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010506 자녀를 위하여 울라 ! 사무엘하 19:1-8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꿈나무들입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교회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수가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미래가 매우 어둡다는 징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 주를 따르는 많은 여인들이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물 흘리는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3세기 경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타락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10년이 넘게 울었습니다. 모니카는 당시의 감독(담임목사)인 암브로스에게 낙심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감독님 제가 아무리 눈물을 흐리며 기도해도 내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군요. 어쩌면 좋은가요?” “자매님 낙심하지 마십시오. 눈물로 기도한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답니다.”
지금이야말로 자녀들을 위하여 울 때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악하기 때문입니다. 노아 홍수시대에 죄악이 넘쳐흘러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세상 남녀에게 현혹되어 죄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극도로 타락한 인간들의 부도덕성을 보고만 계실 수가 없어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심판하시고 말았습니다. 너나없이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가릴 것 없이 한결 같이 타락했기 때문에 결국 대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심판을 받은 것은 노아의 때보다도 한술 더 떠서 동성연애가 급속도로 유행처럼 번져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많은 사람들 중에 롯과 그의 두 딸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보시는 것처럼 지금은 노아의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과는 견줄 수 없는 음란과 온갖 죄악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녀로 키우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명령처럼 울며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본문 말씀에 위대한 다윗 왕의 통곡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4절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아들아 ”절규하며 다윗은 통곡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반역을 일으킨 도당을 일망타진하고 승리하고 돌아온 부하들 앞에서 다윗은 이처럼 슬피 울었습니다. 그 이유는 반역의 앞잡이가 다윗 왕의 세 번째 아들인 압살롬이요, 그 아들이 다윗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밧세바를 통하여 낳은 어린 아기가 병들어 죽어 갈 때 금식하며 밤마다 침상을 눈물로 흠뻑 젖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편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처럼 다윗은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자녀들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은 많지 않았습니다. 자녀가 죽게 되었을 때, 혹은 죽은 후에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 그 눈물의 1/10만이라도 평상시에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했더라면 그런 아픔의 눈물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여러분이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다윗처럼 언젠가 자녀들이 험악한 일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자녀의 아픔은 부모의 책임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자녀들이 아픔과 고통을 겪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잘 못 키웠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복된 삶을 살게 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잘 못 키워서 나쁜 버릇, 나쁜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하여 평생 아픔을 겪게 한다면 그렇게 기른 부모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특히 요즘 젊은 부모들은 자녀에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의존적인 아이, 버릇없는 아이, 절제 못하는 아이,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이기적인 아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부모가 간섭하고 부모의 그늘아래서 아이들을 기르려고 하면 하나님의 양육의 손길이 닿을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옛날 우리 어린 시절을, 부모가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고, 간섭하지 않아서 제멋대로 큰 것 같아도 얼마나 반듯하게 성장했습니까? 지나친 집착과 애정표현, 간섭이 아이들을 잘못 자라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3:6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보다 더 훌륭하게 키우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망아지 풀어서 뒷산에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자연스럽게 자라게 하듯 우리의 자녀들을 그렇게 키우면 됩니다.
탈선하거나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큰 틀만 정해주면 됩니다. 세상 환경이 자녀들이 올바르게 자라기에는 너무나 열악해서 우리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자녀들을 학원으로 내 몰고 학교에 자주 왕래하며 치맛바람으로 키우려 하지 말고, 무릎으로 키우려고 하십시오.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부모는 자녀의 운명을 사탄의 손아귀에 버려두는, 아주 몹쓸 부모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마18:14절의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면 그 아이의 영혼이 새로워지고 영혼이 깨어납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자녀의 겉 사람만 위하여 온갖 공을 들이고 속사람인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아닙니다.
요한 삼서 2절 “사랑하는 자들아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지금 한국 교회의 부모들은 육신이 잘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어요. 유대인들의 부모들을 보세요. 그들은 철저하게 영혼이 잘되게 하는 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유대인들이 세계의 은행을 장악하고, 경제를 장악하고 노벨상의 30% 가까이를 모두 휩쓸어 가는 저력이 바로 영혼이 잘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명망 있는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사회지도층이 되었다 해도 하나님을 모르고 영혼이 죽어 있다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 없이 자식을 키우면 분명코 그것은 잘못 키우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은 부모는 단언하건대 그들은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가 아닙니다.
다윗 왕은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요 성군이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자식에 대해서는 지나치리 만치 맹목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다윗 왕에게는 ‘암논’이라는 큰이들이 있었는데 장차 다윗을 이어 대권을 이어갈 황태자입니다. 암논이 이복 여동생인 다말을 연모하여 계략을 꾸며 그녀를 가까이 오게 한 후에 겁탈을 했습니다. 중동지방의 풍습은 근친결혼을 허용하기 때문에 배다른 이복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암논은 여동생을 겁탈한 죄보다도 더 큰 죄악을 저질렀는데 다말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 다시는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진정으로 암논을 사랑했다면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 응분의 처벌이 있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흉악한 죄를 지은 큰아들에 대해서 아무 징계도 가하지 않고 모른척하고 지나갔습니다. 자식의 잘못된 행실에 대해서 다스림이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면 결국 그 자녀는 그의 잘못된 행실을 고치지 못하여 고통 받고 살아야만 합니다.
다말에게는 친오빠가 있었는데 그가 다윗의 셋째 아들인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이 의분을 삭히지 못하고 관망하고 있는 터에 아버지인 다윗이 아무 처벌도 없이 그대로 지나쳐 버리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2년이 지난 후에 압살롬은 여동생의 원수인 암논을 죽이고 외국으로 도망을 가고 맙니다. 다윗의 맹목 적인 사랑이 이렇게 두 아들을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외국으로 망명을 떠난 지 3년이 지났는데 다윗은 압살롬 때문에 날마다 슬퍼하고 탄식했습니다. 이를 눈치 챈 국방장관인 요압 장군이 압살롬이 다윗 왕궁에 되돌아와 살 수 있도록 협력해 주었습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압살롬은 형을 죽인 흉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돌아온 압살롬에게 아무런 처벌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모의 곁에 돌아 온지 8년 되는 해에 압살롬은 군사를 일으켜 부왕을 궁궐에서 축출시키고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중심적이고 맹목적으로 사랑하며 키운 자식들은 대부분 부모를 귀하게 공경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대재벌에 속한 돈 많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큰아들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큰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대부분의 재산을 큰아들에게 물려주었는데 작은 아들에게는 거의 물려준 재산이 없어 빌딩 한 채를 주고자 했습니다. 큰아들은 동생에게 돌아가는 작은 빌딩까지도 차지하려고 아버지를 엽총으로 협박하고 동생을 못살게 괴롭혔습니다. 고통 받던 아버지는 경찰에 아들을 신고하여 보호신청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며칠 전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맹목적으로 기른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받기만 할 줄 알지 주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에게는 ‘아도니아’라는 아주 잘생기고 능력 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늙어 기동을 잘 할 수 없게되자 아도니아는 자기 세력을 규합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아도니아는 다윗 왕이 이제 겨우 10대 후반 밖에 안 되는 솔로몬이라는 배다른 동생을 왕위 계승자로 내정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아는 왕의 뜻을 거스리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윗은 부랴부랴 솔로몬을 대통을 잇는 왕으로 왕권을 승계 해 주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반역죄인이 된 아도니아 역시 솔로몬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성경에는 다윗이 다섯 아들이나 잃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맹목적이고 무모한 집착적인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다섯의 자식을 잃게 한 것입니다. 다윗의 잘못된 자녀교육 때문에 그의 아들이 고통을 당했던 것을 우리는 크게 교훈 삼아야 합니다.
부모의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자녀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행실로 말미암아 복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부모의 행실로 말미암아 자녀들이 1000대 까지 복을 받는 경우가 있고 그 보다더 놀라운 것은 부모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1000대 이상을 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후손들 중에는 영원토록 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 5:10 “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성도는 그 자손 대대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부모의 그릇된 행실 때문에 그 자손들이 고통을 다하는데 3-4대까지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민 14:18 “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자녀들에게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줘도, 또 온갖 정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뒷바라지 해 준다해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거나 패가망신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에게 잘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부모가 예수를 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자녀들이 부모의 믿음 때문에 복을 받게 해 주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더 해 봅시다. 다윗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지만 일생 일대에 지울 수 없는 큰 죄를 범하므로 말미암아 그로 인하여 자녀들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깨달은 것은 아무리 부모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축복 받은 자손이라 할지라도 그 자손의 행실에 따라 어떤 자녀는 축복을 받는가하면 어떤 자손은 저주를 받습니다. 왜일까요? 부모가 아무리 믿음생활을 잘 했다 하더라도 완전하지 못하기에 크고 작은 허물과 죄의 자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즉 잘하는 것도 있고 잘못을 범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신앙을 따라 올바르게 살려고 하면 부모로부터 이어지는 축복 권이 바로 그 자녀에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자녀가 믿음생활을 떠나 방탕하게 살면 부모의 허물로 인한 저주의 맥이 불순종하는 자녀에게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봅시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이스마엘과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이 비록 믿음의 조상이지만 그라고 해서 허물이 없겠습니까? 아브라함의 허물 때문에 이어지는 저주가 이스마엘에게 임하게 되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서 이어지는 축복 권은 이삭에게 이어지게 됩니다. 이삭의 경우도 봅시다. 그에게도 두 아들이 있었는데 역시 한 아들 에서에게는 저주권이 임하고 또 한 아들 야곱에게는 축복권이 이어집니다. 놀랍고 두려운 일이 아닙니까? 다윗이 저지른 범죄로 말미암아 가장 크게 저주를 받은 아들은 다윗의 둘째아들 압살롬입니다.
다윗은 어느 날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드는 석양에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한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목욕을 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됩니다. 다윗의 궁궐 옥상은 높은 곳에 있고 가정집은 낮기 때문에 가정집 뜨락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훤히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밧세바라는 젊은 여인이 다윗 왕을 유혹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한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윗과 밧세바 중 누구의 죄가 더 큰지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가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목욕하는 여인에게 사로잡혀 그 여인이 다윗의 충성스러운 부하 군장 우리아의 아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그녀를 데려다가 죄를 범하고 맙니다. 사건은 여기에서 멈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밧세바]라는 여인이 다윗에게 연락하기를 다윗의 아기를 잉태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있는 군장 우리아를 불러들여 그의 아내 밧세바와 잠자리를 갖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아와 다른 사람이 의심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충성스러운 군장 우리아는 자신의 사령관과 상관들이 전쟁터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내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느냐며 문지기의 숙소에서 잠을 잤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자 다윗은 우리아에게 서신 한 통을 총사령관 요압에게 보냅니다. 그 서신 속에는 우리아를 적진 깊숙이 보내어 죽게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우리아는 전사했고 다윗은 과부가 된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다윗 왕은 간음죄를 지었을 뿐 아니라 그의 남편을 고의적으로 죽인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저지른 죄 때문에 4명의 아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궁 10명이 강간을 당하는 비극을 맞기도 했습니다.
다윗의 죄로 인하여 크게 저주를 받은 아들이 압살롬이며 다윗이 이런 허물이 있었으나 그는 일평생 하나님 중심의 모범적인 삶을 살았기에 그 축복권이 솔로몬이라는 아들에게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실수하지 않고 밧세바를 취하지 않았다면 압살롬을 위시한 네 아들들이 참상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으며 여기서 우리는 너무나 큰 교훈을 얻게 됩니다. 부모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자녀들의 장래를 위한다면 부모들로 인해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저주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다윗과 아브라함 때와 같이 율법시대가 아니고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나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자녀에게 이어질 수 있는 저주의 고리를 예수의 피로 죄를 씻고 성결해 짐으로 말미암아 끊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은혜의 시대에 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부모와 자녀가 예수를 믿지 않아 속죄함을 받지 못했다면 저주의 고리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자녀들에게 자유를 얻게 하라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 피가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를 씻어 구원받게 할 뿐 아니라. 부모로부터 이어지는 저주의 고리를 끊을 수 있으며 나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저주의 고리를 말끔히 끊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내 자녀가 예수를 안 믿으면 내 허물과 죄의 저주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주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를 믿어야만 합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는 가를 이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잘 안 해도 좋으니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십시오. 내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자녀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여전히 저주의 고리가 이어집니다. 한 가지 다소 위안이 된다면 부모가 예수를 잘 믿으면 그만큼 죄를 덜 짓기 때문에 자식에게 이어지는 저주가 줄어 들 수 있습니다. 자식이 나이가 지긋이 들어도 부모 앞에는 모두가 어린아이처럼 어려 보입니다. 다윗 왕을 교훈 삼아 자녀에게 저주의 고리가 아닌 축복의 고리를 넘겨주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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