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최근 들어 목회 리더십에 대한 이론이 교회성장과 맞물리면서 활발해졌다. 로버트 클린턴은(Robert Clinton)은 “리더십이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어느 사람이 어느 특정한 하나님의 사람들 그룹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 그룹에 영향을 끼치는 역동적 과정이다”라고 하였고, 리챠드 패터슨(Richard Patterson)도 “교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내와 방향을 제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목회 리더십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서 살펴 볼 때, 목회 리더십은 ‘목회자 자신’과 ‘하나님의 목표’라는 두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목회자 한 사람의 지도력이 교회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목회 리더십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회성장에만 목표를 두게 될 때, 비인격적이며, 물질만능과 세속주의 모습이라는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나게 됨을 볼 수 있다.
이는 목회 리더십을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하여 관심을 기울였다해도 ‘목회자 자신’ 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데에 그 원인이 있음을 진단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목회자’의 자질인 것이다. 목회자는 세상의 지도자와는 그 출발부터가 다르다. 왜냐하면 세상의 지도자는 자신의 철학과 사상에 기초하여 가치관을 선택하지만 목회자가 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출발하여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목회자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으면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현실은 교회갱신을 말할 때, 항상 목회자가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목회 리더십이 목회 성공론으로서가 아니라 목회자 자질론으로 다루어져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일웅 교수는 목회자의 자질이란 신학에 대한 학문적인 이해력의 소양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목사가 근본적으로 지녀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단히 쌓아가야 할 인간의 됨됨이와 신앙인격과 사역자로서의 충분한 리더십에 관한 것으로서, 목회자의 자질은 영성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본 소고는 목회리더십을 목회자의 자질에 맞춰, 이것이 영성과 관련이 있음에 초점을 두어 다루고자 한다. 우선 예수님의 리더십을 마가복음 10장 45절에 근거하여 ‘섬김의 리더십’ 즉 ‘Servant Leadership'으로 보고, 이를 영성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볼 것이며, 목회자의 자질에 있어서 목회자의 유혹과 고난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어 보고, 마지막으로 목회 리더십에 있어 영성 관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목회 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
1)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 ’권위‘의 문제
목회자의 리더십이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한 것은 예수님의 리더십이 어떠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라이힛톤 포드(Leighton Ford)는 [Jesus: The Transforming Leader]라는 책에서 아들로서의 리더(The Leader as Son), 전략가로서의 리더(The Leader as Strategist), 선견자로서의 리더(as Seer), 강한자로서의 리더(as Strong One), 목자를 만드는 자로서의 리더(as Shepherd-Maker), 대변가로서의 리더(as Spokesperson), 투쟁가로서의 리더(as Struggler), 종으로서의 리더(as Servant)로 예수님의 리더십을 구분하여 다루고 있다. 하지만,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은 미래의 교회에서는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확신하였고, 그 리더십은 이 세상의 파워 게임을 본뜬 리더십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주기 위해 오셨던 섬기는 지도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뜬 리더십이라고 주장했다. 폴 시다(Paul Cedar)도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으로 보여주신 리더십은 ‘섬기는 지도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목회 리더십에 있어서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2:25-28의 말씀은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diakonos)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doulos)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diakonesai),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가를 놓고 다투고 있을 때, 그들에게 종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의 통치자는 힘에 기초하지만, 종은 순종에 기초하며, 섬김과 희생에 기초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종으로서 섬기는 지도자가 되라고 하셨다.
하지만 여기에서 리더십과 관련하여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는데, 바로 힘, 즉 권위의 개념이다. 목회 리더십을 섬김의 리더십'으로 말할 때, 우리는 권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 권위는 분명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권위는 모든 사회 구조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 후에 하나님께서 가지신 권위는 그대로 인간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에로 옮겨지게 되어, 예수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성경이 인정하는 유일한 권위는 바로 구속사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담임목사 중심의 한국교회의 구조에서는 이 권위의 개념이 목회 리더십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목회자는 말로는 ‘교인을 섬긴다’, ‘성도를 돌본다’고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군림하며, 대접받는 모습 즉, 권위가 우선시 되어 나타나는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목회 리더십이 ‘종됨’과 ‘머리됨’ 이 두 가지가 상호 치완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은 머리가 되기 위한 것이라는 것으로써 목회 리더십은 늘 권위의 남용이 문제가 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은 예수님과 헤롯의 지도력을 비교하면서, 헤롯의 나라는 권세와 사치와 과시를 재현했지만 로마를 뒤집지 못했고, 이와 반대로 예수님은 헤롯의 리더십이 주는 기득권을 무시하고 사회 한구석에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였지만,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리더십이라고 설명해주고 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큰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정치적인 힘, 군사적인 힘, 경제적인 힘, 도덕적이고 영적인 힘의 시험에 굴복했다는 것에 있다. 조찬선은 [기독교 죄악사]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역사상 저지른 수많은 죄악상을 폭로하고 있다. 러스 라이드(Russ Reid)는 [무엇이 기독교 지도자를 망치는가?]라는 글에서 기독교 지도자의 권한의 남용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John R. W. Stott는 목회자에게 있어 리더십이란 용어는 결코 지배권(lordship)과 동의어가 아니며, 기독교 지도자들은 섬김으로 권위를 갖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물론 리더십에는 어떤 권위가 부여되어 있으며 또 그러한 권위가 없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으며, 가르치고 훈련하는 데에 그것을 행사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강조하는 바는 지배자로서의 지도자의 권위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서의 지도자의 겸손에 있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지도하는 권위는 힘이 아니라 사랑이며, 강요가 아니라 모범이며, 위압이 아니라 합리적인 설득이다. 지도자들은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은 섬기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손안에 있을 때에만 안전하다“
섬김의 리더십‘ 즉, ’Servant Leadership'에 있어서 'Leadership'이 우선인지 아니면 ’Servant'가 우선인지에 대해 쉽게 단정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둘은 함께 있으면서도 그 성격이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날 사도들에게 하셨던 말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은 목회 리더십의 모든 의미를 요약하는 말씀으로서, 교육, 설교, 목회상담, 사회 참여, 예전과 경축이 직업의 수준을 초월한 섬김의 행위가 되는 것은 목회자가 여기서 친구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목회 리더십은 ‘권위’ 이전에 ‘섬김’이 기초요, 우선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권위의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저항의 문제이다. 예수님은 옳치 않은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셨고, 그 당시 불의한 체제에 대해 저항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와 헤롯의 통치에 비판적이었고, 집권층 사두개파에 항의하셨으며, 자만과 안일에 빠진 바리새인들에 도전하셨고, 불의한 통치자들과 지배층을 과감히 비판하고 저항하셨다. ‘Servant Leadership'에서 권위를 내세우게 된다면 예수님처럼 불의한 체제에 대해 저항할 수 있을까? 권위를 앞세우는 지도자는 자기보다 크다고 여기는 권위 앞에서 저항하지 못했다. 이는 마치 구약의 궁중 선지자들이 왕의 비유를 맞추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과, 신약시대의 집권층이었던 대제사장과,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로마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은 것, 그리고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정경 유착하여 옳은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 목회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
그렇다면 목회 리더십에 있어서 '섬김의 리더십‘과 인간 구원과 관련되어 있는 권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 구원을 위하여 부여하신 권위를 사용하면서도, 예수님처럼 '섬김의 리더십'을 어떻게 행사 할 수 있을까? 이 딜레마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목회자 자신이 ‘종’이라는 정체성과 인격 그리고 삶을 드러내는 영성과의 관계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서 목회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를 바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다루고자 한다.
김세윤 교수는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제로 담당하는 사람으로 이해하여 리더십을 행사하였는데, 바울의 리더십의 모습은 한마디로 섬김, 즉 디아코니아로서 행사하였다고 설명한다. ‘디아코니아’는 원래 헬라어로 종이 식탁에서 시중든다는 말인데, 놀라운 것은 바울 당시 로마 사회와 유대인들의 공동체 내의 관직을 칭하는 말들을 보면 아르케(arche), 아르콘(archon), 티메(Time)등의 칭호가 흔히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런 말들은 우두머리, 또는 지배자라는 뜻이 강하나, 신약 성경은 교회 내의 직책을 맡은 자들에게는 일체 이런 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사도이든 선지자이든 디아코노스, 즉 섬기는 자 혹은 종노릇하는 자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헬라의 철학과 윤리가 섬기는 자들을 얼마나 비하했는지를 생각해 볼 때, 바울의 사상은 완전한 가치관의 전복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예수의 종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종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철두철미하게 자기의 사도직을 섬김으로 이해했고, 그리고 섬김을 통해 오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영적 리더로서의 힘이 하나님에게서 나옴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섬기는 지도자의 역할을 보다 온전히, 보다 안정되게 수행할 수 있음을 전제할 때, 이렇게 그 당시 헬라의 철학과 윤리가 섬기는 자들을 비하했던 시대에서도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종으로서 ‘Servant Leadership'을 행사할 수 있는 사상과 삶을 가진 데에는 영성이 기초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섬김의 리더십'의 원동력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사건으로 인한 그의 영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알아 늘 성령 안에서 깨어서 기도하는 영성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의 삶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정체성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위해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지도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바울의 ‘섬김의 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요소들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바로 목회자의 자질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우선, 고린도전서 9장 14-19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지도자로서 갖고 있는 권리 내지 권한을 포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원래 지도자들은 경쟁을 즐기고 이기는 것을 좋아하며, 자존심을 챙기고, 눈앞의 목표에만 급급하여 권리를 포기할 줄 모르는데, 바울이 예수님처럼 ‘포기’ 또는 ‘비움’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비움의 영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가 유능한 전문가의 대열에 끼이고 싶어하고 한계가 명확한 직책을 맡는 데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오히려 목회자는 무장을 풀고 자기를 비워야만 자유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긍정과 자기 부정 이 둘은 목회자의 정체성의 일부인 것이다.
또한 영적인 리더는 남을 위해 종이 되는 사람이므로 '섬김의 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요소는 '사랑의 영성'이다. 고린도전서 13장 4-8절을 보면, 사랑은 영적인 리더의 자질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리더라면 필경 사랑을 발산하게 되어 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성경은 거듭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설교할 때, 인용하는 에베소서 22-25절 말씀이다. 여기서 목회자 대부분이 남성이므로 거의 아내에게 무조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식의 설교를 듣게 되지만, 여기서는 약자인 아내로 하여금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전통적인 요구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인 남편에게 아내를 자아 희생의 정신으로(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었듯이) 사랑하라고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즉, 남편에게 요구하는 ‘사랑’이란 말보다 더 포괄적으로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복종’을 포함하는 더 총체적인 자기 희생인 것이다.
아울러 갈라디아서 5장 22-25절의 말씀에서 ‘섬김의 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인격적인 영성‘이라는 것이다. 영적이지 않은 리더십은 대개 독재, 위협, 강압, 자기 과시와 권력, 그리고 성적인 타락 등의 비인격적인 모습과 비윤리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목회 리더십에 있어서 권력의 남용은 반드시 비인격적이며, 비윤리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마련인 것이다. 요즘 회중이나 이웃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활동과 염려와 관심에 깊이 빠져 지내던 목회자들은 공허와 피로와 피곤과 실망을 경험하는 가운데 사역과 인물, 그리고 문제의 다양성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인격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목회 리더십과 영성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목회는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이 해방과 자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이해하게 해주는 하나의 삶의 방식인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모든 목회자에게 본질적인 것이지만, 목회의 영역 바깥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섬김의 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에서 비움과 자기 희생적인 사랑, 그리고 인격적이라는 요소가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목회자의 자질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2. 목회자의 자질은 인격적인 영성
1) 목회자의 자질의 상실시대
심상법 교수는 한국교회의 모습 특히, 목회자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소위 기도 방언하고, 신유하고 예언하는 일에는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실제의 삶은 파당과 분쟁과 다툼, 음란과 방종과 방탕, 자기주장과 자랑, 교만과 멸시의 모습이 우리의 영성의 모습이며, 특정 지도자에 매달려 있는 교조적 교회정치, 지역할거주의, 개 교회주의, 성장지상주의, 획일화되고 극단화되고 계급화된 공동체의 모습, 소위 신령하다는 영적 일에는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도 윤리적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교회의 모습, 갈등과 대결구도의 보수와 진보간의 힘겨루기, 성적 문란과 시치와 방종, 약자와 가난한 자들의 박탈감과 상실감, 이 모든 모습이 영성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다. 코메니우스가 쓴 [세상의 미로 와 마음의 천국]에서는 “목사의 세속성”이라는 소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목사들만 살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들이 기도하며 신앙의 신비를 찾고 있을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가죽 침대 위에서 코를 몹시 골며 자면서 빈둥거리며, 탁자에 기대고 앉아서 잔치를 벌려 마시며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어떤 이는 춤추며, 이러 저리 뛰었고, 다른 이는 지갑과 트렁크, 그리고 보물이 있는 방에다 뭔가를 마구 채워 넣고 있었다. 어떤 이는 호색과 방탕에 빠져있었고, 다른 이는 박차와 단검과 찌르는 검과 구식 보병총을 걸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으며, 사냥하고 있는 사람들은 개와 함께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성경을 읽는데도 최소한의 시간을 보냈고, 자신들을 말씀의 교사라고 자칭하면서도 거의 성경을 집어들기조차 하지 않았다.... 검정색의 긴 갑옷 코트에다 법관이 쓰는 사각모 헬맷을 쓰는 즉, 한 손에는 율법을, 다른 한 손에는 검을 가지고 있으며, 앞에는 베드로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뒤로는 가룟 유다의 지갑을 가지고 있는, 정신은 성경에 젖어 있으면서 생각은 교활함으로 단련되었고, 혀는 경건의 말로 가득 차 있으나, 눈은 방탕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괴물이었다.“
코메니우스를 통해 17세기의 그 당시 목회자의 모습에서나, 21세기의 오늘날의 목회자의 모습에서나 모두 목회자의 힘과 권력의 남용, 방탕과 교만, 신령한 것 같으나 상식에도 못미치는 비윤리성의 모습이 폭로되고 있다. 이는 목회자의 자질,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갖추어야 할 인격적인 영성이 결핍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들어 영성은 과제 지향적인 측면보다는 관계 지향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과제지향성은 집단의 과제 수행과정에서 구성원의 역할을 보다 분명하게 명료화시키고 행동의 원칙을 제시하면서 추진력을 발휘하는 반면에 관계지향성은 구성원들의 정서적인 만족이나 복지와 안녕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지도자의 자질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쉐퍼는 참된 영성은 견실한 교리와 아름다운 인간관계에 있다고 했다. 이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실천하여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지니는 것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독교의 실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로서 구성원들에게 군림하고 힘의 논리에 의하여 집단을 운영하는 지도자는 예수님이 섬기는 종으로서의 지도자상을 보여준 것과 같은 섬김의 덕을 갖춘 지도자, 교회의 지도자, 더 나아가서는 기독교의 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목회자는 자신의 일을 수행할 때 사랑의 논리에 근거해야 하며, 영적 감화력이나 성실성과 정직성 그리고 청빈함과 도덕적인 우월성을 소유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의 자질을 개발하고 훈련하는 일, 더 나아가 목회자 자신이 소유한 인성의 성숙함과 신앙인격의 자질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다.
2) 목회자의 유혹에 대하여
목회자의 신앙인격에 관련하여 생각하여야 할 문제는 바로 목회자에게 다가오는 유혹이 무엇이며, 또한 목회자가 감당해야할 고난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자질은 인격적인 영성과 관련이 있으며, 영성은 일상의 삶과 동떨어진 삶이 아니요, 일상의 삶 속에 이미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회자의 일상적인 삶이 영성의 삶으로 인지되고 실제로 삶에서 영성의 깊이를 이뤄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헨리 나우웬은 현대 기독교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세 가지 유혹은 ‘현실적이 되라’, ‘멋있게 보이라’, ‘힘이 최고다’라고 하였는데, 11세기의 교회 대분열, 16세기의 종교 개혁, 20세기의 거대한 세속화 등과 같이 교회사에 있어 큰 위기들을 볼 때마다 그런 파열의 주요 원인은 가난하고 힘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행사한 바로 그 ‘힘’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하나님 되는 것이 더 쉽고, 사람들을 사랑하기보다는 사람들을 컨트롤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이다. 교회 역사 중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는 때때로 사랑 대신에 힘을, 십자가 대신에 지배력을, 인도 받기보다는 인도하려는 유혹을 받아 온 사람들의 역사라고 역설하고 있다. 권력이라는 주제는 죄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이는 누가 주관하는 자가 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온갖 죄의 열매 즉, 거짓말, 도둑질, 간음, 사기, 질투, 시기, 탐욕 등은 바로 이 권력이라는 뿌리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도록 맡기기보다 자신이 주관자가 되려는 데 죄의 뿌리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리더들은 겸손을 배워야 한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려면 종된 의식을 품고 하나님을 향해야 가능한 것이다. 코메니우스는 권력을 통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낮은 자리를 구하며, 명령하기보다는 순종하기를 소망하라고 한다. 그리고 만약 여전히 다스리고 명령하기 원한다면 그 때는 자기 자신부터 다스리라고 권면해 준다. 이는 목회자는 남을 다스리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영성이 우리 인간의 사적, 공적인 삶에 있어 핵심 문제이며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할 때, 성의 영역도 영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도자가 무너지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성적 비행이다. 리더는 대개 리비도, 즉 성적 욕구가 남보다 강하다. 이는 남보다 스트레스가 많으며, 늘 남의 주목을 받고 온갖 인간관계의 문제에 휩싸이기 때문에 매일 느끼는 긴장감을 성적으로 풀고 싶은 유혹이 남보다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목회자의 자질은 거룩함과 정직성에 있다.
한국 라브리 총무로 일하고 있는 성인경은 목회자가 빠지기 쉬운 세 가지 영성의 무덤은 첫째, 자신은 경건의 능력이 없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위선적인 영성이며, 둘째, 경건주의와 함께 늘 붙어 다니는 이원론적인 영성이며, 셋째, 비인간적 영성이라는 것이다. 즉, 믿음은 좋은 거 같은데 인격이 형편없는 사람들, 즉, 온갖 영적 은사를 가졌으나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신령한 사람들, 쫀쫀하고 째째하고 인간미도 없는 그런 목회자들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영성의 무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갈5:24) 누구나 다 빠질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목회자가 자기 몸을 쳐 복종하지 않으면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기 자신이 도리어 버림이 된다는 사실을(고전9:27) 두려워하며 겸손히 리더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3) 목회자의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역시 관계적 속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관계적 속성을 인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갖고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며,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야 하는 존재이다. 리더로서의 목회자들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고독과 외로움에 덧붙여 목회자로서 독특하게 경험하는 고독과 외로움과 씨름하며 목회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인 목회자는 고독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정서적, 정신적,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하며, 그 고독의 시간과 장소를 통해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음미하며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참 모습을 솔직하게 분석하며 인식하며 분석하는 고통의 시간들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자를 통해 힘든 내면을 정화해내는 방법도 필요하며, 혹시 외로움이 우울증이나 다른 문제점들의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한다.
또한 하나님이 목회 지도자들이 겸손을 배우도록 쓰시는 방법 중 하나는 그들로 시험을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다. 시험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실패를 맛보는 것일 수도 있고, 도덕적 실수나 질병, 재정 악화, 관계 파탄, 낙심과 탈진의 형태일 수도 있다. 이 때 목회자 내면에서 하나님의 영과 일치할 수 있는 건강한 풍요로움 속에 겸손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을 따를 수 있도록 인격의 훈련과 결연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목회자들의 고난은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도 참아내야 하는 고통, 절제해야 하는 고통, 권모술수와 유혹과 어려움을 감당해야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감당해야 하는 고통, 그러면서도 늘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엎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뜻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 남의 비판과 배척을 감당해야하는 고통,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약점 속에서도 늘 자신보다는 남을 섬기고 돌보아야 하는 헌신적인 삶의 고난이 리더인 목회자들에게 항상 있게 마련인 것이다.
3. 목회 리더십에 있어서의 영성관리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적이고 긴급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영성관리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는 목회자의 사역이 영적 사역이고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사역이기에 미래 사회의 목회자들은 더욱 영성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며, 그 중에서 우선적인 의무는 자신의 영성관리와 영성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은 신령한 일에 아주 가까이 접해 있는 목회자일수록 더욱 영적 감각이 무뎌질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교인수를 늘리고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여 대형 시설을 갖추는데 관심을 쏟다보니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영성생활의 향상보다도 부차적인 일에 시간과 정열을 더 많이 쏟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영성관리의 출발점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데서 시작한다. 목회자는 자신의 영성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을 먼저 알아야만 한다. 즉, 목회에서 경험하는 상처, 복잡한 인간 관계의 갈등에서 오는 분노, 동역자들 사이에서 매일 겪어야 하는 경쟁 의식, 비교 의식에서 오는 열등감,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는 성취욕과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려는 열정이 뒤섞인 사역의 동기, 그리고 힘든 목회를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서 일어나는 좌절감 등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깨닫지 못하고 능력이 있는 체, 믿음이 있는 체하는 것은 신앙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의 영성 관리의 문제는 목회자의 내면 세계의 문제인 것이다. 고든 맥도날드는 내면 세계의 영적 차원에 질서를 잡는 것은 바로 영적인 정원을 가꾸는 작업이라고 했다. 즉, 내면의 영적 세계를 정돈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실 내적 공간을 만드는 자라는 것이다. 이는 자기 포기(self-surrender), 즉, 그것은 가장 깊은 자아를 예수님께 내어놓는 데 있는 것이다. 그는 첫째, 고독과 침묵의 추구, 둘째,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셋째, 사색과 명상의 체험, 넷째, 예배와 중보로서의 기도를 네 가지의 훈련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오정현 목사는 목회자의 영성관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음밭’에 있다고 한다. 남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을 당장 잃어버리지는 않겠지만, 대신 사역의 자유함, 설레임, 기쁨,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결과로 영적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성 위기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목회자 자신이다. 자신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은 내면의 문제라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영성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사역의 목적을 양(Quantity)에 두지 말고 조절할 수 있는 성품이나 자세, 태도, 질(Quality)에 두어야 하며, 겸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모든 영권(Spiritual Power)은 희생에서만 나오므로, 목회자 자신에게 요구되는 희생을 통해 영성의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목회자의 영성관리에 필수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기도는 남에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반성하며,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도는 사역을 위한 준비나 효과적인 목회를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어야 한다. 기도와 목회자의 삶은 동일한 것으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기도와 목회가 분리되면, 목회자는 기술자가 되고, 목회는 일상 생활의 많은 고통을 완화해주는 또 다른 방식에 불과할 뿐인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영성관리에 절대적인 요인은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과 깊이 씨름하며 날마다 말씀에 잠겨 있어야 한다. 목회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하면 잘 전할까를 고민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씀을 전하는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된 설교자는 변화된 시각으로 성경을 보게 되고, 변화된 설교자의 심령을 통하여 말씀이 선포될 때, 변화된 설교가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우선 그 말씀이 목회자 자신의 인격에 부딪히며, 그 말씀 앞에 자신이 엎드리며 철저히 순종함으로 목회자 자신이 먼저 변화를 받아야 한다.
세 번째 목회자의 영성관리는 목회자의 경건한 삶의 훈련에 있다. 즉, 목회자는 그 삶을 잘 고양하는 것이 지도자로서 할 일이다.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경건의 삶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자신이 경건한 삶의 양식을 가져야 한다. 목회자들은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분주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얼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겸손히 반성해야 한다. 사람을 돌보는 목회자는 능숙하지만 수완가라는 말을 듣지 말아야 하고, 지식이 있지만 사기꾼이라는 말을 듣지 말아야 하고, 전문가이지만 남을 조종한다는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가 자기를 부인하고 신실하고 인간 고통의 의미를 이해 할 때, 교인은 목회자의 손을 통해 하나님이 그를 위해 자상한 사랑을 보여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기도와 말씀과 삶의 훈련이라는 영성관리를 통해 자기 속에 있는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섬김을 받으려는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또한 반성하고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며, 깨끗하며, 신실한 종으로 서야 할 것이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목회리더십은 교회성장과 연관되어 목회자의 능력과 영향력에 초점을 맞추어 옴으로 외적인 성장은 많이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목회자란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자질면에 있어서는 너무도 소홀히 해왔다. 목회리더십은 무늬는 ‘섬김’이지만, 내용은 ‘권력’ 또는 ‘다스림’이라는 세상적인 의미로 팽배하여 행사되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목회리더십은 세상적인 의미의 파워게임을 본 뜬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주기 위해 오셨던 섬기는 지도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뜬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인 것이다. 그러므로 섬김의 리더십은 목회자의 소양과 인격적인 됨됨이라는 자질에서 나올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목회자의 자질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영성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게 되는 것이다.
목회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바울이라는 인물을 다루었다. 바울은 철두철미하게 자기의 사도직을 섬김으로 이해했고, 그가 성도들의 종으로서 ‘섬김의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사상과 삶을 가진 데에는 영성이 기초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울의 ‘섬김의 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목회자의 자질적인 요소는 예수님처럼 포기하는 ‘비움의 영성’이었으며, 영적인 리더는 남을 위해 종이 되는 사람이므로 자기 희생적인 '사랑의 영성'이었으며, 아울러 ‘섬김의 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인격적인 영성‘이었음을 살펴보게 되었다.
하지만 코메니우스를 통해 17세기의 그 당시 목회자의 모습에서나, 21세기의 오늘날의 목회자의 모습에서나 모두 목회자의 힘과 권력의 남용, 방탕과 교만, 신령한 것 같으나 상식에도 못미치는 비윤리성의 모습이 폭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목회자의 자질,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갖추어야 할 인격적인 영성이 결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은 영성이 과제 지향적인 측면보다는 관계 지향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는 추세이다. 참된 영성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실천하여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지니는 것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독교의 실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지도자의 자질을 개발하고 훈련하는 일, 더 나아가 목회자 자신이 소유한 인성의 성숙함과 신앙인격의 자질을 갖추는 일이 시급한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자질은 인격적인 영성과 관련이 있으며, 영성은 일상의 삶과 동떨어진 삶이 아니요, 일상의 삶 속에 이미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위선적인 영성과 이원론적인 영성, 비인간적 영성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목회자는 자기 욕망과 정욕으로부터 절제할 줄 알아야 하며, 외로움과 고독을 견뎌낼 줄 알아야 하며, 그리고 권모술수와 질병, 낙심과 탈진 등의 여러 가지의 고난등을 견뎌낼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성희 목사는 “기술이 발달되고 사회가 조직화될수록 인간의 심리는 영성을 찾게 되고 본질로 돌아가려고 하는 회귀본능이 발달하게 되어, 인간은 기술에서 초연해지고 조직에서 해방되려는 실리를 동시에 가지게 되며, 이러한 해방의 돌파구로 영성을 추구하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21세기는 목회기술이 아니라 목회영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목회자의 영성은 미래 교회의 생명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21세기는 기계적이고, 위계적이며, 강압적인 목회 리더십이 이제는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생과 헌신의 ‘섬김의 리더십', 사람과의 관계에서 인격적인 리더십을 요구하는 세대가 도래하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말이다. 따라서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적이고 긴급한 일은 영성관리에 깊은 관심을 갖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영성관리의 출발점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목회자가 자신의 영성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 즉, 경쟁의식, 열등감, 성취욕 등을 먼저 알아야만 하는 것으로, 목회자의 적은 바로 목회자 자신이기 때문에 목회자의 영성 관리는 목회자의 내면 세계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의 영성관리에 필수적인 요인은 무엇보다도 기도를 통해서 남을 통제하기 위한 능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또한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과 깊이 씨름하며 날마다 말씀에 잠겨 있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우선 그 말씀이 목회자 자신의 인격에 부딪히며, 그 말씀 앞에 자신이 엎드리며 철저히 순종함으로 목회자 자신이 먼저 변화를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목회자의 경건한 삶의 훈련에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기도와 말씀과 삶의 훈련이라는 영성관리를 통해 자기 속에 있는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섬김을 받으려는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또한 반성하고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며, 깨끗하며, 신실한 종으로 서야 할 것이다.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주님의 양들을 먹이도록 부름 받은 목회자들이 기도와 말씀과 삶이라는 영성관리를 통해 예수님처럼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줌으로써 숫자적이며, 거품적인 부흥의 흐름에서 방향을 바꿔 인격적이며, 참된 부흥의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기를 염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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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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