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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이 무엇인가?

하나님아들 2018. 6. 19. 23:35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이 무엇인가?

  글/扈一麥

 

  교회 공동체 안에는 자기의 신분을 정확히 몰라서 가끔 물의를 일으키는 성도들을 보게됩니다. 장로님들과 목사님들이 다투는 것 중에는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인데 목사만 제사장이냐?" 하는 문제로 인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모두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한가지만 알고 또 알아야 할 것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성경에서는 죄라고 정의(定意)합니다. 권리만 주장하고 자기가 해야 할 것은 모른척 하든지 어떨 때는 진짜로 모르기도 합니다. '예수가좋다오' 에서도 자주 자기들의 권리만 주장하며 목사님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였을까요? 베드로 사도는 핍박을 당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주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지만 자기의 권리 부분만 알고있지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은 쏙 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집중 질문하여 보면 정말 각각 대답이 다릅니다. 오해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이고 왜 왕같은 제사장인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할 때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고난 당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한마디로 ‘성도’라 합니다. ‘聖徒’란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거룩’을 ‘코데쉬’라고 하는데 “잘라낸다”,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서는 ‘성도’라는 말 대신 ‘선민’이란 말을 썼습니다. “선택받은 백성”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택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선택받은 자가 되었다면 아브라함 이외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은 모두 버림받은 것일까요.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의 선택에는 배타성이 있느냐는 소리입니다. 아브라함 이전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선택하셨을 때는, 노아 가족을 제외한 당시 사람들 중 누구도 선택받은 무리에 포함되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노아의 가족들만이 선택받아 홍수의 심판을 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머지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사실 이 물음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나머지 인간들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고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홍수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배타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선택하려 하심)을 소홀히 여기고 응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하지 않았기에 선택받은 자의 무리에 속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부르심(선택을)하려고 전도자들에게 사명을 주어서 부르고 있지만 응답하지 않습니다.


 한 친구는 중학교 입학을 했는데 그 학교에 있는 불량배 써클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좀 껄렁거리는 점은 있었지만 불량 써클에 가입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써클에 있는 아이들 눈에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서클아이들에게 특별히 선택되었습니다. 한 학년에 몇 명씩 선택한 그 중에 선택된 것입니다. 그 친구는 그 아이들에게 특별히 선택되었기 때문에 불려가서 그 써클에 가입하든지 아니면 한 번 늘씬하게 맞고 가입을 안하든지 해야만 했습니다. 그 친구는 맞는 것이 겁이 나서 그만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중학교 2학년 때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에는 중학교 졸업도 못했습니다. 그 친구는 특별히 선택되었기 때문에 참으로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것에 선택되면 이렇게 인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께 선택되느냐, 사탄에게 선택되느냐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택하셨을까요?

 

[벧전2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신분을 말씀합니다. 즉 ①주님이 택하여 주셨고, ②신분을 높혀주셨고, ③주님나라에 백성 삼아 주셨고, ④주님과 화목하여 가까히 갈 수 있는 제사장 직분을 주셨습니다.

  ① ‘택하신 족속’ 이란 말은 ‘게노스’라는 말로 ‘혈통’또는 ‘출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혈통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진정으로 택함을 받은 족속은 혈통이나 민족의 차별이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선택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 갈 자로 택함 받은 자입니다. 혈통으로 따지면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 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위해 제물되시고 자기의 피를 가지고 하늘 지성소에서 단번에  제사 드려 나의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또 나를위해 기도하심을 믿고 시인하면 구원받는 자가 되는 것이 택하신 백성입니다.

  ② ‘왕 같은 제사장’ 이란 말은 그리스도인은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서 만국을 통치하며,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왕은 다스릴 나라와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으로 등극할 때 까지 고난만 겪고 오히려 도망만 다녀야 했던 것처럼 성도는 오히려 고난을 다스려야 합니다. 다스릴 것이 또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다스려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셋째로 자기에게 있는 달란트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제사장으로도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그렇습니다. 첫번째 왕인 사울은 왕으로만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고나서 버림을 받습니다. 반면에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리고도 복을 받았습니다.


  ③ ‘거룩한 나라요’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현 직책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거룩한’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린 것을 나타내는 말로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선별하신 존재들임을 시사합니다. 그중에 제사장직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죄인과 하나님의 중재자 입니다. 나의 죄를 예수그리스도로 제물삼고 하나님께 피를 드려서 매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물과 피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하여야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제사를 잘드려야 죄인이 죄를 용서받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은 상대도 하지않습니다. 상대하는 것은 피를 가진 제사장입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한 생명을 죽인 피를 하나님앞에 보여주어야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곧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바라보십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 지시길 원합니다. 우리는 주일을 거룩한 날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것이 또 있을 수 없습니다. 주일은 주의 날이라고 하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④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소유된’ 의 헬라어 ‘페뤼포이에신’이란 말은 특별한 값을 지불하고 획득한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그의 자녀로 삼으신 언약의 백성입니다. 우리의 인간 대표 아담이 마귀에게 속아서 자신뿐 아니라 후손 모두를 마귀에게 소유권을 넘겨주었습니다. 그것을 원래대로 복귀할 값이 없어서 영원한 마귀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마귀에게 죽으심으로 그값을 치루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죄와 마귀의 종에서 자유인이 되게 하셨고 믿는자에게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둘째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인류의 대표로 죽고 피흘리시고 다시살아 나셨습니다.우리는 이제 그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은혜의 해(年)를 선포하였는데 자기가 죄의 종에서 벗어난 것과 예수그리스도께서 마귀를 박살 낸 것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이겨서 우리는 자유자"라고 외쳐야 합니다.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950년대나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필리핀이나 오지의 밀림 속에서 일본 패잔병들 가운데 그 때까지 동굴 속에서 몇 년, 혹은 십여 년씩 숨어서 지나던 사람들이 발견되곤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기사는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에 누더기가 된 옷차림을 한 이들이 구식 소총을 들고 동굴 앞에 서 있는 사진과 함께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 패잔병들은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숨어서 극도의 불안한 생활을 하며 때때로 마을에 몰래 내려와 식량을 훔쳐 먹거나 도마뱀을 잡아먹고 열매로 배를 채운 것입니다. 쓸모 없게 된 녹슨 소총을 소중하게 간직한 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불행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죄와 사단과 사망의 권세는 예수그리스도 앞에 항복을 했습니다. 그 동굴에서 나오세요. 밝은 곳으로 나오세요" 분명하게 복음을 알려 주어야 할 소명(召命)자들 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과 책임을 잘 감당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때 "왕같은 제사장"이란 단어만 보고 다음에 있는 핵심 단어를 보려고도 안합니다.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위의 네 가지 신분을 주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두운데서 불러내어’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과정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권리만 보지 마시고 우리가 해야 할 사명과 책임을 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값없이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하여서 소리만 쳐주면 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내 가슴판에 깊히 새기고 밑줄을 쳐놓으셔서 주님의 부르심에 영광돌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서 지냈었으나, ‘만세전에 예정하신 뜻대로’ 불러내셨다는 사실과 불러내시고 네 가지 신분을 부여하신 목적은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덕’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타스” “아레타스”라는 말인데 ‘찬미’ 또는 ‘탁월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속성과 그 사역을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었는데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다음 번에 귀한 손님을 모시고 다시 갑니다. 혹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찾아갑니다. 왜 그 곳에 다시 갑니까? 전에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맛을 알기 때문에 다시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로움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자주 배반하고 그 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자신의 자비로움과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주십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 마냥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학생이 자신의 신분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게 될 때 청소년 범죄가 생겨나게 됩니다. 부모가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게 될 때 그 가정에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있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산돌로 세워진 신령한 가정의 성전에는 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제사장입니까? 구약에는 택한 레위족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제사장입니다. 과거 구약시대 때 제사장들이 했던 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중보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제사장 없이도 우리가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저도 제사장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그 제사장의 신분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언제든지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놓고 그분께 나아가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 분은 여러분을 만나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9절에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왕같은 권세와 권위와 능력을 함께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몸을 드려라, 그런데 구약시대 제사장은 죄인이 자기 목숨 대신 소나 양을 잡아 넘겨준 피를 제단에 뿌리고,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의 제사장인 우리는 무엇을 제물로 드려야 할까요?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 제사장의 의무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산 제사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특권만 생각하고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되게 하신 것은 다른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큰 특권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특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책임도 함께 주어졌습니다. 책임이란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전체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로마서 12장 1-2절만 읽고서 굼금해 하지 말고 12장 전체를 읽고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주일에 예배 할 수 있는 사람은 6일동안 삶의 예배를 잘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거룩한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우리를 부르신 이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서두에서 이야기가 나왔지만 목사의 신분은 성도를 가르치는 교사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목사는 주님께 속한 종입니다. 목사는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영적으로 교회의 책임을 지는 목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같은 장로라도 장로님은 교인 대표입니다.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모체로 각각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서로가 맡은 위치를 잘 알아서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기 위해서 입니다.

 

 요즘은 이단들이 목사의 직분을 펌하하려고 하는데에 편승하여 성도들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목사를 공격하지만 성경에는 목사의 신분이 분명히 기록 되어 있습니다. 아니라고 한다면 그 성경은 잘못 인쇄된 성경이든지 님들이 그쪽만 애써 안보려고 하시든지 두가지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15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모인 공동체가 있다면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머리로 부터 발끝까지 또,머리카락과 손톱과 발톱까지라도 자기의 역활이 분명하고 어느 것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비롯 못나보여도 목사는 교회의 대표이고 성도들에게 꼴을 먹이는 목자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를 배나 존경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로 존중을 해야 좋은 것을 공급합니다. 그리고  어느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든지 그무리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서로 질서를 지켜야합니다.세상이 교회공동체를 흔든다고 같은 편이 된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몸에 속한자가 아닙니다. 그것을 잘 감당하시며 세상을 살면서 고난이 오고 슬픔이 있어도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으로 승리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扈ⓗ

 

예수가좋다오/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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