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예수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

하나님아들 2018. 4. 7. 11:36
                                       예수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 


 

행 2:29-36“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복음서에 나타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와 개인의 부활에 대한 체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이 역사적인 사실만 기록하여 전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끝난다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일에 국한된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인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사건입니다.

죄인인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곧 나와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아무리 부활하셨다 하더라도 나의 부활이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은 무덤이 없다

 

한국 강산은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한동안 호화 분묘로 인하여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었지만, 공원묘지 마다 만원을 이루고, 무덤

자리가 부족하여 산을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점차 화장 문화로 변하여 수목장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어서 무덤을 남기고,

무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묘지를 만들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 그들은 예수님을 갖은 수법을 다하여 모함하고 비방해서 무덤 속에

집어넣으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무덤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자기를 잡아 무덤에 집어넣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입성하셨습니다.

결국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궤계대로 잡히게 되고 재판을 받아 무덤에 갇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요셉 가문의 무덤에 묻히게 됩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 무덤에 가둬둘 수 있었으나 영원히 가둬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말씀하신 바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무거운 돌문도 예수님을 무덤에 가두어 둘 수는 없었습니다(막16:3)

로마 군병들이 아무리 조직을 잘해서 든든하게 지킨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마27:6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무리 강력한 금력(金力)과 권력(權力)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무덤에 가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완벽하게 로비를 했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마27:62-66)

예수님은 살아 나셨습니다. 스스로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갇혔으나 무덤이 없는 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서로 무덤 속에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고 비방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기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무덤 속에 묻어 둘 수 없습니다.

진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잠시 잠깐은 죽임을 당하고 무덤 속에 갇힐지 모르나 그것은 갇히는 것이 아닙니다. 

끝내는 드러나게 됩니다. 어떤 오해를 받습니까? 어떤 궤계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합니까?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진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죄없이 무덤에 갇힐 수 있습니다. 오해를 받고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입니다.

진리는 드러나는 것처럼 모든 진실이 드러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2. 우리는 예수님의 무덤을 보지 말자

 

안식 후 첫날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보기 위해서 갑니다(마28:1)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은 것입니다.

빈 무덤뿐이었습니다(눅24:3)

제자들도 무덤으로 갔습니다. 역시 예수님께서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므로 무덤에 가서 뵈려 하였으나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에 주께서 말씀하셨던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고 예수님을 무덤에서 보려고 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무덤을 보지 말아야 합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 왔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왔습니다(롬5:12)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영생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되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됩니다(요5:24)

 

둘째로, 사망권세를 잡은 마귀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히2:14) 

마귀는 계속해서 예수께 도전했습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그 후로 마귀는 예수님께 정면 도전하지는 못하고 계속해서 측면 공격을 했습니다.

가룟 유다를 이용하여 예수를 팔아넘기게 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셋째로, 죄를 정복하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골2:13-15)

 

넷째로,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본래 의심이 많은 제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와도 만나주셨습니다.

그때 도마가 고백하기를“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요20:28)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무덤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3. 우리도 부활을 체험하자

 

성경을 보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이 있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가 죽었다가 나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요11)

유두고가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떨어져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이것은 진짜 부활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표입니다. 진정한 부활은 영의 부활을 말합니다.

영의 부활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벧전1:3)

그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벧전1:4)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는데이때 우리의 영이 부활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영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고, 영육이 부활하는 것도

아니고, 육이 부활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부활한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육이 부활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 났을 때에 이미 영이 부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육만 부활하는 것입니다.

오늘 기독교는 영의 부활이 있다고 하나 생활의 부활이 없습니다.

영이 부활한 사람은 생활도 부활해야 합니다. 언어도 부활해야 합니다. 생각도 부활해야 합니다.

행동도 부활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부활을 체험하면서 그 체험한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우리도 부활의 증인되자

 

부활을 체험한 베드로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증인은 순교를 각오한 사람입니다.

순교라는 말과 증인이라는 말은 같은 어근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핍박과 환난 앞에서도 담대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행3:10절에“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전 미문 앞에 앉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행3:10)

곧 육체적인 부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소식을 전하고,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다 보니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부활의 도를

전함을 싫어하여 제자들을 잡아 가두게 됩니다(행4:1-3)

그래도 믿는 자의 수가 더하게 됩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옥에 갇힌 사도들을 대제사장들과 관원과 서기관들이 함께 모여 심문을 하자 그들은

행4:10-12에“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의 이름을 부활을 체험한 자들이 듣고 나아가 담대히 전할 때에 많은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증인이 되려면 먼저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체험이 없으면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직접 체험하여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출처 : limbible
글쓴이 : Thinktan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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