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 지수와 축복의 함수
<유백선목 사/신명기 8:7-18 >
음악평론가 김진묵씨가 쓴 에세이 공연
<흔들리거나 반짝이는> 이란 책에 “가슴을 울린 선율”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80년대 중반에 워커힐 미술관에서
일본의 사미센 연주자를 초빙해서 콘서트를 가졌는데요.
그 연주자는 나이가 일흔을 넘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이런 고백을 했어요.
“제가 사는 고향은 일본 북부의 탄광지대입니다.
그곳에는 유난히 시각장애인 연주자들이 많았어요.
그 이유는 바람이 불면 석탄가루가 날아와서
유아들의 눈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유아들이 자꾸 눈을 비비게 된 것이죠.
그래서 안질이 걸리고 나중에는 시력을 잃은 경우가 많았거든요.
어려서 시력을 잃게 되면 생계를 위해서 구걸 수업을 받았는데,
현악기인 사미센과 노래를 배우서 생계유지를 해야 했어요.
한국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와 침술을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죠.
시각장애인은 사미센과 노래를 배워서 구걸하며 평생을 사는 데,
그곳 주민들은 시각장애인들을 박대하지 않았어요.
어느 집이나 눈병을 앓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노인 시각장애인 연주자가 사미센을 연주하면서 <아리랑>을 부르는 데,
순간 공연장이 숙연해졌어요.
연주자가 청중 서비스 차원에서 아리랑을 연주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어릴 적에 시력을 잃었던 그가 어떻게 조선 민요인 <아리랑>을 듣고
그걸 자신들이 연주한 걸까요? 태평양전쟁 준비로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의 노동자들이 저녁이 되면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아리랑을 불렀는데,
그곳 시각장애인들은 <아리랑>이 조선의 민요인 줄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입니다.
아마 아리고 쓰린 기구한 운명이 공통분모가 되어
문전걸식을 하는 기본 레퍼토리로 삼았던 것이죠.
이렇듯이 <아리랑>은 일본 민속음악의 모습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선율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숙명적으로 불행한 처지에 빠진 사람들이
고통과 고난을 어떻게 이길 수가 있을까요?
삶의 목적을 발견하고, 감사하면서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고통을 이겨낸 것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좋은 여건 가운데 살아도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은
인간의 행복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모릅니다.
현대인들은 행복에 주려있고 행복에 목말라 있습니다.
행복의 근원을 어디서 찾고 있을까요?
‘세상 것들이 많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원하는 걸 다 얻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이 갖지 않는 걸 갖게 되면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많은 것을 가져 봐도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 같아요.
오히려 많은 것을 가졌다가 잃고 나서 더 불행해진 거 같아요.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은 후에도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욕망 때문에 행복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지 않는 걸 갖고 있어도
마음의 즐거움이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윌리엄 로우는 말하기를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빨리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 데 있다.” 그랬어요.
여러분!
오늘은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절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내가 받은 축복이 무엇인지,
내 삶 속에서 행복을 가장 빨리 찾고 싶습니까?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먼저 감사하십시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
내가 일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감사는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말했어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에게 왜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했을까요?
감사하는 사람이 마음에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예수의 영이 그 마음을 주장합니다.
예수의 영이 마음을 주장하면 언제나,
어디서든지 평안합니다.
예수의 영이 마음을 주장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마음에 독(毒)이 없습니다.
예수의 영이 마음 속에 있는 죄의 독,
불순종의 독, 불신앙의 독을 뽑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독이 빠져야 행복합니다.
행복의 비밀은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옵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고,
자신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에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가운데서 주셨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름다운 땅에서 살기 원하십니다.
아름다운 땅의 모델이 본문 7절에 나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여기서 “아름다운 땅”은 히브리어로
“토바 에레쯔(tobah 'erets)”인데,
우리말로는 “좋은 땅, 풍부한 땅, 아름다운 땅, 값진 땅,
선한 땅, 부귀한 땅, (은총을 입어) 잘되는 땅, 기쁘게 하는 땅,
친절한, 가장 좋아하는 땅...”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땅,
좋은 땅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름다운 땅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잘되는 땅을 말합니다.
좋은 땅은 생명을 가진 씨앗을 잘 품어줍니다.
좋은 땅에서 씨앗이 잘 자라납니다.
좋은 땅에서 많은 결실을 거둡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7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 첫 번째 비유가 “좋은 땅과 씨앗”의 비유였어요.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잘 듣고 깨닫는 자이다.
잘 듣고 깨닫는 자가 결실한다.”(마 13:8,23)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먼저 하나님의 은총을 입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야
그 심령이 옥토가 되기 때문이죠.
심령이 옥토가 되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심령이 부귀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야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됩니다. 내 영혼이 은총을 입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할 때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니노미야 손도쿠는 말하기를
“마음의 논밭을 개간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황무지를 개척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랬어요.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마음의 논밭을 개간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좋은 땅이 되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땅이 되는 것일까요?
좋은 땅에는 항상 물이 흐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신 땅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냇물”은 히브리어로
“마임(mayim)”인데요. 우리말로는
“물, 수로, 홍수, 정액”이라는 뜻입니다.
“샘”은 히브리어로 “테홈(tehom)”인데,
우리말로는 “(지하의) 물 공급처”가 흐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이다.” 그랬어요.
축복받은 사람은 항상 심령에 하나님의 법이 흐르고 있습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가 마르지 않습니다.
“분천”은 히브리어로 “아야놋/아인(’ayin)”인데,
우리말로는 “분수, 눈, 시력, 기쁘게 하다,
닮음”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분수가 솟아나듯이 하나님의 지혜가 솟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믿음으로 지혜의 시력을 갖고,
인생을 기쁘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땅,
아름다운 땅에 어떤 소출이 있습니까?
주식인 밀과 보리가 풍성합니다.
과일과 기름, 꿀이 풍성합니다.
올해 쌀 농사 작황이 좋아서
484만 3천톤 가량 추수할 것이라는 통계가 나왔어요.
가는 곳마다 과일이 풍성하고,
특용 작물들도 풍성하게 거두었습니다.
세계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 이 때에
농작물이 풍성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합니까?
본문 9절을 보세요.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은총으로 옥토를 얻고,
모든 것이 풍성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을 지키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찬송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찬송하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베라케타(바랔/beraketa)”인데, 우리말로는
“(경배의 행위로서) 하나님을 송축하다,
은혜로 복을 주신 하나님께 찬송하다,
(풍성하게 주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무릎을 꿇다,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까요?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송하는 삶이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배와 찬송은 내면 깊은 곳에서 감사의 응답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송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합니다.
경배와 찬송이 감사의 성품으로 바꿔주기 때문이죠.
하나님께 경배할 때 겸손한 성품으로 변화됩니다.
겸손한 성품에서 감사가 나옵니다.
욥은 상실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했습니다.
“내가 발가벗은 몸으로 태어났으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동방의 부자로 살게 하셨다.
이제 발가벗은 몸으로 다시 세상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받았던 은혜에 감사한다.”
에드거 하우는 말하기를
“고통스러울 때 웃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노년이 되었을 때
웃을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랬어요.
여러분!
참된 감사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참된 감사는 원망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 압니다.
원망은 받은 은혜를 파괴하는 사악한 무기입니다.
불평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장애물입니다.
모든 일에 불평을 잘하는 사람들 중에 신앙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왜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불평과 원망이 많을까요?
자기 믿음의 지수가 높고 은혜에 대한 감사 지수가 낮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의 지수가 낮으면 낮을수록 불평지수가 높아집니다.
감사지수가 낮으면 상대적 비교에 빠져서 불행해집니다.
‘난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왜 저 사람보다 더 못해야 하는 거죠?
왜 저 사람보다 못살아야 하는 거예요?
왜 저 사람보다 더 불행한 겁니까?’
신앙생활이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으세요?
감성적인 뇌에 감사지수가 높여 보세요.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받은 은혜가 더 큰 것을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불평하지 않는 것은
현재의 상황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크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합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이 쓴 시편 32편 6~7절에 보면,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주는 나의 은신처이시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시 32:6-7) 그랬어요.
여러분!
감사 지수가 높은 사람이 왜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송하는지 아세요?
첫째는 하나님께 경(예)배하고 찬송하는 사람은 배부를 때,
교만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집을 얻었을 때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아요.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거만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얻은 것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그걸 알기 때문이죠.
반면에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
예배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물질의 축복을 받고 나서 교만에 빠집니다.
교만해지면 물질에 집착합니다.
거만하고 오만함에 빠지면 복도 빠져 나갑니다.
교만해지면 욕(辱)도 옵니다. 교만하면 다툼이 생깁니다.
잠언 기자는 말하기를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잠 16:18) 그랬어요.
본문 17절을 보면, 교만해졌을 때
어떻게 자기 주장을 펴는지 말하고 있어요.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지금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주의 크신 은혜 때문입니까?
아니면 내 능력으로, 내 노력으로 얻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내가 자수성가해서 얻은 것이라고 믿나요?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세 가지로 요약했는데요.
첫째는 너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가난을 면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
둘째는 지금은 가난하지만 부자를 존경하고 부자를 닮아서
부자가 되겠다는 집념이 있었다.
셋째는 가난하고 무식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내 삶을 맡아주시고 1등 인생으로 이끌어 달라” 하고 간구했다.
다른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었더니 진정한 부자가 되더라.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나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둘째는 하나님께 경(예)배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무릎을 꿇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항상 무릎을 꿇는 사람은 다른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
본문 19절을 보세요.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섬기고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미국 하원의원인 클라우드 페퍼는 말하기를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당신이 계속 페달을 밟는 한 넘어질 염려가 없다.” 그랬어요.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의 페달을 밟고 삽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기도하는 삶의 페달을 밟으면서 삽니다.
예배와 기도의 페달을 밟으면서 살아가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가이오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2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페달을 밟으면 거룩함을 잃지 않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경(예)배하는 사람은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이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본문 18절을 보세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라.”
여러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장미꽃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은 장미에 가시가 있는 것도 감사합니다.
그 이유는 가시가 장미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올해 내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습니까?
행복한 시간, 행복한 삶을 얼마나 추수하였나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해서 닳아졌다면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은사를 사용하지 않아서 녹슬어 버렸다면 아쉬워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마크 트웨인은 말하기를
“사람들은 20년이 지나면 이미 한 일보다 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 후회한다.
그러니 닻을 올려 안전한 포구를 떠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안고 출발하여 탐험하라.
꿈꾸라 그리고 발견하라.”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얼마나 많이 기억하느냐?
내 삶 속에서 감사의 지수가 높을수록 축복지수도 높아집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사람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십니다.
이제 감사의 습관으로 행복을 만들고,
풍성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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