자신으로부터 모든 생명과 영광과 선과 행복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홀로 그 자신 안에서 그리고 그 자신을 향해 완전충족하셔서, 그가 만드신 어떤 피조물들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그것들로부터 아무런 영광도 끌어내지 않으시며, 오직 그 자신의 영광을 그것들 안에, 그것들에 의해, 그것들을 향해, 그리고 그것들 위에 나타내실 뿐이다. 그는 모든 존재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모든 것들은 그로부터,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는 그것들 위에 지극히 주권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계셔서 그 자신이 기뻐하시는 것을 무엇이든지 그것들에 의해, 그것들을 위해, 혹은 그것들 위에 행하신다."



2-3. 영원하심

셋째로,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앞에서 생각한 하나님의 무한성은 시간적으로는 영원성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고 영원 후까지 계신다.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맨처음에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었음을 보이는 동시에, 또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은 영원하심을 증거한다. 창조 세계에 속하지 않는 그는 영원하시다. 욥기 36:26은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고 표현했다. 시편 90:2은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고 말씀했다.

시간은 창조로부터 시작되었고 창조 세계 속에서 사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시간 속에 속한 분이 아니시고 시간을 초월하는 분이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그는 창조 세계에 속하지 않는, 그래서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실 수 있는 초시간적이며 비시간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시편 90:4은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고 말씀했다. 그는 어떤 이의 표현과 같이 '영원한 현재'이시다. 엄격히 말한다면, 그에게는 전(前)도 후(後)도 없고, 과거도 미래도 없다. 촬스 핫지는 말하기를, "그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이 없고, 모든 것이 그에게 동등으로 또는 항상 현재이다. 그에게 '기간'(duration, 시간 흐름의 과정)은 영원한 현재이다"고 하였다(Charles Hodge, I, p. 385).

영원성은, 시간적 시작을 부정하는 개념이므로, 또한 '영원자존성'(永遠自存性)을 포함한다. 그것은 또한 어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절대성'이라고도 표현된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제1 원인 혹은 궁극적 원인이시며, 또한 자신의 존재의 근거가 자신 이외에 없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원인이시다. 사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신 하나님은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 아니실 수 없다. 또한, '여호와'(예호와 혹은 야훼)라는 그의 이름도 그의 영원자존성을 나타낸다. 이 말은, '이다, 있다'는 뜻의 히브리어 기본 동사(하야의 고어형[古語形] 하와의 칼[단순형] 미완료 3인칭 단수)에서 나왔고 그 의미는 출애굽기 3:13, 14의 말씀대로 '그가 (스스로) 계신다'는 뜻일 것이다.



2-4. 불변하심

넷째로, 하나님은 불변하시다. 시편 102:27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라고 말씀했는데, '여상(如常)하시다'는 말은 '동일하시다'(the same)는 뜻이다. 말라기 3:6은, "나 여호와는 변역지[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다. 또, 야고보서 1:17에는, "그는[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비(非)활동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항상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5:17에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활동들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본질과 속성들의 불변성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의지[뜻]와 계획과 작정의 불변성을 의미한다. 시편 33:11은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고 증거했다. 또, 이사야 14:24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씀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뜻하신 바를 변경함이 없이 다 성취하신다.

성경에 때때로 '하나님께서 뉘우치신다, 후회하신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예들 들어, 출애굽기 32:14에 보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말씀했고, 사무엘하 24:16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말씀했다. 요나 3:10은, "하나님이 그들[니느웨 사람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말씀했다. 이런 표현들은 인간편에서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 표현들로서 하나님의 불변성과 충돌되지 않는다.

무한,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철학적, 종교적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시다. 그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유일하고 완전한 대답이시다. 인간은 모든 문제의 대답이 되시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 영원자존자이신 그 안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만, 참된 안식과 안정을 찾을 수 있다.



2-5. 지혜로우심

다섯째로,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무한하시고 완전하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크심은 그의 창조하신 만물에 잘 증거되어 있다. 성경도 그의 크신 지혜와 지식을 밝히 증거한다. 욥은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면서(욥 12:13), 하나님을 '지혜(데임, 지식)가 온전하신 자'라고 표현하였다(욥 37:16). 시편 139:1, 2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라고 고백했다. 한나는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고 기도했다(삼상 2:3). 예수께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심을 증거하셨다(마 10:30). 또, 히브리서는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증거했다(히 4:13).

지식은 대상에 대한 지적 이해라고 볼 수 있다. 지식의 대상은 현실적인 것 뿐만 아니라, 또한 가능적인 것도 포함한다. 하나님의 지식은 모든 지식의 원형(原形)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지식은 직각적이며 독립적이고 총괄적이며 동시적이며 개별적이며 명확하고 완전하며 불변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람의 지식은 점진적이며 의존적이고 부분적이며 제한적이며 불명확하고 불완전하며 가변적이다. 하나님의 지식의 범위가 전포괄적(全包括的)이므로, 하나님의 지식은 보통 전지(全知, omniscience)라고 불리운다.

지식과 구별하여, 지혜는 지식을 응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지식을 응용하여 최선의 방법을 사용하셔서 최선의 목적을 이루시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다. 로마서 11:33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증거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인간이 그를 속이려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인간은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솔직해야 한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완전하심을 깨닫고 인정한다면, 우리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의 인도하심과 다스리심에 복종해야 할 것이다.



2-6. 능력이 있으심

여섯째로,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다. 구약에서 '하나님'으로 번역된 말들(엘, 엘로힘)은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나타낸다. 그 말들은 '강하다'는 말(울)에서 나왔다고 본다. 하나님은 위엄과 능력이 있으시고 그의 능력은 전능(全能, omnipotence)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능자'(샤다이) 혹은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 창 17:1)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심을 증거한다. 창세기 18:14은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욥은, "주께서는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며"라고 고백했다(욥 42:2). 예레미야는,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고 고백했다(렘 32:17). 누가복음 1:37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이니라]"고 증거했다.

하나님의 전능(全能)은 측량할 수 없는 무제한적 능력이지만, 그는 그의 뜻 가운데 스스로 전능의 사용을 제한하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기적은 항상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성질에 모순된 일들을 행할 수 없으시다. 예를 들어, 그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 범죄하실 수 없고, 변하실 수 없고, 죽으실 수 없다. 바울은 말하기를,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했다(딤후 2:13).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變改)함이 없으시니"라고 증거했다(삼상 15:29). 또 바울은 디모데전서 6:16에서 '하나님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그의 인격성과 연합하여 그의 주권성(主權性)으로 나타난다. 그는 그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무엇을 행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주권적이시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구원 문제에 관계하여,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증거하셨다(마 19:26). 주권성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주'(아도나이)이다(창 15:2). 이 말은 '재판하다, 통치하다'는 뜻을 가진 말(둔)에서 나왔다. 신명기 10:17은,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라고 말씀했다. 역대상 29:11은,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主權)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 . .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라고 말씀했고, 역대하 20:6은,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믿는 자는 어떤 처지, 어떤 환경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망치 않고 그에게 기도하며 모든 일을 맡기고 잠잠히 그만을 바라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우주와 인생의 모든 문제들의 열쇠가 있다.



2-7. 거룩하심

일곱째로,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모세는, 출애굽기 15:11에서,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라고 고백했다. '거룩하다'는 히브리어(카도쉬)는 '분리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모든 피조 세계와 분리되어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 존재적 엄위성은 모든 피조물의 찬송과 경배의 이유가 된다. 시편 22:3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고 고백했다. 이사야 6:3은, 천사들이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증거하였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또한 모든 피조물의 죄악과 불결로부터 떠나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 도덕적 우월성은 인간들의 도덕적 의무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1:45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말씀하셨다. 도덕적 의미에서의 거룩은 의(義)와 비슷하다.



2-8. 의로우심

여덟째로,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고 증거했고(스 9:15), 시편 145:17은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라고 고백했다. '의'라는 히브리어(차디크, 체데크, 체다카)는 본래 '어떤 기준에 맞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는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며, 자신의 도덕적 완전성에 항상 일치하는 의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의의 속성은 그가 제정하신 도덕법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법에 일치한 인격자가 될 때, 그는 의로운 자로 불리운다. 모세는, 신명기 6:25에서, "우리가 그[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지극히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또한 피조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지극히 의로우시다. 그는 피조물들을 다스리시고 그들의 행위들을 판단하심에 있어서 의로우시다. 이것을 '통치적 의'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의로운 통치자시며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디모데후서 4:8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불렀다. 시편 9:8은, "[여호와께서]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그가 선한 자에게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는 데서도 나타난다. 선한 자에게 상을 주시는 '보상적 의'와,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는 '형벌적 의'를 모두 '보응적 의'라고 부른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2:5-8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 . .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했다.

특히,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는 형벌적 의의 속성은 복음진리를 이해하는데 매우 필수적으로 중요한 사실이다. 하나님께 이러한 공의의 속성이 없으셨다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반드시 필요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의로우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3:1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증거하였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형벌적 공의의 속성을 부정하지만, 성경은 매우 분명히 이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고 땅은 그들로 인해 저주를 받았고 그들은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창 6-8장)이나 그 후 악하고 음란했던 소돔 고모라성의 유황불 심판(창 19장)은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이었다. 이 외에도, 성경의 많은 말씀들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의 형벌을 가르치고 있다. 그 대표적 몇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시편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예레미야 30:23, 24, "보라,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예레미야 애가 2:1- 4,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 . . 진노하신 날에 . . . 노하사 . . . 맹렬한 진노로 . . .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나훔 1:2, 6,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 . . .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2-9. 선하심

아홉째로, 하나님은 선하시다. 시편 106:1은,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말씀했다. '선(善)하다'는 개념은 '이상(理想)에 맞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이상에 완전히 부합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철학자들이 표현했던 대로, '최고 선'(最高善)이시며 모든 선의 원천이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사랑, 은혜, 인자(仁慈)와 긍휼, 오래 참으심 등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성적 피조물인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모두 선하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신다'고 표현하셨다(마 5:4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의미로 그의 택한 자들을 사랑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인들의 구원에서 나타난 그의 사랑이다. 요한복음 3:16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은혜(히브리어 켄, 헬라어 카리스)란, 받을 권리가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속적(救贖的)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바울은, 로마서 3:24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에베소서 2:8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증거하였다.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긍휼(히브리어 케세드와 라캄, 헬라어 엘레오스)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형벌과 고통 중에 있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심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친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수)천대까지 은혜(케세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다(출 20:6). 또 그는, 출애굽기 34:6에서, 자신을 '자비롭고(라캄)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케세드)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셨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레크 아프)은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악인들과 불순종자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신다. 출애굽기 34:6에서, 그는 자신을 '노하기를 더디하는' 하나님으로 증거하셨다. 바울은, 로마서 2:4에서,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께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물들에 대해서도 선을 베푸심을 의미한다. 시편 145:9, 15은 증거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만유[모든 생물들]를 선대(善待)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 . . 중생(衆生, 모든 것들)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라고 하였다.



2-10. 진실하심

열째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시편 36:5은,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라고 고백했다(시 57:10; 108:4도 비슷한 말씀임). 시편 89:14은,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고 말씀했다. 시편 92:2은,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고 했다. 바울은, 로마서 3:4에서,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라고 증거했다. 심지어 이방 선지자 발람도,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거짓말하지] 않으신다'고 말했다(민 23:19).

진실이란, 이름과 실질, 속과 겉, 말과 행위가 같은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름 그대로 참되신 하나님, 곧 참되고 완전한 신성을 가진 하나님이시다. 그는 그의 중심과 외적 표현, 그의 말과 행위가 항상 동일하시다. 그는 문자 그대로 참되시다. 그에게는 어떤 거짓도 없으시다. 또한 그는 그의 약속에 대하여 성실하시며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 하나님의 약속에 있어서의 신실함은 성도들의 믿음과 소망의 근거요 기쁨의 원인이다. 모세는, 신명기 7:9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는 . . . 신실한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라고 말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13에서, "우리는 미쁨[신실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항상 신실하시니]"라고 말했다. 히브리서 10:23은,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고 교훈하였다.

이와 같이, 영(靈)이심, 무한하심, 영원하심, 불변하심, 지혜로우심, 능력이 있으심, 거룩하심, 의로우심, 선하심, 진실하심 등 열 가지의 속성들은 성경에서 하나님께 돌려진 속성들이다. 이 열 가지 중, 무한하심, 영원하심, 불변하심 등 세 가지는 하나님께만 있는 속성들이다. 이것을 흔히 하나님의 '비공유적(非共有的)' 속성들이라고 부른다. 나머지 일곱 가지의 속성들, 다시 말해, 영이심, 지혜로우심, 능력이 있으심, 거룩하심, 의로우심, 선하심, 진실하심 등의 속성들은 피조물들에게도 어느 정도 나누어 주신 속성들이다. 이것을 흔히 하나님의 '공유적(共有的)' 속성들이라고 부른다.



3. 삼위일체

성경은, 또한, 하나님께서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하나님이심을 밝히 증거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제6문: "하나님의 본체 안에 몇 인격들(persons)이 계신가?" 답: "하나님의 본체 안에 세 인격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신데, 이 셋은, 본질(substance)에 있어서 동일하시고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신 한 하나님이시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은 다음과 같은 요점들을 포함한다.



3-1. 본체의 단일성

첫째로,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다. 성경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세상에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문: "하나 이상의 하나님들이 계신가?" 답: "살아계시고 참되신 오직 한 하나님이 계신다." 성경이 밝히 증거하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주요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단수; '우리'가 아니고]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신명기 6:4,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이사야 44:24,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의 유일하심은 그의 본체의 단일성이라고 이해된다. 하나님의 본체(혹은 본질)란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과 활동들의 공통적 주체(主體)가 되는 객관적 존재를 의미한다. 우리 말에 본체와 본질은 약간 다른 뉘앙스를 가지는 것 같다. 본질(本質)은 단순히 하나님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모든 것(what God is, or whatever it is to be God)을 가리키는 비교적 추상적 개념이지만, 본체(本體)는 그러한 본질을 가지신 구체적 존재를 가리키는 맛이 있다.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본체에 있어서 하나이시다.

촬스 핫지는, 니케야 신조의 호모우시오스('같은 본체[혹은 본질]의')라는 말이 단순히 종류적 동일성(specific sameness)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수적인 동일성(numerical identity)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말하기를, "만일 호모우시오스라는 말이 종류적 동일성의 의미로 해석된다면, 니케야 신조는 삼신론(三神論, Tritheism)을 가르칠 것이다"고 했다(I, p. 460).

초대교회에 작성된 아다나시우스 신조(Symbolum Quicunque)는 다음과 같이 보다 분명하게 진술한다: "아버지는 영원하시고, 아들은 영원하시고, 성령은 영원하시다. 그러나 그들은 세 영원자들이 아니고 한 영원자이시다. . . . 이와 같이 아버지는 전능하시고, 아들은 전능하시고, 성령은 전능하시다. 그러나 그들은 세 전능자들이 아니고 한 전능자이시다. 이와 같이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아들은 하나님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들은 세 하나님들이 아니고 한 하나님이시다"(Philip Schaff, Creeds of Christendom, II, p. 67).



3-2. 삼위의 구별

둘째로, 하나님께는 아버지[성부]와 아들[성자]과 성령의 삼위(三位, 세 인격)가 계시며, 이 삼위는 서로 구별되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3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하나님의 본체(the Godhead)의 단일성 안에, 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세 인격들, 즉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계시다. 아버지는 아무에게서 나시지도 나오시지도 않고,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성령은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

역사상, 하나님의 삼위의 구별을 부정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들을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 혹은 양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이라고 부른다. 성부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소위 성부(聖父) 수난설도 이런 사상에서 나온 오류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삼위 곧 세 인격의 구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마태복음 3:16, 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마태복음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린도전서 12: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위(位) 혹은 인격(person)이란, 자의식(自意識)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identity)를 인식하는 이성적 개체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본체 안의 삼위는 서로 구별되는 세 개체적 존재 혹은 실존(subsistence)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내가 의미하는 위(位)는 신적 본체 안의 한 실존, 즉 다른 둘과 관계되었으되 공유(共有)될 수 없는 특성들에 의해 구별되는 실존이다"고 하였다(기독교 강요, 1. 3. 6).

영원한 신적 본체는 동일하게 모든 위들에 공통되며, 이런 의미에서 그 셋은 하나이다. 그러나 이 신적 본체는 위적 특성들에 의해 구별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영원히 존재하시며, 이런 의미에서 그 셋은 셋이다. 뿐만 아니라, 삼위는 신적 본체와 나란히 있는 어떤 존재들이 아니고 그 본체 안에 있으며 신적 본체의 한 존재 양식이다. 아버지는 참 하나님이시요, 아들도 참 하나님이시요, 성령도 참 하나님이시다. 각 위는 신적 본체와 동일하고, 다른 둘을 합한다 할지라도 더 크지 않다. 그것은 각 위에 신적 본체 전체가 있기 때문이다.

☞ 아버지는 삼위를 대표하며, 그래서 그는 단순히 하나님으로 표현되고,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된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그는 또한 삼위일체적 관계에서 아버지로서 언급된다. 요한복음 1:14, "아버지의 독생자." 요한복음 5:17, 18,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 . . .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한복음 8:54,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요한복음 17:2, 3,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에베소서 1:3, 4,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 . .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삼위의 두번째 위[인격]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그의 신성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비록 메시아적 의미로 그 명칭이 사용되는 문맥이라 할지라도, 약속된 메시아는 신적 메시아이심이 증거된다. 다시 말해, 이 명칭은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존재론적 관계에서 아들이시다. 로마서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갈라디아서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요한일서 4:9,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독생자'(모노게네스)라는 명칭(요 1:14, 18; 3:16, 18, 요일 4:9)은, 비록 사람의 외아들(눅 7:12; 9:38)이나 외동딸(눅 8:42)에게도 사용되지만, 성부와 성자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라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증거하는 다른 여러 구절들(마 11:27; 요 5:18-25 등)도 이런 의미를 암시한다. 신성은 인격성을 내포하고,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 간의 인격적 관계에서 가장 잘 이해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1의 말씀(로고스)은 인격적 신성의 존재로 인정되어야 하므로 그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또한 성자[아들]의 영원 출생의 신비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3은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에게서 나시고"라고 표현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영원하다. 그 관계를 시간 세계 속의 무엇으로 생각한다면, 아들의 신성에 결함을 주고 그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출생을 영원적이라고 말해야 한다. 영원적이라는 말은 비시간적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예수께서는 친히 요한복음 17:5에서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성자의 영원 출생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원하심, 그의 불변하심 그리고 성자의 참된 신성 등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성자의 영원 출생의 교리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성자의 참된 신성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의 진술과 같이, 다음의 4가지 요점으로 정리된다.

① 신적 명칭들에 의하여. 이사야 9:6, "그 이름은 . . .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요한복음 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디도서 2:13,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요한일서 5:20,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② 신적 속성들에 의하여.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골로새서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③ 신적 사역들에 의하여.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④ 신적 존영들에 의하여.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요한계시록 5:12, 13,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완전한 신성을 부정하는 고대의 아리우스주의(Arianism)와 오늘날의 일위신론(一位神論, Unitarian- ism)이나 자유주의는 명백히 이단이다.

☞ 삼위의 세번째 위[인격]는 성령이시다. 성경에서 성령은 몇 가지 명칭으로 불리웠다. '영'(루아크, 프뉴마)은 바람같이, 생명의 호흡같이 일하시는 그의 외적 사역의 양식을 나타낸다. '성령(聖靈)'은 그의 본질과 사역의 거룩한 속성을 나타낸다. 그는 거룩한 영이시며 거룩을 이루는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영'은 그의 신성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보인다. '그리스도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삼위일체적 관계성을 보인다.

성자의 영원 출생과 같이, 성령의 나오심도 영원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근거는, 성자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불변하심, 그리고 성령의 참된 신성이다.

성령의 참된 신성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의 진술과 같이, 다음의 4가지 요점으로 정리된다.

① 신적 명칭들에 의하여. 사도행전 5:3, 4, "네가 성령을 속이고 . . .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사도행전 28:25,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사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 .").

② 신적 속성들에 의하여. 고린도전서 2:10,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히브리서 9:14, "영원하신 성령."

③ 신적 사역들에 의하여. 창세기 1:2, "하나님의 신[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욥기 26:13, "그 신[영]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

④ 신적 존영들에 의하여.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초대교회로부터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을 부정하는 이단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단일신론, 소시너스주의, 일위신론 등이 그러하다. 특히, 그들은 성령께서 인격적 하나님이심을 부정했다. 그러나 성령의 신성은 그의 인격성을 내포한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격성은 성경에서 사용된 성령의 인격적 명칭들과 인격적 특성들을 통해 밝히 증거된다.

① 성령의 인격적 명칭들. 요한복음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성령은 헬라어에서 중성명사이지만, 여기 '그가'(에케이노스)라는 말은 남성 지시대명사로서 그의 인격성을 가리킨다. 에베소서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여기의 '이는'(호스)도 남성 관계대명사로서 역시 그의 인격성을 보인다.

② 성령의 인격적 특성들. 요한복음 14:26,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5:26,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사도행전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사도행전 10:19,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사도행전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사도행전 16:7,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오실 뿐만 아니라, 또한 '아들로부터도'(filioque = and from the son) 나오신다는 사실은 역사상 논쟁되었던 바이었다. 동방의 그리스 정통교회는 이 사실을 부정했고 그것이 11세기 동방의 그리스 정통교회와 서방의 천주교회의 분열의 교리적 주요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는 성경적 증거는, 그가 '하나님의 영'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영' 혹은 '아들의 영'으로 불리우신다는 사실에 있다.

요한복음 15:26,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1:19,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요한계시록 5:6, 어린양의 일곱 눈은 일곱 영 곧 성령이시다(1:4 참조). 또한 요한계시록 2:1, 7은 예수님과 성령을 동일시한다.



3-3. 삼위 간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시는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문답이 진술하는 대로, 삼위는 신적 본체에 있어서 동일하고 그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시다: "하나님의 본체 안에 세 인격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시며, 이 셋은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시고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신 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삼위는 그 위적(실존적) 특성과 사역에 있어서 일정한 순서를 가지시며 그런 점에서 그들 가운데 어떤 종속적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3, ". . . 아버지는 아무에게서 나지도 나오지도 않으시고,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성령은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 삼위 간의 논리적 순서는 아버지, 아들, 성령이시다. 비록 영원적으로이지만, 아들은 아버지에게,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종속되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셨고,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을 보내셨다. 요한복음 3:16, 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물론, 삼위의 참된 신성(神性)을 생각할 때, 삼위 간의 영원적 종속이라는 개념은 사람의 이성의 이해를 초월한 신비이다.

또한, 삼위는 서로 간의 사역에 있어서 구별되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신다. 낳으심은 성부만의 사역이다. 아들은 오직 낳으심을 받으신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을 보내신다. 성령은 오직 그들로부터 나오심을 받으신다. 이것을 삼위의 내향적 사역(opera ad intra) 혹은 본질적 삼위일체(essential Trinity)라고 부른다.

삼위는 또한 창조와 구속의 사역에 있어서, 비록 근본적으로는 연합하여 일하실지라도, 어느 정도 사역적 구별을 가진다. 창조는 주로 성부에게, 구속은 주로 성자에게, 구속의 적용(중생과 성화 등)은 주로 성령에게 돌려진다. 이것을 삼위의 외향적 사역(opera ad extra) 혹은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라고 부른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진리는 매우 신비하다. 이 진리의 교리적 진술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만족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라기보다 단지 단일신론이나 양태론(樣態論, Modalism) 혹은 삼신론(三神論) 등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삼위일체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이다. 박형룡 박사는 말하기를, "우리가 이것을 믿음은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는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자신을 이렇게 계시하신 때문이다"고 하였다(교의신학, 2권, 202쪽).

그러나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진리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 체계의 중심과 같아서 신학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만일 이 진리가 버림을 당한다면, 속죄와 중생 같은 다른 중요한 교리들도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위신론(一位神論, Unitarianism)은 항상 인간의 전적 부패성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부정하는 자력적(自力的) 구원 사상(펠라기우스주의와 소시너스주의의 인간론과 구원론)과 같이간다. 덧붙여, 삼위일체의 진리는 하나님의 독립성, 그의 자충족성(自充足性, 스스로 충족하심) 그리고 그의 인격성을 후원한다. 삼위일체이신 영원하신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아무 부족이 없으시며 인격적 교제와 사랑을 가지시는 하나님으로 더 잘 이해되는 것이다.


- 김효성 목사 -

 

출처 : coram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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