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2014.11.16 감사의 근거(요엘 2:21~27)/ 설교: 권종호 목사

하나님아들 2018. 4. 2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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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근거
요엘 2:21-27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감사는 받은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사랑을 받으며 사는 모든 사람에게 꼭 있어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성서에 의하면, 감사는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출애굽기 2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세 차례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시며, 빈손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셨습니 다.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여 드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러주신 이유는 세 절기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년 세 차례 절기 때마다 예물을 준비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는 말씀은 감사를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면, 우리는 당연히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생각하며,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처럼, 상황이 좋을 때는 마음껏 감사할 수 있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할 때는 자꾸만 ‘무엇을 감사하라는 것 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듣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고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메뚜기 떼가 날아와서, 모든 농작물을 먹어버린 재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엘 1장 4절의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라는 말씀이 메뚜기 재앙 을 잘 설명해 줍니다. 히브리어로 가잠, 아릇베, 얏레크, 하시일 이라고 이름 붙여진 메뚜기 떼가 차례로 날아와 서, 모든 농작물을 먹어 치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선지자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회를 요청함과 동시에 회복에 대한 믿음으로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 께 돌리라고 외쳤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21절에서는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했으며, 23절에서도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요엘이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도 감사할 조건이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감사의 근거를 본문을 통해 선포했습니다. 그러면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좌절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엘이 제시한 감사의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요엘이 제시한 첫 번째 감사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본문 21절과 22절에 기록된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 때문입니다. 요엘은 땅도 들짐승도 모두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서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황량하고 메마른 대지가 푸른 초원이 되고, 온갖 동식물들의 낙원이 된다는 것은 황폐함을 본 사람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해 전 산불로 인해 시꺼멓게 되었던 영동지역의 산들이 다시 녹색 옷으로 갈아입은 것을 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땅과 동식물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찬송해야 한다고 요엘이 외친 것입니다. 힘이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일어 설 수도 없고, 활동할 수도 없으며, 일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힘은 모든 것을 제 모습으로 제 자리에 있게 하는 근본 요소입니다. 그래서 시편 46편 1절에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심으로, 우리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니, 이것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가 쓴 단편 중에 ‘마지막 잎새’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폐렴으로 앓고 있는 존시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존시는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창문 너머로 보이 는 이웃집 벽에 붙어 있는 담쟁이 잎만 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호해 주는 친구 수에게 담쟁이의 마지막 잎새 가 떨어지면 자기도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존시와 수가 사는 방 아래층에 베어만이라는 노인 화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수는 그 노인에게 존시의 얘기를 들려 주면서, 정말 존시가 마지막 잎새와 함께 떠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후려치는 듯한 비와 세찬 바람이 밤새도록 휘몰아쳤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커튼을 올려달라는 존시의 말 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커튼을 올린 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잎이 다 떨어졌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노랗게 마른 잎새 하나가 의젓하게 매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마지막 잎새는 그대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잎새를 바라보는 존시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를 보며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존시를 찾아 온 의사는 존시에게 위기를 벗어났다는 말과 함께 늙은 화가 베어만이 폐렴 에 걸렸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날 오후 수는 존시에게 베어만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며, 벽에 붙어 있는 마지막 잎새는 베어만의 걸작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모든 잎이 떨어지던 날 밤에, 베어만이 그 벽에 잎새 하나를 그렸 다고 말해 준 것입니다. 베어만이 존시를 위한 화가였다면, 우리를 위한 화가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위해, 우리 삶의 화가가 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30절과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 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엘이 제시한 두 번째 감사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단비입니다. 본문 23절에 기록된 기쁨과 즐거움 의 이유는 이른 비와 늦은 비 때문입니다.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외쳤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른 비는 11월에 오는 비입니다. 이때에는 농부들이 파종할 수 있도록 많은 양의 비가 내립니다. 늦은 비는 3월과 4월에 내리는 비입니다. 오랫동안 지속될 건기를 대비하도록 내려지는 비입니다. 이처럼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생명을 보장하는 근본 요소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풍성한 수확과 생명의 지속 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4절에서는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5절에서는 메뚜기 떼로 인해 당한 어려움을 보상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풍성한 수확과 풍족한 식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히 내려주심으로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요엘의 외침인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의 근본 요소를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 으로 찬송하라는 것이 요엘의 가르침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빠져나와 광야 생활을 하면서 만난 첫 번째 어려움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무엇이라고 생각되십니까? 그것은 물로 인한 어려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수르광야로 들어갔는데, 사흘 길을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마음껏 마실 것 같은 물이었지만, 광야에서는 그 물이 없었습니다. 마라라는 곳에 이르러 물을 발견했습 니다. 하지만 써서 마실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급기야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게 되었고, 다급해진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모세가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여, 모든 백성이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합니다. 물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물뿐만 아닙니다. 공기도 햇빛도 인간이 살아 갈수 있도록 하는 근본 요소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것들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십니까? 바로 우주 만물의 창조자시요, 모든 피조물을 주관하시는 하나 님이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1절과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은혜로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엘이 제시한 세 번째 감사의 근거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본문 26절과 27절의 마지막은 모두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라는 구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두 구절 사이에 기록되어 있 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셔서, 친히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이스라 엘과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정말 감사의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금송아지 사건 이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 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너 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 는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출 33:1-3) 이 말씀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께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지도자가 된 후로 줄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모세가 백성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다고 거부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서 함께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사자를 앞서 보내어 모든 원주민을 다 쫓아내고, 모든 백성을 안전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다 할 찌라도, 하나님이 함께 가지 않으시면, 결코 백성들을 이끌지 않겠다는 것이 모세의 주장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거센 항의에 대해서 “내가 친히 가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 신 것입니다. 모세의 위대한 점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모든 것을 가져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침 안개와 같이 쉬 사라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아무 것도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주인 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요청한 모세는 정말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성서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의 표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주신 말씀 가운데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처녀인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의 표임을 분명히 밝혀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의 처음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시작했다면, 마태복음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약속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의 마지막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저자가 함께하심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을 복음서의 마지막에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 의 함께하심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하나 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통한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게 주시는 가장 귀한 은혜인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귀한 은혜이기에,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찬송해야 한다고 요엘이 외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엘은 힘을 주시는 하나님, 생명의 단비를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께 감사의 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송하라고 외쳤습니다. 이 외침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응답하시렵니 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겠습니까? 아니면 마음에 새기고, 일평생 삶을 인도하는 지표로 삼겠습니까? 바라기는 뜻 깊은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모두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하시고, 생명을 주시며, 힘을 주시 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성도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요엘 2:21-27 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 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출처 : 주의 향기가 머무는 곳
글쓴이 : 삼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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