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생명을 얻는 부활

하나님아들 2018. 8. 4. 22:53

sg010415     생명을 얻는 부활   요한복음 20:19-29

 

'이솝 우화'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하루를 즐겁게 놀았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메뚜기는 아쉬움을 안고 하루살이에게 작별을 하며," 얘, 하루살이야 우리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놀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일이 뭔데" 하고 하루살이는 무슨 소리냐는 듯 메뚜기에게 대답했습니다. "내일이란, 캄캄한 밤이 지나면 다시 오늘처럼 날이 밝아 오는데 그게 바로 내일이야." "치! 오늘처럼 날이 밝아?, 거짓말. 서산에 넘어가고 있는 저 해를 보라고. 저게 어떻게 해서 다시 떠올라 밝아진다는 거냐."

 

메뚜기는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 적인 내일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하루살이는 도무지 미덥지 못한 코웃음만 흘릴 뿐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메뚜기가 개구리와 함께 놀게 되었습니다. 그 풍요로운 자연의 낭만이 깃들인 여름이 가고, 소슬바람 낙엽 지는 가을도 지나자 개구리는 메뚜기에게, " 얘, 메뚜가 이젠 그만 놀아야 할까 보다. 날씨가 추워 오니까 우리 내년에나 다시 만나서 놀자." 라고 말했습니다.

 

"내 년이 뭔데?" 메뚜기는 의아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응 내년이란 꽁꽁 얼었던 시냇물이 다시 졸졸 소리 내어 흐르고, 새들은 노래 하구, 온 산과 들에 다시 꽃은 피구...." 개구리는 열심히 내년에 대해 설명했지만 메뚜기는 "거짓말. 그래 시들은 꽃이 어떻게 다시 피어나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만 살다가는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란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고, 겨우 한 해를 살다가는 '메뚜기'에게는 '내년'이란 이해할 수 없는, 넘을 수 없는 어떤 세계였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도 그와 같습니다. 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천국이 어디 있으며 지옥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다시 부활하셨으며 예수를 믿다가 죽으면 그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 가고 예수님이 재림의 몸으로 다시 오실 때 죽은 우리 육체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말하면 코방귀를 뀌고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같이 어리석은 인생이요 내년을 모르는 메뚜기와 같은 우매한 인생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부활을 믿는 지혜, 부활을 확신하는 믿음을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사건은 다른 어떤 종교에도 없는 오직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사건입니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자신의 모든 재능을 동원하여 죽음에 도전해 보았고 또 죽음을 부인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생명의 승리를 믿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뿐 아니라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까지 믿을 때 구원의 축복과 선물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교회는 2천년 동안 부활신앙에 기초해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만 해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토요일이 주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면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식일이 변하여 주일로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난 엄청난 사건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 날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날을 공휴일로 정하여 쉬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일요일이면 쉬게 되는지 그 이유를 몰라요. 예수님께서 성금요일 날 돌아가시고 죽은 지 사흘만인 일요일 즉 주일날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이 날을 축제일로 정하여 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제자들은 겁에 질려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몇 명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다녀왔는데 무덤에 계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이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도마라는 제자가 빠진 10명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숨어 있을 때, 문은 안으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도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홀연히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하고 인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유령을 만난 것처럼 겁에 질려 얼굴이 굳어져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서서 친히 양손의 못 자국을 보여 주시고 옷을 제끼고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 주시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하시며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8일 만에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이것은 특별히 도마를 위해 나타나신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려는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했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난 후에 “나의 주시여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사실 도마는 열두 제자 중에 가장 믿음이 적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을 확인한 후에야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오늘도 도마처럼 보지 않은 것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이지 않는 세계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도마처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보지 아니하고 부활을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새로운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피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믿을 때에 구원에 이르게 되고 온전한 신앙인이 되며 그것을 믿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했습니다.

 

1. 평강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을 닫고 한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하신 첫마디가 바로 “평강이 있을지어다.” 즉 “샬롬”입니다. 비록 저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간 적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지 아니하고 “샬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샬롬”이란 말은 ‘평안하다, 풍요롭다, 온전하다. 범사에 잘된다. 건강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죽음의 공포에서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부활의 새로운 축복을 약속하신 것을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어떤 잘 믿는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그가 예수님과 함께 바닷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예수님과 자기의 발자국이 모래사장에 나란히 나 있었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또다시 보니까, 이제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몹시 불안한 마음으로 “예수님, 왜 발자국이 한 사람 것만 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불안해하고 고통을 당할 때에 나는 너를 내 품에 안았지 그리고 내가 너를 안고 갔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불안에 떨고 있을 때에, 고통을 당할 때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고민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번쩍 들어 안고 험난한 인생 길을 함께 가십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길 잃은 아이가 불안에 떨며 울 듯이 수많은 인생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해 떨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고 마약과 음란과 온갖 오락에 몰두합니까? 마음속에 있는 불안을 잠시라도 지우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인간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두 가지는 자신을 100%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어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 때문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시 38: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

스승을 잃은 제자들이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첫 마디의 말씀이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고독에서 불안과 죽음에 대한 불안을 지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시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부활을 믿는 성도는 낙망과 근심을 떨쳐버리고 부활의 믿음으로 인하여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2. 용기를 얻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같이 자기들도 로마군인에게 체포되어 죽게 될 것이 아닌가 두려워 떨면서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두려워 떨지 말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죽을지언정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비겁자가 되었으며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이 로마 병정에게 체포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비겁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제자들에게 나를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비밀이 있습니다. 부활을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첫 번째 선물은 성령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신 이유는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 두려움에 덜고 있는 겁쟁이들을 보내고자 하시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주셔서 평안과 담대함을 얻어 나가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더 나가가 큰 용기와 담력을 주시기 위하여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다음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였습니다. 120명의 사도와 제자들이 모여서 전혀 기도하기를 힘 쓸 때 태풍보다도 더 강력한, 용광로의 불보다도 더 뜨거운 성령 충만의 은혜가 120명의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또 간절히 구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컴퓨터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요즘 유행하는 컴퓨터가 586인데 초기에 나온 586보다 요즘 나온 586은 수백 배 이상의 저장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성령을 받지만 충만함을 받으면 다른 성도들 보다 몇 수십 배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능력을 얻게 되면 당연히 뒤따라오는 것이 용기입니다.

 

베드로는 어린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비겁자였지만 저가 성령 충만을 받고 능력을 얻어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신기해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담대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복음을 전하니 베드로의 전도로 믿는 자의 수가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던 제사장의 무리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다가 취조하고 엄히 위협하여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4:18) 명하고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이들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권능을 얻어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행4:33)허다한 무리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행5:14)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과 절망을 이기고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미국의 미시간주의 성 요셉 고아원에 말썽꾸러기 고아가 들어왔습니다. 고아원 선생인 베르다는 이 거치른 소년을 가르쳤습니다. 반항하고 싸우고 말썽을 필 때마다 베르다 선생은 이 소년을 붙들고 하나님께서는 너를 무척 사랑하신다 큰 꿈을 갖도록 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 어린이는 고아원에서 쫓겨났습니다. 어느 피자가계에 취직을 하여 베르다 선생님의 교훈을 새기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무척 사랑하신다 큰 꿈을 갖자"고 결심하며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 마침내 그는 11초 동안에 피자하나씩 반죽할 수 있는 최고의 피자 요리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피자 산업으로 큰돈을 벌어 미국 프로야구의 명문인 디트로이트를 운영하며 수많은 청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훌륭한 후진을 양성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미노피자의 사장인 토마스 모아단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이와 같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위대한 꿈을 실현하게 합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꿈과 용기를 갖고 살게 됩니다. 유럽 사람들이 동양 사람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을 믿는 믿음에서 오는 용기 있는 진취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축복 받은 나라입니다. 그 이유는 1970-1980년대에 한국교회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한국의 경제도 급속도로 함께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교회가 성장 속도가 멈추고 열정적인 신앙이 식어가게 되자 역시 한국의 경제도 IMF 환란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미국발 금융 위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축복 받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부활의 신앙을 토대로 성령 충만하여 과거의 열정을 되찾아야 합니다.

 

3.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본문은 도마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 의심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도마의 태도는 바로 오늘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도마처럼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보고도 믿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믿게 하신 것입니다.

도마는 실증주의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실 때에 도마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거기를 어찌 하겠사옵나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의심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심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부정적. 파괴적이 되고 맙니다.

의심이 많은 남편은 의처증이라는 병에 걸리고 의심 많은 아내는 의부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람들을 의심하며 불안에 떨며 사는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정신 분열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부정적인 무신론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마르크스 공산주의자들은 무신론자이며 종교 특히 기독교 정신적 아편이라고 하며 기독교 말살 정책을 폈습니다. 마르크스 공산주의자는 세상에 지상낙원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지상 낙원은 커녕 지상지옥을 만들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처음 나타나셨을 때에 그곳에 없었습니다.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불신의 병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의심으로 꽉 차 있습니다.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이니 어떻게 믿고 살 수 있겠습니까? 마귀는 거짓의 씨를 뿌리고 의심의 안개를 퍼트리고 다닙니다. 그래서 못 믿을 세상으로 만들어 마귀의 천국을 만드는 것이 저들의 꿈입니다. 마귀가 뿌려 놓은 의심의 안개 때문에 정작 믿어야 할 사실과 진리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지옥이 어디입니까? 믿지 못하는 세상이 지옥이 아닙니까?  마귀가 뿌려놓은 부정적인 의심과 회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사라지게 됩니다. “너는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는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해 준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이 없으면 언제라도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 의심하는 자가 되고 의심의 지옥으로 떨어져 불신하며 불안해하며 또 다시 어두운 세상을 헤매며 살게 됩니다.

 

로마서 6:10-11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 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지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때 우리의 죄도 함께 죽은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부활하실 때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믿으면 내 허물과 죄는 모두 사라집니다. 부활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번 부활주일을 통해서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강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용기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불신의 벽을 넘어 흔들림이 없는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부활의 신앙을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출처 : 지저스보이(Jesusboy)
글쓴이 : 물맷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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