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2014.11.09 선민의 신앙생활(창세기 14:17-20)/ 설교: 권종호 목사

하나님아들 2018. 4. 2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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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의 신앙생활 창세기 14:17-20 오늘은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성서 전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식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답은 포도입니다. 아가페 출판사의 ‘성경성구대전’에 의하면, ‘포도’라는 단어는 42회 사용되었으며, ‘포도나무’라는 단어는 61회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무화과’의 24회, ‘무화과나무’의 37회와 비교할 때에, 월등히 많은 빈도수입 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포도주’라는 단어가 160회나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원’이라는 단어도 110회 사용되었습니다. 이래저래 포도와 관련된 단어들이 많이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가 이렇게 많이 언급된 것은 이미 노아 때부터 포도농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포도가 평화의 표시 이기도 했으며, 비유에도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성서 전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동물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양입니다. 앞서 언급한 ‘성경성구대전’에 의하면, ‘양’이라는 단어는 244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양떼’라는 단어 도 99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양이 이렇게 많이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일찍부터 목축업에 종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 님께 드리는 희생제사의 제물로 사용되었으며, 비유에도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성서 전체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다윗입 니다. ‘성경성구대전’에 의하면, ‘다윗’이라는 이름은 982회나 사용되었습니다. 857회 사용된 ‘모세’라는 이름보 다 많습니다. 203회 사용된 ‘바울’이라는 이름과 비교하면, 월등히 많은 빈도수입니다. ‘다윗’이나 ‘모세’라는 이름이, ‘바울’이라는 이름과 비교해서, 월등히 많은 빈도수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 까요? 그것은 두 사람 모두 구약시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약과 비교해서, 구약은 3배 이상의 분량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인물 이름이 많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바울은 복음서에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빈도수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빈도수에 상관없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 까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언약을 맺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일 뿐만 아니라, 하나 님께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모든 선민의 조상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선민의 조상일 뿐만 아니라 후손들 앞에 좋은 본을 보여 준 사람입니다. 성서가 전해주는 아브라함은 좋은 신앙생활로 이스라엘의 후손들과 믿음의 후손들에게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택함 받은 선민의 신앙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 본보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성서는 아브라함이 어떤 신앙생활을 했다고 전해 주고 있을까요? 첫째,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께 예배하 기를 힘썼다고 전해 줍니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즐겨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이런 일은 특히 장소를 이동할 때에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창세기 12장 7절에 의하면, 가나안 땅 세겜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12장 8절 에 보면, 벧엘과 아이 사이에 거할 때에도,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13장 4절 에 보면,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잠시 내려갔다가 올라온 다음에도, 다시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13장 18절에 보면, 헤브론에 이르렀을 때에도,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이 모든 구절이 주는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영국의 신학자 레이몬드 압바가 쓴 책인 ‘기독교 예배의 원리와 실제’에 의하면, 원 예배는 ‘최상의 가치를 돌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상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점에서 예배는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피조물인 인간이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 얼굴을 보이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예배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쓴 아브라함은 좋은 신앙생활의 본을 보여 준 것입 니다. 하지만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쓰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교회의 변천과정은 그 좋은 예가 됩니다. 다른 모든 나라 교회와 마찬가지로, 미국교회도 시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시가 형성되면서 사람이 도시 로 몰리자, 교회도 도시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대교회가 도시 한복판에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난 전원생활을 꿈꾸며 도시 변두리로 이동했습니다. 그러자 도시 변두리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교회는 초대형교회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교회가 성장한 것은 아닙니 다. 소수의 교회가 성장한 반면에, 다수의 교회는 성장에 실패한 나머지 매각되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왜 교회가 매각되는 아픔을 겪게 될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점점 예배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교인 수는 감소하게 되었고, 늘어나는 재정 적자를 해결하지 못해, 교회는 매각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 교회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면, 언제든지 미국교회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마을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신다면,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은 당연히 예배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우리 모두에게 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성서가 전해 주는 두 번째 것은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또는 어떤 명령을 내리시든지, 즐겨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나이가 75세나 되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으 로 이주했습니다. 창세기 17장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이미 99세가 된 노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날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행하여, 언약의 표징을 몸에 지녔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테스트해 보시려고,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에도 아브라 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장소에 이르러서,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은 다음에,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손에 칼을 들고서, 이삭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자가 멈 추게 하지 않았다면, 이삭은 꼼짝 없이 번제물로 불살라 질 뻔 했습니다. 이삭은 죽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 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모든 구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피조물의 당연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보면, 선지자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사로 표현된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함 께 갖추어 진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항상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좋은 신앙생활의 본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롯의 아내는 그 좋은 예가 됩니다. 창세기 19장 26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과 불로 멸하실 때에, 천사들을 통해 롯과 그 가족 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시며,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하셨지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을까요? 불에 타버릴 재산이 아 까웠기 때문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롯의 아내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 27절과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무리 가운데서 한 여인이 목소리를 높여서 말하기를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 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 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우리 모두에게 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성서가 전해 주는 세 번째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소돔과 고모라를 쳐들어온 왕들이 소돔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비롯한 많은 사람 들을 사로잡아 가고, 모든 재산을 빼앗아 갔을 때에,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시킨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모두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이 돌아오자, 소돔 왕이 사웨골짜기로 나와 아브라함을 영접했고,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 도 나와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기가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드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소득의 십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드렸을까요?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감사 때문이었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것도, 자신이 살아 있는 것도, 조카를 비롯하여 사로 잡혀간 모든 사람과 빼앗겼던 재산을 도로 찾은 것도, 모두 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감사로 소득의 십 분의 일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해 감사한 사람이었다는 것입 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성서가 가르치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우리가 가진 것과 우리가 얻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깨닫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은 신앙인의 당연한 자세입니다. 이 점에서 소득의 십분의 일을 예물로 드린 아브라함은 좋은 신앙생활의 본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봉헌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 를 통해 이 사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기록되어 있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에는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둔 한 부자가 나옵니다. 그런 데 이 부자는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웃에 대해서도, 전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오로지 그가 하는 궁리는 곡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자기 곡식을 거기에다 쌓아 둔 후에, 마음 놓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이 점에서 우리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감사를 잃어버리면, 어떤 좋은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봉헌할 줄 모르며, 이웃에게 나누어줄 줄 모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 높여 말하기를 “예수 선생님 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되돌아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함께 오지 않은 나머지 아홉 사람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시며, 되돌아온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 구원 받을 믿음의 소유를 의미한다면,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해 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우리 모두에게 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택함 받은 선민의 조상으로서, 선민이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써야 함을 보여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보여 주었으며, 감사로 하나님께 봉헌해야 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씁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 기를 힘씁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봉헌하기를 힘씁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 아브라함을 본받아, 택함 받는 선민으로서, 좋은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쓰며, 감사로 하나님께 봉헌하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택함 받은 선민으로서, 아브라함처럼 좋은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4:17-20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 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출처 : 주의 향기가 머무는 곳
글쓴이 : 삼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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